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오직 연필과 샤프심 닳는 소리와 간간이 종이 뒤집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아이 셋 챙기느라 출근 시간이 늦어 날마다 불안했는데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1995년 6학년을 담임했다. 순천에 처음으로 분양한 아파트에 당첨되어 이사했고, 집 가까운 학교로 옮겼다. 아홉 개 반으로 잘사는 사람이 많았고 학부모 교육열 또한 높았다. 매달 월말고사를 봤고, 학생은 물론 선생님과 학부모도 시험 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엄마들도 시험공부에 열을 올렸고 문제 한두 개 맞고 틀리고에 민감했다. 심지어 집으로 전화해 자기 아이가 몇 등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알려 주지 않아도 몇 반, 누가, 몇 점으로 전교 일등을 했는지 벌써 소문이 났다. 점수가 낮은 반은 교장이 따로 담임을 불러 꾸중하기도 했다. 공부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려면 할 수 없이 애들을 들들 볶는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 문제였다. 6학년 담임은 중학교 반별 배치 고사 성적까지 신경 써야 했다. 시험 날짜와 범위가 정해지면 그때부터는 매일 복사물을 풀고, 외우기를 반복했다. 아이들도 지겨웠겠지만 선생님도 입에 침이 마른다. 시험이 끝나면 아홉 명 선생님이 교실에 모여 한 과목씩 채점
2023-01-03 14:14계묘년 새해 아침이다. 이른 아침, 아내는 일월호수에서 해맞이를 했다. 새해 힘찬 첫출발이다. 우리 부부는 어제 칠보산을 찾았다. 산행을 하면서 일년을 마무리짓고 새해 맞이 마음가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칠보산의 전설유형적인 일곱가지 보물(산삼 황금수탉 맷돌 잣나무 등) 대신 무형적인 보물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 부부가 생각한 것은 건강, 인내, 배려, 사랑, 순리, 조화, 치유다. 우리가 지향하는삶의 덕목이다. 아침 식사와집안 정리를 마치고11시 광교산을 향해 출발이다. 교통수단은 시내버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한 것은 환경보전에 의미가 두었다. 또 산행과 하산 코스 선택에 자유로움이 있다. 주차장으로 다시 올 필요가 없다.경기대 입구에서반딧불이 화장실 옆길로 오른다. 이 코스는 광교산 능선으로 곧바로 이어지는데 등산객들의 애용 코스다. 능선 따라 가다보면 형제봉으로 이어진다. 이 코스는 광교산을 처음 찾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교통편 접근이 좋기 때문이다. 또 길이 넓고안전하다. 초행길 등산객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필자도 젊었던 시절 자주 이용한 코스다. 다만 너무 자주 이용했기에 요즘엔 뜸했던 것이다. 사실 광교산을 오르는 방법…
2023-01-03 14:05“너는 관리자들이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다.” 불과 십 년여 전에 소속 학교장으로부터 면전에서 직접 들은 불만 섞인 코멘트였다. 이 말의 진심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는 필자에게 쇼킹한 말이었다. 원래 음주가무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에 함께 어울림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대인관계의 약점일 수 있다. 특히 우리 조직문화에 그러한 시기가 분명히 존재했기에 내심 짐작은 했다. 하지만 마치 선천적인 증상처럼 교직 초기 단계부터 알코올을 몸이 이겨내지 못하고 또 학생 시절 내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에 깨어 공부하던 생활 방식은 야간에 친교의 시간을 갖지 못하기에 두고두고 타인과의 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필자에겐 교직의 입문부터 지론(持論)이 있다. 이는 '배우면서 가르친다'는 것을 삶의 모토(motto)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성격적으로도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사교를 중시하기보다는 조용히 홀로 침잠(沈潛)하여 책을 읽고 사색을 즐기는 내향적인 기질이 압도적이다. 그러니 젊은 날 또래들과 어울려 당구를 치며 우정을 쌓는 시간을 비롯해 소위 잡기(雜技)를 즐기는 놀이문화에는 젬병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술을 즐기는 모임에서는 고통스런 시간을
