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이에요. 대학을 다니다 교사가 되고 싶어 수능을 다시 봤습니다. 얼마 전에 교대 면접준비를 하면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게 되었어요.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보고 싶어요.” 2월의 어느 저녁,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이었던 졸업생 아이로부터 오랜만에 받은 문자메시지였다. ‘생활기록부에 뭐라고 쓰여 있길래….’ 궁금증이 일었다. 며칠 뒤 아이가 들고 온 생활기록부에는 화려한 문장이나 특별한 이야기가 적혀 있진 않았지만, 그 당시 아이와 상담하며 나누었던 이야기, 학부모님과 상담했던 일, 학급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들이 떠올랐다. 평소 아이와 했던 대화내용과 학교생활에 임하는 자세, 공부하는 모습 등을 생활기록부에 담고자 했던 노력 덕분이었을까. “너 치과의사 되고 싶다고 했었는데 섬세하고 배려심이 강해서 교사가 잘 어울릴 것 같았어.” “3학년 때 허리 아파서 앉아있는 것이 힘들 정도였는데 ○○가 많이 도와줬던 것도 기억나시죠?” 아이와 생활기록부를 보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나에게는 3학년 5반의 추억이고, 그 아이에게는 한 번뿐인 고3 시절을. 학생생활의 기록, 학·생·부 한 사람의 고등학교 재학 기간의 삶의…
2021-05-06 10:30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을 꿈꿨던 선생님, 특수학교 아이들과 천천히 함께 걷는 선생님, 생활지도와 학부모상담에 어려움을 겪지만 언젠가는 선배들처럼 존경받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전국의 2030 세대 선생님들 눈에 비친 교육현장을 좌담회 형식을 빌어 조명해 본다. 소위 MZ세대 불리는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좌담회에는 손경은(28·전남 해남삼산초 병설유치원 교사), 박찬성(30·강원 태백상장초 교사), 조은비(29·세종온빛초 교사), 한지호(29·서울선린중 교사), 신화진(31·부산혜성학교 교사) 교사가 비대면으로 참석했다. 코로나19로 고생들 많으시죠. 학교는 좀 어떤가요? 손경은 많이 아쉽죠. 아이들을 마음껏 안아 줄 수도 없고, 봄날 야외 체험학습 나가기도 힘들어요. 교사와 학생 간 기본적인 상호작용마저 꽉 막혀버린 것 같아 답답합니다. 조은비 학교에서 마스크만 쓰고 생활하니 3월 한 달이 지나도록 반 친구 이름을 다 못 외우는 아이들이 많아요. 여전히 서먹한 분위기가 남아있죠. 학교 교육활동도 가급적 협업
2021-05-06 10:30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학교구성원 모두가 예측하고 대응하기조차 버거운 한해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긴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학교는 100년 남짓한 짧은 공교육 역사에서 비대면 온라인수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주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학교교육의 또 다른 영역으로 정착을 시도하고 있다. EBS와 KERIS는 온라인클래스 서비스 구축을 통해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고군분투했고, 학교 선생님들은 교직 생애 처음 맞이하는 온라인학습에 적응하기 위해 자발적인 연구를 통해 학교를 움직이도록 노력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재난상황에서 학교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와 교육 주체들의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교육부도 지난해 9월부터 GS ITM을 온라인수업 플랫폼(LMS) 개발자로 선정하고 5개월의 개발 기간 3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EBS 온라인클래스 플랫폼을 개발하고 2021년 3월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초 개발 목표와 달리 3월부터 접속 불안과 보안성 문제가 발생하며 졸속 개발로 현장의 혼란만 초래했다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수업 플랫폼 개발을 맡은 GS
2021-05-06 10:30
