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작은 누구에게나 항상 설렘으로 다가온다. 입학, 첫 출근, 첫 데이트, 결혼, 이사 등 모든 새로운 시작은 기대와 희망, 그리고 막연한 불안감으로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중에서도 3월은 우리 선생님들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을 설렘으로 잔잔히 흥분시키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올해로 교직생활 30년을 맞는 필자에게도 3월은 역시 설렘의 계절로 다가온다. 이번에 강의에 들어올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일까, 어떻게 하면 새 학기를 좀더 재미있고 알차게 보낼까 등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1학기를 시작하게 된다. 기대와 설렘으로 3월을 맞는 것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기 초가 되면 항상 필자를 긴장시키는 것은 학생들의 강의평가도 아니요, 성과급도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얼마나 존경과 신뢰의 대상으로 다가갈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육이란 선생님을 존경하고 신뢰할 때만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교육이란 학생들이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수용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므로 학생들이 신뢰와 존경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강의는
“그 얘기 들었어?” “뭐?” “○○ 알지? 오늘 갑자기 연락이 와서 만났는데, 이혼했다고 하데.” “그래? 왜? ○○씨 바람 같은 것 피울 사람 아니지 않나?” “원래 성격이 잘 안 맞았는데, 서로 참고 살다가 최근에 이건 아니다 싶었다나.” “내 그럴 줄 알았어. 가끔 얘기해보면 딱 감이 잡히더라고. 두 사람 서로 가까운 듯 행동하지만 왠지 겉도는 것 같고, 가식적인 면도 느껴지고. 어쩐지 이상하더니.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내가 아는 그녀는 이렇게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을 하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아는 사람의 가정사뿐 아니라 연예인에 대한 가십이나 정치적 사건이 보도될 때도 마치 전부터 낌새를 채고 있었다는 듯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어”라고. 그러면서 마치 ‘형사 콜롬보’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풀어나가는 것처럼 줄줄이 이유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듣다 보면 꽤 그럴듯하게 느껴져 그 일이 지금까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느껴진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는 그녀의 버릇이 듣는 이의 입장에선 그리 탐탁지가 않다. 나
최효찬 | 저자, 비교문학 박사 교육으로 ‘존경받는 사람’ 키워야 세상의 모든 부모들의 바람은 한결같다. 아이가 훌륭하게 자라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어 부자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어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을 빛내주면 그보다 더한 바람은 없다. 흔히 “아이는 부모의 얼굴이다”는 말이 있듯이 아이의 성공은 곧 부모의 성공과도 같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부모의 사회적인 지위가 높더라도 자식 때문에 마음 고생하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부모가 자신들의 일 때문에 제대로 자녀를 돌보지 못했거나 자녀교육에 소홀할 경우 아이는 부모의 기대와는 다르게 성장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부모가 아무리 성공했더라도 자식이야기만 나오면 풀이 죽어 고개를 들지 못한다. 반면에 사회적 지위가 낮은 부모라도 자녀들이 남부럽지 않게 자라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외국의 유명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간다면 그 부모는 언제나 남들 앞에서 당당해진다. 자식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절로난다. 사는 것도 신바람이 난다.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데, 대부분 다음과 같은 유형 가운데 하나에 속할 것이다.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