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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하다. 하늘이 높지만 지금보다 더 높은 때는 없는 듯하다. 바람은 붉게 물든 나뭇잎과 함께 춤을 추니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밤의 길이가 길어지는 추분(秋分)을 맞이하였다. 백곡이 풍성한 때임을 알리는 날이 다가왔다. 올해는 우레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우레소리가 비로소 그치는 날이 되었다. 동면할 벌레들이 울음소리를 그치고 흙으로 창을 막을 때가 되었다. 땅 위의 물이 마르기 시작함을 알리는 때가 되었다. 다만 가을이 옴을 아쉽게 여긴 듯 늦더위는 시샘을 한다. 낮 더위는 여름 못지않다. 하지만 대세는 꺾을 수가 없다. 물러나지 않을 수 없다. 시샘을 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멸시하고 깔보는 날씨도 별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힘을 발휘해도 힘을 쓰지 못한다. 아무리 잘난 체하여도 잘나 보이지 않는다. 자연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다. 주(周)나라는 이(夷)가 달린 부족들을 멸시하고 깔보는 습관이 있었다. 동쪽에 있는 변방인 동이족(東夷族)을 주(周)나라는 늘 멸시하였다. 사람들을 낮추어 보았다. 하지만 인물은 이런 곳에서 났다. 동이족(東夷族)에서는 순임금이 났고 서이족(西夷族)에서는 문왕(文王)이 났다. 둘 다 성인이다. 둘 다 태어난 곳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시대도 달랐다. 서로의 거리가 천여 리가 되고 세대가 천여 년이 된다. 그렇지만 그들의 뜻은 같았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맹자의 八 .이루장구하의 제1장에 “뜻을 얻어 중앙의 지역에서 행해진 것은 부절(符節)을 합한 듯이 똑같았다.”고 하였다. 부절(不節)은 죽(竹), 옥(玉), 금(金) 등으로 만든 패에 글자나 그림을 새긴 뒤에 둘로 찢어서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서로를 증명할 때 맞추어보는 신표(信標)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이 있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모든 것은 변화가 많아서 인생의 길흉화복을 예측할 수 없기에 교만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잘난 체해서는 안 되고 남을 깔보거나 멸시하는 것도 안 됨을 가르쳐 주고 있다. 주(周)나라가 변방의 부족들을 멸시하는 뜻에서 언제나 이(夷)를 붙이곤 했다. 깔보는 습관, 멸시하는 습관을 가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그런 위치에 있게 됨을 알게 될 것이기에 언제나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을 지녀야 하겠다. 특히 우리 선생님들은 더욱 그러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스스로 낮아져도 주위에서 보는 눈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순임금과 문왕처럼 천명(天命)을 따르라고 하는 것이다. 천명(天命)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 있어도, 어떤 위치에 있어도, 어떤 딱한 입장에 있어도 변명을 앞세우지 않고 주어진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순임금이 그러했고 문왕이 그러했다. 태어난 곳이 변변찮아도 사는 곳이 서로 다르고 시대가 달라도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들의 마음은 일치하였다. 그러기에 이들은 성인(聖人)이란 말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근무를 해야 하는 선생님도 계실 것이다. 요즘 젊은 선생님들로부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열심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렵고 힘들수록 자기가 선 곳에서 낮은 곳을 보면 이겨낼 수 있다. 배부른 소리, 교만한 소리, 감사할 줄 모르는 소리는 하지도 말고 듣지도 않는 것이 자기를 지키는 길이고 자기를 이기는 길이다. 주어진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자기의 자리를 굳게 지키기가 힘들다. 더욱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순임금과 문왕처럼 오래도록 이름이 알려지고 견고해질 수가 있다.
정화예술대(총장 허용무)가 올해 신설된 관광학부 항공서비스전공 1학년생 70명을 대상으로 아시아나항공 현직 승무원들이 직접 지도하는 승무원 체험 프로그램(9월 23일, 25일, 30일)에 참여한다.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실습 프로그램에서는 부드럽고 밝은 표정과 음성, 걸음걸이와 자세 교정을 통한 밝고 생기 있는 이미지 메이킹 교육과 함께 서비스 롤 플레이, 유니폼 착용법 등 현장에서 필요한 노하우들을 실습한다. 정화예술대 관광학부 교수진은 국내 항공사인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외국 항공사 캐세이퍼시픽 승무원 출신으로 현장 경험과 실무를 바탕으로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다. 정화예술대 관광학부 항공서비스전공과 호텔관광경영전공은 현재 2014년도 수시 1차 신입생 모집 중에 있으며, 원서접수마감은 10월 1일까지다.
지난해 8월 학교운영비 징수 위헌 판결로 올 3월부터 중단됐던 중학교원 연구비가 부산에서 첫 소급 지급됐다. 이어 울산과 세종도 관련 규칙을 개정‧공포하면서 내달 중 소급 지급하기로 해 ‘관망’ 자세를 보이던 여타 시도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부산교육청은 5일 관내 중학교에 ‘중학 교원연구비 지급 안내’ 공문을 보내 지난 17일 중학교원들에게 3월부터 중단했던 교원연구비를 일제히 소급 지급했다. 시교육청은 1일 ‘공립유치원 및 학교회계 규칙 일부개정규칙’을 공포함으로써 일찌감치 지급 근거를 마련했다. 개정 규칙은 △중학교 근무 교원에게 연구비 지급 조항 신설 △공무원 수당규정 등 법적근거 마련 시까지 한시적 시행(부칙) △ 미지급 중학 교원연구비 3월부터 소급 지급(부칙)이 골자다. 부산 모 중학 교사는 “한번 중단된 거라 쉽지는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9월 봉급에 맞춰 지급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울산은 부산과 같은 내용의 개정 규칙을 12일 공포하고 지급 안내 공문도 일선학교에 시달했다. 세종도 26일 개정 규칙을 공포, 곧 안내공문을 중학교에 보내 내달 중에는 연구비를 지급할 방침이다. 울산 담당자는 “내달 급여일 전에라도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충북은 지난 7월초, 교육감 지침으로 학교운영기본경비에서 우선 소급 지급하도록 했다. 해당 예산은 10월, 11월 중 추경을 통해 보전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일부 중학교에서는 교원연구비를 지급한 상태다. 4개 시도의 소급 지급에 관망세를 유지하던 일부 시도의 규칙 개정과 연구비 지급에도 탄력이 붙을까 기대된다. 하지만 9월 24일 현재, 서울, 경기, 강원, 경북 등 여타 시도는 법 체계 상의 문제, 일반직노조의 반발 등을 이유로 여전히 지급을 꺼리고 있다. 이들 교육청 담당자들은 “중앙 부처가 보다 확실한 법령상의 근거를 마련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반직 노조 반발도 겹쳐 있어 교육청 차원의 규칙개정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상급 교육기관의 행정 의지에 따라 연구비 지급이 시도마다 들쭉날쭉 하면서 현장 교원들의 불만만 커지고 있다. 서울 모 중학교사는 “초등이 수당규정 개정으로 연구비를 보전해 주는 것과 달리 중학교원만 차별적으로 중단하더니 이제는 상급기관 간 엇박자로 시도 간 처우 격차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안행부와 교육부는 정부 차원의 지급 근거 마련을 위해 협의를 진행 중이다. 교육부 교원복지연수과 담당자는 “교육부의 소관 법령 내에 근거규정을 마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밝혔다. 교총 이재곤 정책지원국장은 “중앙 정부 차원의 관련 법령 마련을 서둘러 시도에 따라 차별 지급되는 현실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잔잔히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한가로이 날아다니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농촌의 작은 교정에 속삭이듯 다가왔다. 대도시에 비해 독도교육에 소외된 농·산·어촌학생들을 위한 ‘제3회 찾아가는 독도전시회’가 23일 강원도 평창 호명초(교장 박현광)에서 열렸다. 교육부(장관 서남수)와 영남대 독도연구소(총장 노선균)는 교육부가 주관하고 있는 전국 순회 ‘독도전시회’에서 소외될 수 있는 농‧산‧어촌 지역 학교 학생에게도 올바른 독도교육을 시키고자 전국에 독도지킴이거점학교 5개교를 선정하고 ‘찾아가는 독도전시회’를 개최해 관내 학교 학생과 학부모, 지역주민들을 초대해 독도 영상과 사진, 고지도 및 역사문헌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독도교육 전문가들이 직접 학교를 찾아와 학생들과 대화하며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의 역사적, 지리적 소중함과 일본의 영유권 주장의 부당성을 알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전시장을 둘러본 5학년 김은회 학생은 “독도의 사계절 사진을 보니 신기하고 재밌었다”며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앞으로 독도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찾아가는 독도전시회’는 올해 4월 충남 운곡초를 시작으로 5월 전남 고흥중을 거쳐 이번 강원 호명초를 마치면 10월 충남 만리포고와 11월 전북 적성초를 찾아갈 예정이다. 전시회는 27일까지 진행된다.
