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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면접의 중요성, ‘정책을 말로 구현하는 시험’ 교육전문직 시험의 성패는 ‘심층면접’과 ‘사업기획안’에서 갈립니다. 이 두 영역은 단순한 말하기와 글쓰기의 차원을 넘어, 교육전문직으로서의 정책 실행력과 문제 해결력을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핵심 평가 요소입니다. 특히 심층면접은 지원자의 교육철학·리더십·교육정책에 대한 이해, 그리고 현장 문제에 대한 대응력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관문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말을 잘하는가’가 아니라, ‘사고력과 전문성을 말로 설득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됩니다. 이처럼 심층면접은 교육전문직 적합성을 드러내는 결정적 기회이자, 정책을 말로 구현해 내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심층면접의 정의 심층면접은 교육전문직 선발에서 응시자의 정의적 특성, 인지적 사고, 정책적 사고력 등 다양한 영역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종합적 전형입니다. 단순한 말하기 능력이나 지식의 암기 여부를 측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을 바라보는 철학, 문제상황에 대한 접근 방식, 정책 실행자로서의 자질을 전반적으로 확인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면접은 일반적으로 3명의 평가자와 응시자가 마주 앉은 상태에서 진행되며, 평가자는 문항별로 사전에 설계된 질문지를 바탕으로 응시자의 반응을 유도합니다. 응시자는 제한된 시간 안에 주어진 문제 상황을 분석하고, 자신의 경험 및 정책 이해를 토대로 설득력 있는 답변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응시자의 인지적 사고력(문제 해결 과정과 논리 전개), 정의적 특성(태도와 책임감, 협업 의지, 공감 능력), 정책적 판단력(교육정책의 맥락 이해 및 현장 적용 가능성)을 균형 있게 드러내는 기회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심층면접은 언어적 표현과 더불어 비언어적 요소를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예를 들어 목소리의 안정성, 말의 속도, 시선 처리, 손의 움직임, 자세, 표정, 호흡 등은 모두 응시자의 내면 태도와 가치관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며, 이 또한 평가자의 주요 관찰 포인트가 됩니다. 최근 들어 여러 시도교육청에서는 이러한 심층면접의 질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면접 문항을 사전에 세분화하고, 평가기준을 구체화하며, 블라인드 방식이나 영상 면접을 도입하는 등 공정성과 객관성을 제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전형은 단순한 ‘면접시험’이 아니라, 교육전문직으로서의 실질적 자격을 검증하는 실전 평가의 무대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심층면접은 교육전문직이라는 공적 책무를 수행할 인재가, 자신의 신념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현장을 어떻게 변화시키고자 하는지 ‘말’을 통해 증명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 자체가 교육전문직으로서의 역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심층면접 평가의 타당성 교육전문직 선발에서 심층면접은 단순한 형식적 절차가 아닌, 전형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핵심 평가 요소입니다. 즉 교육전문직 시험을 통해 선발된 이들이 실제로 현장에서 우수한 교육전문직으로 활약할 수 있다면, 그 전형은 공정하고 효과적인 선발 도구로서 기능하는 것입니다. [PART VIEW] 전문직 시험을 설계하고 출제하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은 ‘어떤 사람이 좋은 교육전문직이 되는가’입니다. 이때 요구되는 핵심역량은 단순한 지적 능력을 넘어선, 인성과 가치관, 책임감, 그리고 교육철학입니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정규교사로 재직 중인 대부분의 교사는 이미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과 교육 전문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1차 지필평가를 통해 교육정책·교육행정·교육과정 등에 대한 인지적 지식은 충분히 검증된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2차 면접에서 평가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정의적 영역으로 옮겨갑니다. 즉 교직에 대한 관점(교직관), 교육에 대한 신념(교육관), 타인과의 관계 맺음(인성), 공적 책임을 실천하려는 태도(인격적 소양) 등입니다. 실제로 교육현장을 이끄는 교육전문직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바른 방향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이는 인지적 능력보다 정의적 특성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따라서 심층면접은 이러한 정의적 특성을 본격적으로 평가하는 장치로써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단편적인 질문이 아니라, 경험에 기반한 판단력, 상황에 대한 대응 전략, 정책에 대한 관점 등을 통해 응시자의 태도와 가치관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답변 내용뿐 아니라 응시자의 말투·억양·시선·손동작 등 비언어적 요소까지 함께 평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심층면접은 교육전문직 시험의 ‘타당성’을 완성하는 요소입니다. 응시자의 응답을 통해 그가 단순한 ‘시험 준비자’가 아닌 ‘정책 실행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는지 판단하는 이 과정은 교육청이 바람직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본질적인 절차인 것입니다. 심층면접 대비 전략 심층면접은 단순한 문답이 아니라, 교육전문직으로서의 철학과 자질, 정책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역량을 말로 구현하는 실전 무대입니다. 따라서 사전 지식 습득만으로는 부족하며, 아래의 준비 전략을 체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나는 왜 교육전문직이 되려 하는가?’를 끊임없이 자문하라 심층면접의 핵심은 지원 동기와 교육철학의 명료성입니다. 교육관·교직관·인생관·평가관 등 자신만의 관점을 정립하지 못한 채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는 응시자는 쉽게 설득력을 잃습니다. ‘왜 교육전문직이 되려 하는가?’라는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자기성찰과 언어적 정리가 필요합니다. 관점이 분명한 사람은 눈빛과 말의 힘부터 다릅니다. ● 인성은 연습이 아닌 습관이다 심층면접은 정의적 특성을 파악하는 평가입니다. 면접 직전에 급조한 모범 답변이나 미사여구는 교육경력자 면접관 앞에서 금세 드러납니다. 평소 긍정적인 사고, 협력적 태도, 배려와 책임감 있는 생활 습관을 체화하고 있어야 면접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인성은 단기간에 세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습관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 현재 소임에 충실할 때 정책적 시야가 넓어진다 일부 응시자는 준비 과정에서 교내 업무를 소홀히 하여 오히려 현장 평가에서 감점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 면접에서는 학교 실천 사례와 구체적 경험을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실한 학교생활, 다양한 직무 경험, 원만한 동료 관계는 모두 심층면접의 좋은 자원이 됩니다. 교육전문직으로서의 책임감은 현재 자리에서의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 사색·독서·성찰을 습관화하라 심층면접은 암기한 정책을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철학을 구성하고, 맥락을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색과 독서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책을 통해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산책·명상·글쓰기 등을 통해 이를 자신의 언어로 전환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독서는 단순 정보의 축적이 아닌, 사고의 깊이를 만드는 도구입니다. ● 교육정책과 시사 이슈에 꾸준히 관심 가져라 면접 문항은 대부분 현장 중심의 문제의식과 교육정책에 대한 이해도를 함께 평가합니다. 교육활동보호, AI 교과서, 학력 격차, 인성교육, 교사 지원 정책 등 시의성 있는 주제는 반복 출제됩니다. 뉴스·공문·교육청 정책자료 등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정리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 교직 인생 설계서를 직접 써보라 심층면접에서 자신의 삶을 말로 표현하려면 먼저 글로 써보는 것이 좋습니다. 교직 인생 설계서를 작성해 보면, 자신의 성장 과정, 정책적 관심사, 장기 비전이 명확해지며 말에도 힘이 실립니다. 이 설계서는 면접관에게 단순한 직무 희망이 아닌, 직업적 소명의식과 비전을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 반복적인 모의면접과 시간관리 훈련은 필수다 심층면접은 제한된 시간 안에 응시자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모의면접을 통해 말하기 구조를 훈련하고, 시간을 관리하는 연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신이 답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말의 구조와 속도, 표정·손동작 등을 체크해 보는 연습이 효과적입니다. 특히 시간을 넘겨 결론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 치명적인 감점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두괄식 화법과 핵심 전달력을 연습해야 합니다. ● 교육적 감동을 주는 언어를 평소에 축적하라 명언이나 사자성어는 그 자체로 인상적인 마무리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다만 무리하게 사용하면 동문서답이 되므로, 질문과 맥락에 맞게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직철학·인성·전문성 등과 관련된 문장들을 메모장이나 카드에 정리해 두고 반복적으로 익히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심층면접의 실질적 위상과 사업기획과 정책 논술 연계 심층면접은 ‘말하기 시험’을 넘어, 교육전문직이 현장의 문제를 어떻게 진단·설계·실행·환류하는지를 검증하는 작은 정책 발표회에 가깝습니다. 답변의 구성력, 논리의 밀도, 말의 울림까지가 모두 평가 대상이며, 면접관은 응시자의 말 너머에 있는 정책 철학과 실행 의지를 봅니다. 무엇보다 심층면접은 1차 지필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정의적 특성의 종합 진단입니다. 1차를 통과한 뒤에는 지적 격차가 크지 않으므로, 2차에서는 교직관·인성·가치관과 정책 철학 같은 태도와 관점이 당락을 좌우합니다. 교육전문직은 단순히 ‘유능한 교사’의 연장이 아니라, 학교와 지역을 바라보는 관리자·조정자·정책실행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에 필요한 것은 성실함을 넘어 올바른 가치, 현장 설득의 언어, 실행을 끌어내는 리더십입니다. 실제 운영에서 심층면접의 비중은 작지 않습니다. 일부 교육청은 일정 등급 미만 시 탈락(컷오프)하거나, 고득점자 간 최종 순위를 면접 점수로 가르는 등 실질적 변별 요소로 활용합니다. 고비용·고난도의 평가임에도 강화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식량이 아니라 책임 있게 실천할 사람을 선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기획안-정책논술-심층면접의 삼각 브리지 심층면접은 사업기획과 정책논술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기획안이 ‘종이 위 실행력’이라면, 정책논술은 ‘정책 선택의 논리와 근거’, 면접은 이를 말로 증명하는 절차입니다. 준비 단계부터 세 영역을 하나로 엮는 브리지 훈련이 필요합니다. ● 90초 답변 템플릿 예시 정책논술·사업기획안·심층면접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답변 템플릿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가 루브릭 자가 루브릭(rubric, 채점 기준표)은 모의면접 직후 자신의 답변을 항목별로 점검해 장단점을 객관화하는 도구다. 면접은 순간의 긴장과 인상에 좌우되기 쉬워서 ‘감’만으로는 발전 지점을 놓치기 쉽다. 루브릭을 쓰면 같은 기준으로 반복 채점이 가능해 연습의 누적 효과를 수치와 기록(log,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고, 낮은 항목을 중심으로 다음 연습의 목표를 정밀하게 잡을 수 있다. 운영 방식은 단순하다. 매 회차가 끝나면 곧바로 총점과 항목별 점수를 적고, 날짜·주제·영상 위치를 함께 남긴다. 주 1회는 누적 기록을 훑어 가장 낮은 항목 한 개만 개선 목표로 삼고, 그 항목을 높이기 위한 과제를 한 가지 정한다. 가능하면 동료 상호평가(peer review, 동료 상호채점)를 병행해 기준을 교정하고, 같은 영상을 두 사람이 독립 채점해 점수 차이가 클 경우 기준 문장을 함께 재정의한다. 루브릭은 점수를 뽑아내는 장치가 아니라 방향을 잡는 나침반에 가깝다. 점수의 높고 낮음보다 점수가 말해 주는 원인과 처방을 찾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 결론 선명 좋은 답변은 첫 문장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질문의 핵심어를 짧게 되받아치며 방향을 못 박고, 다음 문장들은 그 결론을 증명하는 데만 사용한다. “핵심은 기초학력 미도달의 조기진단과 맞춤 개입이며, 이를 학교·지원청 연계 표준모형으로 추진하겠다”와 같이 정책목표·핵심 전략·거버넌스(거버넌스)를 한 번에 제시하면 청자가 길을 잃지 않는다. 흔한 오류는 결론을 중간 이후에 늦게 말하거나, 장식적 표현을 늘어놓아 중심이 흐려지는 경우다. 첫 문장을 10~15초 안에 말한 뒤 스스로 “그래서 무엇을 하겠다는가”라는 물음에 바로 답이 되는지 점검하면 도움이 된다. ● 논리 흐름 문제의 정의, 원인의 분석, 대안의 제시, 기대 효과와 환류가 자연스러운 순서로 이어져야 한다. 각 문단의 첫 문장은 단계 전환을 알리는 표지처럼 작동해야 하며, ‘문제는 …이다’, ‘원인은 …에 있다’, ‘따라서 …을 시행하겠다’, ‘효과는 …로 점검하겠다’와 같은 문장 틀을 꾸준히 연습하면 흐름이 단단해진다. 논리의 공백을 감추기 위해 사례를 과하게 늘어놓거나, 반대로 구호만 앞세워 근거가 빈약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 장짜리 축약도(문제·원인·대안·효과·환류)를 만들어 책상 앞에 붙여 두고, 말로 그 그림을 그대로 따라가는 연습이 효과적이다. ● 정책 연계 답변은 개인적 신념을 넘어 교육청 비전, 현행 사업, 관련 지침과 맞물릴 때 힘을 얻는다. 표어를 인용하는 것에 머물지 말고, 왜 지금 이 정책과 연결되는지, 자신의 사업기획안과 정책논술의 논리가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는 ○○교육청의 학습안전망 강화 기조와 동일한 방향이며, 제 기획안의 조기진단-맞춤 개입 축이 정책논술의 근거 체계와 대응한다’와 같이 정합성을 명확히 밝히는 식이 좋다. 실제 명칭과 세부 문구를 정확히 인용하고, 수치나 일정 같은 구체 항목을 곁들이면 이름 빌리기라는 인상을 피할 수 있다. ● 실행 가능 실행은 의지의 선언이 아니라 방법의 제시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떤 순서와 기준으로 할 것인지가 보이면 가능성이 확보된다. 예산은 큰 항목 단위로, 인력은 역할로, 일정은 이정표로, 협력은 창구와 책임 분담으로 간단히 정리한다. 학교-지원청-외부기관의 역할 배분과 RACI(책임자·협력자·자문자·정보공유자)를 한 줄로 제시하면 운영의 그림이 선다. ‘1학기 10교 시범, 월간 합동 점검, 분기 평가로 환류, 2학기 30교 확대’처럼 시간의 흐름과 단계가 보이게 말하고, 참여율·운영률·미도달률 같은 수치를 한 개만이라도 넣으면 실현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크게 높아진다. 맺음말 심층면접의 본질은 정책을 말로 구현하는 능력이다. 중요성과 정의, 타당성과 대비 전략, 그리고 사업기획·정책논술과의 연계를 하나의 흐름으로 준비한다면, 짧은 시간 안에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임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 말의 무게는 곧 정책의 무게이며, 오늘의 한 문장이 내일의 현장을 바꾼다.