2023-01-02 15:07교육삼락회(이하 삼락회)라는 단체가 있다.퇴직교원들의 모임인데 사단법인 전국단위 조직이다.중앙에 한국교육삼락회가 있고 시도삼락회가 있고 지역삼락회가 있다.여기서 삼락이란 배우는 즐거움,가르치는 즐거움,봉사하는 즐거움이다.캐치프레이즈에 추구하는 목표와 활동내용이 드러나 있다. 얼마 전 도단위 삼락회장 선거가 있었다.두 명의 후보가 나와 경선을 했다.당선 윤곽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기세에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필자는 도 임원인데 여기서 선관위원을 맡아 경선과정과 결과를 시종일관 지켜볼 수 있었다.대신 필자에게는 선거의 중립과 공정성 유지를 위해 투표권이 부여되지 않았다. 삼락회장을 투표로 뽑는다?삼락회 사정을 아는 사람에게는 기이한 일이다.중앙회장은 경선사례를 몇 차례 보았다.그러나 시도회장과 지역회장 투표는 못 보았다.대개 유능한 후임자를 지명하든가 아니면 추대형식으로 하든가 그래도 없으면 억지로 떠넘기는 것이 관례였다. 회장 자리를 자진해 맡으려는 사람이 드물고 자리를 탐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권한이나 이득이 있는 자리도 아니고 회원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지역회장 후임을 못 구해 수 년 째 맡는 경우도 흔하다. 필자
2023-01-02 15:02아이를 가르치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교감 선생님이 들어왔다. 유치원 선생님이 독감으로 결근이라며 보결 수업을 해야 한단다. 본인이 1, 2교시 수업을 할 테니 나에겐 3, 4교시를 맡으란다. 유일하게 병설 유치원 수업권이 있는 방과 후 담당 교사와 연락이 안 되어서 관리자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급한 공문을 처리하고 11시가 조금 못 되어 유치원에 갔다. 아이들이 반긴다. 3년째 근무하며, 비슷한 시간에 점심을 먹기에 날마다 인사를 나눈다. 하던 활동을 정리하고 이제는 그림 그리는 시간이라고 알리며 교감 선생님은 나간다. 색연필과 사인펜이 담긴 자신의 연필꽂이를 하나씩 가지고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마침 근무 중인 하모니 선생님이 복사 용지 이면지 모아 둔 상자를 가지고 와서 한 장씩 나눠준다. 내 옆에 앉은 찬유는 다섯 살이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한때 나와 같이 근무했다. 교육부에서 추진하는 100대 교육과정을 준비하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던 시절, 그 일을 맡아서 하던 연구부장이었다. 도에서 통과하고 교육부에 제출한 보고서를 다듬는 동안 정시에 퇴근하기는 어려웠다. 아이들 수업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는 다시 교무실에 모였다. 진로 부
2022-12-26 16:01겨울 아침 산책길에 날마다 만나는 백발 할머니가 있다. 이른 시각에 나선 노인이 걱정 되어서 말벗을 자청하곤 한다. "할머니, 오늘도 장갑을 끼지 않으셨네요.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면 위험합니다. 갑자기 넘어지시면 큰일 나십니다. 장갑을 꼭 끼시고 손을 내놓고 걸으세요." "아이고, 고맙소! 오늘도 깜빡 잊고 그냥 나왔네요." "날씨가 추운데 나오시지 말고 따뜻한 낮에 산책하시지요." "아, 아침밥을 사먹으러 나왔어요. 나는 혼자 살아요. 아들은 넷을 두었는데 모두 출가하고 집에는 나밖에 없어요. 밥을 해먹자니 힘들어서 사먹어요. 딸이 있으면 이렇게 옆에서 말동무도 해줄 텐데 그게 슬퍼요." "아니, 아들이 넷이나 있으신데, 복도 많으신데요." "아이고, 아들 많으면 뭐해요. 딸 하나만 못해요." 딸이 없어서 슬프다는 할머니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경제력은 있으니 사는 데 지장은 없다는 할머니는 한 겨울에도 아침식사를 위해 시장에 가서 해결한다는 것. 한 끼 식사 5천 원짜리를 절반도 먹지 못하신다며 그나마도 집에서 해먹으면 버리는 게 더 많으니 사먹는 게 더 낫다고 하신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아침 식사를 위해 나오지 못하실 텐데…
2022-12-26 15:54연말이다. 2022년 올 한 해 돌아보기 위해 월 다이어리 기록을 보았다. 주요한 일을 간추려 보니 무려 60여 개다. 이 가운데서 다시 10개의 우선순위를 따져 '올해의 나의 10대 뉴스'를 만들었다. 아마도 주된활동이 나의 삶에 영향을 크게 미쳤을 것이다. 특기할 사항은 활동 대부분이 평생학습, 평생교육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이다. 우선 나의 활동과 관계된 기관을 살펴본다. 수원시문화재단, 경기평생교육학습관,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수원시청 교육청소년과, 홍보담당관실, 영통구청 사회복지과, 대한노인회 영통구지회, 한국교육신문, 수원시농업기술센터 등이다. 이 중 수원문화재단 문화도시 사업에 다수 참여하였다. 씨티메이커스와 플레이어, 수원나우어스 시민리더, 인문클럽 오색 프로젝트(돌봄과 배려), 수원시 창작시 공모 당선, 생활문화공동체 시니어 스마트폰 수강, 북수원 특화사업, 수원 문화도시 모니터링, 수원화성문화제 추진위원 등에 참여했다. 경기평생교육학습관에서는 퇴직자 프로그램에 2회 참가해 강좌를 열었다. '몸치 탈출 신중년 포크댄스 초보 완전정복'이었다. 1, 2차 총 8시간 개설로 포크댄스입문을도왔다.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에선 '누구나학교'를 개설해 4회
