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 문호의 한사람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상대성원리로 과학의 새 지평을 연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그리고 21세기의 정보화 사회를 주도한 빌 게이츠 등은 어떤 교육을 어떻게 받았기에 이런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보이지 않는 교육의 힘 분명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교육의 도움 없이는 이러한 업적을 남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정규 학교 교육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의 잠재력과 비정규적 학습 결과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게이츠는 스스로 대학을 중퇴하였고, 도스토옙스키는 튼튼한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아인슈타인 역시 스위스에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이성적 사고를 통해 과학적 발견을 한 적이 없다’고 고백했듯이 정규 학교 교육 때문만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학교 교육을 ‘보이는 교육(visible education)’라고 한다면 ‘보이지 않는 교육(invisible education)’은 학교 교육이 아닌 개인의 성장 과정이나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이루어진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족적을 남긴 사람들은 ‘보이는 교육’과 ‘보이지 않는 교육’이 잘 조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학교에서 간과하기
‘책상 위의 사과는 빨갛다’라는 명제는 경험적 진리이다. 왜냐하면 저 사과가 오랜 시간이 흘러가면서 마르고 시들어 썩어 버리면 더는 ‘빨갛다’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험적 진리는 믿을 수 없는 우연적 진리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 기쁘지 아니한가? 플라톤(Platon)은 세상을 크게 두 개로 나누었다. 하나는 감각적이고 변화무쌍한 현실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 세계 저 너머에 있는 변화하지 않는 참된 진리의 이데아(Idea) 세계이다. 그래서 플라톤에게 참된 진리의 세계는 이데아 세계이다. 눈앞에 보이는(현실 세계에 있는) ‘책상 위에 있는 빨간 사과’는 세월이 가면 썩어서 모습이나 맛이 바뀌게 되는 사과이기 때문에 참된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짜 사과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사과는 머릿속, 이데아 세계에 있다. ‘이데아’ 하면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영어로 생각(idea)이란 단어의 유래로 보면된다. 자, 그럼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사과를 생각해보자. 머릿속에 둥그런 사과가 떠오를 것이다. 빨갛고 새콤달콤한 이 사과가 가진 속성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실 속 사과는 시간이 지나면 썩어서 모습과
바야흐로 인문학이 대세이다. 고도 정보화 사회, 개인주의, 물질 만능주의에 따른 인간성 파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가장 절실한 것은 자신의 중심을 잡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 자신을 알고, 이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갖추는 일이다. 이에 발맞추기 위해 인성교육진흥법이 공포되었고, 학교에서는 인성중심수업이라는 새로운 수업문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인문학적인 소양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의 인성 함양을 위해 이처럼 노력하고 노심초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 황폐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참 삭막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정말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학교와 집, 학원을 오가며 가족과 친구보다는 컴퓨터 게임과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간적인 소통과 따뜻한 공감보다는 과중한 공부와 스마트 기계 문명에 중독되어 있다. 여유 없이 늘 바쁜 아이들을 보면서 비록 가난했지만 인간미 넘치던 ‘가슴 따뜻한’ 나의 어린
학교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예방교육으로 신체폭력 발생은 눈에 띄게 감소하였지만 사이버폭력이나 언어폭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는 학생들의 일상화된 욕설 문화와 스마트폰 사용시간의 증가도 큰 원인이겠지만 그 내면을 파고 들어가면 자신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공감하는 것이 힘든 10대들의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이 비단 10대 청소년만의 모습일까? 교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 학교폭력 사안을 상담하다 보면 교사들이 정말 힘들어 하는 것은 아이의 거짓말이나 변명, 욕설이 아니다. 학부모의 노여움이다. 일단 언성부터 높이고 형사고발을 운운한다. 왜곡된 상황을 바로잡으려 해도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중재라도 하려 들면 교사의 중립을 아주 쉽게 의심해 버린다. 그럴 때마다 교사들은 깊은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최근 들어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심의를 거쳐 내려진 조치사항에 재심과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참여법정의 사건 심의도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선 아이들이 ‘욱’해서 치고받은 폭력 사건이 알려지면 “누가 합의금으로 몇백만 원을 달라고 했
교육 전문가로서 교사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교실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연구와 노력, 연찬을 통하여 교수·학습방법과 평가방법을 다양화하지 못하고 질 제고를 통한 학생 맞춤형 교육과 교실 수업 내실화가 미흡하여 학교 교사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이와 관련하여 교사들의 수업 전문성 신장을 통한 교실 수업 개선을 위한 세부 추진 방안에 대하여 논술하고자 한다. [교사들의 전문성] 교사는 국가로부터 전문 자격을 부여 받아 학생들을 교육하는 전문직이다. 학생교육의 영역은 크게 교과 지도와 생활지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교과 지도 부문의 전문성이다. 교사는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서 교과내용의 이해와 지도, 지도내용의 평가와 분석 및 피드백, 개인 성적 향상을 위한 상담과 지도, 방과후학교를 통한 보완 및 창의성 신장교육, 문제해결력 증진을 위한 교수·학습방법의 다양화와 개선 등의 전문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둘째, 학생들의 생활지도와 상담에 관한 전문성이다. 자기주도적 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민주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며, 진로·진학교육을 실시하고,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가질 수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숙제 없는 학교’와 ‘초등 선택형 평가 폐지’를 발표했다. 