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의 자원봉사자 모집에 응모하여서 면접 시험을 거쳐 선발이 되었다. 신청하여 온 사람의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1차 시험에 합격을 한 셈이다. 한국어 47명, 영어, 일어 각9명씩, 장애인 도우미 3명, 중국어 2명 등 총 70명이 선발되었다. 이중에서 63명이 교육을 받았으나, 5,6명은 이수 시간 부족으로 탈락하고, 50명이 조금 넘은 인원이 마지막까지 이수를 하였다. 이어서 24시간의 기본 소양 교육을 받고 나서, 보충교육이 16시간이나 있었다. 거기다가 민화특별전에 대한 교육이 10시간이 따로 있었으니, 그것만도 50시간이나 된다. 이렇게 훈련을 받는다고 다 자원봉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이번부터는 철저한 교육과 훈련으로 정말 충분한 자격을 가진 사람만이 해설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굳건하였다. 교육 중에 출석 관리도 아주 철저하여서 단 몇 분만 늦어도 출석이 인정이 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였다. 기본교육과 보충교육 40시간 중에서 32시간 이수하지 않으면 이수를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관리한 결과 처음에 63명이 교육을 받았으나, 5,6명은 이수 시간 부족으로 탈락하고, 50명이 조금 넘
전북교육청의 ‘변화하는 교실, 좋은 수업 만들기’를 위한 지역교육청 수업컨설팅지원단 연수회에 다녀왔다. 연수회 강사로는 ‘수업컨설팅지원센터’의 퇴직 교장선생님들이었다. 재임시절 도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수업장학의 전문가들이며 학교교육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신 분들이었다. 학교교육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수업도 개선의 차원을 넘어 혁신적인 변화를 모색하여 공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한다. 교사들에게 수업은 가장 전문적인 분야이면서도 전문가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교사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수업은 교과마다 교사마다 학생마다 지역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다양성이 있으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교수학습 방법의 연수회나 시범수업 공개의 참관 등에서 항상 ‘수업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유발의 기회를 제공하고 좋은 자료를 준비하여 자기주도적인 학습활동을 이끌어 성취 목표에 도달시키기까지의 수업의 전 과정이 참으로 다양할 뿐만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수준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등 수업의 설계와 과정이 어렵다는 점이다. 수업개선의 의지와 부단
PC 1대당 초등생 수 96년 25.8명→2005년 7.2명 28만 여건의 콘텐츠 양산, 도서관은 제2의 교실로 시행착오 속에 질 관리·제도 정비 등 과제도 남겨 우리나라 교육에 정보화가 도입된 것은 ‘괘도’와 ‘칠판’으로 추억되는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덕수상고에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용 컴퓨터가 설치되고, 1974년 문교부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컴퓨터 교육과정을 도입하면서 교육정보화의 싹이 트기 시작한다. 특히 1981년 등장한 최초의 300bps 상용화 모뎀과 1983년에 양산되기 시작한 4Mhz CPU의 SPC-1000 컴퓨터는 본격적인 교육정보화 시대가 임박했음을 예고했다. 본격적인 교육정보화의 출발을 알린 것은 에듀넷(www.edunet.net)이라고 할 수 있다. 1996년 9월 개통한 에듀넷은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정보 포탈서비스로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교수-학습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개통 당시 모뎀접속용 통신망을 통해 주로 활용되었던 에듀넷은 현장 교사들이 수업에 ICT를 활용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게 된다. 에듀넷 개통에 따라 물적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됐고 정부는 결국 1997년 ‘교육정보화
정보화기기는 교과서 이상의 의미 교수-학습의 장 확대…만족도 증대 오랜만에 1학년 담임을 맡은 나는 긴장한 채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이틀이 지났을까. 옆반 선생님께서 동학년 선생님 모두에게 활용하면 좋을 사이트를 여러 곳 소개해 주셨다. 마침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찾고 있던 차에 프로젝션 TV를 켜고 학생들에게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더니 아주 좋아했다. 지난 읽기 시간에는 글자 만들기를 하고 정리 단계에서 학생들이 나와서 컴퓨터로 글자를 직접 쳐 보게 했는데, 서로 해 보겠다고 흥미를 보여 그 적극성에 다소 놀랬다. 아직 입문기 단계의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지만 수준에 맞게 컴퓨터를 수업에 활용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정보화기기는 교과서 이상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교실에 구축된 교단선진화 기기와 인터넷 환경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과학실, 미술실, 국악실 등 특별실에서도 교과별 자료를 활용해 교과 특성에 맞는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10년 전에 미처 생각도 못했던 일이 이제 일상이 된 것이다. 교실 중심의 면대면 수업에서 벗어나 온라인으로 교수․학습의 장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변화다. 교사들은 학년별, 교과별로 1교
- 교육정보화 추진이 10년을 맞았다. 그간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전국 1만여개 학교에 컴퓨터 실습실과 학내 전산망 구축이 완료되고, 34만명의 모든 교원에게 1인당 1PC가 보급됐다. 전국 모든 학교에 학내 전산망을 구축한 것은 당시로서는 세계 최초였다. 지난 10년간 추진된 교육정보화는 교사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개별학습에서 협동학습으로 학교 현장을 변화시켰고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흥미나 학생-교사-학부모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도 전보다 증대됐다고 진단하고 있다." - 성과만 있었다 볼 수는 없지 않나?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정보화 보급이 수업장학활동과 같이 추진되지 못함으로써 기대했던 것보다 학교 현장에서 교육정보화가 활성화 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 콘텐츠 영역에서도 공통교과가 아닌 선택교과, 실업계․특수교육 교과 관련 콘텐츠 등의 지속적인 개발․보급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보와 장학을 연계할 수 있도록 교육정보화 관련 부서에 장학 및 교육과정 관련기능을 강화하고, 교사가 원하는 국내외 우수 연수 프로그램 도입을 추진하는 등 앞으로도 교육정보화 추진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 우리나