세상은 속도를 묻고, 교육은 방향을 묻는다. AI가 정답을 더 빨리 보여줄수록 우리는 더 좋은 질문을 만드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 힘은 독서로 단단해지고, 토론으로 확장된다. 이는 소크라테스부터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특히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깊이 있는 학습’을 강조하며 핵심 아이디어 중심 수업설계, 학생의 삶에 의미 있는 학습경험 제공, 사고하고 탐구하는 수업을 말한다. 이에 (서울형) 독서·토론 기반 프로젝트 수업에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방향을 적용하여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깊이 있는 배움에 이르는 독서·토론 수업의 사례를 나누고자 한다. 초등학생이 가장 쓰기 어려워하는 글, 논설문 초등학생에게 가장 어려운 글은 단연코 논설문이다. 그럼에도 논설문은 타당한 근거로 생각을 조직하고 타인을 설득하는 중요한 삶의 역량으로서 제대로 배워야 하는 글이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논설문 쓰기 수업을 재미있게,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논설문 쓰기를 힘들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배경지식의 부족이다. 주제에 대한 정보가 얕아 아무리 논설문의 형식과 구조를 배워도 그 구조 속에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독서로 주제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고, 토론으로 자신만의 관점을 갖도록 하면 어떨까?’ 주제에 대해 잘 알아야 쓰고 싶어진다. 그래야 쓰는 것이 재미있다. 논설문 쓰기 수업에 독서와 토론을 적용하면 배경지식의 부족에서 오는 주장 형성의 어려움이 많이 해소될 것이라 믿는다. 핵심 아이디어와 탐구 질문으로 단원 설계의 방향 설정 6학년 독서 단원과 논설문 쓰기 단원을 연계하여 교과 내 융합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하기로 했다. 교육과정을 분석하여 성취기준과 내용 요소를 파악한 후, 가르쳐야 할 핵심 개념을 도출하고 쓰기 영역의 핵심 아이디어를 초등학교 6학년 단원 수준으로 구체화했다. 그리고 핵심 아이디어에 닿기 위한 탐구의 출발점이 될 탐구 질문을 생성했다. 단원을 설계할 때 가장 어렵고,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이 과정이다. 학생들이 최종적으로 알기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분명해지면 그 방향에 맞게 평가를 설계하고, 학습활동을 구상하는 것은 비교적 수월해진다. [PART VIEW] 주제와 도서의 선정이 반이다! 독서·토론 기반 프로젝트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의 도출과 도서의 선정이다. 학생의 삶과 연결되면서 쟁점이 있어 토론이 가능한 주제를 도출하고 도서를 선정해야 논설문 쓰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학생들이 흥미가 있을 만한 주제는 무엇일까?’ 많은 고민 끝에 선택한 주제는 ‘인공지능 로봇이 담임 선생님이 될 수 있는가?’이다. 이 주제를 위해 우리가 함께 읽을 도서는 담임 선생님은 AI1로 정했다. 이 책은 미래초등학교 5학년 1반에 인공지능 로봇이 담임으로 배정되면서 아이들과 AI 선생님이 겪는 갈등과 문제의식을 다룬다. 출간 당시에는 ‘만약’을 상상하게 하는 소설처럼 읽혔지만, 몇 년 사이 인공지능의 빠른 확산으로 이 주제는 공상을 넘어 현실의 논점이 되기에 충분해졌다. 모든 학생의 삶과 연결된 ‘학교’라는 친숙한 공간에서 ‘인공지능 로봇 선생님’이라는 등장인물은 학생 수준, 시대적 흐름을 모두 담고 있어 재미있고, 의미 있는 주제가 될 것이다. 와~, 진짜 재미있겠다! 참여하고 싶은 동기 만들기 학생이 주도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려면 왜 배우는지에 대한 목적 공유가 선행되어야 한다. 목적이 분명해질수록 과제는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된다. 따라서 본 단원은 백워드 설계의 원리에 따라 수행과제를 먼저 정하고, GRASPS 모형2으로 목표와 맥락을 학생 언어로 구체화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1차시는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온 편지를 읽어주고, 수행 과제를 안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편지는 단원이 끝날 때까지 게시판에 붙여두고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작년에 이어 2년째 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과장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이 상황을 진짜로 믿는다. 그래서 단원이 끝나면 자신들이 쓴 논설문을 진짜로 교육부 장관에게 보냈는지, 답장은 왔는지 궁금해한다. 그만큼 수행 과제의 설계가 중요한 것 같다. 학생들의 수준에 맞고, 흥미롭고, 도전해 보고 싶은 과제 말이다. 수행 과제를 안내하고 이 과제를 해내기 위해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 어떤 순서로 배우면 좋을지 함께 이야기한다. 물론 이미 교사는 학습활동까지 모두 설계해 두었지만, 학생들이 교사의 안내대로 수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배움의 주체가 되어 무엇을 배울지 정한다면 훨씬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게 된다. 학생들과 함께 계획한 배움 내용은 단원이 끝날 때까지 칠판 한쪽에 기록해 두고 하나씩 체크해 나간다. 단원 분석과 평가 설계에 이어 학습활동은 다음과 같이 설계하였다. 소리 내어 함께 읽기로 배경지식 만들기 지역과 학급의 특성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스스로 텍스트를 끝까지 읽어내지 못해 수업 참여가 어려운 학생들이 분명히 있다. 수업의 출발점은 읽기다. 읽어야 토론할 수 있고, 그래야 논설문을 쓸 수 있다. 따라서 본 단원에서는 소리 내어 함께 읽기를 통해 주제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를 보장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와 관련하여 문해력 전문가 조병영 교수3는 적절한 읽기의 속도는 소리 내어 읽는 속도라고 했다. 읽기는 사고의 과정이기 때문에 너무 빠르게 읽는 것은 글자만 해독하고 의미를 놓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리 내어 읽기’는 스스로 읽기 어려운 학생을 독서 공동체 안으로 초대하는 방법이며, 빠르게 ‘눈으로만’ 읽던 학생에게는 생각의 속도에 맞춰 제대로 읽게 하는 방법이 된다. “선생님, 혼자 읽으면 재미없는데, 수업시간에 함께 읽으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책이라면 담쌓고 사는 어느 학생의 말이다. 경험상, 혼자 읽기를 싫어하는 학생들도 함께 읽으면 엄청 좋아한다. 문해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글자의 해독에 얽매여 책의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반면 교사와 친구들이 뜻을 살려 소리 내어 읽어주면 문자에 의미와 맥락이 덧입혀져 이해가 열리고, 그때 비로소 재미가 생긴다. 이 과정이 곧 학습 참여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라고 생각된다. 함께 읽기는 의미를 공동으로 구성하는 수업전략이며, 재미를 통해 읽기-토론-쓰기의 선순환을 여는 출발점이 된다. 학생 수만큼 책을 준비하고, 합창독, 에코 리딩, 역할 읽기, 짝 읽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리 내어 읽기를 할 수 있다. 필자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눈치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눈치 읽기이다. 기본은 한 페이지씩 읽기인데, 교사와 학생이 한 페이지씩 번갈아 읽되, 학생들은 누구라도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 읽을 수 있다. 읽기 유창성이 부족한 친구들도 한 번은 꼭 참여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에 글밥이 좀 적은 페이지를 골라 읽는 것을 볼 수 있다. 읽기에 참여는 하되 페이지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부담은 줄여주는 방식이다. 토론으로 나의 관점 정하기 5학년 2학기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학습한 토론의 순서와 방법을 토대로 하되, 절차를 조금 단순하게 변형하여 진행하였다. 토론의 목적이 주제에 대한 자신의 관점 형성이기 때문에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4과 Pro-con 토론 방법을 적용하여 찬성과 반대 양쪽 입장을 모두 경험하도록 하였다. 두 입장에서 토론을 경험한 뒤 최종 관점을 정하도록 하면, 논점을 다각도로 검토하게 되어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함께 읽은 책 담임 선생님은 AI라는 책을 토대로 인간 선생님과 인공지능 선생님의 특징을 비교해 보았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능력과 자질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다. 다음의 사진은 각각 작년(왼쪽)과 올해(오른쪽) 판서 내용이다. 학생들이 어떤 선생님은 원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토론을 하기 위해 4인 1조로 모둠을 편성하고, 모둠 내에서 2명씩 A팀·B팀으로 나눈다. 1차 토론에서는 각 모둠의 A팀이 찬성, B팀이 반대 입장을 맡는다. 2차 토론에서는 입장을 바꾸어 A팀이 반대, B팀이 찬성으로 하되 각 모둠의 A팀은 그대로 앉아 있고, B팀을 +1팀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조합을 구성한다. 같은 모둠에서 입장만 바꾸면 1차 토론의 논거가 반복되어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을 바꿔 교차 토론을 진행하면 논거의 다양성과 상호 검증이 강화된다. 토론의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1차 토론에 앞서 모둠 내 같은 팀 2명이 입론을 공동 작성한다. 서로 협력하여 근거를 마련하고, 뒷받침 내용을 작성한다. 이 과정은 논설문의 쓰기로 직결된다. 1차 토론을 마치고 2차 토론을 하기 전에도 입장을 바꾸어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나 이때는 1차 토론에서 상대 입장을 직접 주장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예상 반론을 더 정확히 파악하고, 취약한 근거를 교체·보강할 수 있다. 그 결과 입론의 질이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상대방 입장에 대한 반론 내용이 포함된다. 이렇게 1·2차 토론을 모두 거친 뒤 주제에 대한 최종 입장을 정하고 논설문을 쓰도록 하면, 자신의 입장뿐 아니라 반대 입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훨씬 설득력 있고 균형 잡힌 논설문을 작성할 수 있다. 나아가 서론·본론·결론의 구조 속에 예상 반론과 그에 대한 대응이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논증의 깊이가 한층 강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토론의 결과를 논설문의 형식에 담기 이제 단원의 최종 목표인 논설문 쓰기를 할 단계이다. 먼저 쓰기의 전 과정에서 기준이 될 평가기준표를 학생들에게 공유하고 함께 해석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를 토대로 개요를 짠 뒤 초안을 작성하게 한다. 이후 자신의 글을 평가기준표에 비추어 점검하고, 고쳐 쓰도록 한다. 이렇게 완성된 글은 친구와의 상호평가, 교사 평가와 피드백 과정을 거치며 점차 완성도를 높여갈 수 있다. 과거에 필자가 논설문의 형식과 구조를 중심으로 수업을 운영했을 때, 학생들의 결과물은 개별 배경지식과 자료 수집 역량에 따라 편차가 컸다. ‘모든 학생이 최소성취기준에 도달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여러 시도와 성찰을 거쳤고, 그 결과 독서와 토론을 글쓰기와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공통 텍스트로 배경지식을 확보하고 토론으로 논거를 검증한 뒤 쓰기로 전환하자, 글의 수준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되었고 특히 낮은 성취 수준의 학생들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은 수업이 모두 끝났을 때 내게 울림을 준 학생들의 말이다. “선생님, 논설문 쓰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선생님, 제가 쓴 논설문을 교육부 장관에게 보내기 전에 복사해 줄 수 있어요?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무엇을 배우고 얼마나 성장했는가? 마지막 차시의 성찰은 이번 단원의 완결이자 다음 배움의 출발선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이 자신의 변화와 배움을 자기 언어로 요약하고, 그 의미를 삶과 다음 글쓰기에 어떻게 전이할지를 스스로 계획하는 과정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강조하는 학생 주도성의 핵심이다. 아래와 같은 성찰 문항과 배움 문장 정리를 통해 학습 내용을 메타인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별 다음 목표를 설정하도록 했다. 교사는 이를 근거로 학생에게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하고 수업을 개선하는 데 활용하게 된다. • 논설문을 배우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은? (무엇을 알게 되었나요? 무엇을 더 잘하게 되었나요?) • 좀 더 노력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배운 것을 활용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이번 논설문 쓰기 단원에서 떠오르는 배움의 키워드 2~3개를 써보세요. • 이 키워드를 활용해서, 이번 단원의 배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봅시다.
AI 콜라주 시 창작하기란? ‘콜라주’란 종이·사진·천 등 다양한 재료를 조합하고 붙여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미술 기법이다. ‘콜라주 시’는 이를 시 창작에 접목한 것으로, 서로 다른 출처의 텍스트 조각들을 오려 붙이는 콜라주 기법으로 새로운 의미가 탄생되며 만들어진 시를 말한다. 기존 시의 구절들을 사용하거나, 일상에서 채집한 단어들, 신문 기사나 광고 등 다양한 매체에서 수집한 단어들로 시를 창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창작한 시 구절’을 수집하고 이를 적절히 조합·변형하며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표현을 덧붙이는 방식으로도 하나의 시를 창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성형 인공지능의 결과물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한 기반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진솔하면서도 창의적인 시를 창작하는 것으로 나아가야겠지만, 아이들이 ‘시를 써보자’라는 말을 들을 때 느낄 막막함과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비계(scaffolding)’로서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싶었다. 또한 인공지능이 쓴 시와 인간이 쓴 시를 비교하며 ‘시’란 무엇인지, ‘시를 창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학생들 스스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AI 콜라주 시 창작 수업’을 설계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이나 에듀테크를 수업에 활용할 때는 늘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편이다. 내가 생각한 이 수업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 관련 역량(2015 개정 교육과정): 창의적 사고 역량, 의사소통 역량, 문화 향유 역량, 자기성찰·계발 역량. • 성취기준: [9국05-09] 자신의 가치 있는 경험을 개성적인 발상과 표현으로 형상화한다. ① 인공지능이 쓴 시와 사람이 쓴 시를 비교하며, ‘문학’의 한 갈래인 ‘시’의 특징을 이해하고 시를 보는 안목과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조건을 파악한다. ② 인공지능과 협업하며 AI 콜라주 시를 완성하고, 시 창작의 자신감과 언어적 감수성, 시 창작 능력을 기른다. ③ 인공지능을 창의적 글쓰기 도구로 활용하는 능력을 기르고, 인공지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삼는 태도를 기른다. [PART VIEW] AI-콜라주 시 창작 수업의 모습 AI 콜라주 시 창작 수업은 이전 차시에 김소월의 ‘먼 후일’, 이형기의 ‘낙화’ 등 교과서 속의 시를 살펴보고 사랑·이별·성장에 대해 성찰하며 운율·반어·역설 등의 표현법을 배운 후에 진행한 수업이다. 차시별 활동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 활동 중 ③에서 인공지능이 쓴 시와 사람이 쓴 시를 아이들에게 제시하고 무엇이 누가 쓴 시인 것 같은지 질문을 던지면,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대부분 잘 구분해 낸다. 그렇게 구분한 근거가 무엇인지 묻다 보면, ‘좋은 시’가 가진 특징이 무엇인지, 우리는 왜 시를 읽고 쓰는지 등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확산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쓴 시는 (프롬프트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표현이 화려하고 수사적이지만, 상황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 반면 사람이 쓴 시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드러난다. 또한 인공지능이 쓴 시의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주는 반면, 사람이 쓴 시의 표현은 신선하고 개성적인 것이 많다. 주절주절 길게 설명을 늘어놓는 시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주는 시를 비교하는 것도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을 잡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아이들은 ‘시’라는 것이 우리 ‘삶’에서 탄생하는 것이며, ‘잘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며, 있어 보이는 표현을 화려하게 늘어놓는 것보다 불필요한 말은 덜어내고 진심을 담은 나만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될 것이다, ④에서 아이들의 프롬프트 작성을 돕는 예시는 다음과 같다. 또한 ⑤에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던질 때마다 생성된 결과물이 다름을 확인하며 인공지능의 특성을 이해하고, 다양한 구절을 재료 삼아 시를 창작할 수 있도록 의도하였다. 특히 중요한 것은 ⑥처럼 수집한 구절들을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에 맞게 적절히 변형하고, 여기에 나만의 표현을 더 하는 작업을 강조하는 것이다. 수업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통해 ‘표현’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각자의 삶과 진솔한 감정·생각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뮤지컬에서, 인물들은 왜 중간에 갑자기 노래를 할까? 언제 노래를 할까? 맞아. 하고 싶은 말을 노래로 하지. 그러니까 왜 하필 그때 노래를 할까? 무언가가 점점 더 안에서 차올라서 그냥 말로는 안 될 때, 노래를 하게 되는 거야. 선생님이 시는 원래 노래였다고 얘기했었지? 너희가 무언가를 시로 표현할 때도 그런 절실함이 있으면 좋겠어.” 수업 중에 실제 학생이 활동한 예는 다음과 같다. 위 학생은 수학문제를 풀면서 성장한 경험을 시로 표현하였다. AI가 만들어낸 표현을 나름대로 다듬고, 조합하고, 적절한 곳에 배치하고, 행과 연을 나누며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시로 표현하려고 한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이처럼 아이들의 결과물은 패들렛에 공유하며 함께 살펴보고, 댓글로 피드백을 해주었다. AI-콜라주 시 창작 수업의 의미 이러한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다음은 아이들이 당시에 실제로 작성한 수업 후기 일부이다. Q. AI 콜라주 시 창작활동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풍부하고 다양한 표현, 생각하지 못한 단어나 표현·구절 등을 알 수 있다. - 시를 잘 쓰지 못하는 학생도 도움을 받아서 시를 쓸 수 있다. 시 쓰기의 부담감을 줄여준다. 시를 쓸 때 어려운 부분을 보완해 준다. - 나만의 경험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과 시를 어떻게 쓸지 감이 안 잡히는 사람에게 시를 잘 쓸 수 있도록 도와준 점 - AI와 친해질 수 있다. AI의 한계점을 이해할 수 있다. AI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거나 활용해 볼 용기가 생긴다. AI의 불완전한 시를 바탕으로 내가 고쳐서 시를 완성함으로써 문장 완성도와 글 수정 능력을 향상한다. Q. AI 콜라주 시 창작활동의 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어려운 단어, 어른이 쓴 것 같은 어려운 표현들이 있다. 표현이 단조롭고 한정적이다. -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난다. AI가 쓴 시 같다. 나의 정확한 느낌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 시에서 개성이나 그 순간의 느낌이 풍부하게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다. - 다른 사람의 시를 학습하여 나에게 알려주는 AI니깐 다른 사람의 구절을 따라 해서 쓴 시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AI에게 내 생각을 알려주면 바로 어느 구절을 알려주니깐 내가 직접 고민하여 쓴 시가 아니라는 게 단점이라 생각한다. - AI에 과의존하고, 나의 생각과 경험이 사라질 수 있다. - 시를 쓸 때마다 AI를 계속 사용하다가 나중에 AI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시를 쓰지 못할 것 같다. Q. 활동을 통해 느낀 점, 배운 점, '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 성장한 것을 써 보세요. - 전에는 친구와 헤어지는 것이 정말 싫고 힘들었지만, 한 편의 시를 쓰니 내 내면 속의 마음과 주변 환경 그리고 떠난 친구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가 힘들 때 시를 쓰면 마음이 가라앉고 나에게 편안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AI 콜라주 시 창작활동을 통해 '시'에는 감정·정서·생동감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역설적인 표현을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과거에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 안 좋은 기억들과 경험을 글로 펼쳐냄으로써 힐링이 되는 것 같아서 이 창작활동이 좋았다. - 시는 역시 진짜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AI가 쓴 시는 표현이 정말 좋아 보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진짜 감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AI에게 도움을 받아 시를 쓰니 좋은 표현을 쓰는 데에 도움도 많이 받고 더 쉽게 시를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 AI가 쓴 시가 멋있고 감탄할 만한데 뭔가 2% 아쉽다. 하지만 내가 그 2%를 채워서 시를 만드는 게 이번 수행평가 연습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 가끔은 AI에게 주제를 추천받거나 막히는 부분을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AI가 쓴 글을 비슷하게 몇 글자 바꾼 시를 자신의 시라 하면 안 될 것 같다. ( AI 윤리 인식) 이와 같은 의견을 종합해 볼 때, AI 콜라주 시 창작활동은 AI의 도움을 받아 창작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표현의 폭을 넓히는 장점이 있었다. AI가 제공하는 어휘와 문장을 통해 시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도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쉽게 표현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표현력과 시 창작에 대한 자신감을 기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학생들은 AI가 만든 시가 인간의 진정한 감성과 개성을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한다는 한계점을 인식했다. 또한 AI에 과의존하는 것의 위험성과 저작권 등의 윤리 문제도 인지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닌, 인간의 창작을 돕는 협력자이자 보조 수단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시의 진정한 의미는 결국 인간의 고민과 손길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AI 콜라주 시 창작수업 이후에는 아이들이 AI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시를 창작한 뒤 어울리는 음악과 함께 낭송하는 수행평가를 하였다. 이때 아이들이 창작한 시와 AI 콜라주 시 작품을 비교하면 아이들의 성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우리의 삶은 이미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경계가 무너지고 뒤섞이는 장이 되었다. 디지털기기를 제외한 ‘나’는 정말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내 삶에서 디지털만 남기고 아날로그를 모두 배제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수업이 우리의 삶과 늘 연결되어야 한다고 할 때, 요즘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대립적으로 구분하는 관점을 넘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있다. AI 콜라주 시 수업에서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방대한 언어 자원은 학생들에게 표현의 재료와 영감을 제공하는 디지털적 도구가 되었고, 동시에 이를 자신의 경험과 감정으로 변형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은 아날로그적 성찰과 인간적 손길의 가치를 일깨웠다. 교사는 이 사이의 균형을 잡으며 학습자들이 기술에 너무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언어를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조력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결국 AI 시대의 문학수업은 삶의 형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문학 그 자체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에게 문학수업이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어서, 삶을 성찰하며 언어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길이 되기를 바란다. 수업 자료 나눔 •‘AI 콜라주 시 창작하기’ 수업 자료 QR 코드 •더 자세한 수업 후기: 네이버 블로그 ‘넉넉하게 다정하게’ (https://blog.naver.com/with-u/223599803878)
