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A 학급은 매우 산만하다. 담임교사보다 일찍 등교한 학생들은 교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큰 소리로 이야기하거나 떠들기 일쑤다. 아침조회시간에 교사의 전달사항은 조용히 경청하지만, 구체적 상황에서는 교사의 지시에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다. A 교실에서 수업하는 대부분의 교과 교사들은 소극적이고 반항적인 학급 분위기 때문에 수업 진행을 어려워한다. 그래서 많은 교과 교사들은 A 학급을 ‘문제 학급’이라고 부른다. · 이런 이유로 교사들은 A 학급에서 수업할 때면 수업목표에 충실한 수업, 학생중심수업을 진행하기보다 수업시간을 때우는 방식으로 무성의한 수업을 하곤 한다. 이는 학생들의 소극적 수업태도에도 원인이 있지만, 학생에 대한 교사의 낮은 기대와 무관심이 크다고 할 수 있다. A 학급에서 교과 내용을 지도할 때 교사들은 학생들이 싫어하거나 어려워하는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다. 또 개별화나 수준별 수업, 협동학습, 다양한 멀티미디어 활용 등 학생중심수업보다 교과 내용의 효율적 전달에 중점을 두는 설명식 수업을 한다. 그 결과 A 학급 학생들은 다른 학급에 비해 성적이 낮고, 배우지 못한 내용도 늘어나게 되어 학력 저하가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 이같이 어
지난 7월 정부는 ‘서비스경제 발전전략’을 통해 2018년부터 디지털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전면 적용된다는 계획을 알렸다.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기초연구가 1997년부터 시작되어 온 것을 고려하면, 20여 년 만에 교과서로서 학교 현장에 전면 보급되는 셈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이미 성년이 되었을 만큼의 긴 시간이다. 디지털교과서가 전면 도입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늘 그렇듯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모양새다. 최근 ‘포켓몬고’ 게임의 열풍이 불면서 학교 현장에서도 스마트교육의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여전히 인터넷 중독이나 시력 저하, 인성의 황폐화 등을 우려하는 견해도 상존한다. 이러저러한 기대와 우려를 접하다 보면, 과연 사람들은 디지털교과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디지털교과서를 상상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필자는 2012년부터 디지털교과서를 연구하면서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 개발 절차 및 과정, 디지털교과서 활용 수업 및 현황, 수업 모형 개발,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분석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디지털교과서와 이를 둘러싼 세상을 살펴보게 되었다. 연구를
01 예수가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는 장면은 각기 다른 묘사와 각기 다른 강조점을 보이며 성서의 여러 대목에서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누가복음 24장에 기록된 사형장의 정황이 눈길을 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을 당할 때, 예수 혼자에게만 형이 집행된 것이 아니라, 주변에 다른 두 명의 사형수가 있었다. 흉악한 강도였던 그들 역시 십자가형을 당했다. 예수를 매단 십자가 옆 좌우로 흉악한 강도 둘이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성서는 이 장면에서 두 강도의 상반된 태도를 보여 준다. 한 강도는 예수를 욕하면서 네가 구세주라면 우리를 당장 이 처형의 위기에서 구해보라고 조롱하며 불신의 태도를 보인다. 다른 한 강도는 예수를 욕하는 그를 나무라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쁜 짓을 하여 십자가형을 받으면서도 신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악행 때문에 벌을 받지만, 이 분은 아무런 잘못을 한 적이 없으시다.” 그리고는 예수께 말을 한다. “예수님 주의 나라에 들어갈 때, 저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가 말한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천국에 있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IT 기업에 다니는 부모들은 어떤 교육을 중요하게 여길까? 미국의 최첨단 정보기술(IT) 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실리콘밸리. 