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 cafe.daum.net/parque 중국은 극동의 한반도와 달리 대내외적 충격이 잦았다. 격변의 세월을 보내면서 시대적 고난의 해결사로 여러 가지 대책이 마련된 것이 후세에 '제자백가'라 일컬어지는 학문의 태동이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키워드 서주(西周)시대까지 중국대륙은 존왕양이의 전통적 종법질서에 따라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공자가 이상으로 삼았던 국가상이 바로 서주가 아닌가!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그 성격이 크게 다르다. 유왕의 실정으로부터 시작된 주 왕실의 권위실추와 낙읍천도라는 대 사건을 바라보는 제후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금상을 폐하고 그들 스스로 왕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주나라 왕실이 최초의 중심, 다시 말해서 중화(中華)로서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어찌 되었건 주나라 왕의 책봉을 받은 제후의 입장에서 누구 하나 노골적으로 주 왕실 무용론을 주장하고 나설 입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국시대에는 이러한 상황이 바뀌고 만다. 비록 이름뿐인 주 왕실이지만(각 국의 제후들은 정통성을 이어받는다는 정치적인 계산이 있었지만) 춘추시대 말기에 이르러 초(楚)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아인슈타인'하면 떠오르는 공식이 있다. E=mc². 아마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공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질량과 에너지는 결국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이 공식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5년 독일의 물리학 연보 639페이지이다. '물체의 관성은 에너지 함량에 의존하는가?'라는 3쪽짜리 짤막한 논문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이 논문을 제출한 날은 1905년 9월 27일이다. 그러니까 2005년 9월 27일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의 수학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공식이 탄생한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인 것이다. 새로운 과학의 세계를 개척 당시 아인슈타인의 나이는 26살에 불과했다. 이 논문은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연속해서 발표한 4개의 놀라운 논문 가운데 맨 마지막 논문이었다. 흔히 1905년을 '기적의 해'로 부르고, 100주년이 되는 올해를 세계 물리의 해로 기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원래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를 나타내는 상수인 c를 V로 표시했고, 에너지를 나타내는 E는 L로 표시했다. 또한 원래 아인슈타인이 유도한 식은 m=E/c²였다. 질량 m인 물체가 빛의 형태로 복사에너지 E를 방출한 후 물
인천 연안 부두에서 약 50㎞ 정도 떨어져 있는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 승봉도. 이곳 승봉도에는 인천주안남초(교장 김현웅) 승봉분교가 있다. 현재 승봉분교에는 6명의 학생들과 함께 지승준·주은희 부부 교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비록 작은 섬마을 분교지만, 두 교사의 헌신적인 노력과 순수한 학생들이 하나 되어 교육열은 도시의 어느 학교 못지않다. '승봉 책벌레 시간'으로 하루 시작 승봉분교의 하루는 8시부터 시작된다. 등교시간은 8시 30분이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8시면 학교에 온다. 8시 30분부터 진행되는 '승봉 책벌레 시간' 때문이다. 각 학년별로 지정되어 있는 책들을 자유롭게 읽고, 책을 다 읽으면 교실 한 쪽에 있는 표에 스티커를 붙인다. "학교에 오면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고, 수업이 끝나도 집에 가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이 더 좋아요"라고 말하는 황재경 양(4학년)은 최고 학년답게 가장 많은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이런 독서 시간을 이용하는 것은 최근 논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학생들에게 글쓰기 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것으로, 책을 다 읽은 후엔 학교 홈페이지에 독후감을 올려놓는다. '승봉 책벌레 시간'이 끝나면 역시 전교생이 함께 영어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