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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같은 분위기로 박사마을 전통 이어가요” 강원도 춘천시 서면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박사마을’로 알려져 있다. 면 전체 인구가 4천 여 명에 불과하지만, 올해까지 전국 면 단위 행정구역 중에서 가장 많은 109명의 박사를 배출했다. 박사마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선양탑(서면 금산리)에는 서면 1호 박사인 송병덕 박사를 비롯해 한승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송병기 전 경희대한의대학장 등 서면 출신 박사들 명단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힘든 일도 한 가족처럼 함께 해결 면 전체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외부와의 교통마저 불편한 작은 마을이 박사마을로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서면의 유일한 중학교인 강서중(교장 이찬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서중은 학생 수 41명, 교직원 12명의 소규모 학교지만 도학력평가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며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강서중이 다른 학교에 비해 높은 학력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소규모 학교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돼 가능했다. 소규모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친밀하다는 것이다. 강서중은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1-Ⅴ 가족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Ⅴ 가족은 학년별 4, 5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결연을 맺어 한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다. 학년 초에 결성된 1-Ⅴ 가족은 가족별 활동 계획을 세우고 학교의 연중행사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물론, 공부에서 봉사활동까지 대부분을 함께 하게 된다. 올해도 가족별 장기자랑, 가족단위 가정 방문 및 상담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특히 가정방문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집에 찾아가 도배나 청소를 해주고, 기초학습이 부진한 학생에게는 개별 지도를 해주는 등 서로 보듬어주는 봉사 활동에 힘쓰고 있다. 학생부장 장상윤 교사는 “1-Ⅴ 가족을 통해 아이들이 학교에 쉽게 적응하고, 공동체 의식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다”며 “특히 아이들이 선생님들에게 스스럼없이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는 문제 학생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조성조 군(2학년)도 “1-Ⅴ 가족끼리 서로 먼저 도와주려고 해서 학교생활이 더 재미있다”며 자랑했다. 맞춤형 교육으로 도학력평가 상위권 유지해 이처럼 1-Ⅴ 가족제도가 정착되고 효과를 보게 된 것은 교사들의 힘이 컸다. 강서중 교사들은 농촌의 작은 학교에서 학교교육 외에는 전혀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 능력별 맞춤형 지도에 힘을 쏟는다. 수업이 끝난 후 매일 오후 6시까지 아이들과 함께 학교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 시간 동안 보고 싶은 책을 보거나 교사들과 함께 자율학습을 한다. 자연스럽게 개별 지도가 이뤄지고 있다. 또 학생들이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도록 외부 기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알려지면서 지역 주민들과 동문들도 학교를 위해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여름 방학 때는 1회 졸업생인 황원중 씨의 초청을 받아 전교생이 인제에서 1박 2일간 레프팅 체험을 하기도 했다. 황 씨는 “선생님들의 노력 때문에 후배들이 밝게 생활하는 것 같아 동문회에서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소규모 학교는 선생님이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시스템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그만큼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아이들의 형편 상 가정의 도움을 받아 행사를 치루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외부 지원을 많이 찾는 편인데, 다행히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규모 학교의 장점 살릴 방법 연구해야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서중도 다른 농어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줄어드는 학생 수로 인해 고민이 많다. 인구 감소로 인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이 춘천 시내 학교로 진학을 원하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이 교장을 비롯한 강서중 교사들은 학생 수를 늘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면내 초등학교를 방문해 협조를 구하고 6학년 학생들을 학교로 초대해 설명회를 개최한다. 지난 10월말 실시한 설명회에서 이 교장은 직접 구입한 책을 선물하며 “우리 학교에 입학하면 여러분들 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며 시내 학교보다는 강서중에 입학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또 좋은 학습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우선 방학 중에는 이 학교 출신 대학생들로 구성된 도우미 수업을 진행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 ‘책사랑 축제’,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학교 축제인 ‘신연제’ 개최, 토요휴업프로그램 실시, 전교생이 함께 하는 체험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행하고 있다. 그리고 복도나 교실뿐만 아니라 화장실을 수리하고, 교무실도 새롭게 꾸며 쾌적한 교육환경으로 학생들이 편안한 기분이 들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그밖에도 지역주민들과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 지역 행사에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고, 한지공예, 미니정원 만들기 등의 평생교육강좌를 열고 있다. 이 교장은 “소규모 학교가 경제논리에 의해 통폐합되는 경우가 있는데, 소규모 학교의 이점을 살린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며 “통폐합을 논하기 전에 먼저 학교를 살릴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박사마을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가족 같은 학교, 웃으며 다니는 학교를 만들어 1명의 학생이라도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살다 보면 인생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가 있다. 나이를 한두 살 더 먹을수록 삶이란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때론 나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흘러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살면서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마음 한 구석이 참 쓸쓸해진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서 후회만 켜켜이 쌓일 때, 앞으로 걸어갈 길도 뿌옇게 흐린 안개뿐 별다른 희망이나 반전이 기대되지 않을 때…. 그래도 용기를 내어 인생을 정면으로 응시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거리의 악사와 꽃 파는 소녀 그런데 여기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르는 노래가 그런 나약한 인생에게 눈물 나게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한다. 그들을 보면서,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다시금 삶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조용한 거리에 한 남자의 거친 기타 연주와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누구 하나 쳐다보는 이 없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난한 악사 ‘그’(글렌 한사드). 한 손엔 꽃바구니를 든 채 그의 앞에 멈추어 서서 노래를 듣던 ‘그녀’(마르케타 이글로바)는 진심어린 박수로 그의 노래에 화답한다.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도 없지만 음악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거리의 악사’와 ‘꽃 파는 소녀’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낮에는 청소기 수리공으로, 밤에는 무명의 악사로 살아가는 그는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고 지난 세월에 대한 후회와 아픔을 자신의 노래로 뱉어낸다. 체코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인 그녀는 어머니와 어린 딸과 함께 낡은 공동 주택에서 산다. 거리에서 꽃을 팔거나 가정부 일로 생활을 이어가는 그녀는 한 아이의 엄마라고 하기엔 너무나 앳된 얼굴을 하고 있다. 남편과 헤어진 그녀는 그의 노래 속에 숨겨진 사랑의 상처를 첫눈에 알아챈다. 자신의 고장 난 청소기를 수리해 달라며 그를 다시 찾은 그녀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에게 실연을 당했느냐고 묻는다. 처음엔 낯선 이와의 대화를 거북해하던 그도 차츰 이 씩씩하고 솔직한 소녀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아직도 옛사랑을 잊지 못했으니 그런 노래를 부르는 거 아니냐고, 그녀가 장난스럽게 추궁하자 그는 즉석에서 만든 노래 ‘Broken Hearted Hoover Fixer Sucker Guy’(상처입고 어리석은 청소기 수리공)를 들려준다. 버스 안에서 일어난 이 난데없는 소동에 승객들이 흘끔거리지만, 그들에겐 서로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어 준다. 이렇게 두 주인공이 서로 감정을 교류하며 각자의 내면을 보여주게 만드는 매개체는 바로 ‘음악’이다. 그와 그녀를 이어주는 음악 그녀는 그의 음악에 담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을 진심으로 응원해준다. 그도 그녀의 아름다운 노래와 피아노 연주에 매료되며 그녀가 음악을 사랑하는 영혼의 소유자임을 알게 된다. 그는 그녀의 격려에 힘입어 데모 음반을 만들어 런던에서 오디션을 볼 결심을 한다. 그녀는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달라는 그의 부탁에 떨리는 마음으로 밤새 노래를 흥얼거린다. 피아노를 살 형편이 안 되는 그녀는 알고 지내는 한 악기상점의 구석에 놓인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에 대한 아쉬움을 달랜다. 비록 팍팍한 현실에서 하루 한 시간밖에 누릴 수 없는 사치이지만, 그녀는 이 작은 공간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한 연주자이다. 그렇게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들은 이들이 함께 노래를 만들고 부를 때이다. 