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13일 ‘시간선택제일자리 활성화 추진계획’을 내 놓았다. 2017년까지 공무원·교사·공공기관 직원 등 공공부문에서 1만6500명을 시간제 정규직으로 임용함으로써 고용률을 2017년까지 70%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답보 상태(현재의 고용률 60.5%)의 고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정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정책이다. 교육부에서도 시간선택제교사(시간제 정규 교사)를 내년 2학기부터 2017년까지 3,600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많은 현장 교사들과 교육관계자들이 우려하고 있으며 다음 아고라에서도 반론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이 제도가 일자리를 창출하여 고용불안을 해소한다는 측면은 있지만, 직무에 대한 전문성과 계속성을 살리고, 교사로서의 긍지와 만족감을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시간선택제교사’는 교직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은 제도이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과의 인격적 유대를 통하여 학생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고, 아울러 학생들을 관찰하면서 개별학생에 맞는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의 성장과 발전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것은 교과지도와
최근 우리 교육이 지나친 경쟁 체제로 고착되면서 위기에 빠졌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성품 좋은 인간을 기르는 일보다는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래 사회에 부응하는 교육과정을 준비한다고 부산을 떨지만, 대학의 입시제도가 달라지면 학교 교육시스템이 확 바뀌고 마는 세상이다. 물론 교육도 시대에 따라 그 내용과 방법이 달라져야 하지만, 언제나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람직한 인간상을 구현하는 일이다. 즉, 지식과 기능 함양을 통하여 일상의 편리함을 도모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른 품성을 갖춘,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파트너십을 고양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경쟁에서 이기는 교육만을 강조한 결과, 바르게 살아갈 지혜를 나누는데 너무 소홀하고 말았다. 유치원에 때부터 아이들은 학원을 서너 개씩 다니면서 남보다 더 많이 배우고, 남보다 앞서려고 하는 일에 정신이 없다.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고 즐거워야 할 학교가 마치 생존 게임을 벌이고 있는 듯 치열하기만 하다. 이런 치열한 경쟁은 아이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으며,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아이들은 걸핏하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
작년 7월쯤으로 기억된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15개 시도 교육청에 특별교부금(이하 특교금) 2,711억원을 교부하면서 전북에는 단 1원도 교부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각계의 비판을 받은 후 교부되었음). 이 상황을 보면서 필자는 ‘교육 없는 특별교부금 0원’(새전북신문. 2011. 7.18)이라는 칼럼을 통하여 교과부의 ‘교육’ 없는 특교금 교부를 비판한 바 있다. 그런데 올해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교과부가 지난 해 시·도 교육청 평가에 따라 1,180억원의 특교금을 교부하면서 전북과 경기교육청에는 고작 16억원을 교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평가에서 상위 등급을 받은 충남과 경북은 이들보다 8배나 많은 130억원의 특교금이 교부되었다고 한다. 교과부 입장에서는 평가에서 하위 등급을 받아놓고 적게 준 특교금만 문제 삼는다고 야속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특교금 교부액 산정 기준이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른 것으로 우수한 지역에는 많이, 부진한 지역에는 적게 지급되었다고 하니 자못 충격이 크다. 굳이 교육 격차 해소와 지역의 균형 발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열악한 지역에 더 지원하는 것이 교육적
얼마 전 교육과학기술부 연수원에서의 일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장, 교감 선생님들과 함께 교원노사관계 선진화과정 연수를 받았다. 학교 현장에서 부딪힐 수 있는 갈등문제에 대하여 효과적인 접근 방안을 모색하는 연수내용도 유익했지만, 쉬는 시간에 삼삼오오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도 의미가 매우 컸다. 노후 생활을 위한 재테크, 건강관리, 심지어는 주름살 관리 등 다양한 화제들이 나왔다. 그 가운데에는 연수를 마친 지 두어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 매주 머리를 염색합니다.” 머리카락의 색깔이 유난히 검고 윤이 나는, 그리고 2대 8로 단정하게 가르마를 한 어느 교장선생님이 ‘자연머리냐’는 물음에 답한 내용이다. 오십이 되기 전에는 새치 하나 없었는데, 오십을 넘기자마자 봄비에 새잎 피어나듯 흰 머리가 가득 나기 시작해서 염색을 했다는 것이다. 필자도 사십 초반부터 흰머리가 하나 둘 나기 시작하더니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염색을 하게 된 지가 10년 이상 된 것 같다. 경험이 있는 독자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염색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조금만 부주의하면 염색이 머리카락만 검게
