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숙 | 한국방송통신대 연구교수 우리사회에서 학부모는 어떤 존재로 비춰져왔는가? 학교교육에서 후원자이거나 소위 ‘치맛바람’의 근원지, 왜곡된 교육열의 주도 세력쯤으로 다루거나 비춰졌다. 적어도 십여 년 전에는 학부모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이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에 학부모를 보는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교육정책 토론 프로그램에서 학부모 대표가 패널로 반드시 등장하거나 새로운 대입제도의 도입이나 전형제도의 변화 등 학교교육이나 교육정책과 관련하여서 교사단체의 인터뷰와 같은 비중으로 학부모단체의 인터뷰를 다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굳이 구색 맞추기라고 저평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 만큼 학부모 집단에 대해 교육당국자들이 의식하고 있으며, 이들의 의견 수렴을 중시한다는 반증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학부모 집단을 다루는 현재의 모습이 단지 시간 흐름의 결과는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학부모들의 적극적이며 투쟁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참교육학부모회와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등 초기의 학부모운동 단체의 역할이 컸다. 초기엔 학교 후원자 역할에 머물러 해방 이후
김성열 |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 오늘날 학부모가 수행하는 역할은 이전에 비하여 다양하다. 재정후원자의 역할을 넘어서서 자원봉사자로서 그리고 학교교육과 관련한 의사결정자로서, 교육위원과 교육감선출권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이제 학교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데 전문성을 가지고 보다 직접적으로 참여할 것이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증대되는 것을 기대하면서도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학부모들이 수행하는 역할과 새롭게 수행하기를 요구받고 있는 역할에 대하여 논의하려고 한다. ‘우리 아이’를 위한 지원 필요해 초·중등학교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역할은 재정적 후원자로서 시작되었다. 초등교육이 의무교육으로 규정되었지만, 열악한 국가재정 때문에 무상으로 실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학부모가 일정액의 교육비를 부담해야만 했다. 학부모들이 재정적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학부모조직이 구성되었다. 시대에 따라 학부모조직은 후원회, 사친회, 기성회, 육성회 등으로 변천되어 왔다. 초등학교 교육의 완전 무상 의무교육화 그리고 중학교 교육의 완전 무상 의무교육화가 이루어진 후,
학교기업을 운영하는 실업계고교에서 높은 수익과 교육적 효과를 거두고 있어 화제다. 경기 여주에 위치한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교장 박봉식, 이하 여주농고)는 지난 2004년 3월 교육부로부터 학교기업 실험학교로 지정된 후 2006년에 10억이 넘는 매출액을 달성했다. 학교기업이 활성화 되면서 여기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도 보다 전문적인 농업 경영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여주농고는 학교기업을 설립하면서 개발한 ‘여농에듀팜’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통해 유기축산사료, 육가공(소시지), 유가공(요구르트, 우유, 치즈), 화훼포(관엽, 난, 국화 등)의 4개 분야를 운영하고 있으며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제2기 학교기업 지원사업계획’에 선정되어 2006년부터 2년간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선진 농업인으로서의 꿈 키워 30여만 평의 넓은 여주농고 교정에 들어서면 우선 본관 건물과 기숙사가 눈에 들어온다.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지만, 건물 뒤로 보이는 높게 솟아오른 공장의 탑과 산 밑에 자리 잡고 있는 축사들 그리고 수십 동의 온실을 보면 뭔가 특별한 학교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든다. 박 교장은 학교기업 운영을 위한 학교시설의 확충보다는 학생들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박보영 | 연세대 교육연구소 전문연구원 언론 통해 보이는 학부모의 모습 기사와 뉴스 등 언론 매체를 통해 그려지는 학부모들의 모습은 매우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서,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우리 사회의 교육을 망치고 교실을 붕괴시키는 주범이 꼭 학부모들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언론 매체를 통해 그려지는 학부모들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그 대표적인 양상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학생의 권리에 대한 수호자 혹은 대변인으로서 학부모의 모습이다. 언론 매체는 학부모들이 교육현장의 전반적인 인권 수호에 대해 합리적인 활동을 벌이는 일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고, 학부모들의 이의 제기 방법이 폭력적이거나, 이의 제기 과정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 매우 선정적인 방식으로 학부모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2006년 5월 청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무릎 꿇은 교사’ 사건을 보더라도 언론은 교사가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 꿇는 일이 발생한 전체적인 정황과 구조적 요인 등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기보다는 교사가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만을 선정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교권이 침해되는 것이 모두 ‘지나친’ 학부모들 때문인 것으로 묘사하고
교육의 보편적 진리 담은 고전 지난 1967년 제작된 제임스 클라벨 감독의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은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으로 일컬어지는 교육영화의 전형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제법 시간이 흐른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바라본 이 영화는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교육영화들이 가진 정형화된 구성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사회와 학교가 포기해 버린 문제 학생들, 그런 학생들을 방관하고 있는 무기력한 교사들, 거기에 혜성같이 나타난 주인공으로서 교사, 그리고 그의 헌신과 희생에 극적인 변화의 순간을 체험하는 아이들과 여타 교사들, 마지막으로 멋진 해피엔딩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그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러한 흐름의 이야기 구성이 전형적이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이후 수많은 교육관련 영화들의 형식과 내용에 이 작품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는가를 역설적으로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혹자는 ‘전형적’이라는 말 때문에 이 작품에 선입견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장르의 예술이 그러하듯 한 영역의 전형이자 고전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측면의 완성도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런 형식을 생생히
노무현 대통령의 2007년 신년사(新年辭)에는 ‘교육’이란 단어가 두 번 등장한다.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 부동산, 교육문제로 민생이 어렵고 저출산․고령화 등 미래의 불안도 있습니다”라며 한 번, “교육문제는 아직도 힘들고 불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빠르게 좋아지고 있습니다”라며 또 한 번. 교육계 입장에서는 좀 섭섭하기도 하지만 산적한 국정현안을 감안, 그나마 감사할 따름이라고 하면 너무 관대하다는 핀잔을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한명숙 국무총리의 신년사에는 ‘교(敎)’ 자도 없으니 말이다. 한 총리의 신년사(877자)는 대통령의 것(1240자)보다 양(量)이 적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신년사는 새해를 맞이하며 하는 공식적인 인사말이다. 꼼꼼히 살펴보면 각 기관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역점사업이나 새로운 정책비전을 파악할 수 있다. 주요업무의 흐름과 기관장의 철학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신년사가 읽히지 않고 있다. 시․도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교육감 신년사 조회 수를 보면 소속 공무원의 1%에 못 미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교육감들이 신년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