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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사랑의 매'와 '체벌'은 어떻게 구별될까.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宋基弘부장판사)는 11일 학생의 뺨을 때려 망막이 분리되는 상처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서울 Y고 金모교사 (34)에게 상해죄를 적용, 벌금 3백만원을 선고하면서 허용 가능한 체벌의 범위에 대한 지침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우선 체벌과 상해와의 연관성을 들었다. 체벌로 직접적인 상해를 입힌 다면 사랑의 매라고 볼 수 없다는 것. 둘째, 장소의 문제다. 여러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인 체벌을 가하는 것은 당사자의 인격을 침해하기 때문에 교육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 셋째, 교사의 심리상태. 흥분상태를 제어하지 못한 채 감정적인 체벌을 가하는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교사가 흥분하여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피해학생의 뺨을 한손으로 받치고 다른 손으로 뺨을 때려 망막박리의 상해를 입혔다"며 "이같은 체벌이 피해자를 훈육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이는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체벌"이라고 밝혔다. 한편 金교사는 지난해 5월 평소 무단결석이 잦던 피해학생이 "학교에 오기 싫어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답하자 뺨을 때려 망막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되자 교육상 필요한 체벌이었다며 항소했다.
개교 60주년을 맞은 춘천교대(총장 朴敏壽·사진)는 7일 교내 종합 학습관에서 金柱億동창회장, 金炳斗강원도교육감, 李起天강원도교위의장 등 각계 인사와 교직원·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朴총장은 기념사를 통해 "지난 39년 춘천사범학교로 개교돼 12개 학과의 학부와 13개 전공과정의 대학원을 설치한 오늘의 춘천교대가 되기까지 세찬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치면서 초등교사 양성에 매진해 왔다"며 "60년의 역사를 발판으로 청년 춘천교대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춘천교대는 기념식이 끝난 후 교내 예술관 입구에 동문 작곡가 金公善선생(춘천사범 4회)이 작곡한 '과수원 길'의 노래비 제막식을 가졌다. '과수원 길 노래비'는 높이 2m 넓이 2.5m의 크기로 '과수원 길' 악보와 작곡가의 부조, 약력 등이 새겨져 있다. 학교측은 "국민 애창곡으로 불리는 과수원 길이 춘천교대 동문에 의해 작곡됐다는 사실을 후배들에게 알려 자긍심을 갖게 하고 더욱 널리 불려지도록 하기 위해 동문과 음악계의 뜻 있는 분들이 노래비를 세우게 됐다"고 밝혔다.
나는 교사 9년차다. 아침마다 나는 강을 건넌다. 발령 받고 지금까지 8년동안 통영에서 진주까지 하루 네 시간을 통근해 온 내게 강은 하나의 숙명이다. 실지로 내가 강을 보는 시간이란 진주 시외버스 주차장에서 도동교까지의 5분 남짓한 거리지만 나는 통영에 닿을 때까지 강에 가슴을 담그고 흥건해진다. 봄철 까슬한 며칠을 제외하고 강은 안개를 뿜어낸다. 안개는 말하자면 강의 냄새나는 유혹이다. 나는 안개의 비릿한 내를 맡으면 비로소 강을 느낀다. 그 래서 강에 몸을 담그는 네 시간의 통근은 안개의 품처럼 몽롱한 편안함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하루 네 시간의 통근이 내겐 완벽한 자유였다. 더러운 시내버스 칸에 코를 박고도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시부모님 봉양에, 간단없이 찾아드는 시댁 손님들 치레에 지친 나는 시외버스 칸에서 나비처럼 자유로웠다. 첫딸을 임신하고서도 나는 시외버스 안에서는 단풍잎 한 잎처럼 가벼웠다. 그러나 둘째 딸을 낳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나는 시외버스 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제 진주에서 통영까지의 네 시간 통근거리는 소롯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였다. 삶이란 얼마나 엄정한 것인가. 그건 만만하지도 간단하지도 않은 숨겨진 법칙이다. 통근거리에 부담을 느끼면서 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으로 그 네 시간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책을 보면 속이 메슥거렸고, 가슴 저리게 좋아하던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도노란 현기증을 일게 했다. 나는 어떻게든 통근시간을 참아내야 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의 교활한 속셈에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내겐 삶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강은 내게 가장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 강을 벗어나서도 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나는 매양 물컹한 심정이 되어 환 상이 갖는 편안함에 젖었다. 차에서 내리자 시작된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찬 기온이 스멀스멀 소매사이로 스며들었다. 동쪽으로 몸을 앉힌 교사라 그런지 교무실은 아직도 찬 기운이 마지막 저항군같이 낮게 포복하고 있었다. 산언저리의 바위틈에 진달래가 맨 살로 비에 젖었다. 봄은 분홍빛 그리움을 펼쳐 두고도 여전히 늦은 걸음이었다. 하염없이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현듯 200까지 혈압이 오르던 남편이 떠올랐다. IMF 된서리를 난장으로 맞고 있는 남편에게도 이 봄은 차가울 터였다. 태연하게 업무를 보고 있는 남선생님들을 쳐다보았다. 나태하고 일률적인 남선생들의 생활태도 때문에 교원과 결혼하지 않은 나의 선택에 만족했었다. 그러나 경제불황의 가파른 현실에도 속편한 그들이 새삼 부러워졌다. 나는 스스로의 이기심이 역겨워 진저리를 쳤다. 1교시를 마치고 오니 교무실이 부산했다. 신임 여교사가 서너명의 학생들을 불러다 놓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열정이 귀여웠던지 남선생님들까지 가세하여 분위기는 제법 살벌하기까지 했다. 저런 때가 있었지. 아이들의 일탈이 못내 안타까워 목울대 를 돋우며 발을 동동 구르던 때, 시간이 지나면 이해와 너그러움으로 변명되는 적당한 무관심의 시기가 찾아 올 테지. 나는 신임 여교사에게 미소를 보내며 내 자리로 가 앉았다. “김선생” 뜬금없이 찾아드는 편두통을 가라앉힐 요량으로 이마를 지압하고 있는데 옆자리 박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박선생보다 분홍빛 장미가 먼저 눈 안으로 들어왔다. 이럴 수가! 혜진이였다. 장미를 안고 선 혜진이, 어제 찾아오겠다는 전화가 있었지만 워낙 오랜만의 연락이어서 설마 했었는데 역시 혜진이 였다. “이런 걸 뭘.” 용돈을 거의 다 썼으리라는 안쓰러움으로 건넨 말이었지만 내가 장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혜진이에게 나는 옛날의 우정을 느꼈다. 그렇다. 내가 혜진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우정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거였다. 나는 그 애와 깔깔거리며 거리를 싸대고 다녔으며, 서점에서 진지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책을 골랐다. 때로는 초밥집에서 콜라를 마시는 혜진이 앞에서 거리낌없이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시집을 갔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바람에 친구들은 일체 내게 연락을 끊었다. 시집살이 몇 년만에 가까운 친구가 남아 있지 않던 내게 또래보다 조숙한 혜진이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혜진이를 만난 것은 3년 전 도산중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충무중학교에서 5년 꼬바기 근무했지만 경력 점수 외에는 아무런 부가점이 없었던 나는 그 게으름으로 해서 원하는 진주지역으로 전보되지 못했다. 그래서 엉겁결에 선택한 학교가 도산중학교였다. 통영에서는 그나마 가장 진주에 근접한 학교라는 이유에서였다. 혜진이를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난다. 히말리야시다가 너른 팔로 껴안은 도산중학교는 그림 같은 학교였다. 교사 16명의 워낙 작은 학교여서 업무가 많아 피곤했지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총명했고, 시내에서 다소 벗어난 학교 여서인지 심성도 맑았다. 