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한 교직 첫해를 보낸 뒤, 지독한 진로 고민에 휩싸였다. 한 해가 겨우 저물어 갈 때쯤, 어디로든 떠나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18L짜리 배낭에 한 달 치 짐을 욱여넣고 훌쩍 떠났다.
경유지 마카오, 다시 비행기를 타고 태국의 방콕, 3등석 기차를 타고 태국-캄보디아 국경을 넘어 씨엠립으로, 12시간 야간 침대 버스를 타고 베트남 호치민으로, 다시 하노이로, 하노이에서 태국 치앙마이로, 태국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도시 빠이로, 다시 방콕으로. 총 한 달간 홀로 떠나는 여행을 한 뒤,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이번에는 지면 관계상 가장 기억에 남는 국가, 캄보디아의 에피소드를 써보려고 한다.
태국 방콕에서 캄보디아로, 육로로 국경을 넘는 새로운 경험
현지 유심조차 준비하지 않았던, 패기로 똘똘 뭉쳤던 내가 가진 것은 가이드북 하나였다. 가이드북에서 방콕에서 육로로 캄보디아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말에 매료된 나는 바로 다음 날,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소개해 준 네덜란드 출신 아주머니, 폴란드 출신 청년과 함께 방콕역에서 캄보디아행 3등석 기차에 올라탔다. 3등석 기차답게 열차 바닥과 창틀이 나무로 되어 있었고, 창문에는 유리가 없었다.
3등석 기차는 보이는 모든 역에 정차했지만, 처음 만난 이들과 대화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네덜란드 아주머니는 몇 달에 걸쳐 동남아 여행 중이었는데, 친구들은 이미 은퇴 후 동남아시아 중 마음에 드는 국가에 자리 잡은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다 나무 창틀 너머로 맞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차와 기찻길을 바라보는데 멀리 지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창문 없는 기차에서 다가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자, 갑자기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뭔가 퐁! 하고 터지며 간질간질한 것이 몽글몽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아, 이게 내가 바라던 여행이었지. 떠나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에 행복감이 몰려왔다. 뻥 뚫린 나무 창틀 너머로 달리는 기차와 기찻길, 저 멀리 아스라이 떠오르는 태양, 그리고 그 열기와 빛은 지친 내 마음을 위로하기에 너무나도 충분했다.
기차를 탄 지 거의 5~6시간이 되어서야 캄보디아 국경 근처 역에서 내린 뒤, 간단한 수속을 밟고, 태국에서 캄보디아로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생각보다 별것 없었다. 생각보다 시시한 육로로 국경 넘기가 전혀 불가능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하자 조금 마음이 시큰했다. 캄보디아 국경에서 우리는 영어 소통이 가능한 기사분의 툭툭을 타고 씨엠립으로 이동했다.
앙코르 문명과 오늘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도시, 씨엠립
캄보디아 씨엠립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앙코르와트를 품은 도시로 유명하다. 앙코르(Angkor)는 ‘왕도’, 와트(Wat)는 ‘사원’을 뜻하며, 12세기 초 크메르 왕조의 전성기를 만든 수리야바르만 2세가 ‘신의 궁전’을 표방하며 건립하여 비슈누 신에게 봉헌한 대표 힌두교 사원이다. 9~15세기 크메르 왕조는 캄보디아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조인 만큼, 앙코르와트에는 석조건물임에도 화려한 문양들이 가득하다.
영국의 지리학자 던컨은 앙코르와트를 힌두교 바탕의 고대 남아시아 우주론을 잘 반영한 우주 모델링의 뛰어난 사례로 소개한 바 있다. 직사각형의 도시 구조와 중앙의 왕궁, 해자, 중앙의 탑 모두 힌두교 상징과 연결된다. 200m 너비의 인공호수로 된 해자는 우주의 바다를 의미하며, 중앙의 탑은 우주의 중심에 있는 신화적인 산 메루 산을 의미한다.
씨엠립에는 앙코르와트 외에도 많은 사원이 있다. ‘여인의 성채’라는 이름처럼 핑크빛 사암 위에 세밀한 조각들이 새겨진 10세기 힌두교 사원인 ‘반떼아이 스레이’, 크메르의 미소를 띤 얼굴상들로 유명한 13세기 불교사원인 ‘바이욘’, 거대한 스펑 나무뿌리가 잠식해 버린 12세기 불교사원인 ‘타 프롬’ 등 힌두교와 불교의 사원, 여러 시대의 사원들이 공존하고 있다.
사원을 관람하다 보면 관광객이 들어서는 순간, 관광엽서를 들고 ‘1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이 몰려든다. 이름 없는 조용한 사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관광객이라곤 나와 일행, 미국인 4인 가족뿐이었다. 그곳에도 ‘1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이 있었다. 5~6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어린이들이었다. 나는 처음엔 한두 번 아이들에게 1달러를 주었는데, 캄보디아 가이드가 그러지 말라며, 자꾸 관광객들이 돈을 주게 되면 아이들이 돈을 바라고 학교를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이후로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만 보다가 가방에 간식이 있으면 주곤 하였다.