그녀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그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 그가 자신처럼 가난한 친구들과 함께 스튜디오에 모여 열정적으로 데모 음반을 녹음하는 장면, 며칠에 걸친 밤샘 녹음을 마치고 초췌한 모습으로 찾은 바닷가에서 어린 아이처럼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들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 순간만큼은 더 이상 고달프고 외로운 인생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그로 인해 너무도 즐거운 인생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순간을 남긴 짧은 만남 영화 원스는 곳곳마다 박혀 있는 서정적인 노래와 연주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음악영화’이다. 하지만 음악이 멋진 배경음으로 깔리지도, 세련되고 화려한 뮤지컬을 선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너무도 소박하고 때때로 거친 느낌을 주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이다. 그와 그녀가 부르는 노래,함께하는 연주들에서도 가공되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 소박하고 꾸밈없는 음악들은 두 주인공의 눈빛과 손짓 속에서, 그들의 가난하고 아픈 현실 속에서 온기를 뿜어낸다. 그들이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음악이 주는 위로와 기쁨을 온 맘과 몸으로 누릴 줄 알기 때문이다. 비록 가난한 청소기 수리공이자 무명의 악사라는 그의 삶이, 홀로 아이와 노모를 부양해야 하는 고달픈 이민자로서의 그녀의 삶이 변하지 않는다 해도 그들에겐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그 음악이 인생 역전을 가져다주지 못할지라도, 그들의 열정과 꿈이 무심한 세월을 따라 어느 순간 사그라질지라도 그들은 음악으로 인해 위로받고 즐거워하며 사랑을 나눈 순간이 있었음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데모 음반 녹음을 마친 그와 그녀는 멀리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어졌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형편을 잘 알기에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말을 아낀다. 여자가 체코 말로 “Miluju tebe”(밀루주 떼베-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나지막하게 말하자 남자가 그 뜻을 묻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마음은 그에게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이에게 친아버지가 필요한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도 그녀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지만, 런던에 있는 옛 애인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새 출발을 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외로운 인생에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순간을 남긴 채 각자의 길을 향한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그녀가 악기상점에서 치던 피아노를 그녀의 집에 배달시키고 런던으로 떠난다. 카메라가 어느 공동 주택의 창가를 비추면 아이를 안은 남편을 뒤로 한 그녀가 피아노 앞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고 있다. 뚜벅뚜벅 걸음을 내딛던 그의 뒷모습과 빈 거리를 응시하던 그녀의 표정. 쓸쓸하면서도 고요한 생의 의지가 느껴지던 그 모습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면서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삶이 선사하는 빛나는 순간들 이 영화는 이야기와 음악이 마치 식빵에 발린 버터처럼 서로에게 스며들어 꾸밈없는 자연스러움과 생동감을 선사한다. 여기에는 감독과 배우 모두 실제 뮤지션이라는 점이 한몫했다. 영국의 인디밴드 ‘더 프레임즈’의 리드 보컬인 글렌 한사드, 그리고 ‘더 프레임즈’의 게스트로 앨범작업을 함께 한 체코 출신의 소녀 마르게타 이글로바가 남녀 주인공 역을 맡았고 감독인 존 카니는 ‘더 프레임즈’의 베이시스트 출신이다. 이렇게 오랜 친구이자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니 원스의 음악에서 진심어린 감동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삶에서도 음악으로 인해 기쁨과 고통을 맛봤을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당연히 뜨겁고 충분히 위로가 된다. 영화 속 그들의 일상은 피곤하고 행색은 남루하지만,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할 때 그들의 얼굴에선 빛이 난다. 기타 하나, 피아노 한 대 뿐일지라도 음악은 그들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영화 원스는 지나간 과거의 한때에 붙잡혀서, 바꿀 수 없는 현실의 무게에 좌절해서 현재 내 앞에 놓인 빛나는 순간들을 놓치지 말라고 말한다. 음악을 잘해서 또는 음악이 내게 돈과 명예를 가져다 줘서가 아니라, 음악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기에 주인공들이 행복했던 것처럼, 이루지 못한 사랑과 성공에 연연해하지 말고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라고…. *영화정보* 제 목 : 원스(Once) 감 독 : 존 카니 출 연 : 글렌 한사드, 마르케타 이글로바 관람등급 : 전체관람가 제작연도 : 2007년
Q1.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학부모회 임원과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은 겸임이 가능한지 알고 싶습니다. A1.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와 학부모회 두 조직은 설치목적, 설치근거, 성격, 구성원 등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학운위는 학교운영에 필요한 정책결정의 민주성, 합리성,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심의·자문기구로서 「초중등교육법」 및 동법 시행령에 근거하고 있는 법적인 기구이며 학부모위원, 교원위원, 지역위원 등으로 구성됩니다. 학부모회는 학교교육활동을 위한 지원, 회원 상호 간의 친목도모를 위한 학부모의 자율조직으로 그 설치 근거는 ‘학부모회 규약’입니다. 이 처럼 두 조직은 설치목적과 성격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나 학교교육목표의 달성을 위해 지원하고 노력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학교의 발전을 위해 서로 긴밀히 협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구체적인 상호 관계는 개별학교의 자율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부모회 회원과 학운위 위원은 겸임이 가능하며, 학부모회와 학운위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학부모회 규약이 정한 절차에 따라 선출된 회원이나 기존의 학부모회 임원을 학운위 당연직 학부모위원으로 하는 것은 위법입니다. 이는 법에서 학운위 위원의 민주적 선출절차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Q2. 학교교사로서 타 학교의 학부모위원 겸임이 가능한지요. A2. 일반적으로 교사가 소속 학교의 운영위원이 아니면 학부모 자격으로 다른 학교의 학부모위원으로 선출될 수 있습니다. 학운위 위원의 겸임제한은 「국가공무원법」과 당해 시·도 조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국가공무원법」 제64조 제1항에서 ‘공무원은 공무 이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바, 이 규정은 공무원인 운영위원에게도 적용됩니다. 운영위원도 학운위라는 법정 조직의 구성원일 뿐만 아니라 회의 등으로 인해 공무수행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사가 타 학교의 운영위원을 겸하게 되는 경우 운영위원으로서의 활동으로 인하여 교사 본연의 업무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으므로 소속 기관장의 겸직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교육학 통합형 논술로서 지식과 정보에 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정보와 지식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때의 정보란 객관주의 패러다임 속에서 객관적 지식으로서의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나 지식기반사회가 도래하면서 이미 밝혀진 객관적 지식이나 정보만으로는 최첨단의 창의적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지식이 요구되는데, 이 지식을 문제해결적, 실천적, 생산적 지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지식은 지식기반사회라는 사회적 배경과 현상학, 해석학, 신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구성주의 등의 철학적·학문적 배경이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지식을 내 것으로 전이(轉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학습자나 문제해결자인 내가 어떻게 재구성하고 내면화했느냐가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주변에 있는 많은 정보들을 지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참고자료는 이돈희 민족사관고 교장(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에서 발취한 것입니다. 문제. 제시문을 읽고 지식기반사회에서 정보 그 자체의 전달보다는 정보를 지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이러한 능력 신장을 어렵게 하는 요인과 학교에서의 효과적인 수업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 제시문 (가) 앎 혹은 지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알고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내가 보았거나 들었거나 겪었거나 무엇인가를 한 결과, 즉 경험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여기서의 ‘경험’이란 포괄적으로 말해서, 생각이든 행동이든 내가 해 본 것, 밖으로나 안으로나 내가 겪은 것, 직접 깨닫거나 남에게 들어 내 마음에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게 된 것, 이런 것들로 인하여 나의 생각, 태도, 행동, 능력, 삶이 영향을 받게 된다면 그 영향으로 인하여 변화된 모든 것을 일컫는 말이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고, 내가 알고 있는 모두가 나의 지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제시문 (나) 그러나 그 알게 된 내용은 대개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라 남의 경험을 통하여, 즉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나 교사 또는 대중매체, 정보 통신망을 통해서 얻기도 한다. 이렇게 얻어진 지식이 나의 경험과 관련해서 충분히 소화되지 않고 단지 남의 경험을 듣고 아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흔히 ‘정보(information)’라고 말한다. 그 정보가 아무리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형식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와 가치와 의의를 나의 경험에 비추어 소화하거나 나의 지식 속에 통합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정보로서의 의미 이상일 수가 없다. 예시답안 1. 서론 21세기는 지식정보화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는 첨단 기술과 창의적 지식이 부가가치창출의 원천으로서 국가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사회이다. 