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호ㅣ울산 옥현초 교사 등산 좋아하시는 분들은 삼도봉(三道峰)을 아실 겁니다. 충북 영동, 전북 무주, 경북 김천에 걸쳐 있는 산이라서 삼도봉이라 불리게 되었지요. 우리 답사자들, 특히 절터를 즐겨 찾으시는 분들께는 '3도(道) 3주(州)'가 있습니다. 3도는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를 말하고 3주는 여주, 원주, 충주를 이릅니다. 행정구역이 다른 세 고을이 남한강을 끼고 이웃해 있습니다. 지금이야 그 중요성이 덜해졌지만 이전의 남한강은 강원도와 충청도, 경기도를 꿰뚫어 흘러내리는 국토의 대동맥이었습니다. 강을 따라 쌀, 생선, 소금, 목재 등이 교류되었고 조운창과 나루터가 곳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조선의 도읍지로 한양을 선정할 때도 한강이 사방 고을의 중심에 있고 배와 수레가 통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으니 한강의 본류인 남한강은 그 중요성으로 인해 곳곳에 성, 나루터, 절을 많이 남겨 두었습니다. 이 지역 절터 답사의 멋은 잠시만 달리면 3도(道)를 넘다들면서 웅장한 절터를 만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제자리에 있어야 할 유물들이 왜란으로, 근현대기를 거치면서 외지로 옮겨져야 했던 아픔이 있습니다. 오는 10월 28일 문을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 cafe.daum.net/parque 최초의 종교개혁과 불교 기원전 15세기 무렵 인도에 침입한 중앙 아시아의 아리안 족은 기원전 5세기경에 브라만교를 완성시켰다. 원시 브라만교가 자연숭배적 다신교에서 점차 인간문제로 종교적 관점이 옮겨짐에 따라서 신들의 성격도 달라지게 되었으며 형식적인 종교의식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개혁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카스트 제도의 최상위 그룹에 있었던 브라만 계급이 지식을 거의 독점하고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일부러 종교의식을 복잡하게 함으로써 종교를 민중으로부터 멀게 하는 형식주의로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점차 브라만교의 종교적 권위가 무너지면서 인도에서는 종교개편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바로 불교와 자이나교의 등장과 브라만교에서 힌두교로 변화되는 3대 종파운동으로 나타났다. 석가가 활동했던 시기가 기원전 5세기 전후니까 중국에서는 공자,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가 활약하여 세계는 이미 철학의 융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석가가 태어난 인도는 당시 문명 선진국(인더스문명)이었으므로 고대인도 철학사상이 당시의 브라만교에서 무르익고 있었던 것이다. 석가는 깨달음을 얻고 설법에 나서 출가한 수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