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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 멈춰선 시계, 자그마한 강아지, 잎새를 떨구어 버린 겨울나무, 그리고 백합화 한 송이이다. 욕심을 더 부려 본다면 웃고 있는 아이들과 아끼는 시집이다. 나는 어른이면서도 다 자란 아이들(어른)에게는 관심조차 없다.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도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세 개의 시계가 제각각 이다. 안방에 걸린 시계는 뻐꾸기시계인데 1년 가까이 잠을 자고 있지만 아무도 깨울 생각이 없다. 쫓기듯 달리는 일상을 뒤로하고 퇴근 후에 그 시계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서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때로는 쉬고 있는 그 녀석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일어나 달리지 않아도 되는 그 ‘자유에의 몽상’을 그 녀석을 통해서 나마 대신 누리고 싶음이리라. 거실에 걸린 시계는 5분 정도 빨리 달리는 부지런한 녀석이다. 약속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남편을 참 많이도 닮았다. 그러고 보니 거실의 째각이는 우리 집에서 가장 부지런하다. 소리도 요란하고 쉴 줄도 모르는 것이 영락 남편의 부지런한 성깔과 꼭 빼 닮았다. 눈뜨는 아침부터 잠드는 늦는 시각까지 회사 일이 인생의 전부인 냥, 기뻐하고 고뇌하며 촌음을 다투는 그의 성실함과 잘 어울리는 시계이다. 연애 시절, 5분 늦게 나갔다가 가 버린 남편을 몇 시간 동안 기다리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약이 오르지만 약속 시간에 정확한 그를 탓할 생각은 없다. 거실의 째깍이는 나를 서두르게 하는 기술을 간직하고 있다. 부엌에서 보는 시계는 영광에서 근무할 때 연공 상으로 받은 것인데 우리 집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이다. 남편의 출근 시간, 딸아이의 등교시간에 맞추어 식사시간을 조절하는 데 이용되므로 가장 신뢰받는 시계인 셈이다. 거실의 시계를 보면서 한 발 앞서 가는 부지런함을 일깨우고, 부엌의 정확한 시계를 통해서는 신뢰받는 인간의 면모를 생각해 본다. 안식을 누리는 안방의 시계를 바라보며 물러섬의 아름다움과 재충전으로 날아오르는 꿈을 꾸어 보기도 한다. 우리 집엔 작년 여름부터 사다 기른 퍼그 한 마리가 어느 사이에 8kg이 넘었다. 3년 동안 길렀던 ‘토실이’를 잊기 위해 1년의 기다림 끝에 사들인 애완견이다. 대인 시장에 나갔다가 발견한 퍼그 삼형제를 보고 30분 동안 만지작거리다가 안고 온 개이다. 늘어진 얼굴에 납작한 코, 매끄럽고 부드러운 예쁜 털을 가진 이티! 생김새가 하도 귀엽고 우스꽝스러워서 영화 속의 이티를 닮아 붙여 준 이름이다.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업고 포대기를 두른 채 소꿉놀이를 할 만큼, 나는 개를 좋아했다. 이른 시각에 일어나 집안일에 바쁘지만 이티에게 공들이는 시간도 여간 만만한 게 아니다. 욕실에 들어가 대소변을 가릴 줄 앎으로 키우는데 큰 애로는 없지만 털갈이의 뒤치다꺼리를 해 주어야 하므로 청소를 자주 해야 한다. 하루 종일 혼자서 집을 보다가 돌아오는 가족들을 반기는 이티의 사랑스러움은 피곤함을 가시게 하고도 남으니 그 녀석에게 공들이는 시간은 당연한 게 아닐까? 어쩌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을 못 이루거나 글이 풀리지 않을 때에도 이티는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 모두 곤한 잠에 든 시각, 말 친구가 필요할 때 이티를 깨우면 까만 눈을 굴리며 빤히 쳐다보는 그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음식 까탈을 부리지 않고 뭐든지 잘 먹어서 소탈하여 예쁘고, 장난 끼도 많고 애교도 여간 아니어서 즐겁게 하니 개를 길러 보지 않았거나, 본시부터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일일 것이다. 이티의 매력은 또 있다. 예뻐한다고 해서 주인을 업신여기지 않으니 아랫사람이나, 자식들이 본받을 일이요, 주어진 먹이를 한 톨도 버림이 없으니 음식 귀한 줄을 모르고 낭비하여 버리는 사람들이 생각해 볼 바이다.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는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련만 감사함을 아는 소치이리라. 또한 아무데서나 뒷일을 보지 않으니 술 한 잔 걸치고 급한 김에 아무데서나 실례를 범하는 양반들은 그 깔끔함을 배울 일이다. 거짓을 모르니 더 더욱 사랑스럽고 말이 많지 않아도 뜻이 통하니 친구 중에 최상인 것이다. 개만도 못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거든 개를 구박하지는 말일이다. 나는 잎새를 다 떨구어 버린 겨울나무를 무척 좋아한다. 이른 봄에 파릇한 새 눈을 틔워 올리는 작은 생명이 대견해 보이고, 초여름의 대지를 연초록 물감으로 붓질하는 푸르른 나무들의 싱그러움도 희망이 있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늦가을에 제 할 일을 다 했다며 붉어진 얼굴로 석양에 물들어 단풍든 가을 나무도 가슴을 적시게 하는 데는 그만이다. 하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데는 빈 가지로 서 있는 겨울나무가 단연 으뜸이다. 홀로 서서 빈 하늘이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며 지나온 계절을 반추하듯, 자람을 멈춘 채 내면의 자기 모습에 취해 한층 깊어진 얼굴로 세상과 화해하는 그 편안함이 부러워서이다. 봄, 여름, 가을 내내 힘들게 일해 온 뿌리를 쉬게 하고 다 자라 더 이상 보듬을 필요가 없는 이파리를 훌훌 띄워 보낸 그 여유가 부러운 것이다. 겨울나무처럼 내게 걸쳐진 옷자락을 훌훌 다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서서 빈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을까? 그 언제쯤……. 지난 스승의 날에 받은 선물 중에 가장 설레게 했던 것은 백합꽃 몇 송이였다. 아이들에게 선물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전달이 덜 됐는지 백합꽃이 배달되어 온 것이다. 퇴근 시간 무렵인데다가 꽂을 데조차 마땅하지 않아 집으로 가져 왔는데, 그 향기가 어찌나 좋은지 꽃만 홀로 두고 잠자는 게 미안해서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꽃향기를 맡으며 쓴 시이다. 백합꽃을 보며 네가 내게 오기 위해 나도 너처럼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순결한 때가 있었을까? 여섯 장 꽃잎 속에 나도 너처럼 그렇게 알알이 맺혔으니 고결한 향을 내뿜을 날이 이 밤, 자정이 넘은 시각에 내 생에 남아 있을까? 너를 홀로 세워 두지 못함이란다. 단 하루만이라도 순결한 향기를 지닐 수 있다면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단 한번만이라도 기쁨임을 노래하는 너는 고결한 숨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아무런 말이 없이도 살아 있음의 아름다움에 감사할 일이다. 고결하고 아름다운 것을! 서 있음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으리라. 홀로 피어서도 어느 한 순간 나도 너처럼 외롭지 아니함을. 꽃일 수만 있다면. (1998.5.15 01:50) 나는 웃고 있는 아이들의 미소를 좋아한다. 우리 반에는 해맑은 얼굴에 왜소한 몸집을 가진 남자아이가 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발달의 정도가 더디어서 공부하는 일에는 서투르지만, 마음씨가 곱고 맑아서 생수 같은 아이이다. 