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하선/사진작가·여행칼럼니스트 위구르족과의 첫 만남 '파인 땅 투르판'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발길을 재촉하다 보면 중국의 서쪽 변방인 '신지앙 위구르 자치구'에 접어들게 된다. 이곳은 황량한 사막지대에 '위구르족'이라는 소수민족의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다. 이들은 생김새가 중국의 '한족'과는 판이하게 다를 뿐만 아니라 언어와 문화조차 달라 도저히 중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닿게 되는 순간부터 마치 중동의 어느 한 지역에 와 있는 듯한 인상을 씻을 수가 없게 되고, 실크로드의 여정이 무릇 익어간다. 이 위구르족들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게 된 곳은 '투르판(吐魯蕃)'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표고가 해면보다 낮은 곳이어서 여름철에는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역사의 고장이다. 예로부터 실크로드 상의 천산북로와 남로의 갈림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기원전부터 이 비단길을 오가던 상인들이 물과 휴식을 얻기 위해 이곳 투르판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또 구도의 길에 나선 수많은 입축승(入竺僧)들도 이곳을 거쳐갔다. 이처럼 예로부터 중요한 거점으로 인식되어 온 곳이기에 흐르는 세월 속에서 다양한 민족들의
글 | 김연수/생태사진가 도시에서도 친근해진 설치동물 산림이 우거졌던 시절, 인적이 드문 숲이 울창하게 펼쳐져 있었을 때, 땅을 한 번도 밟지 않고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건너갈 수 있는 동물이 바로 청설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청설모 한 마리가 평생토록 돌아다니는 면적이 그렇게 넓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깊은 산속 보다는 민가 주위의 야산에 서식하며 최근에는 서울의 공원에도 꽤 많은 개체수가 보인다. 청설모는 쥐목 다람쥐과에 속하는 설치동물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몽골, 연해주, 유럽 등 유라시아대륙에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한국산 청설모는 중국이나 일본산 보다 몸집과 두개골이 작다. 겨울털은 북방청서와 비슷하지만, 암색이며 북방청서의 담색형은 한국산 담색형보다 훨씬 색채가 연하다. 한국산 청서는 중국산 청서나 북만청서와는 현저하게 다르며 갈색에 가깝다. 북방청서에 비하여 회갈색이고, 사지와 귀의 긴털꼬리는 흑색을 띤다. 청설모를 다른 말로는 한자식 표기인 청서(靑鼠)라고 하는데 우리국어사전에 대부분 청설모를 '청서의 털'로 해석한 경우가 많다. 호기심 많은 천덕꾸러기 청설모를 보노라면 언제나 개구쟁이 어린 시절을 기억에 떠올리게 된다. 갑자기
국제 환율을 출렁이게 한 한은총재의 입 최근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외환보유액과 외환시장 개입에 관련해 발언한 것이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미쳐 화제가 됐다. 경위는 이렇다.박 총재는 최근 영국의 유수 신문인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들이 우리나라의 시장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잘못된 보도를 일삼는다고 판단, 중앙은행 총재로서 <FT>와의 인터뷰를 자청했다. 5월 18일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인터뷰에서 박 총재에게 달러 약세로 인한 세계 경제의 혼돈과 한국의 대응에 대해 질문했다. 박 총재는 "한국은 국가 신용도를 지키는 데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외환보유액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FT는 박 총재의 말을 한국은행이 더 이상 달러를 사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해 '한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한은의 환율 방어 정책 포기로 해석한 세계의 외환 딜러와 환투기 세력은 이내 시장을 휘저어 원화 환율을 급락시켰다. 뉴욕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당 995원까지 떨어졌고, 5월 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달러 당 1000원선이 무너졌다. 한국은행은 원-달러
정희창 |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맞춤법이나 표준어는 딱딱하고 지루하다고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을 담고 있는 것들도 적지 않다. 어떤 말이 옳고 그른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의외로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와 '그러고 나서'가 그러한 경우이다. '그리고 나서'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흔히 쓰이는 말이다. (1) 한두 걸음씩 걸어도 보았다. 그리고 나서는 또 울었다. (2) 채화꽃이 만발할 때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는 못 가보고 말았지요. 그리고 나서 얼마 안 있어 북간도로 떠났으니까요 위의 예에 나와 있는 '그리고 나서'는 '그러고 나서'로 바꾸어도 의미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와 '그러고 나서'는 의미가 같은 셈인데 이처럼 의미가 같고 형태가 유사한 말이 있을 경우 두 말의 관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동의 관계인지, 의미나 용법에서 섬세한 차이가 있는지가 탐구의 대상이다. 먼저 '그리고 나서'의 띄어쓰기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그리고나서'를 한 단어로 다룰 수도 있고, '그리고∨나서'와 같이 두 단어로 다룰 수도 있다. 한 단어라면 '그리고, 그러나, 그런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