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9,28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영국의 교사들에게 '문제 학생'을 합법적으로 제지할 수 있는 권한이 처음으로 명문 법규정 형태로 부여됐다. 1일을 기해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서 발효된 이 법정 권한에 따라 교사는 부적절하게 행동하거나 교사 지시를 무시하는 학생들에게 벌을 가할 수 있게 됐다. '교육.시찰 법령 2006'에 포함된 이번 조치는 학생들 사이에서 "당신(교사)은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할 수 없다"는 학교 문화풍토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금까지 교사들은 불문율(不文律) 상으로 학부모와 똑같은 권한을 갖고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도록 허용됐었다. 그러나 새 법규정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물리적으로 제지할 권한을 갖고 있고 ▲학생 혹은 교사가 다칠 위험이 있을 때 싸움을 말리기 위해 '합당한 힘'을 사용할 수 있으며 ▲수업 질서를 해치는 학생들은 교실에서 쫓아낼 수 있도록 한 점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앨런 존슨 교육장관은 학생들의 나쁜 행동과 폭력을 없애기 위해선 교사에게 더 큰 권한을 부여하는 게 절대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해왔다. 학생 통제권을 법령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전국교사연합도 이번 조치를 환영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교사들은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아이팟(iPod)' 같은 물품을 압수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이는 다른 학생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 위협하는 등의 '사이버 폭력' 행위 대처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폭력범죄퇴치법안에 수정을 가한 이번 조치는 교사들에게 학생들이 무기를 소지했는지 검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5월은 가정의달, 청소년의 달이라고 하여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있다. 우리의 미래요 꿈나무인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키워주는 어린이날은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어 오고 있다. 어버이날도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선물도 드리며 식사 대접을 하거나 찾아뵙는 아름다운 풍습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데 유독 스승의날 만은 왜 그리 말도 많고 탈도 많은지 모르겠다. 그 동안 스승의날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부작용이 있어 언론에 오르내리며 선생님들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하였고 지난해는 휴업을 한 학교가 많았다. 최근에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스승의 날을 학년말인 2월에 실시하겠다고하여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2월로 옮기자는 안도 일리는 있다고 본다. 한 학년을 마치고 1년간 가르쳐주신 선생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날로 운영하자는 취지라고 본다. 그러나 교육청 단위의 행사로 하기에는 타시도 교육청과 또는 교원단체와 논의 과정이 있었어야 하는 문제이고 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여 본래의 취지에 맞게 스승의 날을 정착사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스승의 날을 현재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감사의 선물이나 주는 소극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어른들의 스승을 찾아 감사의 뜻을 표하는 근본취지를 살리며 옛 스승의 고마움을 생각하고 존경하는 날로 정착하려면 몇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스승의 날은 가르침을 받은 학생 즉 제자들의 마음에서 울어나오는 진정한 감사의 날이 되어야지 학부모들이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된다고 본다. 즉 부모님들이 선물을 사서 학생편에 보내거나 학부모님들이 직접 선생님을 찾아 인사를 하는데 문제가 있다. 부모들이 선물이나 촌지를 주는데서 스승존경 풍토가 훼손되고 교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원인을 제공하므로 학부모님들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 스승의 날은 현재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학생들이 아닌 성인들도 누구나 학창시절의 스승의 있는데 1년에 한번이라도 스승님에게 안부전화라도 한통화 드리는 날로 정착이 된다면 정년퇴직을 하고 노후를 외롭게 보내고 계시는 스승님에게 얼마나 기쁜 선물이 될까? 그러면 평생을 교단에서 제자를 기른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며 교육자가 된 자긍심을 맛 볼 수 있는 날이 될것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면 자녀들도 스승을 존경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것이다. 셋째, 스승의 날은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자기 손으로 만든 꽃한송이를 달아드리도록 학부모님들이 가정에서 가르쳐주어야 할 것이다. 선생님들은 제자들의 손으로 만든 서툰 꽃 한송이를 받는 것이 값비싼 선물보다 더 감격해 할 것이다. 학부모들이 스승의 날을 빙자하여 자기 자녀를 잘좀 부탁하는 날, 그것도 서로 시샘하여 선물 또는 촌지를 건네주려는 부모의욕심이 문제인 것이다. 아이들은 어리니까 모르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이들이 먼저 눈치채는 법이다. 이는 자녀에게 교육적으로 악역향을 끼치고 살아가는 방법을 잘못가르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자녀의 인성을 망치게 하는 것이다. 넷째. 우리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잘못된 선물문화를 새로 정립해야 할 것이다. 선물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고 마음이 담긴 선물, 받는 사람에게 심적 부담을 주지 않는 선물, 선물의 가치를 돈의 가치로 생각하지 않고 기쁜 마음과 정성이 담긴 선물문화가 되도록 학생들에게 본을 보이고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린이날 하루만 많은 돈을 써가며 넘치는 사랑을 줄것이 아니라 평소 못하던 것들 즉 어린이와 손을 잡고 오솔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든지 장래의 꿈을 이야기 하며 희망을 안겨준다든지 자녀와 함께 운동을 즐기며 부모의 사랑을 느끼도록 감동을 안겨주는 날이 진정으로 어린이를 위하는 날이 될것이고, 어버이날도 평소에 나누지 못한 가족이야기, 건강이야기, 자녀나 손자 손녀들의 성장이야기를 나누며 옛날 화롯가에서 나누던 정담같은 것을 나누며 가족의 정을 느끼도록 해야 어버이에게 진정한 효를 실천하는 날이라는 생각이다. 스승의 날도 학생시절에 올바른 가르침에 감명을 받았거나 선생님의 칭찬한마디가 성취동기가 되어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면 당연히 고마운 마음을 표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또는 억울한 꾸중을 들었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는 선생님이 있다면 찾아 뵙고 마음한구석에 응어리로 남아 있는 옛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작은 상처라도 대화로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사제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학부모가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남보다 과시하려는 마음으로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대하면 그 사제관계는 오래가지도 못할 뿐더러 아름다운 사제관계로 발전하지 못한다. 스승의 날이 진정으로 스승존중 풍토로 자리 잡으려면 어른들의 과잉 자식사랑으로 빚어지는 그릇된 교육방법을 바꾸고 자녀가 올바른 인성을 형성하도록 부담없는 교육상담을 하며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 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그 동안 왜곡 되었던 스승의 날을 올바르게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고 휘손되었던 스승존중 풍토도 되살아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게만 느껴진 3월이 끝나고 4월이 다가왔습니다. 정말 4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누가 그걸 잊을까봐 첫날부터 중국발 황사가 내습하였습니다. 그것도 사상최악이라고 합니다. 전국에 황사경보가 내릴 정도였습니다. 원치 않는 황사가 우리를 괴롭힙니다. 건강을 위협합니다. 목을 상하게 하고 피부를 상하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오늘 아침 황사경보가 해제되고 황사가 사라진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황사기운이 오늘 오전까지는 계속 되고 이번 주에도 계속 황사가 이어진다고 하니 대비를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되도록 운동장 수업도 피해야 할 것 같고 피부노출도 삼가야 할 것 같습니다. 목이 약한 학생들은 마스크를 늘 준비해서 목을 관리해야 할 것 같고 알레르기 피부병이 있는 학생들은 피부노출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아침출근을 하니 황사경보가 해제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황사먼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은 맑고 푸른데 푸르름이 덜합니다. 찬란한 햇살이어야 하는데 햇살이 힘을 잃었습니다. 오늘 같으면 동대산은 아름답고 당찬 모습을 보여줄 터인데 희미하게 다가옵니다. 상공을 나는 비행기도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황사먼지 때문입니다. 하지만 황사의 위력도 머지않아 사라지리라 봅니다. 원래의 모습을 볼 날이 곧 올 것입니다. 오늘 아침 교문을 들어서는데 전과는 달리 기분이 언짢은 것이 아니고 기분이 참 좋습니다. 4월 첫 출근일인데 저를 맑고 밝게 해주었습니다. 밖에 버려진 쓰레기 봉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학교 안에 버려진 쓰레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월요일마다 볼 수 있는 각종 쓰레기 담배꽁초, 담배값, 음료수캔, 과자봉지, 휴지 등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할 정도입니다. 모든 분들이 이렇게 협조를 잘해 주시니 놀랄 정도였습니다. 당직하시는 류 주사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자기도 공감을 하였습니다. 학교가 많이 밝아졌다고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이게 원하는 모습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계속해서 이런 날이 계속 되었으면 합니다.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류 주사님께서 많이 신경을 쓰신 것 같았습니다. 정말 좋은 일입니다. 정말 잘된 일입니다. 저는 류 주사님께 울산여고에 매일 당직하시는 오 주사님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자기와 상관없지만 화단에 물을 주고 현관을 쓸고 교무실 창문을 열고 하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매일 같이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회사에서 간부를 하시던 분이신데도 그렇게 열심히 하시니 정말 감동이 되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류 주사님께서도 지혜로우셔서 빨리 저의 말에 공감을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게 이렇게 현실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은 교육은 깨달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직원들도 깨달음이 있으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땅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듯이 깨달음을 찾고 얻으면 지혜롭게 행동하게 됩니다. 우리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주에 교장실에서 신규교사 연수가 있었습니다. 차를 한 잔 나누면서 2명의 신규 선생님과 3명의 기간제선생님에 대한 연수를 교무부장선생님, 교무기획선생님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가졌습니다. 이것저것 말씀을 드린 후 선생님들에게 처음 교단에 서게 된 소감과 느낌을 말씀하도록 했었는데 한 선생님은 교재연구를 많이 해서 수업에 임했는데 생각보다 학생들이 더 많이 알고 있더라 그래서 더 많이 공부를 해야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선생님은 국어과이신데 정말 열심히 수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열정적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더 열심히 교재연구를 하려고 하는 마음이 아름답고 돋보였습니다. 또 한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을 지도해 보니 학생들의 심리를 더욱 잘 파악해야 되겠고 상담기법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해서 학생들에게 나아가야겠다는 것을 깨닫고 상담에 관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이 선생님도 수업시간을 말할 것도 없고 청소시간에도 매일 같이 학생들과 함께 동행교육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학교에서 그 많은 교육학 공부를 했으면서도 더 깊이 더 많이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아름다웠고 예뻤습니다. 이과 같이 깨달음이 있게 되면 더욱 자신이 낮아집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만족보다는 부족함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더 나아가게 됩니다. 더 전진하게 됩니다. 더 노력하게 됩니다. 더 연구하게 됩니다. 그러니 발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더 좋은 선생님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은 깨달음입니다.
