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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 칼럼] 하이테크 하이터치 사회에 필요한 마음건강

첨단 기술 발전의 성패는 그로 인해 인간관계가 얼마나 좋아지는가에 달렸다고 합니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가 1982년도 저서 <메가트렌드>에 처음으로 제시한 하이터치 하이테크(high touch high tech) 개념은 첨단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감성과 따뜻함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 후로 40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하이테크 사회를 이루어 냈습니다. 미래 기술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제품 박람회인 CES 2024에 참여한 4,000여 세계적인 첨단 기술 기업 중 한국 기업이 무려 20%를 차지한 것만 봐도 확실합니다.

 

한국은 하이테크 사회를 이루는 동안 안타깝게 하이터치가 아니라 노터치(no touch) 사회가 돼버렸습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이 되더니 드디어 혼족 사회가 되어서 집에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이미 셋 중 하나를 넘었고, 매해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회 전면에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가족이 점점 흩어지고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사는 가정도 실은 탈가족 상태입니다. 아침에 가족구성원들이 뿔뿔이 흩어집니다. 부모는 일터로,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으로, 영유아마저 어린이집으로 각자 떠납니다. 저녁때에나 다시 모이지만, 온종일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함께 대화 나눌 힘도 없어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TV나 컴퓨터 앞에서 멍때리거나 잠자리에 들기 급급합니다. 이런 탈가족 구조에서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봅니다. 진화인류학적으로 가정이란 어른이 아니라 아이의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이지요.


물론 우리는 틈틈이 다양한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과 연결합니다. 카톡방·단톡방 같은 SNS상에 크고 작은 가상가족을 이루고 연결합니다. 하지만 가상공간에는 차가운 키보드에 손가락 터치만 있지 따뜻한 인간 터치는 없습니다.

 

그 사이 우리 마음은 식어가고 상합니다. 마음 씀씀이란 말이 있듯이 마음은 쓰라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관계와 연결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조율하는 게 마음입니다. 그런데 냉랭하고 상한 마음은 관계 조율을 어렵게 만들고 갈등을 증폭시킵니다. 부부 갈등도 심하고, 부모와 자녀 사이가 불편하고, 선생님과 학생 사이가 불안하고,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불신이 지배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이터치에 신경을 써서 하이테크와 균형을 이뤄내야 합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영유아의 마음건강이 위태롭습니다. 부정적 아동기 경험(ACE, Adverse Childhood Experience)이라는 대규모 종단 연구를 주목해야 합니다.

 

미국 연방 정부기관인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연구 결론은 아이의 마음건강이 일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려줍니다. 아이가 부정적 경험을 많이 하면 할수록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사회·정서·인지조율을 못하고 결국 남에게 해로운 행동(욕설·폭언·폭행 등) 또는 자신에게 해로운 행동(술·게임·마약 등)을 하게 됩니다. 문제행동은 습관이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어 개인과 사회와 국가에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부정적 아동기 경험이란 안전한 보금자리, 충분한 보살핌과 양육, 적절한 지지와 지도가 결핍된 발달적 트라우마 상황입니다. 아이가 생존하고 성장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따뜻하고 섬세한 손길이 없는 ‘노터치’ 현상입니다. ‘노터치’는 아이에게는 투박하거나 심지어 폭력적인 ‘하드터치’보다 더 해로울 수 있습니다.

 

애착손상을 일으키는 노터치는 표시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숨겨진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다행스럽게 어른의 따뜻한 하이터치로 아이의 마음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교육혁신 방안이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될 계획이라고 하니 희망적입니다.