도산 중학교 근무를 명령받고 첫 인사를 갔을 때 운동장을 쓸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청소시간을 무엇보다 싫어하던 통영시내 학생들에 질려 있던 내게 방학중인데도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 입고 운동장을 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진주로 발령 나지않은 서운함을 단번에 씻어 주었다. 그 아이가 혜진이였다. 혜진이가 다시 내 눈 안에 확 들어온 것은 어느 수업시간이었다. ‘위대한 사람의 기념비’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고 있었다. 시방도 혜진이의 비문을 정확하게 왼다. “1951년 4월 23일에 태어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일을 하진 않았으나 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딸을 통근시켰으며 그 통근 길에서 교통사고로 먼 길을 떠난 김영석씨 여기 잠들다. 살아서는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으나 죽어서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학처럼 자유로이 산천을 희롱하길 여기에 빗돌을 세운다.” 이마가 유난히 향그러운 아이는 심상찮은 목소리로 비문을 읽었다. 김영석씨는 혜진이의 아버지였다. 유명한 소프라너로 불같은 사랑의 전설을 남겼느니, 빈민 구제로 일생을 보낸 수녀니, 삶의 근원을 탐구하기 위해 사막에서 나서 사막에서 죽었으니 하며 아이들은 제법 진지한 눈으로 자신들의 비문을 읽었다. 유명하다는 말에 대한 아이들의 평가기준은 각자 틀려서 자유롭게 사고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하여 간간이 짝을 대상으로 장난을 거는 유치한 비문들도 웃으며 받아 주었다. 그 많은 비문들 사이에서 혜진이의 비문이 유난히 마음에 남는 건 단순히 그 아이에게서 받은 신선한 첫인상 때문이었을까. 내가 실명이냐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 “우리 아버지예요.” 하고 혜진이는 야무지게 대꾸했다. 혜진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 애의 습작노트에 빼곡이 적힌 낱말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아이다운 분노와 홀몸으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날카로운 창날을 겨누고 일렬정렬 해 있었다. 나는 그런 혜진이 를 위해 글은 사랑이어야 함을 힘주어 말했다. 혜진이와 본격적인 얘기를 나눈 것은 3월말이 되어서였다. 퇴근길에 교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혜진이와 맞닥뜨린 것이다. “엄마가 돼지를 길러요.” 학교에서 걸어 40분이나 되는 동네에 산다는 혜진이는 트럭을 몰고 사료를 구하러 시내에 간 엄마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고성으로 가는 완행버스를 두 대나 보내면서 혜진이와 얘기를 나누었다. “이제 아버지를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버지가 학처럼 비상하길 바란다고 하면서도 혜진이는 조롱 속에 가둬 두 고 있구나.” 혜진이는 잠시 내 눈을 응시하더니 눈물을 흘렸다. 그 애의 작은 머리를 안아 주며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런 때가 있다. 뭔가 그럴듯한 얘기를 해주었다고 가슴이 뿌듯해졌는데 아이들의 말간 눈을 곧바로 대하게 되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 ‘ 아, 내가 입술을 놀리고 있구나.’하는 자책.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도 잃어보지 못한 내가 혜진이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혜진이는 순순히 내 품안에 안겼다. 나는 그런 혜진이의 너그러움이 고마워서 눈시울을 적셨다. 나는 혜진이에게 본격적인 창작 실기를 지도할 계획을 세웠다. 제법 글재주가 있다는 지숙이와 경량이를 함께 불렀다. 길동무가 있는 것이 혜진이에게 도움이 될 듯해서다. 방과후에 도서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도록 했다. 먼지 앉은 보급용 도서 몇권과 쓰레기로 처리할 작정으로 보내온 기증도서 수십 권, 해묵은 교과서 몇 권으로 채워져 아무런 소용이 없던 도서실은 이제 의젓해졌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도서실에서 보냈다. 나중에는 점심을 먹기도 했고, 아이들의 생일 잔치를 조촐하게 마련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수다를 떨다가 귀가가 늦어져 시어머니에게 꾸중을 듣는 일도 있었다. 혜진이는 확실히 글재주가 있었다. 적은 재주는 없느니만 못하다고 비탄해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도 글이 느는 게 느껴 지는지 열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간 편지글이나 교환일기 따위를 쓰고 나서 나는 세 아이들에게 작정대로 소설을 쓰자고 제안했다. 소설은 수필과는 달리 일정한 형식이 있는 글이고 분량도 만만찮아서 중3학년이 쓰기로는 역부족일는지 몰랐다. 그러나 아이들의 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그런 욕심을 낼 필요가 있었다. 때마침 대산문화재단에서 전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소설을 공모했다. 나는 이것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우리 아이들에게 대산문화재단이 제공하는 우대 조건은 참으로 훌륭한 직접적인 동기가 되리라고 믿었다. 소설 얘기를 꺼내자 예상대로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우선 일주일의 여유를 주며 이야깃거리를 구상해 오도록 했다. 노상 자연의 커다란 품에 안겨 지내는 아이들의 생활이 소재 찾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 되리라 격려했다. 학교에서 마주치면 도저히 이야깃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며 호소하던 아이들은 일주일 후 제각기 한 꾸러미씩 이야기를 꾸며 왔다. 역시 혜진이는 아버지 얘기를 쓰고 싶어했다. 나는 좋다고 말했다. 표현하고 나면 정복되지 않는 대상이란 없는 법이니까. 아이들과 소설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세 아이들 모두 성적이 수위인데다 계속 문학이론을 공부해 왔으니 이론적인 무장은 그런대로 탄탄하리라고 믿었는데 막상 본격적인 글쓰기가 시작되자 머리 속의 이론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경량이가 2인칭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바람에 우리 모두는 웃을 수도 없는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문학적 지식만을 무작정 주입 시킨 나의 문학수업을 반성하는 좋은 계기였다. 원고지 60장이 목표였는데, 아예 첫 문장부터 내가 손을 대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한 단락을 써 오면 내가 서너 단락을 이어 붙이는 식으로 글을 전개시켰다. 그러다가 글이 중반에 이르게 되니까 아이들이 스스로 글을 쓰는 부분이 점점 늘어났다. 때로 아이들은 자신들이 글을 이끌어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글이 자신을 이끌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신기해했다. 뜻하지 않는 멋진 표현이 떠올라 환호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눈이 시렸다. 그렇게 60여장의 원고가 완성되었고, 햇살 고운 오월 말 학교 앞 우체국에 원고를 부쳤다. 아이들은 스스로 소설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한다지만 나는 이 일이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랬다. 아마 작가가 되고 싶어하던 내 꿈에 대한 보상심리나 대리만족의 열망이 컸으리라. 그랬다. 아깝게 경량이는 탈락했지만 혜진이와 진숙이는 예선에 통과하여 겨울방학 문학캠프에 참가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캠프에서 또 한 번 백일장을 치르고 나면 고등학교 3년간을 무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당선 소식을 듣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진숙이 엄마가 해 온 떡을 우리들의 도서실에서 먹으며 마음껏 노래를 불렀다. 혜진이 엄마는 고구마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고구마 한 가마니를 트럭으로 실어 왔다. 나는 혜진이 엄마가 싣고 온 고구마를 받아 들며, 어둠 속에서 장미가 말라 가는 냄새를 맡으며 사흘이고 나흘이고 배를 깔고 누워서 눈물을 흘리던 나의 음습한 습작기와 이별했다. 