공부를 잘 하고 똑똑한 아이들의 꾀부림과 영특함 대신에 정직함, 순수함으로 따뜻한 웃음으로, 나를 위로해 주는 아이이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마음 상하게 하는 일은 할 줄 모르는, 백합 같은 아이라고나 할까? 인간은 본래 착하기보다는 악한 존재라는 성악설이 그 아이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니, 그런 아이와 날마다 만나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선생인지 모른다. 나는 칼릴 지브란의 시집을 무척 좋아한다. 스무 살 안팎에 읽었던 ‘부러진 날개’와 ‘예언자’를 만나면서부터이다. 빌려주었다가 잃어버리게 되면 가장 섭섭해지는 책이기도 하다. 그의 글 속에 들어가 앉으면 빈 하늘과 만날 수 있고 백합꽃의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도 있으며, 겨울나무처럼 홀가분해져서 수도승이 되는 것이다. 그가 속삭이는 고독함 속에는 해맑은 웃음이 햇살처럼 퍼지기도 하고 사물을 끝없이 사랑하는 고운 눈매를 지닌 동심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 그가 부르는 노래 속에서 멈춰선 시계의 한가로움까지 보태어 시간 여행을 떠나 중세의 삼나무 숲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멀리 시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다시 어른이 되어 버린다.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 곁에는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이 더 많으니 내가 어려지는 데는 보탬이 되지 않을까? 아이들 속에서 그들처럼 살아 있음의 감동에 펄펄 뛰고 싶다. 겨울나무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멈춰 선 시계가 되는 날까지. 한 송이 백합꽃의 향기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이티처럼 까탈 부리지 않으며 살고 싶다. 그리하여 들여다보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시집 속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울 수 있었으면 한다. (‘98. 전남문학 가을호 수록) .
우리 교육은 국가의 독점에서 위기가 비롯됐다며 교육의 자유와 자율, 책무성을 강조하는 교육운동단체가 탄생했다.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이하 교육연합)은 1일 오후 4시 서울 명지빌딩에서 창립식을 갖고 김정수 교사(구미여고 교사), 배호순 교수(서울여대), 조전혁 교수(인천대), 이남정 교장(인천명신여고) 등 4명을 공동대표로 선임했다. 창립 직후 열린 총회에서는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 김진홍 두레교회 목사,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김진성 명지대 겸임교수, 김선호 전 경희대교육대학원장 등을 상임고문으로 추대했다. 교육연합은 ▲자유주의교사연대 ▲자유주의학부모연대 ▲자유주의연구자포럼 ▲자유주의교육원로포럼 등의 4개 조직으로 구성되며 운영위원회(위원장 이명희 공주대 교수)를 통해 조율된다고 밝혔다. 조전혁 공동대표는 “교육연합이 뉴라이트의 대표적인 교육운동기구로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과 아울러 우리 교육을 변화시키고 우리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환경과 내용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창립기념세미나에서 이명희 교수는 “자유주의란 근본적으로 학생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하는 교육”이라면서 “그러나 자신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책임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는 이를 위해 “학교의 자율성, 책무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재학 교사는 교육부의 교육독점, 전교조의 각성, 역사교육 왜곡 시정을 요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윤종건 교총회장, 박효종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공동대표, 이석연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공동대표 등 각계 인사가 참여했다.
개인의 선호에 따라 복지 예산을 활용할 수 맞춤형복지제도가 지역별 혜택 범위와 시행 시기는 차이가 있지만 대개 이달부터 시행된다. 생명·상해보험과 의료비 보장 보험은 필수로 가입하고 도서구입 등 13개 항목은 자율 선택할 수 있다. 환자도 의료비 보장 보험가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른 보험과 구별된다. 이 제도는 중앙인사위원회 등 9개 정부부처에서 지난 2004년부터 시행하고 있고 교육공무원의 경우는 올해 첫 도입됐다. 농협과 계약을 체결한 교육부 본부는 이달 시스템 개통과 더불어 전면 시행된다. 기관별 계약이 원칙이나 소규모 학교가 많은 충북은 도교육청이 한 단위가 돼 보험사와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얼마나 쓸 수 있나=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복지 항목을 선택할 수 있다. 교육부 공무원의 경우 경력과 부양가족수에 따라 최저 300에서 900포인트까지 예산이 배정된다. 1포인트는 1000원 상당으로 30만원에서 90만원까지 예산이 차별 배정되는 것. 20년 경력에 4명의 부양가족을 거느린 A전문직의 경우 750포인트를 배정받는다. A씨의 경우 기본(300포인트)+근속(20년 근속=200포인트)+가족(배우자 100+그 외 가족 3명x50=150) 포인트가 합쳐져 750포인트다. 이 포인트를 복지카드를 활용해 사용하고 매월 1회 영수증을 제출하면 한 달 뒤 현금으로 돌려받는다. ◆복지 항목=필수항목과 자율항목으로 나뉜다. 전 직원이 의무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필수항목으로 생명·상해보험이 있다. 본인의 질병 및 재해사망, 등급별 재해 장애를 보장하는 목적. 최저 5000만원에서 2억 원까지 보상범위를 선택할 수 있다. 농협과 단체 계약한 교육부의 경우, 남자는 연령을 불문하고 5만 9680원의 보험료(59.68포인트)가 책정된다. 단체구매로 보험료가 저렴한 편. 의료비 보장보험도 필수항목. 입원 1회당 1천만원 한도로 환자나 이미 질병을 앓은 자도 보험가입이 가능하다. 본인은 총 입원 진료비의 20%만 부담하고, 보신이나 미용 등 질병치료와 직접 관계가 없는 진료비는 제외된다. 자동차손해배상, 공무상 재해보상 등 타 제도에 의한 보상과 이중보상은 금지된다. 교육부 본부의 경우 남자보험료는 2만 5570원 여자는 4만 2330원. 위의 두 보험은 소멸성으로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갱신해야 한다. 필수기본항목을 선택한 후 남은 포인트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율항목이 있다. 본인 및 가족의 진료비와 종합건강진단, 건강시설 이용, 본인 학원수강, 자율연수비, 도서구입비, 콘도·리조트 이용료, 레포츠 관련 비용, 여행비용, 공연 관람, 보육시설 이용, 자녀의 유치원 교육비, 부모 부양비(주거 요양 여가시설 등 노인복지시설 이용료 및 어버이난 기념품 구입비) ◆기간제 교원은 제외=국가공무원법(제52조 공무원 후생에 관한 사항)과 공무원후생복지에관한 규정이 법적 근거. 2007년까지 전 부처로 확대된다. 기간제 교원이나 국외 파견 공무원, 병역휴직, 행방불명휴직, 법정의무수행, 해외유학휴직, 고용휴직, 교육부장관이 지정하는 기관에서의 연수휴직, 해외 배우자 동반 휴직, 노동조합 전임자 휴직자 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휴직자 중 질병휴직, 육아휴직, 가사휴직자는 일반 적용 대상자와 동일한 복지포인트를 부여받는다.
