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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풍경] 고대 문명의 영광과 식민 지배의 영향이 공존하는, 멕시코시티

 

프롤로그
멕시코시티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영화 <코코(Coco)>였다. 화려한 색감 속에서 ‘죽음’마저 삶의 일부로 품어 안는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영화는, 죽음을 슬픔이 아닌 기억과 축제로 이어가는 문화를 인상 깊게 보여준다. 이러한 문화를 지닌 멕시코는 과연 어떤 나라일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또 다른 큰 이유는 한국에서도 이미 일상적인 음식이 된 타코였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타코의 맛이 과연 ‘본연의 맛’일까 하는 질문이 늘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멕시코시티의 길거리에서 ‘진짜 타코’의 맛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여기에 개인적인 역사적 호기심도 더해졌다.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여러 차례 마주했던 과달루페 성모상은 늘 인상적인 존재였다. 스페인 식민지 확산과 함께 북미 대륙으로 전파된 이 성모상의 기원지이자 기적의 장소를 직접 마주하고 싶다는 바람이 여행 동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 여행을 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세계사 서술 속에서 자주 ‘공백’처럼 다뤄지는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문명이었다. 멕시코시티 근교에 위치한 테오티우아칸은 우리가 잊고 지내온 그 공백의 크기가 얼마나 클지 짐작하게 만드는 장소였다.


멕시코 최고의 박물관, 국립 인류학 박물관
멕시코시티 여행에서 시간이 아무리 부족하더라도 이 박물관만큼은 반드시 1순위로 방문해야 한다.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은 단순한 대표 박물관이 아니라, 멕시코라는 국가의 역사와 정체성을 가장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1965년에 개장한 이 박물관은 풍부한 컬렉션으로 이름이 높다. 멕시코의 건축가 페드로 라미레즈 바스케스(Pedro Ramírez Vázquez)가 설계한 이 건물은 멕시코시티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박물관 중앙에 위치한 ‘분수 기둥’에는 멕시코 문화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전시실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멕시코의 고대 문명이 현대와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축적되어 왔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올멕(Olmec)의 거석 두상에서 마야(Maya) - 사포텍(Zapotec) -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 멕시카 문명으로 이어지는 전시는 멕시코 문명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해 왔음을 보여준다. 박물관의 동선 자체가 하나의 역사 서술처럼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가장 오래 머문 공간은 아즈텍 문명실이었다. 이곳에 전시된 거대한 원형 석판 ‘태양의 돌’은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유물이었다. 태양의 돌은 태양신을 섬긴 아즈텍인의 우주관을 세밀하게 표현한 달력으로, 농경과 의식의 시기를 결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들의 달력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제5태양시대’는 2012년 12월 23일에 끝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태양의 돌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신전에 있던 것을 파괴한 뒤 소칼로 광장이 자리한 땅속에 묻었고, 이후 1790년에 발굴되었다.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된 인신공양과 관련된 유물들은 처음에는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인신공양은 단순한 학살이 아니라 고도로 의례화된 행위였으며, 아즈텍 문명뿐만 아니라 여러 문명권에서 신성하고 명예로운 행위로 간주되었다. 이는 단순한 도구적 희생이 아니라, 공동체가 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우주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상징적 실천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박물관의 가장 큰 가치는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을 ‘정복 이전의 미개한 문화’로 다루지 않는 데 있다. 옥수수 재배 도구, 천문학적 사고, 정교한 석조 기술은 이들이 이미 고도의 과학적 지식과 체계적인 세계관을 갖추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박물관을 나서며, 멕시코를 이해하고 싶다면 이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소칼로 광장, 템플로 마요르, 메트로폴리탄 성당
멕시코시티의 심장부인 소칼로 광장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한 광장이다. 아즈텍인들이 해발 약 2,400m의 호수 위 섬에 테노치티틀란을 세웠을 때부터 이곳은 거대한 신전이 자리한 도시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신전을 파괴하고 호수를 매립한 뒤 그 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면서, 오늘날의 소칼로 광장은 서로 다른 시대가 한 공간에 겹쳐진 장소가 되었다.


광장 한쪽에는 아즈텍 제국의 중심 신전이었던 템플로 마요르의 유적이 남아 있고, 바로 옆에는 스페인 식민 지배의 상징인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웅장하게 서 있다. 템플로 마요르는 국립 궁전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한 블록만 이동하면 만날 수 있다. 14~15세기에 걸쳐 단계적으로 축조된 이 신전의 높이는 약 40m에 달했으며, 꼭대기에는 전쟁과 태양의 신, 그리고 비와 다산의 신을 모시는 두 개의 신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정복자들은 신전을 해체한 돌로 자신의 건축물을 세웠고, 현재는 도시 지하에 묻혀 있던 신전의 하단부만이 발굴된 상태다.


