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매일 접해야 하고, 우리가 접하지 못하는 정보도 수없이 많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정보를 머리에 입력하려는 무모한 시도가 아니라, 정보의 효율적인 취사선택과 새로운 정보의 창출이다. 이를 위해 학교교육에서 무엇보다 강조돼야 할 것이 바로 ‘자기주도적 학습자’를 길러 내는 것이다. | 조철호 충북 보은 속리산수정초 교장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바다를 좋아하게 만들자 세월 따라 교육도 변한다. 고기를 잡아주는 주입식교육이 효과를 보던 때도 있었다. 옛날이야기도, 달나라 이야기도 선생님을 통하지 않고는 들어보지 못했던 때는 교사가 절대적인 지식 전달자였다.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선생님은 절대적인 존재였고 감히 그림자조차 밟기 어려운 사람 이상의 그 무엇이었기에, 그때는 선생님이 고기를 잡아 주는 대로 먹었다. 싫다고 하거나 내가 잡겠다고 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교사는 교실 왕국의 임금이고, 교장은 학교 천국의 대왕이었다.
그러다가 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학습자,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하자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안내자이고 조력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더 큰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 고기가 살고 있는 강이나 바다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는 것이다.고기를 잡는 방법만으로는 이 시대를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단순히 고기만 잡는 것은 아주 기계적인 일에 불과하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고기가 많으면 많이 잡힐 것이고, 고기가 적으면 적게 잡힐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고기가 사는 강이나 바다를 좋아하게 만든다면 고기를 잡는 것 외에 물고기를 양식하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도 있고, 무궁한 자원을 찾아 새롭게 이용하는 등 강과 바다를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강이나 바다를 사랑하고 생태계를 보호하며 유익하게 이용함과 동시에 자연을 사랑하고 생태계를 보호할 줄 아는 멋진 인간으로 성장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기를 잡는다’는 단순한 목적이 아니라 미래를 개척하며 보다 거시적인 목적에서 고기만이 아닌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강이나 바다를 대상으로 스스로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해 나아갈 줄 아는 학습자’로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삶을 즐기고 새로움을 찾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거나 모두가 공동으로 새로운 사고를 해나가는 자기주도적 학습자를 기르는 일은 21세기의 ‘새로운 학습의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2009 개정교육과정과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를 통해 ‘자기주도적 학습자’를 기르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욕심부리기에 앞서 기초부터 다져야 우리는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기초 · 기본 학습’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높고 훌륭한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설계와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할 것이다. 1층짜리 기초인데 2층이나 3층을 올린다고 생각해 보자. 2 · 3층의 건물은 혹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욕심을 부려 더 높은 건물을 올린다면 건물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또, 기존의 건물이 기초가 부족하다고 해서 새로 더 튼튼한 기초를 하고, 다시 건물을 올린다면 가능할까? 건물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사람을 다루는 인간교육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정과 초등학교에서부터 몇 십 층, 아니 백여 층의 건물을 올려도 끄떡없을 정도의 튼튼한 기초를 닦는다면 건물 붕괴의 위험은 없을 것이다. 기초 · 기본이 다져진 다음에 이를 바탕으로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우리는 급한 마음에 기초는 생각하지도 않고 큰 건물을 올리려는 조바심을 갖기도 하고, 그릇은 작은데 많은 것을 담으려는 허영을 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