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스 지방의 카르스트 지형을 찾아
지리 교과서에는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지하수에 녹아 만들어진다는 카르스트 지형을 다룬다. 카르스트라는 말의 어원은 슬로베니아 남부에 있는 크라스(Kras) 지방의 독일어식 명칭에서 유래하였다. 슬로베니아 남부지방에서부터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까지, 아드리아해를 따라 길게 펼쳐진 이 지역은 다채로운 지형 경관을 가진 여행 명소이며, 또한 중세 시대에 지어진 문화유산 속에서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독특한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또한 맑은 날이 많은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을 반영해 눈부시게 맑고 화창한 날씨의 영향으로 이미 많은 유럽인의 여름 휴양지로 인기가 많은 지역이다.
이 여행은 크로아티아 남부의 두브로브니크에서 출발해 디나르알프스 산맥의 석회암 지대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카르스트 지형의 성지인 슬로베니아 남부 크라스 지방까지 이어지는 여정이다. 이 여정에는 아름다운 장소가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지형적 특징이 눈에 띄는 장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달마티아 지방의 하얀 도시들,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
달마티아 지방은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 연안을 따라 길게 펼쳐진 지방으로 보통 자다르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이어져 있다. 알프스산맥의 연장인 디나르알프스 산맥을 따라 석회암 산지가 일정한 방향으로 길게 뻗어있으며, 일부는 섬이 되었다. 달마티아 지방에는 지리적·역사적 배경이 다른 도시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석회암이나 대리석을 이용해 도시를 조성하여 눈부실 정도로 밝은 인상을 주고 있다.
여행의 시작은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별명을 가진 도시, 두브로브니크이다. 15~17세기에 중개무역으로 번영했던 라구사 공화국이 자리했던 도시로, 당시의 건축물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는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두브로브니크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다.
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스트라둔 대로의 바닥은 대리석 블록을 깔아두었고, 라구사 공화국 때부터 이어져 왔을 건축물들은 주황색에 가까운 붉은 지붕 아래에 하얀 석회암을 재료로 지어져 있다. 높은 곳에 위치한 요새에 오르면 붉은 지붕이 빼곡하게 들어찬 구시가지와 그 뒤로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반대편으로 가면 가파른 성벽 아래에 있는 바다를 볼 수 있고, 구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스르지산은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오를 수 있다. 산에 오르면 바다를 배경으로 성장한 두브로브니크의 위용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스플리트는 현재 크로아티아에서 자그레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아드리아해 연안의 역사적 요충지로 각광받은 도시이다.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자신이 은퇴한 후 거처로 사용할 궁전을 지은 것이 이 도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사망한 후 이 궁전은 방치되었고, 인근의 큰 도시인 살로나가 외적의 침입을 받자 그곳의 피난민이 이 궁전을 재건해 살게 되었다.
지금도 스플리트의 구시가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만든 궁전 안에 지금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생계를 이어가는 공간이다. 궁전의 유적은 구시가지 내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마치 주민들이 유적과 함께 뒤섞여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궁전 내에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호텔·식당·기념품점·의류매장 심지어 코인세탁방과 같은 편의 시설이 산재되어 있는데, 어떤 것들은 궁전의 유적 일부를 개조하여 이용하고 있다. 대리석을 이용한 눈부신 건축물만큼이나 유적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스플리트였다.
카르스트 지형의 지상 세계, 크르카 국립공원과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석회암의 주요 구성성분인 탄산칼슘은 하천과 지하수에 의해 녹는데, 이 탄산칼슘이 퇴적되면서 흐르는 강에 천연 댐을 형성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댐과 호수, 그리고 그 댐을 따라 물이 떨어지는 폭포가 만들어지며 환상적인 경관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유명한 장소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다.