지금 교정엔 꽃들이 만발해 있다.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목련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화 등. 모 고교 교감에게 희망찬 봄소식을 전하니 그는 4월이 오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작년에 있었던 학생 사고를 떠올린다. 그리고보니 학교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극히 일부분이지만 10대 청소년들의 ‘일그러진 성(性)’이 위험수위에 도달하였다. 한 여중생을 7개월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중·고생 25명이 경찰에 검거된 광주(光州) 사건. 점심시간에 같은 반 여학생을 6명의 남학생이 교내 특별활동실과 화장실 등에서 2개월간 성폭행한 가평(加平)의 중학교 사건. 그밖의 남양주(南揚州), 부산(釜山)에서의 10대 청소년 성폭행 사건 등. 정부가 해마다 학년초가 되면 ‘학교폭력 자진신고 및 집중단속 기간’을 운영, 학교폭력근절을 외치고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들려오는 것 같다. 학생들에게 내성이 붙었는지 경찰의 자진신고·집중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하다. 누가 그랬던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요즘 범죄의 특징은 연소화, 흉포화라 하는데 계절도 앞당겨진 느낌이 든다. 경찰 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자기네들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엄청난 범죄인지도 모르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우리의 가정, 학교, 사회가 이렇게 만들었다. 가정교육의 부재, 학교의 무신경함 내지는 교육에 대한 방기(放棄), 그리고 사회의 무관심이 이루어낸 합작품은 아닌지? 학교의 예를 들어보자. 정부에서 내놓은 교육정책마다 앞장서 선생님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결과 학생 생활지도에 손을 놓은 학교가 한 둘이 아니다. 흐트러진 학생들 바로 잡아 보고자 열심히 해 보았자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학생들로부터 따가운 눈초리에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 만나면 얻어 맞기 십상이다. 지도 과정에서 교사에게 조그마한 잘못이 드러나면 금방 죄인이 되고 마는 학교 현장이다. 언론의 집중포화도 한 몫 거든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잘못된 학생들 바로 잡으려 할까? 꿩(학생) 잡는 것이 매(교사)인데 매가 꿩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정부에서 잡지 말란다. 멋모르고 잡다가는 큰 코 다친다. 이상한 학부모 만나면 교사가 돈까지 뜯기는 세상이다. 말 안들으면 '옷 벗긴다‘고 공공연히 협박한다. 교사 본인이 직접 경험하거나 주위에서 이런 광경 한 번 보면 학생생활지도에 아예 손 놓아 버린다. 보아도 못 본 체 눈 감아 버린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에게는 무서움의 대상이 없어지는 것이다. 정부, 학부모, 사회, 언론이 힘을 합쳐 이런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도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른 교사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몰지각한 사람들이 교육을 도외시 하면서 인권타령을 하고 있으니 학생들은 교사를 두려워 하지 않고 약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얼마나 큰 범죄인지도 모르는 얼굴 두꺼운 학생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없을까? 학교와 가정이 유기적으로 협조해 성폭력 예방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인터넷, 휴대폰 음란물에 무방비로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성윤리 의식을 가르쳐주는 것이 시급하다. 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과정(敎育課程)도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점심시간, 쉬는 시간, 방과후에 화장실이나 취약지역 순찰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빈 교실 관리나 특별실 문단속 등에 각별 신경을 써야 한다. 리포터는 토요일 오후 교내 곳곳을 둘러본다. 학교에서 성폭행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은 장소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창문을 잠그고 출입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외부에서 침입할 수 없도록 점검을 하는 등 사전 예방조치가 필요하다. 이제 ‘잔인한 달’ 4월이 시작된다. 성폭행이 일어난 해당 학교장 직위해제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피해 학생의 입장에서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가정, 학교, 사회, 언론이 힘을 합쳐 겁없는 10대들의 폭력 범죄, 기필코 막아야 한다. 학교가 범죄의 온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범죄는 예방이 최선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학교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일본의 교육기본법은 헌법이 시행된 해인 1947년 공포, 시행됐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반성에서 만들어진 헌법 정신의 '평화주의'의 이념 실현을 기치로 제정, 헌법과 함께 '전후 평화주의'를 이끌어온 두 기둥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 애국심 교육을 강조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일본 교육기본법 개정안이 이미 15일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 움직임이 여론의 지지를 받게된 것은 학력저하가 문제가 된 가운데 고이즈미 전 정권 이후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로 국가가 학교교육에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1947년 공포된 일본 교육기본법은 패전의 산물로 '개인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중시한 일본 교육의 헌법으로 불려왔다. 제정된 뒤 한 차례의 개정도 없었으며 개정 시도는 '금기'의 영역에 대한 도전으로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전후 보수 세력들이 여러 차례 법 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전쟁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일본 국민들 다수는 이 법의 개정으로 자칫 군국주의 교육이 부활할 것을 우려하여 반대했었다. 그렇지만 '아베 정권'은 '애국심'과 '전통' 등 국가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 법 개정을 호소하면서 정권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했다. 이어 시민세력과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정안이 가결된 것이다. 개정안은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고 나라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를 함양한다' '공공의 정신에 기초해 주체적인 사회의 형성에 참가하고 그 발전에 기여하는 태도를 함양한다' '교육은 부당한 지배에 굴복하지 않고 그 법률 및 다른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등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애국심 조항'이 줄곧 논란을 빚어왔다. 시민단체등은 학생들에게 무리하게 애국심을 강조할 경우 민주의식의 함양은 뒷전으로 밀리며 결국 '국가주의 및 배타심'을 갖게 할 것이라며 반발해 왔다. 또 중대한 것 중의 하나는 공립 초,중등학교에 다니는 재일 외국인은 이나 이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현재의 일본을 무리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용납될 것인가하는 점이다. 일본에 살고 있는 이상 일본을 사랑하는 교육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이다. 이에 대하여 고등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재일 한국인은 부정적이다. 무엇보다도 법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있다. 일본을 애국심을 강요하는 교육보다는 사랑받는 나라가 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관심있는 외국인은 문제는 애국심의 표현에 대하여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전쟁을 위하여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일교조도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으며 왜 강행 채결을 하여야 했는지 강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2008학년도 대학 신입생부터 일반학과를 통한 교직과정 이수인원이 크게 축소돼 교사자격증 취득이 한층 까다로워진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일반학과에 설치된 교직과정을 통해 교사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인원을 현행 과별 입학정원의 30% 이내에서 10% 이내로 축소하는 내용의 중등교사 양성과정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1일 밝혔다. 이 개선안은 2008학년도 대학 신입생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교직과정 이수인원이 입학정원의 30% 이내에서 10% 이내로 줄게 되면 2008학년도 신입생이 졸업하는 2012년에는 교사자격증 취득자 수가 9천929명으로 2006년(1만5천379명)에 비해 5천400명 감소할 것으로 교육부는 전망했다. 5천400명은 연간 교사자격증 취득자의 15%에 해당하는 숫자다. 개선안은 또 부전공을 통해 교사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를 없애고 복수전공으로만 교사자격을 취득하도록 했다. 부전공으로 교사자격을 취득할 경우 30학점만 이수하면 됐지만 복수전공으로 교사자격을 얻으려면 42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현직 교원에게 재교육을 통해 부전공 자격을 주는 제도는 유지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중등교사 임용률이 2004년 17.3%, 2005년 19.6%, 2006년 15.3%에 그칠 정도로 수급이 매년 불균형했다. 이번 개선안에 따라 중등교사 양성 숫자가 줄어들면 그만큼 수급 불균형 문제도 크게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머리에 떠 올리는 교육 기관은 어디일까?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를 세계적인 인재로 교육하기 위해 보내고 싶은 학교 또는 교육 기관은 어디일까?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한 준비를 위해 학교 교육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많은 것 같다. 학교 공부가 끝나면 아이들은 영어 학원을 찾아 가고, 방학이 되면 바로 어학연수 등으로 해외로 떠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들은 많은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보내기도 한다. 학교 밖이라야만 글로벌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확산되어 가는 것 같다. 우리들의 학교 교육만으로는 정말 글로벌 교육이 불가능한 것일까? 세계적인 인재가 되기 위해 정말 필요하고 기본적인 공부를 학교에서 다 해야만 학생들은 또 다른 수업을 받는 고행에서 벗어나 학교에서 배운 것을 기초로 하여 꿈을 펼쳐 나가고 꿈을 이루어가기 위한 제 각각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학교의 선생님의 수업과 학교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지기에 세계를 품고 더 전진해야할 시간에 다시 수업을 들어야만 하는 비효율적 교육형태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 글로벌 교육의 기본을 충실하게 배운다면 여유 있게 자신의 이상을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학교가 글로벌 역량을 갖춘다는 것의 핵심은 선생님들의 글로벌 역량 신장이며, 학교의 프로그램의 개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쟁과 보상 시스템을 통해 교사들의 역량을 우선 키워 가야 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세계와 미래를 향해 도전하도록 격려하는 꿈과 열정을 교사들은 갖추어 가야 할 것이다. 학교마다 별 특색이 없이 수행되는 우리나라 교육과정 운영 방식은 정말 개선되어야 한다. 전 세계 124국가의 1890개교가 채택하고 국제적인 교육 프로그램인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Program이 있다. 이 국제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국의 학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좋은 교육과정의 과감한 도입과 학교간의 교육과정 운영 경쟁을 통해 우리나라 학교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어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학교에서도 얼마든지 세계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결연한 모습을 보일 때가 된 것이고 철저한 준비를 이젠 시작하여야 한다. “학부모님, 그리고 학생 여러분 우리 학교로 오세요. 세계적 인재에 대한 꿈과 열정만 준비하고 오세요. 여러분의 자녀를, 여러분을 세계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하겠습니다.”라고 우리 모든 선생님들이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날이 곧 오리라는 기대를 가슴에 품는다.
학원에 갈 처지가 못되는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방과 후 수준별 보충수업을 실시하는 부산시교육청의 올해 학습지원단 수업이 2일부터 시작됐다. 부산시교육청은 이날 오후 동평중학교를 비롯 지역별 10개 거점 중학교에서 2007년도 학습지원단 개강식을 일제히 가졌다. 중학교 3학년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학습지원단 수업은 거점학교별로 주변학교 학생들을 모아 정원 60여명을 수준별 3개 학급으로 편성, 국어.수학.영어.과학 과목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수업시간은 1일 2시간씩 주당 10시간이며 연간수업은 방학기간 수업을 포함해 36주 360시간에 달한다. 학습지원단이 운영되는 권역별 거점학교는 동평, 당리, 신선, 부산서, 덕천, 주례여자, 금사, 부곡, 재송여자, 반송중학교 등이다. 강사들은 현직 교사들 중에 공모 또는 추천을 통해 각 과목 베테랑 교사들로만 구성돼 학습지원단의 수업만 충실히 들으면 학원에 갈 필요가 없어 사교육비 경감은 물론 사회양극화에 따른 교육격차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시교육청 학교정책과 천정국 과장은 "학습지원단 운영은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부산시교육청의 대표적인 사업"이라며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의 반응이 갈수록 좋아져 앞으로 혜택지역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나무에 앉아 있었다. 군인들이 나를 겨누지 않은 건, 내가 여자 애들 중에 제일 나이가 많으니 총알밥을 먹이는 것보다 더한 짓을 하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더욱 무서웠다. 군인들 중 하나라도 위쪽을 올려다보면 날 발견하고 죽일 것이다. 그러나 군인들은 내가 앞서 달려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쫓아갔다. 군인들은 소총을 몽둥이처럼 휘두르고 고함을 지르며 미친 듯이 숲 속 깊이 들어갔다. 역겨운 웃음소리가 나무 사이에 울려 퍼졌다." 라티노 군인들이 인디오 출신인 마누엘 선생을 죽이고, 또 도망치는 아이들을 뒤에서 총을 쏘아 죽인다. 아무 죄 없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향해 뒤에서 총을 겨누어 한 명씩 쏘아 죽이며 희열을 느끼는 동물들, 그건 인간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 그것도 아무런 이유 없이 생각이 다르다고, 인종이 다르다고, 또는 억지로 만들어낸 이념이 다르다고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사람을 죽인다. 그 죽임을 당하는 사람 중에 내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다면 우린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책을 읽는 내내 반문해 보았다. 그런데 자신이 보는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한 소녀가 있다. '나무소녀'라 불리는 가브리엘라이다. 벤 마이켈슨의 는 과테말라의 내전 중에 아홉 식구 중, 동생 한 명만 남기고 온 가족을 잃은 채 절망 속에서 희망의 끈을 이어가는 실제 나무소녀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닌 한 마야 소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비극이다. 인디오 소녀인 가브리엘라는 어릴 때부터 나무타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붙여진 이름이 '나무소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내전)이 시작되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정부군은 인디오 마을에 찾아와 온 마을 사람들을 사살한다. 하늘에선 헬리콥터로, 지상에선 총으로. 그런데 이들을 죽이는 군인들은 미군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고, 무기는 미군에게서 지원받은 것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심부름으로 시장에 갔다가 마을이 불타는 모습을 발견한다. 마을에 도착했을 땐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은 모두 죽은 뒤였다. 살아남은 자는 어린 동생 안토니오와 열다섯 살 가브리엘라를 엄마로 부르는 알리시아다. 그러나 옆구리에 총을 맞은 안토니오도 얼마 있다 숨을 거둔다. 이제 두 사람이 살아나는 길은 살던 고향을 떠나는 길 뿐이다. 고향을 떠나 멕시코로 가는 길에 아주 처참하고 비극적인 사건을 목격한다. 