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037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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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을 한·미 FTA와 비교해보고, 우리나라 국호가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뀐 이유를 탐구해 보는 역사수업이라면,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싹 날라 가지 않을까. ‘우당 청소년 토요역사교실’에서 역사 수업으로 교육기부를 실천하고 있는 서울 양정고 이두형(52·사진) 교사는 이렇게 운을 띄웠다. “역사를 ‘외우는 과목’으로 생각하고 시험을 위해서만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다른 강의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는 이 교사는 “우리역사교육연구회 회원들과 2년간 준비해온 프로그램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 우당역사교실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처음에는 일반 학교수업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던 학생들도 이제 독도, 동북공정 등에 대한 특강을 따로 열어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로 열의 높게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며 “‘진도’에 맞춰가는 수업에서 포인트를 바꾼 것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식민사관’에 젖어 암울하고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역사에도 멋지고 긍정적인 면이 많다”며 “역사 속 우리 민족이 대처했던 상황과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하게하면 자연스럽게 시야를 넓힐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우당역사교실’은 우당기념사업회와 우리역사교육연구회가 공동 주관하는 프로그램으로 총 12차시로 구성되며 3차시의 현장답사가 포함돼 있다. 3월 시작된 1기에는 38명의 학생이 수강했으며, 수업과정 중 소논문 공모전도 열어 서울 중산고 박진우 학생이 ‘독립운동가 우당을 통해 얻은 마음가짐’으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오는 12일부터는 4주 일정으로 2기 역사교실이 운영되며, 수강료는 무료다. 문의=우당기념관 홈페이지(www.woodang.or.kr)
김상용 부산교대 총장은 ‘2012년 국제협력 선도대학 육성지원 시범사업’에 선정됨에 따라 지난달 29일부터 6박 7일의 일정으로 에티오피아 아다마대를 방문했다. 부산교대는 앞으로 포항공대와 공동으로 에티오피아 교육지원을 위해 교육 전문가 연수, 현지 교사 초빙 워크숍, 교육기자재 지원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부산시교육청은 중견 교사와 새내기 교사가 짝을 이뤄 수업을 공동 진행하는 ‘수업 커플제’를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2일 밝혔다. 학생 지도 경험이 많은 중견교사가 수업 노하우를 나눠주고 새내기 교사는 학생과의 신세대 소통법 등을 공유해 수업의 질을 높이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수업 커플제는 같은 과목 수업을 담당하는 중견-신규교사 커플이 교사당 학기별 3회씩 1년에 6회 상대 교사에게 수업을 공개하거나 참관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두 교사가 수업 장단점을 분석한다. 부산시교육청은 “기존 공개수업과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업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소규모 수업커플제를 기획했다”며 “덕문여고, 연제고 등 부산지역 10개 고교에서 시범 운영 뒤 반응이 좋으면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중곡초(교장 심은석)는 1일 제90회 어린이날을 맞아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초청, 특강을 개최했다. 정 전 총리는 점심도 거를 만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어떠한 역경이 찾아와도 꿋꿋이 이겨내야 미래가 열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습관을 잘 형성해야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다”며 “공부보다 건강과 체력을 기르기 위해 한 가지 운동을 꾸준히 하라”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대만 원주민의 악습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오봉’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대한 희생이 사회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전했다. 이 학교 심은석 교장은 “특강을 통해 학생들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배우고 좋은 습관을 기르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기를 바란다”며 “아이들이 올바른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1일 한국교총 다산홀에서 ‘2012 누리과정 추진․운영 유공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표창 전수식’을 개최했다. 이날 전수식에서는 대학 교수, 현장 교사 등 누리과정의 정착에 기여한 관계자 122명에게 표창이 수여됐다. 전수식에 참여한 교과부 이주호 장관은 “누리과정의 현장 정착을 위해 지난 1년간 노력해온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며 “유아단계부터 누구나 질 높은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 공정사회로의 첫 걸음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표창자 대표로 인사말을 한 육아정책연구소 이영 소장은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을 이뤄낸 과업에 동참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누리과정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노력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령고가 1학기 제1회 고사에 학부모 감독 도우미를 초빙하는 1실 2인 감독제를 운영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학부모 감독 도우미제는 고사 감독의 노고를 교사와 분담하는 동시에 자녀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학생들을 바라보는 교사의 입장을 간접 경험하는 기회로서 활용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학부모 감독 도우미들은 한결같이 "선생님들과 함께 하루 2시간 꼬박 서서 감독을 하다 보니 힘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고충을 실감하게 됐다."며 "학교 교육에 대한 관심과 신뢰가 생기는 동시에 일부러 찾아뵙기 힘든 담임선생님과 자녀교육 상담도 가능해 좋다."고 말했다. 서령고는 앞으로도 제1회 정기고사에 이어 제2회 정기고사에서도 학부모님들의 도움을 받아 공정한 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부모님으로부터 바라는 것을 조사해 보니‘잔소리하지 않기’,‘핀잔주지 않기’,‘잘못한 점 너그럽게 용서해주기’와 같이 주로 대화에 관련된 것들이 많았고, 자녀들로부터 부모님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자녀의 1등 성적표’였다고 한다. 이렇듯 자녀와 부모 간에 기대하는 바가 어긋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자녀들이 해맑은 웃음 속에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며 살길 원하지만, ‘언어폭력=학교폭력’으로 이어지는 등식은 5월을 맞이하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가 되었다. 최근 한국교총과 교과부에서는‘학교폭력, 언어문화 개선을 통해 극복하자’는 취지로 발대식과 워크숍을 가지고 학교의 언어문화를 선도하기 위한 교육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그 필요성과 방향에 대하여 전적으로 공감하며, 학교폭력 문제를 사회전반에 걸친 언어문화의 개선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이러한 노력이 효과를 거두려면 그 출발점은 가정에서의 대화 회복이 되어야 하며, 특히 삐뚤어진 자녀들의 말투를 바로잡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야, 이거 치워!” “남이야 치우든 말든…” “이게 콱, 한 대 맞을래, 두 대 맞을래?” “뭐? 네가 뭔데 난리야” “됐거든.”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흔히 듣게 되는 이러한 말투를 들을 때마다 그러한 언어 입력에 대한 책무성에서 가정과 학교는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가정은 결정적 시기에 자녀의 말투가 형성되는 기초 공간이 되며, 학교는 또래 활동과 문화를 통해 상호작용의 언어를 습득하는 공간이다. 각 가정마다 사용빈도가 높은 언어 목록이 있다. 그리고 주로 등장하는 말투에 따라 가정의 언어문화가 결정되어진다. 담임학급을 지도하던 때에,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그들이 하루 동안 사용한 대화 목록을 적어보게 하였다. 학생들이 제출한 대화의 목록을 살펴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정과 학교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서로간의 이해와 배려의 통로가 되기보다 다툼과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의 씨앗이 되고 있었다. 