시도별로 들쭉날쭉한 혜택으로 논란인 맞춤형복지제도와 관련 교육부는 “지역별 편차 없이 시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최근 밝혔다. 그러나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도교육청들은 여전히 ‘예산 확보 어려움’을 호소해 교육부의 지침대로 시행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교직경력이나 부양가족 수 등에 따라 1년간 개인별로 30만원~90만원까지 복지예산을 쓸 수 있는 맞춤형 복지제도가 예산 사정에 따라 시도별로 수십만 원까지 편차가 발생함에 따라 교육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교육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 지침대로 100% 예산을 확보했거나 추진 중인 곳인 서울, 강원, 경북 등이다.(본지 6월 20·27일자 보도) 이화복 교육부 교직단체지원과장은 “복지 예산이 교육부 지침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시도교육청에 협조를 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선 지난달 9일 교육부는 “해당 시도교육청에서는 복지 예산이 지침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소요되는 예산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확보해 달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 교육부의 독려에 따라 시도교육청들은 당초 계획보다 예산을 늘려 잡고 있으나 교육부가 제시하는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1인당 평균 6만원의 복지예산을 편성했으나 30만원 정도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기응서 부교육감은 “다른 시도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30만원 정도의 예산을 책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선 시행하고 예산은 12월 정리추경 때 확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충북도교육청의 경우 최저 15만원에서 45만원으로 1인당 평균 32만의 예산을 책정해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충북도청 관계자는 “1인당 32만원은 교육부 평균치인 64만 8000원보다 낮은 액수라 부담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일반직 지방공무원들은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시행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교육청은 1인당 평균 27만원을 상정해 도교육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지난달 중순 도의회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에서 20만원으로 하향 조정됐다. 교육여건이 어려운 데 교원복지가 우선될 수 없다 게 삭감 이유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시도교육청 관계자들은 “중앙정부에서 특별교부금을 내려주지 않는 이상 내년에도 지역별 편차는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교총은 최근 논평을 통해 “지난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과 세수 부족으로 지방교육예산이 대폭 부족한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일체의 예산 지원도 하지 않고 국가직인 교원의 복지를 지방에 떠맡긴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조속히 예산을 확보해, 균형 있게 복지제도를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고교 평준화 해제와 고교등급제ㆍ본고사ㆍ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3불 정책'의 폐지 등을 추구하는 뉴라이트 교육단체가 1일 공식 출범했다. 자유주의 교육운동연합(교육연합)은 이날 오후 서울 명지빌딩에서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식을 열어 구미여고 김정수 교사(교사 대표)와 인천대 조전혁 교수(일반학계 대표), 서울여대 배호순 교수(교육학계 대표), 인천명신여고 이남정 교장(교육원로 대표) 등 4명을 공동대표로 선임했다.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와 김진홍 두레교회 목사,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김진성 명지대 겸임교수, 김선호 전 경희대 교육대학원장 등은 상임고문으로 추대됐다. 교육연합은 창립 취지문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정부의 교육통제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획일적 교육을 강요하는 교육평준화체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수정ㆍ보완ㆍ폐지하는 '자유주의 교육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학교교육을 통해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적성을 살려나갈 수 있도록 '공교육 정상화운동'을 벌이는 한편 교육의 국민자치제 실현을 위해 학교교육을 수요자 입장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수요자 중심 교육운동'도 전개하기로 했다. 교육연합은 자유주의 교사연대와 자유주의 학부모연대, 자유주의 연구자포럼, 자유주의교육원로 포럼 등 4개 조직으로 구성됐다. 교육연합 관계자는 "정부는 교육개혁의 목표와 방향을 상실하고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평등주의적 교육정책을 남발해 개개인의 능력과 자유를 무시하고 획일적인 교육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앞으로 정부에 고교 평준화 및 3불 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한편 자유주의 이념 및 가치 전파, 새 교재 및 혁신적 학습방법 개발 등에 나설 계획이다. 창립식이 끝난 뒤 열린 세미나에서 이명희 공주대 교수와 정재학 전남 영암 삼호서중학 교사, 정영광 학부모 대표, 조전혁 인천대 교수 등이 '자유주의 교육의 비전'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다.
