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99,71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
삼국유사는 발간 후 그야말로 형편없는 대접을 받아왔다. 실제로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익까지도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삼국유사는 물론 이를 인용한 학자들마저 강하게 비판했을 정도였다니 일반 유학자들에게 삼국유사가 어떤 존재였는지 쉽게 짐작할 만하다. 또한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활자본을 간행하였으며 최초의 우리말 번역본조차 지난 1930년대 와서야 야담(野談)이라는 잡지에 선보였다니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야담이라니! 삼국유사에 대한 관심과 시각은 기껏해야 야담 정도에 머물렀다는 말이다. 심지어 국보(제306호)로 지정된 해조차 지난 2003년이었다. 이는 2002년 MBC 교양 프로그램인 느낌표의 선정도서가 되어 40만 부 이상 판매되고 난 다음 해였다. 그동안 ‘이단(異端)’이니 ‘괴탄(愧誕)’이니 하며 삼국유사를 허황된 저술처럼 철저히 폄하하였다. 민족의 소중한 무한 기억 우리 고전 중에서 딱 한 권만 고른다면? 나는 어느 경우든 주저 없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고를 것이다. (물론 우리말과 글의 자궁인 훈민정음은 제외하고서다) 우리 고전 작품을 이해하는 데 가장 원형의 바탕이 되는 책, 민족의 영원한 기억을 담고 풀어내는 책이 바로 삼국유사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게 삼국유사는 어느 쪽을 펼쳐도 깊고 풍부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100번 정도를 곱씹고 또 곱씹어 읽어야 할 책인 셈이다. 지난 1970년대 이후부터만 따져도 삼국유사의 가치를 주장한 목소리들은 많고도 많았다.(이기백, 김열규, 고운기 등) 번역본들만 해도 40여 종이 훨씬 넘는다. 삼국유사는 역사서이자 불교 문화서요, 야담과 설화의 모음집이자 소중한 문학서이고, 문사철(文史哲)이 관통된 인문서라고 볼 수 있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이 삼국유사의 가치에 대해서 “조선(朝鮮)의 고대에 관하여 신전(神典)될 것, 예기(禮記)될 것, 신통지(神通志) 내지 신화 및 전설집(神話及傳說集)될 것, 민속지(民俗志)될 것, 사회지(社會志)될 것, 고어휘(古語彙)될 것, 성씨록(姓氏錄)될 것, 지명기원론(地名起源論)될 것, 시가집(詩歌集)될 것, 사상사실(思想事實)될 것, 신앙 특히 불교사(佛敎史) 재료(材料)일 것, 일사집(逸史集) 될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한국 고대사의 최고 원천이며 백과전림(百科典林)으로 극찬한 것은 삼국유사에 대한 정확한 성격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 15쪽, 김원중 옮김) 나는 일제 강점기 동안 최남선의 행적과 관점을 그다지 탐탁하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감식안만큼은 최상급이라고 높이 인정한다. 삼국유사에 대한 최남선의 평가만 해도 그러한 근거 가운데 하나다. 두루 알다시피 모두 3권 1책으로 되어 있는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의 고승 일연(一然, 1206∼1289)이 충렬왕 7년(1281)에 편찬한 책이다. 하지만 현재 전하는 책은 조선 때의 간행본들이다. 조선 중종 7년(1512)에 경주에서 간행된 정덕본과 4세기말(조선 초)에 간행된 현존본 삼국유사들이 있다. 삼국유사의 처음은 기이편으로 시작한다. 기이(奇異)란 기괴하고 이상한 것을 기록한다는 뜻이다. 기이편은 ‘유사(遺事)’, 즉 이전 역사 가운데 고려에 와서 없어진 일들에 관한 기록이자, 정사(正史)에서 빠진 역사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을 동시에 담고 있다. 기이편은 삼국유사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며, 왕력편과 대조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는 것이 통설이다. 기이 1, 2편이 삼국유사의 전반부라면 흥법(興法)편부터는 후반부다. 즉 후반부는 흥법(興法)편과 탑상(塔像)과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 등 모두 7편이다. 여기에 다시 왕력과 발문이 덧붙으며 삼국유사 전체를 이룬다.1) 하지만 삼국유사를 자유롭게 읽고 싶다. 그저 마음을 열고 촉각을 곤두세우며 읽고 또 읽고 싶다. 이러한 ‘읽기’는 내가 삼국유사라는 텍스트와 만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쓰기’이다. 텍스트 읽기란 결국 맥락(context)을 바탕으로 나 자신이 어떻게 텍스트와 만나느냐이다. 고정된 텍스트의 의미와 정서를 그저 내게로 고스란히 주입해 오는 행위가 읽기가 아니기에, 쓰기 또한 나라는 주체가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어떻게 선택하고 반응하느냐는 행위라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읽기란 쓰기이며, 쓰기 역시 읽기인 셈이다. 궁금증을 품다 첫머리에 말한다. 대체로 옛 성인들이 예약(禮樂)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가르침을 베풀려 하면 괴이, 완력, 패란(悖亂), 귀신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았다.(삼국유사, 33쪽, 김원중 옮김) 이렇게 시작되는 기이(奇異) 제1편. 이는 공자와 제자의 어록 모음인 논어의 술이편에 나오는 말과 직결된다. ‘자불어 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즉, 공자께서는 상도(常道)를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삼국유사를 쓴 승려 일연의 뇌리 깊숙이 유교와 공자의 존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다. 삼국사기와 달리 주체적인 서술 태도를 보이는 일연 스님의 이러한 태도는 삼국유사의 서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의문은 계속 이어진다. 고조선 왕검조선에 대한 서술 대목부터이다.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어 구했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는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여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세계를 주어 즉시 내려 보내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삼국유사, 35쪽, 김원중 옮김) 자, 여기서 환웅은 왜 서자로 등장할까. 서자란 어떤 의미일까. 한 민족의 역사를 여는 개국신화에 왜 하느님의 적자(嫡子)가 아니고 굳이 서자(庶子)라고 했을까. 적자라면 하늘나라를 다스려야 하기에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자는 적통에서 벗어나는 인물인 서자라는 말일까. 아니면 여러 아들 가운데 하나라는 기존의 해석이 여전히 맞는 것일까. 이뿐이 아니다. 고조선기만 해도 의문은 더 있다. 이때 환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가 이것을 먹되,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얻으리라.’ 곰과 호랑이는 쑥과 마늘을 받아먹으면서 삼칠일(三七日) 동안 금기했는데, (금기를 잘 지킨)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금기를 지키지 못한 호랑이는 사람의 몸이 되지 못했다. (삼국유사, 26쪽, 김원중 옮김) 자, 이때 삼칠일은 통상 번역하는 대로 21일일까? 정말 그럴까? 앞에서 환웅은 분명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얻으리라고 했으니 금기의 기간인 삼칠일은 21일인가? 