필자는 문제를 일으킨 대화글을 재구성하여 역할극으로 연출하고, 대안적인 대화법을 지도하기도 했다. 그때 생각깊은 어린 제자가 던진 말을 잊을 수 없다. “선생님, 차라리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하루를 지내면 그런 다툼은 없지 않을까요?” 상호 이해와 존중의 도구가 되어야 할 언어가 분쟁의 도구가 되고 있음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될 때이다.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기본 목적은 이해와 필요의 충족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서로간의 존중이 바탕이 될 때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대화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기술을 갖추는데 무관심하다. 우리는 통제되지 못한 감정 표출과 상대방 제압의 도구로 언어가 폭력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앞뒤를 가리지 않는 공격적인 말투에 심각하게 습관들여져 있다. 부모나 교사가 사용하는 말투는 그것이 좋거나 나쁘거나 기억이 유지되는 한 아이에게는 지워지지 않을 영향력을 발휘한다. 링컨을 위대한 지도자로 만든 힘도 히틀러를 세기의 전쟁광으로 전락하게 만든 것도 그 바탕에는 그들의 인격을 조성한 특유의 말투가 있었다.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다.” 링컨에게는 그의 인격을 빚어주기 위한 사랑이 대화의 상대자로서 어머니가 있었던 것이다. 자녀의 언어가 건설적인가 아니면 파괴적인가에 따라 인간관계 기술이 달리 형성되어 진다. 자녀의 대화를 주의 깊게 모니터해 보면, 대화 속에 담긴 생각을 읽을 수 있으며,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언어는 시와 사랑을 읊어내는 평화의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온갖 악한 말과 나쁜 행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대화의 고삐를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의 말(言)이 결국 통제하기 어려운 야생의 말(馬)이 되지 않게 하려면 먼저 입의 말을 통제하는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부모들의 교육열은 학교교육에 만족하지 않고 사교육이라는 경쟁적인 교육을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 국민의 높은 학력과 경제성장은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 교육은 한 인간의 삶의 질뿐 아니라 국가 성장의 원동력이므로 모두가 관심사인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그 변화에도 민감하며 모든 국가가 교육 개혁을 위해 앞을 다투고 있다. 즉 다가올 미래사회를 예측하고 이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창의력을 가진 인간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젝트 개발은 보이지 않은 전쟁이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디지털 혁명은 인터넷 붐을 일으켰고, 각종 전자 기기의 대중화는 정보화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디지털은 국가산업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를 몰고 왔다. 스마트(smart)화, 인공지능화, 상호 연결성, 맞춤화, 개방화 등을 그 본질적인 속성은 제2의 디지털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스마트 시대, 세상은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 스마트 기기, 스마트 사회, 스마트 경영 등은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 각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말이 바로 ‘스마트’다. 휴대폰에서 시작된 스마트 혁명은 단순히 전자 기기의 컨버전스(convergence)와 다양한 컨텐츠(scontents)·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의 이용이라는 차원을 넘어 국가 산업,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큰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삼성과 LG는 이러한 분야에 기업의 명운을 걸고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요즘 우리 교육의 새로운 컨셉(concept)인 정보통신기술(ICT)의 결합에 의한 스마트교육이다. 스마트 교육이란 쉽게 말해 물리적인 공간과 가상적인 공간이 통합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시대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여 방대한 양의 정보나 자료를 접할 수 있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교실 안으로 끌어들여 학습할 수 있으며, 학습자의 수준에 맞게 가공하여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스마트교육은 모든 학습자의 요구와 수준, 그리고 흥미를 고려한 수준별 맞춤형 교육과 질 높은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미래와 사회 변혁을 위해 필요한 가치, 행동, 삶의 방식을 배움으로써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는 교육이라고 수 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질 높은 교육을 위한 스마트 ESD(Education Sustainable Development) 교육 역량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높은 성과도 많았지만 그에 따른 문제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교육의 획일화, 입시 위주의 교육, 과다한 교육열과 경쟁, 진로나 적성교육의 부재, 오로지 한길만 원하는 사회적 시스템, 인성교육의 부족 등이다. 특히 산업사회에 필요로 했던 대량 생산을 위한 교사 중심의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은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경쟁적인 대학입시의 과도한 지식 교육은 대내외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주입식 교육을 ICT 및 스마트 기술을 활용하여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ICT 강국답게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스마트폰이 2,000만대 이상이 보급되었으며, 아이패드, 갤럭시탭 같은 태블릿 PC도 학교 현장에 보급될 준비를 하고 있다. 애플에서는 디지털교과서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발표했고, 정부도 2015년부터는 모든 교과의 디지털교과서를 전학교에 전면 보급하려는 등 사회가 급박하게 변하고 있다. 이에 우리 학교현장에 있는 교사와 관리자, 학생, 학부모를 비롯한 교육공동체의 마인드가 스마트 교육에 적합한 패러다임을 갖추어가고 있다. 곧 다가올 스마트 시대 교육환경은 까다로워지고, 교육수요자의 니즈는 다양화와 개별화로 더 복잡해질 것이다. 따라서 스마트 교육을 위해 학교에서는 어떤 준비를 하고 대비해야 할 것인가. 첫째는 스마트 교육을 위한 교육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스마트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스마트 기기 활용을 위한 기본적인 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갤럭시탭'과 애플 시리즈 등 높은 하드웨어 사양을 내세운 100만원 가까운 고가 제품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지난해 말 아마존 '킨들 파이어'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올해부터 국내에도 10만~20만원대 태블릿 제품들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어 스마트 교육을 위한 시설비가 보다 저렴하게 된 것이다. 둘째는 스마트 교육을 위한 교육과정의 개발이 필요하다. 교육은 교육환경이 마련된다고 바로 이루어질 수 없다. 국가가 고시한 교육과정에 의해 교사가 학생을 교육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마트 교육은 스마트 교육과정과 콘텐츠가 뒷받침될 때 가능한 것이다. 셋째는 학생들의 스마트 학습을 지도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스마트 기기의 차별적 특징 중 하나는 동일한 하드웨어 기기를 사용하면서도 소프트적인 요소인 컨텐츠와 애플리케이션을 학생 개인별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해, 학생들이 자신만의 맞춤화된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그러므로 스마트 교육은 교육 수요자인 학생들의 욕구에 맞는 학생중심의 자기주도적인 학습이다. 이러한 스마트학습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학생 혼자서 하기 어려운 학습과정을 객관적이고 진단하고, 이를 기초하여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학습을 수행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는 학생지도의 교과내용, 교수방법에 대한 교사의 끈임 없는 전문성 개발이 필요하다. 스마트화 시대에 강조되고 있는 트렌드는 바로 ‘개방’이다. 스마트폰의 차별성을 가져 온 결정적 요인이 개방된 앱 스토어(apparatus store) 구축을 통해 방대한 컨텐츠·애플리케이션 공급 풀(pool)을 확보함으로써, 사용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이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다. 