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 생태사진가 미조(迷鳥)에서 서산시의 상징으로 변신 흐르는 강물 위에서 다리가 붉고 긴 롱다리 수컷들이 혈투를 벌이더니 이내 짝을 지어 쌍쌍이 사랑을 나누고 있다. 희귀조 장다리물떼새가 올해도 충남 서산시 천수만의 부남호 상류에 찾아와 귀여운 2세를 낳기 위한 짝짓기에 여념이 없다. 이들은 짝짓기가 끝나면 부리를 맞대고 서로를 다시 확인한다. 몸길이 36cm에 비해 키는 67cm정도로 습지에서 잘 적응 되도록 긴 다리로 진화됐다. 날개와 등, 머리 위가 검푸른 빛깔이고 배, 목, 뺨은 흰색이다. 간척지·습지·바닷가·논·호수·삼각주 등지에 찾아와 얕은 물에서 먹이를 찾아 조용히 걸어다니다가 멈출 때는 몸을 위아래로 흔든다. 헤엄을 잘 치고 날 때는 긴 다리를 꽁지 밖으로 길게 뻗는다. 4∼8월에 3∼5개의 알을 낳는다. 물에 들어가 개구리와 올챙이·도마뱀·물고기·곤충·조개 따위를 잡아먹는다. 국내도감에는 제주 성산포나 낙동강하구에 봄·가을에 이따금씩 나타나는 길 잃은 새로 표시되어 있으나, 11년 전 이해순씨(서산농장연구원)가 천수만 상류에서 번식하는 10여 쌍을 처음 발견했다. 그 후에 매년 조금씩 늘어 한 때 100여 쌍 이상의 장다리물떼새들이 이
*새로운 불씨를 만들지 말라!*
조현호 | 울산 옥현초 교사 청계천, 서울의 역사 이번 호에서는 서울의 다리를 찾아 옛 궁궐도 찾아보고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인 청계천도 찾아 나서고자 합니다. 옛날 서울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도성이 둘러쳐 있고 명당자리에는 궁궐이 먼저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도성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청계천은 서울 사람들에게는 이런저런 애환이 담긴 생활의 터전이었습니다. 지금 청계천 주변에 남아있는 지명으로 청계천의 옛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종로는 도성의 중앙에 자리한 보신각종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일대는 사람들이 홍수를 이루어 운종가(雲從街)라고 불리었습니다. 마장동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말을 팔고 사던 목마장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다동은 다방골로 불렸는데 주로 광교를 중심으로 생활하던 민중들의 주거지였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중인들은 장통교 및 수표교 일대에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관수동은 관수교에서 유래하는데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장교동은 장통교에서, 수표동은 수표교에서, 무교동은 모전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청계천 일대에는 이렇듯 다리와 관련한 지명이 많습니다. 서울에 도읍을 정한 이래 서울 사람들의 생명수로, 배설구로, 위정자들의 정치적
글 | 박하선/사진작가·여행칼럼니스트 불교문화의 자긍심 '아잔타와 엘로라' 불교가 인도 대륙에서 발생한 이래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곳곳에서 그 꽃을 활짝 피워 왔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그 열기가 대단하다. 하지만 정작 그 본고장에서는 오래 전에 이슬람이나 힌두교 등에 밀려서 발생지 일원에서나 겨우 피폐해진 흔적들을 부둥켜안고 명맥만을 유지해 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만큼 인도 대륙에서는 불교가 현지 사람들에게 잊혀진지 오래되었고 찬란했던 많은 문화유산들도 함께 버려지고 잊혀져 왔던 것이다. 그 버려진 불교의 문화유산 중에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석굴 군이 인도 대륙의 남과 북을 갈라놓고 있는 '데칸고원'에서 발견되어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이다. 당시 이 두 석굴의 발견은 곧 인도 대륙 내의 불교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주고도 남을 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인도에서 불교가 발생했다는 면모를 과시하는데 한몫을 한 셈이라고나 할까. 밀림 속에 잠들어 있던 석굴 사원 '아잔타' 아잔타 석굴이 발견된 것은 참으로 우연한 일이었다. 1819년 영국 관리들이 이 데칸고원 일대에서 사냥 중에 호랑이를 쫓다가