이에 선진 각국에서는 이러한 시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개혁과 교수·학습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여전히 지식위주의 설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학생들의 적성과 특기 계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다. 2. 본론 지식정보화사회는 자본이나 토지보다 지식과 기술을 갖춘 사람이 중심이 되고 그러한 사람을 길러내는 ‘열린교육사회(Edutopia)’를 형성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제시문 (나)와 같은 객관적 지식으로서의 정보를 주입하기보다는 제시문 (가)에서 설명한 지식을 재구성하고 내면화하는 인간이 요구된다. 즉, 다양한 경험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감식하고 가공해서 스스로 의미를 형성하고, 자신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창의적인 인간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현장에는 피상적인 정보나 지식만을 전달할 뿐, 학습자 스스로 다양한 경험을 재구성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 같은 원인은 우선, 교사 중심의 지식전달교육에 있다. 교사는 풍부한 학습 자료와 멀티미디어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위주의 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지식중심의 획일적인 학교풍토는 학생 주도의 의미형성이나 다양한 경험을 어렵게 한다. 셋째, 학부모들 역시 학벌주의 풍토 속에서 성적과 같은 결과 중심의 평가에 치중하여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학습자 스스로 주변의 정보들을 주도적으로 재구성하고 내면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사는 우선, 학습자가 중심이 되어 지식을 능동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즉, 체험이나 조사, 실험 및 실습, 토픽이나 프로젝트 학습 등을 적극 실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실제상황 하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협력학습이나 다양한 문제 상황 하에서의 상황학습이나 문제기반학습, 토의나 토론학습, 협동학습은 창의적 문제해결력이나 자기주도적 의미형성에 도움을 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활용한 교육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보화능력 함양은 물론 인터넷을 활용한 CAI나 웹기반학습을 통해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실제상황 하에서의 학습 과정과 결과를 관찰법이나 포트폴리오 등 다양한 평가방법에 의해 평가해 줌으로써 학생들의 성취동기가 강화될 것이다. 3. 결론 ‘새 술은 새 포대에 담는다’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지식과 관점들을 요구한다. 구성주의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학교교육과 교사도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인에 의해 주입된 지식은 의미 있는 지식이 될 수 없고 문제해결에 이르기 어려운 만큼 교사는 시대에 적합한 지식관을 인식하고 학생 스스로의 탐구와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구성주의 학습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교사는 시대변화를 주도할 인재 양성을 위한 사명감과 소신을 바탕으로 부단한 자기 성찰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지식기반사회와 지식 1. 지식기반사회에서 요구되는 지식(관) (1) 미래사회는 노동과 자본이 주된 생산요소였던 산업사회 대신에 ‘지식’이 생산의 중요요소가 되는 지식기반사회이다. 그런데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은 전통적인 의미의 지식과는 성격이 다르다. 전통적인 의미의 지식은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인식, 표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결정론적 세계관’에 의한 ‘주제적 또는 교과적 지식(Subject Knowledge)’이다. 이러한 지식은 지적 호기심과 기본적 연구수행 등에 의해 생산되지만 일반적으로 이 지식은 학교제도의 지식으로서 인정될 때만 그 가치가 보장되었다. (2) 그러나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은 폭발하는 지식의 신속성, 다양성, 복잡성, 중첩성 등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연계망적 지식(Networking Knowledge, Cross-linked Knowledge)’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식의 양적 팽창이 또 다른 지식생산의 동기를 형성함에 따라, 상호연결적인 지식과 함께 거대한 양의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은 일반적 학교 지식과 달리 ‘문제해결을 위한 지식(Problem-solving Knowledge)’이 중심이 된다. (3)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식정보 분야의 전문가들은 지식정보량이 매 4~5년마다 2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XEROX사(社)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2000년부터 세계의 지식은 73일 만에 두 배로 증가한다고 한다. 이렇게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는 인류 지식의 총량은 10년 후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의 1%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학교의 지식보다 정보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식능력과 정보를 지식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지식능력이 지식기반사회에서 중요하게 됐다. 지식은 사실과 아이디어 그리고 경험의 축적뿐 아니라 수용자의 이해와 해석 그리고 이에 따른 지식의 재체계화 및 재구조화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정보와 구별되기 때문이다. (4) 그리고 지식기반사회에서 학습은 매체의 네트워킹에서 비롯된 정보와 지식에의 광범위한 접근 가능성으로 인해 학교 및 제반 제도적 교육기관을 넘어서 다양한 장소와 생활환경 속에서 사회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은 일, 생활, 놀이와 분리된 학교의 교과적 지식이 아니라 이것들과 통합된 사회통합적 지식이다. 2. 지식과 정보의 차이 (1) 지금까지 우리가 이 글에서 ‘지식’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지만 그 의미가 그렇게 명백한 것은 아니다. 지식이라고 하면 우리는 쉽게 언어(특히 문자)나 기호로써 표현된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 더 엄격히 따져 보면 언어나 기호로써 표현되어 있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지식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쓴 일기나 편지, 그리고 직장에서 하는 일의 일부로서 보고한 문서 같은 것을 모두 지식이라고 하면 ‘지식’이라는 말이 너무 격이 없이 쓰인다는 느낌을 누구나 가질 것이다. 물론 일기나 편지나 문서 속에 지식이라고 해도 좋을 내용이 담겨질 수는 있다. 그러면 그 지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2) 또한 쉽게 생각해서 ‘알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지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무엇에 관한 것이든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알게 된 것, 그것이 나의 지식이라고 말해 볼 수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이든지, 학계의 권위자이든지,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이든지, 누군가가 알고 있는 것, 그것을 우리는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누군가가 혼자서 알고 있을 뿐이지 남에게 그 아는 바가 전달되지 않은 채, 그야말로 사적인 느낌이나 기분이나 상상이나 체험처럼 누구에게도 말해 보지 않은 내용, 즉 아무런 객관적 혹은 공적 의미를 지닐 수 없는 내용을 지식이라고 한다면, 그런 것을 두고 ‘지식기반’이니 ‘지식인’이니 하는 말을 한다는 것도 격에 맞지가 않는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면 앎 혹은 지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3)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내가 보았거나 들었거나 겪었거나 무엇인가를 한 결과, 즉 경험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경험’이란 말을 흔히 전통적 경험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감각적 자료(sense-data)’, 즉 형체·소리·온도·냄새·맛과 같이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얻어진 것 혹은 그것을 근거로 하여 획득된 것에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실증주의적 노선의 과학자들이 말하는 ‘관찰’의 의미와 동일시할 필요도 없다. (4) 오히려 여기서의 ‘경험’이란, 포괄적으로 말해서, 생각으로나 행동으로나 간에 내가 해 본 것, 밖으로나 안으로나 간에 내가 겪은 것, 내가 직접 깨달았거나 남으로부터 들었거나 간에 내 마음에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게 된 것, 이러한 것들의 전부에다 이런 것들로 인하여 나의 생각과 태도와 행동과 능력과 삶이 영향을 받게 된다면 그 영향으로 인하여 변화된 모든 것을 일컫는 말이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고, 내가 알고 있는 바의 모두가 나의 지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5) 그러나 그 알게 된 내용은 대개 나의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라 남의 경험을 통하여, 즉 주위의 다른 사람들로부터나 교사를 통해서나 대중매체를 통해서나 정보 통신망을 통해서 얻기도 한다. 이렇게 얻어진 지식이 나의 경험에 관련시켜 충분히 소화되지 않고 단지 남의 경험을 듣고 아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흔히 ‘정보(information)’라고 말한다. 그 정보가 아무리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형식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와 가치와 의의를 나의 경험에 비추어 소화되거나 나의 지식 속에 통합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여전히 내게는 정보로서의 의미 이상의 것일 수가 없다. (6)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매우 넓은 의미의 지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모든 것을 지식이라고 한다면, 나 자신은 바로 지식의 덩어리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신념, 습관, 자아는 그러한 지식의 영향으로, 그 지식을 내용으로 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의 지식 속에는 순수한 개인적인 경험도 있고 외부, 즉 사회와의 관계에서 수용된 경험도 있다. 수용된 경험 중에도 사소한 인간관계에서 얻은 단순한 타인의 경험도 있고, 학교의 정규교육을 받으면서 획득한 지식과 같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문화로서 공유하고 있는 공적인 경험도 있다. 대체적으로 우리가 지식을 논하고 그 기능을 말할 때, 그것은 주로 공적인 경험의 수준에서 의미를 지니는 지식을 말한다. (7)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은 이러한 공적 의미를 지닌 지식의 조건을 제시하는 데 열중해 왔다. 