오늘 점심시간 학교도서관 일일 토론주제는 일류의 조건(사이토 마카시)의 내용 중 ‘동경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가’였다. 학생에게 책을 소개하며 질문을 건넸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뭐야? 왜 그것을 하고 싶었니? 그럼 동경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니?” 어려운 주제였던 한 학생은 “왜 나한테만 어려운 걸 물어요?”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는 중학생들의 현저하게 낮은 독서량 때문이다. 선생님이 직접 책을 읽고 소개하며 학생들에게 다가감으로써 독서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작은 유인책인 셈이다. 책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동기와 반응을 관찰하며 어떻게 하면 독서를 동경하는 마음을 일게 할지 고민이 깊다. 새 학기마다 독서교육과 정보활용교육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할지 심사숙고한다. 2024년에는 창의적체험활동시간 외에 2·3학년 국어 수행평가와 자유학기 협력수업으로 2개 반 독서협력수업을 병행했다. 하지만 독서교육과 정보활용교육 모두 깊이를 갖추지 못한 채 진행되었고, 잦은 수업으로 도서관 운영이 소홀해져 운영방식의 재조정이 필요했다. 이에 2025년에는 1학년 자유학기 주제선택 활동으로 단독 주제독서를 3월부터 7월까지 총 34차시, 매주 2시간씩 주제탐구 독서수업을 진행하였다. 독서를 통한 사회정서역량 강화, 아들러 심리학과 만나다 깊이 있는 독서수업은 사회정서 독서프로그램으로 사회정서교육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접목하여 운영되었다. 학생들은 자기 인식과 감정 조절, 대인관계 형성, 공동체의식, 마음건강을 주제로 한 활동에 참여했으며, 이를 통해 청소년기의 열등감을 긍정적으로 전환하고 협력과 배려의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사회정서 독서프로그램은 △1단계 관계 형성과 소개 △2단계 감정을 통한 자기 인식과 자기 통제 △3단계 대인관계 소통과 대처법 △4단계 공동체 가치 이해와 역량 강화 △5단계 마음건강 관리 등 5단계로 구성되었다. [PART VIEW] ● 1단계 _ 관계 형성과 아들러 심리학 소개(1~5차시) 1단계(1~5차시) 관계 형성에서는 독서의 이해, 자료선택과 검색을 포함한 정보활용교육,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소개가 이루어졌다. 또한 팀별 네임텐트 제작과 책 표지를 활용한 자기소개, 팀별 베스트 그림책 및 책 제목 낱자를 찾아라 등의 활동이 진행되며 학생들의 참여와 상호 이해를 높였다. ● 2단계 _ 자기 인식(6~10차시)과 자기 조절(11~15차시) 2단계에서는 사회정서 영역 중 자기 인식(6~10차시)과 자기 조절(11~15차시)을 주제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자기 인식 수업에서는 율의 시선(김민서)을 스토리텔링 한 뒤, 독서활동으로 주제별 그림책 40권을 돌아가며 읽고 그림책을 선택한 이유와 감정을 표현하였으며, 이어 등장인물의 감정을 바탕으로 가사를 작곡하고 음악을 완성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또한 자기 조절 수업에서는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이꽃님)을 스토리텔링 한 뒤, 독후활동으로 뒷이야기 개작하기와 조별 숏츠 또는 짧은 동영상을 제작했다. 모든 조는 ‘해록이가 나타났다’라는 동일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며,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팀은 챗GPT를 활용해 이미지를 제작하도록 지원했다. ● 3단계 _ 대인관계 소통과 대처법(16~22차시) 3단계(16~22차시)에서는 대인관계 인식과 관계 관리를 주제로 조별과제 하다가 폭발하지 않는 법(윤미영)을 읽고 조별 웹툰 제작 활동을 진행했다. ● 4단계 _ 공동체 가치 이해와 역량 강화(23~28차시) 4단계(23~28차시)에서는 순례주택(유은실)을 읽고 이웃과 공동체의 소중함을 탐구하며 연극 대본 작성과 발표를 했다. ● 5단계 _ 마음건강 인식 및 관리(29~34차시) 5단계(29~34차시)에서는 마음건강을 인식하고 관리하기 위해 나는 나를 돌아봅니다(박진영)를 읽고 삶의 용기를 주제로 한 수업을 진행했고,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독서를 주제로 미니 책 만들기를 하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관계·공동체·마음건강을 책으로 배우다 사회정서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한 뒤 학생들의 변화는 뚜렷했다. 도서관은 학생들의 방앗간이 되었으며, 독서량 증가와 함께 책 추천을 심심찮게 요청하고 있다. 독서교육은 교과학습을 넘어 사회정서역량을 기르는 특별한 환경을 제공하며, 학교도서관은 지식의 장을 넘어 학생들에게 삶의 힘을 길러주는 배움터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깊이 있는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의 성장을 체감할 수 있었기에 큰 보람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만나는 모든 학생이 스스로를 축복하며 꽃봉오리로 머무르지 않고, 활짝 피어나는 삶의 주체로 살아가길 바란다. 독서는 학생이 자기 마음을 인식하고 타인과 나누며 건강한 청소년으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학생들이 독서를 통해 타인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원 안에서 함께 어울리고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복잡한 기능을 가진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사용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야 한다. 그런데 자동차 사용 설명서(메뉴얼)마저 읽지 않고 대충 사용하다가 고장 난 후에야 사용 시 유의점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차를 바꿀 때야 그렇게 좋은 기능이 있었는지를 알기도 한다.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대충 사용하면 위험하고 손실도 크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은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그냥 사용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몸과 마음 사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느 제품과도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한 것이 인간의 몸과 마음이다. 몸과 마음의 작동 원리, 즉 ‘인간 사용 설명서’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삶이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학생을 교육하는 교사들에게는 ‘인간 사용 설명서’에 대한 대한 이해가 더욱더 중요할 것 같다. 소설가 김홍신은 인생 사용 설명서에서 좋아하던 담배를 끊은 자신이 “참 독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독극물을 삼키는 사람이 독하지, 어찌 버린 사람이 독하겠습니까?” 그런데 실은 우리 몸과 마음은 독이 되는 줄 알면서도 거절하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법구경은 우리가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전쟁터에서 백만 적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한 사람을 이긴 사람이 가장 위대한 승리자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 성의(盛意)편에 나오는 군자의 덕목 ‘신독(愼獨)’, 즉 혼자 있을 때에도 삼가고 조심하라는 가르침 또한 자기 통제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 일화는 결국 유혹에 지고 마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을 묘사하고 있다. 철학자들도 유사한 주장을 한다. 파스칼(Pascal, 1623~1662)은 “불행의 원인은 늘 자기 자신이 만든다”는 말을 하였다. 각종 질병과 유혹에 쉽게 무너지고 마는 하자투성이인 몸과 마음을 가지고, 이를 극복하며 소위 바른길로 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 슬프게 느껴진다. 기왕 만들 것이면 제대로 만들지 왜 이렇게 불완전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초월적 존재가 인간을 설계하고 만들었더라면 이런 모습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원인과 극복 대안을 탐색하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있다. 인간이 어떤 하자를 가지고 있고, 하자가 생긴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지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진화의 관점으로만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상당한 설득력도 가지고 있다. 피즈와 피즈(Pease Pease, 2001)의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에 보면 “인류가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인간 행동의 이상과 개념이 유전적 현실보다 1백만 년이나 앞서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진화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살아가는 환경과 문화는 빨리 변화하는 탓에 1백만 년 전의 유전자를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게 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의 상황에 부합하는 사고와 행동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대학 심리학자 헤이트(Haidt, 2006)는 마음을 자기 뜻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인간을 불교의 코끼리와 기수 비유를 차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인간에게 장착된 알고리즘, 즉 감성을 포함한 본능은 코끼리이고, 객관화 능력을 포함한 이성은 기수이다. 코끼리 위에 올라탄 기수가 고삐를 쥐고 있으므로 리더로 보이지만, 기수가 코끼리에 비해 너무 작아 코끼리와 기수가 의견이 불일치할 때면 언제나 코끼리가 이긴다는 것이다. 윌슨(Wilson, 2007)은 나는 내가 낯설다에서 우리의 생각과 달리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너무나 잘 모르고 있다며 그 실상과 그렇게나 모르는 이유, 그리고 나아가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즉 ‘자기 지식’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개리 마커스(Gary Marcus, 2006)는 클루지(Kluge)에서 인간 마음이라는 것이 ‘우연히 혹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탓에 하자가 많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인천국제공항은 미국 뉴욕 JFK 국제공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신기술 체계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인천공항과 달리 1948년에 만들어진 JFK 공항은 과거의 기술 시스템에 맞춰 건설되었다. 계속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폐쇄하지 못하고 기존 시스템 위에 새로운 기술 시스템을 덧붙여 사용하고 있다. 이런 공항은 첨단 기술에 맞춰 설계된 공항에 비해서는 모든 면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생명체도 끊임없이 생존하고 번식해야 하기 때문에 작동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진화가 옛 기술에 새로운 기술을 덧붙이는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 결과는 쓸만하지만, 비효율적이고 하자가 많은 ‘클루지’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의 몸과 생각의 원천인 뇌는 잘 아는 것처럼 진화를 통해 만들어져 왔다. 진화는 이전 진화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척추가 현재 모습처럼 생긴 까닭은 최선의 해결책이어서가 아니라 이미 있던 것(네발짐승의 척추)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은 요통에 시달리고 있다. 인간 몸이 ‘닥치는 대로 체계가 구성된 유일한 이유는 이전에 있던 것을 기초로 그다음 진화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를 좌우하는 뇌도 기존의 뇌에 덧붙이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인간의 중뇌는 아주 오래된 후뇌 위에 말 그대로 얹혀 있으며, 이 두 개의 뇌 위에 다시 전뇌가 얹혀 있다. (…중략…) 가장 마지막에 생긴 부위인 전뇌는 언어나 의사결정 같은 일들을 통제하는데, 이것은 종종 더 오래된 체계들에 의존한다.” 아예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옛 체계 위에 새 체계가 얹히는 기술 누진 중첩(progressive overlay of technologies) 방식으로 만들어질 경우, 최종 산물은 그런대로 작동은 하지만, 하자가 많은 조립품인 ‘클루지(kluge)’가 되기 십상이다. 인간은 완결체가 아닌 덧대어 만들어진 불완전한 클루지라는 비유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하나는 과거를 재구성하고 인간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설계자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불완전한 클루지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인간 본성을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클루지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 단서를 줄 수 있다. “우리가 진화해 온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솔직히 들여다볼 때, 비로소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고귀한 우리의 마음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개리 마커스 이야기 중에 교육자인 나에게 와닿는 것은 학교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연적으로 훌륭한 사고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회의적이고 균형 잡힌 태도를 타고났다면 학교는 필요 없을 것이다. (…중략…) 인간이라는 종은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선천적으로 속기 쉬운 존재다.” AI 시대 학교와 교사의 필요성 및 역할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것 같다.
해외에서 한글을 가르친다는 일은 단순히 문자를 익히는 교육을 넘어, 아이들의 정체성과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필자가 호주에 처음 도착한 것은 38년 전인 1987년 9월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호주 사람들에게 한국은 지구 어디쯤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매우 낯선 나라였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 중계를 보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나운서가 가짜 명품 시계를 가리키며 “한국 이태원에 가면 햄버거값으로 롤렉스를 살 수 있다”고 조롱하던 모습은 한국의 위상이 얼마나 낮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시절에는 한국의 존재와 가치를 알리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K-문화의 확산과 함께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호주 현지 학생들까지 자발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글학교를 찾는 시대가 되었다. 해외 한글학교에서는 늘 동포 자녀들의 정체성 혼란과 아이덴티티 형성이라는 문제와 마주한다. 가정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거나, 한국 문화와 접할 기회가 제한적인 아이들은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기 쉽다. 한글 수업은 이들에게 자신이 한국인임을 확인하고, 뿌리를 느끼며 자긍심을 심어주는 소중한 통로다. 글자를 배우고 문장을 읽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단순한 학습을 넘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조금씩 키워 간다. 뿌리를 다시 확인하게 해주는 소중한 터전 사실 나의 젊은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대 초반, 머나먼 미지의 땅에 첫 발을 디딘 나는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렀다. 언어도, 문화도 달라 외롭고 힘들었던 그때,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작은 위로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런 내 앞에 우연처럼 다가온 것이 바로 한글학교 교사 모집 광고였다. 집에서 1시간 반이나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마음은 주저하지 않았다. 운전이 서툰 나를 대신해 남편이 매주 토요일마다 출퇴근을 도와주었고, 그조차도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낯선 땅에서의 이민 생활은 설렘과 두려움 속에서 시작되었다. 첫 출근을 앞두고는 며칠 밤을 고민하며 보냈다. 혹시 아이들이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다면 영어로 설명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한글학교를 재미있게 다닐까…. 수없이 시뮬레이션하며 준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마침내 교실 문을 열던 순간, 나만 바라보던 아이들의 또렷한 눈망울 속에서 희망이 싹텄다. “아, 이 길을 통해 나도 무언가를 찾아갈 수 있겠구나.” 그렇게 시작된 나의 한글학교 교사생활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었다. 매주 주말이면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한국말로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교실은 아이들에게도, 또 낯선 땅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던 나에게도 특별한 안식처가 되었다.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며 웃음을 터뜨리고, 집에서 들은 한국 이야기를 쏟아낼 때마다 나 역시 고향과 이어져 있다는 따뜻한 확신을 얻었다.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장이었고, 나에게는 뿌리를 다시 확인하게 해주는 소중한 터전이었다. 그렇게 이민의 시작과 함께 열었던 교실은 어느새 내 삶의 중심이 되었고, 주말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나요?” 몇 년 전, 한국에서 한 학생의 조부모님이 학교를 찾아와 “선생님 덕분에 손자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스승의 날이면 또박또박 쓴 감사 카드를 건네는 아이들, 졸업 후 자신의 아이를 한글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찾아오는 제자들을 볼 때마다, 37년간 걸어온 교사로서의 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한글교육의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는, 가르친 아이들이 성장하여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나처럼 한글 선생님이 되어 동료로 만나고, 또 다른 아이는 자신의 분야에서 당당히 일하며 자신감을 가진 성인이 된다. 아이들의 작은 성취가 선생님에게는 큰 힘이 되고, 그들의 눈빛과 웃음 속에서 한글과 한국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025년 5월, 멜버른 코리아 페스티벌은 한국을 알리는 축제의 날이었다. 많은 사람 속에서 뜻밖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나요?” 하고 다가온 이는 다름 아닌 나의 제자였다. 우연히 길에서 제자들을 마주친 적은 많았지만, 경찰관 제자로부터 인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저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그 짧은 한마디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나의 여정도 아이들과 함께 자라왔다. 현재 교장으로 재직 중인 웨이블리 한글학교는 성당 교우 자녀들의 한글교육을 위해 멜버른 한인 성당 공동체에 의해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봉사의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섰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존 토요 한글학교와 더불어 일요 성당 한글학교까지 맡게 되면서, 말 그대로 주말 없는 삶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교재조차 마땅치 않았다. 멜버른에는 한국학 교수가 없었기에 시드니 교수님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직접 그림을 그리고 오려 붙이며 교재를 만들기도 했다. 단순한 수업 준비를 넘어, 해외 아이들에게 이중 언어 교육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때로는 남편이 옆에서 퉁명스럽게 “그만 좀 해라”라고 말했지만, 이미 내 마음속에는 한글 전도사로서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에 그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요즘은 교재가 넘쳐나고 인터넷이 발달해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이 “수업 준비가 힘들다”는 불만을 토로할 때면, 나도 모르게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자칫 꼰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나는 오히려 교육의 흐름과 트렌드를 배우려 노력한다. 새로운 연수 기회가 있으면 빠짐없이 참여하고, 후배 교사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아이들에게 더 적합한 수업 방식을 고민한다. 한글을 보급하며 깨달은 또 하나의 사실은, 단순히 글자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배움 속에 재미와 의미가 담겨야 아이들이 학교를 좋아하고, 또 선생님을 좋아해야 배움이 이어진다. 그런 고민 끝에 나는 음악 전공을 살려 어린이 합창반을 만들었다. 그 작은 시작은 이제 멜버른에서 10년째 이어지는 유일한 어린이 합창단으로 성장했다. 한국을 알리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공연으로 이어졌고, 나는 10년 전부터 ‘멜번한인음악인협회장’을 맡아 차세대 음악회를 열어 왔다. 그 무대에서 우리 웨이블리 어린이 합창단이 부르는 ‘아리랑’은 이제 호주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노래가 되어, 함께 따라 부르는 장면이 펼쳐지곤 한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차세대 음악회, 코리아페스티벌 같은 행사 무대를 통해 호주 사회 속에서 한인 공동체와 현지인을 잇는 다리가 되고, 불우 이웃 돕기, 아픈 아이들을 위한 모금, 우크라이나 전쟁고아 지원, 한인회 발전기금 마련, 평화의 소녀상 프로젝트 등에도 참여하며 자긍심을 키워 간다. 특히 전쟁고아 돕기 음악회를 준비할 때,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자신들의 노래가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했다. 한글날을 맞이하며 되돌아본 37년이라는 시간 아이들이 노래 가사로 전하는 울림은 그 어떤 한글교육보다도 진정성이 깊다. 아이들은 스스로 한글의 아름다움과 과학성을 느끼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한다. 어느새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세종대왕을 꼽거나, 한국어 가사를 외국 친구에게 설명하며 공유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다. 한글을 배우며 얻은 자신감을 선한 영향력으로 확장하는 경험이 곧 합창단 활동의 가장 큰 의미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개인의 경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매년 영사관·교육원·대학교 그리고 각 한글학 교사들이 모여 한글 보급을 주제로 포럼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케이팝과 드라마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K-컬처의 영향력을 한글교육과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해서도 활발히 논의하고 있다. 한글학교를 운영하며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학생들의 수준 차이, 학부모와의 소통은 늘 숙제였다. 요즘은 특히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한글 발달이 새로운 고민거리다. 일주일에 하루 수업만으로는 아이들이 충분히 성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학부모 성인반이다. 부모가 함께 한글을 배우고, 집에서 아이들과 오늘 배운 문장이나 단어를 함께 써보는 작은 실천이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심을 보여줄 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한글을 생활 속에서 사용하게 되고,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도 깊어진다. 올해 재외동포청에서 열린 한글학교 교사연수회에 참여하며, 다문화학교를 방문하고 다른 나라 교사들과 경험을 나눈 것도 큰 의미가 있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같은 고민을 공유하며,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순수한 열정과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수회에서 초청 교사 대표로 인사말을 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는 말했다. “우리 교사들의 눈빛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 교사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 반드시 기억해 주십시오.” 한글날을 맞이하며, 37년이라는 시간을 돌이켜본다. 낯선 호주 땅에서 처음 한글을 가르치던 날의 설렘과 두려움,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서 느낀 작은 희망, 합창단 무대에서 처음으로 감정을 담아 노래하던 어린이들의 떨리는 목소리…. 모든 순간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한글과 함께 살아온 나 자신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한글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생각을 전하게 하며, 한국과 연결되는 끈이 되어 주는 살아있는 힘, 내가 그 끈을 잡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자신의 뿌리를 느끼고 세상 속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 함께 웃고 함께 감동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한글을 사랑하며 살아온 이유다. 이제 나는 교사로서, 또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다짐한다. 앞으로도 아이들 곁에서 한글을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가르치며, 그 힘을 함께 나누겠다. 한글이 심어준 작은 씨앗이 아이들의 마음에서 자라고, 언젠가 그들이 만드는 세상 속에서 더 큰 꽃으로 피어나길 바란다.