예비군 훈련장의 사격 소음 때문에 인근 학교와 주민들이 '학습권 침해' 등을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인천시 서구 불로동 불로중과 목향초교는 인근 김포 야산의 모 보병여단 예비군훈련장과 300여m 떨어져 사격 훈련 시간에는 소음으로 창문을 열고 수업하지 못할 정도다. 특히, 예비군 훈련이 잦은 3~11월 하루 2차례씩 총성이 끊이지 않아 2002년부터 관할구청과 교육청에는 "사격장 소음을 해결해달라"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소음 대책'에 대한 학교측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목향초교에 딸을 보내는 정모(37.여)씨는 "훈련기간에 거의 매일 사격장에서 천둥소리와 같은 소음 때문에 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며 "학생들의 수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만큼 훈련장 이전외에는 특별한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불로중 관계자도 "교육청 등 관계기관에 수년전부터 수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사격장 소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명확한 대답이 없다"고 답답해 했다. 목향초교와 불로중에는 각각 1천200여명과 940여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으며 인근 대림.월드아파트 등에 3천여 가구가 살고 있다. 예비군훈련소측은 "지난 4월 인근 아파트에 1억2천만원이 투입된 방음벽이 설치됐고 지금까지 소음으로 인한 민원을 직접 받아본 적도 없다"면서 "주민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필수 소총 사격만 실시하고 사격 시간을 조정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대가 특수법인으로 전환할 경우에는 고용승계 및 공무원연금 보장 등의 혜택이 부여되지만 법인화하지 않으면 교수정원과 예산배정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또 대학이 경영전문대학원을 설치할 때 학부를 없애지 않아도 된다.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1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165명의 4년제 대학 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주최 전국 대학 총장 하계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부총리는 "대학구조개혁특별법을 제정해 이르면 내년부터 국립대 특수법인화를 유도하고 사립대 법인 퇴출 경로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정 요건이 갖춰진 대학부터 자발적으로 특수법인으로 바꾸면 되고 특수법인으로 전환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고용승계 보장, 공무원연금 혜택의 지속적인 부여 등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나도 특수법인으로 전환하지 않는 대학에 대해서는 교수정원 및 예산 배정 등 행ㆍ재정적인 지원에서 차등을 두는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사립대에 대해서도 자율적 구조개혁을 유도하되 불가피하게 사립대 법인이 해산하면 잔여재산 일부를 환원해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김경회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추진단장은 "출연 당시 재산에 해당하는 부분만 돌려주는 방안과 출연 당시 재산에 물가나 지가상승률 등을 더해 되돌려주는 방안 등을 놓고 연구용역을 실시 중"이라며 "교직원 명예퇴직금과 학생등록금 등은공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을 8월까지 마련할 예정이다. 김 부총리는 경영ㆍ금융ㆍ물류 전문대학원 설립 기준을 완화해 경제단체의 전문대학원 설립을 유도하는 동시에 기존 대학에 대해서도 종전 전문대학원 설립 전제 조건이었던 '관련 학부 및 특수대학원 폐지'를 없애 전문대학원과 학부를 병행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산업계 인사와 경영학 교수 등으로 구성되는 경영교육발전위원회를 통해 10월께까지 결론지은 뒤 연말 전문대학원 설립 인가를 내줘 내년 3월이나 9월부터 신입생을 뽑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김 부총리는 총장들에게 "지자체나 지역 산업계와 긴밀히 협력해 독자적인 특성화 전략을 세워달라"고 당부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1일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해 혁신도시에 공영형 자율 중.고교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이날 대구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같이 밝히고 "공영형 자율 중.고교 설립은 중앙.지방 정부와 이전 공공기관이 공동으로 재원을 조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영형 자율 중.고교는 혁신도시 구축 이전에 설립할 것"이라면서 "설립 이후에는 지역의 각계 인사가 참여해 학교를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공영형 자율 중.고교는 교장과 교사를 초빙하는 등 최대한 자율권을 인정할 것"이라면서 "공교육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의 임직원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립형 사립고의 운영과 관련해 "전국 6개 학교를 시범 운영 중인데 이를 곧 평가해 구체적인 문제점을 찾아 보완하겠다"면서 "획일적인 공교육의 문제점도 보완해 사교육 확산을 막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본고사형 논술고사에 대해 "학교생활기록부의 부풀리기 때문에 일부 대학들이 본고사형 논술고사 시행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학교생활기록부의 변별력과 신뢰성을 확보하는데 노력해 본고사형 논술고사가 필요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과 고교간의 학생생활기록부 신뢰성에 관한 워크숍을 계속 열어 학생생활기록부의 신뢰도 확보에 '올인'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밖에 대학의 구조조정에 대해 "대학 통.폐합은 최대한 대학들간의 자율 협정을 존중할 것"이라면서 "시장과 도지사 등이 참여하는 권역별 구조조정협의회를 구성해 대학 구조조정을 합리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2일 오전 대구지역 관.학.경제계 인사들과 함께 권역별 구조조정협의회 구성 등에 대해 토론할 계획이다.
일본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편찬한 후소샤(扶桑社)판 역사ㆍ공민교과서 채택률이 4년전 채택률을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 1일 역사왜곡 교과서 불채택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일본교직원노조(일교조)와 시민단체, 민단 등에 따르면 6월 30일 끝난 교과서 비교전시회장의 분위기로 보아 올해 후소샤판 교과서 채택률은 4년전의 0.039%보다 훨씬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교조에 따르면 전국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중 16개 광역지자체에서 후소샤판 교과서가 채택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교조 교문부 다카하시(高橋)씨는 ▲자치단체장이나 교육위원장이 후소샤 교과서를 지지하는 지역 ▲독도문제와 납치문제에 관심이 높은 지역 ▲자민당 우세 지역및 보수성향이 높은 지역 등이 후소샤판 교과서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일본 우익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지사가 공공연히 새역모 지지로 해석되는 언행을 일삼는 도쿄도(東京都)와 가나가와(神奈川)현은 자치단체장이나 교육위원장이 후소샤 교과서를 지지하는 지역으로 분류됐다. 도쿄도의 경우 학교와 학생수가 많기 때문에 각 지자체가 도쿄도의 동향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도쿄도의 동향이 다른 지자체의 교과서 채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독도의 날' 조례를 제정한 시마네(島根)현과 인근 돗토리(鳥取)현을 비롯, 가짜 유골파동을 겪은 납치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의 고향인 니가타(新潟)현, 후쿠이(福井)현 등도 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자민당의 아성 또는 보수성향이 높은 지역으로 꼽히는 야마구치(山口), 구마모토(熊本), 사가(佐賀), 미야자키(宮崎), 와카야마(和歌山), 야마가타(山形), 이바라키(茨城), 도치기, 에히메(愛媛), 홋카이도(北海道) 등도 채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분석됐다. 새역모측은 도쿄도의 경우 절반 이상, 에히메현은 100% 후소샤판 교과서를 채택할 것이라고 호언하며 전국 조직을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어린이와 전국교과서 네트워크 21' 사무국 관계자는 "현 단계에서 채택률을 수치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4년전보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교조 효고(兵庫)현 사카모토 겐지(坂本硏二) 교문부장은 "근린제국 조항과 과거역사를 사과한 무라야마(村山) 담화 등을 강조하며 공정하고 공평한 교과서 채택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학교 교과서 채택은 7-8월 두달간 지자체별로 이뤄진다. 한편 민단중앙본부는 후소샤판 교과서 채택을 저지하기 위해 3일 오후 도쿄시내에서 '역사교과서와 어린이의 미래를 생각하는 포럼'을 열어 식민시절 창씨개명과강제연행의 진상 등을 고발할 계획이다. 시민단체인 교과서 네트워크는 9일자 요미우리(讀賣)신문에 올바른 교과서 채택을 촉구하는 광고를 게재키로 했다.