안산대(총장 김주성) 금융부동산정보과는 12일 ‘제2회 전국고교생 금융경제 경진대회’ 시상식을 가졌다. 이번 경진대회는 안산대 금융부동산정보과가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사, 한국생산성본부, 안산상공회의소, 기업은행, 동양정보서비스, 유비온, 유진투자선물, 옵투스투자자문, 클라세스튜디오, MX트레이드, 하베스트, 트레뉴 등이 후원했다. 대상인 안산대 총장상은 이광민(서울금융고) 군이, 금상인 한국경제신문사장상은 이명원(서울국제고), 김건우(용인외고) 군이 차지했다. 은상인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상은 김승환(신성고), 안태민(안산디자인문화고) 학생이 각각 수상했다. 동상은 김길수(대일외고), 박건호(서울금융고), 이준희(우성고), 특별상은 김규현(용인외고), 김민철(신성고), 장석원(서울금융고), 김민성(서울금융고), 박새봄(권선고), 송수현(부천정보산업고) 학생 등이 수상했다. 학교 단체전 대상으로는 부천정보산업고가, 우수상은 안산디자인문화고, 평촌경영고가 차지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지도교사상이 신설돼 안산디자인문화고, 부천정보산업고, 평촌경영고, 서울금융고, 경기모바일과학고, 성남금융고, 권선고 등이 선정됐다. 오윤탁 금융부동산정보과 학과장은 “글로벌 경제가 어려울수록 금융경제 지식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미래의 금융 강국을 책임질 고교생들이 금융경제 경진대회를 통해 금융∙IT 융합 기술을 선도하는 최고 금융전문인으로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 학과장은 “특히 이번 경진대회가 행사 후원과 협찬을 해준 산업체 기관과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기반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 행사에는 대학과 산업체 인사들이 직접 참석해 고교생들에게 시상 및 격려를 하며 미래 금융경제 인재 양성에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이번 추석연휴에 재미있게 본 TV 프로그램으로 평소 자녀교육에 소홀한 4명의 아빠들이 엄마의 도움을 전혀 받지않고 48시간 자녀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가 음식을 못먹으면 영양실조가 있듯이 어릴때 아버지의 교육이 부족하면 부성실조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닐지 하는 우려가 이번 연휴 언론기관에 보도되었다 즉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에 의해 2013년 9월에 발표된 교육기본통계에 교원의 여성화에 관한 것이다. 먼저 교원 연령의 피라미드를 보면 10년 전 대비 20대와 35세~44세 교원은 감소하고, 45세~59세 교원 증가하였다. 즉 10년 전 대비 교원 연령층 상향 이동하였다. ‘03년에는 25세~29세, 35세~44세 교원의 비중이 특히 높았으나, ‘13년에는 25세~54세에 걸쳐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40대 초반의 교원 비율이 크게 감소한 반면, 50대의 교원 비율이 크게 증가하였다. 성별 연령대는 남성교원은 상향 이동, 여성교원은 하향 이동하였다. 남성 교원은 ‘03년 ’30대후반~40대초반‘에서 ’13년 ‘40대후반~50대초반’으로 이동하였으며 여성 교원은 전 연령대에서 증가하고, 다수 분포는 ‘03년 ’30대후반‘에서 ’13년 ‘30대초반’으로 이동하였다. 교원의 성별 추이를 보면 2013년 여성교원 비율은 지속 증가하고 성비 격차가 확대되었다. 전체 교원대비 여성교원은 68.5%로 전년대비 0.6%p 증가하여 여성교원 비율 증가 추세가 지속된다. 초등학교는 남 23.4%, 여 76.6%, 중학교 남 32.5%, 여 67.5%, 고등학교 남 51.9%, 여 48.1%로 나타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여성교원의 비율이 높고, 고등학교는 남성교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관리직 여성 교원 수를 보면 초등학교 교감이상 관리직의 약 1/3이 여성교원, 중학교는 약 1/4, 고등학교는 약 1/10이다. 교감이상 관리직 여성 교원 수는 초등학교 3,826명(32.1%), 중학교 1,301명(23.2%), 고등학교 420명(9.2%)으로 전년대비 각각 466명(13.9%), 32명(2.5%), 39명(10.2%) 증가하였다. 여성 관리직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05년부터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중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상대적으로 많은 여성 교원의 비율이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 언론에서 지적되고 있다. 가뜩이나 가정에서 아버지의 영향력이 감소되는 상황에서 학교에서도 남성교원의 비율이 적으면 양성평등차원에서 문제가 있을수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도 슈퍼맨이 돌아오게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남자교원들이 더 많이 들어오게 하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하겠다.
학교에는 코스모스가 제철을 만난 듯 바람 따라 춤을 추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이들에게 더욱 눈이 가는 것은 지난봄에 코스모스 씨앗을 곳곳에 뿌려놓았는데 척박한 땅이라 많이 죽고 민둥산과 뒷산으로 올라가는 자리에만 코스모스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척박한 땅, 어려운 여건을 잘 견뎌내고 이겨낸 코스모스에게 웃음을 보내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척박한 땅에서 끝까지 생명을 유지하며 잘 적응하는 짐승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염소이다. 염소 떼들은 척박한 땅, 풀이 제대로 나지 않은 땅에서도 굴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TV를 통해 본 적이 있었다. 우리들은 때때로 힘들고 어려우면 환경을 탓한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보호되는 것이 아니고 더욱 나약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길러내어야 세계 어디에서도 살아남지 않을까 싶다. 이번 추석을 전후해서는 날씨가 유난히도 좋았다. 맑고 구름 한 점 없었고 높기만 하고 푸르기만 하였다. 풍성한 한가위 둥근달도 우리들을 환히 비춰주었다. 가족을 만나고 친척을 만나고 고향의 자연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는 기쁨도 얻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일상생활을 해야 한다. 피곤이 채 가지 않았지만 우리의 할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어떤 환경에 처해도 잘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를 힘들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고 나를 미워하고 심지어 나를 죽음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해도 이를 극복하며 사람으로서의 가야할 길을 갈 수 있다면 그야말로 존경받는 위대한 인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순임금이 그러했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맹자의 七.이루장구상 마지막장인 제28장에는 순임금이 나온다. 순임금의 아버지인 고수는 후처의 꼬임에 빠져 두 번이나 순임금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 정도가 되면 순임금이 아버지를 어떻게 대했을까? 후처는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까지 미워하게 될 것이고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임금은 그러하지 아니하였다. 반대였다. 아버지의 사랑을 입는 것이 인(仁)이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인(仁)임을 알았기에 아버지의 사랑을 입으려고 애를 썼고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한 것이다. 정말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도 그러했다. 최악의 환경인데도 굴하지 않았다. 척박한 환경에서 지혜를 발휘하여 살아남은 염소와 같이 척박한 땅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코스모스와 같이 순임금은 살아남은 것이다. 많은 백성들의 본이 된 것이다. 많은 백성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박수를 보냈다. 가정마다 어버이 섬김이 지극했다. 가정마다 화목을 이루고 평안을 가져왔다. 그러해서 나라를 잘 다스리게 되었다.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실천하신 분이 순임금인 것이다. 인의 핵심을 아신 분이 순임금이었다.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인의 핵심임을 알았기에 그래도 실천하였고 그렇게 하여 기쁨을 누리게 되었고 대효(大孝)라고 칭찬을 받게 된 것이다. “순임금이 어버이 섬기는 도리를 다하여 고수가 기쁨을 이루었는데, 고수가 기쁨을 이루자 천하가 교화되었으며, 고수가 기쁨을 이루자 천하의 아버지 되고 아들된 자들이 안정되었으니, 이것이 대효(大孝)라고 하는 것이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수신(修身)하는 것이요 수신(修身)을 잘하면 가정이 안정되니 제가(齊家)하는 것이요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니 천하의 아버지가 되었으니 이게 바로 평천하(平天下)인 것이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대효(大孝)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큰 것에서 찾으면 어렵다. 작은 것에서 찾으면 된다. 행동하기 쉬운 것부터 찾으면 된다.
