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고등학교의 성적 처리 불안이 교육부의 또 다른 정책 입안으로 이어졌다. 다름 아닌 올해부터 각 고등학교의 시험 문제를 인터넷에 올리라는 결정이다. 올리지 않을 경우에는 각 시·도교육청에 불이익을 준다는 경고 아닌 경고를 하고 있다. 공개해야 할 항목으로는 고등학교 각 학년별, 과목별 시험 문제, 평가 채점 기준, 평가 내용 등이다. 이렇게 교사를 믿지 못했어야!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부의 이와 같은 지침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학교마다 마련된 홈페이지에 수행평가나 채점 기준 등은 거의 시험을 보기 전, 학년 초에 공고를 하거나 탑재를 한다. 하지만 시험문제까지 탑재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신 평가나 시험 문제 출제 때문에 일선 학교, 특히 일선 고등학교의 수많은 선생님들의 평가 심의 절차나 감사로 극도의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이거 원 교사들을 아예 믿지 못하겠다는 거 아냐.” “도대체 시험 문제를 인터넷에 탑재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학교나 지역 차이, 그리고 지도 교사에 따라서 다양한 문제가 있을 수 있을 것인데, 이를 모두 인터넷에 탑재하라는 것은 결국 그런 차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아
영어를 몸으로 체험하는 ‘영어마을’이 곳곳에 생겼으며, 또 곳곳에 더 많이 지어질 전망이라고 한다. 폭발하는 수요와 영어연수를 위하여 해외로 나가는 학생들의 비용절감과 타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긍정적인 대안으로 보는 시각과 많은 자본이 투자된 시설이 장기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 크고 작은 시설의 난립에 따른 교육적 효과에 대한 회의적인 눈초리, 학교교육에 대한 더한 실망을 거론하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1999년에 이스라엘에 유아교육 연수를 갔었다. 한 달 동안 이스라엘의 다양한 교육기관과 교육 프로그램을 접하였고, 스물 두 개국에서 참여한 교수, 장학관, 교사들에게 각 국의 교육 상황과 프로그램 그리고 자신의 나라를 소개하는 ‘세계의 날’에 참가자들이 준비한 책과 자료, 토속품, 춤과 노래를 통해 그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 태평양의 섬나라에서 온 사람, 아시아에서 온 사람, 남미에서 온 사람,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아프리카식의 영어, 사모아식 영어, 남미식 영어, 아시아식 영어로 수다를 떨며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지내었으므로 처음에는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
교직경력에 비해 저학년을 맡은 기간이 짧습니다. 그래서 3월에 이곳 문의초등학교로 근무지를 옮긴 제가 3학년인 우리 반 꼬마들을 만나던 날은 설렘과 기대가 더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첫 만남이 있은 후 지금까지 무던히도 노력을 했는데 아직까지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처음 담임을 맡았을 때만해도 이 아이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이 아이들과 하나가 되는데 40여일이라는 기간이 이렇게 부족하리라고는 생각조차 안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교사이기 이전에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게 잘못입니다. 교사이기 이전에 어른인 제가 아무리 열린 사고를 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다 해도 생활 자체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것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아이들의 생각을 앞서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이 나를 당황하게 합니다. 국어 말하기 수업시간에 자기소개를 숙제로 낸 후 발표를 시켰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태어 난 곳이 병원이라고 발표하는 바람에 교육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을 때는 고향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 제 자신을 탓했습니다. 전교가 대청소를 하던 날 아