아니면 100일인가? 도대체 며칠인가? 이밖에도 원래는 환국(桓國)이었던 것이 일제시대에 환인(桓因)으로 날조되었다는데 이는 사실인가? 민간 사학자인 성삼제 씨에 따르면 원래 간자체인 ‘국’자를 이마니시라는 일본 사학자가 변조한 것이라 한다. 실제로 변조 이전의 삼국유사를 정리한 동경제대 발간본에는 ‘국’자로 분명히 기술돼 있다. 이는 한민족이 단군 조선 전에 이미 ‘환국’이란 나라를 형성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일제가 축소·왜곡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단군신화가 단지 신화가 아니라 역사였다는 주장이며 앞으로 학계의 연구가 더욱 필요한 대목이다. 신비함을 만끽하다 신비함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한 치 오차 없이 이성의 회로에서 주조된다면 디스토피아(distopia)에 불과할 것이다. 삼국유사를 읽으면 온갖 신비함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중국의 고전인 산해경을 읽으면서 느끼지 못했던 신비감은 나의 유전자 깊숙이에 각인되어 있는 한민족의 원형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삼국유사는 한국인이라면, 다시 말해 요즘과 같이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에서는 민족과 문화의 차이를 거대하게 녹여줄 원형의 유전자 탱크다. 해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어느 날 산천에 제사를 지내 대를 잇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때 타고 가던 말이 큰 연못()에 이르러 큰 돌을 마주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옮기자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이것은 바로 하늘이 나에게 내려주신 아들이로구나!” (삼국유사, 60쪽, 김원중 옮김) 신비함은 모든 상상과 초월의 기원이자 궁극이다. 북부여의 왕 해부루가 장차 금와왕이 되는 아기를 발견하는 대목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민족의 꿈이 담겨 있다. 금와왕을 읽으면서 저절로 움트는 시심. 삼국사기는 신비의 책, 시심을 꿈틀거리게 하는 영감의 책. 나는 삼국유사를 읽으며 음유시인처럼 나도 모르게 읊조린다. 삶은 유한하나 현실은 무한히 지속되어야 하는 법. 하늘은 무심히 비를 뿌리고 강을 만든다. 흙더미 속에서 뭇 생명들이 하나둘 산을 이루나 어느 누구도 인간의 삶을 이루어주지 않는다. 물이 고여 빛나는 큰 연못, 큰 돌은 어디서 왔을까. 문득 말이 눈물을 흘리니 돌이 꿈틀거린다. 세상이 들썩거린다. 눈앞에서 움직이는 저 큰 돌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움직이려 할까. 돌 속 깊숙이 맑은 울음소리 들리니 웅크려 있는 금빛 찬란한 생명이여. 그 어느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흙 속에서 나아가 큰 돌 너머로 솟구친 힘찬 생명이여! 다시 돌은 알로 변한다. 금와왕은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가 바로 유화(柳花)다. 물의 신인 하백(河伯)의 딸 유화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를 만나 정을 통했다고 쫓겨난다. 금와는 유화를 방 안에 남몰래 가두지만 햇빛이 비추며 임신하여 알을 하나 낳는다. 크기가 다섯 되쯤 된 알을 금와왕이 개와 돼지에게 던져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고, 길에 버렸으나 말과 소가 피해 갔으며, 들판에 버리니 새와 짐승이 덮어주었다고 한다. 심지어 알을 깨뜨리려 했으나 그 또한 불가능하여 유화에게 결국 돌려주었단다. 이 알에서 태어난 인물이 바로 주몽, 고구려의 시조다. 건국 신화에 담겨 있는 신비성은 해당 국가의 통치 질서를 위하여 신비화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비화 속에는 당대의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하는지 잘 알려준다. 돌은 알이 되었고, 다시 햇빛이 모여 이루어진 알이기에 고구려 신화는 태양 신화에 속한다는 분석을 넘어서서 우리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 아래 나정(蘿井) 옆에 번갯불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땅을 뒤덮었고 백마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찾아가 보니 자주색 알이 하나 있었다. 말은 사람들을 보더니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알을 깨뜨려 사내아이를 얻었는데 모습과 거동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놀라서 이상히 여겨 동천에서 목욕을 시키니, 몸에서 빛이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맑아졌다. (삼국유사, 73쪽, 김원중 옮김) 혁거세의 탄생은 아름다운 한 편의 민족서사시이다. 신비한 출생은 그의 앞날을 보장해 준다. 하늘에서 온 존재, 다른 인간과 다른 신분이라는 점은 신화의 확산과 정착을 돕는다. 신화는 현실을 낳는 영원한 발전소다. 하늘과 세상 모두가 축복하는 존재, 그는 인간 세상과 천상 세계를 잇는 왕이다. 그는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키는 거룩한 영웅, 바로 왕이다. 뿐만 아니다. 신라 25대 사륜왕(舍輪王)은 ‘죽은 뒤에!’ 생전에 탐했던 도화랑이란 여인과 맺어진다. 그 결과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비형(鼻荊). 밤새 귀신들과 더불어 놀 수 있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진평대왕은 비형에게 과연 그러한지 시험하고자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놓게 하였으며, 장차 귀신들 중에서 인간 세상에 나와 정치를 도울 만한 자가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비형은 길달을 추천하였으며 충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출중한 능력을 보여준다. 삼국유사의 세계는 귀신과 공존할 수 있는 현실 너머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밖에 삼국유사는 무한한 영감을 주는 이야기들로 넘치고 넘친다. 연오랑과 세오녀, 사금갑(射金匣), 지철로왕(智哲老王), 신라의 세 가지 보물이라 하는 황룡사의 장륙존상(丈六尊像)과 9층탑, 진평왕의 천사옥대(天賜玉帶), 선덕여왕과 모란 그림, 여근곡 출병, 만파식적, 여기에 처용량과 망해사, 거타지 이야기, 선화공주와 무왕 등등 …. 삼국유사는 상상력의 무한한 보물창고다. 아니 민족 공통의 상상 발전소다. 수많은 문화 콘텐츠를 낳을 수 있는 영원한 상상의 엔진이다. 내 기억 속의 영원한 고전은 바로 삼국유사다, 그 중 8할이 신라에 치우쳐 있어 아쉽지만 사실이다. 끝
