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떠오른 서·논술형 평가, 15년간 반복된 시도와 좌절
지난 8월 5일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의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서·논술형 평가가 교육 분야 핵심 이슈로 다시 떠올랐다. 여러 정부가 반복적으로 시도했던 정책이라서 서·논술형 평가 도입의 타당성은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초학력·문해력·사고력 신장이라는 도입 취지를 부정하는 목소리도 없다. 다만 단기간에 준비할 수 없고 면밀한 사전 장치가 많이 필요하다는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서·논술형 평가 전면 전환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초등학교 내신평가는 거의 모든 교육청에서 수행평가 100%로 시행되고 있으며, 서·논술형 평가는 교과목에 따라 수행평가의 한 영역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그 비율을 하나로 정하기 어렵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내신은 수행평가와 정기시험(지필고사)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모든 교육청에서 수행평가는 40% 이상, 서·논술형 평가는 정기시험 혹은 학기 총점의 20~50%를 반영한다.
수치와 기준이 교육청별로 달라서 좀 복잡하지만, 서·논술형 평가의 비중은 대략 20~50%라고 할 수 있다. 15년 전에 발표된 당시 교과부의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2011. 12. 13.)에 따르면 2010학년도 시도별 고교 서술형 평가 반영 비율 평균이 21.2%였다. 그 당시와 비교하면 지역에 따라 그대로인 곳도 있고 늘어난 곳도 있다.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은 서술형 평가 및 수행평가 개선, 고교 성취평가제 도입(상대평가 폐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2012~13년에 시범 실시한 후 2014년부터 완전히 성취평가제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이었다. 특히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평가제도 개선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현장에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2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정책연구와 토론회는 물론 평가 전문가와 현장 교원, 교원단체·학부모단체·유관기관 협의 등 60여 회에 걸친 충분한 현장 의견 수렴을 하여 현장 적합성 높은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시도는 실패했다. 이 선진화 방안은 지금도 여전히 시범 실시 중이다. 수능 서·논술형 문항 도입도 과거 대입제도 공론화 과정에서 몇 차례 논의됐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2018년 교육부는 2022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에 들어가기 전 수능 체제 개편 방향으로 서·논술형 문항 도입을 제시했고, 2021년에는 2028학년도 수능에 서·논술형 문항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뒤 교육부는 교사들의 평가 역량이 나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교육 유발 효과가 클 것이라며 도입을 유보했다. 그러면서도 교육부가 2023년 말에 발표한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확정안’에서 “교사 평가 역량 강화 및 논·서술형 내신 평가의 혁신이 대입과 효과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선진적 대입 기반 구축 지원”을 추진한다고 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발표는 현실로 옮겨지지 못하고 사라졌다.
15년 전에 발표된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에도 서·논술형 평가 도입의 현실적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대책이 무엇인지 나와 있다. 2013년에도, 2018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15년을 흘려보냈다.
정부 정책의 부실과 진정성 부재를 경험한 교사들은 이번에도 잠시 시끄럽게 논란을 벌이다가 과거처럼 서·논술형 평가 전환은 실패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실패 후에도 교육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논술형 평가를 잊어버리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리라고 여긴다. 그동안 교육부는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채점 공정성부터 업무 부담까지 … 넘어야 할 현실의 벽
8월 5일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언론에 보도된 서·논술형 평가의 문제점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 가장 반복적으로 제기된 문제는 우선, 채점의 객관성과 공정성이다. 채점자별 판단, 답안 표현 방식, 논리 전개와 근거에 대한 평가 차이에 따라 점수 편차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이다. 성적 부풀리기를 막을 방법도 마땅하지 않다. A 학교와 B 학교, 한 학교 내에서 A 교과와 B 교과, 한 교과 내에서 A 교사와 B 교사 사이의 차이가 발생할 때 그 차이가 정당한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할 수단이 없다. 더 나아가면 교사의 수업과 출제/채점 전문성과 준비 부족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지고, 그 결과 채점 결과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며, 민원을 해결할 책임을 교사에게 맡겨놓으면 교사는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다음은 사교육 확대이다. 지금도 초등학교 독서·토론·논술이 성행하고 있듯이 학교가 아무리 잘 준비해도 학생과 학부모의 욕망과 불안을 숙주로 삼는 사교육을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한다. 새로운 평가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사교육을 낳는다. 초기에는 피할 수 없다. 문제는 학교의 대응이다. 교사의 준비가 부족하면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격차가 학생의 성적으로 나타난다.