군인들이 마을에 들이닥쳐 어린아이와 여자들, 남자들을 따로따로 분리해놓곤 죽이는 장면을, 음식을 얻으러 갔다가 본 것이다. 살아남은 건 나무 위에 올라가 숨은 가브리엘라 뿐이다. 가브리엘라는 이때 혼자 비겁하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늘 자신을 책망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건너간다. 멕시코로 건너간 그녀에게 다가오는 건 비참한 난민 수용소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매일 매일 굶주림과 추위와 싸우면서 하루하루 생을 연장해 나간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다. 목숨이 붙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줌의 구호물품이나 음식을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한다. 가브리엘라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살아남기 위해 똑같은 행동을 한다. 그러다 마을 학살 사건 때 헤어졌던 알리시아를 만난다. 알리시아는 그녀에게 새로운 희망이다. 그리던 중 난민수용소에서 만난 마리오와 함께 수용소의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녀가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건 단순히 문자만을 가르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고,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다. "아이들은 교육을 받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인디오라는 걸 평생 수치로 여겨야 할 거예요." 가브리엘라가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자며 마리오에게 한 말이다. 조상대대로 평화롭게 살던 땅을 외부인(라티노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배움마저 받지 못해 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디오. 희망 없는 수용소에서 그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면서 수용소엔 희망의 웃음이 일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오가 반군에 가담해 정부군과 싸우겠다며 수용소를 떠난다. 그러자 희망을 잃은 가브리엘라도 떠나고자 짐을 꾸린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바꾼다. 그리곤 이렇게 다짐한다. "언젠가는 과테말라로 돌아가, 어린 시절 그곳에 남겨 두고 온 아름다움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이미 내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과 같을 것이다. 언젠가 과테말라로 돌아가 마리오라는 이름의 특별한 선생님을 찾을 거다. 그리고 학살에 대해 알릴 것이고, 우리 민족의 노래를 찾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 준 노래, 한밤 내 영혼이 고요하게 가라앉을 때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그 노래를." 이 소설은 과테말라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한 마야 소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작가는 한 마야 소녀의 입을 빌려 과테말라 내전 중 벌어진 마야인 학살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독자는 그 학살 현장을 지켜보면서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눈물과 한숨, 그리고 감동을 동시에 맛보았다. 그리곤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모습과 그 비참함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을 맴도는 게 있었다. 전쟁이란 걸 내세워 인간을 죽이는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건 정당하지 않다고.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죽이는 행위는 인간이 저지르는 행위 중 가장 저열한 것이라고.
최근들어 승객에 의한 시내버스기사 폭행사건이 자주 발생하면서, 운전기사를 폭행할 경우 무거운 처벌을 내린다는 법안이 마련되었다. 시내버스내에는 이런 안내문들이 붙어있다. 당연히 승객들에게 운전기사를 폭행하지 말라는 뜻으로 마련된 법안이다. 이로인해 앞으로는 승객에의한 운전기사 폭행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확실하게 법으로 제정하였기 때문이다. 처벌의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학부모나 학생들에 이한 교사폭행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폭행에 대한 한계가 있을 수 없지만 최근의 사태는 우려의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교사들이 학부모나 학생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것은 연례행사가 되었다. 이제는 어떤 교사라도 안전지대에 있지 못하다. 답답한 마음 뿐이다. 정상적인 학교교육이 점점더 어려워지고 있는 이 시대에 교사가 교권을 잃어버리는 사태는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앞장서서 학생들이 묻지도 않는 두발문제를 거론하면서 학교에서의 두발문제는 계속해서 이슈화가 되고 있다. 학부모 마저도 학생들의 두발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국가인권위원회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학생들의 두발단속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입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국가인권위원회의 태도가 학생들의 잘못된 사고를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두발문제 이후에 복장문제까지 확대되고 있다. 결국은 각급학교의 규정은 있으나 마나 한 규정으로 전락하기 직전이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학생들끼리의 다툼으로 사소한 신체적 접촉이 있을경우, 무조건 학교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자신들은 교사에게 무조건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힘없는 교사가 학생지도를 잘하기 위해 노력한 것밖에 없는데, 학부모들은 순간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교사에게 감정적인 폭행을 하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부모나 학생들에 의한 폭행사건이 발생하면 그동안은 '교권침해'라는 우려를 제기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교권침해'는 더이상 관심에 없는 분위기다. 그 이유는 최근의 사태를 보면 교권침해는 이미 넘어섰고, 교권과 관련없는 '인권침해'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교권침해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본다. 교사들도 분명히 인권이 있는데 이런 사태가 지속되는 것은 결국은 정부나 교육당국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만 하더라도 학생들의 두발을 과도하게 단속하지 말라면서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라고 한다. 그런데 유독 학부모나 학생에 의한 교사폭행의 경우는 함구하고있다.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하다면 당연히 교사들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 정부와 교육당국의 대책부재를 지적하고 싶다. 그래도 교사들은 모든것을 참고 있다.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폭행을 당하더라도 상대를 고소, 고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제자이기 때문이고 그 제자의 부모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교사들의 순수한 마음은 그대로 남아았다. 학생을 우선생각하는 마음때문이다. 어쩌다가 고소,고발을 했더라도 결국은 쉽게 물러서는 것이 교사들이다. 그러나 역으로 학부모가 교사들을 고소, 고발했을 경우는 중도에 물러서는 경우가 많지 않다. 끝까지 법정에까지 가서야 시비를 가리게된다. 교사들과 학부모는 폭행사건등에 대해 대처하는 과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언론도 문제이다. 학부모나 학생에 의한 폭행사건이 발생하면 대책제시없이 보도를 한다. 신문을 읽다보면 교사들에의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부분이 꼭 그렇다고 꼭 집어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느낌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 언론의 행태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혹여 교원들이 학부모에게 폭언을 하거나 폭행을 가했을 경우에는 모든 언론의 촛점이 해당 사건에 집중된다. 역시 촛점은 교사들에게 집중된다. 교사들의 잘못으로만 몰아간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학교에서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계속된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은 용납되지 않는다'고...학생들끼리의 폭력을 학교에서는 절대로용납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더욱더 교사들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학부모나 국민들은 학교에서 좀더 적극적인 폭력예방활동을 해주기 원한다.학교폭력문제가 이슈화될때마다 교사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더 열심히 학생들을 돌봐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을 느낀다. 이런 교사들이 단 한마디의의견을 제시하면 마치 교사들이 학교폭력예방에 의지가 없는 것으로 분위기를 몰아간다. 학부모의 학교방문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방문후에 자신들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교사폭행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해결하도록 해야한다.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이 과연자녀교육에 도움을 줄 수있을까.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로인해 자신의 자녀인 학생은 상처를 받을 것이고 부모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잘못된 길로 빠질 수도 있다. 결국 학생지도는 학교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교육의 3주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노력해야 할 문제이다. 모든 것을 학교에만 의지하거나 반대로 모든것을 가정교육에만 매달리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3주체가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에 도래했다고 본다. 교원평가도 중요하고 교원성과급도 중요하다. 그러나 폭력문제는 더 중요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은 용납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해결의지가 필요하다. 이를 주축으로 다함께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늘 바쁘다. 일에 바쁘고, 관계가 중시되는 집단중시 사회분위기상 모임에 빠지면 안되므로 또 바쁘며, 고생만하다 죽은 가여운 아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가 졸장부로 낙인이 찍혀 관직에서 파직되던 조선시대의 의식이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집안식구에 엄격한 대장부(?)로 보이기 위해 집밖으로 돌아야 하므로 또 바쁘다. 식구들을 멀리하고 집밖에서 허황된 시간을 보내느라 바쁜 것이 대장부인가? 오늘날의 대장부의 개념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예전에 경계하였듯이 오늘날에도 자신의 집안, 자신의 코앞의 이익에만 연연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졸장부이다. 사이비 대장부, 사이비 가부장과 진짜 대장부, 가부장은 구별되어야 한다. 권위만 누리며 책임은 미루기만 하는 사람은 파렴치한이다. 요즈음 처자식 거느리기 힘들다고 장가가지 않고 늙는 총각들, 손위 누나 연배 여성에 기대는 결혼 풍속도는 버리고 싶은 남성, 가부장의 버거움을 들려준다. 더불어 나누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 변화해야할 가부장의 형태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은 ‘대단히 역동적인 나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말할 때 ‘빨리빨리’라는 단어를 많이 기억하고, 이동속도가 빠른 인터넷, 휴대폰이 가장 많이 보급된 나라이며, 식민국에서 해방된 후 사람과 자연 그 모든 것이 피폐해진 여건, 無의 상황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기적을 만들어낸 남성들은 가부장이었다. 집 밖에서 잘사는 나라를 건설하느라 온 힘을 기울였으므로 사회는 휙휙 쾅쾅 빠르고 힘있게 변화되어 갔고 가족들과의 여유로운 시간은 생각조차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자본과 기술 그 어느 것도 없었던 시절,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족보다는 집단적 가치가 우선했어야 했을 것이다. 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는 집단적 가치를 위해 힘의 향배는 한 곳으로 몰렸고, 개인들은 참아야 했으며, 참을 수도 있었다. 일반 사람들이 외국여행도 쉽게 생각하게 되었던 시기가 언제였을까? 커다란 상점들이 들어오고 삶에 윤기가 돌던 시기부터 집 밖과 집단 우선의 가치에 변화가 있어야 했지 않았을까? 팔려고 내어놓은 사과 한 알을 먹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사과를 줄 수 없었던 가난 했던 시절에 아내와 아이들은 밖에서 일하는 아빠가 밤늦게 귀가하거나 며칠 집에 올 수 없을 때 안위를 걱정하며 응원했었다. 먹고 사는 기본적 욕구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개인이 사회에 요구하는 제도와 가치는 달라진다. 국민소득 백달러 미만, 또 5000불의 생활에서의 제도와 가치가 국민소득 이만달러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수용이 되겠는가? 가정, 정치, 경제, 군사, 교육, 사회와 문화, 모든 분야에서 국민소득 이만달러, 삼만달러 시대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반영한 가치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 사회는 그에 상응하는 계획과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출산율이 낮아지고 결혼기피율이 높아진 까닭이 무엇인가? ‘아녀자’라는 단어에서 배어나오는 의미가 ‘하찮다’로 들리는 사회의 통념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모처럼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게 된 남편은 아이들 방에 놓인 낮은 책상위의 컴퓨터를 널찍한 큰 책상 위로 옮겨놓고, 평소에 기계를 모르는 필자가 여기저기 놓아 둔 전기선, 배터리, 마이크, 카메라 부품 등 잡동사니를 하나하나 꺼내어 용도에 맞게 각각의 서랍에 정리를 하고, 이방 저방 다니며 필요한 물건과 필요없는 물건들을 구분하여 깔끔하고 편리하게 해 놓았다. 사관학교 졸업 후 오랜 군생활로 다져진 정리 습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필자의 남편은 군인이며, 조종사이고, 항공공학자이다. 학교에서 보충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은 환해진 방을 보며 즐거워하며 몇 가지 손보고 싶었던 기계들을 내어 놓고 아버지와 의견을 나누었다. 점심상을 마주하고 앉아서도 부자간의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대로마제국의 기틀을 잡아가던 초기에 로마 집안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자녀의 삶에 방향을 설정해 주는 것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아버지가 뒤이어 나오는 아들을 위해 수건을 들고 섰다가 물기를 닦아주고,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버지의 이상과 삶의 방향은 아들에게 이어진다. 목욕은 함께 할 수 없을지라도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은 딸에게도 중요하다. 인도의 초대 총리였던 네루는 딸 인디라에게 옥중서신을 통해 국가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반을 닦아주었다. 