9월 22일 생태교통 행궁동 탐방기 미래 석유 에너지 고갈에 대비 직접 체험해 보는 세계 최초의 차 없는 즐거운 도시산책 한 달, '생태교통 수원 2013'이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22일 현재 8일 정도 남겨두고 있다. 대학생 e서포터즈 서일환, 윤혜민 학생과 함께 행궁동 일대를 돌아보았다. 생태교통을 즐기는 인파 속에서도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깨끗이 정비된 간판. 생태교통 이전엔 제멋대로의 크기, 글씨체, 색상에 붙어 있는 위치도 다 달라 도시미관을 해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미적 감각을 갖춘 간판이 호감을 준다. 또 달라진 점은 넓어진 거리. 아니다. 넓게 보이는 거리. 어찌된 일일까? 사실상 차도와 인도 합쳐서 거리는 같다. 과거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차도와 인도의 높이를 같게 하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차도와 인도 바닥 색깔이 같다. 그러나 경계는 있다. 물이 흐르는 배수로다. 보행을 가로막던 전신주도 지중화 되었다. 그 대신 가로수로 소나무가 들어섰다. 현재 차도와 인도 구분은 곳곳에 놓인 대형 무궁화 화분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 화분이 없다면 아마도 얌체족들의 주차공간이 되지 않았을까? 생태교통, 가장 중요한 사실은 도로의 주인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도로는 차량이 점령하고 사람은 차량의 위협을 받고 있다. 마을추진단 벽에 붙은 ‘2011년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통계 중 보행중 일어난 사고가 63%다. 또 해마다 어린이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다. 취재 도중 귀한 분을 만났다. 생태교통 주민추진단 도종호(75) 단장과 황현노(57) 부단장. 도 단장은 생태교통 이후의 일을 구상하고 있다. 바로 화서문로와 신풍로를 주민자치로 차 없는 거리를 만들겠다는 것. 주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차량은 이면도로와 주차장에 주차하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인터뷰 도중 ‘행궁동 배드민턴 대회’ 소식이 전해진다. 유인물을 보니 오늘 저녁 6시 화서문로에서 열리는데 접수는 현장에서 이루어진다고. 광고 문구가 ‘자동차가 사라진 행궁동, 화서문로의 저녁하늘을 셔틀콕으로 물들입니다’ 주민들 스스로 생태교통을 즐기고 있다는 증거다. 이 곳 지역 상가 매출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 출입이 많은 생태교통마을추진단 사무실 인근의 한식집, 행궁동사무소옆 주점 등 몇 곳은 손님들이 붐벼 매출이 상당히 늘었다고 귀띔한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으니 당연히 늘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실제로 화령전 앞 ‘은행나무 주점’을 보았다. 점포밖 자리까지 손님들로 꽉 차 있다. 주인을 직접 인터뷰하니 매출이 50∼60% 증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워낙 저렴하게 팔고 있어 이윤은 많지 않다고 고백한다. 메뉴판을 보니 빈대떡 3천원, 모듬전 1만원이다. 도 단장은 주머니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보여준다. 주민추진단 향후 사업계획이다. 담당조직, 운영계획 등이 표로 그려져 있다. 저전거 택시, 자전거 대여, 마을 해설사, 텃밭 가꾸기, 골목화단 노면 화분관리, 쌈지공원, 카프리 행사, 주차장 관리 등을 주민들이 맡아서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생태교통 수원 2013, 염태영 시장 말대로 무모한 도전이다. 그러나 수원시민들은 힘을 합쳐 잘 해내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에 앞장섰던 주민들도 세계적인 행사에 동참하고 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평소에 죽었던(?) 거리가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태교통으로 사람이 살아 숨쉬는 행궁동 거리가 되었다.
여교사가 많다고 해서 학교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여자 관리직이 많다고 해서 학교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학교에서 학생수의 남,여 성비가 크게 다르면 어쩐지 한쪽으로 성격이 치우치는 현상들이 보이는 것처럼 교직사회에서도 이런 문제는 있을 수 있다. 교사들의 성격에도 다소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남교사들은 보이지 않게 여교사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교사들이 들으면 펄쩍 뛸 수도 있지만 남교사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가령 무거운 물건을 들고 이동하는 여교사를 보면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학교행사에서 좀더 어려운 일들은 남교사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그렇다. 여교사들 입장에서야 스스로 할 수 있는데, 남교사들이 나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남교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들이 대략 나누어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교사의 비율이 70%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가만히 따져보니 우리학교도 사정이 만만치 않다. 전체 54명의 교사 중에 남교사는 7명 뿐이다. 비율로 보면 13%정도가 남교사이다. 교장이 남자이고, 교감이 여자이니, 전체 56명의 교원 중에서 남교원이 8명이다. 14%정도이다. 전국평균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한 비율이다. 비율보다 더 큰 문제는 남교사 7명 중 6명이 50대이고 40대가 1명이라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40대 이하의 남교사는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여교사의 비율이 더욱더 높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정규직 교직원까지 합하면 교원+정규일반직=60명이다. 이 중에서 일반직에 남자 직원이 2명 있으니, 60명 중에서 10명이 남자이다. 그렇게 해봐야 남자는 16%이다. 교직원까지 합해도 남자의 비율은 아주 낮다. 물론 우리학교의 경우는 다른 학교에 비해 남자의 비율이 낮은 편이라고 한다. 그래도 남자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남자들이 많이 부족한 것이다. 기간제 교사를 남자로 선발하려고 해도 지원자가 거의 없다. 기간제 교사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선호하기 어렵다고 보면 된다. 남교사가 많아야 할 필요성이 별로 없다고 해도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사소하게 불편한 것들도 많이 있다. 갈수록 남교사들은 말을 적게 한다. 대화의 주제가 남교사들이 함께 나누기에 어색한 것들이 많다. 어쩌다 이야기를 하다가도 주제가 빗나가면 금새 자리를 뜨게 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몇명 안되는 남교사들끼리는 자주 모임을 갖는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만나서 이야기하고 술 한잔 마시는 것이 전부 이지만 학교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학교에서 남교사와 여교사의 비율이 어느 정도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을 한다. 이는 여교사들도 공감을 하는 부분일 것이다. 여교사가 많아서 남학생들이 여성화 되어 간다는 케케묵은 논리를 펼치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도 꼭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균형 측면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남교사들을 교직으로 유인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지구위에 반은 남자, 반은 여자라는데, 유독 학교에만 여자들이 많다는 것에 대해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인위적인 유인책을 쓰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평등 사회에서 불평등을 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유인책도 도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는 인위적인 유인책이 아닌 자연스런 유인책이 필요하다. 남자들에 대한 우대가 아닌 교직 자체에 대한 우대책을 찾아야 한다. 남자들이 교직에 대한 매력을 가지고 평생동안 교육에 몸담을 수 있는 우대책을 찾자는 이야기이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에도 남자들의 비율이 높지 않다고 알고 있다. 이들 중에서 교직을 선택하는 남자들의 비율이 더 낮다면 여교사의 수가 계속해서 강세를 보일 것이다. 따라서 남교사에 대한 유인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모두가 공감 할 수 있는 유인책 마련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실천에 옮겨야한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창조경제’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창조경제란, 창의적 아이디어를 기존 산업과 융합하여 새로운 시장·산업을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장전략을 말한다. 이러한 창조경제는 열린 사고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동안의 닫힌 사고로는 결코 창조경제를 열지 못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학자였던 퇴계선생의 맏아들은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결혼한 지 겨우 1년이 지난 때였다. 