반면 학교의 준비가 고도화되면 사교육의 효용은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사교육을 통제하려면 교사의 준비를 돕고 채점의 공정성을 위해 AI 채점 보조도구가 필요하지만, 교사를 도와주고 채점의 일관성을 만드는 AI 채점 도구는 검증되지 않았다. AI 평가도구는 정말로 채점을 잘할 수 있을까. 공정성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경기도교육청의 ‘하이러닝’과 서울교육청의 ‘채움AI’가 있으나 여전히 AI가 학습할 데이터가 매우 부족하다. AI 평가도구가 있어도 교사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체제라면 채점의 공정성을 여전히 교사에게만 맡겨두는 상황이다.
더불어 평가체제의 타당성과 성취기준 구현에도 한계가 있다. 서·논술형 평가는 문항 수가 적어 다양한 성취기준을 적용하기 어렵고, 성취기준이 수십 개인 교과를 몇 개의 서술형 문항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답이 없는 논술형은 객관성과 변별력 확보가 어렵고, 답이 있는 논술형은 결국 암기형 평가가 되어 교육적 의미가 감소한다.
또한 서·논술형 평가는 교사만이 아니라 학생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백지 답안이 과반에 이를 것이고, 학생은 학습을 포기하게 된다. 특히 경계선 학생, 느린 학습자에게 서·논술형 평가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서·논술형 평가가 곧 문해력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교사의 업무 부담 증가이다. AI 평가도구를 활용해도 서·논술형 채점과 피드백은 막대한 시간이 필요하다. 획기적인 업무 경감 방안이 요구되지만, 교사의 업무는 줄어든 적이 없다. 이런 문제가 이미 제기되고 있지만 당장 모든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없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뿐 해결할 수는 있다. 지금 내놓을 수 있는 해결책은 제시한 [그림]과 같다.

학교와 교과 단위로 전문적학습공동체를 대폭 늘리고 교사를 위한 집중 연수를 지속한다. 평가 매뉴얼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여기에 평가 예시 문항, 기본 루브릭, 채점 요령, 예시 답안 등을 교과별로 만들어 제공한다. 수업모형을 매 학년 단위로 모으고 개발하여 제공한다. 교육청이 다수에 의한 다단계 평가체제를 만들어서 교사를 민원 대응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한다. AI 평가 보조도구를 빨리 제공한다. 기존에 제시된 해결책은 이러하다.
가장 핵심적인 방안은 교사의 평가권 확립이다. 단지 지침 수준으로 안내하는 형태가 아니라 법령에 기반한 강력한 권한이 부여되어서 교사를 보호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해도 민원을 피할 수 없지만, 서·논술형 평가는 교권과 직결되는 사안이므로 법적인 장치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교사의 평가권에 대한 불신이 지배하고 있고 교사의 평가권을 확립하자는 목소리는 미약하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공교육 생존을 위한 도전
이 모든 게 갖춰진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교사의 마음과 의지이다. 교사에게 실행할 의지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교사의 의지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도 모든 교사의 의지를. 이것이 진짜 문제이다.
지금까지는 국가가 정해놓은 지식을 주입하는 수업과 정답 찾기 평가가 학교교육의 근간이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이렇게 운영된 학교 제도는 개인의 다양한 자질과 소양을 다양한 방식으로 키우기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을 주어진 틀에 맞춰 찍어내는 인력양성 공장으로 기능해 왔다. 대한민국은 이런 학교 체제를 바탕으로 경제적 성장을 해 왔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우리 아이들 세대가 어쩌면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거라고 우려한다. 기존의 인력양성 구조가 한계에 봉착했고, 산업 변화에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구나 잘 알려져 있듯이 인구는 줄어들고, 고령화는 심각한 상황에 와 있다. 특히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인구 감소의 작은 물결이라면, 초등학교 3학년은 거대한 파도처럼 닥쳐와 학교 체제와 우리 사회를 바꾸게 된다.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과 방법이 달라지지 않으면 가난한 미래는 필연적이고, 사회적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서·논술형 평가 전환은 우리 사회의 생존을 위함이다. 걸림돌이란 밟고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딛고 더 앞으로 나아가라고 있는 것이다. 걸림돌은 디딤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