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건국, 숨차게 달린 한국교육 35년 서럽고 쓰라린 일본의 식민 지배를 자력으로 벗어나지 못한 대가는, 정작 건국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될 주인이 주도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과 북에 외국 군대가 진주하고, 종국에는 일 민족 두 개의 국가가 들어섰다. 이 민족에게 드리워진 국토 분단의 멍에는 대한민국 건국 60년이 된 오늘에도 우리에게 좌절과 각오를 교차시키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은 그 자체가 놀라운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건국은 힘들었고, 건국 후에도 위기의 터널을 달려왔다. 건국초기부터 내외의 온갖 방해와 저항이 있었으나 건국 후에는 국제전으로 비화한 6·25 동족상잔으로 취약했던 경제기반 마저 잿더미가 된 피폐한 나라가 되었었다. 전후에도 안보위협을 계속 받았고, 선거부정, 학생유혈봉기, 군부독재, 시민유혈봉기와 같은 내부 진통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러한 대내외의 위기를 극복해왔고, 서구 사회가 200여 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를 불과 40여 년 만에 이루는 경제적 기적을 낳았다. 민주화도 달성했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하게 OECD 회원국, G20 그룹에 속하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 경험은 많은
젊은 시절엔 버스를 타고 긴 여로(旅路)에 오르는 것이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좁은 공간에 갇혀야 하는 그 시간이 지루함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낯선 사람을 옆자리에 앉힌 채 긴 시간을 함께 자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다란 무게감을 지닌 채 다가오는 법이다. 그런 만큼 나이가 웬만큼 든 승객들은 차에 오르며 혼자 앉게 되기를 갈망한다. 김명자 씨도 그런 바람을 가지고 고속버스에 올랐다. 가는 곳은 같되 그곳을 향하는 목적은 서로 다른 승객들이 이미 열댓 명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승차권에 기재된 번호를 확인한 뒤 자리에 앉았다. 바랐던 대로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며 등을 깊숙이 묻었다. 온몸이 물에 잠긴 솜뭉치처럼 무겁고 나른했다. 눈을 감자 심신이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 풀어졌다. 종아리에서 찬바람이 일도록 일분일초를 아끼며 하루 종일 뛰어다닌 노력의 결과가 건더기가 전혀 건져지지 않는 장국처럼 멀겋게 쑤어져 피로감은 더했다.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모두는 보호 시설에마저 조금의 정도 나누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운전석 위의 전자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직 출발 시각이 10분 정도 남아 있었다. 그녀는 버스가 출발
훌쩍 떠나기, 그리고 쥘 베른의 ‘경이의 여행’ 지구본을 손가락으로 돌려본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지구가 돌아가면서 둥글게 세상이 펼쳐진다. 익숙한 지명들 사이로 조금만 비켜가도 낯선 곳.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어느 누군들 그러지 않으랴. 아침 출근길에서 또는 답답한 교실에서 문득 먼 하늘 바라보면 어느새 마음은 어디론가 떠나고…. 어느 계절인가 훌쩍 떠난 길. 한적한 강원도의 산간 도로를 미끄러지듯 차로 달릴 때, 온몸에 파고드는 듯한 떨림에 놀란 적이 있었지. 문득 대학 시절 걸었던 긴긴 옛길들, 떠오르고, 하늘 가득 쏟아질 듯 은하수, 젖어 있고, 그 아래 터벅이던 발자국들, 가슴 쿵쾅거리고, 철썩거리던 파도 소리, 발끝을 간질이고, 백두대간의 산맥들에서 뿜어 나오는 나무들의 숨소리. 작은 새의 호흡처럼 이어지던 길. 끝 모르게 펼쳐지던 생각들. 누구나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누군가는 벗어나 마침내 돌아오고 또 누군가는 벗어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쥘 베른(Jules Verne·1825~1905).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번역된 작가. 그는 인류의 가슴에 영원한 여행의 꿈을 심어 준 작가다.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라
교원정책 전반 다뤄 교섭위원들 긴장 지난해 11월 12일, 정부중앙청사 16층 대회의실. 한국교총과 교육과학기술부의 2008년 상·하반기 교섭·협의를 위한 제1차 본교섭·협의위원회 개회를 앞두고 양측 교섭위원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돌았다. 오전 11시 양측의 교섭대표인 안병만 교과부장관과 이원희 교총회장이 입장하고, 교섭위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분위기는 누그러졌지만 회의 내내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계속됐다. 안병만 장관은 “지난 1992년 시작된 교과부와 교총의 교섭·협의는 그동안 교원들의 권익향상과 교육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며 “이번에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우리 교육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서로 협력하자”고 말했다. 이원희 회장도 “새 정부 들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화답하며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했다. 이날 교총-교과부 간 본교섭·협의는 양측 교섭대표의 인사말, 교총의 교섭·협의 요구 사항에 대한 제안 설명, 교총의 제안 설명에 대한 교과부의 입장 표명, 양측 교섭위원의 자유발언, 교섭대표의 마무리 발언으로 진행됐다. 1차 본교섭·협의회를 마친 양측은 원만한 교섭·협의를
일본의 전국학력조사에서 2년 연속 전국 최고 수준이었던 아키타현내 초・중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현교육위원회의 과제는 고교생의 학력 향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들어가기 힘든 대학 수험을 지망하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입시학원 강사를 초청하여 집중강의「토요강좌」를 시작했다. 학원이 적은 아키타현내에서 수도권의 학원 강사들의 강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학생들의 학력 향상을 꾀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자, 여기를 메모하세요」. 아키타시 메이토쿠칸 고교에서 23일에 있었던 2학년을 대상으로 한 첫 강의 시간이다. 도쿄에서 초청 된「요요기 세미나」학원의 수학강사가 1교시 수업을 적절한 속도로 진행했다. 센터 시험문제 등 대학수험의 실전적인 문제를 푸는 한편, 잡담도 섞어가면서 재미있게 진행해 나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강의에는 아키타, 아키타키타, 아키타미나미, 아키타주오, 혼조 등 5개 교 약 40명이 수강했다. 토요강좌는 현교육위원회가 올 해 시작한「고교생 파워 업 추진사업」의 일환이다. 현내 고교생의 2007년도 입시 센터시험의 성적은 전국 39위이다. 한편, 현교육위원회에 의하면 졸업자 전체에서 국공립대학 입학자의 비
교대 부설학교 등 전국 43곳의 국립학교를 3월부터 공립학교로 전환하려던 정부의 계획이 2010년 이후로 미뤄졌다. 1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이르면 올 3월부터 전국의 국립학교를 공립학교로 전환키로 하고 최근 국립학교 설치령 등 관련 법령 입법예고까지 마쳤으나 법령 개정 작업을 유보하고 공립화 계획을 내년 이후로 미루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부 관계자는 "국립학교 공립화에 대한 이견이 많아 좀더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올 3월과 5월께 공청회를 열고 필요할 경우 입법예고안을 다시 만들어 2010년 이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과부가 공립학교로 전환을 추진한 학교는 서울대 부설 초ㆍ중ㆍ고를 비롯한 각 국립대 부설학교, 서울교대, 경인교대 등 전국 10개 교대 부설 초등학교 등 부설학교 40곳과 공립공고 3곳(부산기계공고, 전북기계공고, 구미전자공고)이다. 교과부는 국가 업무가 지방으로 이양되는 추세를 반영하고 학교 감독 권한이 교과부와 시도 교육청으로 이원화돼 있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들 43개 학교를 시도 교육감이 관리, 감독하는 공립학교로 전환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전국의 교대 총장, 교수, 국립학교 교장,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