충남도교육청은 국립사대졸업자중교원미임용자(이하 미발추) 및 병역의무관련교원미임용자(이하 군미추)를 상대로 지난 한 달 동안 접수을 받은 결과 모두 302명(미발추 134명, 군미추 168명)이 등록했다고 1일 밝혔다. 미발추는 이에 따라 2006-2007학년도 특별정원으로 시행되는 중등교원 공개전형이나 교육대학 편입시험 가운데 한 곳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군미추는 특별채용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군미추 해당 여부가 확인되면 1년 이내에 교원에 특별채용된다. 미발추와 군미추는 1990년 10월 7일 이전에 국립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시.도 교육위원회별로 작성된 교사임용후보자명부에 등재돼 임용이 예정됐으나 1990년 10월 8일 교육공무원법 제11조 제1항(국립사대 졸업생 등 우선 채용)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라 교원으로 임용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글 | 박하선/사진작가·여행칼럼니스트 위구르족과의 첫 만남 '파인 땅 투르판'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발길을 재촉하다 보면 중국의 서쪽 변방인 '신지앙 위구르 자치구'에 접어들게 된다. 이곳은 황량한 사막지대에 '위구르족'이라는 소수민족의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다. 이들은 생김새가 중국의 '한족'과는 판이하게 다를 뿐만 아니라 언어와 문화조차 달라 도저히 중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닿게 되는 순간부터 마치 중동의 어느 한 지역에 와 있는 듯한 인상을 씻을 수가 없게 되고, 실크로드의 여정이 무릇 익어간다. 이 위구르족들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게 된 곳은 '투르판(吐魯蕃)'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표고가 해면보다 낮은 곳이어서 여름철에는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역사의 고장이다. 예로부터 실크로드 상의 천산북로와 남로의 갈림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기원전부터 이 비단길을 오가던 상인들이 물과 휴식을 얻기 위해 이곳 투르판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또 구도의 길에 나선 수많은 입축승(入竺僧)들도 이곳을 거쳐갔다. 이처럼 예로부터 중요한 거점으로 인식되어 온 곳이기에 흐르는 세월 속에서 다양한 민족들의 치열한 쟁탈전이 불가피했던 곳이 바로 이 투르판이기도 하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주변 도처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이 그걸 잘 말해 주고 있으며, 더불어 당시의 영화를 짐작케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교하고성(交河古城)'과 '고창고성(高昌古城)'을 들 수가 있다. 번영의 빛이 소멸한 흙빛 도시 '교하고성' 시내를 벗어나 서쪽으로 13km쯤 떨어져 있는 '교하고성'은 이름 그대로 두 물줄기 사이로 30m나 우뚝 솟은 절벽 위에 터전을 잡은 천연의 요새와 같은 고대 도시를 말한다. 이곳은 실크로드를 오가는데 있어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기원전 2세기 전한시대(前漢時代)에 이란계의 '차사전국(車師前國)'이 자리잡기 시작하여 14세기 말 그 번영의 빛이 소멸되기까지 흉노(匈奴), 한(漢), 당(唐) 등의 지배를 거쳐 온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은 온통 흙빛만으로 고요하기만 하다. 성문에 들어서니 벽돌길이 남북으로 일직선으로 뚫려있는 가운데 수많은 폐허들이 그 양옆으로 줄을 지어 서 있다. 그 길이 끝나는 북부에는 주로 사원이나 광장, 또는 저택 등으로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이는 것들이 자리하고 있고, 남부에는 서민들의 주거지 흔적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당시 땅속 깊이 파놓은 우물들이 지금도 몇 개 남아 있는데 어찌나 깊은지 그 바닥이 안 보인다. 그 깊이를 점쳐보기 위해 돌멩이를 떨쳐 보면서 하루 종일을 이 폐허 속에 묻혀 지내보지만 지난날은 돌아오지 않는다. 현장법사가 지나간 고대 도시 '고창고성' 또 다른 고대 도시인 '고창고성'은 시내에서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다. 당나라 때 전성기를 누렸던 이곳은 기기 괴괴한 모습의 '화염산'을 배경으로 길이가 5km나 되는 웅대한 성벽을 지니고 있는데, 499년 한나라 사람 '국문태(麴文泰)'가 이곳에 '고창국(高昌國)'을 세웠을 때 그 도성으로 쌓은 것이다. 교하고성이 흙 자체를 조각한 조각건축인 반면 이 고창고성은 흙벽돌을 쌓아 조성했기 때문에 파손이 보다 심해 궁전이나 사원 같은 큰 건물의 잔해만 남아있을 뿐 거의 공터로 남아있다. 이곳 고창고성은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남긴 당나라의 고승 '현장(玄裝)'과도 인연이 있던 곳이다. 천축국으로 향하던 '현장'은 당시 '막하연적(莫賀延蹟)'이라 불리던 '고비사막'을 건너는 과정에서 온갖 고충을 다 겪다가 이곳 '고창국'에 도달하게 됐는데, 이때 열렬한 불교 신자였던 고창왕 '국문태'의 간청에 못 이겨 이곳에서 한 달 동안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을 설법하게 되었다. 또 융숭한 대접을 받고 떠나면서도 '현장'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려 3년간 공양을 받아 줄 것을 국왕이 간절히 요청하자 그것 역시 받아들였다. 천축국을 두루 둘러보는 동안 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고창왕과의 약속을 중히 여긴 그는 귀로에도 보다 빠르고 안락한 해로(海路)를 취하지 않고 고난으로 가득 찬 육로를 다시 거슬러 올라오게 되었다. 하지만 도중에서 고창국은 이미 당(唐)에게 멸망되고 국왕 국문태도 죽고 말았다는 소문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은 항상 모든 것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그래서 삼라만상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오아시스 속에서 지금도 위구르족들은 옛 관습대로 살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황량한 모래벌판과 고창국의 폐허를 굽어보고 있는 화염산만이 옛 모습 그대로인지도 모른다.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베제크릭 천불동' 불꽃이 날기를 천장(天丈)의 높이’라고 표현되면서 소설 '서유기'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화염산. 정말 마귀라도 금방 나타날 것만 같은 괴괴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그 산록을 끼고 돌면 또 하나의 전설이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을 찾게 된다. 그것은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베제크릭 천불동'이 오늘날 초라한 모습으로 지난 역사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된 집'이라는 뜻을 지닌 이 '베제크릭'은 수나라 시대인 6세기 말부터 14세기까지의 사이에 조성된 불교사원인데, 지금에 와서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57개의 모든 굴이 텅 비어있는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번의 크나 큰 수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14세기에 이슬람교를 신봉하게 된 이 땅의 위구르족들에 의해, 또 한 번의 결정적인 것은 20세기 초 독일, 일본, 러시아, 영국 등의 탐험대에 의한 벽화 반출 경쟁에 의해서였다. 