이러한 것으로 볼 때, 교사의 지도 내용이 자신이 지도한 학생만이 아니라 모든 반, 모든 학교 학생들에게까지 공유됨으로 지도내용이나 방법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자기 브랜드화를 만들어야 좋은 교사, 훌륭한 교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교사 자신이 브랜드화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자신이 가장 열정을 가지고 있는 일에 올인 해야 자신의 핵심역량을 구축하여 영역에서 1인자가 되면 자신의 브랜드가 형성된다. 작은 일이라도 열정의 불이 붙으면 위대한 일로 바뀐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스마트 기기 활용에 대한 윤리교육이 필요하다. 스마트 교육은 우리 교육에 주는 긍정적인 이점도 많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많다. 최근에도 페이스북(facebook)이나 트위터(twitter)등에서 특정인에 대해 무차별적인 공격의 폐해는 이미 도를 넘은 상태로 심각하다. 마찬가지로 스마트 교육에서도 철저한 컴퓨터 윤리교육 없이는 자칫, 학생 교육의 역효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스마트 교육은 우리의 선진화된 ICT 기술과 교육이 융합한 교육이며 학생중심의 개별화 교육이다. 따라서 학교와 교사는 이러한 스마트 시대에 대비한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새로운 교육변화를 충격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스마트 교육이 진정한 교육적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생 개개인이 존중받고 학생중심의 자율적이고 선택적인 배움이 일어나는 특성화된 학교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내는 아까부터 위험하다며 나와는 멀리 떨어진 곳 안전한 곳으로만 다녔다. 나보다 산행을 즐겨하지만 워낙 경사진 절벽에 아까부터 겁을 잔뜩 집어 먹고 몸을 움츠리고 산행을 하는 모습으로 보아 무척 위축이 되어 산행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월류봉 산행을 간절히 원하였던 곳으로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곳이기에 고향 산천의 아름다움과 정겨움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 흔한 나무계단 하나 없이 아직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행길이기에 더욱 애착이 갔다. 땀이 쏟아지고 숨이 턱에 와 닿았지만 고향산천의 추억이 스린 정겨움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스마트폰과 사진기로 연신 바꾸어 가며 사진 촬영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월류봉은 어릴 때부터 내가 늘 보고 자라왔던 곳이다. 우리 동리는 황간에서 추풍령 쪽으로 2Km 정도가면 오른 쪽 들 가운데 보이는 마을이다. 이름은 광평리라고 하지만 실은 넓은 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이 크게 문경세재와 추풍령을 들 수 있다. 문경세재는 선비들이 주로 이용을 하였지만 추풍령은 그렇지 못하였다. 이는 추풍령이란 가을바람에 낙엽 지듯 과거시험에 낙선한다는 인식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이 이 길을 회피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고갯길 또한 좁은 곳이기에 경부선 열차와 고속도로 및 국도가 나란히 지나가는 곳이다. 이러한 곳에 들판이 넓은 광평리는 남쪽으로는 물한계곡으로 향하는 넓은 계곡 사이의 뜰과 서쪽으로 확 트인 황간 향교 앞 가학루와 월류봉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음을 볼 수 있어서 넓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이곳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를 오면서부터 살게 되었다. 외가댁이 면내에서 가장 잘 살았기 때문에 우리 집도 외가댁 농사를 많이 지으며 살았기에 일거리가 늘 많았다. 나는 칠남매의 셋째로 부모님 따라 일하러 자주 다녔다. 일하기는 싫었지만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보고 마지못하여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일하다말고 늘 바라보는 곳이 황간 가학루와 월류봉 이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보면 확 트인 실개천과 아련한 들판을 따라 서쪽에서 비치는 아름다운 월류봉의 석양은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였다. 절벽위에 우뚝 서 있는 황간 향교 앞의 가학루는 한 마리의 학이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모습과 왼쪽으로 보이는 월류봉이 황혼에 물들기 시작하면서 철새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야말로 오래도록 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명화로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작품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가는 곳은 항상 월류봉으로 정해져 있었다. 월류봉에는 황간면 소재지에서 걸어 3Km 정도 되어 조금 멀기는 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친구들은 늘 월류봉으로만 소풍간다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월류봉으로 가는 길에 볼 것이 많았다. 월류봉 가는 길에는 용암으로 기암괴석이 능선을 이루는 장면을 볼 수 있었고, 능선이 끝나는 부분에 그림같이 다리가 놓여 있었다. 이 원천교 아래로 백화산에서 휘돌아 내려오는 맑은 물 석천이 흐른다. 물한계곡의 장교천과 추풍령에서 내려오는 소라천이 황간 금상구에서 합천을 하여 황간면 소재지를 지나, 월류봉 입구에서 석천과 합수를 하여 초강천이 월류봉 절벽 아래로 휘돌아 내려가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 원촌리 마을을 거쳐 나오면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깎아지른 절벽이 보이고 그 아래쪽으로 강물이 휘돌아 내려가는 강변 넓은 자갈 모래밭이 소풍지였다. 깎아지른 절벽을 올려다보면 절벽에 기묘하게 기암괴석 위에 자리 잡은 소나무와 새들이 오르내리는 모습은 어린 나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절벽 아래로 흐르는 물가에 넓은 모래벌판과 자갈 그리고 큰 돌이 한데 어우러져 넓은 백사장으로 펼쳐져 있다. 월류봉 절벽 아래쪽으로 큰 굴이 있는데 이굴은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내 어릴 때는 이곳으로 갈 수 있도록 연결이 되어 있는 구름다리는 월류봉과 어우러져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을 자아냈던 곳이다. 그래서 근동에서는 황간 월류봉이 아름답다하여 영동에서는 물론 경북김천에 이르기까지 이곳으로 소풍을 오기도 하는 곳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여름에 온 가족이 피서를 한 곳이 바로 월류봉이다. 부모님 모시고 형제들이 트럭에 음식을 잔뜩 싣고 이곳 월류봉 모래사장 강변에 솟 걸어놓고 음식을 해 먹으며 물에 들어가 다슬기도 줍고 고기도 잡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곳,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함께 맑은 강물에 들어가 수영도 하고 물장구치며 즐겼던 곳이다. 아침부터 해가 지도록 어떻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냥 자연이 아름다워서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워하였던 곳이다. 그날 이후 부모님 모시고 월류봉에 간일은 없었다. 사는 것이 무에 그리 바빴는지 그냥 고향 가는 길에 먼발치로 둘러보기만 하고 다닌 지 이순이 넘었다. 고향친구들을 만나기만 하면 우리는 고향에서 산행을 하자며 약속은 하였지만, 모두가 같은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워 약속만 하고 실행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네친구들과 월류봉과 가까운 백화산을 등산하자는 제의를 듣고 백화산에 오른 일이 있었다. 그 때만 하여도 월류봉에는 깎아지른 암벽으로 등산로가 없어서 산행을 할 수 없는 것으로만 알았다. 백화산은 우리 고향에서 꽤나 높은 산이다. 겨울철에 눈이 쌓이면 백화산은 연꽃모양으로 맑고 투명하다 하여 아름답다는 소문으로 등산객이 자주 찾는 곳이다. 친구들은 백화산에 올라 고향의 모습을 보며 옛날이야기로 옛 추억을 먹으며 즐거워하였다. 하산을 하고 찾아 간 곳이 월류봉이었다. 월류봉 절벽 맞은편에 송시열 선생이 후학을 위해 강론을 하셨다는 한천정사가 있고 옆에 한천가든이 있다. 친구들과 이곳에 들렸을 때 이 아름다운 곳에 식당을 인가해준 행정처사에 모두가 못마땅하다며 한 마디씩 입을 삐죽거리던 곳이다. 모처럼 고향친구들과 만나 옛 추억에 기분이 좋은 친구가 매운탕과 와인을 쏘겠다며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바람에 모두가 술을 거나하게 먹게 되었다. 아름다운 월류봉에 걸린 달과 친구들이 권하는 술잔 안에도 달이 떠 있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이곳에 다시 와서 밤새 달과 함께 노닐다 가겠노라고 다짐만 하고……. 어릴 때 고향마을에서 고향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달은 서편 월류봉에 걸려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달은 손톱마냥 봉우리에 걸려 늘 내 마음을 애초롭게 하였던 곳이 월류봉이다. 한천가든 주인장에게 물어 보았다. 월류봉에 걸려있는 달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언제인가 하였더니 보름쯤이란다. 보름날 이곳에 와서 밤새 달과 노닐다가 가겠노라 벼르고 벼르던 1박 2일, 오늘 이렇게라도 월류봉을 등산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제 친구들은 머나먼 세상으로 가기도 하였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이 아름다운 곳을 오르지도 보지도 못하니 이를 슬퍼하는 것이다. 아! 아름다운 월류봉 내가 정상에서 부르짖은 것은 이 한마디였다. 아름다운 월류봉 낮에 오르니 금수강산 아름다운 내 조국의 형상이 눈앞에 전개되고, 밤이면 아름다운 산수에 취해 달이 봉우리에 머물고 있는 내고향 월류봉의 아름다움을 혜당 양연화는 『한천정사』에서 아래와 같이 노래하였다. 월류봉 절경 아래 법화천 흐르고 칠월 녹음 높은 산 덮어 바라보는 이 안을 듯하니 그 앞에 선 내가 비경의 일부 같네 천 년 머물던 달은 또 천 년 머물 텐데 오늘 잠시 흐르는 내(川)는 보름 밤 월류봉 절경에 취해 산허리 멈춰 떠나지 못하는 달님 마음 헤아릴 수 있겠네 여명에 초강천 물안개 피고 월류봉 계곡마다 운무 덮이면 토방 앞 툇마루 서서 법화천 월류봉 한 눈에 담던 우암 선생 살아 숨 쉬는 산수화 한 폭에 차라리 말문 닫고 상념 접어 사군봉(使君峯) 월류봉(月留峰) 산양벽(山羊壁) 용연대(龍淵臺) 냉천정(冷泉亭) 화헌악(花軒嶽) 청학굴(靑鶴窟) 법존암(法尊菴) 한천정사 팔경의 주련만 남겼네
