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 피해 (2) ‘희생’이라는 이름 붙이기 예전에 TV에서 인간이 취하는 뜻밖의 행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를 얼핏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기 몸을 던지는 사람이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전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플랫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뛰어드는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밖에 없는 자기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 사람의 타고난 성정과 그때까지 살아온 내력을 철저히 분석한다고 해도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정신작용이라고 할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자기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 사람을 매스컴에서 보도할 때 마치 숭고한 ‘희생의식’을 가지고 그렇게 한 것처럼 보도하곤 한다. 정작 당사자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때 ‘희생정신’이라든지 ‘고귀한 신념’ 같은 말을 언급하기보다는 ‘다른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다’거나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어떤 행위를 가리켜 ‘희생의식’이나 ‘희생정신’과 연관 짓는 것은 ‘사후에’ 그 행위를 대상화하고 거기에 의미를 붙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생
학교사회복지는 세계적 추세 환경 속의 인간(PIE)학교사회복지란 학교를 주 활동의 장으로 하여 학생의 문제를 해결, 예방하기 위해 사회복지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 방법론을 적용하는 사회복지 실천의 한 영역을 말한다. 사회복지에서는 개인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민이나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심리적인 결함이나 병리적 현상으로 한하지 않고 가족, 또래 친구, 교사, 기타 여러 개인 및 집단과의 관계와 더 큰 사회적인 역동 속에서 파악한다. 이러한 관점은 ‘환경 속의 인간(Person-in-environment : PIE)’라는 용어로 집약된다. 따라서 학생문제의 해결과 예방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상담이나 교육적 개입뿐 아니라 가정과 학교생활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에 근거하여 가정 - 학교 - 지역사회의 연계 속에서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본다. 또한 학생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여 펼쳐나갈 수 있도록 개인의 강점을 최대한 이끌어 내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연계하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직무이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 안에서는 교사를 기본으로 하여 지역사회의 의료계, 정신보건 전문가, 복지기관, 방과후보육(
“발트함대, 1905년 대한-쓰시마해협에서 일본 함대를 완패시키다.” 물론 사실은 전혀 달랐다. 발트함대는 일본해군에 완패했고, 더불어 러․일전쟁도 끝났다. 그리고 대한제국도 곧 숨을 거두었다. 1905년 5월 27~29일의 진해부근 해전에서 발트함대는 전함의 3분의 2가 침몰하고 6척이 나포되는 등 문자 그대로 참패했다. 겨우 4척만 블라디보스토크로 도주해 침몰을 면했다. 세계 최강으로 소문난 발트함대였지만 7개월의 지루한 항해로 함선도 수병도 지칠 데로 지친 상태에서 기동력과 무기에서 우세한 데다 하늘을 찌를 듯한 상하 병사들의 사기를 자랑한 일본 함대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청일전쟁(1894~95)에서의 승리로 조선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게 된 위에 랴오뚱반도와 타이완 등을 얻어 욱일승천의 기세에 들떠있던 일본은 뜻하지 않게 삼국간섭에 부딪쳤다. 독일․러시아․프랑스의 위세에 눌린 일본이 결국 1895년에 랴오뚱을 청에 반환했지만 이후 한반도는 청․일 대신에 러․일의 각축장이 되었다. 삼국간섭을 주도해 해 일본의 랴오뚱 반환을 이끌어낸 러시아는 청과 비밀협약을 맺고 시베리아철도의 남만주 통과권을 얻었
삼별초, 자주를 외치다 지난 호에 이어 진도를 찾아갑니다. 진도는 삼별초의 본거지였습니다. 삼별초는 본래 최씨 무신정권에서 경찰기능을 맡았던 야별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야별초는 그 수가 많아짐에 따라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뉘게 되었고 후에 몽고와의 전쟁 때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병사들인 신의군과 합쳐 삼별초라 부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삼별초는 도둑을 잡고 범죄자를 투옥하는 치안유지의 기능과 함께 대몽항쟁의 최전방에 있었던 군사적인 기능까지 아울렀던 것입니다. 1206년 칭기즈칸이 나라를 세운 뒤 줄곧 고려는 몽고와 마찰을 빚기 시작했고 급기야 1225년 몽고사신 저고여(著古與) 일행이 압록강가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를 계기로 몽고의 본격적인 침략이 진행되게 되지요. 이에 맞서 고려의 최씨 무신정권은 장기적 항전을 결심하고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깁니다. 몽고에 대한 줄기찬 항전에는 최씨 무신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던 삼별초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1258년 김인준에 의해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이듬해 결국 몽고와 강화를 맺게 되고 그 후 개경 환도가 결정됩니다. 최씨 무신정권의 핵심병력이었던 삼별초는 약 40년간 고려의 수도였던 강화도를 버리고
한때 장안의 인기를 한몸에 모았던 영화 가운데, ‘장군의 아들’이란 작품이 있었다. 청산리 전투로 유명한 독립군 사령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었던 ‘김두한’의 풍운아적인 젊음과 의협의 이야기를 얼마간은 허구적 픽션을 가미하여 만든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었던 억압과 울분을 배경으로, 종로 일대 일본 경찰의 끄나풀 패거리들을 김두한의 주먹이 통쾌하게 짓누르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만했다. 범상한 사람들이 감히 따를 수 없는 뛰어난 주먹의 힘과, 불의를 용서하지 못하는 의협심, 그리고 따르는 무리들을 인간적으로 감동시키는 특유의 카리스마 등을 보면서, 사람들은 장군의 아들에 매료된다. 게다가 사랑 앞에서는 한없는 순정의 화신이 되는 멜로의 요소까지 흠뻑 곁들였으니 이런 캐릭터가 대중의 우상이 아니 될 수 없다. 사람들은 과연 장군의 아들답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김두한은 해방 이후에도 ‘장군의 아들’로서 대중적 프리미엄을 누렸고, 이러한 인기를 정치적으로 반영하여, 그는 한때 국회의원의 자리에 나아가기도 하였다. 이 세상에는 실제로 많은 장군들이 있다. 현실적으로 군인은 계급장에 별을 달면 장군으로 칭함을 받는다. 준장에서 대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