2008년 3월 제주교육대학교와 제주대학교가 통합하여 통합 제주대학교가 출범하였고, 그 당시 필자는 제주대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 후 전주교육대학교로 자리를 옮기자 주변의 지인들은 “어떻게 통합하는 곳만 찾아가냐?”라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하곤 하였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이후 교육대학교의 통폐합에 관한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와 학령기 아동 감소 추세가 두드러지고, 국가교육회의에서 교원양성체제 발전방안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교육대학교의 통폐합에 관한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였다. 그리고 지난 3월 말 부산교육대학교가 부산대학교와의 통합을 위한 MOU 체결을 가결함에 따라 교육대학교의 통폐합에 대한 논쟁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부산교육대학교의 재학생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사이트에 ‘학생들의 의견을 묵살·묵인한 채 통보 및 추진되는 부산교대-부산대 통합 진행을 고발’하는 청원 글을 올리고 서명을 받고 있으며, 동문 및 상당수의 교수도 통합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전국교육대학교 교수협의회 연합회에서도 부산교육대학교와 부산대학교 간의 통합 관련 MOU 체결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2021-05-06 10:30
지난 일 년, 코로나 거리두기로 봄 꽃맞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피는 나의 살던 고향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꽃 타령이나 할 때가 아니지요. 지난 일 년, 코로나로 인하여 전 세계 89%의 학생이 학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였다고 UN이 보고하였습니다. 유니세프(UNICEF)에 의하면 아동 1억7천만 명은 지난 일 년 내내 아예 등교하지 못했고, 추가 2억 명이 거의 등교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유네스코(UNESCO)는 앞으로 2천3백만 학생이 영구적 학업중단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한국 학교현장도 무척 혼란스러웠고 힘들었습니다. 미숙하거나 아쉽게 대처한 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 세계 학교상황에 비교하면 한국은 비대면 온라인교육으로 매우 잘 대처했습니다. 인터넷과 컴퓨터, 모니터 등 ICT 교육 인프라를 전국 모든 교실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구축해놓은 덕을 이번 코로나 사태에 톡톡히 봤습니다. 모니터 안으로 들어간 교육 우리는 이미 수업내용을 컴퓨터 모니터 안에 넣어서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학생과 선생님마저 다 함께 모니터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 것뿐
2021-05-06 10:30
01 처음 교회에 나오게 된 사람이 목사님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한 사람이었다. “목사님, 기도하며 담배를 피워도 됩니까?” 목사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그 초보 신자는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담배를 피우는 중에, 기도를 해도 됩니까?” 목사님이 잠시 생각하다가 그에게 되물었다. “꼭 그렇게라도 기도해야 할 사정이 있었나요?” 두 번째 물음 앞에서 목사님은 기도의 형식을 뒤로 물리고, 기도 내용의 진정성과, 그렇게 간구하는 심령의 갈급함을 먼저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라면 어떤 대답을 주고 싶은가. 교회의 규범을 오래 지켜 온 사람에서부터 자유주의 무신론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기독교인이라면 아마도 이렇게 모범답안을 말해 줄 것이다. “기도는 경건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신을 믿고 받드는 마음을 바탕으로 뉘우침과 다짐과 기원이 간절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에 합당한 몸가짐으로 기도하세요.” 근본 원리인 셈이다. 굳이 따져본다면, ‘신을 믿고 받드는 마음’은 기도의 바탕이다. ‘뉘우침과 다짐과 기원’은 기도의 내용에 속한다. ‘몸가짐과 자세’는 기도의 형식에 속한다. 내용과 형식이 서로에게 잘 녹아 들…
2021-05-06 10:30
지난달 세종시교육청이 관내 학교들에 보급하고 수업에 활용하도록 한 책 촛불혁명은 교육계에 분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교육계 안에서의 소란’ 즉,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는 듯한 모습이다. 물론 논란이 일어난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히려 역사를 전공하는 직업상 ‘모든 사회적 사건은 많든 적든 논쟁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는 기본인식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편이다. ‘논쟁’ 능력을 잃어버린 한국의 진보세력 한국 현대사는 ‘논쟁’보다는 ‘시위’로 점철된 역사였다. 해방 이후 군정 치하의 크고 작은 시위는 말할 것도 없고 전쟁 이후에도 자유당 부정선거 반대, 한일협정 반대, 유신헌법 반대, 계엄령 선포 반대, 5공 헌법 반대 그리고 소위 문민정부 이후에는 WTO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 기업의 노동착취 반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반대 시위가 있었다. 굵직굵직한 정치·경제적 사안에는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대립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80년대를 지나고 한국인들의 역사관이 바뀌면서 일련의 반대 시위들은 ‘구악(舊惡)’을 내몰고 ‘정의를 외친 선(善)한 역사적 시도’로 새로이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물론 이러한 역사관의 변화는 그냥 이루…
