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박완서)께서 영면에 드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문학계의 큰 별이 졌으니 후배 문인들의 슬픔도 크겠지만 선생님의 작품을 접하며 학창시절의 꿈을 키웠던 기성세대와 교과서에 실린 선생님의 작품을 배우며 상상력을 기르고 풍부한 감성을 키웠던 아이들도 선생님의 영면이 못내 서운하고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선생님의 작품을 자주 접하는 편이다. 읽고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진가를 느끼기에 충분한데 아이들에게 가르치기까지 하니 그 감동은 늘 배가되는 듯싶다. 사실 같은 교과서를 여러 해 동안 가르치다보면 단원에 따라서는 싫증나는 내용도 있게 마련인데 선생님의 작품이 나온 단원은 마시면 마실수록 속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다향(茶香)같은 매력을 지녔기에 늘 기다려진다.
애틋하면서도 가슴시린 사연을 담고 있는 선생님의 작품은 우리 역사의 살아있는 그릇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려한 문체와 빈틈없는 언어의 조탁은 가히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경지에 이르렀고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정밀하게 복원한 과거의 상상력은 흉내를 거부할 만큼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선생님의 작품은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껴안고 있으며 고도산업화사회로 접어든 도시문명의 비정성과 물신주의적 양태를 아우르면서도 모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간절한 외침과 함께 소시민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품어주는 훈훈함이 스며있다.
선생님의 작품은 한국 문학의 정수이자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과 실상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본이기에 교과서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초등 국어교과서에는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 중학 국어교과서에 ‘옥상의 민들레꽃’, 고교 국어교과서의 ‘그 여자네 집’ 등이 있고, 고교 문학교과서에 ‘나목’, ‘자전거 도둑’, ‘엄마의 말뚝’, ‘우황청심환’등 십 여 편 이상의 작품이 실렸다.
잠시 덮어두었던 국어교과서를 펼쳐보았다. 표지를 열면 두 번째 만나는 글이 바로 선생님의 단편소설 ‘그 여자네 집’이다. 1997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서술자인 ‘나’가 김용택의 시(그 여자네 집)를 읽고 어린 시절 만득이와 곱단이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이별을 통하여 민족사의 불행(일제치하, 남북분단)을 조명한다는 내용이다.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소한 어휘와 구절에 밑줄을 치고 설명을 달거나 구성 단계에 따라 분류한 표식도 보였다.
그래도 이 단원을 가르칠 때만큼은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인용시를 낭송하거나 연극대본으로 바꿔보는 등 아이들의 활동을 늘렸다. 우리 근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이었던 일제만행과 전쟁의 참상을 등장인물의 안타까운 사연 속에서 찾아 재인식하고 지금의 한국사회를 지켜온 버팀목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묻기도 했다. 말 그대로 국어 수업이었지만 역사․사회․도덕 등 여러 교과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내용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문학 특히 소설 수업이 갖는 장점이기도 하다.
요즘 국어교과서를 보면 과거에 비해 문학 작품의 비중이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교과서의 내용이나 구성체계도 시대에 맞게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나 그렇다고 문학의 보편성과 효용성을 무시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그 자체만으로 인성․창의성 등 시대를 불문하고 교육이 추구해야할 근본적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학교육의 가장 큰 왜곡은 시험에 있다. 당장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작품의 감상보다는 이해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고 작가의 의도를 객관화하여 아이들에게 일일이 떠먹여 주는 관행이 문학 교육을 망치고 있다. 선생님의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참고서에 선생님의 작품이 실려 있고 실제로 수능에 출제된 작품도 여러 편 있다.
이제 올해부터는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고교 1학년 학생들도 국어교과서를 선택하게 된다. 지난해까지는 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교과서로 공부했다면 올해부터는 서로 다른 교과서로 각기 다른 내용을 배우는 것이다. 선생님의 ‘그 여자네 집’에 나온 만득이와 곱단이의 애틋한 사랑도 관심 있는 몇몇 아이를 제외하고는 내용은 고사하고 제목조차 모르는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교과서에 따라서는 선생님의 작품을 아예 수록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교과서 아니면 변변한 책 한 권 읽지 않는 아이들에겐 어쩌면 ‘박완서’란 이름을 생소하게 느낄 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작품을 읽고 또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소설이란 참 대단하구나’하는 것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더 오래 사셔서 장차 교과서를 통하여 선생님의 작품을 접할 아이들에게 더 좋은 글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야 하는데 하늘이 허락지 않아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선생님의 등단작 ‘나목’과 1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정도는 아이들도 배워야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