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의 물결', '정보혁명', '인터넷 월드'. 모두가 인류 문명이 산업사회를 지나 지식기반사회로 전환되고 있는 현상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이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민족단위의 국제관계는 세계화의 물결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 나라는 90년대부터 세계화를 부르짖어 왔다. 대외 개방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우리 나라의 지경학적, 지정학적 위상을 고려할 때, 이러한 비전은 재도약의 필요충분 조건이자, 국제적 위상과도 걸맞은 진로 설정이었다. 그러나 세계화 논쟁에서는 금융, 자본 등의 경제적 측면만이 강조되어 왔다. 세계화의 선행 조건인 국제문화에 대한 이해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국제적으로 우리 나라 세계화의 현주소는 그다지 개선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예컨대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는 '세계경쟁력 보고서'(2003)에서 우리 나라의 경제적 세계화 수준은 높은 반면, 외국 문화에는 유연하지 못함을 지적했다. 여전히 자문화 중심주의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제 문화에 대한 이해는 진정한 세계화의 필요 충분 조건이다. 최근 우리 나라의 국제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어느 TV의 '아시아! 아시아!'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고 있다. 국내의 3D 업종에서 종사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산업연수생)의 본국 가정을 방문해 한국에서
그들의 생활 모습을 전하고, 또 한국으로 그 가족을 초청하는, 이른바 세계화판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동환경 실상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송두리째 앗아갈 정도로 부끄러울 정도다. 임금체불, 구타, 산재 방치 등 비인간적인 처우는 예사롭지 않게 발생하고 있어 보였다. 물론 일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우라고 믿고 싶다.
이미 국제질서가 상호의존관계를 넘어 밀접하게 연계된(hyper-connected) 이상, 이질 문화간의 접촉은 피할 수 없고, 더욱 확대될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다문화 간의 공존, 융합이야말로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규정할 수 있다. 국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세계화는 배타적인 속성을 내재하고 있는 민족주의를 자극함으로써 국제관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 나라는 좋건 싫건 지정학적으로나, 지경학적으로 세계화 물결 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라면 국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세계화의 기반이 된다. 그러나 국제 문화에 대한 배타성이 적지 않게 내면화되어 온 역사적 유산은 여전히 힘겨운 짐이 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우리의 생존 방법이기도 했고, 또한 국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국제 문화간의 공존과 공영을 포용할 수 있는 지혜다. 편협한 자문화 중심주의를 버리고, 적극적인 '세계성'으로 무장하려는 자세야말로 그토록 갈망하는 1만 달러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적 자본이다. 아무리 소득 수준이 높아지더라도 이러한 자본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결코 선진국 대열 진입은커녕, 아시아권에서는 물론, 세계무대에서 고립을 자초하게 될 수도 있다.
대학 교육과정에서는 국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강의실에서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해외 대학과의 학점교류, 학생교환, 자발적 해외 연수 활동, 국제대학원 교육 등을 통하여 해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기회가
학생의 졸업 후 진로에도 적지 않은 긍정적 효과를 미침으로써 이제는 필수 과정처럼 활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초·중등 교육과정에서는 국제 문화에 대한 교육이 거의 방치되고 있다. 지난 3월 교육서비스 시장 개방에 대한 찬반론이 격렬하게 대립되고 있는 시점에서 필자가 초·중등 교육의 경우에는 외국어 교육, 국제이해교육 차원에서 제한적 수준에서나마 개방을 제안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교원양성기관 평가를 통하여 교육과정에서 세계화 시대에 부응할 수 있는 세계시민교육이 정착될 수 있도록 유도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청소년 시절부터 국제 문화에 대한 이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때, 진정한 세계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국제 문화에 대한 이해, 포용력 없는 세계화는 허상이자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
청소년들이 일찍이 이에 대한 안목과 포용력을 지닐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통하여 이론과 실질적 체험을 겸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워질 때, 진정한 세계화, 나아가서는 1만 달러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문화적 자본을 축적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