사람들이 걷기를 즐기고 있다. 건강에 대한 생활의 가치가 높이지면서 걷기가 주목을 받는다. 사람들이 차를 타고 다니다가 조금 더 느리게 가는 자전거타기,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등산을 하고 걷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건강 걱정에 걷기를 시작했지만,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다. 걷기는 인간만이 할 수 있고, 걸으면서 고차원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인간은 문명의 발달로 걷기에서 멀어졌다. 마침내 건강까지 위협받고 있다. 다행히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걷기를 시작했다. 걸으면서 자신을 살피고, 주변에 무심했던 것에 시선을 주고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사색의 터널을 지난다. 인생에 교훈을 얻기 위해 걷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걷기 문화는 제주의 ‘올레’에서 시작했다. ‘올레’는 제주 방언으로 좁은 골목을 뜻한다. 큰길에서 집의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이다. 도보 여행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제주 올레 길은 언론인 서명숙씨를 중심으로 개발한 것이다. 사단법인을 결성하고 지속적으로 코스를 개발했다. 주로 제주의 해안 지역을 따라 골목길, 산길, 들길, 해안 길, 오름 등을 연결하여 구성되며, 제주 주변의 작은 섬을 도는 코스도 있다. 계획적인 코스 개발과 홍보를 통해서 제주 올레 길은 관광 사업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도보 여행 열풍을 가져왔다. 그에 따라 전국 지방 자치 단체에서도 길을 걷는 관광 상품을 개발을 하고 있다. 지리산 둘레 길 남해 지겟길, 무등산 옛길, 경기 남한산성길 등이 그 예다. 런데 새로운 길 이름이 만들어지면서 어법에 어긋난 철자법이 난무하고 있다. 우선 ‘올레 길’부터 살펴보자. 이 단어는 ‘올레’와 ‘길’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명사 ‘길’이 일부 명사 뒤에서 ‘과정, 도중, 중간’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쓰일 때는 앞말에 붙여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올레 길’은 그 의미가 이와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길’을 붙여 적기 어렵다. 현재 상태로는 ‘올레 길’로 쓰고 [올레 길]로 읽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단어가 제주도에 있는 특정 산책로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더욱 널리 쓰여 합성어의 자격을 얻게 된다면, 한글맞춤법의 고유 명사 띄어쓰기 규정에 따라 단위별로 붙여 쓸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올레길’이라고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올레길’이라고 쓸 때는 맞춤법 점검이 필요하다. 순우리말로 된 합성어이거나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고, 뒷말인 ‘길’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난다면, ‘사이시옷 규정’(한글 맞춤법 제30항)에 따라,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는다. 이에 따라 ‘올렛길’이라고 해야 한다. 물론 이 단어가 합의되지 않은 합성어이고, 그에 따라 발음도 상정할 수 없으니 사이시옷 표기를 한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약하다. 하지만, ‘갓길/고갯길/굽잇길/빗길/샛길/옛길/찻길/기찻길’에서 보듯, 명사에 뒷말 ‘길’이 오면 [낄]과 같이 된소리로 난다. 그렇다면 ‘올레길/둘레길/바래길’도 널리 쓰여 합성어의 자격을 얻게 되면 그 발음이 [올레낄/둘레낄/바래낄]로 상정될 것이다. 따라서 이는 모두 사이시옷을 표기하여 ‘올렛길, 둘렛길, 바랫길’로 표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제주 올레 코스는 특별한 유흥 시설을 확충하거나 엄청난 관광 산업 단지를 만든 것도 아니다. 제주도 구석구석에 있는 길을 연결했다. 돈을 들여 시멘트로 포장한 것도 아니다. 넉넉한 자연의 풍광을 따라 난 작은 길을 그대로 살렸다. 그 길에 가족끼리 가볍게 등산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소득도 높아지고 있다. 제주의 성공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은 가족 단위가 참가하는 지역 축제와 걷기 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걱정되는 것은 지자체가 대대적으로 길 정비와 홍보에 나서면서 맞춤법에 어긋난 길 이름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안타깝다. ‘올레 길’이 현재 사전에 올라 있지 않지만, 언젠가 사전에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그때 가서 사전에 등재할 때 맞춤법 점검을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바른 발음과 표기를 상정해야 한다. 아울러 지방 자치 단체는 길을 만들 때 이름도 제대로 만들었으면 한다. 어문 정책 기관 등에 도움을 받으면 바른 이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교육과학기술부 연수원에서의 일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장, 교감 선생님들과 함께 교원노사관계 선진화과정 연수를 받았다. 학교 현장에서 부딪힐 수 있는 갈등문제에 대하여 효과적인 접근 방안을 모색하는 연수내용도 유익했지만, 쉬는 시간에 삼삼오오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도 의미가 매우 컸다. 노후 생활을 위한 재테크, 건강관리, 심지어는 주름살 관리 등 다양한 화제들이 나왔다. 그 가운데에는 연수를 마친 지 두어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 매주 머리를 염색합니다.” 머리카락의 색깔이 유난히 검고 윤이 나는, 그리고 2대 8로 단정하게 가르마를 한 어느 교장선생님이 ‘자연머리냐’는 물음에 답한 내용이다. 오십이 되기 전에는 새치 하나 없었는데, 오십을 넘기자마자 봄비에 새잎 피어나듯 흰 머리가 가득 나기 시작해서 염색을 했다는 것이다. 필자도 사십 초반부터 흰머리가 하나 둘 나기 시작하더니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염색을 하게 된 지가 10년 이상 된 것 같다. 경험이 있는 독자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염색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조금만 부주의하면 염색이 머리카락만 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수건과 세면대 그리고 침대와 베개까지도 더럽히고 만다. 염색 약 냄새도 고약하여 머리가 지근거리는 경우도 있고, 체질에 맞지 않은 사람들은 며칠씩 피부염으로 고생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시력도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습관적으로 늘 염색을 해오고 있지만, 필자도 어느 때부턴가는 흰 머리 그대로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선 염색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었고, 다음으로는 백발 자체의 중후함을 만끽하고 싶어서다. 오다가다 백발이 잘 어울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마음이 더 간절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처럼, 백발은 가끔 남의 손에 쥔 떡처럼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하얀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는 경륜과 중후함,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대단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필자는 가끔은 백발이 매우 잘 어울릴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도 하였다. “백발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백발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그 중후함이 멋있잖아요. 시력까지 나빠진다는데 꼭 염색할 필요가 있어요. 이젠 교장선생님도 되셨으니 그냥 백발로 지내세요.” 우리들 중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자 흑갈색 머리로 산뜻하게 염색하고 다니시는 그 교장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이야기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서 멋을 내지만, 교육자는 학생들을 위해서 멋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들과 어울리고 소통하기 위해서란다. 