 

저는 학교 현장에 아무리 많은 예산이 책정되고 다양한 혁신 프로그램을 가동하더라도 동일한 내용이 예비교사를 준비하는 교대와 사대의 교과과정에 반영되지 않으면 무효라고 생각합니다. 지속가능하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에 학교폭력, 청소년 자살률, 게임중독,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한 상태지만 마음건강은 학교 정규교과과정 내에서 다루지 않고 방과후 프로그램, 위센터, 정신과 등 외부기관에 맡깁니다. 학생 문제를 외부기관에 외주 주면 편리할 수는 있어도 학교가 점점 무의미한 곳이 되어버리는 악순환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무쪼록 학교는 학생의 문제를 교육으로 해결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마음건강을 위한 방법은 학교 정규교과과정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예비교사는 이에 걸맞은 새로운 교과과정으로 준비되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새로 발간된 심리학 교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뇌 사진과 그림으로 도배되고 있으니 새로운 교과과정 콘텐츠가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례로 예비교사는 교육목표를 인지적 영역, 정의적 영역, 심동적 영역이라고 배웁니다. 근 60년 전에 제시된 불룸의 학습 분류법은 그 당시 심리학의 ABC인 정서(Affective)·행동(Behavior)·인지(Cognition)를 반영하였습니다. 또한 문제행동을 스트레스에 대한 공격 또는 도피 생존 행동으로 이어지는 파충류 반응이라고 배웁니다.

 

하지만 신경과학자 폴 맥린이 제시한 뇌간(생존 행동)-변연계(정서)-대뇌피질(생각)로 이루어진 3단계 뇌 모델도 역시 60년 전이었고, 심리학의 ABC와 일치하였으며, 뇌 과학은 겨우 걸음마 단계였습니다. 그 후로 뇌 과학 연구는 급속도로 발전하였고 새로운 연구 결과가 속속들이 나타났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는 대뇌와 소뇌라는 명칭에서 오는 편견을 깨야 하겠습니다. 대뇌가 실제로 작은 뇌이며, 소뇌가 가장 큰 뇌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뇌간이 8%, 변연계가 2%, 대뇌피질이 80%나 되고 나머지 10%는 작은 움직임을 조정하는 소뇌가 차지한다고 배웠습니다만, 이는 부피로 측정한 결과입니다.

 

뇌의 능력을 가늠하는 뉴런의 수로 따지면 뇌간은 1%, 변연계는 10%, 대뇌피질이 고작 10%이며, 작아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던 소뇌가 무려 80%입니다. 소뇌와 대뇌 사이즈 개념이 완전히 뒤바뀐 셈입니다.

 

우리는 소뇌의 주요 기능을 자세와 균형의 유지, 근육긴장의 유지, 자발적 운동의 조절 등 이차적이라고 배웠지만 최신 연구 결과는 매우 다릅니다. 소뇌는 사고력·공감력·창의력·문제해결력에 관여하고, 언어와 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의식·알아차림과 시간 인식을 처리합니다.

 

소뇌는 간뇌(diencephalon)와 함께 몸에서 두뇌로 전달되는 감각정보와 두뇌에서 몸으로 전달되는 행동 지시 사이를 조율합니다. 즉 인풋(오감) 정보와 아웃풋(행동) 정보를 실시간 비교하고 판단해서 섬세하게 조정하고 수정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즉 조율을 책임지고 있으며, 마음건강과 하이터치에 핵심 부위인 셈입니다.

 

앞으로 더 많고 심오한 뇌 과학 연구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생명-감정-생각으로 나눠진 3층 뇌 모델에서 이 셋 사이를 관통하며 조율하는 기능을 포함한 새로운 4단 뇌 모델이 등장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학습 분류법도 인지·정서·신체 영역 외에 마음건강과 하이터치를 관장하는 조율 영역이 추가될 수 있겠습니다. 예비교사가 배우는 교과과정의 내용을 업데이트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입니다.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교육 비전과 학습 모델을 구축해야 학생과 학부모에게 환영받겠습니다.


구체적으로 교사는 생각과 감정 사이를 조율하고 행동과 욕구 사이를 조율하는 마음의 기술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비교사를 준비하는 교과과정에 회복탄력성 같은 자기조율, 감정코칭과 같은 관계조율, 연결실천 같은 갈등조율 등 하이터치와 관련된 이론과 기술이 포함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이터치 기술은 하이테크과 더불어 과학에 기반을 두어야 예비교사나 학생에게 환영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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