일없이 흐르는 눈물은 얼음조각보다 차갑고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시켜 주던 그 서름 푸른 꿈을 곱게 접었다. 문학캠프에서 고등학교 학자금을 타는데는 실패했지만 혜진이와 진숙이는 50만원이란 적지 않은 상금을 타 왔고, 무엇보다 책으로만 보던 젊은 소설가들과 똑같이 작가에의 꿈을 키우는 전국의 어린 문재들과 교유할 수 있었던 귀한 추억을 담아 왔 다. 개학을 하고서도 아이들은 문학캠프에서의 추억을 자랑하느 라 달떠 있었다. 나는 혜진이를 데리고 갈비집으로 갔다. 뒷머리를 질끈 묶어 올린 혜진이는 한결 어른스러워 보이고 이마는 더욱 향그러웠다.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통영 시내에 있는 이모집에 얹혀 지내는 혜진이는 원래도 야윈 체질이지만 그새 많이 말라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아파 계속 물만 마셨다. “니가 잘 살아 주면 돼. 훗날 여유가 생기거든 그때 찾아 와도 된다. 너희가 잘 자라 주면 나는 행복해.” 그건 에누리없이 진심이었다. “한동안 힘들었어요. 갑작스레 돼지값이 내리는 바람에 엄마도 휘청거렸었구요. 생활이 엉망이니 괜히 운명이란 단어만 떠오르 고, 글 쓸 마음도 없어지고, 그래서 더욱 살기 싫어지고……” 혜진이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언젠가 혜진이 엄마가 전화를 했었다. 보모일을 하려고 하는데, 필요한 여선생이 있으면 소개 해 달라는 것이다. 전화를 받고 여기저기 알아 봤으나 마땅한 자리가 나오지 않았다. 자연 짜증이 나고 이런 부담을 주는 혜진이 엄마가 뻔뻔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아, 나는 얼마나 이해타산 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인가. 스스로는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내 사랑의 뿌리는 관심이나 희생의 수액과 닿아 있지 않았다. 지극히 공식적이고 메마른 산출의 논리가 어찌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아직도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며 사랑을 매음한다. 그런 나의 사랑이란 얼마나 교활한 수작이냐. 하루 네 시간의 통근을 단순히 밥벌이로 치부하고 나면 스스로 비참해질 것이다. 생존의 등딱지를 지고 기어가는 짱구벌레는 되고 싶지 않다는 교활한 자기 만족, 그것이 내가 말하는 사랑이냐. “그랬었구나.”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글도 생활도 자신이 없어지니 자연 선생님께 연락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하루도 선생님을 잊은 적이 없어요.” “그래 그렇단다. 열정 만한 재능은 없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치는 숱한 문제들은 그 문제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길이 보인단다. 글을 쓰는 일은 그 문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지. 이런 얘기는 니 문제에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태평스런 설교라고는 생각하지마. 어차피 고통은 자기 혼자만의 몫이어야 하니까. 삶이란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지. 얼마나 숱한 고통을 주어야 순해질까 싶어. 그러나 내 경우 글을 쓰면 생활도 열심히 하게 되더라. 밥맛도 좋아지고. 창작은 배신의 기억만을 남긴 첫 사랑 같은 거야. 절대 딱지가 앉지 않는, 언제나 생살이 찢기는 상처, 그러나 수백 되의 피를 쏟아도 오히려 생활의 밀알이 되지. 삶이 엄정하다면 그걸 극복하는 길 또한 지독한 도전이어야 되지 않겠니?” “분풀이한답시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습작 노트를 다 태웠었어요. 습작노트를 태우는데 웬일인지 눈물이 났어요. 뭐 위대한 작가의 습작이라고, 우습죠? 그러나 이젠 달라졌어요. 글을 쓰기로 했어요. 그래 그런지 모의고사 성적도 한층 나아졌어요. 3학년 학기초에 자살 소동을 벌인 애가 있는데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어요. 미현이라구. 근데 미현이도 작가가 꿈이라지 뭐예요. 지도 죽기 전에 습작노트를 찢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열심히 글을 쓰고 있어요. 우린 둘 다 교지 편집반에 들었는데, 교지 담당 선생님이 너무 멋있어요. 제가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남선생님이에요.” 혜진이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혜진이에게 익은 고깃점을 올려 주며 동지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여고시절이란 그건 것이다. 사람살이에 별이 될 수 있는 시기, 나도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옥상에 올라가 친구와 별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남선생님이 유부남이란 사실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 사랑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지사연하기도 했었다. 동성 친구에 대한 깊은 사랑을 키울 수 있는 때도 그때다. 남자애들은 죄다 몸껍데기만 가진 유치한 족속들이라고 폄하하고, 스스로의 순결함에 취해 함빡 웃는 것만으로 입안 가득 별을 깨물 수 있는 시기, 그래서 먼 훗날 흩어져 세상의 한가운데로 걸어 갈 때 깃발이 되는 추억을 쌓는 시간. 우리 혜진이도 꼭같은 길을 걷고 있구나. 그래서 니 주위가 이렇게 밝은 거구나. “친구랑 이번에 소월문학상에 응모해 보기로 했어요. 우리의 새로운 출발을 보다 확실히 하는 의미에서 뭔가 현실적인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워낙 시간이 부족해서 이 번엔 시를 한 번 써 봤어요. 크게 기대하지는 않지만 다시 글을 쓰기로 한 것만은 의미로울거예요. 그런데 우리 작문선생님께서 미혜 글을 보고 너무 난해해서 자신의 능력으로는 손을 볼 수가 없다고 고백했대요. 그래서 저는 내놓지도 못했어요. 불현듯 찾아와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선생님 도와주세요.” 그렇지. 글을 쓰는 일은 혼자 하는 일이다. 철저한 고독 속에서 자기와 세계와의 맞대면, 그러나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힘든 일을 세상에 대해 면역이 약한 너희 혼자서 하려면 얼마나 막막할 겐가. 나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지망했던 단짝 미경이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당당히 등단했을 때 했다. 이래서 지방대다 싶었다. 학생들에게 어떤 기대도 걸지 않았고 아무런 열의도 보이지 않는 교수들. 혜진이는 외롭다는 말을 거듭하며 습작시 세 편을 내놓았다. 안도현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연어’와 ‘어느 난장이의 가방’ ‘염원’ 세 편이었다. 혜진이의 정신적 성장을 첫 눈에도 알 수 있었다. “그새 많이 컸구나. 힘자랄 때까지 혼자 하지 말아라. 금새 지 친다. 세상에 대한 불건강한 혐오감만 키우게 될 수도 있어. 내 힘이 부치면 주위에 문재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마.” 나는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상추쌈을 싸는 혜진이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나는 미혜를 생각해서 시를 너무 난해하게 쓰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가장 구체적인 세계의 형상화, 그것이 시아니던가. 지나친 감정 노출이나 곡예는 환상이나 허상이다. 그건 글을 비틀거리게 하고, 읽는 사람마저 휘청거리게 한다. 혜진이를 위해 노트를 한 권 사기로 했다. 노트를 고르며 어쩌면 나도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기대에 손가락이 떨렸다. 현실의 한 높이 도움닫기, 나의 네 시간 통근의 노역마저 새로운 의미로 바꿔 줄 일, 어쩌면 그건 끝없는 배신에도 굴하 지 않는 습작열 일 지도 모르겠다. 혜진이가 삐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왠지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혜진이가 그 나이 때의 치기 만만함마저 갖추고 있는 건 정말 다행이다. 나는 아버지를 해방시키던 어른스러움과 삐삐 여기저기 스티커를 부친 단순한 쾌활함까지 고루 갖춘 혜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다음주 퇴고한 원고를 가지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는 혜진이의 삐삐번호를 소중하게 접었다.