척추. 사람에게 있어 무릇 등뼈란 온몸을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부위라 하겠다. 백두대간이 대한민국의 척추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와 나란히 달리는 7번 국도는 맑은 동해바다와 빼어난 산맥, 얼마 남지 않은 석호, 울창한 소나무, 끝없이 이어지는 해수욕장과 모래사장을 훑고 지나며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느낄 수 있게 하는 코스다. 차창을 열면 불어오는 갯바람과 비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반도의 동쪽을 아우르는 7번 국도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본격적인 7번 국도 여행을 시작해보자. 한반도의 지도를 펴놓고 보면 7번 국도는 부산광역시 중구의 도로원표에서 시작해 경상남북도와 강원도를 거친다. 휴전선을 넘어 함경북도 온성군 유덕면에까지 이르니 전체길이는 513.4㎞에 달한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동쪽 언저리는 모두 훑는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훌륭한 길은 하루 이틀에 돌아볼 수 없는 일. 겨울방학을 이용해보자. 7번 국도는 1969∼1970년 경주∼울산 구간을 시작으로 왕복 2차선부터 4차선, 6차선까지 구간별로 조금씩 다른데 도로 포장률은 99.2%로 미포장 도로는 4㎞ 밖에 되지 않는다. 자동차로 달리기에 적합하다는 얘기다. 수많은 국도와 만나고 헤어지며 강원도 삼척∼강릉 구간은 영동선이 나란히 달린다. 부산에서 강원도까지의 물동량 수송과 지역개발 및 관광진흥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으며, 휴전선에서 끊긴 도로가 이어지면 남북한의 경제교류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구간 중 부산∼울산, 울산∼경주, 경주∼포항, 삼척∼동해 구간 교통량이 가장 많고 삼척~맹방, 궁촌~원덕, 후포~병곡, 강구~송라 구간은 해안절벽을 끼고 돌기 때문에 풍관이 빼어나다. 달리다보면 어느새 차창을 내리고 푸른 창공을 향해 손을 뻗게 된다. 고성 통일전망대 - 안보교육 일 번지 7번 국도 최북단은 고성으로 금강산 육로 관광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통일전망대가 있다. 연간 100만 명의 국내외 내방객이 방문하는 천혜의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최근 금강산 관광 중단, 남북관계 경색으로 관광객들이 줄어 썰렁한 모습이다. 분단의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서지는 파도를 스포트라이트 삼아 은빛으로 일렁이는 물결들의 춤사위는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과 해금강과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신선대, 옥녀봉, 일출봉 등 금강산의 절경과 해금강을 아스라이 눈에 넣을 수 있으며 안보교육을 통해 화면으로 만나는 북한의 명소는 분단 조국의 현실과 안타까움을 절로 느끼게 한다. 화진포 - 석호를 배우는 자연학습장 해안을 따라 1시간 정도. 간성 읍내를 지나면 KBS 드라마 〈가을동화〉로 유명해진 화진포(花津浦)가 나온다. 후빙기 해면상승으로 해안이 침수됨에 따라 하곡을 중심으로 한 낮은 곳이 만입으로 변하고 그 입구가 중평천과 월안천의 토사공급으로 이루어진 석호이다. 바다와 호수가 만나는 동해의 몇 안 되는 석호로 호숫가의 갈대와 수천 마리의 철새, 100년이 넘는 소나무들로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 염담호수인 화진포의 둘레는 16㎞, 면적은 70만 평이 넘으니 남한 최대석호다. 겨울에는 백조(천연기념물 제201호)가 도래하고, 여름에는 해안을 따라 해당화가 피어 운치를 더해준다. 수천 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호수는 북동쪽이 바다 쪽으로 트여 있어 잉어 등 민물고기와 도미·전어와 같은 바닷물고기가 많다. 호수와 바다의 절경이 뛰어나 일제강점기에는 외국인들의 휴양지로 이용되었고, 해방 후 김일성, 이승만, 이기붕의 별장이 생겨났다. 현재 별장들은 개보수 작업을 거쳐 유품과 자료전시로 근대 정치사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역사·안보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소나무가 우거진 해안 절벽을 따라 김일성의 별장에 오르면 발 아래로 넘실대는 파도를 품고 있는 화진포 백사장이 눈부시도록 희다. 파도가 훑고 지날 때면 ‘사르르~’맑은 소리가 별장까지 이어진다. 호숫가를 거닐다 배 모양의 화진포해양박물관을 들려보면 좋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각종 조개류, 갑각류, 산호류, 화석류, 박제 등 1500여 종 4만 여 점을 전시한 패류박물관이 볼만하고 수중생물 125종 3000여 마리를 각각의 서식 환경과 내용에 따라 보여주는 어류전시관 또한 흥미롭다. 옥상에는 8m60㎝의 밍크고래 뼈가 전시되어 있다. 주문진 - 도루묵과 선조와의 인연 조금 더 내려오면 주문진 항이다. 주문진 항의 겨울은 양미리, 도루묵이 제철이니 잠시 도루묵 이야기를 하고 가자. 몸길이 26㎝가량, 수심 200~300m 사이에서 서식하는 냉수성 어종이인 도루묵은 겨울이 되면 산란을 위해 수심 얕은 연안 가까이로 올라온다. 생선 중에 도루묵만큼 사연 많은 놈도 없는데 도루묵은 일찍이 조선 선조 임금과 인연을 맺었다. 임진왜란 당시 피란길에 오른 임금은 도루묵을 진상 받았다. 당시에는 귀한 생선을 ‘은어(銀魚)’라 칭하고, 흔하디흔한 탓에 서민이나 먹던 생선은 ‘묵’이라 불렀다. 평상시라면 도루묵은 임금에게 올리기 어려운 생선이었다. 허기가 졌던 선조는 도루묵에 반해 “앞으로 이 생선을 은어로 부르라”며 도루묵을 특급 승진 시켰다. 전쟁이 끝난 뒤 선조는 다시 도루묵을 찾았다. 처지가 바뀐 탓인지 도루묵 맛은 실망스러웠다. 선조는 “이 생선을 다시(도로) 묵이라 부르도록 하라”고 내쳤다. 조선 중기 문신인 이식(1584~1647)은 ‘환목어(還木魚)’라는 시를 지어 도루묵을 위로했다. 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는 상관없고 / 귀하고 천한 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지 / 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 / 버림을 받은 것이 그대 탓은 아니라네 여기서 사족 하나. ‘헛되이 수고만 하고 보람이 없는 것’을 흔히 도루묵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정확히는 ‘도로무익(徒勞無益)’이다. 애꿎은 생선은 들먹이지 말자. 강릉 선교장 - 설경 속 문화유산 만나기 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눈이 온다면 강릉 선교장을 찾아가자. 고택과 설경이 이곳처럼 잘 어울릴 수 없 강릉 선교장 활래정 설경.으니 강릉 지방의 대표적인 설경 감상 문화유적지다. 눈이 내린 다음 날이면 고택이라는 인공건축물과 눈이라는 자연 현상이 빚어내는 자연의 조화를 촬영하기 위해 사진가들이 모여든다. 가지런한 기와지붕의 골을 따라 백설이 그려내는 부드러운 곡선미는 한옥이 아니고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처마에 줄줄이 매달린 고드름이 향수를 자극한다. 함박눈을 머리에 인 활래정 정자는 강추위 속에서도 꼿꼿하게 등허리를 곧추 세워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던 조선의 선비 같은 기개를 드러낸 채 꽁꽁 언 연못을 말없이 내려다본다. 강원도 내 개인주택으로는 가장 넓은 집인 선교장에는 조선시대 상류계급이었던 전주 이씨 집안이 대대로 살아오고 있다. 이 마을 일대는 경포호가 넓었을 때 배를 타고 건너다녀 ‘배다리마을’이라 불렸는데 ‘선교장’이란 이름도 거기서 유래한다. 긴 행랑에 둘러싸인 안채, 사랑채,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사당 등은 고택의 품격을 대변해준다. 특히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이름을 빌린 사랑채 ‘열화당’은 선교장 내 여러 건물 중에서도 마음을 잡아끄는 건물이니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기뻐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경포호반 도로변에 위치한 참소리축음기박물관을 관람하는 것도 잊지 말자. 호미곶 - 호랑이 꼬리에 오르다 한반도의 척추가 지나는 포항 뒤쪽으로 호미곶이 있다. 매년 1월 1일이면 해맞이를 보기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니 그 만큼 해돋이 광경이 멋지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1월 1일의 해만 멋질까? 그건 아니다. 땅을 뚫고, 바다를 뚫고, 생명의 잉태를 의미하는 ‘상생의 손’ 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일 년 열두 달 어느 때라도 감동적이다. 