어머니의 역할은 자녀가 어릴 때에는 생활에 필요한 일상을 거들어주는 것과 기본생활 습관 형성, 기초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필자는 자녀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였다. 교육을 전공하였고, 교육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하지 못하였음을 생각할 때 아이들에게 두 배로 더 미안하며, 그럼에도 심신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음에 감사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이의 존재가 더 크게 다가온다. 남편도 같은 생각인지 ‘한 달에 한 번은 온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자’고 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스큐는 중국에서 자손이 아버지를 공경하며, 죽은 후에도 제사를 모셔주는 관념과 장려 정책이 인구수 증가를 가져오는 반면 장자에게만 모든 재산을 물려주고 나머지 자손은 빈털터리로 만드는 유럽의 정책이 인구의 빈곤을 초래하는 한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국가의 안위 더 나아가 흥망성쇠를 고려할 때 교육의 방향과 시각은 군사안보영역보다 더 중요하다. 최신 기술의 훌륭한 무기와 많은 군대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를 다루는 것은 사람이다. 다루는 사람의 기술과 능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좋은 기계도 무용지물이 된다. 더 중대한 것은 그 자리, 그 일에서 정신을 실종했을 때이다. 무기가 훌륭할수록 기술이 좋을수록 패망의 속도만 더 빨라질 뿐이다. 필자로부터 볼 때 할아버지 세대는 일본의 식민지국 전락과 한국동란으로 통일된 한국역사상 가장 한심한 조상이 되었으나 논팔고 밭팔며 자손을 교육하여, 자손이(아버지 세대) 황폐와 극심한 가난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으로 중진국 입성을 이룩할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아버지 세대는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하였으나 자손(현재의 우리세대)의 교육에는 실패하여 선진국으로의 입성을 위한 기본 교육과 의식을 갖추게 하지 못한 탓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할 것인가 혹은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할아버지 세대의 잘못을 반복할 것인가의 기로에 10년 가까이 머물게 하였다. 갈등과 반목, 이기심이 충돌하는 사이 2세를 위한 교육은 내 가족, 내 아이의 안녕, 나 자신의 행복만을 고집하는 그야말로 깊이 얕은 소위 ‘아녀자(?)’에게 전담되었고, 자라나는 젊은 세대의 방황과 황폐화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키우고 있다. 그래도 다소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선진국 입성을 위한 연착의 가능성이 보인다. 반드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아버지들이 가부장의 권위를 가지고 팔을 걷어부치고 어머니와 함께 아이들의 손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멀리 해외에 출장을 가 있을지라도 전화나 이메일 안부를 전하고, 일관계로 공휴일에도 운동약속이 있을지라도 저녁은 가족과 같이하며, 집안 행사에 딸과 아들을 함께 데리고 다니며 집안의 역사를 들려주고 의례를 알려주며, 조상과 자신, 후손으로 이어지는 긴 역사 그리고 넓은 세상과 긴 안목을 키워주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의 방향과 시각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필자는 자신의 위치와 뿌리에 중심을 두고, 세계와 우주를 바라보는 인재 양성에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구한 전통속의 장점을 살리고, 잘난 나라들의 의식과 제도, 가치를 연구하여 우리의 몸에 맞는 넓고도 큰, 새 틀을 만들어야 한다. 중심이 바로선 앞선 의식과 틀이 필요하다. 잘난 나라, 앞서 가는 나라는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18세기를 살았던 몽테스큐의 글을 읽으며 왜 프랑스가 당시 세계 제일의 강국이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기술과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수도원에 있는 대형도서관에는 일반인들도 열람이 가능하였고, 여성들은 살롱의 중심인이 되어 남성들과 더불어 정치, 사회, 과학, 문학, 외교 전반에 관해 토론을 하였다. 도서관에 비치한 도서목록은 웅변, 기하, 형이상학, 광활한 우주의 구조와 아주 간단한 기계에도 똑같은 관심으로 연구하는 물리학, 병과 치료법에 관한 의학서적과 해부학, 연금술, 지극히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점성술과 주변 국가들의 근대 역사서, 소설과 시 등 인간지식의 총망라이다. 현대의 국가통치체제, 의식과 가치 이 모든 것에 유럽은 새로운 길을 만들었고 강국이 된 것이다. 유럽에 풍요를 가져다 준 20세기의 양식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만들어놓은 부품을 조립하여 하나의 완성품을 만드는 대량생산 방식이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담당한 부품만을 만들어내면 되었으므로 다른 분야와의 협력을 통한 다양성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귀가 맞지않는 서로 다른 다양한 부품은 대량의 생산을 방해하였으므로 철저한 전문화, 고립화를 통한 이익 창출 형태였다. 이와같은 경제, 산업부문의 가치는 단순히 그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전 분야의 의식과 가치가 그러한 경제구조를 낳은 것이다. 따라서 전문화로 일컬어지는 고립화는 상대를 알려고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결구도를 심화시켜 지배자와 피지배자, 풍요와 빈곤의 극한 대립을 불러왔다. 인간의 풍요를 위해 자연은 희생되었고, 한 국가를 위해 다른 국가가 희생되었으며, 이 사람을 위해 저 사람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과학기술 추구와 기계화 덕택으로 먹거리 문제의 해결, 질병의 극복과 수명 연장, 불합리한 의식과 제도의 극복은 20세기 문명의 지대한 공헌이다. 21세기는 생존을 위하여 단절에서 비롯된 황폐화의 치유를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고 타협해야할 필요성이 생겼다. 다양성의 인정과 통합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내 것은 문명이고, 네 것은 야만이고, 나는 우월하고 너는 열등하고, 나는 윗분이고, 너는 아랫것이고의 이분법이 아니라 서로간의 장단점을 인정하고 접합하여 상호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바깥양반이고 어머니는 안사람, 아이들은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닌 집안을 함께 일구어가는 소중한 동반자이며, 동식물은 마구잡이로 이용당하고 버려져야 하는 것들이 아닌 먹거리와 즐거움, 일손을 덜어주는 함께 살아야 할 고마운 존재이며, 손을 모우고 인사하는 사람, 악수를 하는 사람, 코를 비비고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을 존중 받아야 한다. 서로 다른 것들의 통합으로 이루어진 새 틀은 보다 나은 개인과 국가, 인류의 발전을 위해 새롭고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21세기 한국 교육의 목표는 현지화와 세계화가 되어야 한다. 성인식은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발전과 번영에 책임을 다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어른이 되는 무거움과 즐거움을 알려주고자 마련된 것이다. 한국에는 계례식과 관례식의 전통이 있다. 남녀 공히 성인이 되어 오랜 세월을 이어온 가정과 국가의 맥을 이어갈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책임있는 성인으로서의 개인의 행동이 조상과 부모 더 나아가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엄중함을 의식을 통하여 꼼꼼히 알려주고 가르치면 한 공동체를 이루는 친구를 학대하고, 작은 이익을 위하여 죄를 짓는 일은 하지는 않지 않을까? 물론 의례만 부활시킨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우대되어야 할 사회적 가치, 정상적인 사회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한 몫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자기가 제일이라고 으스대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좁은 한국땅에서만 한정시킬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잘났다고 끼와 부지런함, 노력과 포부를 펼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면 어떨까? 세계 여러나라에 나가있는 사람들 즉, 기업 등 민간인, 정부기관들, 군관계자와 재외 교포들이 현지의 생활과 사고로 현지인과 협력하여 최고로 발전할수 있도록 잘난 끼를 발휘하고 업적을 내도록 후원을 하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주고 평가를 하면 이만불, 삼만불의 선진국 고지에 곧 다다르지 않을까? 참하고 훌륭한 지역민과 혼인하는 것도 째려볼 일은 아니다. 다양한 문화와의 접촉은 우리의 사고와 문화의 폭을 넓혀주고, 세계와 세계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시간으로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에 네트워크망을 형성하여 필요한 정보와 도움을 공유하면 세계인이 배우고자 성황을 이룰 모델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남편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안일을 거드는 동안 이리저리 흩어진 것들이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며 아버지의 존재, 가장의 존재를 깊이 깨닫는다. 오랜 동안 출장을 나가있어 비어있는 시간이 많을지라도 식탁에 남편의 수저를 놓아두고, 안방에 남편의 자리를 마련해둔다는 한 아줌마의 말이 생각났다. 아이들 방이 비좁고 책은 많아 커다란 공간이 필요할지라도 크고 좋은 안방은 쓰임이 적더라도 아버지의 상징으로 놓아두어야 한다는 한 선생님의 말씀도 상기해보았다. 자신이 타던 전투용 비행기를 자신의 힘을 보태 만들어 보겠다고 개발에 골몰하느라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내던 남편이 집에서 휴일을 보내며 구석구석 일을 챙기는 모습에 감격하여 몇 자 적어보았다. 필자는 사관학교시절부터 박사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였으므로 국가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고 수없는 날들을 밖에서 보내는 군인정신 투철한 남편이 다소 집안을 소홀히 한다고 째려보고 있을망정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팔푼이 마나님에게 자신의 남편은 누구보다 더 크고 잘나 보이는 것이다. 다른 집의 마나님들도 그러하겠지만.
서울시내에는 지역교육청내에 있는초, 중, 고등학교를 몇 개씩 묶어서 지구별 장학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다.지구별 장학협의회이긴해도 교장협의회, 교감협의회, 교과협의회 등도 이렇게 나누어져있다. 전체 지역교육청을 하나로 묶으면 각종 협의회등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편의상 나누어놓은 것이다. 전체를 하나로 묶는 것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 안에는 생활지도부장 협의회도 속해 있는데, 며칠전에 우리학교가 속해있는 지구의 생활지도부장 협의회가 열렸다. 10개의 초, 중, 고등학교가 속해 있는데 생활지도부장이 바뀌지 않은 학교가 2개학교뿐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참석한 생활지도부장들은 한결같이 '연속해서 생활지도부장을 해야 학생지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솔직히 학교에서 생활지도부장의 위치가 매우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2년 혹은 3년연속 한다는 것은 보통의 각오로는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생활지도부장을 하다가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한다. 주변의 학교에서 학생지도와 관련하여 생활지도부장이 소송에 걸린 경우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송에 휘말리는 바람에 전재산을 다 소송비로 사용한 생활지도부장의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사정때문에 일선학교에서는 생활지도부장이 기피 1호의 보직이다. 서로가 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매년 바뀌는 것이 그리 새삼스럽지는 않다. 생활지도부장을 기피하는 이유는 업무의 어려움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분불안'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잘해 보려고 학생지도를 열심히 한 것이 죄라면 죄인데, 학부모들은 그것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조건 학교책임, 생활지도부장 책임으로 돌리려는 인식이 문제인 것이다. 반면,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좀더 강력한 생활지도를 해주기 원하는 경우가 많다. 두발문제, 복장문제등을 학교에서 강제해서라도 바꿔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에서는 학생들의 인권을 중요시하고 있지만 학교에서는 그보다 제대로된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측면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결국은 학생지도는 교사, 학부모가 함께 해야 효과적이라본다. 기피하는 것은 생활지도부장뿐이 아니다. '스쿨폴리스'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출발한 제도가 있다. 그러나 스쿨폴리스제도가 정착하기도 전에 그것을 담당하려는 인사가 많지 않은 문제점에 봉착하고있다. 우리학교의 경우도 교내순시를 하던 자원봉사자가 1년만에 그만두었다. 업무적으로나 학생지도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새학년이 시작된지 거의 1개월이 흐른후에 인선을 겨우 한 상태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담당자가 없다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한 걸까. 일단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안에 대해서 학교나 생활지도부장의 잘못된 처리로 인해 학생에게 심각한 피해가 간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즉 일반사건과 똑같이 취급하지 말고 학교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고의가 아닌 경우에는 최대한 보호를 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학부모들은 생활지도부장으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무조건 소송을 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것은 결국은 교권침해로 이어져서 생활지도부장이 심각한 상처를 받게 된다. 또한 최소한 생활지도부장에 대한 우대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에서는 우대책으로 제시하는것이 '승진가산점부여'를 많이 거론하는데, 이는 우대책이 아니다. 모든 생활지도부장이 승진가산점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런 우대책보다는 실질적인 우대책이 필요하다. 생활지도부장에게는보수나 수업시수등에서 적극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해서 생활지도부장 기피현상이 사라질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가시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면 실시하는 것이 옳다고본다. 만일 소송에 휘말릴 경우는 어느정도의 소송비용은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부담해 주어야 한다. 생활지도부장이 모두 책임지도록 방치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다. 결국 책임만 강조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날로 어려워지는 학생지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깊은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근 5월 15일 스승의 날을 2월로 연기하자는 움직임이 있다.