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중년 부부가 있었다. 그런데 부부간에 서로 인정하고 아끼는 것이 부족했다. 특히 부인이 심했다. 남편 말이라면 도무지 인정하지 않았다. 남편이 무슨 말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가로막았다. “아니,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요. 아, 잠자코 있어요.” 부인은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부인이 워낙 당차고 거센지라, 남편은 달리 대꾸하지를 못했다. 젊은 시절 한두 번 아내에게 큰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난 적이 있었던 터라, 더더욱 기를 펴지 못했다. 남편은 아내가 정말로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소 급하고 직선적인 아내의 성격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의 이런 말버릇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심해졌다. 집에서 단둘이 있을 때는 무어라 해도 괜찮은데,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여럿이 어울릴 때는 곤혹스러웠다. 지난 연말 부부 동반 송년회 모임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모임을 진행하는 사회자가, 지난 한 해 그 댁에서 기장 행복했던 일은 무엇이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이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온 일이었다고 대답하는 중에 아내가 가로질러 나섰다. 남편을 쳐다보며 그녀는 말했다. “아니,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요. 아, 잠자코 있어요
문학이라는 말은 항상 나를 살짝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어쩌다가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정식으로 문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듯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치약이나 약 상자에 씌어 있는 사용법에서부터 광고 문구에 이르기까지 글자로 씌어 있는 모든 것을 허겁지겁 읽었으며, 특히 소설책이나 시집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일은 아니지만, 지속해서 일기 비슷한 것을 썼다. 내가 문학교육이라는 걸 받았다고 우기자면 아마도 이것이 전부일 것이다. ‘무엇이든 읽기’ 그리고 ‘생각나는 대로 쓰기’. 무엇이든 읽기 무슨 책이든 다 재미있다고 말했던가? 당연히 거짓말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랬다. 책이든 포장지든 가게 앞에 붙어 있는 간판이든, 글자로 씌여 있는 모든 것이 재밌었다. 처음으로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책은 아마도 교과서일 것이다. 수업시간 내내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들여다봐야 하고, 선생님이 읽으라는 부분을 읽어야 하고, 읽으면서 외워야 하고, 외운 것을 시험까지 봐야 하니까.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특히 독서는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도덕적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갈등상황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도덕적인 문제 상황을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할 때우리는 일반적으로 ‘도덕 원칙’을 중요한 근거로 활용한다. 원칙이란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다. 따라서 도덕 원칙은 도덕 규칙이나 도덕 법칙과 유사하게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규칙과 법칙, 원칙의 의미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다음에서 초등학교 교육활동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규칙과의 비교를 통해 원칙과 도덕 원칙의 특징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원칙은 규칙보다 중요하다 초등학교의 경우 교과수업을 포함한 다양한 교육활동 속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것은 학교나 학급에서 지켜야 할 규칙에 관한 것이다. ‘복도에서 뛰지 않기’, ‘수업시간에 장난치지 않기’, ‘줄 서서 걸어가기’ 등의 규칙들은 대부분 무엇인가를 하지 말라는 규제나 통제와 관련된다. 물론 이러한 규칙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꼭 필요한 것이며, 그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도덕 교과의 경우에는 규칙의 의미와 규칙의 토대가 되는 원칙을 좀 더 구체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규칙
윤동주의 ‘서시’, 이육사의 ‘광야’,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40년대에 쓰인 시구가 아직도 가슴에 치명적인 감동을 주는 것은 아마도 이들의 시가 단순히 예술을 추구한 것이 아닌, 시대를 살아가는 ‘자기 삶의 지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자기 성찰적 시를 쓴 윤동주는 그 살벌한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역사가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을 따르고자 애썼는지 느낄 수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2016년 초 개봉한 영화 동주는 윤동주의 생애와 시를 딱딱한 교과서의 몇 문장으로만 배우고 가르쳐왔던 우리들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시라는 언어를 통해 깊은 사유를 전달하고, 시대의 아픔을 시어 하나하나에 담아내고 있는 윤동주의 삶과 시를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시를 막연하고 어렵게 느끼는 아이들도 낮게 읊조리는 시인의 이야기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 영화 동주 줄거리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 시인을 꿈꾸는 청년 동주에게 신념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청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던 ‘모순 행정’ 13 대 4. 지난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는 소위 진보 성향 교육감 13명에게 화려한(?) 시대를 열어줬다. 유창한 언변으로 포장된 그들의 교육혁신 공약이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틀 안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半信半疑)의 심정으로 지켜본 지 2년이 흘렀다. “학교자율성을 확대하고, 학교 내 갈등을 해소하며, 교육환경개선을 위해 교육재정을 확대하겠다”는 그들의 약속은 처음엔 환영받았다. 하지만 교육현장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정한 교원정책과 학교자율성에 대한 이중성 진보 교육감들은 선거에서 투명한 교원인사와 교육비리척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교육비리에 불관용 원칙을 세우고 인사제도개혁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지난 3월 1일 자 서울·경기 등 일부 진보 교육감들이 보여준 교원인사는 ‘낙하산 보은(報恩) 인사’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를 두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진보 교육감들이 비서, 보좌관을 공모교장에 임명하고 승진시키는 등 측근 중심 파격 인사를 단행해 교육공무원임용령 및 교육청 인사 관리 원칙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무원칙한 보은 인사는 또 있