새천년을 축하하며 희망찬 미래를 맞이한다는 뜻의 상생의 손. 육지에선 왼손이, 바다에선 오른손이 세워져 있으니 그 크기의 거대함에 반하고 그 뒤로 떠오르는 태양과 갈매기와 배 한척에 매료된다. 호미곶(虎尾串)은 생김새가 말갈기 같다하여 장기곶으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가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호미곶은 꼬리에 해당한다고 했으니 그 모양이 정말 호랑이 꼬리와 흡사하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 옆에는 국립등대박물관이 있으니 빠뜨릴 수 없다. 구룡포 - 날씨를 이용한 선조들의 지혜 남쪽에는 구룡포가 있다. 바람결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과메기의 향긋 비릿한 내가 묻어온다. 10년 전 까지만 해도 겨울 한철의 별미로 여겨졌던 과메기는 일 년 내내 찾는 맛난 먹거리로 전국 과메기 생산량의 80%가 이곳 구룡포에서 난다. 과메기는 원래 청어로 만들었다. 겨울철 부엌 살창에 걸어두면 차가운 밤바람에 얼었다가 해가 드는 낮이면 녹기를 반복하며 쫄깃 탱탱한 과메기가 되었다. 헌데 그 바람이 문제다. 센바람이 불면 겉껍질만 말라 속이 망가지고 바람의 온도차가 많으면 황태처럼 푸석푸석해지니 산을 넘어온 북서풍이 동해의 해풍과 만나는 곳, 이곳 구룡포가 딱이다하여 ‘바람의 아들’이란 멋진 수식어가 붙는 것이다. 과메기는 물고기의 눈을 나뭇가지에 꿰어 말렸다는 의미의 관목어(貫目魚)가 발음이 변해 생겼다한다. 통째로 말린 ‘통과메기’와 반으로 갈라 내장 없이 말린 ‘배지기’가 있는데 요즘은 배지기를 선호한다. 또한 청어의 어획량이 떨어지자 꽁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니 지금은 모두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 껍질 벗긴 과메기는 배춧잎, 돌미역, 실파, 풋고추, 마늘과 친구하여 뻘건 초고추장을 동반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택배로 주문해 아껴먹는 과메기가 이곳 식당에서는 반찬으로 나온다. 장생포 - 거대 포유류 고래를 만날 수 있는 곳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70년대만 해도 울산 장생포에는 포경선이 스무 척이나 떠 있었다. 길을 지나는 개도 입에 돈을 물고 다녔고 ‘장생포의 포경선 포수는 울산 군수하고도 안 바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호황인 고래잡이 항구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위별로 해체하는 고래의 비릿내가 진동하고 집채만 한 고래구경을 온 사람들로 북적였으니 한해에 잡아 올린 고래가 1000여 마리. 돼지고기 값보다도 고래 고기 값이 저렴하니 거리는 온통 고래 고기 파는 집으로 가득 찼고 날마다 소주 안주로 고래 고기를 양껏 먹어댔다. 장생포 앞바다는 ‘극경회유해면’으로 천연기념물 126호로 지정된 곳이다. 한국귀신고래가 새끼를 낳기 위해 지나는 길목이다. 태평양에는 두 종류의 귀신고래가 사는데 이중 서쪽에 사는 한국귀신고래는 여름에 오호츠크 해에서 살다가 겨울이면 우리나라 남쪽으로 내려와 새끼를 낳는다. 그래서 장생포 앞바다에서는 귀신같이 출몰하거나 포경선을 피해 귀신같이 숨는다하여 이름 지어진 ‘귀신고래’가 포경선과 숨바꼭질을 즐기던 귀신고래의 놀이터였다. 하지만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고래잡이가 전면 금지되면서 어쩌다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고래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고래길 끝자락에는 고래 모양을 한 고래박물관(052-226-2809)이 기다린다. 고래박물관에는 공룡의 뼈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수염고래류의 브라이드 고래 뼈가 박물관의 2~3층을 아우르며 그 위용을 자랑한다. 마지막 포경선이었던 제6진양호가 실물 그대로 있는데 깃발을 날리고 예리한 작살로 고래를 조준하는 포수는 작살을 쏘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을 전해준다. 고래를 되뇌며 좀 더 내달리면 부산, 그곳에 7번 국도의 마지막이자 출발점이 있다.
토론이라는 것을 사전에 나온 것처럼 ‘의견을 교환하고 논하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막상 해보려 하면 남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일선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매일 토론을 벌여야 하는 선생님들의 일과를 생각하니 괜히 제 골치가 지끈거리는군요. 그러나 그렇게 골치 아픈 토론도 제 일이 아니라면 조금은 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MBC 100분 토론이 심야에 방송됨에도 평균 4%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걸로 봐서는 저와 같은 즐거움을 함께하시는 분들이 제법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여기서 재밌는 토론 구경거리를 하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다윈의 식탁(장대익 지음. 김영사)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토론에는 굴드와 도킨스를 비롯한 약 30명의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석해있습니다. 이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진화론에 대해 7일간 벌이는 치열한 토론. ‘저런 대단한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게 재밌다니? 그것도 주제가 어려워 보이는 진화론인데?’하고 벌써 발을 빼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발견한 이 토론의 볼거리는 어느 팀이 과학적으로 승리하느냐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서로 빈틈없는 논리로 쉴 새 없이 머리 아픈 이야기를 쏟아낼 것만 같은 이 대단한 사람들이 모여 때론 인신공격을 하고 농을 던지기도 하는 모습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더구나 작가가 중간 중간 참석자들의 개인정보를 흘려주기까지 하니 그 재미를 즐기는 데 필요한 조건을 다 갖춰진 셈입니다. 저도 사실은 자연과학이라는 것과 10년 넘게 척을 지고 살아온 터라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는 내려놓을 생각부터 했습니다만…. 실제 다윈의 식탁에 함께 하고 있는 학자 중에는 촘스키와 같은 언어학자도 있고, 자연과학인지 인문과학인지 헷갈리는 생물철학자들도 여럿 있으니 이 책을 단순히 자연과학서로 표현하는 것도 맞지 않는 표현일 것입니다. 한편 팩션(faction)으로 구성된 이 토론을 마련한 장대익 교수(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는 ‘논쟁’이라는 단어 대신에 ‘식탁하다(tablize)’라는 조어를 제안했습니다. 식탁은 영어로 table이다. 밥 먹는 식탁, 커피 마시는 탁자, 회의하는 탁자,다 테이블이다. 이 모든 테이블의 공통점은, 중요한 무엇인가를 교환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가령, 우리는 중요한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을 때 식탁을 찾는다. 그리고 식탁에 앉은 우리는 이내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만난 사람들이 된다.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으면서 둘러대거나 거짓말을 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따뜻한 얘기가 아니라 논쟁이 붙을 때에도 식탁에서는 진실만이 반찬이다. 그래서 식탁은 늘 생기가 넘친다. 