그날은 하필 미국인 가족 중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우람한 어린이 하나가 ‘1달러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엽서를 사고, 말을 붙이는 것이었다. 막상 어린이가 다가오니 1달러를 외치던 아이들도 주춤하였다. 하필 또 1달러를 외치던 깡마른 캄보디아 어린이 옆에는 그의 엄마도 있었는데, 미국인 어머니가 가서 말을 걸며 인사하더니 알고 보니 두 아이가 같은 나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방긋 웃으며 친구라며 반가워하였다. 미국인 가족이 반갑게 인사할수록 1달러를 외치던 캄보디아 어린이의 얼굴은 보기 어려울 정도로 민망하게 되었다.
사실 둘 다 8살, 초등학교 1학년 나이였는데, 미국인 어린이는 한국 아이 10살 정도로 보일 정도로 너무나도 크고 우람한 반면, 캄보디아 어린이는 5살 정도로 보일 정도로 너무 깡마르고 작았다. 미국인 어린이는 가족과 함께 방학을 즐기러 10시간도 넘게 걸리는 머나먼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왔지만, 캄보디아 어린이는 학교에 가지 않고 1달러를 받기 위해 엽서를 팔고 있었다. 2016년 기준, 캄보디아 1인당 GDP는 1,269달러로 1달러는 캄보디아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꽤 큰 돈이다. 이미 오래전 기억이지만, 그 순간의 감정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그 후 앙코르와트 투어에서 만난 캄보디아인 가이드는 나에게 또 다른 울림을 주었다. 영어 단체 투어에는 남미·미국·유럽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던 가이드는 캄보디아 사람으로 키가 150cm도 되지 않는 아담한 남자분이었다. 그 깡마르고 작은 체구로 영어를 어찌나 잘하는지, 또 영어 유머들도 익혀서 다국적의 관광객들을 한꺼번에 웃기면서도 사원에 대한 설명을 척척 해내는 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와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 놀란 사실은 그의 직업이 가이드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캄보디아의 한 대학교에서 석사·박사까지 마친 대학교수였지만, 10명이 넘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가이드 일까지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학교수 월급보다 영어 가이드 수입이 훨씬 많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의 당당한 태도와 실력이 이해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더 여건이 좋은 국가에 태어나 더 많은 지원을 받았더라면 이 사람의 삶은 또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53개의 수상마을이 있는,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
씨엠립의 수많은 사원을 둘러본 뒤, 펍스트리트에서 알게 된 한국인 일행과 함께 톤레삽 호수로 향했다. 톤레삽은 우기를 기준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이며, 무려 53개의 수상마을을 품고 있다. 톤레삽 호수와 인근에는 캄보디아 인구 1/7이 살고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호수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며, 여기서 나온 어획량의 상당수가 캄보디아 전역으로 팔려 나간다고 하였다.
관광객들은 유람선을 타고 수상마을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호수 위에서 수상가옥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고, 가게·학교·식당·교회 등 여느 마을의 기능을 갖춘 수상가옥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아이들은 보트를 타고 학교에 가고, 건기에 수위가 낮아지면 부모님이 집 전체를 끌고 이사를 가기도 한다. 왜 살기 편한 육지를 놔두고 호수 위에 살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호수 위에 거주하면 세금이 따로 없다고 한다. 호수에서 열심히 물고기 잡고 돈을 모아 육지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톤레삽 호수 투어의 절정은 맹그로브 숲 탐방이다. 맹그로브(mangrove)란 열대 및 아열대의 하구 또는 기수에서 주로 자생하는 숲이다. 나무뿌리가 거꾸로 치솟아 물 밖으로 나와 호흡하기도 하며, 여러 종류의 수목이 밀생하여 이끼나 지의류, 동물들에게도 좋은 삶의 터전이 된다. 맹그로브 탐방은 톤레삽 호수 사람들에게는 좋은 투어 상품이 되기도 한다.
내가 톤레삽을 방문한 1월은 캄보디아의 건기라, 호수의 수위가 낮아 맹그로브도 비교적 많이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조금 더 늦게 왔으면 맹그로브의 수위가 너무 낮아 배를 타고 들어가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작은 배를 타고 맹그로브 사이를 요리조리 노 저어 가며 구경하는 것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낭만적이고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캄보디아가 내게 남긴 것
앙코르와트에서 본 일출과 일몰, 그 위엄, 맹그로브 숲의 낭만, 톤레삽 호수 위에서 느낀 삶의 생동감까지. 동남아시아 배낭여행 중 만난 캄보디아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남겼다. 씨엠립에는 수많은 사원의 뿌리 깊은 역사, 그리고 21세기의 사람이 산다.
역사와 유적을 기반으로 관광에 기대어 살아가는 도시와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도 좋은 교육의 기회와 미래가 있기를, 주어진 직업 외에 꿈꾸는 직업을 가질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이곳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교육은 아직 삶을 바꿀 수 있는 단단한 뿌리임을 느꼈다. 나는 다시 한번 교육의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