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편지의 형식을 살펴보면 상세한 내용으로 상대를 설득할 목적으로 쓴 서간(書簡)과한 자(30센티)의 짧은 글로 소소한 일상을 적은 척독(尺牘)이 있다. 사대부들은 전화가 없던 시대에 편지를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벗에게 마음과 정서를 담아 고유의 필체로 편지를 보내고 가슴 설레며 답신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중 척독은 짧은 편지로 오히려 긴 여운이 느껴진다. 처마의 빗물은 똑똑똑 떨어지고 향로의 향냄새 솔솔 풍기는데 지금 두엇 친구들과 맨발 벗고 보료에 앉아 연한 연근을 쪼개 먹으며 번뇌를 씻어볼까 하네. 이런 때에 자네가 없어서는 안 되겠네. 자네의 늙은 마누라가 으르렁거리며 자네의 얼굴을 고양이상으로 만들겠지만 위축되지 말게. 문지기가 우산을 받고 갔으니 가랑비쯤이야 족히 피할 수 있을 걸세. 빨리빨리 오시게나. 모이고 흩어짐이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런 모임이 어찌 자주 있겠는가. 헤어지고 나면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네. 허균이 이재영에게 이 글은 여름날 허물없는 벗들이 빗소리를 맡으며 어린 연근을 쪼개 먹자고 벗을 부르고 있다. 짧은 글에 오감이 잘 드러나고 친구의 부름에 무서운 마누라가 잔소리하겠지만 위축되지 말라고 농담까지
‘매헌윤봉길의사 상하이의거 9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가 17일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이하 기념관) 3층 강당에서 열렸다.(사진) 매헌윤봉길의사 의거 9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위원장 이종찬)가 주최하고,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 회장 명노승)의 주관으로 개최됐다.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상하이의거 90주년을 기념해 국내외 석학들이 ‘윤 의사 상하이 의거의 역사적 의미와 내일의 과제’를 주제로 토론하는 자리였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의 기조강연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와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을 시작으로 주제토론이 이어졌다. 주제토론에서는 중국 푸단대 쑨커즈 교수와 스위엔화 교수가 온라인을 통해 각각 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들은 윤 의사 의거 당시 중국 내외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이웃 나라’ 관점에서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이어 윤 의사의 항일 독립운동을 재조명하면서 윤 의사 관련 자료와 출판물을 중심으로 연구의 현황과 과제 모색, 한일 양국이 함께 발전하는 미래 등을 논의했다. 명노승 사업회 회장은 “윤 의사의 항일 투쟁은 인간의 자유와 세계 평화의 이상을 향한 투쟁”이라며 “우리나라 기적의 발
우리 역사에서 일제의 식민시대를 생각하면 나라 잃은 슬픔으로 고통과 방황을 했을 선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3.1전국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수많은 비폭력운동에 앞장서 행동했던 애국지사와 민중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역사가 부끄럽지 않은 것이리라. 나라 밖으로는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암울한 시대에 인도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운동에 헌신했던 애국지사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도 우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전쟁과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도발 등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주변의 정세를 교훈 삼아 인류가 평화와 사랑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 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인도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비폭력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정치인 간디는 비노바 바베를 가르켜 '인도가 독립하는 날, 인도의 국기를 맨 처음으로 계양할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비노바는 권력의 바깥에서 재야의 중심인물로 손꼽히며 이타적인 활동과 인격적인 삶으로 모든 인도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는 10살의 어린 나이에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인류를 위해 헌신하기로 서약했다. 비노바는 폭력 없는 사랑과 감동만으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천생 교육자였다. 강원교육의 문제를 진단할 때는 단호하게,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할 때는 확신에 찬 단어로 말을 이어가다가도 학교에서 제자들과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릴 때는 눈웃음부터 지었다. 위기에 처한 학생과 짜장면을 먹으면서 소통했던 이야기, 자신을 오해한 제자가 결국 진실을 알고 감사함을 담은 장미 한 송이를 건넸던 이야기, 주례를 서지 않으면 결혼 안 하겠다던 제자의 말에 39세에 처음 주례를 섰고, 100명 이상 결혼시킨 이야기…. 다음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언제까지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기세였다. 신경호 강원도교육감은 17개 시·도교육감 가운데 특히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교육 행정력까지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38년 4개월간 교사, 교감, 교장을 거쳤고, 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과 춘천교육장을 역임한 덕분이다. 대담=엄성용 편집국장 정리=김명교 기자 kmg8585@kfta.or.kr -최근 취임 100일을 맞아 지역신문에서 진행한 직무수행 평가에서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100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도민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현장에서 답을 찾기 위해 소통에 주력했다. 학교에 찾아가고 학생, 학부모를
교권침해와 학부모 악성 민원 등으로 인해 교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의 빈 자리를 메울 계약제 교원(기간제교사·시간강사)이 부족해 학사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사실이 본지 보도(11월 14일자)를 통해 알려졌다. 보도를 접한 현장 교원들은 깊이 공감한다는 의사를 표해왔다. 하루빨리 문제 해결을 위해 교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해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실제 최근 한국교총 대변인실이 전국 단위로 모집한 ‘SNS 서포터즈’ 20명에게 서술식설문(중복답변 가능)으로 진행한 긴급 질의에 답변을 보내온 교사들은 한목소리로 ‘심각하고 시급한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단 ‘병가·연가 등이 늘어나는 이유’를 묻는 항목에서 교권침해와 학부모 민원, 학생 지도 곤란 등 고충에 의한 병가와 연가 등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답변자 20명 중 절반을 웃도는 11명이 이 같은 답변을 냈다. ‘코로나19’를 원인으로 지목한 인원은 9명이다. 교권침해와 코로나19 등 두 가지를 동시에 언급한 교원은 5명이다. 이정규 강원 상지여고 교사는 “교권침해, 학부모 악성 민원 등의 고충 증가”라고 했다. 이선주 충남 온양천도초 교감은 “코로