현대사회는 지식과 정보를 활용하는 글로벌 무한 경쟁을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많은 국가는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기 위한 인재 양성 교육에 지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선진국들은 우수 인재 육성을 위하여 ‘수월성’ 제고를 토대로 하는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수월성 교육은 교육 수요자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함으로써 개인의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키고, 국가는 이러한 교육으로 사회·문화·경제·복지 등의 다양한 혜택을 다수가 누릴 수 있게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독일의 ‘모든 학생을’ 지향하는 수월성 교육 사례인 ‘공동 프로젝트 ‘(학업)성취가 학교를 만든다’(Gemeinsame Initiative ‘Leistung Macht Schule’(이하 LemaS)’를 소개하고, 독일의 보편적 수월성 교육정책과 그 실천 사례가 우리나라 교육의 수월성 제고에 시사하는 바를 살펴보고자 한다. 독일의 보편적 수월성 제고 교육개혁 프로그램 독일은 2001년 수월성 교육의 방향을 영재 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기회균등의 원칙에 기초한 교육환경을 마련하고, 교육은 학생들의 소질과 능력을 최대한 발현시켜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시한 바 있다(박성익, 2015, 61). 소수의 영재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평범하게 보이는 아동이라도 스스로의 노력과 외부의 지원 하에서 영재(소질 향상) 지원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포용 교육’이 독일교육의 철학이자 이념인 것이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독일의 16개 주의 문화부장관협의회(Kultusministerkonferenz, 이하 KMK로 약칭)와 독일연방교육·연구부(Bundesministerium für Bildung und Forschung, 이하 BMBF 약칭)는 2016년에 학업성취 육성계획인 LemaS를 최종 합의하였다(BMBF KMK, 2016). LemaS 프로젝트는 ‘모든 학생에게 최적의 학습환경과 교육적 성공을 보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편적 수월성 제고 교육개혁 프로그램으로 초·중·고등학생(1학년~10학년)의 학업성취 향상을 위해 독일 정부가 대학 연구자들 및 학교 실무자들이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는 독일 연방 차원의 교육사업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8년도에 독일 전역 16개 주에서 총 10년 동안 5년 단위의 2단계 과정으로 시작되었으며, 2025년도 현재 2단계가 진행 중이다. Lemas 1단계(2018년~2023년 6월)에서는 ‘영재 학생’뿐만 아니라, ‘개별적 맞춤 지원을 통해 잠재 능력을 펼칠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지원하는 방안을 대규모의 파일럿 프로그램 형식으로 연구하였다. 실질적으로 모든 학생이 개별적 진단을 통해 가장 최적의 맞춤형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모듈식 구조인 LemaS에는 ‘성취 향상 및 협력적 네트워크망 구축에 중점을 둔 학교 모형 개발’과 ‘정규수업에서 도전 및 지원’이라는 수업모형 개발 등 두 개의 필수 핵심 모듈이 주축을 이룬다. 1단계에 참여한 300개의 모든 학교가 이 두 핵심 모델에 필수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정규수업에서의 도전 및 지원’ 모듈은 교과목과 직접 연관성이 있는 연구과제로, 대상 교과목은 수학과 같은 자연 과학 등으로 이루어진 STEM 교과목 및 독일어(작문과 논증의 언어능력)와 외국어(영어)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에 더하여 사회·정서적 잠재력과 예술·창의적 잠재력, 체육 잠재력도 연구 대상 영역이다. 핵심 모듈 2 ‘정규수업에서의 도전 및 지원’의 구체적인 연구과제를 도표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Benölken et al. 2019, 오혜림. 2020, 재인용). 핵심 연구 모듈 2: 하위 연구과제 4 ~ 하위 연구과제 연구과제 4~6에서는 성취에 강한 학생 및 성취가 기대에 못 미치는 학생에게 자기주도적 학습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개별적 맞춤 진단과 지원 도구’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특히 연구과제 4는 초등학생(1학년∼4학년)과 중학생(5학년∼8학년)의 흥미·소질·학습성취능력을 진단·검토하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교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개별 맞춤형 진단 도구를 개발하기 위하여 진단 영역과 학습주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였으며, 검토 후 선택된 영역과 학습주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일련의 평가과정이 포함된 결과를 문서화하였다. 연구과제 4에서 학생들의 개별적인 지원 필요를 확인하였다면, 연구과제 5는 이를 토대로 한 집중 훈련 활동 단계로 분류될 수 있다. 이 과제는 정규수업에 필수적인 학습자 동기부여 방식과 초인지 학습능력 촉진 전략을 개발하였다. 연구과제 6은 동기 결함, 자기조절, 신체 또는 정서적 문제, 이민자 배경 등의 이유로 사회적 제약을 받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위와 동일하게 진단 및 지원 전략을 검증하였다. 연구과제 21에서는 기존의 학내 멘토링시스템을 최적화하고 전문화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무엇보다도 특정 과목에 학업성취가 강한 영재들에게 전문가들이 집중 1:1 멘토링을 제공하였다. 이 과제에서도 일차적으로 집중 진단을 통해 개별 학생을 위한 학습 경로를 계획하여 실행하고, 전문가 집단이 적어도 1년 이상에 걸쳐 다각도로 조정을 하면서 이 과정에 관여하였다. 특히 ‘사이버멘토플러스 CyberMentor Plus’ 프로그램은 STEM 과목에서 우수한 학업성취를 보이는 여학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5학년부터 12학년 여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내에서 교사 지도하에 ‘STEM 방과후활동’과 더불어 STEM 분야(학계 혹은 경제활동)에서 현재 활동 중이거나, 이 분야에 재학 중인 여대생 멘토가 짝을 이루어 온라인 플랫폼에서 공동의 STEM 프로젝트 활동을 수행하였다. LemaS 2단계(2023년 7월~ 2027년)는 1단계의 결과를 학교 현장에 확산해서 적용하는 단계이며, 1단계에서 성공적 검증 및 평가가 이루어진 구상과 전략이 독일 전 연방에서 광범위하게 확산 적용 중이다. 특히 1단계에 참여하였던 학교 중 적어도 하나의 학교가 주축이 되어서 1단계에 참여하지 않은 최대 10개의 학교가 하나의 학교 네트워크망으로 구성되었다. 현재 100개의 학교네트워크망에 독일 전역에서 대략 850여 개의 초·중·고등학교가 2단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기관인 ‘LemaS 연구연합’은 다학제적 프로젝트 집단이다. 이 연구연합은 심리학 분야(심리학적 진단과 평가 연구, 중재, 연구 방법), 교과 교육 분야(수학·화학·생물·정보학 등의 교과 과목), 교육학 분야(인류학과 교육이론, 교육연구, 교육학적 진단, 학교 지도, 학교 발달, 학교 연계망 구성), 교육공학 분야(수업 연구 및 수업 개발, 학교 연구, 교육제도에서 능률 연구)의 교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LemaS의 다양한 연구 과제는 각각 설정한 구체적 목표는 다를지라도 학교와 수업에서 (잠재적으로) 성취가 강한 학생을 육성하기 위한 적응 전략, 구상, 방안 및 자료(LemaS-산물)의 개발과 구현을 목표로 하면서 전반적으로 유사한 접근 방법을 취하였다. 우선 ‘Lemas 연구연합’은 개개 학교와의 만남과 교류를 통해 개개 학교의 출발 상황을 조사하고 현장의 요구를 정밀 분석하면서 개별 학교에 적합한 맞춤형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였다. 학교 현황의 파악 및 진단 후에는 전문가 집단의 투입과 지도를 통해 교사의 재교육과 전문화 교육을 수행하였다. 이어 진단 도구와 교수 자료를 개발하고 이를 검증하여 최적화 단계를 거치면서 그에 따른 성공 조건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도출된 인식에 기반한 전략풀과 자료풀은 학교 현장에 적용되고 교사의 재교육에 활용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방법론과 자료는 Lemas 2단계에 참여하게 된 학교들에 확산 및 전파되고 있다. 이때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학교의 기존 상황을 최대한 연계하여 각 프로젝트 참여 학교의 필요에 부합하는 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학교의 현황을 면밀히 조사·검토하면서 학계와 학교 현장이 공동으로 협력하여 하위 연구 과제의 고유한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콘셉트를 개발·테스트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최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이러한 독일의 수월성 교육 사례를 통해 다음과 같은 우리나라 교육에의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먼저, 독일은 교육의 수월성과 형평성 가치 달성 정도에 기준한 교육체계의 이분법적인 구분보다는 교육의 형평성 원리에 입각한 ‘모두를 위한 수월성’ 교육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은 모든 학생을 중심으로 교육 대상의 범위를 확장하고, 나아가 심화교육을 정규교육과정에서 대폭 확대 실시하는 등 개별 맞춤식 교육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LemaS의 사이버멘토링 시스템을 벤치마킹해지역 단위별로 일반 중·고등학교를 클러스터화하고 이를 대학과 연계하여 일반 중·고등학교에서 성장하고 있는 우수한 지역 인재들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안은 수도권과 지방의 교육격차를 일정 정도 해소하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독일은 모두를 위한 수월성 교육에서 소외된 교육계층, 특히 이민 배경의 계층을 아우르면서 잠재적 능력을 지닌 대상을 포용하려는 파일럿 연구를 광범위하게 실시하고 있다. 독일은 초·중·고등학교의 아동과 청소년 모두에게 개인별 맞춤 교육이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최적의 교육체계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맞물려 한국 사회에도 이민자가 급증하고 있으므로, 이민 배경 아동 청소년의 잠재 능력을 계발하고 신장시키는 것은 향후 중요한 국가 과제의 하나에 속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당면한 우리나라의 인력 양성 문제를 풀어낼 정책을 구성하는 하나의 축으로 초석을 다질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이름부터 도발적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교육정책의 최전선이자 향후 5년간 교육 판도를 뒤흔들 핵심의제다. 대학입시와 대학 구조개혁은 물론 초·중등교육까지 연쇄적으로 변화를 예고한다. 지방대 몰락을 막고 수도권 쏠림을 완화하며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연구 중심 대학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과연 현장의 저항을 뚫고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여전히 물음표다. 어쨌든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순한 선거용 구호에 그치지 않고 향후 5년간 교육정책의 중심축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학 입시와 대학 개혁은 물론 초·중등교육에도 큰 파장을 예고하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이 구상의 밑그림을 그린 인물은 홍창남 부산대 교수다. 그는 국정기획위원회 사회2분과장을 맡아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설계의 핵심 역할을 했다. 홍 교수는 “대학이 바뀌지 않으면 초·중등교육도 달라질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역대 정부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차례 개혁을 시도했지만, 결국 ‘대학 입시’라는 벽에 막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것이다. “대학이 변해야 초·중등도 변한다” 홍 교수는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이 정책의 핵심을 “교육정책의 무게중심을 고등교육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요약한다. 과거 정부들이 초·중등교육에 집중한 반면, 이번 정부는 대학 혁신을 선행조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실제 정책 아이디어는 김종영 경희대 교수로부터 나왔지만, 국정기획위에서 이를 구체적인 청사진으로 다듬었다. 그렇다고 모든 지방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분리해 지원하는 방식이 논의됐다. 학부과정은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전원 기숙사 제공이나 RC(레지덴셜 칼리지) 운영, 해외 교환학생 프로그램 지원 등을 통해 학생 경험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그러나 진짜 승부처는 대학원이다. 정부는 대학원 중심 특성화를 통해 연구 경쟁력을 키운다는 복안이다. 각 거점국립대는 반도체·인공지능 등 전략 분야 세 곳을 집중 육성하는 모델을 적용한다. 이 가운데 두 곳은 이공계, 나머지 한 곳은 인문·사회계로 배정해 균형을 맞춘다. 사회적 난제 해결이나 글로벌 이슈를 겨냥한 융합 연구가 대상이다. 이렇게 특성화된 대학원과 국책 연구기관을 연계하면 “적어도 특정 분야에서는 서울대 이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지방대 죽이기 아닌 살리기” 정책 발표 직후 가장 많이 제기된 비판은 ‘지방대 죽이기’ 우려였다. 10개 대학에 예산을 몰아주면 나머지 100여 개 지방대는 도태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홍 교수는 정반대라고 반박한다. 기존 고등교육 예산을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교육세 증세를 통해 별도의 재원을 마련하기 때문에 다른 대학의 몫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거점국립대 9곳이 제외되면 남은 대학들에 돌아가는 예산 비중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재원 확보 방식도 관심사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전용을 우려했지만, 홍 교수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증세를 통해 마련한 새로운 재원으로 추진한다는 설명이다.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가 교부금 효율화를 강하게 주장했지만, 교육계 출신 위원들이 반대해 막아냈다. “인서울 열망, 단기간엔 안 바뀐다” 그렇다면 이 정책으로 학생들의 ‘인서울’ 열풍이 완화될까. 홍 교수는 “단기간엔 어렵다”고 인정했다. 오랜 문화적 관성이 하루아침에 바뀌긴 힘들다는 것이다. 다만 특정 분야 대학원이 서울보다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흐름이 서서히 바뀔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학부과정 역시 대학원 경쟁력이 강화되면 자연스럽게 파급 효과를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책 추진은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임기 초반부터 9개 거점국립대를 동시에 지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초기에는 4~5개 대학을 중심으로 시범 운영이 예상된다. 성과에 따라 점차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대학도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 못 해” 홍 교수는 이번 정책이 대학에도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강조한다. 정부 지원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대학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해운대 모래사장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IT 기업조차 ‘학벌보다 실력’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기존처럼 학생을 받아 졸업시키는 역할에 머문 대학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구조조정도 병행된다. 최근 통과된 ‘사립대 구조개선 지원법’에 따라 한계 대학은 규모를 축소하거나 복지법인 전환 또는 폐교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 홍 교수는 “서울대 10개 정책과 구조개선은 병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컬 대학 사업, “연착륙 필요”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글로컬 대학’ 사업은 연착륙을 추진한다. 현재 30개 대학이 지정돼 있지만,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거점국립대 9곳이 빠지면 21곳이 남는다. 홍 교수는 “이들을 지역혁신형 대학 등으로 재편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기존 사업을 무작정 폐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동안 투입된 예산이 실제 성과를 냈는지 점검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AI 인재 양성도 현 정부 교육정책의 큰 축이다. 하지만 AI 디지털교과서를 단순 보조자료로 격하시킨 데 대해서는 “AI 시대 인재 양성과 교육에서 AI를 활용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설명했다.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방식보다 AI 시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을 우선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다. 국교위, “유명무실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논의도 있었다. 홍 교수는 “지난 3년간 국교위는 유명무실했다”고 직격했다. 형식적 토론 몇 차례로 ‘국가교육 10년 계획’을 내놓았지만, 실질적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국정기획위 논의 과정에서 “폐지든 확대 개편이든 확실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결국 정부는 위원 수를 현행 48명에서 문재인 정부 원안인 104명으로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교육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 장관과 대통령실 교육비서관 인선이 늦어진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근거 없는 억측”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대통령은 교육에 대한 식견이 매우 높고 고민도 깊다. 훌륭한 적임자를 찾다 보니 시간이 걸린 것뿐”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순히 대학 몇 곳을 키운다는 계획이 아니다. 대학 구조조정, 지역 혁신, AI 인재 양성 등과 맞물린 국가 교육 패러다임 전환 전략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교육 브랜드가 공허한 구호에 그칠지 아니면 지방대 부흥과 국가경쟁력 강화의 전환점이 될지는 앞으로 5년간 교육현장의 가장 큰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프롤로그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네팔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평을 듣는 곳이다. 나는 대학 시절 네팔에 세 번 방문했고, 그중 한 번은 8개월 넘게 머무르며 도시·산촌·평야는 물론, 깊은 계곡까지 다양한 네팔의 지형을 느끼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주민들과 어울려 지내는 동안 네팔 사람들의 순한 성품과 향신료 가득한 음식, 그리고 히말라야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네팔에 가게 되었다. 동행인은 네팔이 처음이었기에 대표적인 여행지인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중심으로 일정을 계획하였다. 1월의 네팔 여행은 어디로 가면 좋을까? 따뜻한데 추운 곳? 수공예 장인들의 나라에서 쇼핑은 못 참지! 네팔은 우리나라보다 낮은 위도에 위치하여 카트만두는 서울에 비해 낮 기온은 약 15℃ 정도 높고, 밤 기온 역시 다소 온화하다. 대체로 한국 초봄 날씨보다 조금 더 따뜻하다고 할 수 있다. 출국 당시 기모 맨투맨과 패딩 점퍼를 입은 채로 트리부반 공항에 도착하면 후텁지근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경량패딩으로 갈아입은 뒤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낮 기온만 고려해 인천공항의 ‘코트룸 서비스’에 옷을 맡기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네팔은 난방시설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 많아 방한에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네팔 여행을 시작할 때 카트만두의 ‘타멜 거리’ 방문을 추천한다. 타멜 거리는 좁고 미로 같은 골목길로 이루어진 관광 상업지구로 대부분의 여행객이 들르는 필수 코스 중 하나이다. 게스트하우스와 여행사가 밀집해 다양한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고,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축제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며, 다양한 수공예품과 아웃도어 의류 전문점도 많아 방한용품을 구매하기에 적합하다. 나는 여행할 때 여행지의 매력이 담긴 기념품을 꼭 구입하는 편인데, 이곳에서 귀마개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야크 헤어밴드와 캐시미어 목도리를 구매했다. 야크는 주로 히말라야 고산 지대에서 키우는 가축화된 동물로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의 이름에도 쓰인다. 야크 털로 만든 제품은 의외로 매우 부드럽고 따뜻했다. 네팔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소재가 돋보이는 아이템은 착용만으로도 현지인처럼 보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소품샵 구경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카트만두에 수많은 크래프트샵(craft shop)이 있으니, 지도 앱에서 몇 군데 검색해서 들러보는 것도 좋다. 타멜 거리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의 랄릿푸르 지역은 공예 문화가 아주 발달한 지역이라 상점이 많다. 그릇·가구·의류·생활소품과 은으로 만든 장신구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나는 저녁에 조용한 환경을 선호하여 랄릿푸르 자왈라켈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랄릿푸르의 여러 상점에서 다양한 제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특히 ‘Milikara handcraft’ 상점의 섬세하고 소박한 목공예품에 반해 여러 제품을 구매해 잘 쓰고 있다. 거리에서 만난 네팔의 전통과 일상 네팔은 전통적으로 힌두교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전체 인구의 약 81% 이상이 힌두교 신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종교활동이 주로 종교시설 내에서 이루어지는 데 비해, 네팔에서는 종교가 생활 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일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네팔의 거리, 골목 모퉁이, 공원, 그리고 가옥의 대문과 차량까지 힌두교의 대표적인 종교 상징과 색채로 장식되어 있다. 시민들은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며 집 근처에 있는 돌·탑·사원과 같은 곳에서 붉은색 가루를 묻혀 이마 가운데 ‘티카’를 찍는다. 이는 제3의 눈을 상징하며 주로 축복의 의미이다. 사원과 같은 종교시설은 근린공원처럼 이용되며, 시민들이 탑에 앉아 쉬거나 누워 있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박타푸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중세 말라 왕국 시대의 건축물을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랄릿푸르 자왈라켈에서 차량으로 약 20분 거리이며, 사설 미니버스·마이크로버스·툭툭이 등 다양한 대중교통 수단이 있어 골라 타는 재미가 있다. 주로 현금으로 요금을 내며, 툭툭이와 같은 삼륜차는 운전사에게, 승합차 및 버스는 요금 징수원에게 낸다. 거리에 따라 요금이 상이하고 가끔 요금 징수원이 자체적으로 외국인 가격을 적용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변의 눈치를 잘 살피는 편이 좋다(체감상 네팔인들은 대체로 곤경에 처한 외국인을 잘 도와주는 것 같다). 나는 미니버스를 타고 갔는데 승객을 많이 태우기 위해 좌석을 개조하여 입석 승객도 많이 있었다. 대부분의 승객이 티카를 하고 있었고, 버스 내부에는 화려한 장식과 함께 시바(파괴의 신)·가네슈(번영의 신)의 그림이 붙어 있었다. ‘박타푸르 두르바르 스퀘어’에 도착하여 외국인 가격으로 1,500NPR에 입장권을 구매하여 관람하였다. 박타푸르는 유적지이면서도 주민들이 실제 생활하는 곳으로, 살아있는 역사 공간으로 인정받고 있다. 토기를 만드는 주민들이 있었는데 ‘더히(요거트)의 왕’으로 불리는 ‘주주더히’를 이 토기에 담아 판매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지역마다 막걸리 맛이 다르듯, 네팔의 더히도 지역마다 특색이 있으며 박타푸르의 더히가 맛이 진해 현지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더히 중 하나로 꼽힌다(나의 동행인은 평소에 요거트를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행 내내 주주더히를 빠뜨리지 않고 즐겨 먹었다). 대규모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인 유적지가 많았는데, 이는 2015년 7.8 규모의 강진으로 피해를 본 건축물 복구 작업이었다. 네팔은 인도-유라시아판이 만나는 지진대에 위치해 크고 작은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다. 2015 네팔 대지진을 겪은 지인이 내게 “우리가 든든히 딛고 서야 할 ‘땅’이 흔들리니 혼란이 온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이 있었으리라 짐작해 보았다. 그리고 그 땅에서 여전히 삶을 이어가는 주민들을 보며, 속히 복원이 완료되고 새로 복원된 건축물들이 더욱 안전하게 지어지기를 기원했다. 히말라야와 더 가까이, 포카라 카트만두에서도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건물이 없는 곳에 가면 히말라야산맥을 부분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지만, 네팔의 제주도(제주도는 휴양지의 대명사로 통하는 것 같다)라 불리는 ‘포카라’에 가서 히말라야를 더 가까이에서 느껴보기로 했다. 포카라는 히말라야산맥에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 페와 호수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는 버스·항공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버스를 타면 풍경을 관찰할 수 있고, 항공을 이용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히말라야를 느끼려면 산을 올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네팔까지 왔는데 트레킹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다. 나는 체력 이슈로 일반적인 장기간 트레킹은 못 하지만, 네팔의 자연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래서 ‘칸데’에서 ‘오스트레일리안 캠프’(1,920m)까지의 미니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약 1시간 정도의 가벼운 등산 코스로 생각하면 된다(캠프의 짐을 옮기는 현지인들은 슬리퍼를 신고도 매우 빠르게 이동한다). 마을과 경사로를 지나면 평평한 지대에 너른 마당을 가진 숙소가 등장한다. 마당에는 네팔 전통 그네가 있어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이곳은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라면과 백숙을 먹을 수 있었다(간간이 한식을 먹어줘야 하는 것 같다). 저녁 기온은 0℃ 내외였고 숙소는 번듯한 실내였음에도 난방이 없어 인생에서 겪어본 가장 추운 밤이었다. 다음날 숙소 옥상에 올라가 일출과 함께 안나푸르나산맥을 바라보았다. 자연의 장엄함이 느껴져 창조주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지난밤의 추위를 이겨낼 가치가 충분한 풍경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서 내려와 가볍게 아침을 먹고, ‘사랑코트’(1,592m)로 이동했다. 이곳도 안나푸르나산맥을 관찰할 수 있는 뷰포인트로 차량으로 중간 지점까지 가고 도보로 30여 분 언덕을 오르면 된다(현재는 케이블카가 정상 가까운 곳까지 운행한다고 한다). 이번이 사랑코트에 네 번째 방문이었는데, 그중 가장 아름다웠다. 기온 역전 현상으로 골짜기에 거대한 운해가 형성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팔이 ‘구름 너머, 산 위의 숨겨지지 않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며 다시 한번 네팔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포카라에서는 트레킹 외에도 패러글라이딩·래프팅, 페와 호수 나룻배·카누 등의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사랑코트 근처에서 출발해 앞에는 페와 호수가, 뒤로는 히말라야산맥이 보이는 패러글라이딩은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뷰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도 타보았는데, 정말 신나지만 약간의 울렁거림이 있었다. 함께 타는 전문가인 탠덤 파일럿이 내게 구토봉투를 주었는데 다행히 하지는 않았다(공중 구토를 피하고 싶다면 멀미약을 먼저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페와 호수 근처에 숙소를 잡고 허기를 달래려 달밧떨까리(우리나라의 백반과 비슷한 일상 식사)와 버팔로 짜우멘(버팔로 고기를 넣은 볶음면)을 먹었다. 네팔은 밥과 반찬을 리필해주는 문화가 있어, 대부분 식당에서 고기 외의 반찬을 무료로 추가 제공해 달밧떨까리를 배부르게 즐길 수 있다. 그리고 향신료 맛이 익숙하지 않다면 버팔로 짜우멘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후 카페에 가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네팔은 커피가 꽤 맛있는데, 이유는 커피 산지이기 때문이다. 네팔은 북위 약 26°~30°에 위치하여 커피벨트로 불리는 북위 25°~남위 25° 범위에서 벗어나 있지만, 고산지대의 특별한 환경 덕분에 커피를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기념품으로도 좋으며, 커피 외에 꿀과 핑크 솔트도 인기가 좋다. 에필로그 오랜만에 다시 찾은 네팔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듯 복잡하지만,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카트만두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포카라 두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건강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다. 고산 지대인 네팔에서는 체력 저하가 예상보다 빠르게 올 수 있으니, 자기 몸 상태를 면밀히 살피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써버이자나 나마쓰떼!(! 모두 안녕!)
