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때쯤 되면 교수신문에서는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선정하여 발표한다. 작년에는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인다’ 의미의 ‘자기기인(自欺欺人)’이 선정되었다. 미덥지 못한 세상사를 단적으로 지적한 말이려니 하면서 세상의 얄궂은 세태를 함께 걱정했던 것 같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호질기의(護疾忌醫)’라고 한다.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이의 통서에 나오는 말로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는 말이라고 한다. 마치 병(病)을 숨기면서 의원(醫員)을 기피하여 몸을 망치는 것처럼 잘못을 일깨워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세태를 지적한 것이리라. 최근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정치권에 던지는 질타라는 생각도 들고, 관행적으로 안주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신선한 충격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병을 숨기면서 의사를 꺼리는 세상은’ 어찌 보면 ‘믿을 수 없는 세상’이라는 관점에서 작년의 ‘자기기인(自欺欺人)’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은 놀랄만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데도 ‘믿음이 부재하는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국회의 꼴사나운 극한 대결
교원의 직무연수는 교과지도에 대한 전문성과 수업기술을 신장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따라서 교육과학기술부나 시·도교육청에서는 다양한 연수시스템과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학교 현장의 연수체제는 그 본래의 기능과 역할 구현에 여러 가지 제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첫째, 연수학점제란 제도를 마련하여 교사들에게 은근히 연수 이수를 압박하면서도 이에 부응하는 지원체제가 마련되지 않았다. 교원의 역량강화를 위해서는 연1회 이상 연수 이수를 위한 재원이 마련되어야 함에도 이에 대한 대책 수립이 현실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승진가산점 및 전보 가산점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놓고, 교사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켜 놓은 느낌이다. 제도적으로는 연수이수를 강요하면서도 실질적인 지원책은 미흡한 편이다. 둘째, 연수기관의 난립으로 연수의 질과 품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교원연수 기관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교과부나 시도교육청의 연수기관, 대학부설연수기관, 사이버연수기관, 교육단체의 연수기관 등연수기관이 난립되어 있다. 이는 다양한 연수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점이 문제다. 또
교사들이 학교에서 피하고 싶은 일이 ‘생활지도’라고 한다. 크고 작은 일로 학생들과 잦은 마찰을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때로는 학부모나 외부기관의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때로는 절차에 따른 생활지도가 ‘인권 침해’라 하여 민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야말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생활지도는 ‘뜨거운 불’에 비유되기도 한다. 뜨거운 불을 가까이 하면 화상을 입거나 옷을 태우게 되는 것처럼, 생활지도를 가까이 하면 구설수에 오르고 골치를 앓게 되는 것을 비유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학교마다 학년 초 생활지도부장을 선임하는 데 애를 먹는다. 소위 학교의 3D에 해당되어 모두가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새로 전입한 교사가 맡기도 하고, 승진에 관심이 있는 교사가 억지로 떠맡는 경우가 많다. 생활지도는 교과지도, 교무업무 등과 함께 교사들이 해야 할 중요한 업무이지만 서로 피하려고만 하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나는 현행 의무교육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문제 학생에 대한 적절한 처벌 근거가 미약하고,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문제 학생
얼마 전 산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둘러 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아있을 즈음, 어떤 여자가 내게 반가운 표정을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이름이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 편이기에 적이 당황하였다. 언제 어디서 만난 사람인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지난 번 산행 중에 만난 분은 아닐까. 아니면 사무실에서 업무상으로 만난 분은 아닐까 등을 생각해 보았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멋쩍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상대방을 잘 모르니까 더 이상 어떤 인사말도 나누지 못했다. 옆자리의 동료는 누구냐고 물었지만 딱히 떠오르는 바가 없어서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골똘히 생각해 보아도 어떻게 나를 알고 있는지, 또는 어디서 만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 여자가 도대체 누구일까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차가 출발할 무렵 그 여자는 사과를 예쁘게 깎아 먹기 좋게 조각까지 내어서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웃는 낯으로 감사하며 받았지만 그 여자가 누구인가만을 생각하였다. 차는 곧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자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침내는 별스런 걱정까지 슬금슬금 생
