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의 대학입시제도는 고등교육기회의 확대, 중등교육의 정상화, 대학의 특성적 발전 유도 및 대학의 수학적격자 선발과 같은 목적을 달성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역사적 산출물이다. 그 동안 대학입시제도는 고등교육기회를 확대하는데 기여하여 고등교육 취학률이 85%이상이 될 정도로 누구나 원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보편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학벌사회 속에서 대학 졸업 후 취업과 직결된 특정 대학과 특정 학과에 대한 선호도가 집중되어, 나뿐만 아니라 자식 및 손자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입시지옥에 살고 있다. 그리고 중등교육의 정상화라는 목적과는 다르게 사교육은 더욱 극성하여 공교육 파괴뿐만 아니라 가정 파괴까지 몰고 오고, 우리 수업료의 몇 십배가 투입되는 조기 유학은 늘어만 가고 있으며, 수능시험 뒤 교실은 공황상태에 빠지고, 학생은 자살을 하거나 무면허 음주 사고를 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대학의 특성적 발전이나 적격자 선발을 도모하기보다는 일부 대학은 기초교육이 부족한 학생들도 쉽게 입학할 수 있거나, 정원의 반절도 채우지 못하여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대학입시에 관한 한 고등학교의 등급화 반영, 국영수와 같은 본고사 실시 및 기여 입학제 적용과 같은 3가지 금기사항을 제외하고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은 일반전형과 특별전형, 수시제와 정시제, 무시험제와 추천제 등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보장되고 있으며, 최소 3년 전에 예고하여 변경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 틀 속에서 이탈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은 국민적 합의를 거친 지혜로운 정책을 도출하여 과감히 바꾸는 용기가 절실한 때이다.
먼저, 국가는 고등학교 졸업자들의 질적 통제를 하는 국가단위의 시험만 관리하고, 이 결과를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학생선발의 기제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제공하는 역할만 하여야 한다. 교육부가 학생선발에 대하여 대학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고 말을 하지만 대학들이 아직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학생선발의 자율성이 대학인들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대학수학능력시험을 고등학교 졸업자로서 대학입학 자격을 검증하는 기제로 활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현재의 수능시험은 일년에 두 번 볼 수 있도록 하고 표준 점수화하여 난이도를 조정하여야 한다. 그리고 대학에서 학생 선발에 수능시험결과를 반영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학생이 자유롭게 선택한 시험 결과를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시험결과는 영역별로 현재의 9단계에서 더욱 세분화하는 방안도 검토하여야 한다.
셋째, 각 대학은 불합격자가 없는 학생선발 방법을 강구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대학이나 학과별로 절대기준의 최소 지원자격을 제시하고 이를 상회하는 지원자에게는 대학의 수용 능력과 평정 결과의 우선순위에 따라서 입학연도나 학기를 유연하게 지정하여 개별적으로 통보하는 제도를 진지하게 검토하여야 할 때이다.
마지막으로 고등학교의 내신 성적은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공신력있는 객관적 평가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기제로 전환하여야 한다. 고등학교의 내신 성적을 위한 평가문항 개발에 대한 직무연수를 심화하여 교과별로 수능 시험문제와 같은 형태로 문항을 개발할 것을 유도하고 학교시험이 곧 수능시험과 연계되도록 한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학교교육은 내신을 위한 것이고, 사교육은 수능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신 성적은 대학에서의 성적과 같이 상대평가제를 도입하여 사회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기제로 재탄생하여야 한다. 이제 교육 분야도 한국적인 공공성으로 통제되는 곳이 아니라 국제적인 시장의 한 부문이 되었다. 한국의 교육이 국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학생의 학교선택권과 학교의 학생선발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만일 정부가 관여하고자 하면 국·공립학교는 좋지만 사립학교는 관여할 부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국립은 국립이고, 공립은 공립이며, 사립은 사립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여 학교의 설립 목적을 무시하고 모든 학교들로 하여금 한 기준을 따르도록 종용하는 것도 일종의 규제이다. 따라서 이 기회에 기존에 만들어 논 로드맵을 떠나서 국제적인 기준에 어울리는 입시제도를 다시 한 번 실천하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