어떤 학교에서는 이날 수업을 편성하지 않았다가 부랴 부랴 변경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스승의 날이 포함된 5월 셋째주는 학생들에게 직업세계 체험의 주간으로 할 것을 2006년에 발표한 것을 아는 학교교육 관련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우리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영어와 수학을 잘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자신이 맡을 직업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이다. 각 개인들이 성공하면 그것이 모아져서 우리 나라가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나라의 현실을 보면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일단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나중에 무엇인가 된다는 생각이고 이에 따라 30대 초반이 되어서도 홀로서기를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본다. 또 학생들이 아는 직업의 수가 수십개에 불과하고 학생들 가운데 직업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체험한 비율이 8% 정도에 불과하다. 마침 5월 스승의 날을 학교수업을 배치하지 않았다면 이날을 직업세계 체험의 기회로 만들어 주면 어떠할까 생각한다. 그 몇 가지 방법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학교가 지역 내 기업체(지자체 포함)와 협의하여 다양한 직업체험을 제공하는 「1校 1社 직업체험의 날」을 운영한다. 전경련, 상공회의소, 지자체 등에서 추천하는 기관과공동 추진을 통하여 특강 및 직업 설명회, 현장 견학 및 체험, 인터뷰, 직업 박람회 공동 개최, 직원과 학생의 멘토링제 운영 등을 실시하는 것이다. 둘째, 기업의 CEO 특강 및 현직자의 직업 설명회를 학교에서 갖는다. CEO가 특강을 요청하는 학교를 방문하여 직업세계의 변화 및 성공 사례 등에 관한 「CEO 특강」을 실시할 수도 있다. 혹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업 종사자가 직업설명회를 가져 직업 소개 및 직업 수행에 요구되는 능력, 직업 에피소드 등을 설명한다. 기업체에서는 출장처리 및 자기계발 실적으로 인정하고, 학교에서는 예산의 범위 내에서 강사료를 지급한다. 셋째, 현장 견학 및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학생들이 관공서나 공장이나 회사 등을 방문하여 견학하고 정보를 수집하거나 간단한 직업 체험을 실시하는「현장 견학 및 체험 기회 제공」이 있다. 현재 정부에서 시행 중인 「어린이 정부 체험」 행사와 연계하여 협조를 받을 수 있다. 넷째, 직업 박람회 등 직업체험 행사를 공동 개최하거나 지원한다. 현재 시․도교육청별로 실시되고 있는 행사에 기업체가 공동 참여하거나 지원한다. 다섯째, 학생들이 관심 있는 직업에 대한 면담 및 인터뷰 기회를 제공한다. 학생들이 기업체를 방문하여 직업 종사자와 면담하거나 인터뷰하는 기회를 가진다. 다섯째,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된 직업종합체험실을 운영한다. 기업의 대표적인 직무내용을 모형으로 제작하여 일선학교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학교의 실험실 등에 직업종합체험실을 설치한다. 지역 중심학교, 농․공업계 공동실습소, 각 시도별 거점 위치에 설치한 ‘직업종합체험실’을 활용한다. 여섯째, 학생들에게 부모님(또는 친인척 등)의 일터 방문 기회를 제공하는 「부모님 회사 탐방의 날」을 운영한다. 학생들이 부모님(또는 친인척 등)의 일터 방문하여 직업세계 체험하게 한다. 3~5명의 학생이 한 조를 이루어 부모님의 회사를 탐방할 수 있다. 일곱째, 대학교, 전문대학, 한국폴리텍대학, 실업계고등학교 등을 방문하여 교육 내용 및 교육 훈련 장비 등을 견학하고 전문가로부터 현장 교육을 받는「직업교육훈련기관 방문」도 생각할 수 있다. 여덟째,시도교육청별로 구성되어 있는 지역진로교육협의회의 20여개 기관과 진로교육인력풀(50개 직업별 직업체험 지원할 인력의 데이터베이스가 구성되어 있음)을 활용할 수 있다. 아홉째,다양한 직업을 가진 학부모, 학교 동창, 관내 우체국, 은행, 소방서, 세무서, 법원, 증권회사, 구청, 동사무소, 대학, 지역별 업종별 협회(예 : 미용사 협회, 의사협회, 한의사협회 등)에 공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하면 될 것이다. 열번째, 이외에도 학교에서 찾아보면학생들의직업체험을 도와주는 기관이 많이 있다.몇가지 예를 들면 Job School(한국고용정보원 및 각 고용지원센터), WISE 지원 사업(교육인적자원부), 과학기술 엠배서더, 닮고 싶은 스타과학자, 청소년 현장체험학습장 조성 사업(과학기술부), 청소년 산업 기술 체험캠프(산업자원부), 청소년수련관의 각종 수련활동(청소년위원회),청소년 인터넷방송국스스로넷, 서울에니메이션센타,아우성 센터,하자센터,대한항공정비소, 한국여성경영자 총연합회, 한국경제신문, 중앙일보 등에서 현재사업을 전개하거나 지원을 하고 있다. 5월이면 중간고사도 끝나고 소풍도 가고 현장학습도 가고 할 일이 많겠지만 여러 행사 중 학생들의 미래를 생각각하여 직업세계를 체험할 기회를 학교가 제시하여야 한다고 본다. 지난 2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각 시도교육청으로 협조공문이 내려갔으나 일선 학교 교육계획서에 많이 반영안된 것 같아 안타깝다. 이제 5월 스승의 날이라는 하루의 여유가 생겼는데 이날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직업세계 체험의 날을 편성하여 줄 것을 간곡하게 선생님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보통 일선학교에서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비감면과 급식비 지원등을 해주고 있다. 이런 제도가 없었다면 학교에서 점심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생이나 학비를 제때에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발생할 수 있다.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실시되기 이전만 하더라도 실제로 학비문제로 상당한 고통을 겪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의무교육실시와 함께 학비부담이 대폭줄었지만 아직도 줄어든 학비마저 부담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제도의 혜택을 꼭 받아야 함에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는 가정형편이 어려운데,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 못하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이다. 학교에서 가정형편을 제대로 실사한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다. 그런데 IMF이후에 학비감면이나 급식비면제등의 조치가 단행되면서 지원을 받지 않으면 손해본다는 식의 이상한 풍토가 조성되기도 했다. 이런 풍토와 함께 학교에서의 심사가 허술한 틈을 타고 실제로는 학비나 급식비를 납부할 형편이 되면서도 지원받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따라 교육부와 시교육청에서는 감면받을 수 있는 대상을 어느정도 기준으로 정했는데, 그 기준이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가 최우선이 되었다. 급식비는 그래도 어느정도 융통성이 있지만 학비감면의 경우는 기준을 거의 모든학교가 준수하고 있다. 이런 사정때문에 실질적으로 형편이 어려우면서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부모중 한쪽이 없거나 있더라도 중한 질병치료로 수입이 없는 경우에도 지원을 못받는 학생들이 있다. 특히 그 학생들의 경우는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문에 실제로는 형편이 어려우면서도, 지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전세를 살고 있다는 것을두고 그래도 형편이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수입이 없을 경우는 전세금은 가정형편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최근의 이혼률 증가와 함께 편부, 편모가정이 늘고 있다. 이 경우도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실질적인 혜택은 받지 못하고 있다. 담임교사가 학생과 학부모를 상담하여 상당한 객관성을 입증하더라도 학비감면의 경우는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한다. 실질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객관적으로 입증되더라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본다. 학비나 급식비지원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럼에도 기준에 밀려 지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최소한 담임교사가 비교적 객관적인 상담을 실시하여 추천한다면 지원해줘야 옳다고 본다. 물론 예산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해진 예산내에서 지원을 하다보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모두를 지원해주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가급적이면 실제로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해주기 위한 쪽으로의 개선은 필요하다. 담임교사나 학교에서 객관적으로 상담이 되었다면 그대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학생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담임교사의 의견을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의 경우는 자치단체에서 매달 일정액을 지원받는다. 그렇지만 형편이 어렵지만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는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다. 도리어 이들이 더 형편이 어려울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형편이 안좋은 학생들 모두에게 지원을 해 줄수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담임교사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쪽으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교육은 상식적 안목에서 지적 안목 형성으로의 변화를 의미하며, 지성인을 육성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목적인 미래지향적 활동으로써 치열한 국제 경쟁 사회에서 국가 흥망의 원동력이다. 수박 농사를 짓는 아버님을 도우며 원두막에서 글짓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주렁주렁 열린 수박을 따서 차에 싣고 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나가 팔아본 경험이 있는 중학생이 막상 수박에 관한 시험문제에서는 0점을 맞았다. 그러나 학원에 다닌 도심지 학생은 “박과에 속한 1년생 덩굴 풀”이라고 암기해 100점을 맞았다는 픽션이 있다. 이것은 시골 학생은 상식적 안목에 머물고 도심지 학생은 지식이 암기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본질수업을 전개하여 질적 평가를 실시하면 도심지 학생은 0점이고 농촌 학생은 100점이 될 것임에 분명하므로 수업과 평가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입시교육은 칠판에서 수영과 논술 그리고 영어를 가르치고, 도덕과 수학 그리고 과학 교육이 전개되고 필기시험에서 100점만 맞으면 실력이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공교육은 수영장을 찾고, 논술지도에 앞서 다독부터 시키며, 원어민 수업을 전개하고 도덕적 논의를 시키며 수학이나 물리학 그리고 철학을 하도록 한다. 즉, 자기 주도적 지식 구성학습으로 스스로 지적 안목을 형성하게 한다. 그러므로 학교에는 과학실과 도서실, 어학실, 정보실, 실습실 등이 존재한다. 공교육과 사교육은 목적과 방법이 다르고 평가가 다르다. 사교육이 명문대 입학을 목적으로 학습문제(시험문제)를 제시하고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는 개념, 원리, 법칙을 다양한 방법으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면 학생들은 앉아서 주의 깊게 듣고, 이해된 내용을 암기해서 시험문제가 나오면 기계적으로 대입(代入)해서 푼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이며, 학교에서 방과 후에 개인차에 따라 이해력과 기억력 신장을 위한 보충학습을 하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따라서 입시교육은 테니스는 교사가 하고 학생은 구경하고 있는 모습에 비유되기 때문에 비정상적이라고 평가되고 수박 겉핥기식 교육이라 혹평 받고 있다. 또한 입시교육은 학생들의 이해력과 암기력, 단순 사고력이 신장되지만 타율, 암기, 경쟁을 학습하기 때문에 공교육에서 추구하는 인간상(건강, 자주, 창의, 도덕)과는 정반대의 인간이 육성될 수가 있다고 분석되고 있다. 특히 대학에 들어가면 강의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기초교육을 받아야 하며, 취업 후 또다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를 두고 교육적 낭비라 질타하고 입시 지향적 교육행태를 망국적 병리 현상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지금 각급 학교 교실에서는 미국 등 선진 국가처럼 교사가 학습목표를 제시하면 학생들이 학습문제를 선정(수준별 학습을 위해)하고 스스로 인터넷, 도서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여 가설(아이디어 창출)을 설정하고 협동으로 실험, 관찰, 성찰, 토의, 조작 등을 통하여 스스로 개념, 원리, 법칙을 구성시켜야 한다. 즉 학생들이 학문을 듣고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 지식 구성학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혁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과학적 탐구력과 창의력이 신장되어 학생의 삶과 대학을 포함한 평생학습에 필요한 수학 능력 신장은 물론 자주성과 도덕성(협동성), 창의력이 육성되고 학습량(많은 문제 풀이 연습)이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확보된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건강관리와 논술의 기초가 되는 독서와 인성의 요인이 되는 사회성, 정서 함양 등 사람다운 사람 육성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입시교육이 대증요법이라면 공교육은 보약처방이라고 할 수 있고, 입시교육이 ‘수박 겉핥기식’ 교육이라면 공교육은 ‘수박 재배식’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자체에서는 고장을 떠난다고 지금 당장 대증요법을 쓰지 말고 먼 훗날을 내다보고 보약처방의 용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지방 고등학교를 명문 고등학교로 만들어 학생들의 인성과 창의성을 길러 놓으면 이들이 오히려 부모님과 고향을 생각하고 취직도 잘하고 고향에 남아 창의적 사업을 일구어 고향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물론 개인차에 따라 어떤 학생은 명문대학에 들어가 지도자가 되겠지만 그것만이 성공은 아니며 교육의 본질적 목표는 지도자가 되기 전에 우선 사람다운 사람을 육성하는 일이다. 그리고 인재의 현대적 의미도 낙제생이었지만 발명왕 에디슨과 같이 인성과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이거나 소프라노 조수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야구선수 박찬호 등과 같이 예·체능이 탁월한 사람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 필자가 지방에서의 지도자(군수, 의장, 군 의원, 사회단체장 등)의 특성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명문대학 출신이라기보다는 애향심과 사회성, 도덕성, 협동성과 같은 인성과 창의성이 탁월한 인격자, 즉 교육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에 부합된 민주시민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 사회는 공무원, 회사원은 물론 자영업자까지도 학벌보다는 인성·창의성이 우수한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 환경이 그렇게 조성되어야만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치열한 국제 경쟁사회에서 국가가 생존할 수 있다. 근래 지방자치단체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는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자주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공공 기관이 사적 목적 실현을 위한 입시교육을 조장하는 부적절한 행정으로써 국가백년대계를 저해하는 오점을 남길 수가 있다. 따라서 공교육은 현행 법제도와 같이 전문기관인 교육청에 위임하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부족한 예산을 확충하여 적극 지원함으로써 본질적 수업을 통한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신뢰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슬기로움 교실수업 및 평가 방법의 혁신에 대한 계속적인 노력도 절실히 요구된다.