그래서 오늘날 이 베제크릭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39굴의 '각국사절도'만이 비교적 깨끗이 남아있을 뿐, 매 굴마다 긁혀나간 벽화의 흔적들만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위구르족의 노력으로 탄생한 사막의 비밀 가는 곳마다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나 유적들이 많아 이곳 투르판 일대를 '역사의 보고'라고 한다. 이처럼 이곳에 많은 유적들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게 된 것은 다양한 역사의 흐름에도 있겠지만, 일년에 평균 강우량 16㎜밖에 안되는 건조한 날씨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그것은 지금도 이따금씩 땅속에서 발견되고 있는 '미이라'들이 잘 말해 준다. 그렇다면 이처럼 메마른 땅에서 어떻게 그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으며, 오늘날 '이곳 투르판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일게 마련이다. 거기에는 위구르족 선인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던 것임을 이곳에 와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된다. 그것은 투르판의 비밀이자 사막의 생명수라고 할 수 있는 '카레스'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뭐니뭐니 해도 가장 소중한 것은 물이다. 그래서 물이 있는 곳에 오아시스가 생겨나고, 물이 마름으로써 멸망한 왕국도 있고, 물을 잘 지배해 강성한 제국을 만든 나라도 있었다. 이곳 투르판 역시 천산산맥의 눈 녹은 물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사막의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천산의 물이 이들에게 생명을 주진 않았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천산이기에 지상으로 흘러오는 물은 아무리 많은 양이라고 해도 그 대부분이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온통 사막인 이곳을 적시기란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곳 위구르족 선인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며 400-500년간에 걸쳐 지하 수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용되고 있는 '카레스'다. 천산 기슭에서부터 시작해 수많은 우물들을 지하로 연결해 오아시스까지 끌어들인 이 '카레스'의 물줄기. 그 총 길이가 장장 3000km나 된다고 하는데 이 엄청난 길이를 모두 손으로 파서 만들어졌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사막 속의 한쪽에서 새로운 카레스가 만들어지고 보수되는 가운데, 투르판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천산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카레스에서 물긷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이 카레스 덕분에 이곳 투르판은 온갖 과일이 풍성하다. 그래서 일명 '과일의 도시'라고도 부른다. 그 중에서도 특히 '포도'는 이곳 투르판의 특산품으로 여름철에는 이 일대가 온통 포도 넝쿨로 뒤덮인다. 수확기가 되면 집집마다 마련된 건조장에서 포도를 말리는 것이 일이다. 어느 한 곳을 찾아가니 온 가족이 동원되어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포도송이들을 막대 기둥에 걸고 있었다. 위구르족의 평화를 한눈에 엿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건조장에 걸어 놓은 이 포도들은 20일 정도면 건포도가 된다고 하면서 한 바구니의 포도를 내놓는다. 먹고 남은 것은 가져가라는 것이다. 씨도 없이 달콤하기만 한 청포도의 맛에 취하고 후한 인심에 또 취한다. 이래저래 위구르족들의 세계에서 실크로드에 대한 환상은 한없이 이어져 간다. *신비로운 실크로드의 세계! 새교육 7월호에서 만나보세요.
글 | 김연수/생태사진가 도시에서도 친근해진 설치동물 산림이 우거졌던 시절, 인적이 드문 숲이 울창하게 펼쳐져 있었을 때, 땅을 한 번도 밟지 않고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건너갈 수 있는 동물이 바로 청설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청설모 한 마리가 평생토록 돌아다니는 면적이 그렇게 넓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깊은 산속 보다는 민가 주위의 야산에 서식하며 최근에는 서울의 공원에도 꽤 많은 개체수가 보인다. 청설모는 쥐목 다람쥐과에 속하는 설치동물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몽골, 연해주, 유럽 등 유라시아대륙에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한국산 청설모는 중국이나 일본산 보다 몸집과 두개골이 작다. 겨울털은 북방청서와 비슷하지만, 암색이며 북방청서의 담색형은 한국산 담색형보다 훨씬 색채가 연하다. 한국산 청서는 중국산 청서나 북만청서와는 현저하게 다르며 갈색에 가깝다. 북방청서에 비하여 회갈색이고, 사지와 귀의 긴털꼬리는 흑색을 띤다. 청설모를 다른 말로는 한자식 표기인 청서(靑鼠)라고 하는데 우리국어사전에 대부분 청설모를 '청서의 털'로 해석한 경우가 많다. 호기심 많은 천덕꾸러기 청설모를 보노라면 언제나 개구쟁이 어린 시절을 기억에 떠올리게 된다. 갑자기 몸을 움직여 안 보이던 곳에서 홱 나타나기도 하고, 뒤를 쫓으려 하면 어느새 나무줄기의 뒤로 돌아 얼른 숨기도 한다. 나뭇가지 끝에서 다른 나무로 건너뛰기도 매우 즐긴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많아 항상 되돌아본다. 청설모는 재빠른 동작으로 나무타기를 잘 하지만 그 모습도 장난꾸러기를 쏙 빼 닮았다. 배쪽이 하얗고, 등쪽은 짙은 밤색, 또는 검은 갈색으로 그 대비가 뚜렷하다. 양쪽 귀 끝에는 귀 길이의 서너 배는 됨직한 긴 털이 위로 뻗쳐 있어서 서커스단의 어릿광대를 보는 듯 하다. 도토리 등 견과류를 매우 즐기지만, 과육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장과류도 잘 먹는다. 호두나무, 잣나무 등 경제수종 조림지에 이들이 번성하면, 그 수확을 망쳐버린다. 호두농가에서는 매우 성가신 동물로 구제(驅除)대상이 되는 유해조수이다. 그뿐만 아니라 봄, 여름에는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번식하는 새들의 알, 새끼를 먹는 일도 많아 숲 속의 천덕꾸러기라는 오명을 벗기 힘든 형편이다. 가을에 저장한 먹이로 겨울나기 다람쥐와 하늘다람쥐가 겨울잠을 자는데 비해 청설모는 눈이 덮인 숲 속을 나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 청설모는 다람쥐와는 달리 볼주머니가 없어 보금자리까지 먹이를 끌어들여 저장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먹이가 풍부한 가을부터 땅속, 돌틈, 썩은 나무 속 등 여기 저기에 수많은 열매나 씨앗들을 묻어 두었다가 겨우내 이를 찾아 먹기도 한다. 청설모가 다시 찾아내지 못한 씨앗들은 이듬해 새싹으로 자라날 수 있게 되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씨앗들을 멀리 퍼뜨리는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둥지는 나무구멍을 이용하거나 나뭇가지와 낙엽 등으로 까치집을 닮은 모습으로 스스로 짓기도 한다. 한 해에 두 번 초봄과 초가을에 5마리 이내의 새끼를 낳아 기른다. 밤에는 수리부엉이나 올빼미에게 포식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집에서 꼼짝하지 않지만 경험이 없는 어린 새끼들은 종종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낮에는 천적이 되는 여우나 담비 등이 거의 멸종했기 때문에 청설모의 실질적인 적이 없어 개체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귀여운 장난꾸러기 청설모의 모습을 7월호에서 만나보세요.