■교육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도종환 의원 등 10인 | 11.14)=고위공무원을 범정부 차원에서 효율적으로 인사 관리해 정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위공무원단’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실‧국장 및 지방교육행정기관의 부교육감 직위에 상당하는 장학관의 경우, 실제로는 고위공무원단 직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그 직위에 보하지 않는 등 신분상의 불이익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현행법에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장학관을 규정하는 조항을 신설해 교육공무원의 직무와 책임의 특수성에 비춰 임용과 신분을 보장하고 정부의 교육정책 경쟁력을 높이는 등 현행 법률의 미비점을 개선‧보완하고자 하는 것이다. 개정안에는 제2조의2 △교육부의 실‧국장 및 이에 상당하는 보좌기관 △교육부 소속 각급기관,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교육행정기관의 직위 중 제1호에 상당하는 직위를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장학관으로 규정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또 교육부 장관은 고위공무원단 직위에 임용될 공무원이 갖춰야 할 능력과 자질을 설정‧평가해 신규 채용과 최초 보직 등 인사관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권인숙 의원 등
“학교 소멸의 길 들어섰지만… 마지막까지 열정으로 교육할 것” 고령화와 인구 감소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는 곳은 지방이다. 특히 정착해 생활할 수 있는 제반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 젊은 세대가 떠나버린 지역은 소멸의 길을 걷기도 한다. 사람이 살지 않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역의 학교도 다르지 않다. 1908년 개교,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충남 석성초도 소멸 위기에 놓인 곳이다. 현재 전교생이 21명. 내년도에 입학 예정인 신입생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작은 학교라고 해서 낮잡아봐서는 안 된다. 각종 과학대회에서 상을 휩쓸어 이곳의 과학 교육법에 주목하는 이가 적지 않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국립중앙과학관이 주관한 제68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학생부 생물 부문 국무총리상을 거머쥐었다. 4학년 김담율·김주호·허다슬 학생(지도교사 이소영)은 ‘정전기를 이용하는 박주가리 열매의 이동 특성 탐구’를 주제로 1년간 탐구했다. 덩굴식물인 박주가리 열매가 어떻게 퍼져 싹을 틔우는지를 관찰했고, 박주가리 열매에 나 있는 털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털이 공기 중의 습기를 모아 이동과 씨앗의 이탈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영하 교장은
구본준 지음|서해문집 펴냄 어쩌다 강연을 하면 그 지역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하고 간다. 그 동네의 유명 인사라든가 문화유적, 심지어 그 동네 출신 유명 유튜버도 찾아본다. 처음 만난 사이에서 그 동네 이야기만큼 어색함을 해소해줄 이야깃거리도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강연 요청이 왔는데 이번만큼은 동네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을 읽었기 때문이다. 구본준 선생은 한겨레신문 건축 전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여러 건축 에세이를 펴낸 분이다. 건축 이야기 분야의 유홍준 선생이랄까.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건축 이야기를 구수하고 정감있게 알려준다.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은 국내외 사연이 많은 건축물을 희로애락으로 분류해 소개한다. 그런데 이진아기념도서관을 희(喜) 즉, 기쁨의 건물로 소개했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다. 이진아 기념도서관이 어떤 건축물인가? 평생 일밖에 모르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의 딸이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받던 중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슬픔을 기념한 도서관이다. 오래전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현자에게 한 아버지가 찾아와 가족을 위한 글귀를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현자가 마침
집에 큰불이 난 건,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자욱한 연기와 불을 피해 몸만 대피해야 했던 위급한 상황. 그 순간에도 잊지 않고 챙겨나온 건 단 하나, 바로 ‘플루트’였다. 자기 몸처럼 다뤄온 소중한 존재였기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찰나에도 반사적으로 머리맡에 손을 뻗어 악기를 움켜쥔 것이다. 플루티스트 임정우(한국예술종합학교 2학년) 양에게 있어 악기는 이토록 의미 있는 대상이다.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초등 2학년 때부터 자연스럽게 플루트를 시작한 그는 장래가 촉망받는 연주자로 음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목관 악기 중 금으로 만들어진 건 플루트밖에 없거든요. 오보에나 클라리넷은 나무로 돼 있어서 까만색인데 플루트는 금이나 은 소재로 돼 있어서 반짝반짝하고 예쁜 것이 제 눈에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생긴 것과 소리가 예뻐서 좋았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고 저에게 소질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플루트 연주에 있어 임 양의 장점은 시원시원하고 파워풀한 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그는 “키와 체구가 큰 편이라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폐활량이 좋고 긴 호흡으로 악기를 다룰 수 있어볼륨이 빵빵하다”며 “반면에 아직 섬세하고 세밀한 연주는
2014년 12월, 인성교육을 의무로 규정한 세계 최초의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5년 7월 21일부터 시행된 이 법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교육기본법에 따른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국민을 육성해 국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인성교육진흥법’을 토대로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수년에 걸친 연구 및 시범학교를 운영했고 다양한 영역에서 각종 프로그램과 자료들을 개발했다. 내용이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잘 구성돼 있어 흠잡을 곳이 별로 없고,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만 하면 상당한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교에서도 교과 지도와 연계해서, 특별활동을 통해, 또는 생활지도나 개발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등 교직원들과 함께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며 인성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인성함양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관내 초‧중‧고 학교를 대상으로 전국 감사편지 공모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했고, 우리 학교에서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감사편지 쓰는 날을 지정해 91%의 학생들이 응모해 작품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학교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