다문화 교육은 남을 이해하는 교육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되찾는 신뢰의 교육이다. 다문화 교육이란 타자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질적인 다문화 맥락과 상황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 영어의 중요성은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지만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더 많은 다른 세상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지 않다. 국제이해교육(EIU, Education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이란 개념은 아직도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그리 친숙하지 않다. 대학에서 조차도 국제이해교육이나 개발교육, 인권과 평화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영어와 취업에 필요한 실용 교육이 갈수록 범람하고 있다. 나와 다른 남도 인정해야 국제이해교육은 세계시민 교육이나 지구촌 교육, 다문화 교육, 평화와 인권 교육, 지속가능한 발전과 환경 교육, 민주주의와 관용 교육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개념들은 교육 현장에서는 너무 거창할 뿐 아니라 이념과 가치 중심의 교육이라 효과적인 교육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러면 왜 국제이해교육인가? 필자는 국제이해교육이 한국의 학교교육에서 왜 절실히 필요한지에 대해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자 한다.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겪고 있지만 가장 난감한 경험으로 말하는 것은 목욕탕에 들어가다가 제지당할 때이다. 한국인 손님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여 피부색이 검은 외국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것이다. 어떤 외국인은 피부가 검다는 것을 마치 더럽다고 느끼며 함께 앉으려고도 하지 않는 한국인을 만날 때 더욱 서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있지만 동남아 여성들과의 결혼을 알선하는 업체들은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도망가지 않는다’는 식의 광고를 버젓이 언론에 내기도 하였다. 19세기 노예상인들이나 했던 인종차별과 야만 행위를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 한국인들의 모습은 더욱 문제가 많다. 한류 때문에 일부 외국인들이 한국의 대중문화 스타들을 좋아하고 한국의 드라마와 가요, 영화를 즐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류가 한국인들의 ‘함께 살지 못하는’ 배타적 모습을 바꾸어 주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해외 한인 사회는 배타적이고 현지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유색인들에게는 매우 권위적이고 차별적이기도 하다. 현지 문화나 언어를 알려고 하지 않으며 반말과 욕, 고압적 태도, 때로는 폭력을 쓰기도 하여 현지인들에게 반감을 사기도 한다.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몽골과 같이 한인들의 사업체가 많은 지역에서는 한인들의 부적절한 태도 때문에 현지 언론에서 ‘야만적인 한국인들’에 대한 기사가 실리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해외에서 더욱 끼리끼리 뭉쳐 산다. 대부분은 한인 거주 지역에 모여 살면서 한인 교회에 나가고, 한인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며, 한인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한인들과 사업을 하고, 한인들 끼리 골프를 치고, 한인 노래방에서 모여 떠들고 논다. 다른 민족 집단들도 해외에서 일정한 배타성을 지니고 현지적응하고 있지만 한인사회는 유별나다고 평가된다. 왜 그럴까? 어려서부터 함께 사는 교육과 훈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정과 사회가 끼리끼리 문화를 조장하고 강화하기도 하지만 학교교육에서도 더불어 사는 세상을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다른 종족(ethnic)에 대한 감정은 원초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만들어지고 문화적으로 형성되고 학습되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게으르고 무식하고 가난하고 더러운 것으로 여기면 그러한 부정적 종족 감정이 후세들에게도 학습될 것이다. 반면에 나와 다른 사람들은 내가 지니지 못한 아름다운 특성을 지닌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게 되면 함께 사는 긍정적 종족 감정이 전승될 것이다. 나와 다른 피부색과 머리, 복장과 음식습관 등에 익숙해지고 이러한 차이들을 즐기고 아름답게 생각하는 문화 다양성 교육과 훈련이 절실하다. 실제로 손으로 음식을 먹는 서남아시아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면 이들과 함께 손으로 음식을 나누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 문화가 다르고 세상을 보는 눈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먹고 일하고 사귀고 결혼할 수 있는 학습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유네스코의 ‘21세기 교육위원회 보고서’(1995)는 ‘함께 사는 학습’과 ‘지구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이해교육은 함께 사는 학습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다양성과 상호의존성을 이해하며,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깨닫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세계인이 될 자신감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진정한 신뢰(confidence)는 자신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인식함으로부터 싹튼다. 우리의 학생들이 세계의 청년들과 함께 어울리고 ‘또 다른 세상’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으려면 자신에 대한 깊은 신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과연 우리의 아이들은 세계 속에서 어울려 살 수 있는 진정한 신뢰와 자신감을 지니고 있는가? 필자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문화와 사고방식, 종교와 일상의 습관에 매몰되어 있는 자는 아집과 독선, 과신과 오만을 범할 수는 있어도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진정한 신뢰와 자신감을 갖기는 어렵다. 오늘날의 세계는 누구도 국가 경계와 민족에 갇힌 채로 살아갈 수 없다. 갈수록 상이한 민족과 문화들 간에 교류가 많아지고 상호의존성은 심해지며, 인간과 기술, 자본, 물질과 상품, 정신과 이념, 이미지와 기호들이 세계를 넘나들며 범람한다. 어떤 것이 한국적인 것인지, 어떤 것이 미국문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화의 혼성화와 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수천의 상이한 민족 집단들이 각각 다른 세계관과 언어, 종교, 습관을 고집하면서도 다른 문화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살 수밖에 없다. 100% 미국인이 없듯이 순전한 한국인도 없다. 혈연적으로 순혈주의란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더욱 더 그렇다. ‘잡종과 혼성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학생들에게 정체성의 혼란은 당연하다. 이러한 다양성의 시대에는 다양한 문화와 민족 집단들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싹트게 된다. 다문화 교육은 남을 이해하는 교육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되찾는 신뢰의 교육이다. 다문화 교육이란 타자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질적인 다문화 맥락과 상황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 영어의 중요성은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지만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더 많은 다른 세상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사회 교과서에는 이슬람교도들이 가장 금기시하는 마호메트의 초상화를 삽입하기도 하며, 신세계를 아직도 콜럼부스가 발견한 것으로, 오세아니아를 백인들의 대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다문화 교육에서 다른 문화는 외국의 이문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지역문화(local culture)와 지방의 전통, 소수자들의 문화와 다양한 정체성은 모두 다문화 교육에서 중요하다. 다문화 교육은 세계를 가르칠 뿐 아니라 지방을 가르치며, 타자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도록 하는 교육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이 그 다양성 때문에 아름다운 것과 같이, 모든 인간 집단과 문화도 다양성 때문에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당연히 ‘나’라는 존재는 세계에서 유일한 개체이고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개성을 지닌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다문화 교육이고 국제이해교육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자신감을 찾아주기 위해 국제이해교육은 절실히 필요하다. 국제 사회 정세에 대한 이해 교육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이루어졌던 인류 문명의 진화보다도 더 큰 변화가 최근에 일어나고 있으며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우리가 어디로 질주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볼 여유도 없이 무한경쟁 속에서 우리는 남을 추월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이러한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에 적응하며, 세계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제이해교육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種)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 자연계의 이치일 뿐 아니라 인류사회의 진화과정이기도 하다. 최적의 적응을 위해서는 변화의 본질을 이해해야 하며 세계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국제이해교육인 것이다. 변화는 생명복제나 나노 기술, IT, 항공우주공학과 사이보그의 출현과 같은 기술적 혁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기술 혁명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이 인간의 가치관과 생활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더욱 가깝게 하는 혁명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변화의 본질은 기술 혁명이 초래하는 삶의 양식과 사고의 혁명에 있다. 21세기의 인류사회는 생명과 인간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과학기술의 발전은 결혼과 양육, 교육과 노동, 여가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고 있다. 인간 수명의 연장과 의료산업의 발달로 인해 전 세계의 인구학적인 변화가 초래되고 있으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들이 등장하고 있다. 민족과 국민국가에 갇혀 있던 문화는 폭발하듯이 국경을 넘어서 유동하고 있으며 소수자집단들의 다양한 대안적 삶의 양식이 등장하고 반문화와 대안문화가 범람하면서 기존의 주류문화에 도전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치관과 권위는 신인류의 등장으로 약화되고 대체되고 있으며, 문화와 가치관의 충돌과 이행 과정에서 갈등과 분쟁이 발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혁명과 동시에 종교적 근본주의와 전통주의가 다시 등장하기도 하고 문명의 충돌을 야기하기도 한다. 우리의 학교 교육은 이러한 세계 변화의 현상과 본질에 대해 얼마나 가르치고 있는가. 국제이해교육은 다양한 지구촌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변동과 교류, 충돌을 주목하고 기술혁명과 가치관의 변화를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세계 속에서 잘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다른 대륙과 다른 종교, 다른 문화에서 대두되고 있는 새로운 사상과 조류를 읽고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 모두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다. 이러한 세계이해교육은 신자유주의적 교육 담론을 통해 시장경쟁을 촉진하고 영어와 실용교육으로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영어권 중심의 일방적 세계화와 단일 문화 지배적 세계관이 아닌 보다 다원적이고 다양한 세계관을 가르치는 것이며 인류문화의 새로운 생존과 적응 양식을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다. 모두 함께 잘사는 세상 만드는 준비 국제이해교육은 참 권리 교육이다. 국제이해교육은 우리가 세계시민(global citizen)으로서 세계 시민권과 책임을 지닌 자들임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시민교육은 행동과 실천이 수반되는 권리와 책임 교육이다. 우리는 한 국가의 국민이기도 하지만 세계시민으로서 지구촌이 당면하고 있는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참하고, 평화와 공존, 상생이 가능한 지구촌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세계 문제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국제이해교육의 주된 교육과정은 평화의 문화를 만드는 평화교육, 소수자와 차별받는 자들의 인권을 이해하고 이들의 인권을 신장하도록 돕는 인권교육, 지속가능한 환경을 일구고 후속 세대가 환경과 조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환경 교육, 지구촌의 공동 발전과 국제협력을 통해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발교육, 다른 문화와 민족 집단을 존중하고 공존하도록 하는 다문화 교육 등으로 구성된다. 평화, 인권, 환경, 개발, 다문화는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이 모든 문제들은 다차원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으로 보아야만 한다. 국제이해교육은 지구촌이 당면하고 있는 이러한 이슈와 공통의 과제들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문제해결에 동참하도록 하는 실천 교육이다. 지구촌 시민으로서 코스모폴리탄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지니고 세계시민이 지녀야 하는 의식과 책무를 다하도록 하는 것이 국제이해교육이다. 따라서 국제이해교육은 아래로부터의 시민운동과 인권운동, 평화운동, 환경운동, 소수자 권익운동, 원주민운동, 문화 정체성 운동 등과 같은 실천적 프로그램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국제이해교육은 무엇보다도 현장성과 실천성을 강조하며, 학교에서만의 국제이해교육은 불가능하다. 국제이해교육을 통해 공적개발원조(ODA)가 확대되기도 하고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활동을 통해 지구촌이 함께 잘살 수 있는 각종 인도적 구호 프로그램이 확산되기도 한다. 또 소수자들이 무지개와 같이 화려한 색으로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획일적인 개발과 난개발에 저항하고 환경과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도록 하며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이 존엄성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인권사회를 실현하는데 기여한다. 국제이해교육을 통해 폭력과 차별, 전쟁이 우리들 안에 있으며 평화의 문화를 만드는 일도 우리 안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더 나은 세상, 모두 함께 어울려 잘사는 세상, 차별과 폭력,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들에게 국제이해교육은 더욱 절실하다. 