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받고 꼭 일주일을 고민했다. 답장을 하긴 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을 풀어갈지 도무지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문자를 보낸 아이를 만난 것은 지난 해, 지역의 한 입시설명회장이었다. 대학입시와 관련된 다양한 전략과 정보를 소개하는 특강을 마치고 강당을 나서는 순간 앳된 얼굴의 한 여학생이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고1인데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진로가 매우 중요하고 그래서 자신은 미술과 연관된 직업과 국어교사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내 답변은 간단했다. “미술은 화면(畵面)이나 조형물같은 매개체를 통하여 인간의 마음에 다가가지만 교사는 성장 단계에 있는 사람과 직접 교감하면서 마음을 움직인다는 차이가 있지. 똑같이 사람을 대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만나는 것이 너의 진심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인지는 결국 본인이 판단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네가 생각한 방향과 맞는지 생각해보면 아마도 답이 나올 듯 한데”라며 마치 숙제를 내준 듯 서둘러 말머리를 거둬들였다. 그로부터 꼭 반 년만에 날아온 문자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작년에 미술 관련 직업이랑 국어교사라는 직업을 두고 선생님께 질문했던 송이입니다. 선생님께서 조언해 주신 덕분에 지금 국어교사로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빨리 드렸어야 하는데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제가 ‘2013학교’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즉 열정만으로는 이 직업을 꾸준히 이어나갈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꿈꿔온 이상은 모든 학생을 차별없이 대하고 아이들과 친해지길 원하는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함께 지낸다면 저의 이런 꿈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듭니다. 제가 느끼기엔 드라마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교권 추락을 걱정하는 기사가 많다고 들었기에 앞으로 제가 교직에 입문하는 칠, 팔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이런 불안감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제가 진정 교사로서의 꿈을 키워가는 것이 맞을까요? 선생님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이 드라마가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진작에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채널을 맞춘 적이 몇 번 된다. 과거 학교를 소재로 한 드라마들은 대부분 청소년의 꿈과 사랑을 낭만적으로 다뤘지만 ‘학교2013’은 왕따, 자살, 폭력, 엄친아, 교권 추락 등 교육현장의 그늘을 사실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말 숨기고 싶고 그래서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던 사실들이 화면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올 때는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드라마의 속성상 일정 부분 과장된 내용도 있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리얼한 부분도 있었다.
“송이야, 문자를 받고 일찍 답변을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글쎄 송이가 생각하는 국어교사는 어떤 모습일까? 아름다운 시를 낭송하며 감미로운 서정의 세계를 공유하고 우리말의 질서를 가르치면서 올바른 국어생활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교사는 자신이 맡은 교과를 지도하는 것 이외에도 아이들의 생활지도와 성적관리 그리고 행정적으로 처리해야할 일들이 많단다. 게다가 드라마에서 보았듯이 선생님을 인생의 스승이 아니라 단지 직업인으로만 보고 되바라지게 행동하는 아이들도 있어 이들로 인한 상처도 만만치 않단다. 선생님처럼 교직생활을 오래 전에 시작한 분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마뜩치 않아 때로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너희 세대들에겐 오히려 자연스러울지도 모르지. 물론 드라마 속의 교권 추락 현상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단다. 그러나 그것이 교사의 전부라고 여기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단다. 교사는 가르칠 아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거든. 송이야, 네가 꿈꾸는 교사의 세계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끄럽거나 두려운 것도 아니란다. 힘을 내고 다시 한번 꿈을 향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학교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그리고 무너진 교권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물론 우린 알고 있다. 흔들리는 학교와 무너진 교권의 이면에는 바로 이 사회의 병리현상이 자리잡고 있다고. 그래서 학교를 다룬 드라마에 열광하며 또 좌절하면서 가해자이자 피해자의 심정으로 아픔을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학교2013’이 묻는다. 지금 학교라는 정원(庭園)은 어떤 상태고 이를 아름답게 가꾸어야할 교사는 어떤 존재인가라고. 송이로부터 짧은 답변이 왔다.
“드라마로 교사의 역할을 판단한 것 자체가 어리석었네요. 지금 제가 교사의 길을 포기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