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유치원에서 대학까지의 수업연한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위원장 김덕중·아주대 총장)가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국가발전 전략과 교육개혁' 토론회에서 김성재 새교위 상임위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교육연한 축소방안을 제시했다. 김위원은 "아동의 성장속도가 빨라지고 평생학습체제가 갖춰지면서 선진국은 이미 수업연한을 줄이고 있다"며 "청소년들이 빨리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교육기간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따르면 현재 대부분 어린이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초등 1학년 교육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해 초등교 입학연령을 5세로 낮추고 초등 1학년에서는 '유치원+초등 1년' 과정을 복합한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유·초·중학과정을 합쳐 9학년제 의무·무상교육을 확대하고 특히 고교3년 과정 중 마지막 1년은 대학 기초과정인 교양학문을 중심 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사과정은 3년, 석사과정은 2년, 박사과정은 2∼3년으로 연한을 축소하되 수업 및 연구시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하고 졸업장, 학위와 무관하게 언제 어디서나 학습을 받도록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위원은 "선진국은 대학을 졸업해도 19∼20세에 사회에 진출하지만 우리는 25∼29세에 사회인이 되는 후진적 교육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취학연령을 낮추고 수업연한을 줄여 16세만 되면 고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위원은 이같은 방안을 제8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오는 2005년부터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1878년 평남 강서군 초리면에서 태어나 16세때 청일전쟁을 겪고 '힘을 길러야 한다'는 신념을 키워 나갔다. 상경 후 밀러학당(구세학당) 보통부에 입학, 영어와 서양의 선진 과학문명을 접했다. 1897년 독립협회에 가담해 서당 선배 필대은과 독립협회 관서지회 설립에 참여해 자신의 정치 및 사회사상을 키워나갔다. 이때 평양지회 결성식이 열린 평양 쾌재정(快哉亭)에서 정부와 탐관오리의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 명성을 얻었다. 1898년 이상재, 윤치호, 이승만 등과 서울 종로에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개최해 새 시대의 도래와 새로운 민중의 자각을 외쳤으며 1899년 고향으로 돌아온 점진학교(漸進學校)를 세웠다. '점진공부와 수양을 계속해 민족의 힘을 기른다'는 교육목표를 설정한 점진학교는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최초의 초등과정 사립학교이며 남녀공학 학교였다. 1900년에는 미국에서 재미동포들의 생활혁명 운동에 전력했다. 도산은 교포들에게 진실과 협동 정신, 준법정신을 특히 강조했으며 대한 인공립협회(公立協會)를 만들고 공립신보(共立新報)를 창간해 동포의 조직과 지도에 힘썼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 늑결(勒結) 소식을 듣고 국내에서 구국운동을 하기 위해 이듬해 귀국했다. 1907년 윤치호·이 갑·양기탁 등 애국 지사들과 정치적 비밀 결사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민중운동을 전개했다. 또 평양에 대성학교(大成學校)를 설립하고 평양과 대구에 출판기관인 태극서관(太極書館)을 건립했으며 도자기 회사를 세우는 등 산업의 진흥에도 힘썼다. 1909년 8월에는 김좌진, 최남선 등과 함께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를 조직, 민족계몽운동 및 지도자 양성에 힘썼다. 도산은 1909년 10월에 있었던 안중근(安重根)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의거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일제에 체포됐으며 1911년 미국망명에 오른다. 191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조직한 도산은 신한민보(新韓民報)를 창간했으며 1913년에는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했다. 흥사단은 민족대업의 기초작업을 위한 기관으로서 독립운동을 위한 실력을 양성하려는 조직이요, 운동이요, 또 그의 사상의 결정체였다. 1919년 3·1 독립운동 직후 상해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직을 맡아 독립운동 방략 작성, 연통제 수립 등을 실행했다. 1928년 상해에서 이동녕, 이시영,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고 대공주의(大公主義)를 제창했다. 1932년 4월 윤봉길의사의 폭탄사건으로 일본경찰에 붙잡혀 4년을 복역한 후 대보산 송태산장(大寶山 松苔山莊)에 은거하면서 '동우회(同友會)'의 민족운동을 배후에서 조정했다. 1937년 6월 '동우회사건'으로 흥사단 동지들과 다시 일본경찰에 붙잡혀 수감중, 같은 해 12월 병보석 출감됐으나 이듬해 3월 지병인 간경화로 경성대학병원에서 만60세를 일기로 운명했다.
부모들의 순간적인 방심에도 어린 아이들은 안전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최근 지난 1년동안 접수된 전국 어린아이(만5세 까지) 사고자 1천1백93명에 대한 사례를 분석한 '영·유아의 가정내 안전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사고당시 보호자가 주변에 있었던 경우가 79%나 됐다. 사고장소도 보통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방(침실)이나 거실에서 61%나 발생해 부모들의 주의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와관련 보호자의 안전의식·행태를 조사한 결과 최근 1주일 동안 10분 이상 집에 어린아이만 두고 한 번 이상 개인 일을 본 경우가 54%나 됐다. 또 어린아이를 목욕시키는 중에 자리를 비운 경우가 47%나 되는 등 보호자의 방심이 안전사고를 유발하는 주요인으로 나타났다. 어린아이의 가정내 사고유형은 작은 물건이나 장난감, 놀이기구 등 생활용품으로 인한 것이 전체의 72%를 차지했고 계단이나 현관문, 욕실·화장실, 베란다, 창문 등 주택시설물에 의한 사고율도 28%나 됐다. 이러한 사고로 타박상, 골절상 등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 1주 이상 치료를 받은 경우가 21%에 달했고 사망자도 11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망자 11명 가운데 만 2세까지의 어린아이가 8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불이나 침구류에 의한 질식사가 3명, 장난감 블록이나 구슬 등 작은 물건을 삼킨 경우가 2명, 침대와 벽사이에 끼어 질식사한 경우가 1명이었다. 또 옥상에서 추락 1명, 욕조에서 익사 1명, 식품에 의한 사망 1명 등 조금만 주의하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 들이었다. 나머지 2명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성별 사고발생 빈도는 남아 사고율이 여아의 1.8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보원 소비자안전국 송병준 팀장은 "조사대상 주택의 45%가 사고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보호자들의 세심한 주의와 함께 영유아의 안전을 고려한 표준 주택설계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BS 교육방송은 교육주간(10일∼16일)을 맞아 3부 연속기획 특집을 마련, 방송한다. 교육현장의 중심 또는 외곽에서 불고있는 새로운 바람의 현장을 취재한 TV 3부 연속기획 '21세기, 아름다운 교육공동체를 위하여'와 FM '교육발전 5개년 시안을 말한다'가 그 것. '21섹기…'는 제1부 달라지는 아이들-10대 문화 보고서, 학교밖 아이들-홈스쿨링, 제3부 변화하는 학교-새교육 공동체 등으로 구성됐다. 청소년의 변화와 학교현장에서 이 변화를 흡수할 수 있는 방법 모색, 우리나라 '홈스쿨링'의 현황과 교육현장의 문제점, 21세기 우리교육의 현주소를 미리 점검해 보는 이 프로그램은 12일부터 14일까지 밤 10 시40분에 방송된다. EBS-FM도 교육부가 지난 3월 발표한 '교육발전 5개년 시안'을 10일부터 15일까지 오전 9시에 집중분석한다. 1부 교원정책(10,11일)은 '교권추락 이대로는 안된다, 변화의 시대·우수교사 확보가 시급하다' 는 주제로, 2부 새학교 문화창조는 가능한가(12,13일)는 '인간존중 교육풍토 조성,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공교육의 질 향상이 새학교 문화를 만든다'를 주제로, 3부 학교운영을 위한 학부모 참여(14,15일)는 '학부모의 교육행정참여 어떻게 할 것인가, 학부모단체와 교육혁신 운동'을 주제로 진행된다.