광장 북쪽에 자리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은 아즈텍의 태양신 신전을 허문 자리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1524년 공사를 시작해 완공까지 240여 년이 걸린 이 성당에는 고딕·바로크·르네상스·네오클래식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이 중첩되어 있다. 성당 내부를 둘러보면, 스페인이 이 땅 위에 새롭게 구축한 권력과 신앙의 질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한 광장 안에서 무너진 문명과 새로 세워진 문명이 나란히 공존하는 모습은 멕시코 역사가 단절이 아닌 중첩과 충돌의 역사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멕시코를 상징하는 두 여인의 공간, 과달루페 성당과 프리다 칼로의 집
멕시코시티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 나라의 정신을 형성해 온 두 여인의 공간이 존재한다. 하나는 집단의 신앙과 기억을 품은 과달루페 성당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고통과 예술로 시대를 증언한 프리다 칼로의 집이다. 이 두 장소는 멕시코라는 나라가 어떻게 형성되고, 무엇을 지켜 왔는지를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해 준다.


과달루페 성당은 멕시코인의 신앙과 역사가 만나는 가장 상징적인 장소다. 1531년, 원주민 농민 후안 디에고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스페인 가톨릭이 토착 신앙과 결합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때 성모가 자신의 모습을 증명하기 위해 후안 디에고의 틸마(망토)에 남겼다고 전해지는 성화는 오늘날까지도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성물로 모셔져 있다. 이 그림 속 과달루페 성모는 백인 여성의 모습이 아니라 갈색 피부와 토착적 얼굴을 지닌 원주민의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문화 융합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는 과달루페 성모는 라틴아메리카와 과거 멕시코 영향권에 있었던 미국 일부 지역의 성당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편 코요아칸에 위치한 프리다 칼로의 집은 멕시코 국보급 화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이다. 이 푸른 집은 프리다 칼로가 태어나고 살아가며 결국 생을 마감한 장소로, 그의 삶 자체가 전시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프리다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고, 10대 시절 교통사고로 평생 지워지지 않는 육체적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다. 수십 차례의 수술과 침대에 누운 채 보내야 했던 시간 속에서 그는 자신의 몸과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림을 그렸다. 멕시코의 또 다른 국보급 화가로 평가받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의 불화 또한 예술로 승화시켰다. 집 곳곳에 남아 있는 칼로의 삶의 흔적들은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삶과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 주었다.

 

비밀스러운 공간, 테오티우아칸
멕시코시티에서 약 40km를 이동해 테오티우아칸에 도착하자, 도시의 소음은 사라지고 압도적인 공간감이 펼쳐졌다. ‘신들의 도시’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인간이 만든 공간이면서도 인간을 압도하는 규모를 지니고 있다. ‘죽은 자의 길’을 따라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 거대한 제의 공간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모습은 치밀한 도시 계획의 결과다.


테오티우아칸은 기원후 1~6세기경 번성한 대도시로, 당시 인구는 수십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거 구역과 종교 공간이 명확히 구분된 이 도시는 단순한 종교 중심지를 넘어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아직 이 도시를 건설한 주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이 여전히 ‘미해결의 역사’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피라미드 위에 서서 내려다본 광활한 유적은 세계사에서 종종 잊혀 온 공백이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일깨워 주었다.


유적을 둘러본 뒤 방문한 동굴 식당에서의 식사는 여행의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동굴 공간에서 맛본 전통 멕시코 음식은 이 땅의 지리와 역사, 그리고 식문화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실감하게 했다. 석회암 동굴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이어진 식사는 멕시코라는 공간이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간의 삶을 어떻게 겹겹이 품고 있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해 주는 경험이었다.

 

에필로그
여행을 돌아보니, 멕시코시티는 본문에 담은 장소들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도시였다. 오히려 글에 미처 담지 못한 장면들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영화 <코코>를 떠올리게 했던 중앙우체국(팔라시오 포스탈)은 행정 공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일상의 공간마저 예술로 완성하는 도시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자 멕시코의 국민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 역시 이 도시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벽화는 미술관을 넘어 도시 곳곳에서 멕시코의 역사와 노동, 혁명을 기록하고 기억해 낸다. 소우마야 미술관의 컬렉션들도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여 예술의 도시 멕시코시티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 끼니 먹었던 타코의 맛은 멕시코의 생활과 역사를 맛보는 경험처럼 느껴졌다. 이전에 먹었던 타코는 타코가 아니었다는 결론과 함께 말이다. 여행은 어떤 기억보다 음식이 남기는 미각의 기억이 가장 오래 지속되는 것 같다. 음식이 곧 여행이고, 여행은 곧 음식임을 이번 여행에서도 다시 한번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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