나는 아직 식탁보다 더 좋은 커뮤니케이션 장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중략)… ‘논쟁’이라는 다소 딱딱하고 공격적인 용어 대신에 ‘식탁’이라는 정겹고도 생생한 용어를 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윈의 식탁 226페이지) 이 부분을 보면 작가는 정말로 누군가와 진실하고 중요한 정보를 교환하기를 열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쓴 이유도 진화론이라는 주제를 두고 독자 여러분과 ‘식탁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이 책이 담고 있는 중요한 지식(진화론)이나 세계적인 석학들의 과학적인 논쟁의 내용 자체보다는 그들의 모습을 즐기라고 말한 것에 작가가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토론’이니 ‘논쟁’이니 하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포함해서 말이죠.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즐겨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평상시 굴드가 르원틴이 누리는 학생들의 인기를 질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굴드와 르원틴이 에드워드 윌슨의 노련함에 ‘당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도, 어떤 청중이 도킨스에게 “당신은 사탄이야!”하고 고함을 지르는 모습도 그냥 있는 그대로 즐겨보십시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작가가 차려놓고 진화론의 후예들이 벌이고 있는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얼마든지 작가가 열망하는 다윈의 식탁을 함께 즐기실 수도 있고, 그러한 식탁을 차리는 법을 배우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간직하는 ‘내 마음의 보석상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역사 속의 인물이나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 말하는 거창한 이야기나 소설이나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말하는 운명 같은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외롭고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는 이야기나 기쁠 때 누구보다 앞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거나 햇빛이 반짝이는 여행길에서 느끼는 감동, 아니 첫눈이 오는 날이라든지 비가 내리는 날이나 바람이 부는 날이어도 좋다. 어느 때이든지 ‘내 마음의 보석 상자’에서 살며시 꺼내어 미소 지을 수 있는 작은 이야기 하나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영혼은 얼마나 따뜻해지는지…. 어제 내린 비로 오늘 아침 기온이 급강하하였다.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길을 바람을 쌩쌩 가르며 달려와 교실의 온풍기며 난로를 켜서 아이들과 함께 언 손을 쬐며 녹이고 있는데 내 휴대전화의 벨이 울렸다. 영어타운 체험학습을 하려고 5학년 동순이를 데리고 고흥 읍내에 있는 고흥동초등학교 영어타운으로 출장을 가시던 김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신 것이다. “선배님! 밖을 좀 내다 보세요.” “아니, 왜요?” “밖에 눈이 많이 내립니다.” “네, 눈이 내리더군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까와는 다르게 거의 환상적입니다.” “아, 그래요?” 반가운 마음에 밖을 내다보니 간간히 날리던 눈발이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 소복소복 소리도 없이 내리고 있었다. “야, 눈이 와요.” “진짜 눈 맞지요?” “야호!” 출근길에 함께 오면서 간간이 날리는 눈발을 보면서도 좋아하며 탄성을 지르던 은상이의 모습이 떠올라 은상이를 불러서 밖에 눈이 많이 내린다며 내다보라고 했다. “애들아! 눈이 온다.” “네~에? 눈이라고요?” “그래, 눈이 많이 오네.” “와우! 눈이다!” “정말?” “누나, 눈이 와. 지은아, 눈이야, 눈!” “야, 눈이다!, 언니, 언니 눈이 와. 어서 나와 봐.” “어, 그래?”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언제 눈이 내리느냐며 성화를 대기에 이번 주엔 ‘눈이 올 것 같아요’라는 노래를 ‘12월의 노래’로 정하여 함께 부르기까지 하였던 아이들이다. 막상 눈이 내린다는 소식에 반신반의하던 아이들도 밖을 내다보고 나서야 그렇게도 고대하던 눈이 내린다는 사실에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우리나라 남쪽의 끝자락에 자리한 고흥반도는 겨울이 되어도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일 년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하는 눈을 보면 사람들은 눈길을 걱정하기보다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 것처럼 기뻐하는 것이다. 그처럼 기다리던 첫눈이 내리니 차분히 공부를 할 태세가 아니기에 아예 아이들을 불러 밖에 나가서 눈을 맞으며 놀다 오라고 하였다. 눈을 맞는 것도 좋지만 날씨가 몹시 추우니까 옷을 단단히 입고 나가라고 했더니 주섬주섬 목도리며 장갑을 챙기던 은상이가 장갑을 끼려다 장갑이 없는 지은이에게 저의 장갑을 주겠다면서 내게 묻는 것이었다. “선생님, 지은이 장갑 빌려줘도 돼요?” “왜?” “지은이 장갑 없대요.” “넌?” “난, 안 껴도 돼요.” “그래? 너도 손 시릴 텐데.” “아뇨, 난 하나도 안 시려요.” “왜, 안 시리긴?” “괜찮아요.” “그래?” “네.” “아~참, 그럼 지은에게는 내 장갑을 주면 되겠다.” “네, 그래요? 지은아, 넌 선생님이 장갑 주신대.” 은상이와 내가 주고받는 말에 말똥말똥 쳐다보다 배시시 웃는 지은이에게 내 장갑을 찾아서 건네주었다. 지난 11월 14일 우리 학교에서 열렸던 학예회 때 ‘우리 집이 최고야!’라는 연극을 하면서 소품으로 쓴 아기돼지 목도리와 에버랜드에 체험학습 가서 사온 백호 마술사 머리띠에 원숭이 목도리까지 두르고는 양손에는 장갑을 끼어 단단히 무장을 하고서 팔짝팔짝 뛰며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보니 ‘내 마음의 보석상자’에 들어 있는 작은 이야기 하나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며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인 1967년 3월, 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던 봄이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내가 자란 고향도 여기에서 가까운 곳이라 지금은 겨울이어도 따뜻한 곳이지만, 42년 전 그때, 1학년 입학식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머니회의’가 열린 그날은 3월인데도 날씨가 꽤 추웠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나고 4㎞ 쯤 되는 구불구불한 신작로를 따라 집으로 가는 길엔 그날따라 싸락눈이 세차게 날리고 있었다. 면소재지에 위치한 학교에서 우리 마을까지 가는 길에는 산골짜기에 제법 큰 저수지가 두 개 있었는데 겨울이면 거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매섭던지 사람들은 그 바람을 호된 시집살이에 비유해서 ‘시어머니 바람’이나 ‘시아버지 바람’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세찬 바람에 날아와 볼을 때리는 싸락눈을 맞아본 사람을 알 것이다. 볼을 때리는 싸락눈발이 얼마나 아픈지를. 더구나 시아버지, 시어머니라고 불리던 그 매서운 바람에 날리는 싸락눈이라니…. 