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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학벌주의는 교육병리다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가 기업체 입사 서류의 학력 기재란을 없애보자고 얼마전 국무회의에서 제안해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몇몇 장관들과 언론은 크게 반대를 나타냈으며 특히 한 신문은 사설에다 칼럼까지 동원하면서 아주 잘못된 발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학력을 보지 말라면 그럼 관상보고 뽑으란 말이냐는 극단적인 반박도 나왔다.

언론들이 지적한 대로 기업체가 사원 뽑는 일을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 큰 파문이 예상되는 문제를 불쑥 국무회의에 들고 나온 것은 경솔하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마치 미운 털 박힌 이가 허방에 빠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양, 이때다 하고 한 전 부총리에게 엄청난 비판과 질책을 퍼붓는 것 역시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경력이나 교육부총리라는 직책으로 보더라도 그가 저런 파란을 예상하지 못하고 이 문제를 거론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른바 '대학 간판' 숭상이 빚는 엄청난 교육현상의 병리 등 여러 갈래의 폐단이 국가와 사회를 심히 뒤틀리게 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그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부총리의 뜬금없는 거론 방식만 가지고 떠들고 매질할 것이 아니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오늘의 교육 현실에 눈을 돌리고 그 타개를 위해 함께 고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다.

논의들을 보면 어떤 이는 學歷과 學力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치 한 전 부총리가 국민을 모두 바보로 평준화하려고 획책하고 있는 것처럼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입사 서류에 學歷을 기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찌 모든 사람의 學力이 낮아질 것인가.

또 어떤 이는 국가가 기업의 인사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라고까지 들먹인다. 그러나 인사담당자가 입사 지원서의 학력 기재란만을 보고 특정대학 이외의 것은 아예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기가 일쑤라는데 이것이야말로 분명히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구직자에게 결혼 여부나 나이를 묻는 것조차 프라이버시 침해로 보는 서구의 나라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나라들과는 사회문화 체제적 측면에서 분명히 다르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 어느 나라들보다도 지독하게 學歷을 따지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學歷과 관련된 부당한 차별대우를 철폐하는 것이 오히려 헌법 정신을 살리는 길일지도 모른다.

학력 따지는 사회 때문에 대학 입학은 생사를 걸어야 할 인생중대사다. 서울 특정지역의 아파트 시세가 명문 대학 합격자를 많이 내는 입시학원 다니기가 쉽다는 이유 때문에 폭등하는 것이 우리 나라의 현실이다. 대학 입학 지원자를 성적순에 따라 한 줄로 세우는 지독한 경쟁에서 남보다 앞쪽에 서기 위해 수험생들은 피말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 가족까지 1년 동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다.

편입 경쟁도 만만치 않다. 상위권 대학의 결원을 중위권 대학생이 편입하여 메꾸고 중위권 대학의 빈자리는 하위권 대학에서 올라가 메꾼다. 서울 시내 대학에는 서울 주변과 지방 대도시 학생들이 편입해 가고 지방 대도시 대학에는 지방 소도시 대학의 학생들이 편입해 간다. 그러니 어떤 지방대학들은 3학년이나 4학년 학생이 반수도 안되게 줄어들기도 한다. 이 연쇄 이동은 순전히 '대학 간판' 때문이다. 입사 지원할 때 이력서에 좀더 나은 '간판'을 써넣기 위해 수직이동하는 행렬이 이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만성적 학벌 위주의 여러 가지 부작용과 문제점들을 해결해 가기 위해선 다소의 무리가 있더라도 정부는 과감한 정책과 실천적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출중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 가운데는 이른바 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많다. 한 전 부총리에게 화살만을 쏘지 말고 기업들도 이 기회에 스스로 학벌만능의 병폐에서 벗어나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학을 어디 나왔느냐 하는 것을 기준으로 문간에서 아예 내모는 일부터 우선 없애보자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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