존 버닝햄에게 배우는 교육 존 버닝햄(Jhon Mackintosh Burningham)은 그림책 작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지각대장 존, 검파 아저씨의 뱃놀이, 알도, 우리 할아버지 등 수많은 그림책을 발표하여 아이들에게서 호기심과 상상력을 끌어냈다. 영국의 최우수 그림책 작가에게 주는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두 차례 받았으며, 뉴욕타임즈 선정 최우수 그림책 작가로 네 차례나 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도 지각대장 존 등 약 34권의 책이 번역 소개된 바 있다. 그는 얼마 전 한 언론과의 대담에서 정신연령에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좋은 그림책 작가가 되려면 아이들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그들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저의 정신 연령은 다섯 살에 멈춰 있습니다.”라고. 필자는 바로 여기에 그의 작가적 명성의 비결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동심의 눈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워 준 것이다. 상당수의 작가들이 아이들은 경험과 지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내용으로 가르치고자 했던 것과는 판이하지 않은가. 다섯 살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그
며칠 전 동아일보에 초식학생들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초식학생이란 누군가가 자신이 할 일을 정해주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학생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며 온순한 초식동물처럼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여 붙인 이름인 것 같다. 다섯 살짜리 어린 아이가 연필을 잘못 쥐자 가정교사를 고용하여 연필 잡는 법을 가르쳤다는 이야기, 마당에 있는 놀이용 나무집에까지 인터넷을 연결해 주었다는 이야기,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게 했더니 일일이 무슨 색을 칠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는 아이들이 가득하다는 이야기. 등등. 최근 부모나 선생님이 일일이 가르쳐주거나 지시하지 않은 한 어떤 일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내 자녀 과잉보호와 끝없는 질주를 강요하는 경쟁교육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죽하면 ‘헬리콥터 맘’이라는 말까지 생겨났겠는가. 부모가 아이들 주변을 헬리콥터처럼 빙빙 돌면서 아이들의 요구를 해결해주고, 학교가 끝나면 정신없이 학원으로 수송하고 있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비슷하기 때문에 경쟁은 치열해지고, 내 아이가 뒤처지는
오래 전에 게리 체프먼(Gary Chapman)의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다섯 가지는 인정하는 말, 함께 하는 시간, 선물, 봉사, 육체적인 접촉이라고 밝히고 있다. 최근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가정의 안정성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생활고와 불신으로 야기된 부부의 갈등과 파경은 당사자의 삶은 물론이고, 어린 자녀들의 삶까지 굴곡지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게리 체프먼(Gary Chapman)의 제안처럼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를 적극 활용하여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 우리 교육현장도 생활고와 불신으로 상처를 입은 가정처럼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해 말, 대구와 광주에서 연속적으로 터져 나온 학교폭력 학생자살 사건은 우리 교육계를 블랙홀에 빠뜨리고 말았다. 오죽했으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학교폭력 근절 방안 찾기에 정신이 없었겠는가. 며칠 전에는 한 중학교 여학생이 교사를 넘어뜨리고 손찌검까지 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갈등과 불신으로 위축되어 가는 가정을 되살리는 게리 체프먼의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가 있는 것 처럼, 필자는 혼란과 갈등
'미스 리틀 선샤인'에서 배우는 교육 " Family is not a word. It is a sentence." 이 말은 영화 '미스 리틀선샤인(Little Miss Sunshine)'에 나오는 명대사 중 하나다. 언뜻 보면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보면 자못 의미가 심장하다. 가족이라는 것은 '낱낱의 독립된 어휘가 아니라, 여러 어휘들이 잘 어우러진 문장'과 같은 것이라는 의미다. 참 대단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 없는 성공학 강사인 아빠 후버, 코카인 중독으로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 동성애자인 외삼촌, 미인대회 출전을 고대하는 딸 올리브. 그들은 닮은꼴이 하나도 없는 파편조각 같은 가족이다. 그런데 이 못 말리는 가족은 올리브의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 참가를 계기로 변화해 간다. 당장에라도 폭삭 주저앉을 것 같은 고물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온갖 시련을 겪게 되는데, 그 때마다 가족들이 힘을 모아서 극복한다. 마침내 그들은 흩어진 채로는 아주 하찮은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최근 학생들의 잇단 자살 소식이 이어지면서 언론에서는 교육당국과 교사들의 역할에 대한 지적이 참 많았었다. 경찰에서는 학교폭력 전담반을 운영한