따라서 그의 아내는 하루아침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퇴계선생은 요절한 아들보다도 홀로 된 며느리가 늘 마음에 걸렸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젊은 며느리가 그 긴 세월을 어찌 견딜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혹여라도 며느리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여 한밤중에도 집안을 순찰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계 선생은 며느리 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퇴계선생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며느리 방을 엿보았다. 한데 며느리의 방에선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며느리가 술상을 차려 놓고 짚으로 만든 선비 모양의 인형과 마주 앉아 마치 살아있는 사람과 정담을 나누듯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인형 앞에 놓인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는 “여보, 한 잔 드세요.” 하며 술을 권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신세타령을 늘어놓다가 끝내 인형을 끌어안고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목격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퇴계 선생은 생각한다. ‘도대체 윤리란 무엇이고 도덕이란 무엇인가?’ 보이지도 않는 윤리와 도덕으로 젊은 며느리를 수절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란 것을 깨달은 선생은 마침내 며느리를 자유롭게 해방시키기로 결심했다. 인간의 고통을 담보로 하는 윤리와 도덕은 형벌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튿날 퇴계 선생은 사돈을 불러 거두절미 하고 딸을 데려가라고 통보했다. 친구이자 사돈관계였던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딸을 데려가면 두 사람의 친구 관계도 끊길 것이므로 사돈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퇴계 선생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당연히 두 사람의 연도 끊어졌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퇴계 선생은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어느 조용하고 평화로운농촌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날이 저물어 어느 농가에서 묵어가게 되었다. 저녁상을 받고 보니 반찬 하나하나가 퇴계 선생 자신이 좋아하는 것인데다가 간까지 선생의 입맛에 딱 맞아 아주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퇴계 선생은 막연히 집주인이 자신과 입맛이 비슷한가 보다 생각했는데, 다음 날 아침상도 반찬이 약간 달라지긴 했어도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에 간이 맞는 음식뿐이었다. 아침상을 물리고 길을 나서려는데 집주인이 버선 두 켤레를 들고 와서는 한양 가시는 길에 신으시라며 건네주었다. 버선을 무심코 신어보니 선생의 발에 꼭 맞는 것이었다. 그 때서야 퇴계 선생은 '아, 며느리가 이 집에 시집와서 사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안을 자세히 둘러보니 비록 가난하지만 청결하고 단란해보였다. 그제야 며느리가 그리 고생은 하지 않겠구나.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사는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며늘아기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으나 행여 누가 될까봐 만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대문을 나서는데 그때 한 여인이 돌담에 숨어서 퇴계 선생을 배웅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열녀문이 가문의 영광이요 자랑이었던 꽉 닫힌 유교 사회에서 집안의 규범까지 깨뜨리며 자신의 앞길을 열어준 시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윤리나 도덕, 혹은 세상의 체면을 의식하지 않고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겨 어루만져 준 퇴계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열린 사고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가울이 깊어갈 수록 고독과 배고픔에 떨고 있는 내 이웃은 없는지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볼 일이다.
1972학년도 입학시험을 통해 수고인이 되었다. 시험 당시 15살 위인 큰형이 휴가를 왔었나 보다. 해군인 형은 시험 잘 보라며 자기의 손목시계를 빌려 주었다. 시간 조절하면서 시험을 보라는 뜻이었다. 사회 시험 문제로 기억나는 것 하나. 당시 유엔사무총장 이름을 묻는 문제도 나왔다. 손목시계는 고2 때 처음으로 착용하였다. 1학년 때 태권도부에 가입하였다. 선배들이 교실을 찾아다니며 부원을 모집하였다. 방과후 강당에서 연습을 하였는데 도복은 창고에 쌓여있는 것 중에서 깨끗한 것을 골라 세탁해 사용하였다. 흰띠, 노란띠 입장에서 붉은띠, 검은띠가 그렇게 우러러 보일 수 없었다. 3학년 검은띠와 대련을 붙다보면 힘이 벅차 숨이 차오른다. 그것을 견뎌가며 실력을 쌓았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선지 우리들은 후배들을 뽑지 못하고 해산하게 되었다. 고교시절 중 큰 변화라면 2학년 때 응원부에 가입한 것. 수줍음 잘 타는 내성적인 성격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대견하다. 수원시학생체육대회를 앞두고 카드섹션, 박수 등을 앞에서 이끌 사람이 필요했었는데 아마도 당시 홍순복 선생님의 격려가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친구와 함께 2․3박수, 기차박수, 337박수를 연습하고 공설운동장에서 응원을 하였다. 특히 밴드 연주에 맞추어 카드 율동을 선도하였다. 학교 밴드부가 있었다. 조회시간에 국민의례, 교장선생님께 대한 경례, 퇴장시 행진곡 연주를 하였다. 학창시절의 모교 밴드 연주는 학교생활을 신바람나게 해주었다. 연주되는 곡목은 재학생 대부분이 입으로 흥얼거릴 정도 였으니 음악에 대한 안목을 높게 해주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곡은 베사메무쵸, 다이아나(Diana), 빗줄기의 리듬(Rhythm of the Rain), 영광의 탈출(Exodus) 등이 떠오른다. 다만 밴드부에 대한 인상은 좋지 않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먹 깨나 쓰는 학생들이 밴드부였기 때문이다. 고교 1학년이면 한창 성에 눈을 뜰 나이. 학교에 저급 3류소설을 몰래 가져오는 학생도 있었다. 출판사도 없고 겉표지도 없는 섹스소설이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잠시 읽는 몇 줄은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하였다. 하이틴잡지 펜팔란에 주소가 오른 친구는 여학생으로부터 온 편지를 자랑하기에 바빴다. 여학생을 사귄다는 것 자체가 우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선생님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보았다. 교련선생님과 체육선생님. 학교에서 교련시간에 신을 구두를 맞추었다. 그것을 교련시간에 신으면 좋으련만 학생들은 체육시간에 신었다. 화가난 선생님, 학생들에게 그 구두를 시멘트벽에 던지게 했다. 다시 주워와 반복해서 던지는 것이다. 그 장면을 교련선생님이 보고 그냥 지나친다. 방과후와 휴일, 도서실에서의 자율학습은 공부에 재미를 붙게 해 주고 대학에 들어가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 당시 읽었던 한국문학은 간접세계의 경험을 넓혀주었다. 또한 3학년 때인가 ‘수고학보’를 처음 만들었다. 학교 홍보차 만든 것인데기자가 되어 활동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이런 것이 국어교사가 되는데작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교직에 있으면서 교지와 학교신문을 만들고 지금의 한국교육신문 리포터, e수원뉴스 시민기자도 그 연장선상일 것이다. 컨닝의 부끄러운 추억도 있다. 수학시험 문제를 푸는데 연습한 시험지를 보고 풀다 걸린 것이다. 교육실습생이 시험 감독이었는데 증거자료를 압수당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해당 과목은 0점 처리가 되고 징계감이다. 그러나 일이 확대되지 않고 없던 일처럼 처리되었다. 그 이후 낙제점을 맞으면 맞았지 컨닝은 멀리하게 되었다. 대입체력장. 예비고사 점수로 체력장 점수 20점 들어간다. 100미터, 턱걸이, 윗몸일으키기, 왕복달리기, 오래달리기 등이었는데 점수 환산은 나이에 기준이었던 것. 호적 나이가 세 살 줄었기 때문에 다른 학생보다 유리하였다. 오래달리기를 하다가 힘들면 잠시 걸어도 만점 받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 당시 어떤 친구 목소리, “어, 저렇게 걸어가도 되는 거야!” 인문계고의 목적은 대학입학. 집안 형편을 감안하여 공군사관학교를 지망했다. 담임선생님께서도 “네 실력 정도면 합격할 수 있겠다”며 추천하여 주셨다. 원서를 쓰려는 순간 ‘헉, 이럴 수가?’ 입학자격에 생년월일 제한이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같은 연령의 학생을 신입생으로 받으려는 것. 호적 나이가 세 살아래인 나는 입학할 자격이 안 되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인천교대에 서류를 넣고 본고사를 보았다. 합격을 하고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니 교감선생님께서 직접 교무실 칠판에 ‘仁川敎大 合格 李榮寬’이라고 쓰셨다. 만약 나이가 제대로 호적에 올라 공군사관학교에 합격을 하고 임관을 했다면 지금 계급은 무엇일까? 온전히 진급하여 별을 달았을까? 상상이지만 사람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교대에 들어가 교편을 잡고 전직하여 중등교사가 된 것은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학사, 교감을 거쳐 교장이 되었다. 지금 기준으로 교장 7년차이다.