현재 전국의 초·중등학교에는 한두 명 또는 서너 명 이상의 계약직 교원이 근무하고 있다. 계약직 교원이란 현행 법령상 기간제 교원, 산학겸임교사, 명예교사, 강사 등을 말하며, 정년이 보장된 정규교원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정규 교원의 휴직이나 파견 등으로 인한 결원을 보충하고 특정교과를 한시적으로 지도하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 많은 계약직 교원들이 학교 현장 교육에 이바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직 교원이 안고 있는 신분상의 특성과 한계로 인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 원인과 대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일반 교원들이 교과지도, 생활지도, 교무분담 등 크게 세 가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계약직 교원은 4일 이상 또는 한두 달, 많아야 일년 미만의 짧은 기간 동안 임용됨으로써 교사의 고유한 역할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생활지도나 교무 분담 등의 업무는 대부분 배제된 채 단지 교과지도만 하고 있을 뿐이어서 정규 교원의 업무가 상대적으로 가중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둘째, 계약직 교원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각이 상당히 비뚤어져 있다. ‘곧 그만 둘’ 선생님으로 보고
최근 우리 교육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엇 하나 획기적으로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교육의 기세는 등등하고 공교육은 위축되고 있다. 게다가 정부와 국회에서는 ‘교육세 폐지’ 논의가 공공연하게 흘러 나오고 있고, 내년에도 ‘교원정원’을 감축한다고 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내년의 교원보수도 동결되는 것은 물론이고 교육예산도 시원치 않은 모양이다. 이와 같은 추이에는 우리 교육을 강화시키려는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현재 수준 또는 그 이하로 바꿀 심산인지는 모르나 교육에 대한 기대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 국민의 요구 수준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실망스럽다. 실용정부가 들어서면서 야심만만하게 내 놓은 ‘학교자율화 정책’이 오히려 사교육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학교장이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학교 경영을 하도록 지원하여 교육의 효과성을 높이자는 것이 궁극적 목표일 텐데 작금의 상황이 그렇게 지원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즉 ‘학교자율화 정책’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회자되는 교육세 폐지, 교원정원 감축, 기간제 교원 확대, 교원보수 동결 등이 과연 ‘학교 자율화를 지원하는 정책’인지 의문스럽다. 교육세
최근 ‘국가수준 기초학력진단평가’와 학업성취도평가‘의 수용 여부에 대한 논란이 크게 증폭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평가는 교수학습과정에서 학습 결과를 검증하고 보완하는 장치로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교조서울지부,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시민사회단체가 기초학력 진단평가 및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반대 또는 거부하기로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 다. 특히 “서로 도와가며 문제 풀기”라는 구체적 행동 지침을 제시함으로써 평가를 무력화하려는 일부단체의 시도가 교육자로서 온당한 태도인지, 또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교육적인지에 대해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또한 기초학력 진단평가와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일제고사’라는 이름으로 폄하하여 평가 반대 체험학습 및 촛불문화제를 유인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교육행위로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평가는 학습 과정 및 결과에 대한 검증이며, 발전적 학습을 위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초·중등교육법 제9조 및 동법시행령 제10조에 의하면 학업성취도를 측정하기 위한 평가를 실시할 수 있으며, 평가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주무