는 인도 영화로, 천재 공학도들이 1등만을 강조하는 교육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교육영화이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며 학생들을 옥죄는 바투 교수의 주입식 교육과 경쟁교육은 우리의 교육 현실과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기계’의 개념을 설명하게 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꽉 막힌 원리주의자인가를 보여준다. 사전에 기술된 대로 막힘없이 달달 외우는 학생을 최고로 생각할 뿐, 생활 속에서 스스로 발견하고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기계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 학생에게는 모욕을 준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작년 봄에 이어졌던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쇄 자살을 떠올렸다. 걸출한 인재들이 ‘경쟁교육’이라는 거대한 정글에서 스스로 무너져 내린 사건이었다. 누구도 이들의 자살을 보면서 학생들의 심약함만을 탓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엘리트주의와 경쟁교육을 더 걱정하였다. 교육의 방향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영화 에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위대한 공학자가 되라’고 주문을 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비교육적인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필자는 이 영화에 담긴 메시지를
해와 달이 싸웠다. “나뭇잎들은 초록색이야”하고 해가 말하니까, 달이 “아니야, 은색이야”하고 대받았다. 달이 “사람들은 일도 하지 않고 주로 잠만 자지”하고 말하니까 해가 “아니야, 사람들은 열심히 움직이며 일을 해”하고 말했다. “그럼 왜 지구가 이렇게 종용하니?” 달이지지 않고 다시 해에게 말했다. “넌, 누구한데 무슨 소릴 들었니? 지구는 늘 시끄럽기 짝이 없어.” “아니야, 너야말로 누구한테 그런 소릴 들었니? 지구도 다른 별들처럼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어.” 정호승 시인의 인생동화울지 말고 꽃을 보라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 나오는 해와 달의 이야기는 모두 맞는 말이다. 해가 떠오르면 지구는 환한 대낮이 되면서 나뭇잎들은 싱그러운 초록의 기운을 마음껏 뽐낼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자신의 일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지구는 새 노래에서부터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공사장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까지 온통 소음이 가득한 곳으로 비쳐진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저녁에 동산 너머로 솟아오른 달에게는 이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은백의 아름다운 지구가 동화처럼 펼쳐진다. 사람들은 하루의 바쁜 일상을 접고 꿈속에 빠져
지난 주말 모 신문에는 “교과부에 미운털? 교부금 전북만 0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15개 시도 교육청에 무려 2711억 원을 배부하면서 유독 전북에만 단 1원도 교부하지 않은 것이다. 교과부에서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국가사무를 따르지 않는 지방자치단체들에 행․재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교과부를 상대로 대법원에 낸 두 건의 소송을 들먹이면서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교부금을 줄 수 없다고 하는 모양이지만, 필자는 그 기사를 접하면서 교과부의 옹졸함과 교육적 배려가 없는 처사에 내내 마음이 아팠다. 이에 대하여 전북지역의 각 언론에서는 '특별교부금 전북 제외' 관련 논평을 내면서 교과부의 옹졸함과 전북교육청의 전략 부재를 함께 지적하고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이는 사태의 본질에 심층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전북이 제외되었다는 구체적 사실보다는 필자는 법이나 행정행위의 적법성과 공평성, 아울러 교육본질 추구라는 담론을 통하여 이 사안을 다시 보고자 한다. 첫째, 지방자치법의 기본 정신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사안을 지방자치법과 연계하여 확대 해석함으로써 ‘지방자
아득한 옛날 전장(戰場)에서 부서진 뼈를 오롯이 되돌려서 골리수(骨理水)라 하였다나. 폭염, 장마, 추위 견디면서 그리움일까, 애절함일까 가슴에다 담아놓은 그 순결한 사랑 새 봄 문턱에서 되돌려 내는 것이 비움일까, 채움일까 제 몸을 베이지 않고서는 사랑의 그 풍당 한 방울도 비울 수 없는 법 상처의 아픔을 잊고 감로수 그 신선함으로 남을 기쁘게 하니 이는 또 다른 채움 아닐까.
