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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교육현장의 호질기의(護疾忌醫)


해마다 이때쯤 되면 교수신문에서는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선정하여 발표한다. 작년에는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인다’ 의미의 ‘자기기인(自欺欺人)’이 선정되었다. 미덥지 못한 세상사를 단적으로 지적한 말이려니 하면서 세상의 얄궂은 세태를 함께 걱정했던 것 같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호질기의(護疾忌醫)’라고 한다.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이의 <통서>에 나오는 말로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는 말이라고 한다. 마치 병(病)을 숨기면서 의원(醫員)을 기피하여 몸을 망치는 것처럼 잘못을 일깨워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세태를 지적한 것이리라.

최근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정치권에 던지는 질타라는 생각도 들고, 관행적으로 안주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신선한 충격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병을 숨기면서 의사를 꺼리는 세상은’ 어찌 보면 ‘믿을 수 없는 세상’이라는 관점에서 작년의 ‘자기기인(自欺欺人)’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은 놀랄만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데도 ‘믿음이 부재하는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국회의 꼴사나운 극한 대결은 여야의 역할만 바뀌었을 뿐 해마다 되풀이해서 일어나고 있다. 어찌 보면 ‘역사의 교훈은 없고, 역사는 반복만 있을 뿐’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호질기의(護疾忌醫)’는 단지 정치권에만 던지는 화두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명백한 잘못이 있음에도 환자가 의사를 꺼리듯 고치기를 주저하는 일이 많음을 단적으로 지적한 것이리라. 우리 교육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교육이 ‘공교육의 위기’라는 중병을 진단받은 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뾰족한 대책하나 마련하지 않을 것을 보면 이것 또한 ‘호질기의(護疾忌醫)’의 사례이다.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교육과정이 펼쳐지기 위해서는 교사가 중심이 되는 교육풍토가 우선적으로 조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지금 어떠한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함부로 대드는 아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어찌 그뿐인가. 학생지도에 불만을 가진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으며, 교육적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소함에도 교사의 목을 자르라고 으름장을 놓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교사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실천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옛날에는 집에서 못 고친 버릇을 학교에서 고친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학교에서도 어찌 할 수가 없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말썽부리는 학생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학교시스템, 목소리 큰 사람의 주장에만 주눅이 드는 사회적 무력감 등이 그 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교육현장에는 잘못에 대한 따끔한 교정과정(矯正過程)이 생략된 채, ‘인권’이라는 이름의 밑도 끝도 없는 ‘관용’만이 강조되면서 모든 원칙과 기준이 무너져 내렸다.

또한 어느 때부터인지 초·중등학교에는 학교의 교풍(校風)은 물론이고 학교 나름의 학칙이나 규정 등이 없어져 버렸다. 설령 있다 해도 써먹을 수 없는 폐문서일 뿐이다. 혹자는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따질지 모르지만 이미 학교에서는 지켜지지 않은 교칙과 규정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큰 잘못을 하고도 학생이 막무가내로 버티면 그만이고, 학부모가 ‘인권’ 운운하며 상급기관에 민원을 넣기 시작하면 달리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 오늘의 학교 현실이다.

교육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이처럼 명백함에도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 단위학교의 자율 경영체제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의 자율성은 없어져 버린 현실을 뭐하고 해야 할 것인가. 교권 확립이 교육을 살리는 유일한 길인데도 교장공모제, 교장양성 전문과정 도입 등의 정책으로 교육현장의 갈등만을 양산하는 것은 분명 또 하나의 ‘호질기의(護疾忌醫)’라는 질책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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