그들은 우리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믿고 있는 것 가운데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성립되며 어떻게 조직되고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두고 ‘인식론적 역사’를 엮어 왔다. 어떤 의미에서 철학사는 지식의 본질에 관한 역사를 중심으로 해서 전개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수없이 많은 학설과 사조가 있어 왔으므로 여기서 그 모든 것을 논할 수는 없다. (8) 그러나 우리는 전통적으로 지배적이었던 이론적 대세가 오늘에 이르러 몇 가지 전환의 경향을 보이고 있거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 있음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명제적-관조적 지식관에서 총체적-실천적 지식관으로의 확대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적 지식관에 대한 상대적 지식관의 도전이 등장한 것이다. 3. 이론적 지식과 명제적 지식 (1)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철학(philosophia)’이라는 이름의 활동을 할 때, 체계적인 논리의 형식을 입은 이론적 지식의 체제, 즉 학문적 내용을 이루는 요소들은 ‘명제’로서 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지식이라는 말은 명제에 적용되었던 것이다. 명제란 언어나 상징처럼 객관적 의미를 지니는 기호로써 표현되고, 그것에 진위의 판단을 적용할 수 있는 주장의 형태이다. 명제들 가운데 진리인 명제가 지식이고, 허위인 명제는 지식이 아니며, 진리나 허위로 분별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지 못한 명제는 의견에 불과하다. (2) 이러한 기준(명제라는 기준)에 의하면, 사고의 형식을 표현하는 논리적 명제나 수학적 명제 그리고 사실을 기술하거나 설명하는 과학적 명제에는 ‘지식’이라는 말이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초월적인 세계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상정되는 형이상학적 명제에도 진리의 여부를 논할 수 있다. 물론 예술도 만약에 진리와 허위를 분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명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고 그것으로 지식이 될 수도 있다. (3)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논리실증주의자들과 같이 명제의 진위를 검증하는 것이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표현은 명제도 지식도 아니라고 여긴다. 그리고 예술, 도덕과 같이 가치 혹은 당위의 표현이거나 처방 혹은 규칙의 진술인 것은 진위의 객관적 판단을 적용할 수 없으므로 지식으로서의 의미를 지닐 수 없다고도 말한다. 형이상학이 참으로 지식으로서의 의미는 없는 것인가, 객관적 가치 인식의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는 여전히 철학적 쟁점으로 남아 있다. (4) 대체적으로 말해서 19세기의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전통적 지식관은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현실적인 것이든 초현실적인 것이든, 사실적이든 규범적이든, 과학적이든 예술적이든 명제, 즉 진리와 허위를 적용시켜 논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이 한정되어 있었다. 이러한 지식은 주로 ‘관조적(觀照的) 지식’으로서 우주와 세계의 질서와 법칙, 인간과 사회의 이상과 의미, 도덕적 판단과 행위의 법칙, 예술적 감상과 창조의 기준 등에 관한 것이었으며, 체계적인 논리와 구조를 지닌 이론적 체제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식은 인간의 이지적 능력을 대표하는 이성(理性)에 의해서 인식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5) 그러므로 자연히 우리의 일상적 생활에서나 체계적인 과업의 수행과정에 적용되는 기술, 기능, 절차, 전략 등은 아무리 고도의 이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지식의 개념이 적용되는 범위 밖의 인간 활동이었다. 물론 전통적인 지식관에서도 지식 그 자체를 정당화하고 성립시키기 위하여 문법, 논리, 수사 등의 기술이 요구되었지만, 이러한 기술은 관조된 지식을 표현하는 언어적 기술에 한정된 것이었다. (6) 그러나 20세기의 영국 철학자인 라일(Gilbert Ryle, 1971)은 지식의 의미를 ‘안다’는 말이 쓰이는 방식을 분석하여 ‘명제적 지식(propositional knowledge)’과 ‘방법적 지식(procedural knowledge)’으로 구분하면서 ‘지식’이라는 말을 명제에만 한정하지 않고 능력과 기능에도 적용하였다.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아는 것은 명제를 아는 것이고 피아노를 칠 줄 아는 것은 방법을 아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언어의 사용에서 표현된 방식의 구분이다. 명제적 지식은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마음이 인식한 관조적 지식이라면, 방법적 지식은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과 몸의 노력이 수반되는 수행적 지식이다. (7) 어떤 명제로서 표현된 것을 안다고 할 때, 명상, 직관, 상상 등과 같이 세계를 마음에 비추는 사색 혹은 사유의 경지가 아니라면, 우리는 명제가 진리라는 것을 판단하는 데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증거를 제시하는 능력도 요구하고, 그 증거를 증거로서 내세우는 사람은 방법론적 원리를 체득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명제적 지식의 주장은 대개 자연히 방법적 지식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방법적 지식은 그 자체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쳐서 안타로 만들고, 부품을 조립하여 컴퓨터를 만들며, 손님의 구미에 맞추어 요리를 하고,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여 정책을 수행하며, 불리한 국제적-사회적 여건을 극복하여 기업을 발전시키는 일과 같이 행동 혹은 실천의 형태로서 어떤 문제해결을 해내는 기술, 능력, 절차, 전략 등은 명제적 지식을 정당화하는 일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닌다. 기술공학과 경영능력과 통치역량은 이런 의미에서 일종의 지식이다. (8) 지식 혹은 안다는 것의 의미는 적어도 논리적으로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는 명제뿐만 아니라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능력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제적 지식에 해당하는 이론, 학설, 사상이든지, 방법적 지식에 해당하는 요령, 규칙, 전략이든지 간에 언어로써 표현되거나 직접적으로 관찰되는 명시적 수준 이상의 것이 있다. 이를 흔히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이라고 하고 최근에 와서 철학자나 과학자, 혹은 경영부문의 이론가들의 새로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 (9) 과학자가 어떤 방법적 원리에 따라서 지식을 개발하고 주장할 때 그가 소유하고 있는 성향에는 언어로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혹은 그 원리에 따라 증거를 보이는 능력 이상의 것이 있다. 그의 마음속에는 그가 발표한 이론 속에 담지 못한 수많은 종류의 사고와 감정이 있으며, 그가 입증해 보이는 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은 방법적 요인들이 그의 인격적 구조 속에 남아 있다. 과학적 생애에 대한 가치관과 과학에 대한 개인적 신념과 문제의식도 있지만, 또한 발표된 이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휘된 희열과 고뇌와 열정, 그리고 크고 작은 솜씨, 기지, 영감, 요령 등도 이면에서 작용해 왔다. 이러한 심층적 수준의 것은 그 과학자의 인격 속에 내축되어 있는 능력, 태도, 신념, 성향의 어떤 체제이다. 우리가 실제로 소유하고 있거나 사용하는 지식은 언어나 기호로써 표현되는 명시적 명제나 능력 이상의 것이다. 참으로 나의 지식으로서 의미를 지닌 것이라면 나의 경험의 총체적 구조의 한 부분으로 소유한 것이다. (10) 금세기의 많은 철학자들은 이러한 이면의 지식에 관심을 가져 왔다. 폴라니(Michael Polanyi, 1958)는 그것을 “인격적 지식(personal knowledge)”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듀이(John Dewey, 1983)도 “지식은 이론적 차원의 경험이 아니라 오히려 질성적(qualitative) 차원의 경험이며 본질적 특징에 있어서 심미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오우크쇼트(Michael Oakeshott, 1978)도 “과학적, 역사적, 실천적 지식은 각기 별개의 경험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경험적 총체가 단면적으로 나타낸 양상일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75)도 “경험의 본질은 심미적 총체”라고 하였다. (11) 그러므로 총체적 지식은 관조적 이성의 기능으로 인식되는 것만이 아니라, 실천적 삶의 과정에서 획득되고 재구성되는 것까지를 의미한다. 실천적 경험이나 지식은 단지 관조적 지식의 응용이 아니라, 관조적 지식 그 자체를 지식으로 입증시키는 상황과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천적 경험과 지식은 어떤 관조적 지식에 예속되지 않는 그 자체의 기능과 의미와 창조성을 소유한 영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총체적 지식관은 전통적으로 지식이란 고도의 논리적 사고와 엄격한 관찰의 능력을 보여주는 소수의 뛰어난 천재들만의 것으로 생각하던 고정된 관념을 바꾸어 놓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새로운 의미의 지식은 엄격히 정의된 명제와 그 체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삶의 과정에서 발휘되는 각종의 능력을 포괄한다. 지식은 나의 구체적 삶과 분리된 고답적 이론이나 능력만이 아니라, 현존하는 자신의 모습 그 자체로서 소유한 모든 성향에까지 미치는 개념이다. 존재하는 모든 인격체는 그 자체로서 지식의 체제이며, 삶은 그 자체로서 지식의 삶이다.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모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 중에 전파견문록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인데, 막상 이 프로그램은 유치원 어린이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반 어른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를테면 유치원 어린이들을 끌어들인 일종의 오락 프로그램인 셈이다. 두 팀의 연예인들이 유치원 어린이들을 상대로 그들의 숨어 있는 마음과 언어를 누가 더 잘 알아맞히는지를 경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유치원 어린이를 두고 양 팀의 대결이 게임하듯이 전개되기 때문에, 오락적 흥미가 높았다. 동시에 유치원 어린이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마음과 언어를 감동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던 프로그램이다. 꼬마들의 말과 생각을 통해서 어른들의 때 묻은 속기(俗氣)를 매우 산뜻하게 반성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교양성’이 강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이 방송 프로그램이 크게 인기를 얻게 된 데에는, 제작진이 전문성을 가지고 유치원 어린이들을 상대로 다양하고도 현실감 있는 조사를 계속하고, 그것을 프로그램 제작에 유효적절하게 반영시켰던 데에 있었다. 그 조사 중에 두고두고 흥미와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유치원 어린이 여러분! 선생님 말씀 중에 제일 듣기 싫은 것은 무엇인지 말 좀 해 보세요’하는 물음에 대해서 아이들이 반응한 내용이었다. 천여 명의 유치원 아이들이 보여 준 반응 중에 1위에서 4위까지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먼저 4위부터 보자. 듣기 싫은 선생님의 말씀, 제4위에 올라 와 있는 유치원 아이들의 반응은 이거다. “선생님이 예뻐? 