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은 아무나 하나 ? 연초, 어떤 계획들을 세우셨나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세우는 신년계획에는 운동, 금연, 다이어트와 같은 건강계획, 이직, 어학능력향상 등의 자기계발, 솔로탈출, 결혼하기, 재테크가 주를 이룬다고 하네요. 저 역시 지난해 다이어리를 펴고 신년계획을 살피니 ‘다이어트, 영어회화, 솔로탈출’ 3가지 항목이 모두 포함되어 있더군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3가지 계획은 전혀 실천하지 못한 허울뿐인 계획이었다는 사실에 탄식할 뿐입니다. 왜 매년 반복되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새해에는 다시 계획을 세우는 일에 급급할까요? 실제로 실천할 방법은 없을까요? 계획은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세워라 지인의 상사 중엔 이런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업무 진행을 위한 플로차트 작성 시에는 분 단위까지 계획하여 제출하라’는 지시를 하는 타입. 업무라는 것이 10분 만에 끝날 수 있는 일도 있고, 한 달이 걸려도 원점으로 돌아와 진척되지 않는 일도 발생하는, 다양한 아이템들의 집합체인데, ‘1분’, ‘5분’을 가르는 계획을 작성하기란 너무 융통성 없는 지시였겠지요. 그런데 그분은 “일단 실천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팀원들을 밀어붙였고, 회의시간 역시 ‘10
훌쩍 떠나기, 그리고 쥘 베른의 ‘경이의 여행’ 지구본을 손가락으로 돌려본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지구가 돌아가면서 둥글게 세상이 펼쳐진다. 익숙한 지명들 사이로 조금만 비켜가도 낯선 곳.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어느 누군들 그러지 않으랴. 아침 출근길에서 또는 답답한 교실에서 문득 먼 하늘 바라보면 어느새 마음은 어디론가 떠나고…. 어느 계절인가 훌쩍 떠난 길. 한적한 강원도의 산간 도로를 미끄러지듯 차로 달릴 때, 온몸에 파고드는 듯한 떨림에 놀란 적이 있었지. 문득 대학 시절 걸었던 긴긴 옛길들, 떠오르고, 하늘 가득 쏟아질 듯 은하수, 젖어 있고, 그 아래 터벅이던 발자국들, 가슴 쿵쾅거리고, 철썩거리던 파도 소리, 발끝을 간질이고, 백두대간의 산맥들에서 뿜어 나오는 나무들의 숨소리. 작은 새의 호흡처럼 이어지던 길. 끝 모르게 펼쳐지던 생각들. 누구나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누군가는 벗어나 마침내 돌아오고 또 누군가는 벗어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쥘 베른(Jules Verne·1825~1905).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번역된 작가. 그는 인류의 가슴에 영원한 여행의 꿈을 심어 준 작가다.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라
교원정책 전반 다뤄 교섭위원들 긴장 지난해 11월 12일, 정부중앙청사 16층 대회의실. 한국교총과 교육과학기술부의 2008년 상·하반기 교섭·협의를 위한 제1차 본교섭·협의위원회 개회를 앞두고 양측 교섭위원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돌았다. 오전 11시 양측의 교섭대표인 안병만 교과부장관과 이원희 교총회장이 입장하고, 교섭위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분위기는 누그러졌지만 회의 내내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계속됐다. 안병만 장관은 “지난 1992년 시작된 교과부와 교총의 교섭·협의는 그동안 교원들의 권익향상과 교육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며 “이번에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우리 교육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서로 협력하자”고 말했다. 이원희 회장도 “새 정부 들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화답하며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했다. 이날 교총-교과부 간 본교섭·협의는 양측 교섭대표의 인사말, 교총의 교섭·협의 요구 사항에 대한 제안 설명, 교총의 제안 설명에 대한 교과부의 입장 표명, 양측 교섭위원의 자유발언, 교섭대표의 마무리 발언으로 진행됐다. 1차 본교섭·협의회를 마친 양측은 원만한 교섭·협의를
오늘날 교육에 관한 일이라면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없다. 주위 사람들 혹은 언론보도 등으로부터 얻은 간접경험을 추가하여 모두가 자칭 교육전문가로 군림한다. 제반 교육문제에 대해서 서슴없이 칼을 들이대고 자신들의 상식과 잣대로 교육을 비판하고 평가를 내린다. 깊이 연구하고 생각해본 적도 없으면서 교육이 무너진다는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당면한 문제들을 스스로가 세운 기준에 의거해서 예리하게 분석하고 명쾌하게 판단하며 때로는 그럴듯한 처방까지도 내려준다. 사회 어느 분야보다도 교육은 그 특성상 성과나 실적을 가늠하기 어렵다. 교육의 궁극적 결과물은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체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각종 교육기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은 최종 산출물이 될 수 없다. 사회 각 분야로 흩어져 학창시절에 배우고 익힌 실력을 바탕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국민 모두가 교육의 결과이다. 학교 시설물이나 그 속에 있는 교사, 학생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핵심과 본질은 놔둔 채 건물을 얼마나 짓고 기자재를 어떻게 개선하고 어떠한 행사를 몇 번 실시했다는 등의 가시적·외형적·단편적 실적이 점수화, 계량화되어
“히틀러는 독일군의 진격을 재촉했고 영국군과 프랑스군 34만여 명은 덩케르크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달랐다. 히틀러는 1940년 5월 24일 돌연 독일군의 파죽지세 진격을 중지시켰고 그로 인해 시간을 번 영·불군은 아슬아슬하게 덩케르크에서 철수할 수 있었다. 히틀러가 진격을 중지시키지 않았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전황은 어떻게 달랐을까? 제2차 세계대전 초반전은 ‘당나귀전쟁’이라 비판받지만 영국과 프랑스도 개전 초에 독일군의 북유럽으로의 진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실책을 범했다. 독일은 폴란드를 전격적으로 점령한 데 이어 덴마크 전역과 노르웨이의 주요 항구들을 점령했다(1940. 4~6). 영국과 프랑스는 군대를 투입해 노르웨이를 지원했으나 독일 공군에 압도당해 철수했다. 독일은 1940년 5월에 네덜란드를 5일 만에, 벨기에를 2주 만에 장악했다. 그리고 난공불락의 마지노선을 뚫은 후 파리를 장악한(6월 15일) 독일은 6월 22일에 프랑스의 3/5를 장악했다. 소련 또한 라트비아 3국에 이어 핀란드를 침공하는 등 이른바 ‘대조국전쟁’에 나섰다. 최고의 전략가임을 자랑한 히틀러는 독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