며칠 전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실에 제출한 ‘초·중·고 교원단체 및 노조가입’현황 자료가 공개되었다. 각 언론에서는 이 자료가 미치는 결과에 대하여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이 현황에 따르면 한국교총이 39.1%, 전교조가 18.2%이며 자유교조 0.1%, 한교조 0.1% 등 총 57.5%의 교원이 각 교원단체에 가입되어 있다고 한다. 반면에 전체 교원의 42.5%는 어떤 교원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일보의 분석 기사에 의하면 서울 지역의 가입 비율이 가장 낮고, 또한 사립학교의 경우는 가입률이 국·공립학교의 1/4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정보 공개가 학교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찬반양론 등 다양한 의견이 있으나, 중요한 것은 교원 열 명 중 네 명은 각종의 교육현안에 대하여 어느 쪽으로든 의사 표현의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특정 단체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해서 교육현안에 대하여 문제의식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집단의사로 표출되지 못함으로써 교원정책 구현에 42.5%의 의견이 소외될 가능성이 높고, 또한 무임승차하면서 교원단체들의 투쟁 결과로 얻어진 과실만 나누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최근 단기방학(재량휴업)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단기방학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휴가의 질적 개선 방안으로 마련된 제도였다. 즉 가족활동은 물론이고 효도활동 등을 체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가족간의 유대를 증진하고, 아울러 체험적 인성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또한 특색을 살린 다양한 지역문화 활동 체험을 통하여 공동체 의식과 인격형성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지난 5월에 실시한 단기방학은 국민의 따가운 여론에 직면해야 했다. 제도의 도입취지에 맞는 공감형성이 이루어지기는커녕, 학교와 교사가 국민적 공적(?)이 되어 버렸다. 이번 추석을 전후한 단기방학도 예외는 아니다. ‘누구를 위한 단기 방학인가’로 시작된 언론보도는 학교와 선생님을 부도덕한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 사무실로 걸려온 한 학부모의 육두문자가 섞인 전화는 교사에게 던지는 돌팔매나 다름없었다. “교사들이 봉급은 많이 받으면서 구실을 붙여 쉬려고만 한다.” “아이들을 미아로 만들어 놓고 자기들의 휴가를 늘리려고만 한다.” “결식아동 등은 굶겨 놓고 별다른 대책은 없다.” “맞벌이 부모가 직장에 나가면 아이들은 누가
얼마 전 정부에서는 교육세 폐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는 교육세의 ‘세금에 붙는 세금(surtax)'의 복잡한 조세구조를 개편함으로써 재정운용의 융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교육세는 1982년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교육재정을 확충’하기 위하여 신설된 한시적 목적세이다. 그러다가 1990년에는 영구세로 전환되었다. 교육세가 목적세로서의 목적 달성 여부에 대한구체적인 평가나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폐지 방침이 나온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교육재정이 GDP 대비 겨우4.3%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계 안팎에서는 이 방침을 철회하라고 야단이다. 가뜩이나 재정난이 가속화되고 시점에서 혹시라도 교육예산이 축소되어 교육시설 투자가 줄어들고교육의 질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교육세 감소분을 각각 국세와 지방세 일반회계에서 보전해 줄 방침”이므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내용으로는 국민과 교육계를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 우리나라처럼 부존자원이 없고 산업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교육이다. 즉 인적자원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세계경쟁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교직원공제회는 14조원의 자산과 60만의 회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다. 자산규모가 재계 20위권에 드는, 그리고 막강한 현금 동원 능력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보험, 금융, 벤처투자, 골프장, 리조트 등 8개 영역의 굵직한 사업을 하고 있다. 38년의 역사 속에 수백 만 회원이 박봉을 쪼개서 만들어 놓은 금자탑이기에 현재 60만 교직원에게는 자랑과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직원공제회는 회원의 생활 안정과 복리 증진에 든든한 버팀목으로 우뚝 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직원공제회는 ‘교직원은 없다’는 현장 교직원의 푸념처럼 안이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1971년 교직원의 생활안정과 복지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것으로 정부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앙부처 관료들의 종착역’이 되고 있음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정부는 단 한 푼의 출연금이나 보조금을 낸 일이 없는데도 실질적인 운영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한국교직원공제회는 자산규모나 역할과 기능 측면에서 볼 때 일종의 주식회사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따라서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해박한 투자 식견을 가진 사람이 이사장이 되어야 한다.그래야만 자금의 적