옆 반 선생님이 예뻐?” 유치원 꼬마들이 지적한 것이지만, 무릎을 칠 정도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어른 중심(가부장 중심)의 전근대적 가치관 하에서는 아이들의 인격은 쉽게 무시되었다. 겨우 말을 시작할 무렵부터 가장 자주 들었던 물음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물음 아니었던가. ‘아빠가 좋아’라고 하면 짐짓 엄마가 찡그리는 척하고, ‘엄마가 좋아’라고 하면 짐짓 아빠가 찡그리는 척하는 모습으로 가족의 단란함을 과시하였다. 아이가 곤혹스러워 하면, 어른들은 곧잘 “그 놈 참 영리하다”고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어른들만의 유쾌한 놀이일 뿐이다. 아이에게는 그저 고통의 시간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유치원 꼬마들만의 괴로움이고 고민이겠는가. 어른들의 세계인들 다를 리가 없다. 줄서기를 강요하는 사회, 어떤 권력의 줄을 따라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사회, 아차, 한번 줄을 잘못 서면, 아득하게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불안은 정치판에도 장사판에도, 심지어 교육판에도 없다 하지 못할 것이다. 힘없고 불안정한 직장인들에게는 줄서기처럼 곤혹스러운 것이 없다. 힘을 가진 쪽에서는 심심풀이로 묻는 말일 수도 있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더없는 마음의 갈등과 눈치 보기의 곡예를 해야 한다. 그래서 억압이다. 줄 서기를 강요하는 사회는 ‘편 가르기’가 극성을 피우는 사회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심리 내면에 ‘편 가르기’에 대한 악마적 유혹이 본래부터 도사리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편 가르기’란 권력을 공학적으로 주무를 수 있는 자들이 내 권력 만들기를 위해 가동하는 풀무질과도 같은 것이다. 생각해 보라. 내 마음 어딘가에 편 가르기를 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면, ‘아, 내가 권력 지향의 유혹에 이끌려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선생님이 예뻐? 옆 반 선생님이 예뻐?” 억압의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어른이나 아이나 이 대목에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선생님 말씀 중 가장 듣기 싫은 말, 제 3위에 올라 있는 말은 짧고도 명료하다. “너 말고 !” “저요, 저요”하고 손을 드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무슨 사유인지는 모르지만 선생님께서 어떤 아이를 제쳐놓음을 선언할 때 하는 말이, 바로 ‘너 말고!’ 아니겠는가. 선생님도 사정은 있을 것이다. 그 아이가 아마 여러 번 발표를 독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표출된 말의 모습이 너무도 단호한 차단이다. 설령 그 아이의 참여를 억제시킬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좀더 부드러운 제어의 말은 없을까. 아무런 어루만짐의 배려도 없이 냉정히 선고하듯 투사하는 ‘너 말고!’라는 말은 너무 직선적이고 강렬해서, 그 말을 받는 아이에게는 ‘너 싫어!’라는 말로 전해오기 십상이다. 그만큼 마음에 입게 되는 상처도 쓰리고 아프다. 어른들도 사회생활에서, 여러 수십 번 ‘너 말고!’를 경험한다. 그러면서 그 자신도 또 다른 그 누구를 향하여 ‘너 말고!’를 외친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만드는 것이 현대 사회라고 한다. 오늘날 가장 큰 병리 현상이 ‘소외의 현상’이라고 하지 않는가. 소외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은, 자기네들끼리 무어라고 신나게 떠들다가 내가 들어갔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게 되는 상황을 경험할 때이다. 이런 상황이 ‘존재의 감옥’이라 할 수 있다.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나만 따돌림을 받는다는 느낌을 가지는 순간, 사람들과 아득하게 격리되는 자아를 가지게 된다. 그 순간이 바로 ‘존재의 감옥’으로 가게 되는 순간인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감옥에 가두어 버리는 것, 아니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버리는 환경이 바로 소외의 본질이다. 소외는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냄새도 아무런 색깔도 없는 새로운 종류의 억압이다. 소리 소문도 없이 나를 낙오시키는 것이다. 저항할 기력 자체를 빼앗아 가버리는, 그런 억압이다. 어른이나 아이나 이런 소외의 언어에 억압되고 있다. 유치원 꼬마들이 선생님에게서 듣기 싫어하는 랭킹 2위의 말은, 사실 우리들 모두가 어떤 식으로이든 자라면서 경험했던 말이다. “너 이렇게 말 안 듣는 것, 원장 선생님께 모두 일러바쳐야겠다.” 어떤가. 이 억울하기도 하고, 대책 없기도 한 막막함의 상황을 누가 알겠는가. 진정 나는 그런 ‘나’가 아닌데, 원장 선생님께서는 순전히 나쁜 아이로만 나를 인식할 것 아니겠는가. 나는 어떻게 변명조차 해 볼 수도 없고, 나란 존재는 속절없이 왜곡되고 만다. 이렇게 무기력하고, 이렇게 부자유한 것이 또 있을까. 아, 나도 일러바칠 수 있는 자리에 있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 보면 일러바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권력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때로 최고 권력보다도 더 권력스럽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물론 그런 권력은 부당한 권력이다. 부당한 권력은 언제나 권력을 남용한다. 권력자에게 누군가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심리에는 미움과 견제의 감정이 개입한다. 아니, 모든 일러바침의 속에는 확장된 미움의 감정이 스며있다. 일러바치는 본인은 그것을 ‘정의감’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최면을 걸지만,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는 미움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잘못된 것을 교정해 주는 방법 중에 가장 야비한 것이 누군가에게 일러바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그렇게 일러바치겠다고 은연중에 위협하는 것은 막상 일러바침 그 자체보다 더 고약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별다른 대응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휘둘러지는 일러바침의 집중은 ‘희생양’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흔히 드러난다. “너 이렇게 말 안 듣는 것, 원장 선생님께 모두 일러바쳐야겠다”는 엄청난 억압임에 틀림없다. 이런 식으로 억압을 받는 아이는 자율을 버린다. 내 나름대로 잘 해보았자 일러바친 대로 이미 나는 찍힌 몸이 되는 걸 알면서 절망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율을 버린다. 타율적 인간이 된다. 아이들만 그런가? 어른도 꼭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대망의 1위, 유치원 아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선생님의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현재의 위치에서 내쫓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담고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이다. “안 되겠다. 다시 여섯 살 반으로 내려가야 하겠다.” 유치원은 두 개의 학년으로 되어 있다. 여섯 살 반과 일곱 살 반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위의 반응은 일곱 살 반 어린이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예닐곱 살 무렵의 여섯 살과 일곱 살은 엄청난 발달상의 차이를 가지는 때이다. 여섯 살 반으로 내려 보내겠다는 선생님 말씀을 듣는 순간 형용 못할 당혹감과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무리 못하기로서니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 저 코흘리개 동생들 반으로 가서 배우라니, 동네에서 내 자존심은 어떻게 되는 거냐 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 이 반에서 나만 쫓겨나는 것은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나보다 더 못한 영철이도 있고 예림이도 있는데, 왜 날더러 나가라고 한단 말인가. 또 그건 그렇다 치고, 그간 친구들 열심히 사귀어 정도 들고 분위기도 익숙해져서, 어른들 말로 정체감과 안정감을 가지고 공부해 왔었는데 갑자기 나가라니. 해도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분노와 불안이 뒤섞이니 세상이 우울하고 밥맛도 없어진다. 유치원 꼬마들의 마음을 여기까지 따라오다 보니, 매우 유사한 것 하나를 발견한다. 구조조정과 퇴출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우울해 하는 어른들의 마음이 이것과 꼭 닮았다. 근원도 알 수 없고 출구는 더욱 알 수 없는 퇴출과 구조조정의 메커니즘, 이보다 더 우울한 억압이 어디에 있겠는가. 인생고해(人生苦海)는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고단하게 건너야 하는 바다인가.
‘학교교육’하면 첫째가 인성교육입니다. 둘째는 창의성교육이지요. 이 두 가지는 빠지는 법이 없고 순서도 첫째, 둘째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하소연을 합니다. 인성교육, 창의성교육 할 기회가 없다고요. 그러나 방법은 다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틈새교육입니다.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틈새교육 점심시간입니다. 영민이가 도화지를 사러 문방구에 간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영민이에게로 다가갑니다. “영민이가 도화지를 사러간다고?” “미술 준비를 안 해와서요.” “그렇구나, 그런데 영민이는 문방구에 가면 주인에게 뭐라고 인사할래?” “안녕하세요? 하면….” “그래, 그러면 되겠네. 올 때는?” “올 때는~, 아,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겠습니다.” “그래, 그거 참 멋진 인사다. 가서 그렇게 해보고 선생님에게 자랑 좀 해 봐.” 이렇게 해서 영민이는 문방구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선생님에게 실천한 것을 자랑했고 선생님은 영민이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수미가 예쁜 나비모양의 머리핀을 꽂고 학교에 왔습니다. 선생님은 수미의 머리핀에 대해 칭찬을 합니다. “와, 수미의 머리에 예쁜 나비 한 마리가 앉았네. 그거 누가 사줬어?” 수미는 얼굴만 붉힙니다. “아, 할머니가 사주셨구나.”(수미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음) 수미는 고개만 끄덕입니다. “수미는 참 좋겠다. 수미를 이만큼(두 팔을 크게 벌리며) 사랑하는 좋은 할머니가 계셔서.” 선생님의 이런 말에 수미가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수미는 할머니를 사랑하는 착한 손녀니까 오늘 집에 가면 할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드릴 것 같아. 선생님 느낌에 수미가 그렇게 할 거 같은데 ….” 이와 같은 교육이 틈새교육입니다. 틈새교육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심부름을 시키면서 인사예절을 가르칠 수도 있고, 어항에 기르던 금붕어가 죽었을 때 금붕어에게 주는 글을 써서 함께 땅에 묻어주도록 지도할 수도 있으며, 제비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어 아이들의 손가락에 끼워줄 수도 있고, 등하교를 하면서 좋아하는 시를 외우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감동으로 학생을 바꾸는 선생님의 말 한 마디 틈새교육은 인성교육에 강합니다. 선생님이 출근하다 현관에서 준철이를 만납니다. 선생님을 본 준철이가 옆으로 비켜 서며 선생님이 지나가도록 해 줍니다.