이곳에 있는 구글, 애플 등 대표적인 IT기업의 직원들은 과연 자녀들에게도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스마트 교육을 강조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IT 전문가들이니 마땅히 컴퓨터와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교육에 몰두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이들은 디지털 기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학교로 아이들을 보낸다. 그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컴퓨터가 한 대도 없다. 우리나라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빔프로젝터 등의 멀티미디어 기기도 없다. 물론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소지할 수도 없다. 대신 분필, 종이, 연필 등 아날로그 교육 기자재를 사용하고, 컴퓨터 검색 대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찾도록 유도한다. 또한 독서 및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창의적인 사고와 좋은 인성을 배우고자 애쓴다. 컴퓨터와 같은 디지털 기기가 창의적 사고와 주의력 형상, 학생들 간의 인간적 교감 등 교육의 중요한 목표들을 방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구글사의 한 직원은 “아이패드를 이용한 교육이 읽기와 산수를 더 잘 가르칠 것으로
‘자기역할계획서’는 심층면접에서 평점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자료이다. 교육청별로 과거를 알면 현재를 알 수 있다는 취지에서 ‘자기성장소개서’라고 명명되기도 한다. 어떤 명칭으로 불리든 모두 자기소개서이고 작성 방법과 사용처는 유사하다. 특히 ‘자기역할계획서’는 현재에서 바라본 미래 즉, 교육전문직이 되면 이루고 싶은 면을 강조한다. 이 글에서는 서울특별시교육청을 기준으로 ‘자기역할계획서’라고 하고, 경기도교육청의 자기성장보고서를 참고로 한다. 기존 형태의 평가도구에서는 교육전문직로서의 자질·태도·가치관에 대한 적격한 평가가 어려웠다. 그래서 ‘자기성장소개서’를 통해 개별화되고 심층적 면접을 실시한다. 면접관은 제출된 ‘자기성장소개서’를 참고하여 심층면접에서 추가 질문을 하고, 평정관은 현장근무·실태평가·방문평가 시 사전에 읽게 하고 있다. 결국 ‘자기성장소개서’는 2차 시험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셈이다. 따라서 1차 합격 후 2차 시험의 긴급 상황에 작성하기보다는 미리미리 작성하고 틈나는 대로 수정·보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자기의 교육적 이상을 글로 쓰면 교직논술이고, 말로 하면 심층면접이다. 교직논술에서 서론과 결론이 필수이듯이 심층면접
교육부가 디지털교과서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디지털교과서를 통해 이러닝(e-learning) 관련 산업들을 활성화시킬 수 있고, 이것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정말 그럴까’하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교과서는 공공재이다. 머지않아 정부는 몇몇 관련 업체에 지침과 예산을 주고, 디지털교과서를 만들어 달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정부로부터 제공받은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얼마나 큰 경제 발전 효과가 나타날지 솔직히 의문이 앞선다. 어떤 사람들은 “교육콘텐츠 오픈 마켓을 만들자! 그럼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교육콘텐츠만 취급하는 웹 사이트를 만들면 좋겠다고 상상하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에 그칠 것 같다. 만약 정말 될 일이었다면 스마트기기 보급률이 높고, 사교육 산업이 잘 발달한 우리나라에 이미 등장했을 것이다. 지난 2012년에 국내 대기업에서 ‘○○허브’라는 교육콘텐츠 사업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요즘 ‘○○허브’라는 문구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면 2012년, 2013년 글만 보게 된다. 정부도 지난 2011년에 교육콘텐츠 오픈 마켓을 만들어 보겠다고 공언한
조선교육사라는 명저를 남긴 이만규 선생은 1906년에 경성사범학교에 진학하여 교사가 되려 하였으나, 입시에 실패하여 부득이(?)하게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졸업 후 개업 의사가 되었으나 곧 폐업하고 사립중학교 생물교사로 교직의 길을 선택하였다. 근대 초기에는 이처럼 교육자가 의사에 버금가는 전문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해방 후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의사와 교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의사는 전문직, 교사는 일반 급여생활자 혹은 유사 전문직 정도로 인식의 전도가 일어났다. 역사가 만든 비극이지만 교육자들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교직의 성격에 대한 본격적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였다. 의사·변호사 등 근대적 직종의 약진 속에서 열악한 근무조건과 부족한 경제적 대우에 불만을 품은 교사들의 아우성이 쉴 사이 없이 노출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원노동조합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1947년에 결성되어 교원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근무여건 개선에 몰두하고 있던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의 적극적 활동에 고무된 측면도 있었다. 물론 1950년대 중반 이후 일교조의 과격성에 대한 경계의 목소
