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물을 준비하지 못한 아이가 수업에 들어오는 날이 있다. 아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본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하기보다 옆 친구의 물건을 바라보고, 때로는 빌려도 되는지 묻지 않은 채 손부터 뻗는다.
말없이 손부터 뻗는 이유
이 모습을 보면 준비물을 챙기지 않은 것부터 지적하기 쉽다. 그러나 잠시 살펴보면 준비하지 못한 사실보다 그것을 드러내는 일을 더 어려워하는 아이가 있다. 혼날까 봐 두렵거나, 친구들 앞에서 준비물을 잊었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거나, 부탁했다가 거절당할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말없이 친구의 물건을 가져다 쓰게 둘 수는 없다. 아이의 손을 멈추게 하고 먼저 물어보게 한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못했으면 빌려달라고 말할 수 있어. 하지만 빌려주고 말고는 그 친구가 선택하는 거야.”
도움은 당연히 받아낼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평소 자신이 친구를 어떻게 대했는지, 필요한 순간에 어떤 말로 요청하는지도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연필 한 자루만이 아니다. 준비하지 못한 사실을 숨기려는 마음, 부탁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행동, 친구가 건넨 도움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한꺼번에 드러난다.
아이가 준비물을 잊은 이유는 들을 수 있다. 아침이 급했거나 가방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친구의 물건을 말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는 먼저 빌려도 되는지 묻고, 사용한 뒤에는 돌려주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 “빌려줘서 고마워.” 이 짧은 말까지 해야 도움을 받는 일도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친구에게 빌려 수업에 참여했다고 준비물에 대한 책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수업이 끝나면 다음 시간에 필요한 것을 확인하고, 집에 돌아가 자기 가방을 직접 챙기게 한다. 친구의 도움은 오늘 수업에 참여할 기회를 주지만 내일의 준비까지 대신하지는 않는다.
교사가 매번 말없이 여분을 꺼내 주면 아이는 준비하는 법보다 기다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친구가 늘 건네주면 부탁과 감사 없이도 필요한 것이 생긴다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도움을 주더라도 그 과정을 생략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고, 말로 요청하고, 빌린 물건을 돌려주며, 다음 준비는 자신이 맡게 해야 한다.
도움 요청에도 과정 필요해
행동의 이유를 살피는 것은 그 행동을 허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이가 부끄러움을 피하려고 친구의 물건에 손을 뻗는 대신, 필요한 도움을 정직하게 요청하는 다른 방법을 찾게 하기 위해서다. 연필 한 자루를 두고도 아이가 무엇을 피하려 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드러난다. 문제행동을 바꾸려면 먼저 그 행동이 아이에게 어떤 해결 방법이 되고 있는지부터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