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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며 생각하며> 광복절을 보내며


풍물동아리 회원들이 합숙에 들어갔는지 며칠째 운동장을 달구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두레패를 따라다녔던 추억이 새삼스러워 그들의 연습 장면이 보고 싶어졌다. 상쇠가 요란하게 신명을 불어넣던 꽹과리소리, 청승스럽고도 구성지던 새납소리, 한번만 쳐도 옆 동네까지 들리던 징소리와 가슴을 울리던 북소리, 날렵하게 손을 오가며 춤사위에 휩싸이던 장구 소리가 귀에 아련했다.

'큰마당동아리’ 회원은 모두 열다섯 명이었다. 꽹과리를 치는 상쇠가 앞장서고 부쇠, 중세가 뒤따랐으며 장구, 북, 버꾸치는 회원이 무리를 지었다. 그들 사이에 상모꾼도 두 명이 끼어 흥을 돋웠다. 쇳소리와 가죽소리가 어울려 열기를 더하는데도 펄펄 뛰며 날았다.

이들은 아침 7시 반서 밤 9시까지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연습에 몰두했다. 원을 그리며 돌다 태극 모양을 그리기도 하고 ㄷ자를 만들기도 하며 모두 웃다리 판굿에 정신이 쏠려 있었다. 검고 두터워 보이는 벙거지를 쓰고 상모를 돌리며 움직이건만 땀도 흘리지 않는 것 같았다.

얼굴은 황토빛에 남자 회원 턱에는 수염이 삐쭉하였다. 상처난 발목과 벌겋게 물집 잡힌 팔목이 눈에 들어와 가슴이 찡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한참동안 소리와 춤사위에 빠졌다가 돌아서 걸음을 떼자 그들은 내 뒤모습에 장단을 맞추는 것이 아닌가. 꽹과리, 장구, 북, 소고의 박자가 내 발걸음에 딱 맞았다. 연구실로 돌아왔을 때는 몇몇은 운동장에서 그대로 연습하고 또 몇몇은 체육관 지하실 쪽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나는 그때 문득 복숭아가 떠올랐다. 어제 석사과정 학생이 세미나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조치원에서 사왔다면서 냉장고에 넣고는 “이거 선생님만 드셔야 해요”하며 웃던 모습이 북소리에 묻어났다. 나는 창문을 열고 운동장에 대고 소리쳤다. “큰마당 학생, 한 사람 내 연구실로 올라와!”

나는 냉장고에서 복숭아를 꺼내 봉지에 넣고 사탕도 챙겼다. 키가 자그마한 여학생은 내가 복숭아가 든 봉지를 건네자 더욱 당황하는 빛이 뚜렷했다.

“사실은 선생님께 혼날까봐 대표가 오지 않고 제가 왔습니다. 시끄러워 괴로우시지요?” “아닐세. 자네들은 오늘 내게 잃었던 소리를 찾아 주었네. 큰마당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울림일세.”
“선생님, 고맙습니다. 내일부터 연수가 시작된대서 낮에는 체육관 지하실에서 연습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왜 저들을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는 풍물패로만 알고 있었을까. 연수가 시작되면 낮에는 체육관 지하실에서 땀 흘리겠다던 큰마당 젊은이들의 분별력, 저들의 흥겹고 믿음직스럽던 소리가 그 옛날 두레패 추억을 일깨워 주다니….

과거 청산 논란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광복 59주년이 지났다. 풍물패도 이렇게 분별력이 있거늘 지도자란 사람들이 패나 가르니 한심한 일이다. 두레패에 섞여 추임새나 넣던 우리 아버지, 광복 59주년에서야 나는 우리 부모님이 농군이어서 부끄럽지 않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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