2021-04-05 10:30
저출산 대응 교육정책 수립을 위한 전략 2030년경에나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절대인구 감소가 2019년 11월부터 시작되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차원에서는 지속적으로 저출산 기본계획안을 만들어 시행했었고 교육 분야에서도 관련 정책을 만들어 시행해 왔으나 저출산 사태는 더 심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2019년 11월에 지금까지와는 초점이 다른 범부처 인구정책 TF에서 ‘절대인구 감소 충격 완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교육 분야의 대응 전략은 ‘교육시스템 효율적 개선 및 평생교육체계 구축’이고 주요 대응 방안으로 네 가지를 발표했는데 그중 세 가지가 유·초·중등 분야 방안이다. 이 세 가지는 1)신규교원 수급 기준 마련 및 교원자격·양성체계 개편, 2)다양한 학교 설립 운영·지원, 3) 학교시설 활용 확대 및 복합화 등이다. 이 계획에 의거하여 정부는 초·중등교원 정원을 줄이겠다는 발표를 하고, 교원 양성체제를 개편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충격 완화 방안’의 직접적 목적이 비록 학생수 급감에 대처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출산율 급감 사태를 진정시키고 바람직한 출산율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
2021-04-05 10:30
01 외우(畏友) 서덕현 교수가 책을 보내왔다. 그가 쓴 책의 제목은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수필과비평사)이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연상케 하는 제목이다. 서 교수는 의도적으로 그 제목을 빌려 왔으리라. 책의 제목 앞에 ‘서덕현 교수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서사’라는 수식어가 있다. 나는 책의 제목에서 이미 기구하고도 절절한 아버지 찾기의 행로를 예감한다. 아니 그 이전에 서 교수의 고운 성정과 더없이 정직하고 성실한 성품을 알기에, 이 서사의 운명적 비극성을 예감한다. 서 교수의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는 충청도 농촌에서 1949년 초에 입대하여 1950년 6.25 전쟁 발발 무렵 전사한 아버지를 찾아가(내)는 이야기다. 실제로 그의 부친은 전몰의 구체적 시간과 장소가 미상이다. 임시로 작성한 전사자 명부에 등재된 것이 전부다. ‘잃어버린 아버지’가 확실하게 각인된다. 서 교수가 두 살 때 헤어졌으니,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이다. 전사 통지를 받은 그의 조부모가 견지한 심적 태도는 참으로 짠하게 이해된다. 전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언젠가는 반드시 집 마당으로 들어설 거다.…
2021-04-05 10:30
누가 교사를 편한 직업이라고 했던가? 코로나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후 근 1년 만에 미용실에 갔다. 머리가 귀신같이 길어질 때까지 버티고 버텼지만, 새 학기 첫날 처음 만나는 아이들 앞에서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싹둑싹둑 머리카락을 자르는데 아깝지 않았다. 힘들었던 한해를 싹둑싹둑 잘라 멀리 보내버리고, 새 학기 맞이하는 속 시원한 마음이 들었다. 으레 어느 미용실에 가면 그러하듯 미용사는 이것저것을 물었다. “무슨 일하세요?” “교사예요.” “그렇구나. 좋으시겠어요. 요즘 같은 때에는 교사가 최고라고 하잖아요. 코로나로 다 힘든데 교사만큼 안정적이고 편한 직업이 어딨겠어요?” “아…, 네…, 그렇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교사만큼 편한 직업은 없다고. 그러나 교사가 힘든 이유를 일일이 나열하자면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다만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얘기해야 할지 몰라 그냥 속으로 삼킬 뿐이다. 사실은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아니요. 코로나 때문에 교사도 힘들어요. 교사가 편한 직업이라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괴롭다고요!’ 지난해 학교는 혼란 속에서 허우적댔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학사일정,…
2021-04-05 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