어느 날 공개 수업에 들어갔을 때, 마치 학생이 교사에게 ‘설명해보세요’라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교사는 쉼 없이 ‘열강’을 하고 학생들은 교사의 설명을 ‘잘’ 듣고 있다. 교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단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열심히 어떤 것을 ‘전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중간 중간에 ‘알았지?’하며 ‘협박’하는 말이다. 판소리로 치자면 1인 2역(고수와 창자 역할)을 하는 식이다. ‘힘’이 있어 보이지만 한편 ‘힘’들어 보인다. ‘얼마나 버틸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한편의 마당극이 생각난다. 배우는 관객 속으로 들어가 ‘같이 논다.’ 정해진 대로 이끌지 않는다. 적당히 갓길로 빠지기 일쑤다. 함께하는 이 시간의 재미에 오직 충실할 뿐이다. 언젠가 어느 유명 방송인의 토크 쇼를 본 적이 있다. 그는 무대에 서지 않고 관객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말을 하도록 시종 이끌기만 했다. ‘자신의 이야기’는 화두를 던지는 용도일 뿐이다. 그는 관객이 내뱉은 말을 가지고 다시 양념을 치고 더하여 이야기를 엮어냈다. 일명 ‘삼천포로 빠질 듯’한 지점에서는 일탈하지 않도록 ‘조정’ 역할에 충실했다. ‘과연 그는 이 토크 쇼를 위해 무엇을 준비했을까?’ ‘수업’을 학생
‘많이 가르치는 교육’에서 ‘배움을 즐기는 행복교육’으로 교육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수업 방법도 교사가 가르치는 것이 아닌 학생들이 배우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며, 교사의 역할 역시 학생들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 학생들이 정답을 찾아가도록 협동을 촉진하고 생각을 연결하는 것으로 변해야 한다. 즉, 많이 생각하게 하고 ‘왜?’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도록 수업을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수업 내용과 삶을 연결시키는 수업 디자인 수업 내용도 학년 간 성취기준이 비슷한 교과끼리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수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때 가장 고민해야 할 사항은 수업 내용과 삶의 연관성이다. 수업 내용과 학생들의 삶이 서로 관련성이 없다면 학생들은 수업에 흥미를 느낄 수 없다. 교과 내용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왜 이 수업을 배워야 하지?’라는 의문만 생기게 된다. 또한 ‘함께 배우는 배움’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동하며 정답을 찾아가는 수업은 서로 배우는 교실을 만든다. 함께 배우는 것의 좋은 점을 실감해본 학생은 틀림없이 모든 학교생활 장면에서 친구
학교 건물은 다른 건물들에 비해 다소 까다롭고, 복잡하고, 특수한 면이 많다. 교육뿐만 아니라 학생과 교사들의 생활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를 설계하면서 사용자의 요구를 충분히 수렴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교 건물은 해외 선진국에 비해 관 주도의 일방적인 업무 프로세스에 의해 추진되는 경향이 높다. 이제 학교는 교육장소를 넘어 지역사회의 중심적인 커뮤니티시설로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전 세계가 그러한 추세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학교를 둘러보자. 과연 어떠한가? 학교는 지역사회 커뮤니티 시설로 거듭나야 최근 OECD CELE(Centre for Effective Learning Environments)의 GNE(Group of National Experts)뿐만 아니라 국내 학교 건축 전문가들은 학교 공간(space)을 재개념화(re-conceptualization)하고, 공간을 새롭게 재디자인(re-design)하며, 재협상(re-negotiation)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급격한 사회 변화와 교육환경 변화 그리고 기술의 진화는 학교에 수많은 요구사항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학교 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