숙제를 폐지하는 것은 학생의 학습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이고, 선택형 평가 폐지는 단순한 암기 중심 학습을 탈피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공감의 여지도 있다. 그러나 현장 교원이나 학부모의 충분한 의견 수렴이나 숙의 과정 없이 행정적 차원에서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숙제다운 숙제’를 논의할 수는 없었나? 대부분 사람은 숙제를 가정에서 공부시키는 수단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숙제는 교실을 벗어나 배운 내용을 확인하고, 다시 활용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앞으로 배울 내용을 준비하는 기회가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습은 교실 내에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가정과 연계되는 활동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숙제가 갖는 순기능적 측면을 고려한다면 폐지하기보다 가정과 연계하여 ‘숙제다운 숙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먼저 면밀히 검토하는 과정이 선행됐어야 한다. 숙제를 폐지하면 학부모는 과연 어떤 판단을 하게 될까? 맞벌이가 많은 요즘, 숙제의 폐지는 고스란히 학부모의 또 다른 교육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또 폐지를 발표하기에 앞서 숙제에 대한 순기능과
최근 ‘츤데레’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츤데레’라는 말은 일본어 ‘ツンデレ’에서 비롯된 말이다. ‘처음엔 퉁명스럽고 새침한 모습을 보이지만, 애정을 갖기 시작하면 부끄러워하는 성격이 드러난다’(위키백과)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남자’라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예전으로 치면 ‘까다로운 남자’쯤 되지 않을까 싶다. 스웨덴 책에서 만나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 다양한 미디어 속에서 우리는 까다로운 인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오베라는 남자의 주인공 역시 ‘츤데레 아저씨’, ‘까다로운 아저씨’이다. 하지만 보편적 가치에서 생각해보면 ‘까다로운 남자’, ‘나쁜 남자’의 성격은 ‘옳다’고 평가받기 어렵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원만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를 위한 배려와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데, 주인공 오베처럼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환영받기 어려운 성격이기 때문이다. 오베와 같은 성격은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겉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지만 묵묵히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
올해부터는 늘 하던 영어수업 외에 독서토론수업을 주 4시간 진행하게 되었다. 독서토론수업은 처음 시도해보는 터라 긴장되었다. 게다가 담임교사를 비롯한 참관 희망 교사들에게 공개수업 형태로 진행되다 보니 더욱 부담스러웠다. 영어수업이라면 뻔뻔스럽게 할 수 있으련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설렘이 가슴에 가득했다. ‘우리 아이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내어놓을까…’ 기대하면서 독서토론수업 달인인 동료 수석교사에게 검증까지 받았다. 아이들이 심리를 꿰뚫는 내 탓이 아니야 첫 번째 독서토론수업은 내 탓이 아니야라는 그림책으로 선정했다. 스웨덴 출신의 작가 레이프 크리스티안손(Leif Kristiansson)이 교사이기도 해서 그런지 아이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책이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표정이 그 아이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는 딕 스텐베리(Dick Stenberg)의 그림도 무척 매력적이다. 책의 내용은 괴롭힘을 당하는 한 아이와 그 아이를 적극적으로 괴롭히는 아이, 주도적이지는 않지만 함께 괴롭히는 아이들, 방관하는 아이들, 그리고 도와주지는 못하지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각자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것으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부패의 주체에 ‘각급 학교의 장과 교직원 및 학교법인의 임직원’을 포함시킴으로써 우리 사회가 교육계에 갖는 불신이 생각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앞으로 교원은 물론이고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 학교법인의 임직원(교직원 등) 모두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더라도 1년 300만 원, 1회 100만 원 이상의 금품 수수 또는 요구·약속 등을 할 수 없으며, 배우자가 금품을 수수한 경우에 이를 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및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등 엄격한 처벌을 받게 된다. 또한 누구든지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교직원 등에게 입학·성적·수행평가 등의 업무에 관하여 법령을 위반하여 처리·조작하도록 하는 행위를 청탁할 수 없도록 금지된다. 문제는 청탁을 받은 교직원 등의 대응이다. 법은 청탁을 받은 교직원 등은 상대방에게 부정청탁임을 알리고, 이를 거절하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하여야 하며, 동일한 부정청탁을 다시 받은 경우에는 이를 소속기관장에게 서면 또는 전자문서로 신고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교육자가 학생이나 학부모를 신고하지 않
이런 사례에서 보듯 지금 학교는 소송이 난무하고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등 정당한 학생지도조차 대항할 수 없는 ‘교육 아노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교총에 접수된 교권침해 건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6년에 179건이었던 것이 2015년에 488건으로 2.7배 증가했다. 특히 학부모와의 갈등·분쟁의 경우 2015년도에 발생한 488건의 교권침해 건수 중 227건으로 46.5%나 차지하고 있다. 이는 상담 건수로 잡힌 표면상 수치일 뿐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교권침해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육부에 보고된 교권침해 현황과 실제로 가해자에 대한 조치 현황을 살펴보면 더 심각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교권침해 행위에 대한 가중처벌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교원단체·정부·국회에서 법제화가 논의되었다. 한국교총의 건의에 따라 지난 2012년도 교육부에서 발표한 ‘교권보호 종합대책’ 방안에 교권침해 학생·학부모 등에 대한 조치 강화 차원에서 학부모 등 제3자의 교권침해에 대한 ‘가중처벌’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가 법안발의를 진행하다가 학부모단체들의 반발이 예상되자 슬그머니 빼버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