요새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은 나이 먹은 선생님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보듯, 백발은 아이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데 장애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디시 말하면, 아이들은 백발에서 중후함이나 카리스마를 느끼기보다는 현격한 세대 차이를 연상한다는 것이다. 그 교장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백발은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소통할 수 없게 하는 금줄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아이들과 어울리고 소통하기 위해서 흰 머리카락이 한 오리도 드러나지 않도록 염색을 정성들여서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중후함이나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끌고 운영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 교장 선생님에게 염색은 학생들과 어울리기 위한 친교의 메시지, 낮춤과 어울림의 메타포가 된 것이다. 어린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눈높이로 자신을 낮춰야 하고, 젊은 학부모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마음으로 자신을 낮춰야 한다. 또한 교사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고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교사의 눈높이로 자신을 낮춰야 한다. 염색 자체가 그리 대단한 영향을 미칠 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그러나 정성들여 염색을 하는 것이 상대방만큼 자신을 낮추고 함께 어울리고자 하는 열린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할 때, 그 낮춤과 어울림의 리더십은 우리의 가슴속에 신선한 자극으로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한국교총이 지난달 30일 교육기본법제정, 범정부 차원의 교원존중 풍토 조성, 교원 학교폭력 조사권 부여, 교원 훈·포장 기준 하향 조정 등의 내용을 담은 ‘교권강화, 교원사기진작방안’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교총은 “무리한 교육개혁 추진, 진보교육감 출범 이후 체벌금지와 학생인권조례 제정, 극소수 교원의 부정행위에 대한 언론의 왜곡보도 등으로 교권 침해 및 무력감이 심화되고 있다”며 “지난해 교총 ‘학교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교원 사기진작 방안 연구’ 결과, 교사의 전체적인 사기 수준은 5점 만점에 2.99로 보통 수준에 미달되는 등 교원의 사기가 심각하게 저하된 상황”이라고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안양옥 회장은 “교원들이 높은 전문성과 교직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교육에 헌신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사기진작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며 “교직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우리 교육의 질 제고로 이어지도록 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총은 교권강화 방안으로 △교육기본법 제정 △학교의 정치장화 방지(학교장 허가 없이 정치인의 학교 무단출입금지, 정치인의 학교운영위원회 위원 참여 제한) △교장·교감·생활지도교사 등에 학교폭력 조사권 부여 △학교폭력 근절 및 교단 성비 불균형 해소를 위한 교대 ROTC 제도 부활 및 교대 학군단 재설치 △교원존중 풍토 조성을 위한 제도 구축 및 공익광고·미담사례 언론 소개 등을 제안했다. 교원의 사기진작 방안으로는 △범정부 차원의 교육계 격려 행사를 통한 교육자존중 풍토 조성(대통령-현장교원과의 대화, 각종 행사 정부-교원단체 공동주최, 정부 행사 개최 시 교원 우선 예우 등) △가정방문 부활을 통한 교원-학부모-학생의 신뢰관계 회복 △교원 훈·포장 기준 하향 조정을 통한 교원의 노고 치하 △교원 연가보상비 지급 및 성과상여급 지급방식 개선(2·8월 퇴직자도 성과상여금 지급) △퇴직 1년 이내 교육공무원 공로연수 도입·시행 등을 제시했다. 한편 이날 열린 ‘제9차 교육개혁협의회’에서 김황식 국무총리는 “학교를 안전하고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열쇠는 선생님들에게 있다”고 강조하고 “교권확립과 교원의 사기진작 대책을 강화하라”고 이주호 교과부 장관에게 주문했다.
국가의 교육목표를 실현한 교사 교육이 국가의 경제개발을 앞세우면 학생은 국가자원으로 간주된다.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며 교육의 중심은 학생을 국가의 유용한 자원으로 개발하는 활동이 된다. 때문에 교사에게는 국가공무를 수행하는 일이 학생의 삶을 보살피는 활동보다 더 중요한 업무가 된다. 교사는 학생 입장보다 국가 입장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국가가 설계한 교육 틀에서 국가가 원하는 특정한 인물을 양성해 내는 교육 종사자가 된다. 우리는 과거 50여 년 동안 이러한 교육을 강조해온 셈인데, 이러한 교육체제에서 교사는 ‘국가의 눈’으로 학생을 보게 된다. 학생 개개인의 내면적 성장과 개인적인 삶보다는 국가의 경제력 신장과 국가안보 등 국가·사회적 차원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에 더 치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1980년대 이후 끊임없는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국민의 시민의식과 인권의식은 크게 함양되었다. 인권의식은 나이가 어릴수록 더 빨리 성장해 교사집단보다도 학생집단 속에서 더 빠르게 커갔다. 과거에 비해 ‘개성 있는 삶’, ‘끼가 살아있는 삶’을 추구하는 문화가 학생들에게 널리 파급되어 있어서 권위주의적 지도방식이나 어른 중심의 지도와 감독에 의한 교육활동이 도전을 받게 된 상황이다. 학생의 ‘느낌과 생각’을 존중하는 교사 학생의 ‘느낌과 생각’이 교사의 ‘느낌과 생각’ 범위에 있을 때만 의미를 갖는다고 하는 사고방식 속에서는 교사가 학생의 ‘느낌과 생각’을 모두 관장할 수 있고 감독해야 한다는 신념이 작용한다. 그런데 이미 많은 학생들은 자신만의 ‘느낌과 생각’이 소중하고 이를 키워가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때문에 교사의 ‘느낌과 생각의 틀’에 따라 학생의 ‘느낌과 생각’을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생의 ‘느낌과 생각’을 이해하고 이를 존중하는 사고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다. “학생의 ‘느낌과 생각’이 어른들의 ‘느낌과 생각’과 달리 별도로 존재한다”는 말은 많지만, 정작 학교 구성원의 삶 속에서 교사가 학생의 ‘느낌과 생각’을 읽어서 실질적으로 존중하는 사례는 얼마나 될까? 선생님의 ‘느낌과 생각’과 학생의 ‘느낌과 생각’이 같거나 같아질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다름’을 인정하고 학생을 바라보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학생들의 특이하고 기발한 내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몰랐던 학생의 특성을 읽어주고 수용할 수 있으면 비로소 학생을 존중하기 시작하는 교육의 장이 펼쳐진다. 학생의 자아실현과 국가·사회적 가치실현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낮은 자세로 학생을 대하는 교사 수업이 진행되는 장면에 낮은 자세라니? 부적합한 말 같다. 그러나 한 번 알아보자. 학생이 모르는 내용을 알게 하기 위해서 교사는 우선 가르칠 내용을 깊고 넓게 알고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설명해야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에 관해 지속적인 탐구가 이뤄져야 한다. 탐구활동 자체에 낮은 자세가 수반되는 것이다. 이론의 깊이를 헤아리면 헤아릴수록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생이 마음을 열고 선생님의 마음과 교류하면 ‘마음의 울림’이 일어난다. 울림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배움이 일어난다. 이 ‘울림’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감독과 감시보다는 열정을 가진 개별보살핌과 참 만남이 요구된다. 교사의 ‘낮은 마음’이 작용하여 학생의 마음을 움직여 ‘배움’을 일으키는 것이다. 다음으로, 교사의 자세다. 의자에 앉아 있는 학생을 교사가 서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학생에게는 위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위압적이고 강압적인 선생님에게 학생이 친근하게 다가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마음을 여는 것은 더 어렵다. 몇 년 전 일본 후지시에 있는 한 중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학교 수업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다가가 설명을 할 때, 학생의 눈높이보다 더 낮은 자세로 앉아 설명했다. 거의 교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모습이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친근하게 접근하는 장면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이 학교 교장선생님은 선생님들에게 하루에 50번씩 앉았다 일어나라고 주문한다고 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선생님들이 한 번 되새겨볼 만한 일이다.