교육에서부터 ‘소통의 장벽’ 없애야 국제이해교육은 단순히 국제화 교육이 아니다. 국제이해교육은 세계 속에서 참 인간성을 깨닫도록 하는 자기발견의 교육이고, 가치 교육이며, 인성교육이다. 국제이해교육은 개인과 개인, 교육자와 학생, 문화와 집단, 국가와 민족 간에 소통을 증진시키는 과정이다. 그리고 국제이해교육은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소통 증진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세계의 공통 문제에 참여하도록 하는 참여 교육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은 국제이해교육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교육 현장에는 제도적 장벽 뿐 아니라 세대 간, 문화 간, 교육 주체 간에 보이지 않는 소통의 장벽이 너무도 많다.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녀, 사회의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소통 장벽과 격차는 오히려 커져가고 있다. 소통이 없는 곳에서 ‘너’가 있을 수 없고 당연히 ‘나’도 있을 수가 없다. 소통이 없는 곳에는 세계도 지방도 있을 수 없다. 소통이 없는 곳에는 인권도 평화도 민주주의도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소통이 없는 곳에 국제이해교육은 없다. 국제이해교육의 출발과 내용, 방법, 성과는 모두 소통의 증진으로 귀결된다. 다양한 개인과 집단들 간의 보다 원활한 소통을 통해 평화의 문화가 구축되고 상호 공존하는 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소통은 결국 참여를 촉진하고 자발성과 자유가 신장되는 인류의 참 진보를 이루는데 기여한다. 영어교육도 역사교육도 사회교육도 과학교육도 다문화교육도 모두 소통 증진을 위한 것이며,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평화의 문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소통에 기반한 국제이해교육이 있는 현장에서 배타적 민족주의나 순혈주의가 있을 수 없으며 종교적 근본주의도 이념적 도그마도 있을 수 없다. 분쟁과 폭력의 싹이 사라지는 것이다. 문화는 인간을 위한 거울이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과 인간성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인류학자들은 “보편적 인간성은 있는가?”라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인간성에 대한 탐구는 다른 문화를 통해 타자를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이해교육은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나의 인간성을 이해하고 참 인간됨을 이루는데 기여한다. 모든 교육의 목적이 참 인간을 이루는 것에 있듯이 국제이해교육의 궁극적 목적도 참 인간성의 발견에 있는 것이다. 이제 국제이해교육이 전처럼 그리 거창하고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온누리안 → 코시안 → 다문화 가정 교육부는 올해 시행할 사업으로 늘어나는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습지원 강화와 다문화가정을 이해하는 사회 환경 조성을 위해 ‘다문화교육센터’를 설립, 운영키로 한다고 발표하였다. 낯선 용어인 ‘다문화가정’이란 말 그대로 단일문화가 아닌 문화적 배경이 다른 가정을 뜻하는데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부터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그 역사가 20년에 가까운 외국인이주노동자 가정과,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 시작인 국제결혼가정, 즉 결혼이민가정이다. 사회학적으로는 외국인이주노동자가정과 국제결혼가정으로 분리해서 부르기도 하지만 우리 교육현장에서는 모두 언어가 불편하고 문화충격을 겪고 있으며 교사의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한 소수자이므로 이들을 모두 다문화가정으로 아울러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고 교육부에서 판단하여 그대로 쓰고 있다. 국제결혼가정의 자녀들을 처음에는 혼혈아동으로 부르다가 이 명칭의 부정적인 의미를 없애려고 전북교육청에서는 정책을 시행하기 전 이름을 공모하여 ‘온누리안’이라고 부르고 있다. 경기도 안산에서는 마을 주민의 반이 외국인으로 구성되자 그 자녀들을 따뜻이 품어 안으려고 처음으로 ‘코시안’이라 부르기 시작했으나 차츰 아시아가 아닌 다양한 국적으로 대상이 확대되고 또 역차별 현상도 우려되던 바 결혼이주민 본인들도 ‘다문화가정’으로 불러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물론 언젠가는 이 말도 쓰지 않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필자가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해외파견근무가 계기가 됐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4년 동안 남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학교에서 근무하였는데, 그 때 이역만리로 이주해 와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자 애쓰며 정말 힘들게 살아가는 동포들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다른 언어, 문화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피부로 절감했다. 정체성 고민하는 이민 2세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그리고 그 자녀 세대들이 겪는 문화 충돌, 한국어와 한국식의 가정생활, 가치관과 아르헨티나라는 백인사회와의 생활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은 참으로 컸다.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다. 언어는 생존에 관한 문제이니 현지어인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다음이 정체성의 문제인데, 현지어를 몰라 당한 설움을 곱씹으며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페인어만 붙들고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나 의사, 예술가 등이 되어 성공한 사람들이 현지인 주류 사회와 어울릴 때가 문제였다. 현지인이 ‘당신은 한국 사람인데 한국은 어떠냐, 한국문화는 어떠냐’ 등을 물어보면 한글과 한국 문화를 모르는 자신의 모습에서 그 정체성에 혼란과 회의를 느껴 뒤늦게 한국을 찾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것을 많이 보았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부를 이룰지라도 자기의 고유문화를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오히려 현지 문화와 대등하게 어울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늘 심리적 열등감을 안게 된다는 걸 절감하고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를 가르치는 데 열성을 다하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영주권자이거나 시민권자이므로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아르헨티나에 살게 될 아이들이어서 학부모들은 스페인어 학습에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전교생이 바이올린을 배우게 하고, 레슨은 스페인어로 하되 곡은 아리랑이나 도라지 등을 연주하게 해서 전통 음악을 익히게 했다. 추석에는 학부모와 함께 한복을 입고 송편을 빚으며 윷놀이를 하는 등 전통문화를 알게 했다. 또 동요대회, 백일장 등을 열어 아이들이 한글을 수준 높게 접하도록 했다. 이러한 시도는 당장 아이들의 조부모나 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런 경험은 한국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이며 올바른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주리라 생각한다. 파키스탄 다문화가정 자녀 지도 귀국하여 2003년에 경기 부천 옥산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5월 경 부천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메리와 마훔이라는 파키스탄인 자매를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데리고 왔다. 한창 미등록노동자에 대한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웠는데 부천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는 당시 교육부에서 막 발표한 ‘출입국사실증명서 또는 외국인등록사실증명서 제출만으로도 초등학교 입학이 가능하다’는 지침 서류 한 장을 가져왔지만 그 아이들 부모는 미등록노동자여서 아무런 공식 서류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아직 시행령이 내려오지 않은데다 아이들이 한글을 몰라서 학업에 지장이 있다며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필자가 나서 한글 지도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하고 어렵게 자매를 입학시켰다. 당시 언니 마훔이는 4학년 나이이고 동생 메리는 2학년 나이인데 둘 다 2학년 같은 반에 있게 되었다. 1) 한글 교육 남동생도 한 명 있는 메리와 마흠이 자매는 한국에 온 지 4년이 지나 우리말은 잘했지만 글은 아무 것도 몰랐다.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던 그 아이들은 그토록 고대하던 학교를 다니게 되어 기뻐하면서 열심히 공부했고, 필자도 학교에 약속한 대로 매일 열심히 한글지도를 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늘 보던 벵갈어와는 다른 한글을 보고, “왜 한글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가 많아요?”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자기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무척 신나했고, 힘들어 할 땐 가끔씩 간단한 산수 문제를 풀게 해 주면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자기주장이 분명한 이 자매는 반의 다른 아이들과 차츰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2) 한국 아이들과의 문화 충돌 극복하기 한국 아이들은 “선생님, 쟤들은 음식 다 안 먹고 버려요”, “ 선생님, 쟤들은 냄새나요”, “이상한 옷 입고 와요”하면서 그 파키스탄 아이들이 자기들과는 다르고 별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자매가 다투거나 울 때 까닭을 물으면, 음식이나, 냄새, 의복 등이 다르다는 것으로 따돌림 당하는 일이었고 그만큼 학교생활이 점차 위축되어갔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는 타일렀지만 학교 전체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으면 메리와 마훔이가 계속 상처를 받겠다 싶어 전교 재량학습 시간을 만들어 국제이해교육을 했다. 메리와 마훔이에게 예쁜 전통의상을 입고 오도록 하고 전교생에게 파키스탄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가르치게 하자 처음엔 쑥스러워하다가 아이들이 벵갈어를 진지하게 따라하자 차츰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인사말과 함께 인사할 때의 동작도 배우고, 파키스탄 전통 의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발표도 하게 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등의 이슬람교의 특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이해하고 도와주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사람 몸에서 나는 냄새는 다 다르다고 말하고 아이들과 반대 입장인 마훔이에게 한국인들한테서는 어떤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다. 마훔이는 머뭇거리며 “마늘 냄새가 나서 싫어요”하자 아이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서로 쿵쿵거리며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차츰 서로 따뜻하게 다가서게 되었다. 3) 네팔인 초대 국제이해교육 수업 한번은 외국인노동자센터의 도움으로 한국어를 잘 하는 네팔인을 교실로 초대했다. 한국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 중에는 의외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고, 이들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외국에 온 사람들인 만큼 대단히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다. 우리 학교에 와서 네팔 문화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여러 가지 사진과 네팔의 전통의상, 쌀, 화장품(헤라연지) 등을 가지고 와서 재미있는 수업을 해주었다. 필자가 전통의상을 직접 입고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때 네팔인에게 배운 ‘돈네밧’(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학년 말이 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필자는 외국에 다닐 때 모았던 소품들과, 국제회의에서 외국 지인들에게 받은 선물, 한복과 교환했던 그들의 전통의상 등 외국 물품 이백여 점을 갖고 있다. 어느 날 이런 것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건 하나하나에 번호를 붙이고 설명을 써서 학교 축제 때 전시했다. 학부모 도우미들에게 먼저 설명하고 각 코너마다 안내를 맡겼더니 학부모는 신나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고 아이들은 갖가지 질문 속에 세계로 향하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4) ‘외국 노래 배워오기’ 숙제 여름방학 숙제로 ‘외국노래 배워오기’를 내주었다. 영어 노래는 제외했다. 인터넷으로 배워 오는 것은 금지시키고 반드시 사람을 만나서 배워오도록 했다. 아이들은 처음에 아는 외국인이 아무도 없다며 기가 막혀 했지만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노래를 배우게 된 과정을 보고서로 작성하게 했다. 사실 필자도 어떻게 될까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50여 명이 숙제를 해 왔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처음엔 이런 황당한 숙제를 내 주신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엄마와 함께 동대문시장에 갔다(동대문시장에는 뭐든지 다 있다).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 어떤 일본사람이 한국 사람과 서 있었다. 부끄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인사하고 사정을 말씀드린 뒤, 간단한 일본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 일본 사람은 신기해하며 노래를 가르쳐주셨다. 그런데 그 일본 사람이 부른 노래는 내가 아는 노래와 비슷했다. 어머니는 그 분께 감사하다고 차를 대접했고 그 분은 나를 많이 칭찬해 주셨다. 어려웠지만, 하고보니 참 재미있는 숙제였다. 이 숙제를 내 주신 선생님이 너무 멋있다.” 아버지의 사업장에 가서 현장 직원인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배웠다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 아이도 노래보다는 이스라엘에 대한 것을 더 많이 배웠다고 했고, 외국인과 직접 만나 이야기한 것이 아주 큰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 밖에도 엄마 친구의 식당에서 일하는 연변사람에게서 중국노래를 배워 온 아이, 옛날 살던 동네에 찾아가서 필리핀 사람한테 타밀어로 노래를 배워 온 아이, 외국인노동자센터로 찾아간 아이 등 이 숙제의 파급효과는 아이들이 외국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학부모들도 외국인에게 부탁하는 처지가 되어 짧은 시간이지만 어떤 인간 대 인간 관계를 만들어낸 점이다. 아이들도 외국인을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숙제를 해 온 아이들에게 상으로 몽골에서 사 온 몽골 전통 주택인 게르 모형을 한 채씩을 주고, 필자가 몽골에 가서 배워 온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5) 지역축제 참가 가을이 되어 ‘우리도 부천을 사랑해요’라는 주제로 열 세 나라가 참가한 이주노동자 축제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행사에 참여한 내용을 보고서로 쓰고, 그 행사에 참가한 각 나라 사람 7명을 만나서 이름을 써 오도록 했다. 아이들은 행사장에서 각 나라 부스를 돌아다니며 마치 여권에 도장 찍듯이 각 나라의 국기가 새겨진 도장을 책자에 찍기도 하고 음식도 먹고, 여러 가지 볼거리도 접했다. 다음 가장 큰 고민인 숙제를 하기 위해 아이들은 ‘헬로우’, ‘익스큐즈미’, ‘플리즈’, ‘왓츠 유어 네임’, ‘땡큐’ 등의 영어를 직접 외국인에게 써서 물어보았다. 