정지아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고향에 내려와 빨치산 출신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문 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간 몰랐던 아버지의 삶을 알아가는 내용이다. 전직 빨치산이자 ‘순수한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늘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한 태도로 살아갔다. 겨울 어느 날 소쿠리를 팔러 왔다가 나갈 때를 놓친 방물장수 여인을 재워주려고 데려오자, 어머니는 “베룩(벼룩)이라도 옮으면 워쩔라고”라고 타박했다. 어머니도 빨치산 출신이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숨을 걸었능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능가? 저이가 바로 자네가 목숨 걸고 지킬라 했던 민중이여, 민중!”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일화도 있다. 어머니는 당신 딸은 절대 담배 태우고 그런 애가 아니라고 계속 항변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넘의 딸이 담배 피우먼 못된 년이고, 내 딸이 담배 피우먼 호기심이여? 그거이 바로 소시민성의 본질이네! 소시민성 한나 극복 못헌 사램이 무신 헥명을 하겠다는 것이여!”라고 했다. 화자는 ‘환갑 넘은 빨갱이들이 자본주의 남한에서 무슨 혁명을 하겠다고 극복 운운하는 것인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블랙 코미디’로 여긴다. 꽃보다 예쁜 빨간 청미래덩굴 열매 이런 식으로 소설을 읽는 내내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 적지 않다. 등장인물이나 작가가 독자를 웃기려 작정한 것이 아닌 듯한데도 그렇다. 하지만 정세 판단을 위해 여전히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모, 장례식장에 몰려와 고인이 (위장) 자수를 했으니 ‘통일애국장’ 대신 ‘통일애국인사 추모제’라고 쓴 플래카드를 걸라는 전직 빨치산들이 나오는 대목에선 웃어야 할지 어떨지 난감했다. 어머니는 ‘조용히 가시게 할란다’며 이 제의를 거절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그사이 아버지의 영정은 흰 국화에 둘러싸였다. 살아생전 꽃 따위 쳐다보지도 않았던 아버지였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가을 녘 아버지 지게에는 다래나 으름 말고도 빨갛게 익은 맹감이 서너 가지 꽂혀 있곤 했다. 연자줏빛 들국화 몇 송이가 아버지 겨드랑이 부근에서 수줍게 고개를 까닥인 때도 있었다. 먹지도 못할 맹감이나 들국화를 꺾을 때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도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바위처럼 굳건한 마음 한 가닥이 말랑말랑 녹아들어 오래전의 풋사랑 같은 것이 흘러넘쳤을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아버지 숨이 끊기고 처음으로 핑 눈물이 돌았다. 이 소설을 읽다 오래 눈길이 머문 대목이다. 아버지가 지게에 꽂아온 맹감은 청미래덩굴을 가리킨다. 청미래덩굴은 어느 숲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덩굴나무로, 지역에 따라 망개나무, 맹감 또는 명감나무라고 부른다. 꽃보다 가을에 지름 1㎝ 정도 크기로 동그랗고 반들반들하게 익는 빨간 열매가 인상적이다. 잎 모양은 둥글둥글한 원형에 가깝지만, 끝이 뾰족하고 반질거린다. 덩굴손이 두 갈래로 갈라져 꼬불거리며 자라는 모습이 귀엽다. 경상도에서는 청미래덩굴을 ‘망개나무’라고 부른다. 그래서 청미래덩굴잎으로 싸서 찐 떡을 망개떡이라 부른다. 떡장수가 밤에 “망개~떡”이라고 외치고 다닌 바로 그 떡이다. 망개떡은 청미래덩굴잎의 향이 배어 상큼한 맛이 나고 여름에도 잘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청미래덩굴과 비슷하게 생긴 식물로 청가시덩굴이 있다. 청가시덩굴도 숲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둘 다 가시가 있고, 잎과 꽃도 비슷하다. 둥글게 휘어지는 나란히맥을 가진 것도 같다. 그러나 청미래덩굴잎은 반질거리며 동그란 데 비해 청가시덩굴잎은 계란형에 가깝고 가장자리가 구불거린다. 열매를 보면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 청미래덩굴은 빨간색, 청가시덩굴은 검은색에 가까운 열매가 달린다. ‘연자줏빛 들국화’는 쑥부쟁이 소설에서 ‘아버지 겨드랑이 부근에서 수줍게 고개를 까닥인’ ‘연자줏빛 들국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꽃일까. 들국화라는 종은 따로 없고 가을에 피는 야생 국화류를 총칭하는 단어다. 들국화라 부르는 꽃 중에서 보라색·흰색 계열은 벌개미취·쑥부쟁이·구절초가 대표적이고, 노란색 계열로 산국과 감국이 있다. 이들 들국화 중에서 연자줏빛이라고 했으니, 구절초는 아니고 벌개미취와 쑥부쟁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벌개미취는 깊은 산에서 드물게 자라는 것을 원예종으로 개발해 88 올림픽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보급한 꽃이다. 소설 속 아버지가 꺾어왔을 가능성은 낮은 것 같다. 그러니 쑥부쟁이일 가능성이 높다. 쑥부쟁이는 꽃은 연보라색이고 대체로 잎이 작고 아래쪽 잎은 굵은 톱니를 갖고 있다. 줄기가 쓰러지면서 어지럽게 꽃이 피는 경우가 많다. 쑥부쟁이라는 꽃 이름은 ‘쑥을 캐러 다니는 대장장이(불쟁이)의 딸’에 관한 꽃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꽃을 감싸는 부분이 총포인데, 총포조각이 위로 잘 붙어 있다. 한 발 더 들어가 보면, 산이나 언덕 등에선 그냥 쑥부쟁이보다는 꽃을 감싸는 총포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갯쑥부쟁이(이전의 개쑥부쟁이)를 더 흔히 만날 수 있다. 작가가 빨간 청미래 열매와 연자주색 쑥부쟁이를 등장시킨 것은 사회주의자 아버지에게도 낭만이 있었음을 드러내고 싶었던 의도인 것 같다. 소설 배경이 지리산 인근이라 다양한 야생화들이 많았을 텐데 딱 청미래덩굴 열매와 쑥부쟁이를 고른 것은 가을에 주변에서 가장 흔한 꽃과 열매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지아 작가(1965년생)는 진짜 빨치산의 딸이다. 아버지는 6·25 때 조선노동당 전남도당 조직부부장, 어머니는 남부군 정치지도원이었다. 두 사람은 딸의 이름을 자신들이 활동한 지리산과 백아산에서 한 자씩 따 ‘지아’라 지었다. 정 작가의 아버지는 소설에 나오는 대로 2008년 5월 1일 노동절에 작고했다고 한다. 작가는 장례식을 치르면서 장편소설 작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데올로기로만 아버지를 볼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보고, 아버지라는 전체 스펙트럼 중에서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다시 따져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념·죽음 등 무거운 주제를 비교적 유쾌한 톤으로 풀어내서 그런지 술술 읽혔다. 대학 시절 읽은 김학철의 소설 격정시대를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항일투쟁을 다룬 이 소설에 대해 당시 ‘혁명적 낙관주의’라는 말을 쓴 것 같다.
어쩔수가없다에서 전 세계가 공감한 ‘해고’ 사태 9월 24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영화 어쩔수가없다는 국내 개봉 이전부터 전 세계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먼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이자 칸국제영화제·베를린국제영화제와 함께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8.27~9.6)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됐다. 박찬욱 감독이 20년 전 원작소설(액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저)을 읽고 영화로 만들 기획을 했다. 이번에 완성한 어쩔수가없다가 아쉽게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베니스를 꼭 20년 만에 다시 찾은 박찬욱 감독은 “내가 만든 어떤 영화보다 관객 반응이 좋아서 이미 큰 상을 받은 기분”이라고 담담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9월 4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는 주목할 만한 화제작을 소개하는 부문인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초청됐고, 9월 26일부터 10월 13일까지 열리는 제63회 뉴욕영화제의 메인 슬레이트(Main Slate)에 초청됐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초청됐던 가장 주요한 부문이다. 9월 17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개막작으로 선정돼 올해로 서른 돌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도대체 어떤 영화였길래 전 세계 영화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외신의 평에서 공감대를 확인해 보자. BBC는 ‘황홀하게 재미있는 한국의 걸작은 올해의 ‘기생충’’이라는 제목의 리뷰에서 “경제적 불안을 다룬 ‘암울하면서도 웃긴’ 이 코미디 영화는 세계적으로 큰 히트작이 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영화 전문 매체 스크린데일리는 “이 영화는 극도로 재미있지만, 동시에 장기 실업자들의 절망과 기업 세계의 불필요한 잔혹성에 대한 가슴 아픈 탐구이기도 하다. 인공지능(AI)이 점점 더 노동시장의 큰 부분을 잠식해 감에 따라 우리 모두가 ‘만수’(주인공, 이병헌)가 될 수 있다”라고 평했다. 그렇다. 외신은 어쩔수가없다에서 만수가 갑자기 처한 상황으로부터 세계 각국의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하고 불편하며 불안한 ‘해고’ 사태라는 접점에 깊은 공감을 드러낸 것이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삶에 만족하던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만수가 회사로부터 돌연 해고 통보를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회사도 입장은 있다.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온실 속 화초 같은 삶을 살아온 아름다운 아내 ‘미리’(손예진)와 두 아이, 반려견을 위해 만수는 3개월 안에 재취업하겠다고 다짐하지만, 1년 넘게 마트에서 일하며 면접장을 전전하고, 급기야 어렵게 장만한 집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무작정 제지 회사 ‘문제지’를 찾아가 필사적으로 이력서를 내밀지만, 반장 ‘선출’(박희순) 앞에서 굴욕만 당한다. 이 자리는 누구도 아닌 자신의 자리라고 확신한 만수는 면접자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재취업에 성공하겠다는 무서운 계획을 세우게 되고 결국 실행에 옮긴다. 나지막이 “어쩔 수가 없다”라는 말을 내뱉으며. 박찬욱 감독은 베니스영화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화감독도 영화 한 편의 작업이 끝나면 잠재적 실직 상태에 들어가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런 경험을 했던 사람이다. 내가 20년 동안 이 영화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스토리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하면 어느 시기에, 어떤 나라 사람에게 이야기했던 시의적절한 이야기라는 공통된 반응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라고 설명해 전 세계적인 해고 사태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데뷔작·후속작 실패 딛고 ‘칸느박’이 되기까지… 지금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시작은 여느 감독과 다르지 않았다. 1963년생인 박 감독은 서강대 철학과 졸업 후 1988년 깜동(감독 유영식)의 연출부 막내로 충무로에 발을 들였다. 곽재용 감독의 비 오는 날의 수채화(1989) 각본을 공동 집필하며 작가로서의 면모도 선보였다. 직접 시나리오를 쓴 첫 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은 인기 가수 이승철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흥행은 실패했다. 이후 각종 신문·방송 등에서 영화 정보를 전하고 영화평을 쓰면서 생계를 유지하며 두 번째 영화 삼인조(1997)를 찍었지만, 역시나 흥행에 실패했다. 김민종·이경영·정선경 등 당시 톱스타급 배우를 내세웠지만, 평론계의 반응마저 싸늘했다. 절치부심의 시간을 3년 더 보내고 나서 찍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가 관객 583만 명이라는 기록을 달성하고,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분에까지 초청받으며 대중성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드디어 성공했다. 박찬욱 감독은 최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영화를 만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것인가’가 기준이다. 당대 흥행이나 좋은 평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의 목표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이 찾아보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이미 25년간 사랑받았으니 단기 목표는 달성된 것 같아 흐뭇하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후 이른바 ‘복수 3부작’의 첫 작품으로 각인된 하드보일드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으로 박찬욱 감독 특유의 색채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은 그는, 올드보이(2003)로 제57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감독 최초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까지 거머쥐었다. 올드보이는 대종상 같은 국내 영화상과 시체스영화제 등의 해외 영화제를 휩쓸었다. 복수 3부작의 마지막 영화이며 “너나 잘하세요”라는 명대사를 남긴 친절한 금자씨(2005)로는 제6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젊은사자상’과 ‘베스트 이노베이티드상’을 받았다. 가히 박찬욱 감독 전성시대라 부를만했다. 이후 박찬욱 감독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을 뱀파이어물로 각색한 영화 박쥐로 2009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올드보이 이후 불과 6년 만에 칸을 찾은 그에게 ‘칸느박’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이유다. 별명이 허명이 아님을 입증하듯 헤어질 결심(2022)으로 박 감독은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감독으로서는 점점 더 작가주의 색채를 드러낸 박 감독은 본업인 연출 외에 제작에도 힘을 쏟았는데,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2015)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신인 배우 김태리를 과감히 기용해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아가씨(2016)는 연출을 하며 동시에 제작에도 참여했다. 박찬욱 감독이 말하는 좋은 영화란?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20년이 지나고 봐도 촌스럽지 않다. 미장센에 공을 들이는 건 익히 알려졌다. 아가씨를 찍을 때는 한국 배우들의 일본어 연기를 위해 현장에 5명의 일본인을 성별과 세대를 구분해 참석하게 했다는 일화는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집요함을 증명한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영화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영화 미학은 무엇일까? 베니스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박찬욱 감독이 한 말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에서 제가 추구하는 건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확성입니다. 스토리와 캐릭터들의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늘 고민하죠. 중요한 건 정확성과 철저함인데요. 어떤 것이든 정확하기 위해 철저히 노력하는 데 성공하면 결과적으로 아름다워지고 우아해진다고 믿어요. 설사 추하고 더럽고 역겨운 피사체라고 하더라도 이런 노력이 더해지면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이미지가 얻어집니다.” 누구에게나 인생 영화가 한 편쯤 있다. 오랫동안 기억되는 영화에는 뭔가 공통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많은 사람의 감정을 건드린다는 점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이런 지점에서 전 세계인에게 소구하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 그리고 한국을 넘어 아시아·북남미·유럽이라는 각각 문화권의 특별하고 구체적인 삶의 형태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이해되고, 나아가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 지구인이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공감할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사진 제공=CJ ENM
어쩌다 리더가 된 당신에게 (최재천 지음, 창비 펴냄, 100쪽, 1만 3,000원) 학교폭력, 경계선 지능, 발달장애, 우울증, 은둔형 외톨이 등 다양한 이유로 사회와 학교에 적응이 힘든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를 다룬다. 저자는 현장 경험을 토대로 노력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섣부른 응원이나 무분별한 위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고 지적한다. 그들 개개인이 처한 복잡한 환경과 심리 구조를 이해하고 의욕과 동기를 끌어낼 구체적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리 (최준영 지음, 교보문고 펴냄, 304쪽, 1만 8,800원) ‘경제·주택·에너지·인구·기후’ 5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지리적 조건이 국가의 운명을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관적인 데이터와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한다. ‘경제·주택’ 편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주택 가격 안정 비결과 최저임금·퇴직금·상속세가 없는 스웨덴의 사례 등을, ‘에너지’ 편에서는 수소·셰일·희토류 등 핵심 자원을 둘러싼 국제 관계를, ‘인구·기후’ 편에서는 인도·카자흐스탄·플로리다의 인구정책과 중국·호주의 기후 위기 사례를 살핀다. 머리 좋은 아이는 이렇게 키웁니다 (에일린 케네디 무어·마크 S. 뢰벤탈 지음, 박미경 번역, 레디투다이브 펴냄, 436쪽, 1만 8,900원) 40년 경력의 세계적 아동 심리학자가 자녀의 특별한 재능을 어떻게 지키고 키울 수 있는지 분석한다. 핵심은 ‘남들처럼 키우면 남다르던 아이도 남들과 같아진다’는 경고다. 중요한 것은 섬세한 균형감이다. 영재성은 그대로 두면 금방 사라지지만, 발달을 재촉한다고 더 빨리 자라지도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요즘처럼 ‘아이를 잘 키우는 공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기에 부모가 더욱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육아포비아를 넘어서 (이미지 지음, 동아시아 펴냄, 300쪽, 1만 7,500원) 17년간 사회부 기자로 일하며 네 자녀를 기른 저자가 취재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출산·육아의 위기를 ‘육아포비아’로 규정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높은 집값과 양육 비용 증가 등 사회·경제적 이유보다는 육아 자체에 대한 공포를 살피는 것이 저출산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진단한다. 단순히 하기 어려운 선택이 아닌 무섭고 피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린 이유를 찾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AI시대, 10대를 위한 디지털 트렌드 영단어 교양 (서지예 지음, 알파미디어 펴냄, 264쪽, 1만 8,800원) AI, 클라우드, 디지털 디톡스 등 첨단 기술과 미래 사회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를 살피면서, 필수 영어 교양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구성한 학습서다. 단순한 단어 암기를 넘어, 각 개념을 둘러싼 사회적 배경과 미래 전망을 이해하도록 안내한다. AI와 클라우드가 왜 중요한지, 그린테크가 앞으로 산업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아가다 보면 어느새 영어 실력이 늘어 있을 것이다. 맛에 진심이라면, 교양 한 그릇 (박찬일 지음, 북트리거 펴냄, 232쪽, 1만 6,800원) 우리에게 익숙한 18가지 음식을 통해 한국인의 식탁이 지닌 문화적 깊이를 탐색한 에세이다. 음식은 그것을 먹는 사람들의 삶과 긴밀히 맞닿아 있고, 나아가서는 그 자체로 문화가 된다. 이제는 어엿한 한국 음식 대접을 받는 짜장면과 치킨이 자리 잡는 과정이나 파스타와 스파게티의 차이 같은 이야기는 우리의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진실한 동물도감 (최형선 글, 차야다 그림, 북스그라운드 펴냄, 152쪽, 1만 6,800원) 동물도감과 관용 표현을 엮어 과학적 사고력과 국어적 상상력을 함께 기르도록 구성했다. ‘고래고래’처럼 의성어·의태어를 활용한 표현부터, ‘뿔이 나다’ 등 우리말 속 동물 관련 관용구를 소개하고, 동물의 생태와 특징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알려준다. 오래된 속담뿐 아니라 캥거루족 같은 시사용어까지 연결해 사회 상식까지 기를 수 있게 했다. 사춘기 소녀들을 위한 안내서 (이지현 글, 김푸른 그림, 주니어김영사 펴냄, 104쪽, 1만 4,000원) 사춘기 소녀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몸과 마음, 관계의 변화를 섬세하게 다룬 성장 안내서다. 책은 크게 ‘마음의 변화’, ‘몸의 변화’, ‘관계의 변화’, ‘세상과 나’ 4개 장으로 이뤄져 있다. 20년 넘게 보건교사로 일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 다루기, 감정 근육 키우기, 유방 변화, 월경 용품 선택과 같은 실질적 팁을 전한다. 또한 타인과 적절한 경계를 세워 의사소통하는 방법, 그리고 사회 이슈에 대한 성찰까지 폭넓게 다룬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눈앞에 성과가 안 보이니 문득문득 불안해지지?” 요즘 들어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힘들다는 학생에게 ‘툭’ 한마디 던지자, 금세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거린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도, 특별한 상담기법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학생에게 건넨 말은 지극히 보편적이고,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이처럼 애매모호하고 일반적인, 즉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을 ‘나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설명’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 부른다. 그리고 바넘 효과를 실제 대화에 활용하는 대표적 기법이 바로 콜드 리딩(Cold Reading)이다. 바넘 효과 _ 누구나 공감하는 말의 함정 바넘 효과는 19세기 미국의 서커스·쇼 비즈니스의 거장이었던 피니어스 T. 바넘(Phineas T. Barnum)에서 유래했다.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SM이나 JYP 정도의 엔터테인먼트 CEO였던 셈인데, 바넘은 ‘누구에게나 맞는 말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홍보전략으로 대중의 호기심과 보편적 욕구를 파고들었다. 바넘은 ‘우리 쇼에는 누구든 흥미를 느낄 만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오락. 가족·아이·어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유일무이한 볼거리!’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반적 욕구’지만,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라는 개인 맞춤형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심리학자들이 보편적인 문장을 개인 맞춤형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심리적 오류를 ‘바넘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Bertram R. Forer)는 이 현상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는데, 포러가 실험한 성격검사에서 학생들은 평균 4.26/5점, 즉 학생들 대부분이 “와, 이건 딱! 내 얘기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 포러가 작성한 문장은 인간 마음의 보편적 작동 원리이다. 