교직사회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동요가 교육개혁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인지, 아니면 교육체제의 근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위기적인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장 교원들의 불만과 갈등은 교육공동체를 취약하게 하고, 학교교육은 교육개혁을 추진하는데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교육정책 당국은 물론 우리 모두 교원문제의 실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시점에서 교육부가 교직발전 종합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교원정책에서 거론된 문제들은 주로 양성, 수급, 임용, 현직연수, 인사 및 처우, 교원단체 등과 관련된 과제들이다. 교원의 문제가 이처럼 광범하게 인식된다고 하더라도 가장 포괄적이고 중핵적인 문제는 그들의 전문성을 확립하고 교직에서 만족감과 권위 및 긍지를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고 본다. 교원이 교육을 올바로 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자질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과 이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마련해 주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탁월한 교과지식은 물론이지만 미성숙한 학생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그들에게 교육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의 숙지, 인간의 책무감, 그리고 교육에 대한 윤리적 가치의 정립, 국가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책무감, 그리고 교육에 대한 소명감 내지 헌신적 태도 등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교원의 전문성은 충족될 것이다. 이러한 자질을 갖춘 교원들이 우리의 교육을 이끌어 갈 때 우리의 교육이 크게 발돋움할 것임은 당연한 이치이다. 또한 교육문제에서 교원문제의 해결은 다른 어떤 교육문제의 해결보다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치유책이 될 것이다. 인적 자원은 물적 자원과 달리 일단 질적 향상의 계기를 만들어 놓으면, 그들 스스로 그 질적 수준을 유지·발전시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구비한 자기성장의 능력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훌륭한 교원이 한 두가지의 절차적 개선이나 그것들의 일시적 운영 또는 일방적 행정 조치로 이루 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원양성기관이 교원지망생으로서 지적·정서적·윤리적 자질을 갖춘 사람을 어떻게 선발하고, 그들을 바람직한 교원으로 육성하기 위해 어떠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이며, 졸업 후 어떤 합리적 방식을 통해 임용해야 하며, 교직 임용후 어떠한 연수와 인사제도를 통해 그들이 끊임없이 자기성장과 교육에의 헌신을 지속할 수 있도록 처우 및 여건을 마련해 줄 것인가 등 여러 과제들간의 상호 연계성을 유지하면서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개혁의 폭과 시기, 우선 순위 등에 걸쳐 실효성있고 공감되는 대책을 마련해야만 교원의 전문성 확 립은 물론 교직 만족도 제고 등과 나아가서 현실적인 교육문제들의 해결에 기여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우수한 교원의 확보·개발·보상·유지 등 교원정책의 각 과정을 별도의 독립된 영역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시켜 보완할 수 있도록 교원정책에서 통합시스템적 사고를 발휘하기 바라면서 몇 가지 당부하고자 한다. 첫째, 교원정책에 관한 종합방안은 그것이 포함하는 영역이 어떤 것이든지 교원의 우수성에 대한 개념과 이를 위한 실천적 조건의 충족을 전제로 하여 추진되어야 한다. 그 동안 우리의 교원정책은 사실상 우수교원의 철학을 개념적 전제로 하여 추진하지 못했으며, 설혹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극히 협소하고 균형 잡히지 못한 개념에 기초하였다고 본다. 둘째, 교육이 처한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차원에서 교원정책을 구상하고 단계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전략을 제시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육의 본질과 특수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교육외적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교원정책의 입안 전에 충분한 연구 검토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아이디어 구안 수준에서 그것도 장관이 바뀔 때마다 방향이 흔들렸으며, 더구나 적극적인 여론 수렴보다 여론 주도의 자세가 강하게 작용함으로서 결국 교육현장에서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 정책추진의 실효성을 기하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교원을 개혁의 주체로서보다는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교육외적 동기나, 이해집단의 갈등 또는 대립적 분위기 속에서 충격적으로 교원정책의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교육의 앞날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셋째, 교원들이 교육에 사명감을 갖고 헌신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자긍심과 사기를 높이기 위한 획기적 조치를 마련하기 바란다. '행정적 요구와 잡무로 인한 격무에 시달리는 것은 견디기 힘들고 교직에 회의감마저 들게 하지만, 수업과 같은 본질적 업무로 분주한 것은 그래도 보람을 느낀다'는 어떤 교사의 말은 정책당국을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20년 이상 된 교사들이 교직을 그만 두려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모습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그분들에게 있어 굳이 두둑한 퇴직금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처사이기에 곡해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이가 지긋이 든 선생님들이 천덕꾸러기가 되어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장은 학교를 관리하는 자로서 교장실이 있어 위엄을 갖추고 자신을 과시하며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차라도 대접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교감은 선생님들을 통솔하는 자로서 교무실을 장악하고 지시하는 권위와 지배하려는 욕망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원로교사들은 과다한 수업으로 하여 교무실 책상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위아래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며칠전 교감선생님 앞 탁자 위에 수박을 썰어놓고 젊은 교사 몇분이 담소하며 이른 수박을 들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수박을 핥고 있던 젊은 교사들 중 누구 한사람 나이 든 교사들에게 수박 한 조각 드시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17년간 교직에 머물며 흰머리가 조금씩 빛을 발하려 하고 있는 교사로서 그런 매정한 모습을 보고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듯 초라해 지겠지 하는 예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교무실은 젊은 교사들의 천국이다. 휴게실에서 해야할 잡담도 교무실에서 두서없이 해대고 큰 소리로 떠들며 웃고 있는 모습에서 나이 든 교사들은 이제 나무랄 기력도 없이 서서히 주눅이 들어 뒷전으로 밀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 때문에 20여년을 하루같이 헌신해온 교사들이 이제 앞다투어 교직을 떠나려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행여 퇴직금 때문이라고 떠나가는 분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사람들이 오래 묵은 포도주를 소중히 여기듯 떠날 분들이 떠나고 난 뒤 마지막까지 남아서 교단을 지키는 원로교사들이 당당하게 교직에 머물 수 있도록 따뜻한 배려와 위로가 신속히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육부 장관은 최소한 유치원교사를 한달쯤 해 보았거나 농사를 한해쯤만이라도 해본 사람이 해야 한다. 교육개혁은 판잣집을 뚝딱뚝딱 허물고 그 자리에 고층빌딩을 짓는 물리적인 작업처럼 결코 함부로 서둘러 다루어도 좋은 가벼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유행되는 말 중에서 구역질 나는 용어는 '집단이기주의'라는 말과 '기득권층'이라는 말이다. 집단이기주의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철저한 자유직업인-이 이런 말을 하면 크게 흉볼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용어를 쓰는 사람들은 거의 특정 직업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과연 자기가 소속된 집단이 터무니없는 천대를 받거나 멸시를 받거나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불이익'을 당해도 과연 얌전하게 입을 다물고 있을까. 교원들이 보여준 집단적 의사 표현은 한국 사회의 통념상 '지탄받아 마땅한 이기주의'가 아니라 "65세 정년을 국가와 약속받고 교직을 선택했는데 왜 대학교수의 정년은 그대로 두고 초중등 교원의 정년만 단축하느냐"는 지극히 당연한 취지의 순박한 항변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또한 '기득권'이란 용어도 초중등 교원들에게 함부로 쓰지 않기를 바란다. 초중등교원은 이미 얻은 권리'란 뜻에 해당되는 기득권이 당초부터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누가 속시원하게 초중등 교원들이 누린 기득권이 무엇인지를 말해보라. 나무나 풀은 뿌리가 상하면 말라서 죽는다. 이 뿌리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 초중등교육이다. 역대정권이 요란하게 나팔을 불어온 교육개혁이 대학교육 위주였던 것을 이번 기회에 크게 뉘우치고 단호히 방향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
金大中대통령은 최근의 장관퇴진 서명운동 등과 관련, 4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교육자의 사기앙양을 위한 획기적 대책을 세우라"고 李海瓚장관에게 지시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우리나라의 교육경쟁력이 세계에서 37∼39위라는 평가가 있는데,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개혁을 해야한다"고 전제하고 "최근 정년단축, 연금불안, 교원 권위훼손 등으로 교직자의 사기가 저하돼 있고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이어서 "아무리 교육개혁의 내용이 좋다고 하더라도 교사들이 자발적, 적극적으로 동조해야한다"면서 "교육자를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보고 스승의 날을 계기로 교원 사기앙양을 위한 획기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金대통령은 특히 "현재 총리령으로 되어있는 '교원예우지침'을 대통령령으로 격상시키는 등 조치를 강구하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에따라 교원사기 앙양방안 마련을 위한 대책회의를 갖는 등 구체안 성안작업에 착수했다.