한국사회가 급속도로 다문화 사회로 바뀌고 있다. 2012년 기준 다문화 가족은 약 70만명(결혼 이민자 및 인지·귀화자 약 27만명, 자녀 약 17만명, 한국인 배우자 포함)에 달한다. 한국인 100명 중 약 1.4명이 다문화 가족의 일원이라는 통계이다. 이같은 추세라면 2020년경에는 다문화 가족이 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05년까지 국제 결혼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크고 작은 사회 문제들도 발생했다. 한국에 건너온 이주 여성이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거나 일방적인 이혼 통보를 받는 경우도 있었고, 언어적·문화적 장벽에 부딪쳐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계 한국인을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 특유의 폐쇄성도 이들을 힘들게 한다. 대중교통 차량에서 이들 옆에 앉기를 주저하는 등 이주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차별은 심하다. 다문화 가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난 반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을 이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부족한 것이다. 정부는 이같은 결혼 이주민들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고 국제 결혼 문화를 건전하게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시행된 이후 여성가족부는 법을 개정해 다문화 가족의 범위를 확대하고 지방자치단체에 전담 부서를 설치하는 등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중개업소가 난립하며 국제결혼 과정에서 폐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관련 법률을 개정하고 국제결혼 중개업 등록 기준을 강화했다. 한국어 교육과 통역 서비스 등 맞춤형 지원을 실시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2009년 100개소에서 2012년 206개소로 배 이상 늘었다. 이곳을 이용하는 결혼 이민자 수도 전년보다 23퍼센트 늘어 2012년 6만5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제도가 개선되고 지원책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다문화 가족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남아 있다. 바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이다.중국에서 온 한 이주 여성은 “한국 사람들은 자꾸 ‘중국에서 가난을 못 이기고 한국으로 시집왔다’며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봐요. 대놓고 무시하는 경우도 많고요.”라며 차별을 털어놓은 내용이다. 결혼 이민자가 28만명에 육박하는 와중에도 이들은 이같은 편견과 왜곡된 시선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친구들로부터 받는 상처는 지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따스하게 다가가는 손길이 되도록 지도하는 일은 교육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자녀 세대는 교육을 잘 받기만 하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 취업에 성공한 이주 여성은 어엿한 경제 주체로서 사회 전체의 생산력 향상에 보탬이 될 것이다. 다문화 가족은 더 이상 소수자나 소외계층이 아닌 우리 곁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웃이다. 그들에게 한국이 희망의 땅이 되도록 차이는 인정하고 차별을 없애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베란다 텃밭,가을의 끝자락을 보며 계절의 변화는 막을 수 없나 보다. 나팔꽃잎은 누렇게 변했다. 붉은 고추도 가지에 매달린 채 말라간다. 방울토마토 덩굴은 거둔 지 이미 오래다. 다만 항아리 위에 놓인 황금토마토가 한창 전성기 때의 모습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 집 아파트 베란다 풍경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베란다 정원 식물을 가꾸었으면 모를까 1년생 농작물을 가꾸다 보니 벌써 수확의 끝인 것이다. 작은 베란다 텃밭에서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수확한 붉은 고추 50여개는 아내가 조리할 때 사용할 것이다. 고추는 최종 수확물보다 애고추가 사랑을 받았다. 그 때 그 때 열리는 것이 상에 오른다. 쌈장에 찍어 먹으니 끼니 때마다 비타민 공급원이 되었다. 황금색 방울토마토는 식후 후식으로 제격이었다. 덩굴이 얼마나 무성하게 자라는지 아파트 창문 전체를 다 가린다. 올핸 순치기를 하며 열매에 영양분이 가도록 하였다. 얼마 전 열매를 최종 수확하고 줄기를 정리했다. 혹시나 하여 가지 밑동은 남겨 두니 거기에서 또 새순이 돋는다. 나팔꽃은 녹색공간 확보가 목적이었다. 아내는 나팔꽃을 기다렸지만 아침에 피었다가 지고 마는 것이 나팔꽃이다. 그러나 줄기와 잎은 무성하게 올라간다. 유리창 전체를 녹색으로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아파트 전체가 시원하게 보인다. 초보 도시농부, 실패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실패로 보지 않는다. 또 하나의 성공으로 본다. 이렇게 하면 실패한다는 하나의 성공사례를 만든 것이다. 바로 상추가꾸기다. 처음엔 잘 자라더니 잎이 가느다랗다. 물주기와 거름주기에 시행착오가 있었다. 지난 5월 5일, 도시농부의 도전은 시작되었다. 가까운 농협매장에서 모종을 사 온 것, 고추 10, 청상치 12. 적상치 12, 방울토마토 5 들어간 비용이 8천원이다. 투자한 비용 대비하여 내가 건진 비용은 수 십배다.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소득이 더 많다. 자연을 통해, 자연과 대화하면서 인생을 배운 것이 큰 소득이다. 흔히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꾼 만큼 정직하게 돌려준다. 식물은 말은 못하지만 몸으로 자신의 상태를 알려준다. 그것을 사람이 읽어야 한다. 자연을 읽으려면 자연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제 조금 있으면 숲은 단풍으로 물들 것이다. 중부지방의 경우, 9월 하순에서 10월 초순이 단풍의 절정일 것 같다. 단풍을 보려면 멀리까지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정원을 가꾸면 숲을 가까이 끌어들인 것과 같다. 아직 아파트 정원 계획은 없지만 당분간은 베란다에서 농작물 가꾸는 도시농부 생활은 계속할 작정이다. 고추, 토마토에서 작물의 종류를 다양화하고자 한다. 블루베리의 경우,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내년엔 시험삼아 도전해 보리라. 아파트 베란다에서 가꾸는 도시농부 생활, 독자들에게 적극 권유하고 싶다.