지난 2월말, 42년간이나 정들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인생 나이 60이 넘어서 정년을 하게 된 것만도 요즘 세상에서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라고들 한다. 이 일반적이고, 라고 하는데 62세 정년을 한 우리는 에 들만큼 지탄의 대상이라는 고들 놀리기도 해서 웃곤 했다. 이렇게 어린이들을 상대로 하는 초등교육에 몸담았던 나는 이제 그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상하였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조그만 주간신문의 편집국장이라는 직책이니 파격적인 일일 것이다. 물론 새로운 신문이고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의 어려운 상황이지만, 학교 선생 출신이 편집국장이라는 것은 어쨌든 파격이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99년부터 사이버상의 기자활동을 해온 경력이 있다. 이미 서울에서 발행되는 2개의 종합 일간지에 연재를 쓸 만큼 활동력이 인정을 받았고, 지금도 4개의 신문에 디지털특파원이나 명예논설위원, 블로거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등 언론계에 지평을 넓혀왔던 탓일 것이다. 또한 문단에서도 중진에 속하는 편이어서 전혀 엉뚱한 일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학교 생활을 그만두고 나오면서 진
이주노동자들은 우리 나라 사람은 아닐지라도 이제 우리 나라 산업역군으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 만약 이들의 노력이 없다면 당장 여러 산업들에서 인력 부족으로 공장이 멈추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이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자녀 교육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답답한 마음뿐이다. 왜 학교에서는 그들의 입학을 또는 취학을 받으러 하지 않는 것일까? 주민등록이 없다고? 또는 불법체류자라고? 우리 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부당한 대접을 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우리 주변에 취학 연령의 아이들이 있다면 받아 들여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교육자로서 할 일이다. 비록 그들에게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안 담글 수는 없지 않는가? 2000년, 교장으로 두 번째 근무하던 학교에 가서 보니 몽골 어린이 한 명이 청강생으로 취학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 다행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어린이는 정식 입학으로 취급이 되지 않으므로 해서 학교 급식을 받을 수도 없고, 학생이라는 것이 증명도
2006년 3월 개학과 동시에 전북 완주에서는 급식을 먹은 학생 40여 명이 집단 식중독 증세를 보였다. 이어서 제천과 대구, 광주 등에서도 집단 식중독 증세를 보인 학생들은 4월 달 들어서만 2백여 명. 이런 상황에서 영양사도 없이 어린 유아들을 가르치고 있는 농어촌의 유치원의 급식 실태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읍, 면소재지에 유치원이 최근에 늘어나고 있다. 수지타산도 맞지 않을 터인데 시골에 유치원이 늘어나는 이유는 정부의 농어민 자녀 학비 지원 시책에 따라 최고 70%까지 보조를 해 주는 것에 있다. 이런 틈을 이용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유치원에 영양사 없는 급식이 늘고 있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유아의 영양은 성장의 밑거름 역할 원아들이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저 귀엽기만 하고 먹는 것조차도 애무를 자아내고 싶을 정도다. 이런 원아에게 영양도 맞지 않는 음식을 공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유치원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4세반, 5세반, 6세반 7세반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런 아이들이 무엇을 알 것이며 무엇이 나쁜 것인 줄 어찌 알겠는가? 주는 대로 먹고 이끌어 가는 대로 따라 가는 이들에게 기성세대
4월부터 아이들과 모둠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아이들과 좀 더 가까이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 아이들과 협의 하에 모둠일기를 쓰기로 한 것입니다. 모둠일기를 쓰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모둠장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모둠일기 쓰는 방법과 몇 가지 주의 사항 등을 적어 노트 첫 장에 부쳐줍니다. 그리고 모둠일기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가자는 취지임을 밝히는 게 중요합니다. 지나치게 강제적 접근을 하면 본래의 취지가 상실될 염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에선 개인 일기를 쓰기 때문에 좀 덜하지만 중․고등학교에선 많은 교사들이 아이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 장으로서 모둠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처음 모둠 일기를 쓰기 까지 많은 생각과 망설임을 가졌었습니다. 모둠장 쓰는 일이 아이들에게나 나에게 또 하나의 일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둠일기 속에 드러난 아이들 생각을 읽어가면서 상담이나 단순한 대화를 통해서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면서 그 망설임이 기우임을 알게 됐습니다. 아이들의 글 속엔 남교사와 여학생이라는 관계에서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 들어
최근 우리나라에도 교육계에서 민족사관고등학교가 설치운영되고 대안학교가 운영되는 등 다양한 교육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때 미국의 명문 고등학교는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대안학교의 효시라고 하는 섬머힐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면 우리 나라의 수월성과 다양성에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리라 본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명문고등학교인 앤도비시 필립스아카데미, 미들섹스고등학교, 디어필드 아카데미, 윈저스쿨과 영국의 대한학교인 섬머힐을 소개하는 자료를 본 적이 있으며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앤도비시 필립스아카데미(고교)의 교장은 학생들의 재능을 충분히 살려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학업태도, 열망, 가치관, 공동체 함양이 일정수준에 오르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적성·진로를 찾도록 돕는 과정이 체계적이란 사실이 훨씬 값져 보였다. 학생들은 11학년 초부터 진학 상담원(college counselor)과 수시로 만나 지원 대학·학과에 대해 의논한다. 전문 상담원은 모두 6명. 이들은 대학이 신입생 선발 때 요구하는 학생들의 클라리넷 연주, 풋볼 경기 장면 등을 오디오·비디오에 담아준다. 진학 상담원은 학생 1명에게 알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