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교실은 온통 낯설었다. 낯선 분위기, 선생님, 친구들. 3시만 넘으면 집에 올 수 있었지만 긴장했는지 참 피곤했다. 밥만 먹으면 정신없이 자고 눈 떠 보면 다시 학교 가는 시간이 반복됐다.
입학 후 서너 시간의 수업이 지났을까. 국어 선생님은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희경, 다음부터 읽어볼까?"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다. 교복 자율화로 명찰이 있지도 안았고 당시 한 학급에는 70명의 친구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벌써 내 이름을 외우고 계셨다.
항상 아이들을 고운 눈매로 바라보신 선생님. 지금처럼 수행평가가 없던 시절이지만 우리는 국어 시간마다 설명문, 논설문, 시, 소설, 수필을 읽고 쓰고 말하며 너무나 즐거웠다. 언제나 숙제를 정성스럽게 평가해 주셨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해마다 아이들이 바뀌어도 언제나 날 불러주시던 선생님이 존경스러워 난 꼭 국어 선생님이 되리라고 다짐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난 정서 불안정의 문제 소녀였다. 불만과 회의는 늘 선생님들을 향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찌는 듯한 한 여름의 고전문학 수업은 숨통을 죄기에 적합했다. 그래서 우리는 은연중 혼기마저 놓친 그 노총각 선생님을 놀려먹기로 공모했다. 마침 처음 발령을 받으신 여 선생님이 계셔서 두 분을 엮어보자는 것이었다.
드디어 운명의 시간. 우리 반 50명은 수업시간에 모두 소리를 높여 국어 선생님과 여 선생님의 이름을 넣어 옆 반이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 그 때 선생님의 표정은 정말 칠판보다 더 딱딱해지고 있었다. `아차 실수했구나'라는 마음도 잠시, 우리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2절까지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선생님은 복도 쪽으로 천천히 나가셨다. 회장이 나갔고 반 분위기는 그야말로 폭풍전야와 같았다. 그런데 5분 후. 선생님은 다시 들어오셨다. 그리고 딱 한마디. 지금까지 다시없는 감동으로 다가온 그 한마디를 하셨다.
"애들아! 다시는 그러지 마라" `아! 저게 용서라는 거구나' 야단을 치셨다면 느끼지 못했을 큰 감동이었다. 교사가 된 지금, 얼어붙은 표정으로 야단맞을 것을 걱정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난 생각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이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일까.
오늘 스승의 날. 아이들이 달아 주는 꽃을 받게 된 나지만, 나를 교사로 서 있게 하시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해 주신 은사님께 마음의 카네이션을 달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