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준철이의 손을 덥석 잡습니다. “와, 준철이는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로구나! 누군가 지나갈 때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는 것이 배려하는 건데, 준철이가 선생님이 잘 지나가도록 비켜 주니까 선생님이 쉽게 잘 지나가잖니? 준철이는 선생님을 배려해 준 거야. 그러니 준철이는 배려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지. 오늘 선생님은 일기장에다 ‘준철이는 배려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라고 써야겠네.” 이 같은 지도는 학생에게 감동을 주게 됩니다. 감동을 받으면 쉽게 행동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바람직한 행동변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런 교육을 교과시간에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겠습니까? 사례를 이야기하겠습니까, 영화를 보여주겠습니까, 아니면 경험을 이야기하겠습니까? 그 어떤 것을 선택하여 지도해 봐도 위와 같은 감동을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틈새교육은 생생한 현장에서 가장 적합한 기회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어떤 방법보다 강하게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감동하면 자연스럽게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틈새교육은 창의성교육에 강합니다. 청소시간입니다. 유리창을 닦던 도현이가 친구에게 자랑을 합니다. “나 내일 전주에 간다. 우리 외사촌 누나가 결혼을 하거든. 전통혼례를 한대.” 도현이의 말을 엿들은 선생님이 하교하려는 도현이를 부릅니다. “도현이는 참 좋겠다. 내일 외사촌 누나의 결혼식에 간다며?” “네. 전통혼례를 한대요.” 이렇게 해서 선생님은 도현이에게 전통혼례에 대한 사진을 찍어오도록 지도했고 결혼식에 참가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전통혼례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해 보기로 했으며, 찍어온 사진을 복도에 전시해 주었고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습니다. 선생님은 공부를 많이 한 도현이에게 전통혼례에 대해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멋진 일을 했음을 인정한다는 인증서도 주었습니다. 위와 같은 지도는 학생이 신나게 학습활동을 할 수 있어서 교육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게 되는 것입니다. 길을 걸으면서도, 함께 일을 하면서도, 놀이를 하면서도, 교육적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학생 스스로 신나고 재미있게 알찬 공부를 하도록 안내할 수 있는 교육이 틈새교육입니다.
“학교에 대한 신뢰 회복이 급선무” 왜곡된 교육경쟁 구조 바로잡아야 -차기정부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교육정책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전상훈=공교육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사교육 의존도는 날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연간 사교육비 지출 총액이 30조원에 육박하고 조기유학생이 해마다 몇 천 명씩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차기 정부는 무엇보다도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학교교육의 현실을 개혁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명심할 것은, 단순히 사교육비를 경감시키는 차원의 미봉책이 아니라 학벌중심, 학력중시 사회에서 나타나는 왜곡된 교육경쟁 구조를 바로잡는 근본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김세령=교사의 입장에서 ‘단위학교 및 교사중심의 자율적 운영’에 가장 중점을 두고 교육정책을 추진해 주시길 당부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단위학교 운영 중심의 개선요구 반영, 교원 각자가 전문가로서 높은 위상을 지니도록 지원하는 전략 개발, 교육인프라의 충분한 지원 등이 뒤따라야겠지요. 김덕산=무엇보다 교육제도의 혁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학생들의 학업성취 목표달성을 위한 교육과정 운영개선이 필요하다면 유급제도를 두어서라도 하향평준화를 일소하고 공교육의 신뢰를 높여야 합니다. 또한 내신 성적을 중시함으로써 공교육을 살리고,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성을 발전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는 입시 제도를 강구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청회를 통한 국민들의 의견이 집약된 제도라면 일관된 교육정책으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고 학생들이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대학교육에서는 전문성을 지닌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정책적인 졸업제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홍석훈=교육정책은 평준화에 대한 논쟁,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 기여 입학제 문제 등 주로 정부 주도의 교육규제 여부를 중심으로 논쟁해오고 있습니다. 입시위주의 교육 문제를 정부 주도의 평준화 정책과 공교육 정상화 정책을 통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과 오히려 국가의 과도한 개입과 규제가 교육의 자율성을 해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교육의 실패와 사교육 팽창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차기정부에서는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더욱 세분화되어 가고 있는 교육수요에 부응하는 다각적인 정책과 유능한 대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수교사 인센티브 제도 필요 -교원의 사기 진작, 전문성 제고 등을 위해 가장 필요한 개혁과제는 무엇일까요? 김덕산=우수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교원평가제가 모든 교사를 평가하는 제도라면, 우수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교사의 자율적 의사표현에 의한 선택적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교사 자신의 연수, 실적 보고서, 학위 등에 잣대를 놓지 않고 교사가 가르친 학생에게서 결과가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교사 스스로가 우수교사에 도전하는 풍토를 조성하여 과도한 경쟁 위주의 시장논리에서 벗어나 사명감을 갖고 세계를 무대로 뛸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도우미로서 교단에 우뚝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세령=성공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이 ‘교사’입니다. 전문성을 갖춘 우수 교사를 확보하여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우수 교원 확보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나 사기진작 방안 등이 사장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수교원특별법의 제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교사직과 행정직의 이원화된 지속적 성장 유도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교사 전문적 책무성 이행 절차로서 모든 교원이 당연히 참여해야 하는 교사 생애 주기 연수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홍석훈=사회적 신뢰와 존경심이 낮아짐에 따라 사기에 영향을 받고 있는 교원들에게 책무만이 아니라 자율성과 권한을 함께 보장해야 합니다. 사기 진작을 위한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특히 교사의 전문성 함양을 위한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오로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풍토와 제도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전상훈=우수교원에 대한 학습년제 및 근무시간 탄력제, 교원 전문성 개발 확대를 위해 국내외 민간기업, 교육기관, 연구기관에 고용 휴직을 허용하는 방안 등이 적극 실현돼야 합니다. 아울러 교원보수도 민간기업 수준에 비견될 수 있도록 현실화되어야 합니다. 교원의 전문성을 신장하기 위해서는 현행 교원 양성체제에 대한 근본적 점검이 있어야 하고 임용제도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바람직한 방향의 교원평가가 반드시 실시되어야 합니다. 평가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강점이 무엇이며, 발전방안은 무엇인지 스스로 진단하는 한편, 능력 개발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자율적으로 실행해 나간다면 학교 교육력 제고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코드인사, 농공행상은 안돼 -차기 정부의 교육부총리로는 어떤 인물이 적합하다고 보십니까. 또 참여정부에서만 교육부총리가 여섯 번 바뀌었습니다. 잦은 교체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김덕산=교육부 장관이 자주 바뀌게 되는 것은 많은 국민이 교육에 대해 특별히 중요하고 민감하게 여기는 우리의 사회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신뢰를 얻고 일관된 교육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넓은 학식과 덕망을 갖추고,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이해하고 경험을 가진 분으로 소신이 있고, 흠결이 없어야 합니다. 코드인사나 논공행상을 지양하고, 교육인사위원회(가칭)를 두어 완전한 검증을 거치는 등 선정기준이 엄격해야 합니다. 적어도 교육부 장관은 검찰총장이나 참모총장처럼 임기를 법제화하여 보장해야 합니다. 아니면 미국이나 서방국가들처럼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도록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세령=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교육부총리는 자주 교체되고 그에 따른 교육정책 변화도 심합니다. 교육부총리 개인적인 자질 면에서는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인품과 도덕성을 갖추고, 교육적 식견과 경험이 있으며 리더십을 발휘하여 정부 부처 간 또는 다양한 이익단체 등을 아울러 조정·협상할 수 있는 인물이면 좋겠습니다. 한편 정부의 정책적 의지 면에서는 우선 최소한의 임기보장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고, 차선으로는 장관교체와는 별도로 교육정책의 지속성이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상훈=잦은 장관교체가 공교육 불신의 한 원인으로 작용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블레어 총리 시절 10년 동안이나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영국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했던 고든의 경우처럼 되지 않는다할지라도 교육행정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감안하여 교육에 관한 전문적 식견과 철학, 추진력을 겸비한 사람을 교육부총리로 임명하여 온갖 난제로 둘러싸인 교육현안을 슬기롭게 풀어나갔으면 합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하거나 임명권자와의 코드를 중시하는 인사로는 일관된 교육정책을 추진할 수 없습니다. 