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0여년 동안 우리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주기적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체제를 유지해 왔고, 외형상으로는 대부분의 교원들이 매번 새롭게 등장한 교육과정에 큰 무리없이 적응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경우에 개정 폭이 지나치게 커서 기존의 교육과정에 대한 경험을 무시하거나 기피하고 새로운 교육과정에 적응하는 데만 급급하다보니 종래의 교육과정의 장점을 활용하고 그를 바탕으로 보다 개선시키려는 노력은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6∼7년 동안의 교육경험과 현장연구결과를 교육의 질 개선에 투입하여 누적적으로 활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의 폭이 워낙 크기 때문에 대부분 폐기처분하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또한, 전면적인 개정으로 인하여 교육과정상의 일관성과 연속성이 유지되기 어려웠고, 점진적이며 누적적인 개선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교육과정 평가와 연구 결과에 기반을 두지 않고 교육과정 개정에 참여하는 인사들의 경험과 주장에 영향을 받아 교육현장과는 동떨어진 교육과정을 탄생시키기도 하였으며, 현행 교육과정과는 다른 특색있는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되어 지나치게 앞서가는, 비현실적인 교육과정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개정 당시의 정치세력, 사회적 현안, 사회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기도 하였으며, 발언권이 많고 영향력이 있는 특정 인물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과거 일곱 차례의 개정작업을 통하여 우리 교육계가 생생하게 경험하였던 것들로서 주기적이고 전면적인 교육과정 개정의 폐단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 새롭게 개정된 교육과정에 적응하여 원만하게 교육활동을 전개할 수 있기까지는 교원 개인적으로나 학교 전체적으로 큰 수난(?)을 겪는 것이 관례가 되다시피 하였고, 그것은 7차 교육과정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7차 교육과정은 5차, 6차에 비하여 더 많은 저항과 갈등을 야기 시켰던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을 교육현장에 투입시켜 적용하기까지 지난 수년 동안 교육계가 홍역을 치루는 것을 지켜보면서 뜻 있는 분들은 이와 같이 정례적으로 교육과정을 대폭적으로 개정하는 일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토로하기에 이르렀다.
교육과정을 주기적으로 개정하고 그에 적응하기 위하여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그러한 투자가 얼마나 효과적이며 또한 교육적인 것인지, 꼭 그래야만 우리 교육이 개선되고 발전될 것이라는 주장이 어떤 근거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하여 이제 신중하게 생각해 볼 때가 온 것이다.
대폭적으로 개정된 교육과정은 검증되지 않은 교육과정이기 때문에 지난 6년 동안 검증과정을 거친 기존의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보다 유익하고, 신뢰롭고,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점을 우리 교육계가 진지하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적응노력과 기존의 교육과정으로부터 탈피를 거듭하는 동안 발생하는 국가적인 손실이 엄청나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를 출발점으로 삼아, 교육현장에서의 교육과정상의 일관성을 중시해야만 교육이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양질의 교육활동을 보장할 수 있고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점에 관하여 신중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음을 지적해 두고 싶다.
결론적으로, 교육의 질 관리체제가 제대로 작동되어 선진국 수준의 교육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주기적인 교육과정개정체제를 조속히 상시개정체제로 전환해야만 한다. 지식의 팽창과 급격한 사회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6년이나 기다릴 수 없으며, 수시로 문제를 발견하여 수정보완하고 개선해 나가는 교육과정체제만이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교육현장 중심의 부단한 교육과정평가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 질적으로 수준높은 교육과정을 지향해야 하며, 그를 바탕으로 우리 교원들이 안정적으로 교육목표 달성도를 제고시키고 교육효과 증대와 교육활동의 질적 개선에 보다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그 동안 정례적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하고 그에 적응하기 위하여 투입했던 국가적인 관심과 노력을 이제는 현행 교육과정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개선시켜 나가는 데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교육과정체제를 구축 운영할 수 있도록 정책적 전환이 절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