한국노총과 산하 한교조(한국교원노동조합)는 지난달 30일 '일방적 교육정책 추진 및 구조조정에 대한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 "교단황폐화 책임자는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노총은 성명에서 "최근 정부의 획일적·전시적 교육정책으로 인해 일선 교사들의 교권추락 등 교직사회가 황폐화되고 있는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하고 "우리사회의 도덕적 구심체인 교단을 갈등과 혼란, 좌절과 불안으로 몰아 넣은데 대해 교육부장관이 책임을 통감해야한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한국교총은 지난달 30일 문화방송(MBC)에 항의공문을 보내 편파보도 자세를 시정할 것을 촉구했다. 교총은 "문화방송이 지난달 29일 저녁 9시뉴스에서 '서명 강요하는 교사'란 제목으로 교총이 벌이는 서명운동이 마치 교장·교감 등 관리직의 주도아래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도돼 서명운동의 본질과 일선학교 현장의 자발적 참여 분위기를 왜곡시켰다"고 지적했다. 교총은 "서명운동은 학교단위 분회장이 주축이 돼 회원들에게 서명지를 회람하고 동의하는 교원들이 자발적으로 이에 서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교장과 교감이 분회장을 맡은 학교에서는 이들이 서명지를 회람하거나 권유할 수 있다"고 밝히고 "특정 교원의 말을 인용해 서명이 관리직의 억지 강요로 이루어지는 것 처럼 보도하 는 자세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교총은 또한 "교총 회원 뿐아니라 비회원인 교원들도 서명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데 이들 교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생략한 채 이에 부정적인 교원과 일부 단체의 목소리만 보도한 것은 균형을 잃은 보도자세"라고 지적하고 "MBC는 지난해이래 교원정년 단축 등 상당수 교육관련 보도내용이 편파적이라는 교원들의 불만을 겸허히 수용해 앞으로는 보다 신중하고 균형감있는 보도자세를 가져달라"고 촉구했다.
논란과 관심을 모았던 교원대 교장연수에서 평가결과에 따라 탈락해 재연수받게된 연수자가 한명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는 지난달말 교원대 교원연수원이 제출한 99년 1기 교장 자격연수자 평가결과를 심사한 결과 4백72명 전원이 연수과정을 이수해 교장자격을 취득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6주간의 연수과정에서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자퇴한 8명에 대해서는 본인이 희망할 경우 재연수 기회를 제공할 방침이라고 교육부 관계자는 밝혔다. 그동안 3단계 연수방식과(시·도연수, 산업체 위탁연수, 교원대연수) 하위평가 10% 해당자에 대한 재연수 제도가 도입된 후 연수자들은 '평가결과에 따른 재연수' 문제에 크게 관심을 보여왔다. 교원대는 4월 30일 끝난 1기연수에 이어 12월24일까지 아홉차례에 걸쳐 4천5백52명을 대상으로 교장연수를 실시할 계획이다.
기획예산위가 주도하고 있는 대학구조조정안이 조정과정에서 심한 몸살을 앓고있다. 특히 대학 구조조정안중 교원 양성체제 개편안에 대해 해당 대학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대학구조조정안중 교원양성체제 개편안에 따르면 전국의 11개 국립교대중 공주교대와 제주교대, 진주교대 등 3개대학은 인근 국립사재와 통합하되 이중 공주·제주교대는 가까운 시일내에, 진주교대는 장기적으로 통합을 추진한다는 것. 또 교원대는 학부를 없애는 대신 대학원과 교원 연수체계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사대의 경우, 중등교사 과잉 양성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수요가 적은 과목부터 정원을 축소하거나 학과를 통폐합하기로 했다. 이밖에 국립 전문대를 대부분 민간에 불하하고 국립 산업대 역시 3개만 남기고 민영화하며 방송대를 책임운영기관화할 방침이다. 기획예산위는 각 대학별로 자체 구조조정 계획서를 6월말까지 제출받아 경영진단 평가에 반영한 뒤 구조조정을 강도높게 시행할 계획이다. 기획예산위는 이에앞서 이달 중순경 대학 구조조정안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 해당 대학들의 반발과 동요가 심각한 실정이다. 공주교대의 경우, 학생들은 교·사대 통합방안에 반발, 3일부터 무기한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대학의 구조조정이란 미명하게 중등교사 양성체계인 사범대 난립문제를 교·사대 통폐합으로 만회하려는 것은 초등교육의 전문성이나 특수성을 무시한 발상"이라며 이를 즉각 철회해 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2000학년도 대입전형에서는 특별전형 규모가 지난해보다 2배 가량 늘어나 수능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7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현승일)가 전국 1백86개 대학(일반대학 1백68개교-11개 교대포함, 산업대학 18개교)의 '2000학년도 대입전형 계획'을 집계·분석한 것에 따르면 일반대학 특별전형 인원이 전년도 1백26개 대학 1만5천4백7명에서 1백31개 대학 2만9천4백10명으로 대폭 늘어난다. 또 18개 산업대도 정원내·외 특별전형으로 1만9 천1백60명을 선발키로 했다. ▲특별전형=유형별 선발인원은 일반대학의 경우 실업계 고교 출신자 전형이 56개 대학 3천9백9명에서 74개 대학 5천5백18명(41% 증가)으로, 만학도(고령자) 전형이 26개 대학 9백56명에서 48개 대학 1천4백76명(54% 증가)으로, 선·효행자 전형이 25개 대학 2백42명에서 39개 대학 3백76명(55% 증가)으로 확대됐다. 또 고교장추천 전형이 73개 대학 6천9백74명에서 84개 대학 9천9백26명(42% 증가)으로, 추천자 전형(교사, 종교지도자 등)은 41개교 2천 9백26명으로 늘어나는 등 대폭 확대됐다. 