서산 서령고(교장 김동민)보현재 소속 1, 2, 3학년 학생들이 ‘점심 한 끼 굶기’를 통해 모금한 성금을 ‘월드비전 사랑의 도시락 사업 후원하기’에 기부하여 훈훈함을 자아내고 있다. 학생들은 8월 19일부터10일까지 점심 한 끼를 굶어서 모금한 440,000원 전액을 월드비전 사랑의 도시락 사업 후원하기에 아낌없이 기부했다. 이번 기부를 통해 학생들은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또한 나눔의 사랑을 실천하고 더불어 사는 삶과 봉사의 참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서령고는 앞으로도 이러한 뜻깊은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함으로써 나눔 및 기부문화의 확산에 적극 동참한다는 방침이다.
첫입학, 첫인상, 첫느낌, 첫사랑은 강렬한 것인가? 1969년 중학교 입학 당시 수원북중과 수원농고가 같은 정문을 쓰고 교장도 한 분이었다. 운동장 조회도 함께하였다. 등교 시 중․고 선도부들이 교문을 지켰다. 복장을 위반하거나 불량학생은 수위실 뒤에 가서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았다. 그 인상이 너무 깊었는지 미술시간, 주제가 ‘그리고 싶은 것 그리기’였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등교시 풍경으로 수위실 뒤 체벌 받는 모습을 그렸다. 중학교 입시를 치르고 입학하였다. 게시판 합격자 명단에서 어머니와 함께 내 이름을 확인하였다. 그 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울고 있는 어떤 친구와 아들을 달래는 어머니를 보았다. ‘아, 인생이라는 것은 선의의 경쟁이구나!’ 처음으로 낙오자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 학생 어찌되었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이 입학하여 중학생이 되었다. 교육청에서 입학정원을 늘려주었는지 학교에서 수용한 것이다. 그런데 조종례 때 학급과 교과시간 학급이 다른 것이다. 학생들을 성적 순으로 나누어 A반부터 G반까지 편성, 수준별 수업이 이루어지도록 한 것. 나는 E 반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40여 년 전에 앞서가는 교육실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학년 교실의 환경구성, 미국의 달 탐사 성공이 우리들의 주의를 끌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공공연히 “이제 너희들이 대학생 정도 되면 달나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된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래서 환경구성도 미국 우주선에 탑승했던 암스트롱, 콜린스. 데이비스 사진을 실었다. 지금도 외우고 있으니 중학생 때 기억력이란 대단하다. 잠시 노름(?)에 빠진 적이 있었다. 공부 끝나고 귀가해야 하는데 교실에서 돈 따먹기를 한 것이다. 책상위에 1원짜리 알루미늄 동전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어서 상대방 동전위에 올리면 돈을 따는 것이다. 입으로 불 때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잘 조절해야 하는 것. 다행이 돈을 잃지 않고 딴 기억이 있다. 필기고사 때의 일. 어느 나이 드신 음악선생님이 출제에 오류가 있었나보다. 쉬는 시간 각 교실을 다니며 칠판에 악보를 그린신다. 재빨리 음악책을 펼쳐 그 악보를 보고 출제예상 문제를 살펴본다. 어린 시절이지만 머리가 팍팍 돌아갔다. 예체능 과목의 어떤 분은 사지선다형을 채점하기 편하게 하려고 답이 ①②③④가 아니라 글자다. 답을 다하고 맞추어 보니 ‘소년들아 대망을 품어라’ ‘나가라 나가라 다나가라’이다. 아마도 눈치빠른 학생들은 높은 점수가 나왔을 것이다. 학교 매점이 있었다. 주머니에 돈 좀 갖고 다니는 친구들은 쉬는 시간 달려가 빵 사먹는 재미가 있었다. 곰보빵과 단팥빵은 꿀맛이었다.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빵조각 나누어 주는 기쁨을 갖기도 하였다. 학교마크가 새겨진 노트도 팔았다.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협동조합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점심식사 후 친구와 함께 교정에 있는 질경이를 뜯은 적이 있다. 나의 어머니는 홀어머니라 생업에 바쁘셨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자 한 것이다. 연한 질경이 잎을 따다 어머니께 갖다 드린다. 그 당시 말씀은 기억에 없으나 몇 일 뒤 질경이 나물을 해 주시어 식구들과 함께 먹은 적이 있다. 수원북중의 전통으로 독립선언서를 외워 강당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분위기에 휩싸여 출전하는 학생이나 아닌 학생이나 선언서를 외우는 기회를 가졌다. 공약삼장까지 외우면 큰 박수를 받았다. “기미독립선언서.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여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만대에 고하여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이 철저히 이루어졌다. 등교 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가슴에 손을 올려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한다. 앞서 가는 학생이 멈추면 따라서 멈춘다. 그리고 애국가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얼마나 애국이 강조되고 실천이 뒤따랐는지 국기 게양과 하강에 참여하는 대열이 북문(지금의 장안문)까지 이어졌다. 졸업 당시 교지에 실린 수필 하나. 그것으로 내가 국어교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 제목이 아마도 ‘어머님의 은총’이었을 것이다. 국어 선생님이 작품을 잘 모아 두었다가 활자화 시킨 것이다. 교지를 받아들고 목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였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형용할 수 없었다. 지금 그 교지를 보관하고 있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교직생활을 30년 이상을 하다보니 중학교 은사님들과 함께 근무한 적도 있었다. 교감 선생님으로 모신 적도 세 번이나 된다. 대부분 제자를 따뜻하게 맞아 주시고 교직의 올바른 길을 인도해 주신다. 고마우신 분들이다. 그러나 그 분들에 대한 보답은 시원치 않다. 중학생 시절을 회고하며 훌륭한 인생의 멘토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남도의 자연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안전행정부 우리마을 녹색길 베스트10에 선정된 금오도 비렁길은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여수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40분 가량 가면, 금오도 함구미 선착장에 도착하게 된다. 한적한 섬마을이 풍기는 고요함, 할머니들이 느긋한 걸음걸이로 걸어간다. 그 모습마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바람을 막기 위해 직접 하나하나 손으로 쌓아올린 돌담길 때문이다. 이러한 풍경은 영화 '집으로'를 연상하게 만든다. 곳곳에서 '집으로'에 등장할 법한 할머니들이 걷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금오도 가는 길은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길 찾는 사람들로 붐볐다. 부둣가에는 철선을 기다리는 승용차들이 줄을 지어 있다. 고향은 우리 삶의 뿌리이다. 고향을 떠났다는 것은 우리 삶의 근본을 잃어버렸다는 것과 같다. 사람이 근본에서 멀어지면 갈등을 빚고 방황하게 된다. 삶의 문제가 생기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은 이때문이 아닐까! 고향에 와서 잃었던 ‘나’를 찾게 되면 갈등도 해소되고 화해할 수 있게 된다. 고향에 온다는 것은 잃어버린 나를 찾으려는 것이다. 전상국의 첫 소설 은 귀향이 주제이다. 고향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강원도 산골의 눈 덮인 밤길을 두 인물이 함께 걸으며 화해하고 고향을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고향과 핏줄은 세계 공통의 언어 가 아닐런지? 우리가 명절 때 고향에 가는 것을 귀향(歸鄕)이라고 하지 않고 ‘귀성’(歸省)이라고 한다. 귀성은 자기의 근본을 찾아 성찰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고, 황석영 작가의 '삼포가는 길'도 사실은 고향 가는 이야기이다. 고향마을을 마음속에 그려보면 생각만 해도 포근해진다. 그러나 고향을 잃은 사람들은 아픔이 있다. 댐 건설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강제로 고향을 떠났다. 나 역시 그런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래도 다행히 아버지가 심어 놓은 한그루의 은행나무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생각나게 한다. 해를 바뀜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짐을 느끼면서 나도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는 것은 세월의 속성이 아니겠는가?
