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한사랑'. 녀석은 재혼한 엄마가 안양에서 살고 있고 아빠는 목포에서 뱃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늘 웃음을 잃지 않고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는 게 늘 대견스러웠다. 부모님을 대신해서 알게 모르게 관심을 쏟다보니 녀석도 내게 집에서 있었던 일이나 자기의 생각을 모조리 조잘대곤 한다. 그리고 가끔은 내게 뭔가를 못 갖다줘서 안달을 한다. 물질적인 보상이라도 해주고 싶어서일까.
"선생님, 저는 뭘 사드리고 싶은데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어쩌다 주시는 용돈이 천 원 정도라서 고민이에요." "괜찮아. 네가 씩씩하고 공부 잘 하며 지내는 게 선생님한테는 큰 선물이란다."
어린 그 마음에 가슴이 흐뭇하게 떨려왔다.
어느 날, 방과 후 빈 교실에 앉아 있을 때였다. 사랑이는 용돈이 생겼는지 가게에서 무엇을 사왔다며 호주머니에서 빼낸 고사리손을 살며시 펴보였다. 풍선 두 개와 손잡이가 달린 빨아먹는 사탕 두 개였다. 평상시 `군것질하지 마라' ` 용돈 아껴 써라'고 한 내 말이 생각났는지 약간은 망설이는 태도였다.
"이걸 왜 선생님 앞에 가져 왔니?" "선생님하고 풍선불기 시합도 한번 해보고 싶고 빨아먹는 사탕 장난도 해보고 싶어서요."
황당한 제안이지만 빙긋 웃는 그 모습을 보곤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풍선불기는 내가 이길 줄 알았는데 그만 저버렸다. 아이들은 풍선을 가끔 갖고 놀아서 그런가 싶었다. 빨아먹는 사탕은 이른바 `페인트 사탕'이라고 하는 것인데 빨다보면 혓바닥이 초록색으로 되는 것이었다.
"저처럼 혀를 쭉 내밀어보세요."
그 말에 한껏 혀를 내밀었더니 녀석은 내 혀를 보고 깔깔깔 자지러지게 웃으며 뒤로 넘어지는 것이었다.
바쁜 오후 시간을 뺏은 녀석이 얄밉기도 했지만 잠깐 동안 웃음을 짓게 한 순수한 교감이 무척 상쾌했다. `그래, 교육은 즐거운 만남이구나.' 녀석이 떠난 교실은 오후 햇살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