교육재정 확보는 필수 -참여 정부에서는 특히 교육재정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교육재정 GDP 6% 확보’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지난 4년간 교육재정은 4.9%에 그쳤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교육재정 확보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김세령=참여정부의 교육재정 GDP 6% 확보 공약은 교육현장에 희망의 종소리로 들렸던 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사회적 환경이 좋은 지역의 학생들은 가정과 차이나는 열악한 학교교육인프라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고, 사회적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의 학생들은 학교에서조차 다양하고 실제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구형 TV나 프로젝션 TV로는 다양한 ICT수업이나 교육매체 활용 수업을 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으며, 실험실습을 위한 기구 구입 예산이 줄어 여러 명이 한 세트로 실험을 해야 하고, 전기세를 아끼느라 푹푹찌는 교실에서 반나절 이상을 보내며 질문·대답할 기운도 없이 축 쳐져 있곤 했습니다. 전상훈=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환경이 열악한 시골 학교의 경우에는 아직도 비가 새거나 냄새나는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는 학교도 상당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교육재정 확충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수업부실화로 이어지는 과밀학급, 교사부족 문제 역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도서관·강당 등 교육기본시설 확충, 열악한 급식시설 개선, 무상교육 확대 등도 교육재정의 충분한 확충 없이는 불가능한 문제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입니다. 교육은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로서 성장잠재력 배양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국가 재정배분의 최우선적 고려요소로 작용되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새 정부의 획기적 결단을 기대합니다. 홍석훈=교육개혁의 핵심은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로서 교육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교육재정의 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목표를 설정하고 목표 달성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교육재정을 확보하고 이를 공정하게 배분하여 능률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교육의 효과를 도모하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학교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교육활동은 교육재정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육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재정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김덕산=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들은 교육대통령이 되겠다며 선거공약에 교육재정을 최우선으로 확보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당선된 후 지금까지 약속을 지킨 대통령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쾌적한 환경과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교육재정이 부족하여 학교 시설과 교육기자재가 노후화되어도 제때에 보수나 수리를 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학생들의 학습 준비물 확보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우수 교사 확보 및 지역·학교·학생 간의 교육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재정 GDP 6%는 반드시 확보되어야 합니다. 현장을 이해하는 교육대통령이 되길 -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홍석훈=오늘날 우리의 교육이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태도 때문에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교육에 대한 투자는 뒷전으로 밀어두게 됩니다. 학교에서 좋은 인적 자원들을 배출해 주어야 국가가 발전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에 대한 지원에는 인색한 것이 현실입니다. 차기 대통령은 우리나라 교육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인식시키고 교육의 비전을 제시하여 올바른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이해 당사자들의 참여를 얻어내고, 합의를 이루어야하며 소신을 가지고 교육 기반을 다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전상훈=교육을 알고, 교육문제를 그 어떤 통치영역보다 중요시하며, 교육자들의 애환을 인간적으로 이해주는 따뜻한 교육대통령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외교·국방·통일·경제 등에만 관심 있는 대통령이 아니라 사교육비 부담에 오늘도 허리가 휘는 학부모, 아내와 자식을 외국에 내보내 놓고 혼자 빈집을 지키는 기러기 아빠, 그들의 한숨과 아픔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를 진정으로 고민하셨으면 합니다. 교육자들의 노고를 스승의 날 이메일 한 장으로 격려하기보다는 현장의 의견과 고충을 수렴하는, 그래서 교육자 모두가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그런 속에서 긍지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는 대통령을 기대합니다. 김덕산=초정권적인 교육정책으로 현장, 교원중심의 교육정책을 실시하여 실질적으로 OECD 수준의 교육여건을 실현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행정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또한, 교직의 특수성을 반영한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하며 학생들의 측면에서는 공교육 전반에 걸쳐 교육적 측면에서 더 이상 사회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 복지법’을 제정, 법제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됩니다. - 현재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홍석훈=공교육의 정상화와 내실화가 이루어짐으로써 공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믿음과 기대치를 높일 수 있으며, 학부모의 교육열을 학교 안으로 이끌어 올 수 있고, 결과적으로 학생과 교사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줌으로써 다양한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지향해가기 위하여 특성화 교육의 활성화, 다양한 선택과목 확대 등을 통한 실질적인 교육 선택권을 제공해야 하며, 학습자 개개인에게 적합한 능력을 개발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학교 중심의 자율적 교육과정 개발과 운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덕산=창의력과 논리력을 기르려는 독서 및 논술 교육이 중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의미하는 독서교육이나 논술교육은 대학본고사나 다름없는 입시용 논술고사를 대비하는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독서 및 체험활동, 토론과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진정한 논술교육을 의미합니다. 각 학교마다 도서실을 확충하여 다양한 독서 자료를 구비하고, 학생의 관심과 수준, 교사의 교육적 판단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독서 및 논술 교육을 함으로써 창의력 신장은 물론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준비 작업을 학교가 함께 해주는 교육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전상훈=입시위주의 교육풍토로 학교나 학부모 모두가 학생들의 학업성적, 내신서열에만 매달릴 뿐 가장 중요한 인성교육은 외면받고 있습니다. 사람으로서의 기본 도리를 보고 배우며 자라야 할 아이들이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조차 인성의 사각지대에 방치된다면 이는 개인적 불행을 넘어 국가적 비극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실종되어버린 가정교육이 되살아 날 수 있도록 범사회적 각성과 계몽이 이루어져야 하며, 학교에서도 건전한 가치관, 기본 생활 습관, 민주시민의식 함양에 초점을 맞춘 인성교육 실천에 주력해야 합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전 세계가 들끓었다. 인간은 기어코 달을 점령했다. 토끼가 방아를 찍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 되었다.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무장한 과학의 힘 앞에 시인들의 상상력은 힘을 잃었다. 시인들은 더 이상 달에 관한 시를 쓰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발견된 사실이 많아질수록 인간의 상상력은 축소되었다. 많은 어린아이들이 우주인을 꿈꿨다. 아직 미개척지인 화성 여행을 꿈꾸는 아이들도 생겼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첫 발을 내디딘 지 10여 년 후에 필자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주에 관한 많은 사실들이 발견되었고, 우주여행이 공상이 아닌 현실의 일로 가까워졌다. 그때 꿈꿨다. 은하철도를 타고 우주를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는 우주로 여행할 수 없는 내 꿈을 대신 실현하고 있었다. 나도 철이가 되고 싶다. 메텔과 같은 누나도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우주를 여행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현실이 희망을 좇아갈 수 없을 때 우리는 대체품을 찾는다. 내게는 만화영화였다. 100년 전에도 그랬다. 세계는 넓고 할일도 많다.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온 나라에 퍼졌다. 100년 전 지식인들은 세상의 견문을 넓히는 일 중에서 여행만큼 좋은 건 없다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계를 여행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였다. 지식인들은 간접체험용 학습 장치를 마련했다. 지금의 SF영화나 만화영화와 마찬가지였다. 외국의 여행소설을 번역하는 것이었다. 바다를 보라, 문명을 개척하라 태평양이 우리의 운동장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곳에서 조선의 소년들이 자신들의 꿈을 펼친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드넓은 태평양은 조선 소년들의 놀이터이자 배움터이자 경주장이 되어야 한다. 최남선은 우리들의 운동장(소년, 1908. 12)이란 시에서 그렇게 자신의 속내를 펼쳐 놓았다. 문명의 거센 파도가 한반도를 집어 삼키는 지금. 최남선은 조선 소년, 아니 조선의 문명개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여행을 떠나라 권했다. 이에 한국 최초의 1인 잡지를 출간한 최남선은 프로젝트를 세웠다. 일명 모험심과 개척정신 향상 프로젝트였다. 최남선은 공육(公六)이란 필명으로 여러 편의 글을 소년에 연재했다. 그 중 해상대한사(海上大韓史)와 북극탐색사적(北極探索事蹟) 등에는 바다에 대한 최남선의 애착과 집착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제국의 미래를 개척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최남선은 바다의 개척이야말로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최남선에게 바다는 문명의 보배이자 대한제국 소년들의 꿈을 키워줄 수 있는 지식과 지혜의 보고였다. 