글을 읽으며, 나는 몇 개나 해당하는지 체크해 보자. •당신은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관심과 호감을 원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만의 독립적 시간을 갖고 싶어 합니다. •당신은 어떤 한계점이 있지만,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잠재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때때로 당신은 자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는지 확신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외부적으로는 자제력이 강하고 차분해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불안과 초조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솔직하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일부 진실을 숨기기도 합니다. •당신은 변화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안전과 안정성을 필요로 합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친절한 편이지만, 그만큼 타인의 인정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왜 우리는 ‘뻔한 말장난’에 속아 넘어갈까? 우리는 모두 인정(사랑)받고 싶어 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며,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바넘 효과와 콜드 리딩은 이 단순한 진실, 즉 인간 마음의 보편적 작동 원리를 이용하여 ‘너를 잘 안다’는 심리적 착각을 만들어내는 트릭일 뿐이다. 그럼 우리는 왜 이런 ‘뻔한 말장난’에 속아 넘어가는 걸까?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심리적 기제가 숨어 있다. ● 첫째, 자기참조 효과(Self-Referential Effect) 우리 뇌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무질서 속에서도 패턴을 찾으려 하고, 모호함을 견디는 것보다 ‘대충 맞는 설명’이라도 붙잡아 확실한 의미를 만들려 한다. 이 과정에서 자기참조 효과, 즉 어떤 말이든 자신의 경험을 덧칠하여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올해는 건강에 유의하라’, ‘재물운이 좋으나 조심할 필요가 있다’와 같은 말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지만, “아, 맞아. 지난달에 병원 다녀왔는데 역시 건강 조심하라는 거였구나”라며 우연한 일치를 ‘특별한 통찰’로 착각하는 것이다. ● 둘째, 긍정 편향(Positivity Bias)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를 이해해 주는 목소리’를 원한다. MBTI·심리테스트 등 오늘날 청소년들이 SNS에서 끊임없이 심리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정확히 아는구나”라는 착각이 비판적 사고를 무너뜨리는 순간, “나는 원래 INTP라 발표를 못 해”라며 자기를 섣불리 규정할 위험이 있다. 만약 ‘나는 ST라서 공감이 어려워’, ‘나는 불안형이야’라고 스스로 한정 짓는다면 변화와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이 이런 심리테스트를 단순한 ‘놀이’로 즐기되, 그것이 절대적인 자기규정이 아님을 분명히 가르칠 필요가 있다. ● 셋째, 선택적 주의와 기억(Selective Attention Memory)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부분만 골라 기억하고, 맞지 않는 부분은 무시하거나 쉽게 잊는다. 그래서 전체 문장 중 특정 구절이 자기 경험과 연결되는 순간, 쉽게 마음을 연다. 특히 자신을 긍정하거나 이미 믿고 있는 성격 이미지를 확인해 주는 설명은 더 잘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자신이 예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신은 감수성이 풍부하다”라는 문장을 특별히 진실처럼 느낀다. 우리가 재미 삼아 보는 토정비결·타로·별자리·혈액형·MBTI 등은 모두 바넘 효과의 전형적 작동 방식이다. ‘자기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인간 심리를 파고드는 바넘 효과는 그래서 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딱! 내 얘기 같다’는 느낌만으로 판단을 멈춘다면 잘못된 믿음에 빠져 의존적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말에 현혹되어 사기를 당하는 등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사이비 종교, 유사 과학, 사기성 심리검사처럼 바넘 효과를 이용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수법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늘 비판적 사고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콜드 리딩 _ 나를 꿰뚫어 본 듯한 기술 바넘 효과를 실제 대화에 활용하는 콜드 리딩은 상대방의 구체적 정보 없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반적인 진술을 던져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대화 기술이다. 단순히 보편적 진술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읽어내고, 그것에 맞춰 다시 진술을 조정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상호작용적 대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콜드 리딩은 특별한 사람만 사용하는 기법이 아니다. 사실 교사들은 이미 활용하고 있다. 다만 약간의 기술 차이가 있을 뿐이다. “넌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론 걱정이 많구나?” → 보편적 진술 “(지각했다고 혼나서 울먹이는 아이의 머리가 부스스한 걸 보고) 아침에 늦어서 놀라서 준비하고 나왔는데, 결국 지각해서 무척 속상하겠다.” → 옷차림·표정·말투 등 관찰 단서 활용하여 맞춤형처럼 말하기 “아, 지각하지 않으려고 네 딴에는 노력했는데, 그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했구나” → 상대의 반응을 은근히 끌어내 그 내용을 되풀이하며 ‘맞춘 것처럼’ 보이기(역질문 기법) 콜드 리딩은 보편적 말을 ‘특별하게 들리도록’로 포장하는 기술이다. 멋진 포장은 첫 시작을 매끄럽게 한다. 하지만 멋진 포장에 기대하며 열어 본 내용물이 별것 아니라면 실망은 배가 된다. 뭐든 과유불급이다. 너무 남용하거나 과해서 학생이 ‘뻔한 말장난’으로 느끼면 오히려 신뢰를 잃는다. 반대로 ‘○○선생님만 나를 이해해 줘’라며 특정 선생님에게 의존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마음을 읽어주는’ 방식에 익숙해져서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구체화하는 힘이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바넘 효과나 콜드 리딩은 마음을 여는 도구로만 활용되어야 한다. 이후에는 구체적 상황, 발달 단계, 개별적 맥락 등에 맞춘 실제적인 이해와 지도로 이어져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콜드 리딩이 어떻게 신뢰 관계를 강화하고 자기성찰과 동기를 끌어내는 심리적 도구로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 심리적 위로와 라포(rapport) 형성 학생들은 ‘나를 이해해 주는 선생님’을 만나면 더 쉽게 마음을 열고, 신뢰 관계를 구축한다. 콜드 리딩은 닫혀 있는 학생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마치 ‘열쇠’처럼 작동하여 쉽게 자물쇠를 풀어준다. 어떤 학생이 자꾸 지각을 할 때, “늦잠 자서 지각했다는 게 말이 되냐!”, “등교시간 하나 제대로 못 지키는 그런 정신상태로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라고 그러냐!”는 말 대신 ‘심호흡’을 깊게 한 후, 다음과 같은 콜드 리딩 대화 기법을 사용해 보자. “너도 일찍 오려고 했을 텐데, 몸이 마음을 잘 안 따라주는 순간이 있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지만, 학생에게는 “너도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너도 참 답답하고, 속상하긴 하겠다”라는 맞춤형 위로처럼 들린다. 이처럼 잘 활용한 콜드 리딩은 단순한 진술을 넘어 ‘아, 선생님이 내 마음을 알아주시는구나!’라는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하며, 라포 형성을 하게 한다. ● 자기성찰 유도 혼날까 봐 불안했던 마음이 안정되면 조금 심화된, 즉 개인 맞춤형 질문으로 자기성찰을 꾀할 수 있게 된다. “몸이 마음을 잘 안 따라주는 순간이 있지?”라는 콜드 리딩은 ‘맞아, 나도 그런 순간이 있었어’하며 자신의 경험을 되짚어보게 하기 때문이다. “몸이 왜 마음을 왜 안 따라줄까? 너에게 그럴만한 사정이 있니? 얘기해 볼 수 있겠어?” 콜드 리딩으로 라포가 형성되고, 대화의 물꼬가 트였기 때문에 아마도 학생은 ‘노력한 자신의 마음’과 ‘몸이 안 따라주는 이유’를 털어놓을 것이다. 교사는 마음은 이해해 주고(정서적 부분), 몸이 안 따라준 이유는 살펴서 지도해주면 된다(인지적 부분). ● 동기부여의 언어 콜드 리딩은 단순한 격려 이상의 동기부여로 작용하기도 하고, 잠재력을 끌어내는 훌륭한 심리적 도구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그럼 뭐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라며 구체적 행동으로 옮기도록 한다. “마음먹은 대로 다 된다면 뭐가 걱정이겠니? 넌 아직 스스로 다 보여주지 않았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 힘이 있어.” 마음의 문을 여는 진짜 열쇠는 ‘진심’ 진심이 담긴 말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있다. 바넘 효과와 콜드 리딩은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심리적 기술일 뿐이다. 만약 교사의 진심이 빠진 채 기술만 남아 있다면 교육적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심리학적 기법을 교실에 활용할 때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교사의 태도다. 일반적인 말 한마디도 교사의 진심과 따뜻한 관심이 깔려있을 때, 학생에게 특별한 메시지가 된다. 바넘 효과와 콜드 리딩은 작은 열쇠에 불과하다. 진짜 문을 여는 힘은 여전히 교사의 진심 어린 시선과 학생의 삶을 이해하며 함께 길을 찾으려는 교사의 성실한 동행에서 완성된다고 믿는다.
우리나라에서 내 집 마련의 의미 한국 사회에서의 ‘내 집 마련’은 단순히 거주 공간을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집은 일상을 이어가는 삶의 기반이자 자산을 축적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표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집은 실거주의 안정성을 보장한다. 전세나 월세로 거주할 때는 계약 만료라는 불확실성이 따라붙고, 아이 학군이나 생활권을 유지하는 데에도 늘 제약이 생긴다. 반대로 자기 집을 가진 순간, 최소한 거주만큼은 안정이 확보되고 삶의 흐름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 안정감은 가족의 생활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러나 집은 단지 편안한 거주의 수단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전통적으로 가장 확실한 자산 축적의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장기적으로는 가격이 오른다는 믿음이 강하게 작동하고, 실제로 부동산 보유 여부가 세대 간 자산 격차를 크게 갈라놓았다.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노후와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투자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에 사회적 가치까지 덧붙여진다. 집을 가졌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결혼을 앞둔 청년 세대에게는 중요한 선결 조건이 되기도 한다. 또한 집은 보여지는 자산으로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주거의 안정, 자산의 축적, 사회적 인정이라는 세 가지 의미가 겹치면서, 한국에서 내 집 마련은 인생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려 하고, 내 집을 마련한 순간 심리적 안도와 자부심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은 내 집 마련하는 데 있어 유리한가? 교사는 전통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으로 꼽힌다. 그래서 내 집 마련이라는 과제에 있어서 분명히 유리한 점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월급이 꾸준히 들어온다는 점이 크다. 경기가 침체해도 해고 위험이 적고, 매달 일정한 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상환 계획을 세우기에도 유리하다. 이런 특성은 내 집 마련 과정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하지만 불리한 점도 분명하다. 교사의 급여 체계는 안정적이지만 빠르게 오르지 않는다. 치솟는 물가와 빠른 자산 가격의 상승 앞에서, 교사의 월급 인상 속도는 느리게만 느껴진다. 또한 겸업이 제한되어 부수입을 얻기가 쉽지 않다. 결국 교사의 장점인 ‘안정성’은 ‘자산 증식 속도의 한계’라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특히 서울·수도권의 핵심지 집값을 생각해 보면 그런 약점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출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교사는 안정적인 직업이지만, 소득만으로는 부동산 가격을 따라잡기 어렵다. 그래서 내 집 마련을 위해서는 대출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보통 첫 내 집 마련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점은 결혼을 앞둔 때인데, 나이로 보면 대체로 30대 초반 무렵이다. 그렇다면 부부 교사의 경우, 이 시기에 내 집 마련을 위한 자본금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을까? 특별한 지원이 없는 상황이라면 예비부부가 현실적으로 모을 수 있는 금액은 약 2억 원 내외이다. 연차와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교사 한 사람이 자력으로 모을 수 있는 금액은 약 1억 원 정도이고, 그것도 생활비를 절약하고 꾸준히 모았을 때 가능한 수치다. 결국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2억 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2억 원이라는 금액이 결코 작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수도권에서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는 아파트 가격은 훨씬 더 비싸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내가 가진 자산’과 ‘내가 원하는 집의 가격’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차이를 메우기 위해서는 결국 대출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으며, 이는 교사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겪게 되는 현실이다. 대출은 ‘한도’가 아니라 ‘감당 가능성’이 핵심 대출은 흔히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 내 보폭보다 훨씬 더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있고, 평생 도달하기 어려운 집값에 비교적 빠르게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높은 곳에서 떨어져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위험도 동시에 안고 있다. 즉 대출은 ‘받을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대출을 ‘실제로 감당해 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은행이 정해주는 한도는 단순히 ‘빌릴 수 있는 최대치’일 뿐이고, 그것이 곧 나에게 적정한 수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숫자로는 같은 금액이라 할지라도, 그 대출이 각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완전히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내 집 마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출 한도’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상환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월 원리금 상환액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따져보고, 그것이 내 생활비와 소비 구조 속에서 감당 가능한 수준인지 객관적으로 계산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작정 한도에 맞춰 대출을 끌어안는다면, 내 집은 자산이 아니라 짐이 될 수도 있다. 약 2억 원의 시드가 있다면 내 집 마련, 얼마까지 가능할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가 내 집 마련을 하려고 한다고 하자. 두 사람이 모은 자본금이 약 2억 원 수준이라면, 이 부부가 현실적으로 매수할 수 있는 집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먼저 소득을 가정해 보자. 30대 초반의 부부 교사라면, 합산 연 소득은 세전 9천만 원 정도 될 것이고, 실수령은 약 500만 원 정도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월 실수령 500만 원은 연중 비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당이나 상여금을 제외한 금액이다. 교사 소득의 특성상 상여금이나 수당이 몇 차례 들어오지만 1년 내내 크고 작은 목돈 지출이 반복되기 때문에, 이 금액은 예비비 성격으로서 제외하고 계산한다. 그럼 이 정도 소득 규모를 기준으로 대출 가능 금액을 계산해 보자. 금융권의 대출 규제 기준 DSR 40%1를 넘길 수 없으므로, 연간 원리금 상환 가능 금액의 한도는 약 3,600만 원이다. 이를 월 단위로 환산하면 대략 300만 원 수준이 된다. 즉 월 원리금 상환액이 300만 원이 되는 대출금이, 이 부부의 대출 한도라는 것이다. 숫자에서는 보이지 않는 대출 상환의 무게 다음에서 제시한 표는 ‘연이자 4%, 30년 만기, 원리금 균등상환 방식’의 대출을 실행했을 때의 대략적인 원리금에 대한 정보이다. 숫자만 보면 부부 교사의 월 소득 500만 원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대출 원리금으로 보인다. 그리고 6억 원을 빌려도 월 원리금 상환 금액이 300만 원을 넘지 않으니, 6억 원 모두 대출이 실행될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실제 삶은 숫자와 다르다. 예를 들어 3억 원을 대출했을 경우, 매달 약 143만 원을 갚아야 한다. 이는 실수령의 약 28% 수준으로, 생활비와 저축, 유동성 유지가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이 정도 선에서는 재정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으며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대출이 4억 원을 넘어서는 순간 상황이 달라진다. 월 상환액은 200만 원에 육박하고, 실수령 대비 원리금 비율도 40%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이 구간부터는 생활비를 일부 줄이거나 저축을 희생해야 하는 선택이 필요해진다. 일상에서 체감되는 재정 압박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대출금이 5억 원을 넘어가면 부담은 한층 더 가파르게 늘어난다. 월 상환액은 240만 원 수준까지 올라가고, 이는 부부 중 한 명의 월급이 대출 상환에 소진되는 구조다. 자녀 계획이나 비정기 지출(명절·병원비·경조사 등)을 고려하면 여유 자금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그러면 작은 돌발 변수 하나만으로도 가계가 흔들릴 수 있다. 6억 원 이상의 대출은 현실적으로 맞벌이가 아니면 유지하기 어렵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임신·출산·육아를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버텨내기 힘든 구조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출을 ‘얼마나 빌릴 수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실제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갚아나갈 수 있느냐’이다. 숫자 속에 숨어 있는 부담의 무게를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이 내 집 마련의 출발점이다. ‘실수령 대비 원리금 30%’가 일반적인 기준 월 소득에서 원리금 상환이 몇 %가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월 소득의 30% 내외에서 원리금 상환이 이뤄져야 안정적인 구조라고 말한다. 이 기준을 넘는 순간부터는 생활비에서 조정이 필요해지고, 40%를 넘어가면 소비 여력과 저축 가능성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만 월 소득 자체가 커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소득이 높은 가구라면 원리금 상환 비율이 40%를 넘더라도 남은 60%만으로 생활을 충분히 꾸려갈 수 있다. 생활 수준을 특별히 높게 잡지 않는 한, 소득이 늘어난다고 해서 기본적인 생활비까지 급격히 증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득이 1,000만 원인 가구가 500만 원을 원리금 상환에 쓰는 것과, 소득이 500만 원인 가구가 250만 원을 원리금 상환에 쓰는 상황을 비교해 보자. 산술적으로는 둘 다 소득의 50%로 생활을 해야 하지만, 남는 여유 자금의 절대 금액은 2배 차이가 난다. 따라서 ‘소득 대비 몇 %가 적정하다’라는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실제 소득 규모, 소비 패턴, 부부의 지출 성향 등 개별적인 요인을 고려해 자신만의 적정 상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같은 소득이라도 달라지는 가격대의 범위 소득 수준이 같더라도 부부의 성향과 의지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대출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대출 규모가 달라지면, 당연히 매수할 수 있는 집값의 범위도 달라진다. 앞에서 가정했던 부부 합산 소득 9천만 원, 월 실수령 500만 원인 상황을 기준으로 몇 가지 시나리오를 나눠보자. 먼저 보수적인 부부의 경우이다. ‘빚은 최소화하고 생활의 여유와 저축을 유지하고 싶다’라는 성향을 가진 부부는 무리한 대출보다는 안정감과 저축 여력을 더 중시한다. 이 경우 자본금 2억 원에 3억 원 정도를 대출하여 5억 원 내외의 주택에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중간 성향의 부부는 ‘입지와 상품성도 어느 정도 보되, 무리는 하지 않겠다’라는 태도를 가진다. 입지와 실거주 만족도를 고려하면서도 대출 부담이 일정 선 이상을 넘지 않도록 조절한다. 미래 자녀 계획, 출퇴근 거리, 생활 인프라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유형이다. 이 경우 자본금 2억 원에 4억 원의 대출을 활용해 6억 원 내외의 주택에 접근할 수 있다. 반면 공격적인 부부는 ‘입지가 최우선, 지금 아니면 못 들어간다’라는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미래 자산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다소 무리를 감수하더라도 상승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먼저 진입하려 한다. 따라서 자본금과 대출 규모 모두에서 보다 과감한 선택을 하게 된다. 이 경우 자본금 2억 원에 5억 원의 대출을 활용해 7억 원 내외의 주택에 접근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추가 자금을 더 끌어 쓰기도 한다. 결국 부부의 합의, 목표 의식, 재정 관리 능력, 그리고 부가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역량에 따라 매수 전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동일한 소득 조건이라도 선택에 따라 다른 가격대의 아파트를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내 집 마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절대적인 대출 금액으로 본다면, 연 소득 1억 원인 부부가 6억 원 이상의 대출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6억 원 이상의 대출을 받아 생활하는 부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더 큰 대출을 버텨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훨씬 적은 대출에도 불안함을 느낀다. 내 집 마련에 있어 정답은 없다는 뜻이다. 물론 내가 살 수 있는 아파트의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내가 가진 자본금의 크기’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느냐’이다. 같은 조건, 같은 자본금, 같은 연봉을 가진 부부라 하더라도 어떤 삶을 지향하는가에 따라 선택지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부부는 넉넉하지 않아도 여유 있는 일상을 중시한다. 또 다른 부부는 다소 빠듯하더라도 입지와 자산 상승 가능성을 우선시한다. 어떤 부부는 당장 매수를 서두르기보다 청약을 기다리며 시간을 투자하는 전략을 택한다. 결국 ‘좋은 선택’은 남들과의 비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더 큰 수익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스스로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서 스트레스 없이 유지할 수 있는 선택을 했는가이다. 따라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일까?’를 자문하며, 그 선 안에서 현명한 내 집 마련을 하시길 바란다.