그날의 꽃샘추위는 이제 막 여덟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한 햇병아리 1학년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상당히 버거웠으리라. 더구나 어렸을 때 친구들에 비해 유난히 체구가 작았던 나는 그 날도 추위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자 걸음을 재촉하는 다른 친구들의 걸음을 따라가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뻔하다. 자꾸만 일행에서 뒤처지며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그때, 나의 손을 잡고 내 옆을 지켜주며 함께 가는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나와 같은 반이 된 우리 마을의 단요라는 친구였다. 단요와 나는 저만치 앞서가는 친구들 뒤에서 자꾸만 볼을 때리는 눈발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면서도 서로의 잡은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꼭 잡으며 있는 힘을 다해 친구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지금은 흔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렇게도 귀하기만 했던 목도리나 장갑도 하나 없이 그 매서운 눈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던 나는 얼마 걷지 못해 땡땡 얼어붙은 볼을 때리는 세찬 싸락눈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고 말았다. 나를 달래던 친구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자신의 목에 감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 내 목에 감아주었다. 따스한 목도리의 방어로 나의 울음은 그쳤으나 얼마를 가지 못해 이제는 친구가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목에 있던 목도리는 다시 친구에게로, 또 얼마 못 가서 내가 훌쩍이면 그 목도리는 또 내 목으로…. 그렇게 목도리가 우리 두 사람의 목에 오가기를 여러 번 하고 나서야 다다른 마을 입구의 다리쯤에서 마지막으로 내 목에 목도리를 감아주고 친구는 그동안 꼭 잡고 있던 내 손을 놓더니 집으로 뛰어가 버렸다. 혼자가 된 나는 땡땡 언 볼에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가까스로 집에 도착하여 나를 반기는 아버지께 안기며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시절에 딸만 셋을 기르면서도 유난히 우리들을 예뻐하시던 나의 아버지는 그 우람한 팔로 다정하게 나를 감싸 안으시고 큰 손으로 나의 등을 다독여 이불을 덮어주시며 방안에 피워놓은 화롯불을 뒤적여 온기를 높여 주셨다. 이글거리는 화롯불에 땡땡 언 손을 쬐며 몸을 녹이고 있는데, 단요가 자기네 집은 문이 잠겨 있고 아무도 없다며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친구 단요랑 함께 뒤집어 쓴 이불 속에서 호호 불어가며 군고구마를 먹었던 나의 어릴 적 아름다운 작은 이야기 하나. 살아오면서 난 해마다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겨울이나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삼월이면 그때 그 일을 떠올리곤 했다. 마흔 살 무렵부터 우리 마을 어릴 적 친구들의 모임을 하게 되면서 만나게 된 친구 단요에게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내게 목도리를 씌워줄 생각을 했니?” 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한 일이었음에도 잊고 살아온 듯 가물가물 하다고 했다. ‘선행을 베푼 사람은 잊어버려야 하고 은혜를 입은 사람은 꼭 기억하여야 한다’는 어느 성현의 말처럼 그 어린 나이에 자신을 희생해가며 베푼 선행을 친구는 잊고 지냈지만 난 해마다 겨울이 되거나 내가 가르치는 나의 아이들에게 ‘친구들과의 우정’을 얘기할 때면 어릴 적 내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친구가 베풀어준 작은 선행 하나가 한 사람의 가슴 속에 얼마나 따뜻한 불로 남아 아름다운 보석이 되는지를 말해주곤 했다. 오늘 뜻밖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 첫눈을 맞으러 나가는 길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장갑을 선뜻 내밀어 동생 지은이에게 사랑을 전하는 은상이의 예쁜 마음도 우리 지은이의 가슴 속의 보석상자 속에 오롯이 담길 것이다. 나는 지은이가 살아가면서 오늘처럼 소록소록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남녘의 작은 섬 우도에서 피워낸 아름다운 이야기를 꺼내어 고운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 귀여운 모습들을 놓치기가 아까워 얼른 사진기에 담았다.
자성예언으로 나의 미래 바꾸기 원래 자성예언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가 바라는 바를 이루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 자성예언의 궁극적 목적이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그렇고 지난 호에서 분석한 평강공주의 경우가 그렇다. 자성예언이 흔히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원리로 활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방향을 조금 틀려고 한다. 자성예언에 담긴 속성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잠재가능성을 불러일으키는 원리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감응시켜 변화를 일으킬 정도로 큰 힘이 들어 있다면 남도 아닌 자기 스스로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데는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인가! 앞에서 자성예언을 ‘앞을 내다보며 스스로 일으키는 바람과 노력’이라고 폭넓게 정의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자, 그럼 ‘나’는 ‘나’를 두고 어떻게 자성예언을 할 것이고 이를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가? 자성예언의 첫 출발은 간절한 바람 첫째, 간절한 바람과 소망을 가진다. 자성예언의 첫 출발은 간절한 바람이다. 바라는 바가 없으면 성취할 것도 없다. 따라서 무엇을 얻을 것인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갖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간절한 바람은 아주 큰 것일 수도 있고 아주 작은 것일 수도 있다. ‘이다음에 커서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이 큰 바람이라면 ‘내일 친구와 화해해야지’라는 생각은 작은 바람이다. 크든 작든 일단 마음에 바람을 갖게 되면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한 활동이 시작된다. 더구나 그 바람이 간절할수록 그것을 향한 에너지에 힘이 붙는다.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면 그 일에 흥미를 느끼고 깊이 빠지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순간순간 사는 게 매우 재미있어진다. 간절한 바람을 통해서 그 일과 자신을 하나로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 전에 끝난 월드컵을 기억한다. 그때 경기를 기다리는 하루하루, 경기가 진행되는 순간순간 얼마나 재미있었나. 내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순간 월드컵이 바로 내가 하는 경기로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자신에게서 간절한 바람거리를 찾자. 