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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

맑은 날 만경창파 푸른 물에 배 띄워 떠나가는 모양의 고을 전북 전주. 조선을 세운 임금의 관향(貫鄕)이기도 한 전주에는 전통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많다. 부드러운 기와장의 이어지는 한옥의 바다, 전주한옥마을을 찾아보자.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전주한옥마을의 골목
1250년 역사의 땅, 전주
 역사를 보면 전주(全州)라는 지명이 처음 사용된 때는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으로, 완산주를 전주로 개명하면서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1250년의 역사를 간직한 천년(千年)도시가 바로 전주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전 지역과 제주도까지 관할했던 전라도의 실질적인 수도이자 행정중심지로 큰 역할을 담당했던 전주는 조선왕조 500년을 꽃피운 조선왕조 발상지이기도하다. 역사적으로 나라의 수도였던 곳이 6개소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전주의 위상은 실로 크다고 볼 수 있다. 주변의 드넓은 평야와 바다로 연결되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갖춘 전주는 일찌감치 풍요의 고장으로 인정받았으며, 이러한 여유로움은 문화예술을 꽃피우고, 섬세한 멋과 맛의 고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판소리의 본고장이고 전통생활양식의 근간인 한옥, 한식, 한지 등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를 담고 있는 도시, 전주. 우리나라의 전통을 알고자 한다면 전주는 반드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전주에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전주한옥마을이 있다. 천년 전주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으니 전주한옥마을에 들어서면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다. 700여 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전주한옥마을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자리한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한옥촌이며 전국 유일의 도시 한옥군이다. 경기전, 오목대, 향교 등 중요 문화재와 문화시설이 산재한 전주한옥마을에서 전통문화를 체험하며, 옛 선비들의 멋과 풍류를 느끼노라면 지금 어느 시대에 있는지를 착각할 정도로 고풍스럽다.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시작된 한옥마을
 
그렇다면 전주한옥마을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 탄생 이야기 또한 학생들이 알아둠직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일본인들이 한국 땅에 대거 몰려들었다. 전주 또한 예외는 아니었으니 일본인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서문 밖쯤에 거처를 마련했다.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
 당시 전주는 한양처럼 전주부성(全州府城)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전주부성은 1934년 1월에 시작해 약 20척(1척=20.83㎝)인 4m의 높이로 쌓았으니 임진왜란 당시 이정란이 성을 지키며 왜적을 물리치던 곳이다. 급히 들어온 일본인들은 빈집이 없는 성안에 집을 구하지 못했었다. 양곡을 수송하기 위해 일본은 1907년부터 전군가도(全群街道)를 개설하며 전주성을 철거했다. 1911년 말쯤에는 남문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전주부성이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지금 남아있는 풍남문(豊南門, 보물 제308호)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흔적이다.
 이로써 성 안과 밖의 구분이 없어졌으며 일본인들은 성안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서문 밖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중앙동 쪽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해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러자 전주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중앙으로 몰려드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태조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을 중심으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가 아름다우니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로 전주 사람들이 표현하고 싶어 하는 자존심의 발로인 것이다.

한옥마을의 꽃, 경기전
 전주한옥마을을 걷다 보면 경기전, 전동성당, 풍남동, 오목대, 향교, 견훤성터, 남고산성 등 문화유적지가 여럿 눈에 들어온다. 1930년을 전후로 형성된 전주한옥마을의 살아있는 역사다. 또한 전통문화센터, 공예품전시관, 명품관, 한옥생활체험관, 전통술박물관, 전주전통한지원, 한방문화센터 등 각종 전통문화체험 시설과 합죽선, 태극선을 비롯한 전통공예방들과 전통찻집, 전통음식점 등 다양한 볼거리 할 거리, 즐길 거리, 살거리 등이 풍부해 어느 곳을 먼저 들려야 할지 난감해진다.
 하지만 전주한옥마을 일 번지는 역시 경기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사적 제339호로 지정된 경기전 경내에는 보물 제931호로 지정된 이성계 어진과 유형 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조경묘가 있다.