가을은 운동회의 계절이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단체 경기와 매스게임 등 운동회 연습이 한창이다. 많은 학부모는 학교 운동회를 통해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며, 자녀들이 운동장에서 뛰고 달리는 모습을 보며 함께 즐거워한다. 최근에는 운동회를 이벤트사에 맡기는 경우가 늘면서, 교육적 의미보다는 노는 것을 추구하는 이른바 ‘외주형 운동회’라는 비판과 함께 운동회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외주형 운동회에 대해 긴 시간의 준비 단계를 없애고 축제로 즐기려는 새로운 시도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 간 상호작용 시간이 줄고, 지나치게 흥미 위주라 교육적 효과가 떨어진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이제 운동회는 체육교육과 학교교육의 결과물이라기보다 단순한 명랑운동회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확산은 불가피하게 학교교육의 정체성과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논란으로 비화될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운동회의 본래 의미를 되새기고, 학교의 상황과 여건들을 고려한 정합성이 있는 미래지향적 운동회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위탁형 운동회의 확산 배경과 문제점 ● 위탁형 운동회 확산의 배경 최근 위탁형 운동회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교사들이 운동회 준비와 진행을 큰 부담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대도시 초등 학교장들은 교직원의 특정 성 비율이 90%를 넘고 심지어 100%에 이르는 상황에서 운동회 진행이 어렵다고 말한다. 어떤 초등교사는 체육수업도 스포츠 강사가 하는 상황에서 누가 운동회를 반기겠느냐고 반문한다. 둘째, 학생 안전사고에 대한 학부모 민원 제기에 대한 부담이다. 과거에는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으나, 지금은 학부모들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은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교육활동에 대해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셋째, 일부 학부모들의 과도한 사교육 의존으로 인한 공교육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다. 자녀를 특목고와 의대 준비 등 사교육 경쟁에 내몰면서, 학교에서는 편안한 시간을 보내길 원한다. 그 결과 학부모들은 정신적·신체적으로 힘든 운동회보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노는 운동회를 선호한다. ● 위탁형 운동회의 문제점 위탁형 운동회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학교 측은 수백만 원이 들더라도 색다른 프로그램으로 재미를 더해 교사와 학생의 반응이 좋다고 주장한다. 준비가 필요 없는 당일 이벤트로 진행되기 때문에 학생과 교사가 수업에 더 집중하게 되어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반면 교육적 의미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제기하는 교사들도 있다. 외부 사람의 진행으로 교사와 학생 간 의미 있는 상호작용의 시간이 없어져 운동회 본래 의미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어떤 교사는 위탁형 운동회에서 학생의 선언문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라는 등의 비교육적인 문구가 들어가 있어 매우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또한 운동회가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흘러 교육적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도 지적한다. 운동회의 의의 ● 교육적 의미 교육적 의미란 학생 시절에 배운 내용이 성인이 되어서도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를 말한다. 그렇다면 운동회의 교육적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정의적·정서적인 면에서 운동회는 친구와 부모님과 함께하는 유대감과 즐거움·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노력을 통해 어려운 과업을 해냈다는 성취감도 얻을 수 있다. 또한 집단활동을 통해서 협력·협동의 가치를 배우고, 세계 시민의식 고취 등과 같은 인성 함양의 효과가 있다. 경쟁활동을 통해 승패를 경험하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기를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연습 과정에서의 피로감, 학생 간의 갈등, 승패에 대한 부담감 등과 같은 부정적인 경험도 하게 된다. 인지적 측면에서 학생들이 운동회의 기획과 평가 등에 직접 참여하며, 함께 고민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획력과 실행력 등을 기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신체활동을 통해 자신의 신체 능력을 평가하고, 집단활동을 통해 나와 타인의 공간을 인식하는 기회도 얻는다. 아울러 집단 경쟁 속에서 승리를 위한 전략과 전술을 익히며, 미래 사회생활에 필요한 예비 경험을 쌓게 된다. ● 학교공동체에 주는 의미 운동회가 학교공동체에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운동회는 학교공동체의 축제로서 학부모·학생·교직원은 물론 지역 주민이 모여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기회의 장이 된다. 이 과정에서 각 집단이 학교공동체에 기여한 것과 앞으로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보를 나누고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운동회는 학교공동체가 함께 노력한 총체적인 결과물로서, 바람직한 교육방향을 함께 논의하는 상호토론의 장이 된다. 셋째, 운동회는 학교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의 노고를 격려하며 친교를 나누는 장이다. 즉 운동회는 학교공동체 구성원 간의 만남과 연대, 협력과 소통을 실현하는 시간이자 공간이 된다. ● 가정에 주는 의미 학부모는 운동회를 통해 자녀와 함께 소통하고 어울리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를 통해 교실에서는 알기 어려운 자녀의 학교생활을 엿볼 수 있다. 운동장에서는 교실과 달리 신체활동을 통해 자녀가 자신의 감정과 끼를 본능적으로 표현하고 발산하기 때문이다. 물론 운동회가 갖는 부정적인 비교육적 요소들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창 시절 운동회의 경험이 어른이 된 현재의 부모들에게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학생 시절의 운동회 경험이 어른이 된 후의 삶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강력한 증거라 할 수 있다. 미래형 운동회 ● 기본 전제 이제 학교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교직원만으로는 운동회를 운영하기 어렵다. 따라서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프로그램 지도, 행사 진행·준비 등을 보조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 미래형 운동회① _ 여러 학교가 함께하는 연합형 운동회 전국적으로 소규모학교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지방자치단체별로 인구소멸·지역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학교가 폐교되면 지역공동체의 붕괴가 가속화되기에 지자체 차원에서 폐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의 소규모학교들은 교사 수와 학생 수가 너무 적어 체육활동조차 학교 자체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미 다수의 지역에서는 ‘작은 학교들의 큰 운동회’, ‘작은 학교 어울림 운동회’ 등과 같은 연합 운동회를 실시하고 있다. 이런 연합 운동회는 현재까지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고, 교육적 효과도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결과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담고 있는 연합형 운동회가 점차 확산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형태의 운동회는 학교 간 연대감을 강화하고 농·어촌교육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미래형 운동회② _ 여러 학년이 함께하는 모둠형 운동회 이 운동회는 대도시의 대규모학교에 적합한 형태다. 대규모 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를 보통 3개 학년씩 오전·오후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이런 경우 학생들이 활동 후 다음 활동을 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불편하다. 또한 전통형 운동회의 단점인 지나친 연습으로 인한 교사의 업무 가중과 학생들의 피로감 등의 문제도 필연적으로 남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평소 이루어지는 신체활동을 기반으로 힘과 지혜를 겨루는 활동에 초점을 둔다. 운영 방식은 학년당 단체 경기나 매스게임 중 1개와 개인달리기를 실시하되, 연습은 최소화한다. 그리고 3개 학년이 한 모둠을 이루어 학부모들이 진행요원으로 운영하는 부스를 방문하여 과제를 수행한다.5 이 경우 모둠별 활동은 긴 줄넘기나 큰 공 넘기기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종목으로 구성하되, 별도의 연습 없이도 체육교육의 효과를 살리고 교사들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운영한다. 단, 청백 계주는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교사의 의견을 반영하여 실시 여부를 정한다. ● 미래형 운동회③ _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지역사회형 운동회 기성세대의 추억 속에 자리 잡은 운동회는 지역 주민들이 학생들의 활동을 함께 지켜보며 학교교육에 동참하고 후원을 하는 자리였다. 더 나아가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껏 즐기는 기회였으며, 마을 간 대항전을 통해 공동체의 단합을 도모하는 장이기도 했다. 이러한 마을과 지역이 함께하는 좋은 전통은 오늘날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지역 전래의 민속놀이와 같은 지역 전통문화를 운동회 프로그램에 접목한 새로운 형태가 필요하다. 어느 고장·지역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래 민속놀이를 학생들이 운동회에서 공연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특히 민속놀이를 지역 주민들이 방과후 자원봉사자로 지도한다면 그 효과는 더 클 것이다. 이는 학생들에게 마을 조상들의 전통을 이해시키고, 전통을 보존하려는 정신을 함양하는 데 큰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경기도 고양시에 자리한 백석고등학교는 1992년 개교했다. 일산 신도시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고등학교다. 2000년대 초반 ‘비평준화’ 체제 속에서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문고로 꼽혔다. 한 반에 절반 이상이 소위 SKY 대학에 합격할 정도로 대학 입시 성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 일간지가 주관한 전국연합 학력경시대회에서 전국 1위를 차지한 것은 지금도 회자되는 기록이다. 당시 백석고에서 평교사로 근무했던 김영인 교장은 그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교무실 앞에는 선생님에게 질문하기 위해 줄을 선 학생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희미한 복도 불빛에 의지해 책을 펴고 있었다”며 “특히 국어·영어·수학·과학 같은 주요 과목 질문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지금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백석고는 여전히 지역의 대표적인 명문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달 백석고는 전국에서 단 25개교만 선정된 자율형공립고 2.0(이하 자공고)에 이름을 올렸다. 자공고는 학교가 지자체·대학·기업 등과 협약을 맺고, 지역 자원을 활용해 자율적인 교육모델을 운영하는 제도다. 자공고 지정은 백석고가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이어간다’는 차원을 넘어, 앞으로의 교육혁신을 이끌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실제 백석고는 자공고가 되면서 AI 교육에 특화된 학교로 탈바꿈한다. 교과수업은 물론, 동아리와 방과후활동까지 AI를 활용한 교육이 이뤄진다. 한국항공대, 경기 북부 AI 캠퍼스 등과 손잡고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AI 활용교육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교육과정을 운영함으로써 사실상 국내 유일의 ‘AI 특목고’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게 된다. 김 교장은 “AI는 이미 학생들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10년, 20년 뒤 사회는 지금과 전혀 다를 것”이라며 “공교육 안에서 AI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시대적 과제”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AI는 특정 전공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백석고는 자공고에 선정되면서 인근 초·중·고교와 연계·협력을 통해 경기 서북부 지역의 AI 교육 거점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지역 내 학교들과 교육과정을 공유하고, 학생들이 서로 다른 학교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개방할 계획이다. 나아가 학술제와 세미나를 공동 개최해 학생들이 함께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김 교장은 “미래 사회의 핵심 역량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능력”이라며 “학생들이 프로젝트와 협업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을 경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학교는 학습터이자 삶터 … 지금이 행복해야 미래도 행복 지난 2020년 9월 백석고 교장으로 부임한 김 교장은 평교사 시절 고3 담임과 학년부장을 전담하다시피 한 진학전문가로 명성을 날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 출제와 검토를 2005년부터 2009까지 5년 동안 했고, 경기도교육청 주관 전국연합학력평가 출제위원·컨설팅위원·출제팀장을 역임했다. EBS 교재 등 각종 학습서를 집필했으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전국 사회과 교사 평가 전문성 연수를 도맡다시피 했다. 아울러 교원임용고시 출제 및 채점, 교육전문직원 선발 평가위원, 교육장 평가위원, 경기도교육청 서·논술형 평가 출제위원, 경기도교육청 교사논술동아리 회장 등 수업과 평가 분야에서 독보적인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백석고 교장으로 부임한 직후 학교구성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학교상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뒤 협조를 구했다. 그가 제시한 새로운 학교상의 핵심은 네 가지였다. 첫째, ‘집보다 좋은 학교’다. 학교가 단순한 학습의 공간이 아니라 집처럼 편안하고 안전하며 친밀한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둘째,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라 ‘학부모와 같은 교사’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심리와 정서까지 돌봐주는 역할을 포함해 교사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내 자녀처럼 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학부모는 단순히 자녀만 챙기는 존재가 아니라 ‘스승과 같은 학부모’로서 자녀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직접 시도하고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운영되길 원했다. 즉 학교는 학생들의 요구와 참여 속에서 진정한 학습이 이루어지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비전이었다. 김 교장은 이러한 철학을 교사뿐 아니라 행정실과 급식실 직원들에게도 동일하게 강조했다. “행정실 직원도 행정으로 아이들을 돕는 교사이며, 급식실 직원도 학생을 위해 헌신하는 교육자”라며, 학교구성원 모두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공유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교사들에게는 학교가 단순히 학습공간으로만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각별히 주문했다. “학교는 아이들의 학습터이면서 동시에 삶터이다. 아이들이 지금 행복을 경험해야 미래에도 행복을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학생들에게는 학습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 교사와 직원들에게는 삶과 배움이 함께 이루어지는 터전으로 학교가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악성 민원, 백석 하이패스로 해결 … 학부모 목소리 존중해야 그래서일까. 김 교장의 학교운영은 남다르다. 특히 교육현장의 최대 현안인 민원 대응 정책은 일품이다. 백석고는 지난 2020년부터 ‘백석 하이패스’라는 민원 대응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백석 하이패스’는 교장·교감·교무부장·행정실장 네 사람으로 구성된 민원 대응 전담팀을 일컫는다. 교사가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김 교장이 주도해 만들었다. 그는 “학생들이 안전하게 교육받으려면 교사가 안전해야 한다”며 “교사들이 긴장과 불안 없이 출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학교장의 책임”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백석 하이패스는 민원의 경중에 따라 처리 방식도 달리한다. 단순한 안내는 교무부장이나 행정실장이 맡고, 좀 더 복잡한 사안은 교감이 담당하며, 원한다면 교장에게 직접 말할 수 있도록 열어 두었다. 실제로 김 교장은 매년 수차례 학부모와 학생들의 민원을 직접 듣고 해결해 왔다. 악성 민원에 대해서는 학교 차원의 적극적이고 공정한 대응으로 문제를 풀어 나간다. 악성 민원이 발생하면 해당 교사는 민원 대응의 최전선에서 제외한다. 대신 학교에 구성된 관련 위원회에서 조사와 응대를 맡는다. 예를 들어 체험학습 관련 민원은 ‘현장체험학습 활성화 위원회’가 맡아 처리하고, 모든 과정은 사실 중심으로 기록해 교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당사자가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서 벗어나고, 편견과 억측 없이 객관적인 절차가 유지된다. 더 나아가 학교는 모든 민원 처리 과정을 문서화하고, 필요하면 학부모회 대표나 학생회 임원까지 참여시키며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교사의 교육 활동권을 철저히 보장하되 동시에 학부모의 목소리도 존중하는 균형을 통해 교육공동체가 신뢰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학교가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 되기 위해서는 교직원 간의 문화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김 교장은 교사들에게 “곁의 동료가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의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방치하는 학교문화가 아닌 서로 손을 잡아주고 곁을 내어주는 동료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백석고는 학생들도 남다르다. 이 학교는 2021년부터 ‘학생리더제’를 통해 학생 주도 프로젝트를 교육과정의 핵심으로 삼아 운영하고 있다. 보통은 각 교과별로 담당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수업하지만, 백석고에서는 학생이 선생님이 돼 교과주제를 정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생 주도형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수업을 하고자 하는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를 정해 교육과정부에 제안하고, 학습목표와 차시별 계획, 기대되는 학습효과까지 발표한다. 이후 담당교사의 심사를 거쳐 보완점을 반영하면 정규교과시간에 해당 내용으로 수업할 수 있다. 강좌를 개설한 학생은 홍보물을 직접 제작해 복도에 부착하고, 다른 학생들은 이를 보고 수업을 선택한다. 학년 구분이 없는 무학년제로 운영되는 것이 특징. 실제 1학년 학생이 교사가 돼 2·3학년 학생이 수업을 듣는 경우도 흔하다. 글쓰기· 낭독교육 활발 … 교사들 열정에 학부모들 감사의 눈물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함께 책 읽고, 함께 글쓰기’ 프로그램이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전쟁과 평화 또는 일리아드 오디세이 같은 장편 고전을 읽고 토론하며, 이후 글을 쓰는 과정을 정례화했다. 단순히 학생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교장까지 함께 참여한다. 이렇게 집필된 글은 매년 두 권씩 책으로 묶여 ‘하얀섬돌’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고 있다. 시·소설·에세이 등 장르의 제약 없이 학생들이 자유롭게 창작한다. 글만 쓰는 게 아니라 낭독도 강조한다. 김 교장은 “생각은 말로 나오는 것이다. 듣는 아이로 만들지 말고, 말하는 아이들로 만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글쓰기와 낭독회·토론회를 통해 말하기와 사고를 강조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학문적 성장을 돕는다. 백석고는 불이 꺼지지 않는 학교다. 지난 2021년부터 3학년의 경우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 21시까지 도서관 자기주도학습을 운영하고 있다. 방학 중에도 원하는 학생들은 오전 9시부터 17시까지 자기주도학습을 하도록 도서관을 개방한다. 올해는 특히 오전 7시부터 8시 30분까지 얼리버드학습반도 운영하고 있다. 1~2학년 학생 100여 명이 매일 도서관에서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등 향학열을 불태운다. 학교 측의 열정에 학부모들은 깊은 신뢰를 보낸다. 일부 학부모들은 눈물을 흘리며 교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한다. 백석고가 전통의 명문으로 불리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올해 5월 교육부에서 발표한 ‘2024학년도 교육활동 침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4학년도 전국 지역교권보호위원회의 개최 건수는 4,234건이었다. 2023학년도 5,050건에 비해 감소하였으나, 초등학교의 경우 오히려 늘어났다(2023학년도: 583건 → 704건). 