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물결', '정보혁명', '인터넷 월드'. 모두가 인류 문명이 산업사회를 지나 지식기반사회로 전환되고 있는 현상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이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민족단위의 국제관계는 세계화의 물결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 나라는 90년대부터 세계화를 부르짖어 왔다. 대외 개방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우리 나라의 지경학적, 지정학적 위상을 고려할 때, 이러한 비전은 재도약의 필요충분 조건이자, 국제적 위상과도 걸맞은 진로 설정이었다. 그러나 세계화 논쟁에서는 금융, 자본 등의 경제적 측면만이 강조되어 왔다. 세계화의 선행 조건인 국제문화에 대한 이해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국제적으로 우리 나라 세계화의 현주소는 그다지 개선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예컨대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는 '세계경쟁력 보고서'(2003)에서 우리 나라의 경제적 세계화 수준은 높은 반면, 외국 문화에는 유연하지 못함을 지적했다. 여전히 자문화 중심주의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제 문화에 대한 이해는 진정한 세계화의 필요 충분 조건이다. 최근 우리 나라의 국제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어느 TV의 '아시아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함께 태동된 교육 서비스 시장 개방의 시한(3월 31일)이 다가오자 찬반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편에서는 교육 시장 개방을 공교육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인식하는 찬성론이, 다른 한편에서는 이로 인하여 공교육의 질이 오히려 낙후될 것이라는 반대론이 각각 대립되어 있는 듯하다. 논쟁의 한가운데 서 있으면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이 정도의 교육에 대한 애정이라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매우 희망적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이것이 우리나라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생산적 논쟁은 언제나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반대론 속에는 외국의 교육 서비스를 다소 오해하는 내용이 걸러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외국의 교육 서비스는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의 교육체제를 보완하는 재화로서 기능할 때, 의의가 있다. 그것이 대체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도 본연의 교육 목표를 갖고 있고, 그것을 외국의 교육 서비스에만 전적으로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양질의 보완재까지 배척하는 것이 교육에 대한 참다운 애정의 표현이 될 수 있을까. 반대론이 우려하는 것은 국내에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