플리트비체 외에도 조금 작은 규모로 알차게 볼 수 있는 장소가 또 있다. 크르카 국립공원은 스플리트와 자그레브 사이에 있는 도시 쉬베닉(Šibenik) 인근 스크라딘(Skradin)에서 갈 수 있다. 스크라딘에서 티켓을 예매하면 배를 타고 이동하는데, 배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면 스크라딘스키 부크(Skradinski Buk)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폭포를 볼 수 있다. 탄산칼슘이 퇴적되어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여러 갈래의 폭포가 몇 개의 단을 이루며 떨어지는 장면은 감탄을 지어내기에 충분하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크로아티아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국립공원이다. 면적이 매우 넓은데 그 안에 크고 작은 16개의 호수가 있는데, 크게 상부 호수와 하부 호수로 나뉘며 그 사이로 전기보트가 운행한다. 상부 호수는 잔잔한 호수와 함께 내려오다가 간간이 시원한 폭포를 마주하는 구간이다. 포토 스팟을 찾기는 좀 어렵지만, 카르스트 지형의 대자연 깊숙한 곳을 느끼며 천천히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구간이다. 이후에 전기보트를 타고 하부 호수로 내려오게 되면 호수의 규모는 조금 작지만, 눈에 띄는 폭포와 절벽이 많아진다. 특히 가장 아래쪽에 있는 벨리키 슬라프(Veliki Slap, 큰 폭포라는 의미)라는 폭포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상징과도 같은 폭포이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흐르는 코라나 강이 흘러 내려간 곳에 라스토케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약 10년 전 ‘꽃보다 누나’라는 예능에서 찾아가면서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다. 사실 이곳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속하지는 않지만, 앞서 두 국립공원처럼 탄산칼슘이 쌓여 만들어지는 호수와 폭포 위에 아예 마을이 형성되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 마을은 크지는 않지만 가볍게 산책하며 폭포와 작은 호수, 그리고 집 건물이 이루어낸 조화를 차분히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알고 보면 더 감동적인 지하 세계, 슈코챤 동굴과 포스토이나 동굴
카르스트 지형의 어원이 되었다는 크라스 지방에 들어섰다. 이 지역의 지형을 연구해 보고 이렇게 생긴 곳을 카르스트 지형이라고 부르기로 했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다채로운 지형이 있을지 기대가 되는 곳이었다. 이 지역은 지표를 흐르던 하천이 동굴로 숨어 들어가는 현상이 빈번하며, 그만큼 석회동굴이 많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는 지리 교과서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포스토이나 동굴이 있는데, 의외로 포스토이나 동굴은 아직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는 등재되지 않았으며 대신 슈코챤 동굴이 등재되어 있다.
슈코챤 동굴(Škocjan Cave) 탐방은 가이드 투어로만 진행된다. 투어가 시작되면 구덩이처럼 푹 파인 돌리네 안에 있는 동굴 입구로 향하는데, 가장 먼저 만나는 구간은 ‘고요한 동굴’이다. 완전히 메말라 성장이 끝난 구간으로 종유석과 같은 동굴 생성물이 있지만 한국의 석회동굴에서도 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게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갑자기 넓게 탁 트인, 슈코챤 동굴의 하이라이트인 거대한 지하 협곡 구간을 만나게 된다. 유럽에서 가장 큰 지하 협곡으로 그 높이가 100m에 이른다.
엄청난 규모에 감탄하며 한참을 바라보니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동굴을 흐르는 강물이 동굴 안쪽 깊숙한 곳을 향해 흘러 내려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슈코챤 동굴은 지표를 흐르던 레카강이 지하로 흘러 들어가는 동굴로, 이 물은 이곳에서부터 34km 정도를 지하로 더 흘러가 이탈리아 동부에서 솟아나 2km 정도 길이의 짧은 강인 티미바 강을 통해 바다로 유입된다고 한다.
동굴을 나와서도 놀라운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동굴의 출구는 과거 동굴이었던 곳의 천장이 무너져 형성된 돌리네 속에 있으며, 인접한 다른 돌리네와 짧은 동굴을 추가로 관찰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을 볼 수 있는 동굴이라는 점을 알고 간다면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장소였다.
다음 찾아간 동굴은 포스토이나 동굴이다. 전체 길이는 24km에 달하며 개방된 길이만으로도 5km에 달하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긴 동굴이다. 관광을 위해 동굴 내에 미니 열차가 운행되고 있고, 이 열차 때문에도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유명한 동굴이다. 열차를 타고 찬바람에 떨며 들어가면 화려한 종유석·석순 등의 동굴생성물이 열차를 맞이한다. 열차에서 내리면 약 1.5km 정도를 가이드와 함께 걷게 되는데, 눈을 돌리는 곳마다 엄청나게 많은 종유석·석순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석회동굴에서는 독특한 모양의 종유석·석순 등에 이름을 붙이지만, 이 동굴에서는 아마 동굴 생성물의 수가 너무 많아서인지 종유석마다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포스토이나 동굴에서 차로 약 15분 정도 거리에는 프레드야마성이 있다. 이 성은 절벽에 붙어있는 모양이 독특한데 사실은 동굴 입구에 지어진 성이다. 이 지역의 영주였던 에라젬 루에거가 이 성에서 은둔해 있었는데, 이 성과 연결된 동굴을 통해 비밀리에 대피하거나 물자를 공급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성 자체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성과 관련한 스토리가 흥미를 더해주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다시 아드리아해 연안으로 오면, 중세 유럽 때부터 무역을 통해 발전한 작은 도시들이 있다. 크로아티아의 로비니(Rovinj), 슬로베니아의 피란(Piran)은 여행객에게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도시이다. 두 도시 모두 걸어서 돌아보는 데 부담이 없을 정도의 규모이면서, 소위 ‘엽서 같은 풍경’으로 도시의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예쁜 풍경을 자랑하여 여행객에게 많은 인기를 누리는 도시이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는 앞서 소개한 곳들 이외에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혹하는 장소가 많다. 많은 사람이 좋은 풍경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여행을 선호하고 있지만,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도 여행에 재미를 줄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여러분의 여행에도 그러한 재미가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