급격히 부각된 ‘창의성’ 2010년 1월 교육과학기술부는 ‘창의와 배려의 조화를 통한 인재 육성-창의 인성교육 기본방안’을 중점 과제로 발표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창의적 체험의 활동시간을 늘려야 하기에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회사원부터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서 창의성이 강조되더니, 이제 교육에서도 창의성은 중요한 덕목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교육에서 창의성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이 최근 일은 아니다. 교육목표로써 창의성 함양이 문서화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1955년 제1차 교육과정 보건체육과에서 ‘창의성을 기른다’는 지도 방침을 수립한 이후부터, 모든 제도권 교육기관의 교육과정 총론에서는 창의성을 언급해왔다. 이는 창의성이 예전부터 이미 중요한 교육 지향이었음을 말해준다. 물론 그렇게 반복적으로 거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창의성 교육이 달성되지 못했기에 근래의 가장 절실한 교육목표로써 대두된 것 또한 알 수 있다. 요즘 ‘창의성’이 크게 부각된 이유는 분명하다. 앞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창의성’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미래학자가 21세기에는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고, 기업에서도 창의적 인재
40년 전 기억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리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아프리카 지역의 열대우림 기후 풍토와 자연환경을 설명하는 중이었다. 우리가 흥미를 느낀 것은, 사람이 이것에 물리면 한없이 잠을 자게 되는, 이른바 수면병을 일으킨다는 흡혈 파리인 체체파리(Tsetse fly)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우리들의 흥미를 확인하신 선생님은 약간의 신명을 띠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질문인 듯 의문인 듯 말을 했다. “선생님, 그거 아프리카에 직접 가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순간 선생님의 낯빛이 달라졌다. 그 당시는 텔레비전이 귀한 시절이고, 자연 다큐멘터리 동영상 하나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학생으로서는 품어봄직한 의문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 보지도 않고 아프리카를 다 아는 척 말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불손한 태도가 묻어나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질문은 ‘지식에 대한 의문’이었지만 그것은 곧 ‘선생님 인격에 대한 의문’으로 오해받기에 족한 것이었다. 당신의 지식이 신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셨는지 선생님의 신명은 일시에 사그라졌다. 선생님은 “건방진 녀석!” 하고 짧게 되뇌시고는, 문제의 친구를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