토요일 오후,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퇴근한 시간이었지만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로 또한번 등교시간 같은 분위기였다. 바로 서울특별시 교육청의 '미술영재 선발' 2차 시험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미 1차선발을 서류전형으로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60여명의 학생만이 2차 실기 시험에 응시하였다. 15일 오후 서울 대방중학교(교장 이선희)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술영재교육 대상자 선발 시험이 실시되는 장소이면서 실제로 5월부터 미술영재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60여명의 학생을 20명씩 3개 그룹으로 나누어 실기시험을 실시하게 되었다. 즉 문제를 보고 문제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답안은 그림으로 작성하는 것이었다. 이미 미술에 상당한 재능을 보인 학생들이었지만 워낙에 문제의 수준이 높았던 터라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모습들이었다. 1문제를 출제했지만 고사시간은 무려 4시간 30분이었다.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는 그 문제의 참뜻을 이해하기도 어려웠지만 답안 작성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은 더욱 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문제를 받아들고 생각하는데 보통 10여분 이상을 보낸 학생들이 서서히 그림 그리기 작업에 돌입하였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시
한 울타리 안에 중·고등학교가 함께 위치해 있다보니 가끔 이 두 학교의 학생들을 비교할 때가 있다. 외양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교복 색깔이나 덩치가 아니더라도 움직임이나 얼굴 표정만 봐도 금방 누가 중학생이고 누가 고등학생인지 가려내는 안목이 저절로 생긴다. 야생노루처럼 움직임이 팔팔하고 표정에 생기가 도는 것은 중학생이요, 폐계(廢鷄)처럼 얼굴이 꺼칠하며 몸에 활력이 없는 것은 틀림없는 고등학생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리포터인 내 생각엔 우선 잠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중학생일 적에는 학습의 양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야간 자율학습이 없었기 때문에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고등학교에 올라오자 거의 배로 늘어난 학습량과 연일 계속되는 야간 자율학습으로 대다수의 학생들이 수면 부족을 느끼는 것이다. 무조건 하면 된다는 식의 4당5락 논리가 아직도 학교 현장에선 유효한 셈이다. 청춘 시절 밤을 낮 삼아 면학에 정진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흐릿한 등잔불 밑에서 잦아드는 심지를 북돋으며 매일 밤 그을음으로 콧구멍이 새까매질 때까지 공부하던 추억이 리포터에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공부하
비가 내린후의 4월 하늘은 유난히 맑다. 아침부터 학교는 축제 분위기, 학생들 모두 들뜬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제39회 과학의 날 행사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각자 참여할 종목의 준비물을 가지고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통 때와는 다르게 보인다. 활기찬 모습이다. 오후 2시, 오전의 행사를 마치고 전교생이 참여한 가운데, 모형비행기와 물로켓 발사대회가 시작되었다. 그중에서 물로켓은 발사대를 두군데에 설치하여 우선 시범발사를 한 후 학생들의 발사대회로 이어졌다. 70m 전방에 표적을 그려놓고 그곳에 정확히 물로켓을 착륙시키는 경기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왼쪽 발사대에서 갑자기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나면서 로켓이 잘 발사되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점검을 하다보니, 로켓몸체가 기밀유지가 되지 않아 공기가 빠지고 있었다. 테이프를 이용하여 공기유출이 되지 않도록 한 후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아래 쪽에서 물이 새면서 압축이 잘 되지 않았다. 다시 발사대에서 로켓이 분리되었다. 다음 학생 차례가 되었다. 이번에는 공기를 압축하는 도중에 갑자기 로켓이 발사되어 버렸다. 아무런 방비없이 옆에 있다가 물벼락을 맞았다. 스탠드의 학생들이 웃고 난리가 났
일본은 이미 1971년에 교원의 자질 향상을 위한 체계를 양성, 채용, 연수, 재교육의 과정을 통하여 연속성을 중요시하는 관점을 견지해 왔다. 그 후 1982년에 교원의 채용 및 연수에 관한 방향을 제시하였고, 이를 계기로 각 현교육위원회에서는 교원 연수의 체계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로 대학의 교직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실제로 채용 시험에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한 검토를 한 결과 부정적인 것이 있음을 발견하여 양성교육과 체용간의 단절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대학 교육위원회, 학교 등 관계기관의 협의의 장이 마련되었지만 효과적인 운영은 쉽지가 않았다. 이에 문부성은 각 도도부현교육위원회에 교원의 자질 향상을 위한 협의회가 설치되도록 예산 지원을 하였다. 그 결과 교원자질향상 연락협의회가 발족되어 교육위원회별 주요 테마가 설정되었으며 이에 대한 연구가 추진되었다. 현대 사회는 학교교육에서 학습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애학습의 기초를 형성하는 단계로서 학교교육체계에서 생애학습 체계로 변화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종래의 교수학습 중심의 지식관에서 벗어나 방법적인 면에서 지식 구성주의가 강조되고 있다. 이는 인간을
