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7년여의 격전 끝에 나·당연합군에 대승해 나라를 보전하다.” 안타깝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전개되었다. 고구려는 당과 신라에 패해 668년(보장왕 27)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더불어 넓은 만주 또한 우리 민족의 생활무대에서 거의 벗어나 버렸다.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을 물리쳤을 경우 오늘날 동북아시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동북공정(東北工程,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약어)’이란 낱말은 무슨 공업화 프로젝트를 연상시키지만 실로 무서운 작업이다. 중국은 근래에 해괴하기 이를 데 없는 엉뚱한 일을 벌이고 있다. 5만여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를 슬금슬금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더니 급기야 고구려까지 자국 역사로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우리나라가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 ‘인류 구전(口傳) 및 무형문화재 걸작’으로 등록하려 하자 단오절이 중국의 전통 명절임을 내세워 문화약탈이라 비난하고 나섰다. 2004년 7월 1일 중국의 쑤저우[蘇州]에서 열린 28차 세계유산위원회(WHC)는 결국 중국과 북한의 고구려 유적을 나란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평양 동명왕릉 등 진파리 고분 15기, 평양 호남리 사신
일년 내내 꽃길로 단장되는 섬진강길! 섬진강에서 태어나 섬진강에 기대어 살며 아름다운 글로 노래하는 한 시인에 의해 더 널리 알려진 이 길은 봄에는 매화꽃, 벚꽃, 그리고 배꽃이, 여름에는 밤꽃과 코스모스가, 가을에는 산국과 쑥부쟁이를 포함하는 국화꽃과 단풍꽃이, 겨울에는 차나무꽃과 눈꽃이 피는 아름다운 길이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에서 길을 떠난 섬진강물이 남해바다에 몸을 풀기 까지 212.3킬로미터를 굽이쳐 달리는데 이는 나라 안에서 아홉 번째로 길게 달리는 물길이다. 대체로 강폭이 좁고 강바닥이 많이 노출되어 있어 뱃길로 이용하는 데는 불편하나 화개장터에서 하동읍까지의 강변 고운모래는 전국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금빛의 모래밭에는 금빛의 껍질을 가지는 재첩이라는 조개가 살고 있어 하동하면 재첩으로도 유명하다. 섬진강의 이름에도 이야기가 들어 있어 두꺼비섬(蟾)에, 나루진(津)을 사용하여 ‘나루터에 두꺼비가 나타난 강’이라는 의미이다. 고려 말 하동에 침입한 왜구들이 강을 건너려 하는데, 다압면 섬진마을의 나루터에 수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모여들어 울부짖자 왜구들이 놀라 도망쳤기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섬진강물길은 좌우로 산길을 가지는데, 이는 하동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