[제시문] ·석민 : 선생님! 상담받고 싶어요. ·교사 : 무슨 일인데? ·석민 : 저는 부모님 사랑을 받고 싶은데, 부모님은 공부를 못하면 사람도 아니라며 자주 야단치세요. 매번 낮은 점수 때문에 시험 후 부모님께 성적표 가져가기가 두려워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은 해 보지만, ㉠ 저 자신이 무능하고 무가치하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 의욕이 생기지 않아요. 가끔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교사 : 안타깝구나. 부모님께서 너의 입장을 이해해 주시면 좋을 텐데. ·석민 :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에요. 부모님은 동생을 더 예뻐해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귀엽기는 하지만, 저보다 공부를 못해요.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여학생은 공부를 못해도 상관없다며 저에게만 너무 많은 요구를 하세요. 어쩌다 동생과 말다툼이라도 하면, 동생이 잘못했어도 ‘너는 오빠잖아’라며 저에게 참으라고 하십니다. 너무 속상해요. · 교사 : 부모님께서 너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무척 속상했겠구나. 그런데 공부는 언제부터 힘들어졌니? · 석민 : 초등학교 때까지는 저도 공부를 꽤 잘했어요.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한 후 ㉡ 부모님께서는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코미디나 연기자에
슬프게도 이제 우리는 술과 담배, 컴퓨터 게임, 인터넷, 스마트폰, 야동 등에 중독된 아이들을 쉽게 만납니다. 중독은 나약한 의존적 성격 때문일까요? 유전자 또는 잘못 들인 습관 탓일까요? 도대체 왜 거의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걸까요? 강제로 끊게 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중독,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갈망 미국의 경우 고교생의 24%가 마약을 포함한 불법 약물을 사용한 경험이 있고, 약 9%가 물질 남용이나 의존현상을 보입니다. 한국에는 마약과 술 같은 물질보다는 컴퓨터 게임과 도박 등 행동에 중독된 경우가 흔합니다. 행동중독에도 물질중독처럼 뇌 보상 중추에서 도파민이 활성화되며 충동성과 인지적 오류가 개입됩니다. 통제 불능의 욕구도 똑같이 나타나기 때문에 물질중독만큼 심각한 문제입니다. ‘마약이 아니니 다행’이라는 식으로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중독매개는 중독자의 의식과 의지를 지배하며 결코 자연스럽게 소멸하지 않습니다. 중독을 끊도록 야단도 치고, 격려해주거나 보상을 약속해도 별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문제입니다. 중독자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요? 사람이 산길에 잘못 들어가서 헤매고 있다면 회귀하기
교과전문성으로 교육현장에 새로운 활력소 올해로 교직 3년 차인 A 교사, 누구나 선망하는 선생님이 됐지만 마음 한구석 회의감을 느낄 때가 많다. 수직적 학교 문화 속에 학부모에 치이고 학생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임용 시험 때의 패기와 열정은 오간데 없이 무력감에 빠져있다. 교과 수업은 갈수록 어렵고, 각종 교수법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어떤 것이 우리 반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것인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할 뿐이다. A 교사처럼 수업의 전문성을 높이고 학교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찾고 싶은 교사들이 ‘광주 초등수석교사회’로 몰려들고 있다. 창의적인 수업방법과 다양한 수업기술, 그리고 교직생활의 어려움을 함께 풀어나갈 멘토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이들은 새내기부터 40대 후반의 고경력 교사까지 다양하다. 회장을 맡고 있는 송미나 수석교사(광주 수문초)는 “교직생활의 새로운 방향 전환을 모색하고 전문성 향상을 통해 보람과 만족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 수석교사들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 4월 광주초등수석교사회 주최로 열린 수업혁신 위크숍에서 그대로 그러났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광주지역 초등교사 2백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날 행사는 ‘역량
친구들과 어울려 딱지치기를 하거나, 함께 몸을 부대끼고 뒹굴며 놀던 ‘놀이 문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서울가동초등학교의 점심시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했다. 학교 공간마다 아이들의 건강한 호흡과 티 없는 웃음소리로 온 학교가 들썩거린다. 이 아이들을 웃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여럿이 함께 신나게 뛰어노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서울가동초등학교의 가장 대표적인 감성교육프로그램은 ‘즐겁게 함께 놀기’이다. ‘우리’라는 말보다 ‘나’라는 말이 익숙한 학생들에게 올바른 심성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여럿이 함께 신나게 뛰어노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서울가동초 학생들은 중간놀이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교실에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전통놀이를 하며 옛 멋을 즐기는가 하면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야구·농구·축구·배드민턴 등 다양한 스포츠클럽 활동에 구슬땀을 흘린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운동장 걷기’이다. 땀 흘리기 싫어하는 여학생들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산책하듯 운동장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역시 풍요롭고 따뜻한 감성은 ‘좋은 친구와 어울려 놀 때’ 가장 왕성하게 싹튼다. 36.5℃ 따스한 감성으로 ‘365일 행복한
법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동·청소년법, 여성보호법, 노동법 등…. 마찬가지로 올해 8월부터 시행되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하 교권보호법)’도 우리 사회에서 교권과 교육활동이 자연스럽게 보장되기보다 법으로 규정되고 보호받아야 할 만큼 약화되었고, 쟁점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사를 존경한다’ 응답 학생 비율 11% 물론 학습자·소비자 중심 시대인 오늘날 교권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체로 ‘철밥통’으로 표현되는 교직에 대한 인식은 ‘선호’와 ‘불만’, ‘비판’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공존하고 있다. OECD 교수·학습 국제 조사(Teaching and Learning International Survey : TALIS) 결과, ‘교사 위상 지수(Teacher Status Index 2013)’는 상위권을 차지했으며, ‘교직을 희망한다’는 학생의 응답률도 터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반면 현직 교사의 자기효능감과 직무만족도는 현저히 낮다(김갑성 외, 2011:OECD, 2014).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교사의 응답률은 1위를 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