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4일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참여정부의 지방분권화 실현을 위하여 향후 5년간 추진할 7대 분야 20대 과제를 선정한 것을 골자로 하는 '지방분권 로드맵-분권형 선진국가 건설'을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중앙정부-지방정부간 권한 재배분'의 분야 중에 포함된 '지방교육자치제도 개선' 과제이다. 위원회는 이 부분에서 현행 지방교육자치제도(이하 "지교제"라 한다.)의 문제점으로 교육행정의 일반행정과의 분리로 의결권이 중복되는 등 종합행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 교육행정에 대한 주민 참여가 미흡하다는 점, 지방자치라고 하면서도 전국적으로 획일적인 행정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시·군·구의 교육관여권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등을 들고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는 것을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위원회는 이 과제에 대해서 금년 후반기부터 2004년 후반기까지 여론을 수렴하여 개정안을 마련한 다음, 2005년 전반기까지 이것을 법제화하겠다고 하는 일정을 밝히고 있다. 개선안에 관한 위원회의 이러한 공식 발표의 내용은 종전부터 정부와 학계의 일각에서 줄곧 주장되어 오던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정도의 내용이라고 하면 새삼스럽게 생각할 것은 아니며, 부분적으로는 교육계가 의연히 수용하여야 할 부분도 있다고 본다.
문제는 같은 날 각종 언론에 보도된 또 다른 내용들이다. 위원회는 단순히 교육자치사무와 일반자치사무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차원이 아니라 양자를 통합하여 시·도 및 시·군·구의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가 맡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위의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고 하면 이것은 지금까지 일반행정학계와 정부 일각에서 주장해오던 '개선안'과는 질적으로 다른 주장이라 할 것이며, 교육계가 그 당부(當否)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천명하여야 할 중대 사안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필자 역시 다음과 같은 점을 짚어보기로 한다.
첫째, 위원회의 개선안이나 위의 보도내용은 전적으로 학계와 정부 일각의 일방적 시각만을 반영하였을 뿐 당사자인 교육계의 참여와 의사를 배제하였기 때문에, 그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위원회 위원들의 경력을 확인해보니 위촉 위원 15명이 한결같이 일반행정학계 인사 등 교육계 밖의 사람들뿐이며, 소관 14명의 전문위원 역시 사정이 마찬가지이다.
위원회는 향후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겠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작 단계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충분한 의견수렴의 기회와 절차를 보장하는 것인데, 하물며 참여정부를 표명한 현정부에서랴.
둘째, 위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위원회의 지교제 개선안은 '개선안'이 아니라 '통합안'이라 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 통합안은 그 자체로서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이 안은 "왜, 교육자치인가?" 하는 점, 즉 '교육자치'의 본질을 도외시하고 있다. 교육자치는 교육이라고 하는 전문영역의 자치로서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2000년 3월 헌법재판소 역시 "지방교육자치는 중앙권력에 대한 지방적 자치로서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헌법 제31조 제4항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정치권력에 대한 문화적 자치로서의 속성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또한 보도에 따르면 이 안은 '교육사무'는 '지방사무'라고 하는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교육이 공교육이라고 하면, 그것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검토할 때, 교육사무가 지방사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주지하다시피 공교육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엽에 각국들이 국민들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고 국가의 성격을 봉건국가에서 국민국가로 개편해 가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에서 국민 통합의 수단으로 제도화한 것으로써 기본적으로 국가사무로 간주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이나 독일의 관계법령들이 교원을 지방공무원이 아닌 국가공무원으로 규정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끝으로 이 안은 '지교제'의 핵심인 교육위원회의 자치입법권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교육자치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한 핵심적인 제도는 의결기구로서의 교육위원회의 존속이라고 하겠다. 현행의 지교제는 미흡하지만 나름대로 그 점을 지향해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문제가 있다고 하면 보완을 하더라도 그것을 폐지하려고 해서는 아니 된다.
요건대 정부는 위원회를 개방하고 지교제를 다시 검토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전반적으로 잘 짜여진 지방분권화 로드맵이 이 문제로 인하여 불필요한 훼손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