이는 교육활동 침해의 저연령화, 특히 보호자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의 증가라는 추세를 의미한다. 필자 역시 서울 소재 학교들에 직접적인 법률 자문을 하며, 보호자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가 늘어나고 있음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최근에는 학교에 대한 보호자 민원에 ChatGPT 등 AI까지 동원되는 것을 보고 달라진 추세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렇게 현장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됨에 비하여 우리의 제도 개선은 너무 느리다. 사실 제도에 대한 비판은 쉽지만,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보호자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제도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피해교원에 대한 심리적 지원과 같은 정책도 물론 필요하지만, 근절과 대책을 위한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부디 관련 정책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약간의 아이디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교육활동 침해 보호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 필요 보호자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에 대해 교권보호위원회에서 할 수 있는 결정은 ‘서면사과 및 재발 방지 서약’과 ‘교육감이 정하는 기관에서의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두 가지뿐이다(「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26조 제2항). 서면사과 및 재발 방지 서약은 이행하지 않더라도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고,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는 이행하지 않으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과태료는 형사적인 제제가 아니어서 경제적 부담 외에 특별한 불이익이 없다. 특히 보호자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이므로 그 자녀인 학생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고, 따라서 교원은 해당 학생을 계속 지도해야 한다. 결국 교원은 교육활동을 침해한 보호자와 분리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교육활동 침해 보호자의 보복이 발생하는 일도 생긴다. 수업과 지도 방법에 관한 계속된 민원이나 상담의 요청, 극단적으로는 교원을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방식이다. 학교는 공공기관이므로 민원에 응해야 하며, 학생에 관한 상담이란 명분으로 요청하는 면담을 거부할 수도 없다.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교사는 설령 억울할지라도 경찰의 수사에 대응해야 한다. 아동학대 사건은 의무적으로 검찰로 송치되어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받기까지 적어도 수개월이 소요된다. 이는 첨단 무기를 들고 온 상대방에게 맨주먹으로 대응하는 셈이다. 이러한 보복의 우려는 교원들이 교육활동 침해 피해를 당했음에도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망설이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물론 현행법에서도 보호자의 교육활동 침해가 범죄까지 되는 행동이라면 피해자인 교원이 고소하는 등 법적인 절차에 나설 수 있다. 또 교원을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것에 대해 무고로 응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법리적으로 쉽지 않다. 계속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행동이 범죄가 될 수 있을까? 「형법」에 따르면 공무집행방해죄나 업무방해죄가 고려될 수 있다. 그런데 「형법」의 공무집행방해죄 관련 규정을 들여다보면 공무집행방해의 방식을 ‘폭행 또는 협박’, ‘위계’로 한정하고 있다. 때리는 행동이나 위협하는 언행, 허위의 신고를 하는 등으로 매우 제한되는 것이다. 업무방해죄는 ‘위력’이 포함되어 공무집행방해보다 그 범위가 넓지만, 대법원은 공무원이 직무상 수행하는 공무를 방해하는 행위는 공무집행방해죄가 별도로 있으므로 업무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대법원 2009. 11. 19. 선고 2009도4166 참조). 따라서 공무원인 교원은 업무방해죄로 보호받을 수 없고, 공무집행방해죄의 인정 범위는 너무 좁다. 무고죄는 또 어떠한가? 흔히들 무고죄가 존재하는 이유는 억울하게 고소당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무고죄의 주된 목적은 국가의 형사사법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국가를 속이는 행동을 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다. 개인이 부당하게 처벌받지 않게 하는 것은 부수적인 목적일 뿐이다. 또한 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의 관점에서 쉽게 무고죄를 인정하게 된다면 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무고죄의 인정은 매우 엄격하게 판단한다. 보호자가 폭행이나 협박과 같이 드러나는 방법을 통해 교원을 괴롭히는 것은 드물다. 아동학대 신고의 경우에도 자녀인 학생이 피해를 주장하기에 고소하게 된 것이지 허위는 아니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보호자의 교육활동 침해가 현행의 법체계에서 범죄로 인정되기가 극도로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에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이 필요하다. 보호자들도 자신들의 행동이 엄격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또 이를 통해서야 비로소 교원들도 교육활동의 보호가 충분히 이루어진다는 마음, 최소한 상대와의 무기가 대등해졌음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접근금지 등 학교에서의 배제를 위한 근거 필요 물론 형사처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자녀의 일로 어려움을 겪어 민원을 제기하다 보니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여 과도한 언행을 할 수도 있다. 교원들도 이런 경우까지 무조건 보호자의 형사처벌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같은 행동이 반복되거나 보복이 있지 않기를 바라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처벌 외에도 법원을 통한 접근금지 등이 가능하게 구성하는 것이 어떨까?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검사는 아동학대 사안에서 행위자에게 형사처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생각될 때는 사건을 가정법원으로 송치하여 보호처분을 할 수 있게 규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보호처분의 종류 중에서는 행위자가 피해아동 또는 가정 구성원에게 접근하거나, 메시지를 보내지 못하게 하는 결정이 포함되어 있다. 비단 아동학대 사건뿐만 아니라 가정폭력범죄에 대해서도 유사한 규정이 확인된다. 아동학대·가정폭력 사건에 이런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는 취지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으므로, 당장 처벌한다고 하더라도 다시금 재발할 우려가 크니 이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고려가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보호자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는 학생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으니, 교원은 계속하여 해당 보호자의 자녀를 교육해야 한다. 이 때문에 가해자인 보호자와 피해자인 교원이 계속하여 만날 수밖에 없다.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사건과 유사한 지점이다. 이런 유사 법제를 고려하여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제도를 만들 수 있고, 입법 자체의 난이도가 몹시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캐나다 등 해외 각국에는 교원과 보호자를 분리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고, 보호자를 학교교육 참여에서 일부 배제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고려하면 세계적 표준에서 배치된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산발적 민원 제기 방지를 위해 대한 통합적 처리 절차 필요 학교는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행정기관으로 해당 법에서 정한 절차와 규정에 따라 민원을 처리해야 한다. 또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교육감의 지도·감독의 대상이 되므로 교육청을 통하여 제기된 민원에 대한 처리 과정에 협조해야 하며 감사나 특별장학이 있는 경우 이에 응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교육청 외부 학생인권센터 등이 있는 시도에서는 이에 의한 조사가 별개로 진행되기도 한다. 그 외에 국민권익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 기관에 민원이 제기되는 일도 많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각자 개별적인 법률에 근거하여 운영되고 있고, 그에 따른 조사 권한과 권고 등 의견 표명에 대한 권한이 있다. 학교로서는 이에 응해야 한다. 결국 학교는 한 명의 보호자가 학교로 직접 제기하는 민원, 교육청에 제기하는 민원, 학생인권센터로 제기하는 민원,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 기관에 제기하는 민원 등 다수 기관의 동시다발적인 민원에 각기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학교폭력 관련 민원이 가장 흔한 편이다. 학교폭력 사안을 축소하거나 은폐했다는 내용, 조사 과정에서 강압적이었다는 내용, 피해·가해학생의 분리가 부적절했다는 내용, 처리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불만족, 예방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책임 추궁 등이 주를 이룬다. 문제는 이를 처리하는 기관마다 학교폭력에 관한 법령이나 절차 등에 대한 부분, 학교라는 기관의 특징이나 현장에 대한 이해도 차이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규정과 사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각 기관의 담당자들에게 설명하고 이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학교의 민원 처리 담당자와 민원의 대상이 된 교원들의 고충이 극심하다.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답변서와 관련 자료를 매번 정리하는 일만 하더라도 행정력 낭비가 심하다. 일부 보호자들 역시 이를 알고 있기에 소위 ‘민원 폭탄’ 방식으로 악용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학교 민원에 대한 통로를 하나로 통합하여, 학교가 다수 기관의 민원 처리 요청에 시달리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기존 학교 내부 민원대응팀 구성이 한계가 있음을 고려하여 교육청 등 학교 외부에서 민원을 공정하고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관을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현행 중복적이고 방만한 민원 처리 시스템을 정리한다면 필요한 인력이나 예산은 오히려 절감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부양가족이 있는 교원에게는 가족수당을 지급하게 됩니다. 가족수당 지급 요건을 명확히 알지 못해 추후에 환수 조치를 당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족수당의 부양가족 지급 요건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근거: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제3장(가계보전수당) 부양가족 기본 요건(다음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함) 1) 부양의무를 가진 공무원과 주민등록표상 세대를 같이 하여야 한다. 2) 해당 공무원의 주소 또는 거소에서 실제로 생계를 같이 하여야 한다. 3) 공무원수당규정 제10조 제2항 각 호에 해당하는 부양가족이어야 한다. 부양가족의 범위 1. 배우자(혼인관계가 성립된 경우로서 사실혼은 제외한다.) 2. 본인 및 배우자의 60세(여자인 경우는 55세) 이상 직계존속(계부 및 계모를 포함한다. 이하 이 호에서 같다)과 60세 미만 장애가 있는 직계존속 *직계존속은 조부모(외조부모 포함) 및 부모(양부모 포함)를 말한다. 3. 본인 및 배우자의 19세 미만 직계비속(재외공무원인 경우는 자녀로 한정한다)과 19세 이상 장애가 있는 직계비속 *여기서 직계비속은 자(子) 및 손(孫, 외손 포함)을 말한다. 4. 본인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중 장애가 있는 사람, 또는 부모가 사망‧장애로 부양능력이 없는 경우의 19세 미만 형제자매 지급액 •배우자: 월 40,000원 •직계존속・비속(배우자‧자녀 제외): 1명당 월 20,000원 •자녀 - 첫째 자녀: 월 50,000원 - 둘째 자녀: 월 80,000원 - 셋째 이후 자녀: 월 120,000원 ※ ‘셋째 이후 자녀’란 19세 미만 자녀 중 셋째부터 해당되며, 가족관계증명서 등으로 입증해야 함. 셋째 이후 자녀 수당 지급 예시 - 첫째 또는 둘째 자녀가 19세 이상이 된 경우: 지급 - 첫째 또는 둘째 자녀가 사망한 경우: 지급 - 이혼 후 실제 양육 자녀가 3명 미만으로 줄어든 경우: 미지급 - 재혼으로 양육 자녀가 3명 이상이 된 경우: 지급 - 셋째 이후 자녀가 장애인으로서 19세 이상인 경우: 지급 변상 1) 소속 공무원이 가족수당을 과다 지급 받은 경우 : 소속기관장은 전액 환수 조치(소멸시효 5년 이내) * 소멸시효에 관하여는 「국가재정법」」제96조 제1항(5년) 2) 소속 공무원이 거짓으로 가족수당을 지급 받은 경우 : 소속기관장은 전액 환수 + 최대 1년간 가족수당 지급 정지 + 징계조치 3) 부부 공무원의 이중 수급 : 소속기관장은 전액 환수 + 최대 1년간 가족수당 지급 정지 + 징계조치 유의사항 1) 가족수당은 부부 공무원 중 1인에게만 지급 2) 지급 요건 충족 여부는 가족관계증명서·주민등록등본 등을 통해 반드시 확인 3) 요건 미비 또는 허위 신청 시 환수 및 징계 처분 가족수당 QA Q. 부부 공무원 중 한쪽이 육아휴직 시 가족수당 지급 여부는? A. 육아휴직자는 육아휴직수당만 지급받으므로 가족수당 지급 불가. 배우자가 가족수당을 새로 받으려면 ‘부양가족신고서’와 ‘상대방 동의서’를 제출해야 함. Q. 사립학교 교원으로서 가족수당을 지급받고 있는 경우, 배우자인 공무원도 가족수당을 받을 수 있는가? A. 사립학교 교원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등에 따른 인건비 보조를 받고 그 기관에서 가족수당을 받는 경우, 공무원 배우자에게 가족수당 이중 지급 불가. 단, 인건비 보조를 받지 않는 사립교원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공무원 배우자가 받을 수 있음.
중대한 교육활동 침해 조치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토록 하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정성국 의원(국민의힘)은 학생이 교원을 폭행하는 등 중대한 교권 침해로 출석정지 이상의 조치를 받을 경우, 그 내용을 학생부에 기록하도록 하는 교원지위법 개정안을 1일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학생부 기록은 입시에 불이익을 주기보다는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실효적으로 교권 침해를 예방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며 “교사·학교를 존중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학생 다수의 학습권을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한국교총은 1일 “무너진 교실을 바로 세우고, 학교 현장에서 수년간 일관되게 요구해 온 과제가 발의된 것은 교권 보호를 위한 실질적 조치로서 의의가 있다”며 환영했다. 이어 “학생 간 학교폭력 가해 사실은 학생부에 반드시 기재되는 반면, 교사에 대한 폭행과 같은 중대한 교권 침해가 기록되지 않는 것은 법적 불균형이자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며 “학생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명확한 책임감을 부여하고, 자신의 문제 행동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인식을 통해 강력한 예방 효과를 발휘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교총은 2023년부터 ‘교권 침해 학생부 기재’를 위해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전방위적 활동을 펼쳐왔다. 2023년 7월 교총이 실시한 교원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3만2951명 중 89.1%가 학생부 기재 찬성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교원 대상 학생의 폭행 사건은 심각한 수준이다. 교총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4월 충북의 한 고교생이 학교장과 교직원 등을 흉기로 공격하고, 5월에는 수업 중 학생이 야구방망이로 교사를 폭행해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수업일 기준 매일 2~3명의 교원이 폭행을 당하고 있다. 강주호 교총 회장은 “선생님이 폭행당하고 성희롱당해도 아무런 공식 기록이 남지 않는 현실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면서 “학생부 기재는 교권 보호의 마지막 보루이자 교실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회를 향해 “89%에 달하는 현장 교원들의 절박한 요구에 응답해야 할 것”이라며 “조속한 법안 심사와 통과에 적극 나서달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 가운데 가장 걱정되는 것이 학교폭력 문제입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늘 긴장되는데, 막상 사안이 터지면 해법을 찾느라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폭 사안에서 교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사안을 처리하되 안일하게 대처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학폭 상황을 ‘단순한 장난’ 정도로 치부하거나 ‘아이들끼리 흔히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면, 피해 학생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자칫 학부모와 교사, 또는 학교 사이의 새로운 갈등이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학생 행동 관찰하기 교사는 무엇보다 이런 사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평소 예방에 초점을 두고 꾸준히 지도해야 합니다. 피해 학생이 보이는 특유의 징후를 재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해 학생들은 평상시와 달리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안해 보입니다. 교과서나 필기구 같은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아 야단을 맞기도 합니다. 교복이 젖어 있거나 찢겨 있어도 별일 아니라고 대답하고, 코피가 나거나 얼굴에 생채기가 있어도 괜찮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교무실로 와서 선생님과 어울리려 하고, 자기 교실보다는 다른 반을 떠돌아다닙니다. 자주 점심을 먹지 않거나 혼자 먹을 때가 많고, 학교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며 지각이나 무단결석을 하기도 합니다. 학폭이라 하기에는 애매해 사안 조사로 넘어가지 않았지만 학부모가 불편함을 호소할 경우에 각별히 주의해 대화하는 게 좋습니다. 교사가 직접 관찰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정확한 정보 외에는 불필요한 말은 아예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할 말만 추려서 메모한 후 필요시 그 내용만 전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에 근거한 말만 해야 예를 들어 "이번 일은 수영이가 잘못한 부분이 큽니다. 수영이가 평소에 재욱이를 자주 놀려서 이 부분을 불편해했거든요. 이번 일은 수영이가 원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겠네요"라고 교사의 판단과 견해를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대신 "수영이와 재욱이가 목요일 점심시간에 급식실 앞에서 다투었습니다. 수영이가 재욱이를 놀려서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당시 주변에 있었던 세 명의 학생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다른 학생들 진술도 있습니다"처럼 육하원칙에 근거해 객관적 사실과 구체적인 근거만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자칫 누구 한쪽의 편을 든다거나, 교사가 학부모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또 다른 민원의 소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피해 의심 학생에 다가가기 담임교사는 사안을 인지하는 즉시 업무 담당교사와 관리자에게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학폭 사안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담당자의 안내에 따르면 됩니다. 학폭 사안 처리는 정해진 절차와 매뉴얼이 분명합니다. 담임교사의 직접적인 개입이나 면담, 또는 상담 등이 학폭 접수와 진행 등의 과정에선 배제돼 있습니다. 피해가 의심되는 학생에게는 "선생님이 요즘 네가 힘들어 보여서 걱정이 된다. 혹시 무슨 일이 있니?"라고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학생이 선뜻 말하지 못하더라도 "언제든 이야기하고 싶을 때 선생님을 찾아오렴.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학폭은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공동체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교사들이 과도한 부담감에 시달리지 않고 본연의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학생들에게도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교사들의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실질적 지원을 보내는 것이 진정한 학교폭력 예방의 첫걸음입니다. 김성효 전북 군산동초 교감 상처받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는 교사의 말 기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