능숙한 한국어로 되돌아오는 대답도 있었고, 통역 자원봉사자들을 통해서 이름을 알아 온 경우도 있었다. 몽골 부스에 가서는 그 분들의 친절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학교에서 배운 몽골노래도 부르고 왔다고 했다. 그 몽골 사람들은 힘들게 살고 있는 한국 땅에서, 한국아이들을 통해서 자기 나라 노래를 듣는 순간 그 느낌이 어땠을까? 또한 각 부스에 있던 이주노동자들은 행사에 와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자신의 이름’을 물어보고 또박또박 공책에 적어가는 아이들에게서 어떤 걸 느꼈을까? 아이들은 훌륭한 민간외교를 국내에서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거부감’ 먼저 없애줘야 다문화이해교육의 측면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이주노동자 자녀여서 본국으로 돌아갈 아이든지, 결혼이민자가정의 자녀로서 다른 외모를 가진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살아갈 아이든지, 반드시 이중문화의 당위성을 가르쳐야 하고 두 문화 모두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해야 바르게 자랄 수 있고 나라의 앞날도 밝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특히 그 부모가 자기 문화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떳떳하게 가르치고, 아이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학교가 앞서서 이끌어 주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둘째,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대하는 일반 어린이들의 마음가짐이다. 이주노동자의 자녀든, 결혼이민가정의 자녀든, 혹은 외국인이든 우리는 모두 한 사회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동등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분명하게 해야 하며 다른 문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게 해야 한다. 다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자기 문화 속에 고립된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화는 자신과 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아무 준비 없이 있다가는 반드시 큰 상처를 입을 게 훤한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이유가 없으며 이에 대한 대책을 더 늦출 수는 없다. 특히 우리에게 다문화이해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오랫동안의 일제지배와 군사지배의 틀 안에서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가면 다 설렁탕으로 통일한다. 누가 다른 걸 시키려고 하면 ‘아, 다 같이 통일 하지…’하면서 그 사람에게 눈치를 준다. 이처럼 틀리거나 다른 걸 우리는 잘 참아내지 못한다. 다 같이 이민을 와도 일본인들은 현지사회에 섞여 들어가서 살지만 한국인은 현지사회와 동화하지 않고 따로 모여 산다. 한국인이 하나둘씩 모이게 되면 그 거리, 마을 전체는 한글로 도배를 한 간판들만 있게 된다. 칠성복덕방, 수정미용실, 은혜목욕탕, 영원비디오. 무궁화노래방…. 스페인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거리에 들어와 본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기네 땅에서 알 수 없는 글자로만 된 광고 간판들이 몇 블록이나 되면 느낌이 어떨까? 현지인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고민은 전혀 하지 않는 한국인들이기에 더욱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 개인의 존재가 독립된 존재가 아니고, 온 세상이 하나라는 인식,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의지하지 않으면 개인의 존재 자체도 위태롭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회전체의 다문화에 대한 열린 인식이 필요하지만, 급한 것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맡고 있는 담임교사와 전 교직원의 열린 인식과, 학부모의 바른 이해, 아울러 교육의 테두리를 제시해주는 관계부서의 실질적 지침이 있어야겠다. 이로써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앞날에 희망이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이주노동자자녀든, 결혼이민자가정의 자녀이든 반드시 이중문화의 당위성을 가르쳐야하고 두 문화 모두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해야 한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특히 그 부모가 자기 문화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떳떳하게 가르치고, 아이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학교가 앞서서 이끌어 주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거짓말을 많이 하는 우리 사회 지난해 법무부장관이 어느 조찬 모임의 강연에서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범죄 실태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를 인용해 유명 일간지의 칼럼니스트가 전한 내용이 아직도 큰 충격으로 남아 있다. 이 칼럼이 전한 바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대표 범죄는 위증, 무고, 사기 세 가지이며, 인구 비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비교로도 2003년 우리나라의 위증은 일본의 16배, 무고는 39배, 사기는 26배나 많았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의 인구가 우리의 3배 가까이 되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위증, 무고, 사기 건수는 엄청나다는 것이다. 이런 위증, 무고, 사기의 공통분모는 ‘거짓말’이며, 한마디로 우리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는 국민이라는 것이다. 강연에서 그 법무부장관은 “검찰 업무의 70%가 이 세 가지 범죄를 처리하는 데 써야 한다”고 했다. 또 “피의자들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사기 사범의 경우 기소율이 19.5%이고, 위증이 29%, 무고가 43.1%”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적으로도 우리나라 대표 범죄가 ‘사기’라는 인식이 있다”며 “최근 진행된 큰 의혹사건에서도 보듯이 ‘거짓말’이 너무 횡행하는 것을 개탄했다”고 전했다. 어찌해서 우리는 거짓말쟁이가 이렇게 들끓는 사회 속에서 살게 되었을까. 그 원인과 책임으로는 지난 반세기 간의 혼란했던 사회, 가정교육의 부실, 학교교육의 미흡 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웠다. 빈곤·정치적 혼란·이념적 갈등·급격한 산업화 등에 따른 사회적 대변혁을 거치면서 무엇보다 우선 먹고 살아야 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아야 할 만큼 현실은 각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학교교육도 일반사회의 신뢰를 받지 못했고, 중요한 도덕교육이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학력만능주의에 밀려서 소홀히 다루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핵가족화와 물질만능주의 풍조에 밀려 가장 중요한 가정교육도 인성교육에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음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해방 이후의 혼란기에 청소년 시절을 보내야 했던 우리 세대보다, 경제가 호전된 이후에 자란 젊은 세대가 더 착하고 순수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안정된 사회에서 자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체로 더 순수하고 정직하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과 남을 속이는 것이 모든 인간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며, 비난받아야 하는가는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살만한 사회 또는 평화로운 사회란, 그 구성원이 정직하고 남을 거짓말로 속이려고 하지 않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든 국민, 특히 우리 교육자들은 깊이 반성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열거한 이유들 중에서도 그간 교육에 종사했던 우리들의 책임이 어느 다른 원인보다 더 무겁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 간 신뢰도가 경제 발전 좌우 1992년에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이라는 책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교수는 1995년에 신뢰: 사회적 미덕과 번영의 창조(Trust: The Social Virtues and the Creation of Prosperity)라는 책에서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는 데 ‘사회적 미덕’으로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러 나라와 민족의 예를 들어가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즉, 그 사회의 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깊을수록 사회 조직의 형성이 쉽고 활발해지며, 보다 큰 자본의 형성도 원활해져 결국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서로가 믿지 못하는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적·경제적 조직과 협력이 어렵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하는 큰 자본의 형성도 어려우며, 또한 그 규모도 자연히 작아지기 마련이란 것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뢰 수준이 경제적 번영 달성에서 차등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와 같은 사화구성원 간의 신뢰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과 ‘자동적인 사교성(spontaneous sociability)’이라는 국민의 건전한 자질(장점)로 보면서, 독일·미국·일본 등이 세계의 주도적인 경제대국이 된 것도 이와 같은 사회적 자본이 큰 이유라고 설명한다. 사회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많으면 경제적 거래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그 사회의 경제활동의 사회적 비용을 경감시켜 그 사회의 경제적 번영에 공헌하게 된다고 한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공장에서 시작되어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군살 없는 생산방식(lean manu facturing)’을 모방한 미국의 자동차공장은 별로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그는 그 이유가 일본 노동자들의 상호 간 신뢰관계, 즉 쉽게 따를 수 없는 문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뢰관계를 사회·경제적 발전의 중요 요인으로 보는 그의 견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정직한 사회 만들기위해 노력하자 우리가 채택한 시장경제체제는 자유로운 계약으로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준수해가며, 사유재산권을 지켜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정직하지 못하고 남을 속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한 사회에서 사회구성원 간에 신뢰가 두터워지기를 바랄 수 없음은 물론이다. 특히 근래에 채권자와 채무자에 대치(代置)해서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가르는 풍조는 도덕 불감증을 조장시킬 뿐만 아니라 거래상대를 불신케 하는 결과를 낳게 한다. 시민 상호 간의 신뢰가 두터운 사회에서는 계약내용이 잘 준수되며 거짓말로 상대를 기만하는 것을 무엇보다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문화가 정착하게 마련이다. 우리들의 경제활동이란 사회생활의 중요 부분을 나타내며, 그 사회를 형성하는 다양한 기준·규칙·도덕적 의무 그리고 이들 이외의 관습 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후쿠야마 교수는 설명했다. 따라서 경제생활의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어떤 국민의 복지 및 다른 국민과의 경쟁력(결국 국제경쟁력)은 그 사회에 널리 보급되어 있는 문화적 특징, 즉 그 사회의 고유한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직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문화, 환언하면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문화가 그 민족이나 국가의 ‘달성 가능한 번영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얼마 전 만났던 법조계의 한 사람은 지루한 소송절차를 거쳐 승소하고도, 상대방의 간교한 술책으로 인해 자기의 채권을 실현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실정을 개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도 태연한 사람이 많은 우리 사회를, 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한 단계 더 높은 사회로 도약·발전시키려면 정직하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선 우리 교육계부터 명심해야 할 것이다. 즉, 우리의 부끄러운 거짓말 문화는 모두가 갈망하는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사회와 가정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우리 교육자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Q1. 시간 외 근무수당 정액분은 월간 출근(또는 출장) 근무일수가 15일 이상인 자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1일 1시간씩 주어지는 육아시간을 활용해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시간 외 근무수당 정액분을 지급받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1. 여교원 육아시간 활용의 경우 「국가공무원복무규정」 제20조(특별휴가) 제4항의 규정에 따라 생후 1년 미만의 육아를 가진 여자공무원은 1일 1시간의 육아시간(특별휴가)을 얻을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또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규정」 제15조와 동 지침의 “일반대상자의 시간 외 근무수당 정액분 지급”의 규정에 의하면 월간 출근 근무일수가 15일 이상인 자에 대하여는 별도의 초과근무 명령 없이 월 15시간분의 시간 외 근무수당 정액분을 지급하도록 돼 있습니다. 따라서 여자공무원이 육아를 위하여 특별휴가(1일 1시간)를 얻었다 할지라도 정규 근무시간 전후에 시간 외근무 여지가 있는 점과 특별휴가의 취지를 감안한다면, 육아를 위한 특별휴가를 활용한다 하더라도 시간 외 근무수당 정액분 지급을 위한 근무일수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Q1. 시간 외 근무수당 정액분 지급과 관련해 방학 중 자격연수에 참여하게 된다면 수당지급은 어떻게 되나요? A1. 우선 방학 중 시간 외 근무수당 정액분 지급과 관련해서는 방학의 경우 월간 출근(또는 출장) 근무일수에서 제외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학교장의 근무명령에 의해 특별히 출근하여 「국가공무원복무규정」에서 정한 근무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에는 정규 근무일로 간주, 월간 출근(또는 출장) 근무일수에 포함하여 시간 외 근무수당 정액분을 지급받으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방학 중이라도 학교장의 근무명령에 의해 자격연수에 참여(출장처리)하는 경우, 이는 정규 근무일로 간주해 시간 외 근무수당 정액분을 산정함이 타당합니다. 다만 방학 중 자율(자비)연수의 경우에는 시간 외 근무수당 정액분 지급 출근일수에서 제외되며, 학교장의 허가를 받았다 할지라도 본인의 희망에 의한 (계절제)대학원을 수강하는 경우도 특정한 공무수행을 위한 출장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시간 외 근무수당 정액분을 받으실 수 없으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