 예로부터 임금을 그린 초상화를 어진(御眞)이라 하는데 어진은 매우 소중히 다루어져 진전(眞殿)이라는 별도에 건물에 봉안하여 관리했다. 전주에 있는 경기전(慶基殿)은 조선의 창업자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진전으로 태종 때에 창건된 것이다. 1410년 태종은 전주 · 경주 · 평양의 세 곳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년(1412)에 ‘태조 진전’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흥전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14년(광해군 6)에 중건했다. 이곳에 봉안한 영정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병자호란 등 전화를 피해 아산과 묘향산, 적상산 등으로 옮겨 다니다가 1614년 경기전이 중건되어 다시 돌아왔으며 동학혁명 때는 위봉산성으로 피난시켜 위급을 면할 수 있었다.
 경기전에는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것들이 많은데 경기전 입구에 있는 하마비부터 유심히 보자. 지대석 위에 쭈그려 앉은 두 마리 사자가 받침돌을 등 위에 받치고 있는 하마비가 있다. 이렇게 두 마리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하마비는 좀처럼 보기 드문 형태로 상당한 격식을 차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면의 앞면에는 “여기에 이르렀거든 누구든 말에서 내려라. 잡인은 들어오지 말라”(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다음은 경기전 본전. 정자각 형태로 꾸며 여타 건축과 구별되며, 잘 다듬은 두벌대 화강암으로 마감된 기단 위에 있다. 본전 안에는 보물 제931호로 지정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다. 이 어진은 고종 9년(1872) 당시 경기전에서 받들던 어진이 너무 낡고 해짐에 따라 새로 제작한 것으로, 영희전(永禧殿)에 있던 태조 어진을 범본(範本)으로 하여 모사한 이모본(移模本)이다. 진품 어진은 서울국립박물관에 모시고 있다가 2009년 1월 9일 전주국립박물관으로 모시고 왔다. 더불어 조선의 다른 왕의 어진도 볼 수 있으니 고종, 정조, 세종, 영조, 철종, 순종의 어진이 그것이다. 이렇게 많은 어진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이곳 경기전 뿐이다.
 경기전에는 예종의 태실과 태실비도 만날 수 있는데 태실은 사각의 두툼한 하대석 위에 항아리 모양의 몸돌을 놓고 그 위에 평면 팔각의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주위로는 여덟 개의 각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마다 연잎을 돋을새김한 동자주를 놓고 그 위에 팔모의 난간석을 연결하여 장식과 보호를 겸한 난간을 둘렀다. 태실 옆에 있는 태실비는 목과 다리를 한껏 웅크린 화강암 거북받침 위에 통돌 하나로 이수와 몸돌을 깎은 대리석 비를 올려놓은 모습이다. 몸돌 앞면에는 ‘睿宗大王胎室(예종대왕태실)’라고 적혀 있다. 이 태실과 태실비는 원래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태봉산에 있던 것을 197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으로,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26호다.

 한지, 가양주 만들기의 독특한 체험
 경기전에서 나오면 태조로 양편으로 한옥과 골목이 이어지는데 전주전통술박물관, 전주전통한지원 등 돌아보고 체험할 곳이 많다. 전주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한지인데 소규모 한지생산 공장들이 이곳 한옥마을에 자리한다. 각기 소규모 전시관과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어 재미를 더한다. 그 중 전주전통한지원(063-232-6591)에 들어서면 한지 원재료인 닥나무가 쌓여있고 이를 물에 불려 삶고 잘게 쳐서 너른 발에 걸러 한지를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각양각색의 은은한 한지가 눈부시고, 한지를 이용해 만든 공예품을 본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해한다. 특히 한지 뜨는 광경이 인상 깊은데 직접 해 볼 수 있다.
 전주전통술박물관(063-287-6305, www.urisul.net)에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전통주들이 모두 모여 있다. 전통주의 제작과정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전시관과 더불어, 막걸리(탁주)와 청주가 같은 술독 안에서 얻어지는 과정, 청주가 불을 만나 소주가 되는 절차 등을 상세히 공부할 수 있다. 다양한 전통주를 시음할 수 있으며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박물관의 전시물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고 술밥 비비기 · 소주 내리기 등 전통 가양주 만드는 과정(11주)도 운영하고 있다.
 