1963년. 하마터면 초등학교(그 당시 명칭은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을 못할 뻔 했다. 호적에 나이가 세 살 줄었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은 모두 입학을 하는데 나 혼자서 외로이 동네를 지켜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를 미리 간파한 어머니의 지혜(?)로 입학하였다. 당시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과 친분이 있어 청강생으로 입학을 한 것이다. 1학년 어린이 모습. 왼쪽 가슴에 모두 흰 손수건을 달았다. 왜? 코 흘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면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그 수건으로 코를 닦아주는 것이었다. 우리반 친구 중 유달리 코를 많이 얘가 있었는데 윗입술을 넘어 아랫입술까지 흘러내린 모습이 기억난다. 그 애는 입학해서도 엄마젖을 먹었다.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모두 끝나면 그 애 엄마가 기다렸다가 젖을 물리는 것이다. 유년기 일생일대의 사건 하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다가 다리 하나가 부러졌던 일. 아마도 토요일인 것 같다. 세류초교 후문 밖에 다리가 하나 있고 쓰레기장이 있었다. 아마도 철부지 또래들이 용감성을 시험하고 있었나 보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 다른 아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보아 멈칫하고 있었는데 내가 뛰어내린 것이다. 어떻게 되었을까? 일어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 광경을 퇴근하던 교감(?)선생님이 보았다. 상황을 직감하고 나를 업어 교무실로 갔다. 젊은 선생님을 불러 우리집까지 업어 날랐다. 우리집은 바로 정문앞이었다. 우리집에선 난리가 났다. 귀여운 막내 아들이 다리 하나를 못 쓰는 것이다. 12살 위인 작은형이 엄마와 함께 수원역전 병원(아마도 이름이 ‘이접골’)으로 가서 기브스를 하였다. 학교를 두 세 달 결석하였다. 거의 완쾌할 무렵엔 어머니가 업어 날랐다. 다른 애들은 공부하는데 집에서 쉬어서는 아니되기 때문이었다. 2학년. 농촌진흥청에 다니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가장 걱정이 컸던 사람은 어머니였다. 남겨진 자식 6남매와 어떻게 살아갈 지가 가장 막막했던 것. 철부지였던 나는 장례기간에도 출석하였다. 공부시간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몰라 짝궁과 장난을 치다가 교실 앞에 나가 손들고 벌을 서기도 하였다. 복도에서 들리는 우리동네 아이들의 말, “영관아, 너희 아버지 죽었어!” 겨울철 놀이로 연날리기를 즐겼다. 연을 만들기 위해 여름철 일회용 비닐 우산살을 잘 보관하였다. 방패연과 가오리연을 만들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날리기도 하였지만 학교 앞산에선 바람이 잘 불어 연이 잘 날랐다. 어머니 몰래 이불 꿰매는 실을 이용하였다. 몇 날 며칠 날리던 연날리기가 싫증이 나면 연줄을 끊어 연을 멀리 날아가게 하기도 하였다. 새총을 만들어 새를 잡기도 하였다. 앞마당에 있는 라일락 나무 줄기 중 균형이 잡힌 Y자 모양의 가지를 잘라낸다. 그리고 아기 기저기용 노란색 고무줄, 그리고 가죽조각이 재료다. 어느 날 저녁, 학교 버드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새를 노렸다. 살짝 빗나갔으나 새가 땅에 떨어졌다. 아마도 잠시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손으로 잡아 집에 가져왔으나 새장이 없다. 커다란 소쿠리로 덮어놓았다. 이튿날 평상위에 새 깃털이 날리고 새는 죽어 있었다. 밤새 쥐들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잠자리잡기도 우리들 놀이. 모기장용 잠자리채가 아니라 거미줄 잠자리채다. 굵은 철사와 긴 막대를 이용해 도구를 만든다. 거미줄을 걷으러 다닌다. 우리집과 동네를 돌아다니면 거미줄을 겹겹이 거두어 끈끈함의 강도가 있는 잠자리채가 된다. 그러면 학교 앞산으로 가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공중에서 낚아채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 소나무에 앉아 있는 여왕잠자리를 잡기도 하였다. 보통 잠자리보다 훨씬 크고 초록색 눈과 꼬리를 지닌 여왕잠자리다. 공부보다 노는 것이 좋았다. 일요일에는 아침밥 먹고 운동장에 나가 저녁 때까지 놀았다. 점심 거르기가 일쑤다. 주로 축구였다. 편을 비슷하게 갈라 경기를 하면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때론 반칙을 하여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지금도 기억나는 멋진 장면 하나. 내가 코너킥을 했는데 우리편이 그대로 받아 슛을 성공시킨 것. 일명 발리슛. 학교운동장엔 제비가 그렇게 많았다. 우리집에도 해마다 제비가 집을 지어 새끼를 치곤하였다. 부지런한 어미제비는 운동장을 휘젓고 다닌다. 나방, 잠자리, 파리 등 날아다니는 곤충을 입으로 낚아채 새끼들을 키운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서쪽 별관 지붕에서 먹이 패스를 한다. 어미가 물고 온 먹이를 새끼가 날아올라 공중에서 먹이 인수인계를 하는 것이다. 이런 광경은 흔히 보는 장면이었다. 일요일 당직 선생님들이 중화요리집에서 주문해 먹는 자장면. 어렸을 때는 그것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자장면은 부잣집 아이들이 먹는 외식 별미였다. 반찬으로 나오는 단무지와 양파는 남김없이 싹싹 먹었다. 나보다 두 살 정도 더 먹은 어떤 형은 중화요리 배달원보고 ‘짱깨’라고 놀리고 도망가기도 하였다. 나는 ‘짱깨’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으나 상대가 듣기 싫어하는 나쁜 말이라는 것 정도로 알아들었다. 세류초교 화단에는 자줏빛 다알리아가 있었다. 바로 우리집에서 분양한 것이다. 농촌진흥청에 다녔던 아버지의 영향이었는지 모르지만 꽃 가꾸기를 좋아하는 엄마. 우리집에는 채송화, 칸나, 다알리아가 해마다 피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추나무, 황매화, 라일락, 감나무가 있고 수돗가 포도나무 덩굴에 매달린 포도는 침을 꼴깍 삼키게 하였다. 뒤란에는 앵두나무가 있어 그 새콤한 앵두룰 해마다 맛볼 수 있었다. 아이들 놀이로 자치기가 있었다. 학교 건물앞 양지바른 땅에서 어미자와 새끼자 막대를 가지고 난이도에 따라 단계를 점차 올려 하는 공격과 수비게임이다. 처음엔 새끼자 멀리 보내기. 그러면 상대편이 그것을 공중에서 잡거나 어미자를 던져 맞추면 공격과 수비가 바뀐다. 공격은 점점 묘기 수준으로 단계가 높아지고 수비는 새끼자 잡기에 위험이 따르게 된다. 구슬따먹기가 있다. 동네 골목길 빈 공간에서 몇 명이 시합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 명이 구슬을 각자 두 개씩 내면 여섯 개다. 그것을 땅바닥 일정한 선 밖에 던져 상대가 지적하는 구슬을 던져 맞추는 것이다. 다른 구슬이 움직이면 실격이다. 가장 맞추기 어려운 구슬을 지적한다. 성공하면 던져진 구슬을 모두 갖는 게임이다. 아이들 구슬까기 정확도가 얼마나 높은지 두 개의 구슬이 거의 맞닿아 있는데도 한 구슬만 딱 맞힌다. 혀를 내두를 수밖에. 이게 50년 전 유년시절의 추억의 단편이다. 그 당시 너나 모두 살기가 어려웠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쌀밥은커녕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바로 아래 여동생은 뜨드개국(일명 수제비)이 질렸는지 부엌에서 끓는 물에 밀가루 조각을 넣는 엄마를 향해 “엄마, 나 저것 안 먹을 래” 하였다. 형 옷 물려 입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양말이나 옷을 기워서 입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었다. 거지들도 있었다. 그들이 식사시간에 오면 거부할 수가 없어 저녁식사 전에 대문을 잠그는 것이 일상이었다. 추억은 아름답다고 했는가? 음악시간이면 본관 교무실 풍금을 운동장 가로질러 높은 스탠드 수 십 계단을 지나 남쪽 별관 6학년 교실까지 낑낑대며 나르던 친구들의 행복한 미소가 그리워진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무섭게 체벌을 했던 6학년 담임선생님도 보고 싶다. 4학년 때 짝궁이던, 내 연필을 허락도 없이 가져가 지우개를 쓰던, 집에 자가용이 있던 그 여자애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추석 명절이라 청소년들이 부모와 같이 친척집도 가고 평소에 만나지 못하던 친척도 만난다. 추석이라 친척을 만나는 기회를 청소년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오며 가며 가는 교통편에서 자녀의 진로에 대하여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하는 것도 추천한다. 이 기간 동안 초중고등학생들은 친척들을 많이 만나는데 이들 친척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청소년들이 이들 친척을 만나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도록 하고 친척들로부터 실질적인 진로상담을 받을수 잇도록 하자. 학부모나 친척들은 추석때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진로상담을 할 준비를 하자. 친척 청소년들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그 직업을 갖기 위해 부모님들이 하지 못하는 정보 제공 등 상담을 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이 잎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잠정적으로 수립한 계획을 실제 확인하는 기회를 갖게하자. 청소년들도 평소에 궁금해 하던 직업에 관하여추석때 만나는 친척들에게 질문을 하여 보자. 추석중 실시하는 각종 대화나 직업체험은 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지원 시스템(edupot)에 체계적으로 기록․관리하자. 특히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가족이 부모에게 준 영향을 기록하는 것이다. 에듀팟에서는 중학교는 좌우명, 가족소개, 장점, 존경하는 사람과 이유, 장래 희망 등과 고등학생은 성장과정이나 미래 목표를 위한 노력과정 및 역경 극복 사례, 지원동기와 준비과정, 고등학교 재학 중 자기주도적 학습경험, 교내외활동 및 학업계획 등에 대해 체계적이면서 자신의 능력과 열정, 발전가능성을 100% 나타낼 수 있도록 작성한다. 이중에서 가족소개, 장점(주위 친척이 보는 장점 파악), 성장과정 등에 대하여는 친척들과 만나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될수 있다고 본다.