이밖에 대학별로 사회봉사자, 경시대회 입상자, 토익·토플성적 우수자, 도서·벽지 근무 공무원 자녀, 군경 자녀, 영농후계자, 주부, 환경 미화원 자녀 등을 특별전형한다. ▲학생부 반영률·방법=올해 학생부 평균반영률은 41.0%로 전년도 40.83%보다 0.17% 낮아졌으며 평균실질반영률(산업대 제외)도 7.85%로 지난해 8.32%보다 0.47% 낮아졌다. 1백29개 대학은 실질반영비율이 전년도와 같고 22개 대학은 상향 조정됐다. 14개 대학은 하향조정 했다. 반영방법은 정시모집 일반학생을 기준으로 전과목 반영대학은 서울대 등 60개 대학, 대학지정교과목 반영대학은 경북대 등 74개 대학, 학생선택교과목 반영대학은 이화여대 등 12개 대학, 대학지정+학생 선택교과목 혼합반영 대학은 건국대 등 40개 대학이다. ▲수능 반영=99학년도부터 도입된 수능표준점수(정시모집 기준)는 금년도에 88개 대학(99학년도 54개교)이 활용한다. 활용방법은 수능 전영역 반영 14개교, 표준점수 석차백분율 환산활용 5개교, 표준점수 가중치부여 활용 10개교, 수리탐구Ⅱ 영역 활용 2개교 등 다양하다. 한편 표준점수제 정착으로 개인별 득점의 유효기간을 연장해 활용할 수 있게 됐는데 군산대, 광주여대, 밀양대 등 10개교가 99학년도 수능 성적을 활용, 반영할 수 있게 했다. ▲모집시기·인원=2000학년도 신입생 총 모집인원은 36만6천6백65명(일반대 33만1천6백40명, 산업대 3만5천25명). 단 올해 9월경에 발표 되는 대학별 정원조정 결과에 따라 다소 유동적이다. 수시모집(93개 대학 1만2천8백26명)은 9월1일∼11월21일까지로 재외 국민과 외국인 특별전형을 주로 하며 특차모집은 수능점수 발표 전후인 11월22일∼12월27일(36일간)로 1백50개 대학이 실시한다. 정시모집에서는 전체모집 인원의 62.59%(일반대 61%, 산업대 77.7%)를 선발한다. 모집군별 선발인원은 일반대의 경우 △'가'군(2000.1.3∼1.8) 6만2천89명 △'나'군(1.9∼1.14) 7만8천5백81명 △'다'군(1.15∼20) 4만4백59명 △'라'군(1.21∼26) 2만1천1백19명이다. 산업대는 '가'군 7천5백27명 '나'군 6천9백46명 '다'군 1만1천7백12명 '라'군 1천46명이다.
한국초등교육협의회(회장 崔載善·서울포이초등교장)는 1일 충북 괴산 보람원에서 대의원회를 갖고, "최근 일련의 교원경시 풍조로 인한 상실감 속에 자포자기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심각한 교육현실을 개탄한다"며 5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초등교육협의회는 이날 결의문에서 "교직에 대한 보람과 자긍심을 갖고 알찬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확고한 교직안정 대책이 시급하다"며 "교원 정년단축으로 인한 교원부족 사태를 극복하고 교육의 질 관리를 위해 정년단축의 단계적 적용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교육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지나친 경제논리에 의한 경쟁풍토를 지양하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학교경영 체제가 확립돼야 한다"며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GNP 대비 6% 교육예산 확보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초등교육협의회는 특히 "언론의 보도가 학생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함으로 '교육관련 보도 사전심의기구'를 설치, 운영할 것" 을 요구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5시. 경기 안산 경일초등학교(교장 金勝武) 1학년 교사 10명은 교정을 바라보며 일제히 환호했다. 개교 후 10년동안 쌓인 묵은 때와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져 흉물스럽던 모든 학교 시설물을 새 것처럼 도색했기 때문이다. 朴賢永교사는 "페인트칠이 처음이라 무척 힘들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1학년 여교사 10명은 지난달 말 학년회의를 통해 낡고 녹슨 시설물을 직접 도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반 보조교사인 학부모 15명도 돕기를 자청했다. 아이들의 공간을 직접 꾸며 보고 싶어서였다. 교사들은 20여종의 운동장 놀이기구, 校舍 뒤편 물리실험장 그리고 낡음이 심한 몇 개 교실을 도색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회색, 검은색으로만 칠해진 놀이기구는 아이들 마음처럼 연두, 노랑, 파랑색 옷을 입히기로 했다. 24일에는 나무껍질처럼 갈라진 묵은 페인트를 일일이 주걱칼로 벗겨 냈다. 티끌하나 없이 벗겨내기도 여간 힘든데다 낮기온이 25도나 올라간 뜨거운 날씨 탓에 연실 땀방울이 눈을 찔렀다. 26일부터는 뽀얗게 속살을 드러낸 시설물을 도색하기 시작했다. 색깔별로 몇 개조를 편성해 저마다 붓과 로울러를 든 교사·학부모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떡칠하기 일쑤고 모형 지층단면도를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거꾸로 칠하다 페인트가 흘러내려 처음부터 다시 칠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료, 학부모들과 같이 일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다. 파랑 노랑 빨강 페인트로 얼룩진 얼굴을 보며 서로 "얼굴에 무지개가 떴다"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기를 꼬박 3일. 시설물은 완전히 새 것이 됐다. 그런데 새 것이 된 건 그것뿐이 아니었다. 교사들은 페인트를 칠하는 동안 '학교'라는 공동체가 새로워짐을 느꼈다. 1학년 주임 金玉卿교사는 "작은 일이라도 아이들 교육을 위해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것이 진정한 새학교문화 창조" 라고 말했다.