지난해 정부는 ‘5세 누리과정’을 발표하고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교육비를 만 5세아 전체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초·중학교 9년 의무교육에 1년을 추가·확대해 10년 의무교육 시대를 열었음을 의미한다. 지난 1월에는 누리과정을 만 3~4세로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이는 유아교육제도가 모든 어린이의 보편교육을 향해 나아가려는 것이며, 2012년부터 시작한 만 5세 누리과정은 초등학교 의무교육과 마찬가지로 보편교육과정화 한다는 것이다. 유아교육기관도 변해야 산다 이런 흐름 속에서 유아교육기관도 변해야 함을 느낀다. 유치원 교사들도 학급경영, 교수법, 교육행정에 있어서 변화를 추구해야 하며 교사의 이미지 변화와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21세기는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시대다. 때문에 유아교육기관의 변화 요구는 교사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교사로서 올바른 인성 함양, 전인적 인간 양성을 목표로 잘 가르치는 데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다. 유아교육기관은 기업 마인드와 서비스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게 됐음을 인식해야 한다. 유치원 교사 역시 유아, 학부모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정신으로 교사의 이미지 변화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경쟁력을 갖춘 21세기형 교사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교사가 사람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교사가 하는 일의 가치를 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주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알려 주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의 미래에 피어날 꽃에 물과 영양분을 뿌려 심신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교사가 되기 위해서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할지 다시금 되새겨야 할 때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의 삶은 어떤 의미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가진 교사만이 좋은 교사, 행복한 교사, 발전하는 교사로 살아갈 수 있다. 열악한 환경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고 느껴질지라도 그 산을 넘어가는 용기를 가져보자. 그 산 너머에는 찬란한 의미의 빛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공교육화를 위한 제도개혁 제안 이제 정부는 만 3~5세 모든 아이들을 위한 양질의 교육을 책임지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하였다. 초등 의무교육이 완성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보편적인 유아교육을 위한 제도, 법, 재정은 참으로 놀랍게도 1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교육과정, 교원, 장학, 관리체제 등의 질 관리 측면에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질 높은 선진화된 유아교육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국가가 모범적으로 보편교육의 책무를 다하며 전체 유아교육을 이끌어가야 할 책임이 있음을 생각하며,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를 위한 몇 가지 제도개혁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유치원’이란 명칭을 ‘유아학교’로 변경하자. ‘교육기본법 제9조 제1항’에서는 유아교육, 초등교육, 중등교육 및 고등교육을 위해 ‘학교’를 두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교육법 제2조’에서는 유아교육법에 따라 설립·운영되는 학교를 ‘유치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를 위한 제도개혁이다. 우선 영·유아시스템 일원화가 요구된다. ‘3세 미만 영·유아지원은 보건복지부로 일원화’, ‘만 3~5세 유아지원은 교육과학기술부로 일원화’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유아교육은 동일 연령대의 교육을 교육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가 동시에 주관하는 이원행정체제로 돼 있어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만 3~5세 유아교육담당 교사의 양성체제를 4년제로 일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치원교사는 전문대 이상의 학력을, 보육교사는 고졸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는 양성체제로 인한 평균학력격차로 교육의 질 담보에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시도 교육청 유아교육과 신설·확대 및 유아교육전문직 100% 확보도 보육시설에 대한 교육력 제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셋째, 국·공립유치원 종일반 내실화를 위해 정교사 100% 확보, 종일반 시설환경개선비 지원 확대, 사립유치원교사 처우 개선 등 유아교육 질 제고를 위한 교육환경 및 유아교사 처우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처음 초등교사 생활을 시작한 것은 2009년 가을, 나는 담임교사가 아닌 영어교과 전담교사로 처음 아이들 앞에 섰다. 대학생활 중 영어에 소홀했던 것을 후회하며 발음 교정에 열중하던 어느 날이었다. 외국에서 어학연수를 3년 마치고 이제 막 귀국한 한 남학생이 전학을 왔다. 낯선 학교생활이 힘겨워 보이던 그 아이 얼굴에 유일하게 웃음꽃이 피는 시간은 영어시간. 정형화된 교실영어와 활동으로 버티던 내게 이 전학생의 존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실력에 자신이 없어 안절부절 못하다가 몸과 마음의 병이 나를 덮쳐 시름시름 앓던 어느 날, “Any question?” 수업을 마무리하려는 찰나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지막한, 하지만 또렷한 목소리 “Your English is not lively.” 순간 돌처럼 굳어버린 나는 더 이상 구겨지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으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Thank you, See you next class.” 한동안 그 충격에서 헤어날 수 없었고 그 날 이후 난 교사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말썽쟁이들의 일상적인 언행조차 나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예민하게 반응하곤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내게 교사로서의 자격이나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잔뜩 웅크려 겨울을 지냈다. 달콤 살벌한 퍼즐 맞추기 초등교사는 전 과목을 다 가르쳐야 하고 심지어 가끔은 영어나 예체능과 같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과목을 맡기도 한다. 때로는 가르치는 내용뿐 아니라 가르치는 기술, 수업 이외 업무에 대한 능력, 학생과 학부모 상담, 생활지도 등 광범위한 영역 속에서 과연 나는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지적 권위도 예전 같지 않고 그렇다고 타고난 카리스마도 없는 경우 교사로서의 권위를 과연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슈퍼맨이 아니야,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라며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언제나 낙엽 떨어지는 가을마냥 쓸쓸한 교실이 못내 아쉽다. 그렇게 2009년이 지나고 이듬해 나는 담임이 되었다. 처음 만난 제자들은 너무나 귀여웠다. 담임 업무가 교과전담 교사에 비하면 월등히 많았지만 그래도 백배는 더 즐거웠다. 아이들은 너무 귀엽고 순수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다. 말썽쟁이들이 화나게 하기도 하고, 가끔은 위험한 사고가 심장을 쿵 내려앉게 하기도 하지만 아이들 문제로 투정하고 고민하고 또 기뻐하는 내가 스스로 자랑스럽다. 가끔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께 칭찬을 듬뿍 받은 날이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하고 하루 종일 구름 위를 날아다니기도 한다. 