올해 공직을 떠나는 명예퇴직자가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예년에 비해 3~5배 가량 수직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공직사회에 떠도는 공무원연금 관련 소문 탓이다. 명퇴자 가운데 교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5월말 현재 3455명의 전체 명퇴자의 78.2%나 된다고 한다. 이처럼 명퇴자가 급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자신이 평생 동안 다녔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그것도 정년을 남겨놓고 그만 두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예측할 수 없는 불안심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금수령액이 현저하게 낮아지지않을까,명예퇴직수당이 없어지지않을까, 연금 수령도 65세 이후로 늦춰져 퇴직 후에도 2~3년 동안은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되지않을까 등등 아직 뚜렷한 근거가 없는 소문들로 공직사회에 동요가 일어나자 행정안전부에서는 ‘명퇴 괴담’이라면서 몇 가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걱정스럽고 불안하다. 왜냐하면 연금개혁의 기본적 방향이 잘못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이다. 시장주의에 매몰된 정부가 왜 이렇게 반시장주의적 발
널뛰기는 우리의 전래 민속놀이의 하나로 ‘널빤지 위에서 뛰는 놀이’라 하여 도판희(跳板戱)라고 하기도 한다. 즉 두툼하고 긴 널빤지의 가운데에 밑을 괴어 중심을 잡은 다음 양끝에서 한 사람씩 뜀을 뛰는 놀이이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전승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높은 담장 저편에 있는 옥중 남편을 보고 싶어 하던 여인이 널뛰기를 하면서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고 하는 애틋한 전설도 있다. 또한 집안에 갇혀 있던 여인들이 담장 위로 훌쩍 뛰어 올라 바깥세상을 구경하기 위하여 만든 놀이라는 설도 있다. 그런데 이 널뛰기를 자세히 뜯어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널뛰는 뛰는 사람들의 호흡이 척척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높이 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힘이 분산되어 금방 지치고 만다. 때로는 판 아래로 나뒹굴 수도 있다. 이 호흡은 구경꾼들과도 맞아야 한다. 여럿이 함께 빙 둘러서서 힘의 강약에 따라 호흡을 맞추어야 한다. 두 번째는 힘의 비우기와 채우기를 반복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응원하는 놀이이다. 한 사람이 힘을 집중하여 힘껏 내디디면 다른 한 사람은 힘을 비우면서 하늘로 훌쩍 날아오른다. 즉 한 사람은 힘을 주면서 낮아지고 또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 지났다. 실용을 강조하면서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뚜렷한 정체성 하나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새정부의 조급함과 성과주의는 최근 소고기 파동을 겪으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범 이후 쏟아져 나온 교육정책들은 한결같이 소리만 요란했을 뿐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새정부의 교육철학의 빈곤과 소통부재가 불러 온 필연적인 결과이다. 오죽하면 ‘교육과학부는 있는가’라는 칼럼이 나왔겠는가. 6월 9일 아침에는 ‘이주호 손바닥서 춤추는 교육정책’이라는 뉴스까지 흘러나왔다. 이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동안의 교육정책들은 교육의 본질과 철학을 담아내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한 채 특정인에 의해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교육과학기술부 관료들은 특별교부금 나눠 갖고 선심을 쓰는 등 한심한 작태를 보아왔다. 한국교총에서는 최근 교육정책 혼선과 관련하여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이하여 설문조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에 따르면 교육정책 혼선의 주요 원인은 정책
노컷뉴스의 ‘점심시간, 근무시간 시비’를 보며 세상사가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 선생노릇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때부터인가 망가져버린 선생님의 위상을 생각하면 속이 뒤집힌다. 지난 스승의 날 초임지에서 가르쳤던 제자들과 저녁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 떠오른다. “요즈음, 선생님들 너무 고생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 정말 힘들어. 요즘 선생들은 동네북이야.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느라고 정신없지.” 언제부터인가 선생님들이 입에 달고 사는 넋두리이다. 자율화와 정보화는 우리 아이들을 훨씬 똑똑하고 영악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뿐이 아니다. 부모가 못 가르친 자식, 선생님이 가르친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교육열은 높으나 철저하게 자기 자녀 중심의 이기적 사고가 만연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선생님보다 뛰어난 교육적 마인드와 철학을 가진 학부모도 있다. 내가 초임지에서 누렸던 호랑이 선생으로서의 전권은 이제 이 땅의 어떤 선생님에게도 없는 것 같다. 그 동안 진행해 온 교원개혁 중심의 교육개혁은 교사의 사기를 크게 저하시키고 말았다. 임용고사의 높은 경쟁률에도 불구하고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은 직업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교사가 소신을 가지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