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다양한 집단을 만들고, 다양한 의사표현으로 표출한다. 그 가운데 꽃이라 할 수 있는 행위가 '선거'이다. 이 선거는 집단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방법이기에 초등학교에서부터 이루어진다. 그런가하면 국민이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기본적 행위로도 활용한다. 그런데 이번 서울특별시의 급식 관련 투표는 주민의 의사결정을 묻는 행위인데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였다고 판단된다.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신성한 투표 행위를 이른바 ‘나쁜 투표’로 몰고 간 일부 정치권의 행위에 대해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하는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주민투표를 ‘나쁜 투표’로 규정, 투표 거부 행위를 조장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린 그야말로 ‘나쁜 행위’에 속하는 것은 아닐런지! 학교 현장에서 우리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대화와 타협, 민주적 절차에 따른 투표의 소중함 등"을 가르치라는 것이 민주생활교육의 요체이다 그런데 이를 총체적으로 책임지고 가르치도록 교육해야 할 교육감이 ‘주민투표는 나쁜 투표’라며 불참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서울의 교육자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재미가 없다. 경제도 그렇고 어른들의 정치 이야기는 더 이상 재미를 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다. 특히 전 세계를 눈물로 감동시킨 전설적인 부자 아버지 딕 호이트와 아들 릭 호이트의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행함으로 기적같은 삶을 산 것이다. 날이 갈수록 사회는 변하여 점차 남성의 역할이 위기를 맞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는데, 아이들의 삶에 주춧돌이 되는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아들 릭은 태어날 때 목에 탯줄이 감기는 바람에 뇌성마비와 경련성 전신마비라는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의사는 이 아이를 포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 딕은 결코 아들 릭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수년이 흘러 컴퓨터가 나오고 이를 활용하여 릭은 컴퓨터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달리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표현했다. 그날로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고 아들이 15살이 되던 해 그들은 처음으로 8km달리기 대회에 나가 완주에 성공했다. 이 경기가 끝난 후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버지, 아까 뛸 때만큼은 내가 장애인이란 걸 느끼지 못 했어요”
세상살이가 끊임없는 평가의 과정이다. 사람은 누구나 알듯모르듯 다른 사람을 만나면 인상부터 살핀다. 그 인상을 살피는 이유는 내심의 평가를 위해서이다. 특히 사춘기 학생들은 이성의 평가를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선생님의 평가보다도.. 그럼 남학생들은 학생의 모습을 탈피하고 어른의 모습으로 변장한 모습을 좋아하는 것일까? 만일 내가 좋아하는 남학생이 나를 어떻게 평가는지 알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느 정도로 평가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그런 거 관심없어" 하고 잘라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물음은 매우 중요하다. 적어도 우리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한. 사회 속에서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다. 남들이 평가하고 기억하는 '나', 다시말해 내가 타인들에게 남긴 인상의 종합물로서의 '나'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매우 한정된 정보에 기초하여 남을 평가하고 그것으로 인상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인상에는 얼굴은 물론이지만 복장도 중요한 한몫을 한다. 교문에 등교할 때 단추를 잘 잠그고 단정한 모습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한 학생의 등교 관찰 결
앞으로 한류(韓流)가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많다. 현재까지는 한류가 지역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 북미, 러시아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콘텐츠에서도 드라마, 영화, 음악, 게임에서 음식, 화장품, 한글, K-POP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어, 그 지속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K-POP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에게 확산의 속도를 더하고 있다. 이와 연계하여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이 요청된다. 그런데 최근 인기 중심의 성향때문인지 한국어가 아닌 이상한 언어들이 난무하는 것도 지켜 볼 일이다. 왜냐하면 노래를 통하여 한국어를 접하는 계층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슨 뜻인지 한국사람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인의 정서에 올바르게 반응하는 노래 가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류가 이와 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로 국내 문화콘텐츠의 높은 경쟁력 때문이다. 이는 드라마 등 문화콘텐츠에 대한 소비자의 까다로운 소비 행태, 시청률 제고를 위한 공중파 방송 3사의 치열한 경쟁, 풍부하고 우수한 인력, 초고속 정보통신망과 같이 발달된 통신 인프라 등 우리나라의 독특한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같은
K팝의 열풍이 대단하다. 일본을 시작으로 IT기술의 이용과 더불어 중국, 유럽, 몽골 등으로 확산 속도가 매우 빠게 확산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고대에도 한류가 있었다. 1600여년 전인 397년 한자를 일본에 전한 백제의 왕인박사는 일본 고대문화인 아스카문화의 창시자이다. 논어와 천자문 외에 도자기공, 기와공, 직조공을 데리고 건너간 왕인 박사는 일본 태자의 스승이 돼 일본인들에게 글과 기술은 물론 인륜(人倫)까지 가르쳤다. 오늘 한류의 바탕은 대중문화지만 왕인 박사가 전한 한류는 일본의 문화사를 바꾼 고급문화였다. 왕인 박사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는 한·일 양국에서 매년 열린다. 그의 출생지인 영암에서는 올해도 4월 초 ‘왕인문화축제’가 열려 매년 일본인들이 참가하고 있다. 그러나 독도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양국간의 외교 갈등이 일어나는 해에는 교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는 매년 11월 3일 ‘사천왕사 왔소’ 축제가 열린다. 1990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왕인 박사를 비롯해 일본에 문물을 전한 이른바 ‘도래인(渡來人)’들의 행차를 재현한 가장행렬. 행렬이 오사카 번화가를 관통해 사천왕사에 이르는 동안 형형색색의 고대 복장을 한 4000여 명