조현호 | 울산 옥현초 교사 귀신들이 만든 돌다리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현존하는 전국의 돌다리를 찾아가고자 합니다. 삼국유사 편에는 '귀교(鬼橋)'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다리의 감독관은 '비형(鼻荊)'이라는 자인데 아버지 진지왕은 저승세계의 귀신이요, 어머니 도화녀((桃花女)는 이승세계의 생모이므로 비형은 반신랑(半神郞)의 독특한 신분입니다. 비형은 밤이면 귀신들과 어울려 수작을 부리곤 했는데 이를 안 진평왕이 비형으로 하여금 신원사 북쪽 개천에 돌다리를 놓도록 명령을 하지요. 아니나 다를까 그는 하룻밤 사이에 귀신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다리를 완성하고 맙니다. 기록상 우리나라 최초의 돌다리는 바로 귀신들이 만들었던 것입니다. 불가의 다리 불가(佛家)에서는 세상의 중심에 수미산이 우뚝 솟아 있다고 합니다. 그 수미산에 부처님이 계십니다. 인간들이 수미산에 가려면 8산9해(八山九海)를 넘어야 겨우 수미산 어귀에 이르게 되고 그 수미산을 사천왕을 비롯한 여러 권속들이 빈틈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절집들이 깊은 산중에 입지한 경우가 많은 것은 척불(斥佛)이나 고유의 산신신앙과도 관련이 있지만 그보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한 불교의 우주관이 앞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산속에 있는 절들은 대개 계곡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필연적으로 다리를 건너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과정은 물을 건넘으로써 차안(此岸)의 세계에서 피안(彼岸)의 세계로 접어들고 해탈, 극락의 세계로 진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가에서는 '월천공덕(越川功德)'이라 하여 다리를 놓는 행위를 수행의 과정으로도 봅니다. 다리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도와 복전(福田)을 확보함으로써 깨달음에 더 빨리 이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수행자인 스님들이 월천공덕으로 쌓은 다리 중 대표적인 다리가 벌교에 있는 ‘홍교(虹橋)’입니다. 벌교(筏橋)라는 지명은 옛날에 뗏목다리가 있어서 불린 이름입니다. 조선 숙종 44년(1705)경에 선암사의 초안선사가 이 다리를 놓았다고 하며 영조 13년(1737)에 개축하면서 3칸의 무지개다리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다리의 내력이 담긴 석비가 많이 남아있어 그 가치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과학과 미학의 조화 - 무지개다리 무지개다리를 ‘홍예교(虹霓橋)’라 일컫습니다. 주로 궁궐이나 사찰 다리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견고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석재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무지개 모양으로 양쪽에서 쌓아가다 최종적으로 이맛돌[key stone]을 끼우면 완성됩니다. 홍예교의 견고함은 바로 이 이맛돌에서 비롯하는데 이맛돌이 빠지지 않는 한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위에서 가하는 힘을 좌우로 분산시키기 때문에 붕괴 위험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과학의 힘에다 선경(仙境)에나 등장할 듯한 미학이 조화를 이룬 쾌거라 하겠습니다. 무지개다리라 하면 보물 제400호 선암사 ‘승선교(昇仙橋)’를 많이 떠올립니다. 승선교의 아름다움은 뒤에 배경으로 따라오는 강선루(降仙樓)가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신선이 타고 오르는 무지개다리와 신선이 내려와 머문다는 집의 조화가 있기에 그 아름다움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토함산이 있기에 함월산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강원도 고성 거진에 자리한 건봉사에도 ‘능파교(凌波橋)’가 있습니다.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데 숙종 30년(1704)부터 숙종 33년(1707) 사이에 처음 축조되었다고 합니다. 그 규모는 폭 3미터, 길이 14.3미터, 다리 중앙부의 높이는 5.4미터이며, 다리의 중앙부분에 큰 아치를 틀고 그 좌우에는 장대석으로 축조하여 다리를 구성하였는데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우리나라 돌다리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남 창녕 땅 ‘영산 만년교(萬年橋)’는 이전의 나무다리가 가진 불편함을 없애고 천 년 동안 변하지 않는 돌로 다리를 만들어 오랫동안 보존하자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반원형 홍예는 영산 석빙고가 자리한 상류에서 흘러오는 개천과 어울리면 완벽한 원을 만들어 가히 환상적입니다. 조선시대 1780년에 석공 백진기가 가설하고, 1892년 4월에 영산현감 신관조가 석수 김내경을 시켜 다시 지었습니다. 전남 여수의 흥국사 홍교, 강진의 병영성 홍교와 진도 남박다리 또한 무지개다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돌을 나무처럼 잘라 뚝딱뚝딱 전라남도 함평군과 나주시를 가르는 고막천 위에 놓인 고막천 석교는 현지인들이 ‘똑다리’ 또는 ‘떡다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고려 원종 14년(1723)에 무안 승달산에 있는 법천사의 도승 고막대사가 이 다리를 눈 깜짝할 새에 도술로 ‘똑딱똑딱’ 하여 ‘떡하니’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다리가 있는 고막리는 행정구역으로 함평군 학교면에 속합니다. 고막마을이야 고막대사에서 유래한 마을 이름인 것은 추론할 테고 학교란 지명이 재미있지요? 학교(鶴橋)는 ‘학다리’를 말합니다. 삽교(揷橋)를 ‘삽다리’라고 이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 다리는 무지개다리와는 달리 돌을 나무 다루듯 잘라서 교각 및 상판으로 꾸민 목조건축물의 양식을 보이는 돌다리입니다. 지난 2001년도 보수공사시 바닥 기초 나무 말뚝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최소한 고려 말, 조선 초로 밝혀져 축조연대가 상당히 오래된 돌다리임이 증명되어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나주평야가 인접하여 한 때 각종 물산을 실은 수많은 배들이 드나들던 번화한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화려함을 잃었지만 조수간만의 차와 홍수 등 모든 악재를 이겨내고 수백 년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980년에 고막마을 사람들이 세운 유적비에 이 다리에 대한 향수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 서술컨데 이 석교는 옛날의 국도가 나주함평의 군계(郡界)를 흐르는 고막천을 통과하는 데에 가설된 것인데 철도와 신도로가 석교의 바로 전방에 개통된 1910년대만 해도 영산강을 오르내리는 선박들이 바로 교하(橋下)에 정박되어 있었음으로 미루어 그가 교통산업상 중요한 일역을 담당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고도화되는 문명으로 급속히 변모되는 세태는 석교로 하여금 그 무거운 짐을 후배 교량들께 물려주게 하였으니, 이제는 면전에서 들리는 갖가지 차량의 경적과 굉음을 푸념삼아 귀에 익히며 볏단을 나르느라 조심스레 아끼며 밟고 지나가는 농부의 발자국에도 긍지와 애착을 느끼고 그것으로써 자위 자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승지(勝地)는 불멸일세. 