낚시꾼이 낚시하러 갈 때 가장 신경 쓰는 일은 무엇일까? 밤낚시의 짜릿한 손맛을 느끼기 위해 손전등도 준비하고, 비바람과 이슬을 피할 수 있는 텐트도 준비해야 한다. 출출한 배를 틈틈이 채워줄 수 있는 간식거리도 준비해야 한다. 그것 뿐이 아니다. 밤새 찌를 바라보아야 하는 지루함과 고독감을 덜기 위해서 담배와 술을 준비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들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낚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물고기들이 주저 없이 낚시에 걸려들도록 유혹하는 달콤한 미끼일 것이다. 그래서 수준급의 낚시꾼은 미끼를 고르는 일에 가장 신경을 쓴다고 한다. 지렁이를 구하기 위해 강가의 풀숲이나 시궁창을 헤집기도 하고, 메뚜기를 구하기 위해서 들판으로 나가기도 하고, 시장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낚시를 준비하는 동안, 낚시꾼은 오로지 물고기가 좋아하는 미끼에만 관심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딸기 빙수나 비엔나커피 따위는 아예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낚시꾼은 물고기에게 매혹적인 미끼를 던져 주고서는 ‘어디 한 번 물어보셔!’ 라고 중얼거리면서 느긋한 여유를 가진다고 한다. 낚시꾼이 물고기의 입맛에 맞춰 미끼를 준비하는 일
구랍 14일에 재개봉된 다큐영화 울지마 톤즈의 관객이 30만 명을 넘었다. 이와 같은 관객수는 일반 영화의 300만이 넘는 숫자라며 일부 언론에서는 놀라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故 이태석 신부의 감동어린 사랑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피어나고 있는 증거이리라. 지난 해 1월 14일 말기 대장암으로 선종한 이태석 신부의 아름다운 동행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아홉 번째 아들로 태어나서 의과대학에 합격해 집안의 기둥이 되리라는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제가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베푼 것이 곧 나를 위하는 일’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 마을로 갔다. 이 마을에서 그는 영혼을 일깨우는 신부였고, 병을 고쳐주는 의사였다. 또한 무지 몽매한 아이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일깨워주는 교사요, 절망에 빠진 아이들에게 해맑은 미소를 되돌려준 음악가였다. 그의 위대한 삶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 KBS에서 방영한 이태석 신부, 세상을 울리다는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을 울게 했다. 또한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함으
젊은 아더왕이 적군의 포로로 사로잡혔을 때의 일이다. 적장은 “여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맞춰보라고 요구한다. 문제의 정답을 찾아내면 풀려날 수 있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아더왕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누구 하나 답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늙고 추한 마녀가 찾아와 아더왕이 가장 총애하는 젊은 기사 거웨인과 결혼시켜 준다면 정답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아더왕은 그만 충격에 빠지고 만다. 꼽추에다가 이빨도 죄다 빠져버리고 몸에서는 온갖 악취가 나는 마녀를 어떻게 자신의 심복인 게웨인과 결혼시킨단 말인가. 그러나 거웨인은 자신이 섬기는 아더왕의 목숨이 달려 있는 만큼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나선다. 결국 거웨인은 마녀와 결혼을 했고, 아더왕은 풀려났다. 신혼 첫날 밤 거웨인은 최악의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득 안은 채 신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방문을 여는 순간 거웨인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방안에는 천사처럼 아름다운 신부가 있는 것이 아닌가. 거웨인이 자초지종을 묻자 신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가 몰골이 추한 마녀임에도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