한국교총은 "99 당면교육정책 개선방안" 자료집을 펴냈다. 이 자료집은 4개부문의 대과제로 구분해 정부의 개혁방향과 정책방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학교단위 자율경영=획일적인 실적 위주의 학교평가를 지양하고 학교단위에 학교평가의 시기 및 평가대상 프로그램의 선택권을 부여한다. 문서위주의 평가에서 현장방문 위주의 평가로 바꾸고 관찰을 위한 현장 방문 시간(최소 1주일)을 확보해야 한다. 학교운영위원회는 위원장 선출자격에 교원위원을 포함시키고 선거직 정치인의 위원 자격을 배제해야 한다. ◇교육 과정·평가 개선=학교 교육여건을 우선 확보한 다음 열린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고등학교의 학기당 이수과목수를 10개 이내로 축소하고 교과서 내용의 30% 정도를 축소해야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의 발행은 검정으로 전환한다. ◇교육여건 개선=2002년까지 초등학교 30명, 중등학교 35명으로 학급당 학생수를 감축하고 초등은 36학급, 중등은 24학급 이하로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은 실 정을 감안해 실시하고 소규모학교의 교감직은 존속시켜야 한다. ◇사교육비 경감=시험성적에 의한 학생선발 방법을 지양하고 학교장 추천제, 무시험전형제 확대 실시를 권장한다. 2002년부터 중학교 무상의무교육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초·중학교의 학부모부담 공교육비를 국고부담으로 완전 전환한다. 위성교육방송의 성격은 입시준비에서 학교교육 보완위주로 전환해야 한다. ◇유아교육 진흥=공립 초등학교에 유아학교 병설을 확대하고 2000년까지 유치원 취원율 70%를 달성한다. 군지역 및 장애자, 저소득층부터 유아교육 무상화를 확대하고 교육부 및 교육청으로 유아교육 관련 행정체제를 일원화한다. ◇교원처우 개선=교직의 특성을 반영하는 독자적인 교육공무원 보수·수당규정을 제정하고 매년 조정되는 수당은 봉급액의 일정 비율로 정하는 정률 수당으로 전환해야 한다. 교원보수의 특별 우대조치를 심의·조정하는 기구로서 교원처우개선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교원보수의 특별 우대조치가 이행되도록 예산반영을 의무화한다. ◇직무체계 개선=초·중등학교 교원의 교무분장 조직을 학년·교과단위의 전문조직으로 개편하고 교육과정 개발, 학습지도, 자료개발 등을 위한 교과협의회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밖에 교육활동지원 조직은 교무, 학생, 연구 및 관리의 영역별 조직으로 간소화해야 한다. 일반공무원과 다른 교육공무원의 직무성격 및 제반 여건의 특수성이 충분하게 반영된 복무규정도 마련돼야 한다. ◇잡무 경감=초·중등교육법시행령상의 교원 법정 정원확보가 시급하다. 초등학교 교과전담 교사 배치기준을 3학년 이상 매 3학급마다 0.75명에서 1명으로 상향 조정하고 초·중등교원의 주당 수업시간수도 법정화해야 한다. 문서 확인 위주의 장학지도 및 감사, 평가를 지양하고 학교 행정업무를 서무실로 대폭 이관한다. ◇자격·승지제도=교원자격 체계를 교수직과 관리직으로 분리 운영해야 한다. 선임교사와 수석교사를 신설하는 선임교사는 1급 정교사로서 15년 이상의 교육경력으로 능력이 뛰어난자, 수석교사는 선임교사 경력 3년 이상인 자로 선발하되 각각 교감과 교장에 상응하는 수당을 지급한다. 교육공무원 승진규정에서 경력 평정 기간을 현행보다 하향 조정하고 연수성적 배점 비중도 상향 조정토록 한다. 또 당분간은 현행대로 국가공무원 신분을 유지하되 교원에 대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대폭 위임해 지역특수성을 반영토록 한다. ◇임용·연수제도 개선=교원정년을 65세로 환원하고 평가전문기관을 적극 활용하는 등 교원 신규임용 방법을 개선한다. 양성기관의 교육실습 기간을 4주에서 8주로 연장하고 사범대학의 부속학교 설치를 의무화한다. 아울러 교과교육 담당교수를 학과 교수의 1/3이상 확보한다. 교원의 정기적 연수는 5∼6년 주기로 필수화하고 야간연수는 불가피한 경우에만 실시한다. 시·도 교원연수원은 직무교육 중심, 교원양성기관 부설 연수원은 자격연수 중심으로 그 기능을 재정립한다. ◇교원단체의 기능=헌법의 평등권 및 '교원지위 법정주의' 정신에 입각해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교원의 권익도 균형있게 보장해야 한다. 또한 전문직 단체의 독자적인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교섭 범위를 현행 교섭·협의사항 이외에 교육과정, 교육(행정)기관의 관리 운영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 확대한다. 아울러 '교원단체의 활동 및 단체교섭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한다. ◇행정기관 직제개편=교육부의 초·중등교육 관련 업무는 시·도교육청에, 고등교육관련 업무는 대학에 대폭 이양한다. 교육부 4급 이상 직위의 30% 이상을 개방형 임용으로 충원하고 교육청 실·국은 설치 범위만 정하고 과·담당관 수준의 설치 범위 및 공통필수기구를 폐지한다. 또한 교육행정 대상이 다른 초등 및 중등교육 담당 부서를 별도로 설치하고 장학직 정원은 증원한다. ◇교육자치제 개선=2002년부터 기초단위 교육자치를 실시하고 교육위원회에 예·결산에 관한 실질적 의결권을 부여한다. 교육행정 사무감사, 조사, 청원심사, 교육에 관한 발의권을 교육위원회로 일원화한다. 시·군·구 교육위원은 주민이 직접 선출하되 교육위원 정수는 규모에 따라 5∼13인으로 결정하고 시·도교육위원은 시·군·구 교육위원회에서 선출해 구성하되 일정수(7∼15인)를 유지한다.(겸직 불허) 현직 교원의 출마를 허용(당선시 임기 중 휴직 조치)하고 교육감 자격요건 중 현행 교육경력 5년을 10년으로 강화시킨다. ◇교육재정=대통령 선거공약대로 교육재정을 GNP 6% 수준으로 확보한다. 의무교육기관 이외의 공립중등학교 교원봉급을 광역시는 부산과 같이 반액 부담하고 도는 10%를 부담한다. 시·도세 총액의 2.6%에 해당하는 금액을 5%로 상향 조정하고 학교용지 확보 부담 책임을 철저히 이행토록 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지방교육양여금을 단일화해 교부제도의 단순화 및 재정 조정기능을 강화한다. 총액배분의 기조는 유지하되 사학지원비는 사학교부금으로, 시설비는 시설교부금으로 구분해 배분한다.
현행 교육세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교육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학교법인, 학부모 등의 교육비 부담에 관한 사항을 명확히 규정한 새로운 법률의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송기창 숙명여대교수는 7일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회장 박종렬·경북대교수)가 '지방교육재정제도의 평가와 전망'을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교부금법 제11조를 분리해 가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교육비 부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송교수에 따르면 현행 관련 법률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간의 책임 분담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없다. 교육재정 GNP 5% 확보과정에서 국가와 지방이 재원부담을 서로 떠넘기는 행태가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국가는 교부금과 양여금만 부담하면 되고 지방은 법정전입금만 부담하면 되기 때문에 새로운 교육재정 수요가 발생할 경우 부담원칙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송교수는 따라서 "이 법에 국가, 지방자치단체, 초·중등 및 전문대학·대학법인, 학부모 등의 교육비 부담범위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교육세 폐지 움직임과 관련 김병주 영남대교수는 "현행 교육세는 폐지되지 않는것이 바람직하며 폐지된다 하더라도 새로운 형태의 교육세 혹은 법정화된 교부율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정경제부는 2000년부터 교육세를 폐지하고 현행 교육세 해당액(5.3조원)을 국가예산(증액교부금)으로 편성 지원할 예정으로 있으며 기획위원회와 예산청은 '목적세를 재원으로 하는 교육 등에 소요되는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선언적 규정으로 대체할 것을 검토해 왔다. 김교수는 이와 관련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을 국가에서 예산으 로 계상하고 증액교부금으로 교부한다는 것은 일시적 미봉책에 불과하고 자칫 교육재정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김교수는 또 "지방교육재정의 30% 이상을 차지해온 교육세를 폐지하는 것은 교육의 현상유지조차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설명하고 그 대안으로 ▲현행 교육세를 유지하되 정부의 조세체계 간소화 정책에 부응해 세목을 축소 ▲현행 교육세를 폐지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안정적인 재원의 확보를 법적으로 명문화 ▲국세분 교육세에 해당하는 금액은 경상교부금의 법정교부율 인상으로 대체하고 지방세분 교육세는 지방교육세로 전환 등을 제시했다. 나민주 충북대교수는 학교발전기금제도의 정비 필요성을 제기했다. 나교수는 "학교발전기금의 조성방법에 사용목적을 규제하고 있는 현행 법령 및 규정이 기부금, 찬조금과 관련된 비리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반면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입장을 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나교수는 따라서 모금방법에 대한 학교운영위원회의 재량권을 확대하고 기금의 조성·운용 및 회계관리에 관한 사항도 시·조례에 위임할 것을 제안했다. 납입금과 관련 나교수는 "저소득층의 교육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교육비 보조제도를 강화하고 학교운영지원비 책정권은 단위학교에 완전히 일임해 학교간 경쟁과 질 향상을 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교수는 특히 학교운영에서 자율능력이 인정되는 일부 사학에 대해서는 학교운영 전반에 관한 자유재량권을 허용하는 자립형 사립학교 육성책의 정착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