공부, 성격, 습관, 취미, 몸매, 이성, 봉사, 독서, 진로, 스포츠, 인간관계 등 어떤 것이든 자신이 관심을 갖고 도전할 거리를 찾아서 에너지를 쏟아보자. 사는 게 밋밋하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친구들이여! 문제는 세상이 아니고 ‘나’에게 있다. 밋밋하다고 여기는 그 활동을 자신의 간절한 관심사로 끌어들이는 순간 그 활동은 이제 나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오락거리로 뒤바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숨어 있던 잠재가능성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쾌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자성예언을 상상하고 또 상상해라 둘째, 속으로 간절한 바람과 소망을 속삭이고 상상한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있다. 미친 것처럼 온통 마음이 한 가지 목적에 쏠릴 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음이 온통 한 가지에 쏠린 듯 미치는 일이 한순간에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혹 그런 순간이 있다고 해도 이는 그전에 오랫동안 쌓아왔던 업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 무엇인가에 미치려면, 다시 말해 바람을 간절한 것으로 만들려면 그쪽으로 마음을 키워가는 일을 해야 한다. 이 방법의 하나가 틈날 때마다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속삭이고 이미 그렇게 되어 있는 자신을 상상하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고 싶으면 스스로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그렇게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자신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고 말하고 그런 모습을 상상하는 행동이 처음에는 영 어색하고 가슴에 잘 와 닿지 않을 터이지만 멈추지 않고 이런 작업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상상하는 일이 점점 더 쉽고 친숙해진다. 사람이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처음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인데 되풀이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상상하고 행동하면 진짜 그렇게 믿어버리게 된다. 같은 거짓말도 자꾸 하다 보면 참말로 여겨지고 멀쩡한 사람을 바보라고 몰아치면 정말 바보가 되어버린 듯 행동하는 현상도 여기서 비롯된다. 자기암시 또는 자기최면의 원리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마치 자성예언이 완성된 것처럼 미래 자신의 모습을 앞당겨 살아보고 상상하는 방법을 잘 활용하라. 단, 이 방법이 터무니없는 망상이 되지 않으려면 간절한 바람을 성취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소망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세분화해라 셋째, 간절한 바람과 소망의 내용을 구체화한다. 간절한 바람을 갖게 되면 그 바람을 현실 세계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구체화하고 세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1학년 최은선 양을 예로 들어보자. 은선 양은 학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간절하게 ‘공부 잘하기’를 마음에 품고 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공부 잘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공부가 잘된다면 오죽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부를 잘하기 위하여 공을 들여야 하는데 어떤 공을 어떻게 들여야 할지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계획과 전략을 짜야 한다. 일단 은선이는 여러 과목 중에서 ‘수학’ 한 과목을 선정하여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붙이기로 계획한다. 은선이는 학기, 달, 주, 하루 단위로 소화해야 할 수학 학습량, 참고해야 할 수학자습서와 문제집, 문제풀이에 막혔을 때 지도받을 방법, 문제풀이에 성공했을 때 자신을 상 줄 방법, 단계적으로 도달해야 할 학급 및 학교 수학 성적 석차 등을 자세하게 정해 나간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시작했는데 계획을 세우고 세부적인 일정을 짜감에 따라 수학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달라진다. 마지못해 하던 수학공부였는데 어느덧 수학이 좋아하는 과목이 될 것처럼 마음이 조금씩 움직인다. 정교하게 짜여진 수학공부 계획표를 바라보면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는다. 어느 정도 수학공부에 재미를 붙인 은선이는 이제 다른 과목들에 대해서도 세부적인 계획과 학습 전략을 세우고 접근한다. 은선이는 처음에 막연하게 가졌던 ‘공부 잘하는 사람’은 세부 계획을 세우면서 서서히 자성예언으로 실현되어가고 있다. 넷째, 간절한 바람과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다. 아무리 간절한 바람이 있어도 계획을 짜고 머릿속으로 되뇌며 상상하는 것만으로 목적이 달성될 리가 없다. 이를 실천으로 옮기려는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인내심과 노력 실천으로 옮길 때는 가능하면 세부 계획표에 따라서 작은 단위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서 작은 성공 경험을 쌓아나간다. 계획표를 따라가다가 무리한 점이 발견되면 계획을 수정할 수도 있다. 실천을 하는 과정에 어려움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계획대로 잘 안되거나 또는 몇 번 실패했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지 말고 인내와 끈기로 버티도록 한다. 평강공주가 온달을 공부시킬 때 어디 쉽고 재미있기만 했을까.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곳곳에서 만났겠지만 인내와 끈기로 버티며 이를 극복해 나갔을 것이다. 잘 알겠지만 인내와 끈기는 어떤 일을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다. 작은 물방울이 단단한 바위를 뚫을 수 있는 힘은 물방울 자체가 아니라 쉬지 않고 떨어지는 ‘끈기’에 있다. 성공한 사람들을 연구한 자료들도 성공을 가름하는 결정적 요소가 지능이 아니라 인내, 끈기와 같은 성격적 요소에 있다고 보고한다. IQ 85만 넘기면 그다음은 머리가 아니라 성격이 열쇠가 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는 에디슨의 말은 진실이다. 그러므로 자성예언이 실현될 때까지 꾸준히 인내와 끈기를 발휘하도록 하라. 결국 자성예언의 성취 여부는 자기와의 싸움에 달렸다. 여기서 지면 어떤 일이든 이루어내기가 어렵다. 고통을 이겨내고 얻은 결과는 그만큼 더 달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힘들고 어려운 고비들을 잘 극복해 나가자. 다섯째,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결과를 낙관한다. ‘실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실패는 있기 마련이니 한두 번 실패했다고 해서 너무 낙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다. 