아이들이 가고 난 교실 곳곳에 귀염둥이들이 몰래 쓰고 간 쪽지들이 숨어있을 때도 있다. ‘선생님 힘내세요! 내일 봐요♡’ 어느 하늘에서 이런 천사들이 뚝 떨어졌을까 싶은 마음에 아이들을 맘껏 안아주기도 한다. ‘선생님이 되고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잘한 사건들만 떠오를 뿐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자잘한 조각들 하나하나를 보면 모두 나의 제자들이 주인공이다. 나는 해마다 내 편이 되어주는 30명의 제자를 만난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구보다 그 아이의 편에서 격려해주고 지지해준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자잘한 추억의 퍼즐조각을 함께 맞추고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희망의 나라는 학교에서 시작 학교는 폐쇄적인 공간이라 가장 나중에 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끔 흠칫 놀라곤 한다. 교육과정뿐 아니라 행정적인 부분마저도 급변하는 학교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불필요한 변화는 과감하게 줄이고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정책의 실현이 정착되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정책을 결정하든 실현하든 간에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보다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효과보다는 효율을 잣대로 평가하고 실적 위주의 활동이 지속되다보면 우리네 학교의 미래는 결코 밝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만큼 교사와 학생·학부모 간 관계 정립에 있어서도 믿음을 더욱 쌓아가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학교교육’이고 저기까지는 ‘가정교육’이라며 선을 그을 수는 없다. 교사는 학교에서의 엄마 아빠이고, 부모는 가정에서의 선생님이다.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길은 서로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한다. 행복한 학교에서 자라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안에서 가르치는 기쁨을 느끼는 교사가 가득한 내일이 열리길 기대한다.
어느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대한민국 교사여서 자랑스러운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 나는 대한민국 교사여서 자랑스럽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도 큰 소리로. 나의 교직생활을 가만히 돌이켜 본다. 내가 교사가 된 지도 어언 26년이 됐다. 군대를 제대하고 파릇파릇한 나이였을 때 나는 아주 한적한 어느 시골 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이가 많이 들어 학교에 온 아이들과는 불과 서너 살 밖에 차이가 나질 않았다. 사건은 부임하던 날부터 거의 쉬지 않고 터졌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오면 아이들을 데리러 가고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지도하겠다고 사정하여 데리고 나왔다. 학교를 졸업할 때는 내가 졸업했던 것보다 더 기뻤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초임이고 젊었기 때문에 열정이 있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천성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사의 열정과 관심은 학생 인생도 바꾼다 그 후 중학교로 전직해 근무하게 되었는데 시골 아이들을 위해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방학 때 무보수로 가르쳤던 열정도 그러한 것이었다. 시골에서의 가정방문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만 하는가를 깨닫게 했다. 그 시절만 해도 시골엔 학원도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학원에 갈 여력도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들의 저녁 시간은 함께 밥을 하고 찌개를 끓여서 먹고 설거지를 하는, 그야말로 매일매일 야영생활이었다. 그 아이들이 고등학교 진로를 상담하고 자기 길을 찾아갈 땐 내 일처럼 늘 뿌듯하고 보람 있었다. 직업 선택에는 자신의 관심과 적성을 고려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번은 제자가 “서울의 어느 명문 대학에 수시합격을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상담을 해왔다. 정말 욕심나는 학교였지만 제자의 성격과 적성, 주변 상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교육대학을 권해 주었다. 후에 그 아이와 부모는 “결정하기 어려웠을 때 길을 잘 안내해 주어서 현재 아이가 너무너무 행복해하며 선생님의 길을 가고 있다”며 “적성에 잘 맞는 길인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고 몇 번이나 감사의 말을 했는지 모른다. 또 다른 제자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한 아이였다. 그러나 할머니와 지내며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그 제자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고 무료로 기숙사를 제공해 주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금은 교원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그 학생을 보며 교사로서 얼마나 큰 보람을 느끼는지 모른다. 교사로서 열정만 있다면 제자들을 제도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늘 많았다. 시골 학교의 내신성적이 도시와 농어촌의 교육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되었고 방과후학교 자유수강권은 어려운 학생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었다. 교육방송의 내실화와 사이버가정학습 운영 등도 사회적, 정책적 뒷받침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학생을 품어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학교 한편으로 이런 교육적 열정이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교육은 학생과 교사 간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녀 간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일수록 부모의 의견을 따르고 부모를 존경하는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요즘 우리 청소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부담의 늪에 빠져 있다. 이런 현실에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성적과 경쟁의 압박에 눌려 살아가고 있 다. 교사들 역시 이런 현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우리의 학교가 과연 학생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줄 수 있고, 학교가 교사들에게 가르침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일까?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현실이 이러한데 과연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존중해 주는 것이 가능할까? 교사와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가 모두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한다면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해품달’에서 주인공은 ‘달’이었다. 나는 ‘교품학’이란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교사가 학생을 품어 학생이 주인공이 되는 학교로 만들었으면 한다. 부모 중에 가장 현명한 부모는 ‘현명하면서 게으른 부모’라고 한다. 이것은 학생들에게 안내자의 역할을 하면서 뒤에서는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지켜보고 격려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부모라는 것이다. 교사도 인내와 끈기를 가지는 조력자가 되어주길 간절히 바래본다.