글 | 김연수/생태사진가 미조(迷鳥)에서 서산시의 상징으로 변신 흐르는 강물 위에서 다리가 붉고 긴 롱다리 수컷들이 혈투를 벌이더니 이내 짝을 지어 쌍쌍이 사랑을 나누고 있다. 희귀조 장다리물떼새가 올해도 충남 서산시 천수만의 부남호 상류에 찾아와 귀여운 2세를 낳기 위한 짝짓기에 여념이 없다. 이들은 짝짓기가 끝나면 부리를 맞대고 서로를 다시 확인한다. 몸길이 36cm에 비해 키는 67cm정도로 습지에서 잘 적응 되도록 긴 다리로 진화됐다. 날개와 등, 머리 위가 검푸른 빛깔이고 배, 목, 뺨은 흰색이다. 간척지·습지·바닷가·논·호수·삼각주 등지에 찾아와 얕은 물에서 먹이를 찾아 조용히 걸어다니다가 멈출 때는 몸을 위아래로 흔든다. 헤엄을 잘 치고 날 때는 긴 다리를 꽁지 밖으로 길게 뻗는다. 4∼8월에 3∼5개의 알을 낳는다. 물에 들어가 개구리와 올챙이·도마뱀·물고기·곤충·조개 따위를 잡아먹는다. 국내도감에는 제주 성산포나 낙동강하구에 봄·가을에 이따금씩 나타나는 길 잃은 새로 표시되어 있으나, 11년 전 이해순씨(서산농장연구원)가 천수만 상류에서 번식하는 10여 쌍을 처음 발견했다. 그 후에 매년 조금씩 늘어 한 때 100여 쌍 이상의 장다리물떼새들이
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 말은 어떻게 생긴 말일까?’, ‘언제부터 쓰였을까?’ 하는 궁금증을 품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어원에 대한 궁금한 점을 물어오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어원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예전에 우리말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시대 이전의 우리말에 대해서는 전체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비교적 우리말의 옛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시기는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우리말을 온전하게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라고 할 수 있다. ‘행주치마’의 어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본 적이 있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는 편이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찾은 것인데 예전에 교과서에 실렸던 내용이라고 한다. "이 싸움의 경과를 살펴보면, 비단 실전(實戰)한 장졸(將卒)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단결된 국토 수호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으니, 부녀자들이 일제히 앞치마를 해 입고, 그 치마폭으로 돌을 날라 다투어 석전(石戰)을 도운 것이 그것이다. 이로 하여 앞치마를 행주치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행주 대첩에서 행주치마가 유래했다는 내용은 백과사전에도 올라 있다. 아래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이 미라의 주인공은 문정왕후의 종손녀. 부검 결과 미라의 태아는 머리가 질 입구까지 내려와 있었고 산모의 자궁은 파열된 끔찍한 상태였다. 자그마한 몸집의 이 여성은 출산의 고통 속에 아기와 함께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요즘에는 이렇게 목숨을 걸고 출산하는 여성이 없다. 하지만 옛날에는 미라가 된 ‘윤씨’처럼 죽어간 산모와 태아가 부지기수였다. 20세기 초에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유아 사망률은 4명 중 한 명 꼴이었다. 출산 과정에서 죽는 것까지 합치면 거의 절반가량이 세상에 태어나 걷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다. 출산의 고통은 커진 뇌와 좁아진 골반 때문 우리는 흔히 출산의 고통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지만 동물의 출산은 사람보다 훨씬 수월하다. 고통스런 출산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인간이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두뇌가 커져 생긴 부작용이다. 인간은 두뇌가 커지면서 고도의 기술을 만들고, 추상적 사고 능력과 언어 능력을 키워 복잡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인간은 같은 몸 크기의 포유류에 비해서는 두뇌의 크기가 6배나 크며,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나 고릴라에 비해서도 3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