2022-12-26 15:46필자는 초등학교 3학년 교사다. 사회과 ‘옛날과 오늘날의 생활 모습’ 단원에 옛날 사람들이 사용하는 맷돌이 나왔다.수업 내용은 옛날에는 음식을 갈 때 맷돌을 사용했지만 요즘에는 기술문명이 발달해서 믹서기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갑자기 우리반 아이 한 명이 손을 번쩍 들더니 ‘선생님, 맷돌 위에 있는 손잡이 이름이 뭔지 아세요?’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필자도 그 이름을 몰라 ‘00이는 알고 있니?’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손잡이는 ‘어처구니’라고 하면서 그것이 없으면 맷돌을 사용할 수가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라는 표현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00이는 아는 것도 많구나‘하고 칭찬을 했다.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재빨리 검색해 보니 다른 여러 뜻도 있지만 00이의 말대로 그 손잡이 이름도 어처구니라고 했다. 그리고 ’어처구니가 없다‘가 변형되어 ’어이가 없다‘로도 사용되어왔다고 한다. 항상 책을 놓지 않는 00이가 이런 것까지 알고 있는지는 몰랐다. 새삼 독서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예전에 필자가 겪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문득 떠올랐다. 오래전 고교 시절 2학년 3월 초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임시 반장이었던…
2022-11-07 14:36“당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빼야 한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누구나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네 삶은 더하기만을 알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직진 인생이지요. 우회나 후진 인생은 실패자로 간주 됩니다. 특히나 우리의 빨리빨리 정신은 절대로 뒤돌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암시하고 조장합니다. 여기엔 살면서 더하기 욕망과 전진하려는 욕구가 끝없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욕망은 절대 빼기가 쉽지 않지요.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하지 않습니까. 보면 볼수록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좋은 것을 원합니다. 그러니 더하기는 당연한 이치요, 세상의 흐름이라 알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삶, 빼기로의 회귀는 불가능할까요? 우리의 현실을 잠시 돌아봅시다. 직장에서는 업무에 치여 살기가 일쑤지요. 거기엔 책임이 지워지기 때문입니다. 나이를 먹고 직위가 오를수록 일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온갖 스트레스로 병원을 찾게 됩니다. 의사는 대뜸 질문합니다. “요즘 스트레스가 많으신가요? 정서적 안정과 함께 좀 쉬는 게 좋습니다.” 이제 내 몸 사용 청구서를 들여다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숫자에 불과
2022-10-25 15:35나는 날마다 나랑 싸운다. '날마다 새날이라고 속삭이는 나'와'그날이 그날이라고 속살대는 나'와 싸운다. 그러다가 오늘도 하루만 열심히 살아내자고 다독이며 나를 일으킨다. 같은 자리를 같은 속도로 맴도는 팽이처럼 지루하게계속되는 오늘이라는 놈과 싸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순간은 엄청난 기적의 순간이다. 지구라는 비행물체는이 순간에도 광활한 저 우주의 은하계를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주궤도를 순항 중이니.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점을 찾아낸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감정에 마음을 맡긴다. 그런 다음 그 감정을 다스리는 청소를 시작한다. 지난 밤 쌓인 먼지를 닦아내듯 감정청소를 한다. 감정도 날마다 청소를 해서 햇볕에 널어 말려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게 살 수 있으니. 마치 지난 밤 나의 뇌가 생각과 기억창고를 부지런히 정리하고 청소하듯이. 인간의 뇌는 깨끗한 상태를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질서정연한 것도매우 좋아한다. 마치 목욕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이는 피부자아가 느끼는 행복이다. 그러니 그 사람의 정신 상태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모습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의 뇌는 매우 능동적이고 창조적이며 가소성이 높은 최고의 컴
2022-09-28 1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