2008년 전문상담교사로서 학교에 첫 발령 당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상담실 청소만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동료교사들도 전문상담교사인 내가 궁금하고 신기했을 것이다. ‘전문상담교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상담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교사들도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의 업무가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 건 Wee프로젝트가 시행되면서부터다. 단위학교에 구축된 ‘Wee클래스(학생공감상담실)’는 학교에서 꽤나 좋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학생·학부모·교사들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감성과 문화를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더니 일반학생들은 물론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학생들까지 수시로 찾아 왔다. 집단따돌림이나 학교폭력으로 교실에 있기 힘든 학생들은 쉬는 시간마다 Wee클래스에 와서 책을 읽거나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학습부진과 또래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에게는 학교 내 또래상담자와 결연하여 학교적응을 돕고 문화체험 기회를 마련,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점점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표정이 밝아지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엄마미소를 짓곤 했다. 비교과교사들의 역할 정립 필요 학교부적응 학생들에게는 그들 특성에 맞춰 댄스, 스키 등 특성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해 건강한 학교생활을 하면서 가끔 찾아오거나 연락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대견하고 뿌듯하다. 상담의 영역은 광대하다. 이는 전문상담교사가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 또한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장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첫째, 학교 현장에서의 인식변화다. 전문상담교사가 추진하는 행·재정적 업무는 일반교사뿐 아니라 관리자들에게도 낯선 내용이 많다. 학생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을 확인하면 적극적인 지지를 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동료교사와의 관계에서도 ‘교장실보다 좋은 Wee클래스, 혼자 교실을 쓰는 실장, 수업 없는 교사’라며 질투 아닌 질투를 받기도 한다. 또 단시간 내 학생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상담전문성과 그 효과성을 의심하는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은 전문상담교사 역할의 모호성에서 오는 것으로, 현장에서의 역할 정립을 위해 학교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상담여건의 개선이다. 최근에는 일반교과의 수업시수 확보로 상담시간을 확보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전문상담교사에 대한 평가는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일례로 전문상담교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비교과교사의 경우 그들 고유 업무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성과급에서 항상 최하위 등급을 받고 있다. 금전적 부분을 떠나 우리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학생들의 정신건강이 강조되고 상담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전문상담교사들이 일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그들의 고유 업무를 행할 수 있는 상담여건의 조성이 시급하다. 전문상담‘인력’ 아닌 전문상담‘교사’ 배치 시급 셋째, 전문상담교사를 교육 현장에 전면 배치하여야 할 것이다.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에서도 상담교사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지만 정작 전문상담교사의 증원보다는 그 외 전문상담인력(전문상담사, 사회복지사 등)이 배치되고 있다. 현재 학교와 교육청에 배치된 전문상담교사의 수보다 그 외 전문상담인력의 규모가 더 크다. 이는 학교 현장에서 전문상담교사의 역할 정립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으며, 계약직으로 들어오는 전문상담인력의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업무 추진 환경조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생, 학부모, 학교 입장에서도 지속적인 관리와 업무의 연속성 측면에서 효율적이지 못하다. 학생의 진로, 진학에 도움을 주기 위한 진로진학상담교사의 배치는 환영할 만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둘 사이의 역할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아 전문상담교사, 진로진학상담교사는 물론 일반교사들도 혼란스러울 뿐이다. 학생들의 건전한 성장을 돕고자 학교에 배치되는 인력 간에 유기적인 연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보람과 어려움 속에서 일하는 전문상담교사는 교직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아직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소소한 역할과 가치 있는 노력이 교육공동체의 희망이 비상할 수 있는 날개가 되리라 믿는다.
원주의료고는 정부의 고급기술인력 양성계획에 따라 탄생한 국내 유일의 의료기기분야 마이스터고다. 2년간의 준비를 거쳐 2010년 3월 개교했지만 원주정보공고에서 마이스터고로 전환되면서 교육시설, 실습기자재 등 교육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의료고로 바뀌면서 새 학교에 대한 꿈을 안고 몰려든 학생들의 꿈을 꺾을 수는 없었다. 시설이나 실습장비는 교사들의 열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우리 교사를 바라보는 학생들을 위해서 교사들이 마음과 마음을 합쳐 신념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리고 지난해에 그렇게 바라던 교육 인프라를 대폭 확충할 수 있었다. 열정과 신념이 빛을 발해 새로운 학교로 일신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자 마이스터고 교사로서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게 되었다. 어느덧 마이스터고에 입학한 학생들이 3학년이 되었고 결실을 맺을 시기가 가까워졌다. 이제 우리를 보고 찾아온 학생들이 희망의 날개를 펼칠 시간이 된 것이다. 열정과 신념으로 가르친 학생들 의료기기는 사람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사용되는 기기인데 사람마다 진단이나 치료 방법이 달라 전반적으로 다양성이 존재한다. 때문에 우리는 학생들이 이러한 다양성 기술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융합교육에 많은 힘을 쓰고 있다. 의료기기와 연관된 기계와 전자, IT기술, 기술혁신을 이룰 수 있는 창의성을 포함한 교육과정과 관련 기업체와 협력해 산업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특히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대한치기재협회와 MOU를 체결하여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의료기계과와 의료전기·전자학과의 교육과정을 세우기 위해 많은 기업체를 방문해 자료 조사과정을 거쳐 직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의료기기 기업에서 요구되는 기본지식에서부터 의료기기실무, 전문적인 기술 능력 등을 교육과정에 도입할 수 있었다. 이에 학생들이 졸업 후 의료기기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쟁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학생들을 위해 전문적인 업무능력 함양은 물론 인성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프리젠테이션 제작과 발표, 엑셀과 문서작성 실무능력을 교육하고 학생들이 자격취득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많은 기업들이 전문 직무기술뿐만 아니라 업무능력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꿈을 향해 나아간다 인성교육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매달 1회 이상 꿈을 실현한 명장, 명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학생 스스로 꿈을 갖고 동기의식을 높이도록 한다. 또, 지역문화행사 참여와 작품성 있는 영화감상, 대자연과 호흡하는 등산 등 다양한 인성교육프로그램을 병행하고 있다. 교사들은 이를 통해 이미 진로를 결정하고 목적을 갖고 온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키우며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고,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친구 같은 선생님이 돼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올해는 마이스터고에 입학한 학생들이 3학년이 되는 해, 교사는 이들이 3년간 이룬 땀을 모아 결실을 맺게 해주어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는데 올해 들어 벌써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노력이 결실을 맺어 삼성전자, 한국수력원자력, 한전 등 우수 일자리에 23명의 학생들이 최종 합격했고, 양질의 일자리와 비전을 갖춘 기업들의 취업의뢰가 많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취업난이 가중되고 있는 이 시기에 학생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그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 주는 것이어서 무엇보다 보람을 느낀다. 원주의료고가 의료기기 마이스터고로 개교하면서 주변에서는 많은 기대와 함께 걱정과 우려도 있었다. 학교체제가 바뀌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시작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실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이른 아침부터 밤 9시까지 맞춤형 교육과정 개발, 교재 개발, 학생 기숙사 관리 등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이제 원주의료고는 과거보다는 지금이, 지금보다는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학교로 의료기기분야 전문기술자 양성 마이스터고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다만 지금의 성과는 교사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님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재정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다. 따라서 교육당국에 마이스터고 운영에 필요한 재정지원을 지속해줄 것을 건의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존재이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교육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은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신뢰가 무너진 지금, 우리 모두는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체벌금지와 학생인권조례 도입으로 많은 선생님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일부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을 악용해 선생님들에게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교육은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우리 반 아이들이 누구와 친한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장래 희망은 뭔지’ 인간적 소통을 하며 아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주면 좋겠다. 또 학부모와 선생님이 아이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학교를 개방하면 좋겠다. 학생 생활지도도 가정과 학교가 연계해 함께 협력할 때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고 소통이 활발해지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 자살, 집단 따돌림 등의 사건이 발생하고 난 후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소통할 걸’하고 후회하는 일은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에게 너무 과도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겠지만, 어떤 지위에 있든 그 지위에 맞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선생님은 단순한 지식전달자가 아니라 미래세대를 올바르게 성장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요구사항도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부모는 그 어떤 선생님보다 학교 선생님을 최고 순위로 두고 있다. 예전보다는 교권이 많이 추락했지만 그래도 그 어떤 사교육 선생님보다 공교육 안에 있는 선생님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존재라 여기고 있다. 선생님들도 이점을 분명히 인식했으면 좋겠다. 오늘도 교단에서 우리 아이들을 향해 가슴 뜨거운 사랑을 펼쳐 보이며 우직하고 묵묵히 학교현장을 지켜내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기에 우리 교육이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선생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선생님은 이 사회의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