 전주한옥마을에서의 고택 스테이

 전주한옥에서는 고택체험 또한 가능하다. 양사재(養士齎)는 원래 전주 향교의 부속 건물로 서당 공부를 마친 청소년들이 생원 · 진사 시험공부를 하던 곳이다. 1897년 전라북도 공립소학교(현재의 전주초등학교)가 이곳에서 문을 열었으며 전북대 문리과대학의 전신인 명륜 대학의 사택으로도 쓰여 이 대학의 국문과 교수였던 고(故) 가람 이병기 시인이 1951∼1956년 이곳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아직도 아궁이에 불을 때 구들장을 덥히는 전통 난방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조금 전 유생이 앉았던 듯, 가람 이병기 시인이 다녀간 듯 흑갈색으로 그을린 구들장에 온기가 남아 있다.
 전주한옥생활체험관 역시 숙박이 가능한데 아침에 눈을 뜨면 방 한구석의 경대며 문갑 병풍이 항상 그곳에 있었던 듯 친근하다. 창호지 바른 문짝과 문살 그리고 은은히 스며드는 햇살과 툇마루가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안채 대청에서 받는 오첩반상은 방짜유기에 찌개, 김치, 생선이 담겨 있으니 반가 사랑채에 하룻밤 유(遊)하는 선비가 되는 듯하다. 자전거를 타고 전주한옥마을을 돌아보면 더욱 여유롭다. 오목대에 오르면 전주한옥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려 우왕 때(1380년) 이성계 장군이 남원 근방 황산전투에서 왜구를 무찌른 뒤 귀로(歸路)에 종친을 불러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자취
 한옥마을을 걸으며 발품을 팔다 쉬고 싶으면 전주한방문화센터(063-232-2500)로 가보는 것도 좋다. 한의학 진단체험을 통해 자신의 사상체질을 체크해 볼 수 있다. 한방차 한잔 마시며 한방약족탕으로 피로를 풀 수 있다. 제대로 된 찻집을 원한다면 ‘교동다원’(063-282-7133)도 좋다. 차를 마시면서 한옥의 멋스러움을 음미할 수 있는 전통찻집으로 벽난로와 아궁이를 절충한 특이한 난방은 일본 중국의 건축과 교수들이 감탄한 작품이다. 전주천변 한벽루 곁에 자리한 전통문화센터(063-280-7000, www.jt.or.kr)는 볼거리 먹을거리 놀거리를 즐기고 체험하는 문화공간이다. 판소리, 기악, 무용, 사물놀이, 퓨전국악 등이 놀이마당에서 신명나게 펼쳐진다. 전통결혼식, 어린이 예절교실, 우리 악기, 우리 소리, 공예 등 강좌가 열리고 비빔밥, 한과, 떡 등 직접 조리하는 체험교실이 열린다. 경기전과 돌담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제대로 된 전주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 종로회관(063-288-4578)이 근사하다. 작가 최명희의 생가터와 소설 <혼불>에서의 전주 최씨 종택도 전주한옥마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좋은 코스다.
 천천히 걸으면 TV 역사드라마 <용의 눈물>과 <명성황후> 촬영장이던 경기전이 보이고 길 건너에 전동성당이 우아하다. 사적 제288호인 전동성당은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절충한 건물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국 최초 순교자들의 뜻을 받들어 1907년에 지어진 것인데 영화 <약속>의 결혼식 장면이 촬영됐으며 <태극기 휘날리며>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니 전주한옥마을은 그 자체가 영화의 세트장처럼 재미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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