“요즈음 아이들이 너무 약을 많이 먹는 것 같아요. 혹시나 약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까봐 걱정돼요. 시험이나 환절기가 되면 많은 아이들이 와서 약 달라고 다들 성화니 이거 원 내가 약사도 아니고, 의사도 아닌데 혹시 준 약 때문에 문제가 생길까봐….” 학교에서 학생들의 건강을 담당하고 있는 보건 선생님의 하소연이다. 학생 보건을 담당하고 있지만, 약 처방이나 학생들의 건강 진단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터라 항상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게 된다고 한다. “진통제나 감기약 같은 것을 아이들에게 주기는 하지만, 주면서도 이걸 줘도 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아요. 하도 와서 약 달라고 하니까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가 약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하기도 해요.” 일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건강을 담당하는 업무가 있다. 대부분 수업을 하고 맡고 있는 특정 과목의 선생님들이 그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일선 학교에 학생들의 건강을 제대로 담당할 수 있는 보건교사의 배치는 여전히 요원한 일로 취급되고 있다. 제발 약 너무 많이 먹지 마라! 이런
우리 민족의 긍지를 살려준 사건이 지난해 가을에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일본에게 약탈당했던 우리의 귀중한 역사유물이자 일본의 콧대를 꺾어서 자랑이던 정문부장군의 북관대첩비의 반환이었다. 일본은 자기네 조상들이 임진왜란 때 당했던 치욕의 기록이 들어 있는 북관대첩비를 일본으로 약탈해서 전범들이 모셔져 있는 자기 나라의 신앙의 터이자 자존심의 상징인 야스꾸니 신사의 한 구석에 처박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1909년 조소앙 선생에 의해 이 비의 정체가 밝혀졌었지만, 식민지 시기여서 반환 운동이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었다. 그러다가 1978년에 제일 사학자 최서면 선생에 의해서 이 비가 일본의 야스꾸니 신사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본격적인 반환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특히 정문부장군의 후손인 해주정씨 문중에서 반환을 추진하였고, 1979년에는 정부 차원의 반환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 있던 것인데 왜 너희들에게 주느냐?'고 하거나, '민간인의 소유여서 정부가 간여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반환을 거절하였다. 이에 지지 않고 여러 단체의 요구가 이어졌고, 1996년 한일불교복지협의회의 센신스님 등이 신사에 반환을 촉구하고 나서게 되었다. 2000년에 초산스
학생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다보면 미묘한 사회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학생들은 말끝마다 무슨무슨 '-삼'. 무슨무슨 '-염'자를 붙더니 올해부턴 또 입만 열면 '쩐다'와 '찌질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일반인들은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 단어의 용례를 가만히 살펴보니 '쩐다'는 주로 엄청나게 감동적인 일이거나 어이없는 일에 붙이고, '찌질이'란 단어는 행동이나 생각이 굼뜨고 약각 덜 떨어진 듯한 아이들에게 붙이는 놀림조의 말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매우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나서도 "야, 그 영화 쩔더라." 옆 짝꿍이 방귀를 뀌어도 "야, 너 방귀냄새 쩐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도 "와, 경치 정말 쩌는데." 등의 식으로 사용한다. 요즘엔 '찌질이'란 단어가 파생되어 '개찌질이'란 단어도 생겼다. 앞에 '개-'라는 강세 접두사까지 붙은 것이다. 이는 '찌질이'보다 훨씬 어감이 강해 학생들 사이에선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앞에 '개-'가 붙은 '개찌질이'는 보통의 '찌질이'보다 훨씬 더 어리숙하고 멍청한 사람을 지칭한다는 것은 삼 척 동자도 다 알 것이다. 예를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