최남선은 대한제국 소년들의 스승임을 자처했다. 그들로 하여금 문명의 세계를 개척하라고 독려했다. 문명의 바다, 문명의 세계에 뛰어들 조선의 소년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험심과 담력이었다. 삼면이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조선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육지에 갇혀 있었다.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했다. 중국을 최고의 문명국으로 떠받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육지가 아닌 바다를 횡단하여 세계 속의 한국인이 될 필요가 있었다. 최남선은 태평양을 건너고 대서양을 건널 수 있는 담대한 용기를 지닌 소년들을 육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양의 모험소설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최남선을 비롯한 다수의 지식인들의 열망 속에 걸리버 여행기와 로빈슨 크루소는 한반도에 상륙한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비롯하여 다양한 모험소설들이 한반도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 80일 간의 세계일주, 해전 2만리, 인도 왕비의 유산, 기구를 타고 5주년, 달나라 탐험 등이 번역되었다. 바다를 건너 걸리버, 조선을 당혹케 하다 소인국도 대인국도 아닌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에 걸리버가 당도했다. 소년 창간호에는 걸리버 여행기의 제1부인 소인국 표류기가 곧 간행될 것이라는 광고가 실렸다. 광고에 따르면 소인국 표류기는 걸리버가 소인국에 가서 임금의 사랑을 받고 행세하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는 기기묘묘한 온갖 경력이 많다. 그러나 광고는 실렸지만 소인국 표류기가 실제로 번역되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여하튼 소년 제2호에는 걸리버 여행기의 제2부인 거인국 표류기가 실린다. 호방한 기상을 지닌 선의(船醫) 걸리버는 항해 도중 풍랑을 만나 20여 일간 표류한 끝에 거인국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기괴한 관광과 진기한 유람을 한 걸리버. 영특한 지혜를 발휘하여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걸리버. 한국의 독자들에게 걸리버 여행기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같았다. 그렇지만 과연 걸리버 여행기가 걸리버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여행담을 표현한 작품이었던가. 십전총서(十錢叢書)로 다시 발간된 걸리버 여행기의 광고에는, 이 이야기가 영국의 조지 1세 시절의 풍속을 풍자한 것이지만, 소설적으로도 매우 묘미가 있는 작품이며, 해상 사상을 고취하는 작품이라고 적혀있다. 소년의 편집자였던 최남선은 걸리버 여행기의 하편에 해당하는 거인국 표류기를 2회에 걸쳐 실었지만, 이내 서둘러 연재를 중단했다. 편집자인 최남선의 의도와는 다르게 걸리버 여행기는 조선 소년들의 기상을 드높이는 데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던 것이다. 걸리버는 로빈슨 크루소와 달랐다. 걸리버 여행기는 해상모험소설이라기보다는 가상 공간을 통해 당시의 시대를 비판하는 풍자소설이었다. 정치에 대한 풍자와 위트로 가득한 걸리버 여행기는 결코 조선의 꿈나무들에게 바다를 향한 정신을 고취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걸리버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야만인을 길들이는 문명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지도 않았다. 걸리버는 최남선이 그렇게 존경해마지 않는 서양 문명국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소설이었다. 때문에 최남선은 거인국 표류기를 중단하고, 그 곳에 로빈슨 크루소를 번역한 로빈손 무인절도 표류기로 대체했다. 한반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 최남선은 로빈슨 크루소를 로빈손 무인절도 표류기라는 제목으로 여섯 번에 걸쳐 번역 연재하였다. 번역 연재를 하면서 최남선은 독자를 향해 외친다. “우리는 장쾌한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하늘과 바다를 사랑한다. 우리는 영특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우리는 모험적 항해를 즐겨한다. 그러니 표류담과 모험소설을 탐독하는 것이다. 우리 사랑하는 소년들이여 해상생활의 흥취와 항해모험의 취미를 맛보도록 하라.” 소년들의 모험심을 키워주기 위해 최남선은 로빈슨 크루소를 번역했다. 최남선에게 로빈슨 크루소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끊임없는 모험을 선택한 인간의 전형이었다. 로빈슨 크루소는 해상모험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위대한 인물로 한반도 소년들의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거센 바다를 헤치고 대영제국의 영달을 대표하는 로빈슨 크루소의 삶의 역정을 조선의 소년들에게 소개한 최남선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소년들이여 바다를 가서 보아라! 큰 것을 보려는 자, 넓은 것을 보려는 자, 기운찬 것을 보려는 자, 끈기 있는 것을 보려는 자, 가서 시원한 바다를 보아라! 응당 너희들이 항상 바라던 이상을 주리라! 그러나 최남선은 알고 있었을까. 로빈슨 크루소가 탄 배가 노예무역을 담당했던 배라는 것을. 그리고 원주민인 ‘프라이데이’를 길들여 자신의 왕국을 만든 로빈슨 크루소가 어떤 면에서는 제국주의자와 똑같다는 것을. 어쩌면 로빈슨 크루소의 후손인 서양인들이 조선을 잠식할 것이라는 것을. 개척과 모험의 딜레마 걸리버와 로빈슨보다 앞서 한반도에 소개된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탐험가이자 항해자였다. 그는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을 가서 보았다. 1906년 10월 24일,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조선인 유학생 박용희가 쓴 콜럼버스전(傳)이 태극학보(太極學報)에 실린다. 박용희는 콜럼버스전을 필두로 독일의 철혈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전을 썼고, 이후에는 쥘 베른의 해전 2만리를 해저기행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였다. 박용희는 눈에 비친 콜럼버스는 뛰어난 모험정신과 개척정신을 지닌 인물로 신대륙을 발견한 영웅이었다. 박용희는 그의 죽음 앞에 애도를 표했다. 오호라! 천지여. 온 세상을 뒤덮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천재여, 지금 어디에 있는가! 100년 전 제국주의 열강의 틈새에서 갈 길을 찾지 못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모험심과 개척정신으로 무장한 서양의 인물들을 조선에 소개했다. 그리고 조선의 소년들에게 그들의 정신을 지표로 삼아 장대한 포부를 가지라고 독려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과 동일시한다는 것이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근대 초기 조선 지식인들이 번역해 낸 서양의 모험가, 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영웅들은 대부분 제국주의자였다.끝 -------------------------------------------------------------------------------------------- 그동안 ‘100년전 조선인이 바라본 세계’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삼팔선’(38세 퇴직),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 소리를 듣는다) 같은 유행어가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세상의 분위기입니다. 경력 10년을 넘긴 직장인이라면 하나같이 직장에서의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 연말 당신도 혹시 ‘빨간 봉투’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나요? “연말이 되면 빨간 봉투를 받을까봐 겁이 나. 우리 회사는 연말 구조조정 대상자에게 조용히 나가달라는 메시지를 담은 빨간 봉투를 대상자에게 보내거든. 언제 내가 그 대상이 될지 모르니 연말이 되면 아주 피가 마른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삼팔선’(38세 퇴직),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 소리를 듣는다) 같은 유행어가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세상의 분위기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바로 자신의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서점에 나가보면 〈회사가 가르쳐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회사생활 잘하려면 꼭 알아야 할 77가지 비밀〉, 〈회사를 내 편으로 만드는 10가지 방법〉 등 직장인의 생존전략을 가르치는 처세서가 빼곡하게 쌓여있습니다. 이런 책들의 원조는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서돌)이라고 하는데요. 출판사 공혜진 대표 역시 연말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더군요. 경력 10년을 넘긴 친구들이 하나같이 직장에서의 미래를 불안해하더라는 거지요. 공 대표는 이런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가이드북을 찾다가 〈회사의 비밀(Corporate Confidential)〉이란 책을 발견하고, 직접 번역까지 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기업 컨설턴트이자 인사전문가인 신시아 샤피로가 쓴 이 책은 정말 노골적입니다. 직장인들이 흔히 갖는 착각의 실체를 속속들이 밝혀주니 말입니다. “능력만 뛰어나면 성공? 충성심이 없으면 어떤 기회의 문도 열리지 않는다”, “직장 동료는 가족? 당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져도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일과 가정의 균형? 회사가 대외 홍보용으로 내세우는 말을 믿는 당신은 구조조정 1순위”, “내가 옳다면 회사는 내 편? 상사와 맞서는 것은 지는 게임이다. 상사는 반드시 복수한다”…. 회사 생활 10년을 넘긴 직장인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목이 정말 많습니다(학교에 계시는 선생님들이라면 조금 덜 수긍이 갈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직장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니 공감하실 수 있는 부분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사실 별 것은 없지 않던가요? ‘수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시크릿(론다 번, 살림BIZ)만해도 그렇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비밀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믿으며,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이야기뿐이니까요. 그럼에도 이런 책들이 수십만 권씩 팔려나가는 건, 제 친구처럼 다가올 연말이 당장 불안한, 그러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샐러리맨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이겠지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당신만 지켜보는 가족을 위해,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책이라도 사 보면서 강박관념을 달래며 꺾인 무릎 다시 일으켜 세워 앞으로 나아갈 밖에요. 그나저나, 제 친구 녀석, 올해도 ‘빨간 봉투’를 비켜갔으면 좋겠네요(뭐, 남 걱정 할 일은 아닌 거 같긴 합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