실패한 이유를 잘 따져보면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실패는 으레 있기 마련이고 또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실패 경험은 피할 게 아니라 오히려 느긋하게 맞이하는 자세를 갖는 편이 낫다.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여라 하지만 실패 경험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실패를 하게 되면 뭔가 불쾌한 감정, 찝찝한 감정이 남는데 이런 것들은 빨리 털어내는 게 좋다. 실패 후 느끼는 감정을 빨리 털어내는 좋은 방법이 있다. 실패한 원인을 ‘내 탓’으로 돌리지 말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곳에 돌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시험에 점수가 목표한 대로 나오지 않은 이유를 ‘내 머리가 따라주지 않아서’나 ‘노력이 조금 부족해서’가 아니라 ‘수업시간의 선생님 설명이 충분치 않아서’라든가 ‘시험기간 중 가족 행사가 많아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실패하게 된 원인이 ‘나’ 이외의 다른 것에 있기 때문에 자신을 비난하고 채찍질하는 강도가 훨씬 낮아진다. 실패를 하고서도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대뜸 대들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남 탓을 하고 책임을 피하면서 과연 발전할 수 있겠느냐고. 글쎄, 만일 별 준비도 안 하고 시험을 치러서 시험점수가 낮게 나왔다면 ‘내 탓’을 해야 마땅하다(우스운 사실은 실제로 이런 사람은 전혀 자기 탓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만족할 만한 점수가 나오지 않았는데 ‘내 탓’만을 한다면 좌절감만 커질 뿐이다. 차라리 실패의 원인을 다른 것에 돌려 재빨리 마음을 안정시키고 다시 새롭게 정진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실상 우리는 잘못된 일에 지나치게 ‘내 탓’을 많이 한다. 공부를 못하는 것도 ‘내 탓’이요,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내 탓’이며, 사회가 부패한 것도 ‘내 탓’이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끼지 못한 것도 ‘내 탓’이다. 그러므로 내가 책임감을 느끼고 앞장서서 바꿔나가야 한다. 무척 훌륭한 발상 같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너무 힘들어 불안과 우울증에 사로잡힐 게 뻔하다. 왜 그런 것이 다 ‘내 탓’인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내 탓’과 ‘네 탓’을 잘 가릴 줄 안다. 좋은 일, 성공한 일은 ‘내 탓’을 하고, 좋지 않은 일, 실패한 일은 ‘네 탓’을 한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얼핏 보면 이기적인 방법 같지만 이는 세상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숨은 비결이다. 자신을 수용하고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수용하고 용서할 줄 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편안해야 남도 편안하게 대한다. 이렇게 보면 제대로 된 이기적 방법은 이타적 방법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 수 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인생은 내가 디자인해야 옳다. 부모님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는 데 도움을 준 많은 분들은 모두 인생극장에서 ‘나’라는 주인공이 주인공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나’를 보호하고 보조하고 지원해준 조연들이다. 조연이 주인공보다 역할이 크면 안 되듯이 ‘나’의 인생에서 이분들은 항상 배경 세력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이 배경 세력의 바탕 위에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멋진 인생을 꿈꾸고 기획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자성예언은 ‘내’ 안에 있는 잠재가능성을 일깨워 ‘나’를 무엇인가로 만들어가는 방향타다. 그러므로 ‘내’ 삶을 향상시키는 긍정적 자성예언을 찾고 이를 실현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자성예언은 나뿐 아니라 내가 관심을 갖는 다른 사람(너)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자성예언은 ‘내’가 디자인한 세상에 ‘나’와 ‘너’를 함께 얼싸안고 들어가게 하는 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열쇠는 열정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열정을 다해 많은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쏟다 보면 어느새 꿈은 현실이 되어 찬란하게 빛을 발할 것이다. 우리가 멋진 꿈을 갖고 여기에 열정을 쏟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힘을 합하여 좋은 결과를 이룰 것이다. 끝 --------------------------------------------------------------------------- 교사에게 드리는 Tip 학교 선생님이라면 한 번쯤 자성예언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향상시키는 데 교사의 자성예언이 큰 역할을 한다는 주장 말입니다. 자성예언의 효과는 처음 이 효과를 언급했던 로젠탈과 제이콥슨의 실험 이후에도 여러 연구에서 입증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석·박사 학위 논문 주제로 자성예언을 다룬 연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성예언에 대해 자세히 다룬 국내 서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성예언의 효과를 잘 알고 있는 분은 학생들에게 사용하는 언어에 특별히 신경을 쓸 겁니다. 별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반복한 말이 학생에게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입니다. 말이 씨앗이 되어 학생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자성예언과 관련하여 교사들이 특별히 관심을 써야 할 말이 칭찬과 꾸중입니다. 교사가 칭찬과 꾸중을 할 때 그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건강한 미래를 가꿔가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칭찬과 꾸중이 건강한 미래를 가꾸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꾸중이 그렇습니다. 잘못된 꾸중은 학생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부정적 자성예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칭찬과 꾸중을 그 목적에 알맞게 잘 활용할 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에 칭찬과 꾸중하는 방법에 대한 서적이 많이 출판되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후 보이는 현상입니다. 좋은 책을 골라 칭찬과 격려하는 법, 꾸중하는 법에 대한 지식에 접하고 이를 잘 활용하면 좋겠지요. 필자가 쓴 꾸중을 꾸중답게, 칭찬을 칭찬답게(2005)도 이 분야의 서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