우리 인간 모두는 개인적으로 태어나 단체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정 기한을 살고 다시 개인으로 돌아가 일생을 마감한다. 그런데 우리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에 사회생활의 기초를 가정에서 부터 가르치고, 더 넓은 세상에 나가기 위해 학교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학교라는 집단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의 삶이 거의 고착단계에 이르게 된다. 엄격한 가정에서 예의 질서교육을 잘 받고 학교에 온다 하더라도 다른 친구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달라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학교 문화이다. 특히 사춘기인 중학교에서부터는 자신의 겉모습에 관심이 부쩍 늘어나면서 머리 모양, 옷 모양, 신발 등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연고로 1학기를 마치고 달라진 모습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이 많다. 파마를 하고 머리 염색을 하고 귀걸이 숫자는 더 늘어난다. 왜 그렇게 하였느냐 물으면 친구들이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했다는 핑계를 댄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학교는 새롭게 아이들에게 학습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유도하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그만큼 느슨해진 마음을 추스리게 하는데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모든 지도하신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지도에 임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있을까? 이
공부란 본디 싫은 일이다. 우등생이든 열등생이든 머리가 좋든, 나쁘든 공부는 일단 싫은 것이다. 어릴 적부터 공부가 마냥 즐겁고 행복해서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커 가면서 점차 왜 학습하는 행동에 차이가 나는 것일까? 아이들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타인의 평판을 아주 다양한 수준에서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의하여상당한 영향을 받으면서 자란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들의 자라나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아이들은 걷기 하나를 배우면서도 엄청난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이때 주위 사람들의 격려는 걷기 실력 향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지적인 면에서도 성장 과정에서 영향을 받고 자라는데, 이 과정에 부모, 선생님의 영향이 매우 크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선생님의 위대한 권력을 접한 아이들은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선생님의 가르치는 방식, 성격에 따라 크게 차이를 느끼게 된다.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중등학교를 거치면서 아이들은 수많은 선생님들을 만나 자기의 성장을 도모하게 되는
21세기 들어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한 국가 간 경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식을 가진 자와 그러하지 못한 자 간의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와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가 ‘스마트 교육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이 ‘전략’에 의하면 2015년까지 초․중․고교의 교과서가 디지털화된다고 한다. 기존의 교과서뿐만 아니라 각종 참고서, 문제집, 사전, 보충학습 자료가 모두 개인용 컴퓨터에 저장된다. 종이책이 없어지고 공책이나 연필, 지우개, 필통도 필요가 없어진다. 학생들은 등교할 때 달랑 컴퓨터 하나만 들고 가면 된다. 정부가 이런 ‘전략’을 수립한 이유는 학생들의 가방 무게를 줄여주고,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2025년까지 국가 경쟁력을 세계 3위로 끌어올린다는 것이 정부가 설정한 목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책가방 무게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된다면 사물함을 활용하는 등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국가 경쟁력 문제는 보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끝없는 정보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단편적인 지식 사이를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검색하는 컴퓨터를
교육은 미래와 가장 관련이 깊은 산업분야이다. 교직 종사자들은 눈앞의 것보다 앞으로 우리는 어떠한 시대를 맞이하게 되며,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며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고민을 하면서 살아간다. 인류는 일만년 동안 농경사회를 지속해오다가 영국을 필두로 시작한 1차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약 200년 동안 산업화 시대를 이끌어 왔다. 사실상 우리나라는 70년대 초까지 농업사회였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90년대부터 시작된 정보화 혁명으로 20년 이상 정보화 사회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미래학자들은 이제부터 후기 정보화 사회, 소위 얘기하는 꿈의 사회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정말 인류가 처음으로 겪게 되는 후기 정보화 사회는 지금까지의 패러다임과 생활이 완전히 바뀌는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라니 감히 예측하기가 어렵다.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산업화 시대, 20세기의 산업화 시대를 이끌어 왔던 경쟁지성의 종말이다. 산업화 시대는 지식을 독점하고 그 지식을 판매하면서 부가가치를 유지했던 경쟁적 지성사회라면 후기 정보화 사회가 되면 정보화로 인한 인류의 지식과 많은 정보들이 이제 온 인류의 자산으로 공개되고 오픈된