이 석교가 고려조 이래 수백 년간에 쌓아올린 공적과 아울러 고막스님의 이름은 고막마을과 고막강으로 흐르는 강물의 영원함과 같이 언제까지나 이 나라 이 고장을 지켜보리라…. 한편, 충청도 옥천 땅에 있는 ‘청석교(靑石橋)’도 목조건축 양식을 볼 수 있습니다. 바닥에 긴 장대석을 놓고, 그 양 끝에 네모진 돌기둥을 세워 교각(橋脚)을 만들고 그 위에 넓고 긴 상판석을 얹어 두었습니다. 고려 시대 강감찬 장군이 이곳을 지나다가 모기 때문에 백성들이 괴로워 하고 있음을 보고 모기에게 호령을 하여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원래 군북면 증약리에 있었는데, 보존상의 이유로 지난 2001년 4월 옥천 향토전시관 앞 인공못에 박물(博物)이 되어 서 있습니다. 근대화에 제 할일을 잃어도 미내다리[渼奈橋]는 금강지류인 강경천에 자리해 있습니다. 옛 비문에 의하면 강경의 석설산과 송만운이 처음 발의하고 주동이 되어 모금한지 일 년도 되지 않아서 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다리를 완성하였다고 하네요. 특히 이 작업에는 승려들이 협조해 주었다고 합니다. 원래 나무다리가 있었는데 조수가 물러가면 바위가 보인다 하여 ‘조암교’ 혹은 ‘미교’라고 일러오다가 조선 영조 7년(1731)에 지금의 다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 다리를 찾으면 다리가 냇가를 가로질러 있는 것이 아니라 강경천의 물줄기와 평행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다리가 물길과 평행하게 놓여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논산문화원 관계자의 답변을 듣고야 수긍이 되었습니다. 1931~1932년 일제강점기에 높은 제방을 쌓아 하천정비를 하는 과정에서 당시 여럿이던 물길을 정비하면서 다리 아래로 흐르던 물길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인근 원목다리[院項橋]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목다리는 물길을 가로질러 제 위치에 있지만 하천정비로 인해 하천의 폭이 넓어지면서 현재 다리로는 물이 들지 않고 옆으로 물이 흘러갈 뿐입니다. 다리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버린 것이죠. 식량의 보고인 금강유역을 넘다들며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미내다리와 원목다리는 자신보다 훨씬 키 큰 제방 아래에 웅크린 채 옛 영화를 추억할 뿐입니다. 투박한 막돌이 모여 미려한 농다리가 ‘생거진천(生居鎭川)’은 충북 진천 땅이 살기가 좋은 고장임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진천 땅 세금천에 ‘농다리[籠橋]’라고 불리는 돌다리가 있습니다. 지역 향토지에 따르면 고려시대 임연장군이 그의 전성기에 고향마을에 쌓았다고 하는데 기록으로 보았을 때 현존 최고의 석교라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런데 이 다리의 축조 연대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태권도 공원을 유치하기 위해서 과열경쟁을 벌이다 보니 진천이 김유신의 탄생지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이 농다리가 김유신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고구려로부터 낭비성을 되찾을 때 가설한 다리라고 주장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던 것입니다. 하류에는 굵직한 돌을 바닥에 깔았는데 상류로부터 몰려오는 물살의 저항을 1차적으로 줄이는 역할을 해줍니다. 그 길은 또한 소와 같은 가축들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로도 활용됩니다. 항공사진을 통해 본 전체적인 생김새는 수심이 깊은 곳은 하류 쪽으로 돌출해 있고 수심이 얕은 곳은 상류 쪽으로 주춤한 곡선형입니다. 마치 교각과 판석이 어울려 배다리[舟橋]의 모습을 보는 듯하고 혹은 지네가 몸을 비틀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붉은 빛이 나는 사력암질의 돌들은 다른 다리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멋을 풍기는데 결코 단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은 돌의 재질로 보아 장구한 세월을 견뎌온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제대로 정련되지 않은 투박한 막돌이 모여도 이렇게 미려한 돌다리가 만들어지는구나, 농다리에 가면 새삼 길들여지지 않은 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수한 형태의 돌다리 화성의 아름다움 중에서도 특히, 화홍문 및 방화수류정과 용연이 함께 어울린 풍광은 ‘용지대월(龍池待月)’이라 하여 화성의 백미라 일컫지요. 이중 화홍문은 본래 수문다리의 역할에다 건축물의 용도를 더한 대표적인 누교건축물(樓橋建築物)입니다. 화홍문의 홍예는 모두 7칸인 데 일곱 색깔 무지개를 형상화한 듯합니다. 수문을 통해 쏟아지는 물보라에서 피어나는 무지갯빛을 ‘화홍관창(華虹觀漲)’이라 하여 수원팔경의 하나로 치고 있습니다. 3보사찰의 한 곳인 순천 송광사에서는 누교건축을 두 군데서 볼 수 있습니다. 절로 들어가는 초입에 계곡을 가로질러 ‘청량각(淸凉閣)’이 있습니다. 이 다리를 지날 때면 아래로 조계산의 맑은 물과 정기가 흘러 청량감이 몰려옵니다. 또 한 곳은 대웅보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건너야 하는 ‘삼청교’라는 무지개다리와 그 위에 세운 ‘우화각’입니다. 우화각은 18세기 초의 건물인데, 입구 쪽은 팔작지붕이고 나가는 쪽은 맞배지붕을 하는 특이한 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불국사에 있는 연화교(蓮華橋)와 칠보교(七寶橋),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는 국보로 지정된 계단형 다리입니다. 2단의 석단(石壇)과 함께 축조되었으며 연화교와 칠보교를 지나면 안양문(安養門)을 통하여 극락정토에 들어갑니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지나면 자하문(紫霞門)을 통하여 불국토에 들어갑니다. 계단 형태의 돌다리를 건넘으로써 극락과 불국토라는 피안(彼岸)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청계천을 기원하며 청계천 복원을 둘러싸고 말이 많습니다. '맑은 물'이라는 청계(淸溪)를 복원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인데 맑지 못해 한몫 챙기려는 자들이 있어 말썽입니다. 깨끗한 정치는 깨끗한 교육이 있을 때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음 호는 옛 다리를 찾아가는 마지막 여행으로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서울지역의 옛 다리를 만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