청소년들에게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대다수가 부모를 꼽는다고 하니 부모의 입장에서 들으면 놀랄만한 일이다. 자녀의 인생에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등대가 되어야 할 부모가 자녀를 가장 힘들게 하는 존재라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시사 잡지사가 공동으로 우리나라 초등학교 4~6학년 1천명을 대상으로 한 '부모와 하루에 30분이라도 대화하는가?'라는 설문에서 그렇다고 응답한 학생이 3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나마 자녀와의 대화 내용은 '학원 갔다 왔니? 숙제는 다 했니?' 등등 그 어떤 것도 자녀의 생각이나 사고를 자극하는 대화나 질문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녀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부모와 정신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훌륭한 자녀를 기른 부모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또한 대화의 형식도 자녀에 대한 지나친 책임감 때문에 일방적으로 혼내거나 훈계하는 일이 흔하다. 이런 훈계조의 대화로는 자녀에게 좋은 코칭을 할 수 없다. 오히려 반항심만 길러줄 뿐이다. 자녀를 정말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자녀의 말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들어주어야 하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자녀에게 좋은 질문을 하는 게 중요하다. 적극적 경청, 그리고 질문 이 두 가지는 자녀 코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스킬이다. 우리보다 지적인 분야에서 한참 앞선 이스라엘 부모들의 자녀들을 대하는 시각에서 특별하다. 자녀들을 철저하게 독립적인 한 인격체로 본다. 이것은 부모가 범사에 자녀 각각의 의사를 묻는 것에서 시작되고, 그 의사를 존중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러한 문화는 유대 전통과 관련된 부분도 있다. 이스라엘 아이들은 만 12세를 전후로 성년식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성년식은 일생에 있어서 결혼식 다음으로 큰 축하행사가 된다. 부모들은 우리가 볼 때 엄청난 비용을 내서 이 행사를 치른다. 그렇게 성년식을 거치고 나면 우리나라 중1 나이의 이 아이들은 율법적으로 어른 취급을 받고, 한 성인으로서 지켜야 할 모든 것을 지키고 책임지는 존재가 된다. 대학을 가고 가지 않는 것은 철저하게 그 개인의 문제이다. 학비도 대개 자신이 책임진다니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어떤 영역의 전공을 선택하는 것도 그 자신의 선택에 따른다. 보통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원하는 선택을 기꺼이 격려해주는 편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바른 판단과 선택을 하도록 부모들은 자녀들을 훈련한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대화를 한다. 생업과 직장에 바쁜 아버지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부모와 자녀는 많이 대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가정에서의 생활 자체가 대화 중심이다. 이 유대 가정의 대화의 핵심은 한 방향의 지시나 가르침보다는 상호 질문하는 속에서 지속되는 것이다.말을 잘 하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부모와 대화의 문을 닫았다면 먼저 부모의 대화의 습관을 되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야기 하나 :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라고 머리 한번만 쓸어 주었으면 내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야, 이 ××야, 육성회비 안 가져 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라고 소리 쳤는데 그때부터 내 마음 속에 악마가 생겼다.”(희대의 탈주범 ‘신창원의 907일의 고백’ 중에서) 이야기 둘 : 중국 위(魏)나라 신하 중에 경영이라는 자가 있었다. 하루는 왕과 함께 궁궐에서 활쏘기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저쪽에서 기러기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러자 경영이 왕에게 기러기를 화살로 맞히지 않고도 떨어뜨려보겠다고 호기 있게 말했다. 왕과 주위의 다른 신하들은 호기심이 생기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비웃음이 일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경영은 화살을 이리저리 쏘아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얼마 후 경영의 말대로 기러기가 화살에 맞지도 않았는데 그대로 하늘에서 곤두박질하며 떨어져 죽는 것이 아닌가. 왕이 놀라며 경영에게 그 비법을 물었는데, 답변은 이랬다. “기러기는 원래 떼를 지어 나는 새인데, 혼자서 저렇게 슬피 울며 나는 것은 길을 잃은 것이고, 느리게 나는 것은 상처를 입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빈 화살을 쏘기만 해도 불안과 초조 때문에 위로 날려고 무리하게 솟구치다가 몸의 상처가 덧나서 죽게 된 것입니다.” 실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내 부정적인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한 생명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것에. 물론 범죄자에 불과한 신창원이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남 탓하기’ 심리 차원에서 핑계를 댄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렸을 적 아이들의 심리와 성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부모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칭찬, 교사의 관심일 것이다. 칭찬의 중요성은 여기에서만 강조되지 않는다. 입적하신 『무소유』의 지은이 법정스님은 ‘저 바다의 둥근 조약돌을 만든 것은 석수장이의 거친 정이 아닌 바다의 잔잔한 파도의 어루만짐 이였음’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또한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로버트 스턴버그는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에서 저능아로 찍혔던 자신이 4학년 때 담임인 알렉사 선생님의 칭찬하는 ‘넌 잘할 수 있어’라는 말 때문에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오늘날의 자기가 되었다고 했다. 사회가 각박하게 흘러서 그런가. 칭찬하는 문화가 빛을 바래서 그런지 남을 칭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가 참 힘들다. 칭찬은 전염성이 강해서 한번 물결을 타면 끝을 보기 힘들 정도라는데 말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 교장선생님이 9월 1일부로 부임하셨는데, 회의시간 첫 일성이 ‘서로 칭찬하는 문화 조성’이다. 긍정적인 말, 칭찬하는 말, 서로 간에 인사를 잘 하자는 분위기를 만들자고 하신다. 처음 들었을 때는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우연히 앞의 이야기를 떠올리니 생각이 고쳐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소중한 아이들, 한번만 더 칭찬하고 어루만져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소한 내 한 마디 칭찬이 그 아이들의 삶을 다르게 만들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