의료 기술의 놀랄만한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인생 100세 시대 대응 국민의식 조사결과를 보면, 평균수명 연장으로 90세 또는 100세 이상 사는 현상을 축복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응답이 43.4%로 나타났다. 수명 연장으로 은퇴 후 경제활동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응답자의 32%가 연령과 관계없이 건강이 뒷받침해 줄때까지 일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갈수록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청년 실업률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10년 후 우리가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경제력은 어느 정도일까? 생활비나 기타 비용으로 한 달에 300만원이 필요하다면, 현재 45세인 사람은 은퇴 시점이 되는 60세에 17억원이 필요하고, 현재 35세라면 24억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같은 사실을 접하는 보통 사람들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30년 후 돈의 가치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물가상승률을 3.5% 정도로 추계했을 때 매년 필요한 돈이 15년 뒤에는 6000만원, 25년 뒤에는 8500만원, 35년 뒤에는 1억 2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교과부는 장애학생의 진로,직업교육 내실화 방안을 통해 장애학생의 진로 및 직업교육을 보다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특수교육 대상 학생의 취업률은 13.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장애학생의 경우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과 양질의 일자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 부족 등으로 졸업과 동시에 높은 실업률 아래 놓이게 되면, 취업을 했다하더라도 비장애인들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서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교육에 종사하는 특수교사들은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남특수교육학회에서는17일 한국교직원공제회관에서 전남 특수교사 2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한 장애학생의 진로, 직업 능력 신장'이라는 주제로 연수회를 개최하였다. 주제 강의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김대규 교육연수부장의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강의와학교현장의 사례발표로 순천선혜학교 구영희 교사의 '교내 방과후 학교 수공예 활동을 통한 기초 작업 능력 신장' 목포인성학교 김경신 교사의 '빠른 이름대기 훈련을 통한 지적 장애아동의 명명 속도와 읽기 유창성을 향상시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 ' 이 구절은 김동명이 바다 근처에서 자란 영향으로 그의 노래에 바다를 노래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대부분이 산과 바다, 그리고 조그만 평야로 이루어져 그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그래서 모두 나름대로 추억이 살아있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우리 나라의 정남진이라 불리우는 장흥에서도 골짜기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깨끗한 강가에서 물을 즐기면서 고기를 잡고 다슬기를 주으면서 자랐다. 지금은 장흥댐 건설로 집터만 남고 고향사람들이 모두 이주를 하였다. 그러나 마치 집앞에 아버님이 심어 놓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집터만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고향이 없어지고 나니모든 추억들이 흩어져버린 느낌을 감출 수 없으며, 같이하였던 이웃도 친구도 멀어져 간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어디에선가 고향을 그리워할뿐이라는 추측을 하여 본다. 8월 17일 아침은 나에게 오랫만에 고향을 찾아 알고 있는 선배님들을 오랫만에 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장흥 지역의 유지분들이 만들어 운영하는 장흥학당 강좌에 초청받아 강의를 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장흥은 내가 자라 교육을 받고, 30대 후반까지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교직생활을 한
인간의 삶은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일의 연속이다. 그래서 때때로 쉼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쉼의 과정에 축제가 있었다. 시대가 진화하면서 삶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축제들이 만들어지고 탄생했다. 지방자치의 실시로 각 자치 단체에게는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축제 개발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지역의 특산물, 특징 등을 이용한 축제들이 생겨났고, 일부 축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급하게 만들어진 축제가 많다 보니 실패하는 사례도 많이 나타났다. 이는 무엇보다도 경험 부족에 의한 시행착오가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또 관 주도로 축제가 진행되다보니 축제의 주인공이 소수의 관 소속 공무원들이 되고 지역의 주민은 구경꾼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축제의 가장 큰 문제는 핵심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실시하는 것을 모방하여 실시하다보니 별로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개발이 필수다. 참신하고 수준 높은 축제를 위해서는 지역주민과 공무원, 나아가 대학이 연계하고 끊임없이 학습을 통하여 축제의 질을 높여나가야 한다. 지난 7월말에서 8월 4일까지 전라도 맨끝 정남진
요즈음 잦은 장마로 일조량이 예년 평균의 70% 수준이라 한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먹어야 할 식량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수치이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가운데 오직 농부만이 기대를 하면서 바라보는 꽃, 활짝 피는 날이 하루속히 오길 기대한다.
해마다 8월 15일이면 일본은 시계를 거꾸로 되돌린 듯한 거대한 착각에 빠져든다. TV와 신문은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의 원폭 투하로 숨져간 불쌍한 죽음을 추도하며 일제히 슬픔에 잠긴다. 당시의 쓰라린 고통과 공포의 기억을 떠올리며 반인륜적 핵무기를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는 결의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 같은 모습은 전적으로 동감하는 부분이지만,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는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다.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은 피해자일 뿐 가해자로서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원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원죄’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해 무자비하게 숨진 한국인의 죽음과 일제의 무모한 침략전쟁 속에 아시아 각국이 당한 피해에 대한 추도와 반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 이러한 사실을 아는 젊은이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올해 종전기념일(일본에서는 패전일8월 15일을 이렇게 부름)에도 어김없이 도쿄야스쿠니 신사는 일장기로 온몸을 휘감은 우익들로 넘쳐날 것이다. 일제 침략전쟁은 제국주의의 시대적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투쟁’으로 재해석되고 미화됐기 때문이다.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역사왜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